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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분석 2026년 5월 10일 · 국회

최태원 SK회장 국회 강연
미중 AI 패권경쟁 속 대한민국 전략은?

2026년 5월 10일 국회에서 진행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강연 전문을 정리하고, 핵심 주장을 검증한다.
목 차
  1. 강연 배경과 화두
  2. AI의 본질: 기억이 곧 지능이다
  3. 네 가지 병목: 돈, 전기, GPU, 메모리
  4. 대한민국 AI 전략: 스피드, 스케일, 소버린 AI
  5. 뉴 캐피탈리즘: AI 충격에 대비한 사회가치 경제
  6. 한일 경제 통합: 새로운 성장 설계
  7. 질의응답에서 드러난 추가 시각: 분산 발전
  8. 정리: 세 갈래 처방을 한 자리에 모으면

CHAPTER 01강연 배경과 화두

2026년 5월 10일, 국회는 한국 재계 대표 인사 중 한 명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초청해 미중 패권 경쟁과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시대 한국의 성장 전략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강연은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의원 질의응답이 뒤따랐다. 최 회장은 모두에 본인의 발언이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임을 분명히 전제한 뒤,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첫 번째는 AI 산업의 구조와 한국의 위치다. 트랜스포머(Transformer) 모델이 우연한 발견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과정을 짚고, 앞으로 펼쳐질 경쟁의 진짜 병목은 어디에 있는지 정리하였다. 두 번째는 AI가 가져올 사회적 충격, 특히 일자리 소멸에 대비한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이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이라는 경제권의 크기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즉 한일 경제 통합을 중심에 둔 장기 설계다.

강연의 세 축 ① AI 산업의 병목과 한국의 돌파 전략, ② AI가 가져올 사회 충격에 대한 새로운 자본주의 설계, ③ 경제 규모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한일 통합 구상.

이 글에서는 강연 전체를 충실히 따라가되, 일반 독자도 흐름을 잡을 수 있도록 핵심 개념마다 짧은 비유를 덧붙이고, 강연 중 인용된 수치는 공개 자료와 비교해 확인하였다.


CHAPTER 02AI의 본질: 기억이 곧 지능이다

최 회장은 지금의 AI가 누군가의 정교한 설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트랜스포머 모델이라는 우연한 돌파구에서 시작되었다고 운을 떼었다. 모델의 파라미터(parameter, 학습 가능한 가중치)를 계속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똑똑해지기 시작했고, 그 똑똑함의 정체는 결국 모델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기억하느냐로 환원된다는 관찰이다.

그동안 이게 똑똑하지가 않았는데 파라미터를 왕창 늘리다 보니까 갑자기 어느 순간에 똑똑해지기 시작을 한 거죠. 그리고 그 똑똑이라는 얘기 안에는 결국 얼마만큼의 과거 혹은 우리의 생활을 알고 있느냐, 즉 놀리지(knowledge)인데요. 솔직히 이 놀리지를 담는 방법이 기억입니다. — 최태원 회장 강연 중

10년차 비서 vs 첫날 비서  갓 출근한 비서는 잔뜩 가르쳐 줘야 한다. 10년을 함께 일한 비서는 명령어 한마디만 던져도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 AI도 같다.

그 차이는 결국 그 사람이 그동안 누적한 기억의 양과 질이다. AI를 더 똑똑하게 만든다는 말은, 그래서 결국 더 많은 기억을 더 잘 저장하고 더 빠르게 꺼내쓰게 만든다는 말과 거의 같은 뜻이 된다.

여기에서 곧장 비용 문제가 따라온다. AI에게 기억을 시키는 일은 결국 메모리 칩에 데이터를 적재하는 일이고, 그 메모리는 비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통째로 기억시키면 가장 정확하지만 비싸지고, 핵심만 압축해 기억시키면 싸지지만 추가 질문에 약해진다. AI의 지능 수준은 결국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어디에 점을 찍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AI 모델의 기억-비용 트레이드오프 기억을 많이 저장할수록 지능은 올라가지만 비용도 함께 올라간다. 저장하는 기억의 양 → ↑ 지능 · 비용 지능 (정확도) 비용 (메모리·전력) 현실의 균형점 지능과 비용의 절충
기억을 많이 저장할수록 정확도는 올라가지만 비용도 함께 올라간다.
경쟁력 있는 AI는 두 곡선이 만나는 최적점을 찾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 단순한 관찰이 한국 산업과 직접 맞물리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다. AI 계산을 위해 컴퓨팅 파워를 키워야 하니 전기 수요도 폭증하고, 발전·송전 인프라를 다루는 기업들도 함께 움직인다. AI는 추상적인 소프트웨어 이슈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 한복판에 즉시 영향을 미치는 산업 변수라는 것이 강연의 출발점이다.


CHAPTER 03네 가지 병목: 돈, 전기, GPU, 메모리

강연의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한 부분이다. 최 회장은 AI 산업의 경쟁력이 어디서 결정되는지를 네 개의 병목(bottleneck)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각 병목이 어디에서 막히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막힘이 한국에 어떤 기회 또는 위험으로 작용하는지를 차례로 짚는 방식이다.

병목 1. 돈 - AI 데이터센터 한 동에 수십조 원

첫 번째 병목은 자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적인 클라우드용 데이터센터와 성격이 다르다. 기존 데이터센터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스토리지(storage) 기능 중심이지만, AI 데이터센터는 데이터를 입력해 지능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공장이다. 그래서 토큰(token, AI가 한 번에 처리하는 텍스트 단위) 당 비용, 와트(W)당 토큰 생산 능력 같은 새로운 측정 지표가 등장한다.

1GW(기가와트), 즉 1,000MW 당 들어가는 지금 현재 가격으로 보면 500억 달러입니다. 하나에 500억 달러가 들어가는 거죠. 물론 500억 달러 중에 대부분은 솔직히 그 장비값입니다. 컴퓨터 값이죠. — 최태원 회장 강연 중
강연 수치  1GW급 AI 데이터센터 1동 건설 비용 약 500억 달러 검증  엔비디아 경영진이 2026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제시한 추산이 500억~600억 달러 수준이다. 다른 분석가들의 추산은 다소 낮은 350억 달러(Bernstein), 380억 달러(Epoch AI) 등이 있으며, 미국 IBM CEO는 800억 달러까지 본다. 즉 강연 수치는 엔비디아 측 추산과 일치하며, 추정 범위 안에서 합리적이다.

한국 전체의 데이터센터 용량은 약 1GW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중 진정한 AI 워크로드를 감당할 수 있는 비중은 5%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강연자의 진단이다. 전 세계는 매년 10~20GW의 AI 데이터센터를 새로 짓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미국과 중국에서 일어난다.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인도가 법과 제도를 빠르게 정비해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고, 싱가포르는 이미 전기 부족으로 신규 건설을 유예(모라토리엄)했다는 사실도 함께 소개되었다.

공장이 없는 산업  자동차 산업을 키우려면 자동차 공장이 있어야 한다. AI 산업을 키우려면 AI 데이터센터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에는 AI 공장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외국 공장을 빌려 쓰면 생산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 사용료가 모두 달러로 빠져나가고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다. AI 시대의 산업 안보는 이 공장을 얼마나 빨리, 충분히 짓느냐에 걸려 있다는 것이 강연자의 진단이다.

병목 2. 전기 - 발전소와 데이터센터를 묶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병목은 에너지다. 돈이 있어도 전기가 없으면 데이터센터를 돌릴 수 없다. 1GW급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려면 사실상 원자력 발전소 한 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 한국형 원전(APR1400)이 약 1.4GW 규모이니 비율이 대략 맞아떨어진다.

강연 수치  한국 발전설비 용량 약 150GW, 피크 수요 약 97GW, 전력 예비율 30% 이상 검증  전력거래소와 한국수력원자력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국내 총 발전설비 용량은 약 156.6GW다. 강연의 150GW와 거의 일치한다. 다만 피크 수요는 2024년 하계 기준으로 이미 104.2GW를 기록해, 강연에서 언급된 97GW보다 다소 높다. 발전 용량은 크지만 송전망 병목 때문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여력이 제약된다는 강연의 진단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문제 인식과 일치한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AI 데이터센터와 발전소를 처음부터 함께 짓는 새 모델의 등장이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연산량에 따라 기가와트 단위로 출렁이는데, 이걸 중앙 그리드(grid, 전력 계통)에서 모두 흡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전기는 빅테크가 알아서 만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실제로 AI 사업자들이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춘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은 발전 용량 증설 속도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 등장한다. 서부에서 태양광·석탄·가스 등으로 대규모 전기를 만든 뒤 동부의 컴퓨팅 수요지로 보내는 '동수서산(東數西算)' 정책이 그 대표 사례다. 다만 중국은 최첨단 그래픽 처리 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 확보가 막혀 있어, 같은 전기로 만들어내는 지능의 양에서는 미국에 뒤져 있다.

한국의 위치 발전 용량은 부족하지 않으나 수도권 집중 수요와 송전망 한계 때문에 실제 가용 전력이 제약된다. 분산 발전과 데이터센터·발전소 일체화 모델이 새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병목 3. GPU - 엔비디아 독점이 영원하지는 않다

세 번째 병목은 그래픽 처리 장치, 곧 GPU다. 트랜스포머 모델이 등장하던 시점에 엔비디아의 GPU 구조가 우연히 최적의 위치를 차지했고, 이후 엔비디아는 경쟁자들이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신제품을 쏟아내며 시장을 장악해왔다. "내가 비싸게 받아도 결국 내 칩을 쓰는 것이 다른 대안보다 싸다"는 것이 엔비디아의 전략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독점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제시되었다. 지금까지 AI 시장은 주로 모델 훈련(training) 중심이었지만, 점차 추론(inference) 시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론은 사용 시나리오가 더 세분화되고, 시나리오마다 최적인 하드웨어 구성이 달라진다. 구글의 TPU(Tensor Processing Unit), 다양한 ASIC(주문형 반도체)들이 이 분화된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병목 4. 메모리 - 왜 HBM에 모두가 매달리는가

네 번째 병목은 메모리, 그중에서도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이다. 이 부분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SK그룹 회장이 가장 자신 있게 풀어낸 대목이기도 하다.

HBM이 왜 비싼 값을 받는지를 그는 위치로 설명한다. 연산을 담당하는 GPU 칩 바로 옆에 메모리를 붙여두면 데이터를 가져오는 속도와 전력 효율이 가장 좋다. 그래서 요즘은 GPU 한 칩 옆에 HBM 여덟 개를 묶어 하나의 큰 'AI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 가속기)' 칩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상 위 메모, 서랍 속 자료  사람이 일할 때 자주 보는 자료는 책상 위에 두고, 가끔 보는 자료는 서랍에, 거의 안 보는 자료는 창고에 보관한다.

AI도 비슷하게 기억을 세 층으로 나눠 둔다. ① 가장 자주 쓰는 데이터는 GPU 바로 옆 HBM에, ② 그다음은 일반 D램(DRAM)에, ③ 그래도 부족하면 SSD(Solid State Drive,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와 하드 디스크로 내려보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싸지지만 그만큼 느려진다.

HBM이 비싼 이유는 책상 위 한정된 공간을 두고 모두가 자리를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AI 메모리 계층 구조 HBM, DRAM, SSD, 하드디스크 순으로 속도는 느려지고 비용은 싸진다. HBM (High Bandwidth Memory) 가장 빠름·비쌈 DRAM (일반 D램) SSD (Solid State Drive) HDD (Hard Disk Drive) 가장 느림·쌈 속도↓ · 가격↓ AI는 자주 쓰는 데이터를 위로, 잘 안 쓰는 데이터를 아래로 옮기며 메모리 비용을 조정한다
AI 메모리 계층. GPU에 가까울수록 빠르지만 비싸다.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사실상 SK하이닉스·삼성전자·미국 마이크론(Micron) 세 곳뿐이다. AI 수요 폭증으로 이들 회사의 HBM 공급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일반 D램까지 영향을 받아 자동차·가전·PC 등 다른 시장에 돌아갈 물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메모리 병목이 한국에 주는 신호 메모리는 한국이 명백한 비교 우위를 가진 영역이다. 다만 공급량을 빠르게 늘리지 못하면 시장이 메모리를 덜 쓰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CHAPTER 04대한민국 AI 전략: 스피드, 스케일, 소버린 AI

병목을 진단했다면 그다음은 처방이다. 최 회장이 제시한 한국 AI 전략은 세 단계로 요약된다. 먼저 인프라를 깔고, 그 위에 공공 수요를 모아 시동을 걸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서 만들어진 모델과 서비스를 해외로 수출하는 흐름이다.

인프라 우선: 10~30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짓자

현재 한국에는 의미 있는 규모의 AI 데이터센터가 거의 없다. SK그룹이 아마존웹서비스(AWS, Amazon Web Services)와 함께 울산에 짓고 있는 100MW(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가 가장 큰 사례에 속하며, 이를 향후 1GW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강연 언급  SK가 울산에서 AWS와 100MW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으며, 900MW를 추가해 1GW 규모로 확장한다는 계획 검증  2025년 6월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출범식이 열렸고, 2025년 8월 기공식이 진행되었다. 울산 남구 황성동 3만 6,000㎡ 부지에 103MW 규모로 구축되며 2027년까지 41MW가 우선 가동되고 2029년 2월 전체가 완공된다. 약 6만 장의 GPU가 투입되며 향후 1GW까지 확장 계획이 공개되어 있다. AWS가 약 40억 달러(약 5조 4,000억 원), 총 투자 규모는 약 7조 원으로 알려져 있다. 강연에서 제시한 1GW = 500억 달러 가정과 거의 들어맞는 금액이다.

그는 한국이 최소 10~20~30GW 수준의 AI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단순히 한 두 동의 데이터센터로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중화학공업 육성,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이 그러했듯이, 인프라가 충분한 규모로 깔려야 그 위에서 민간 자본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논리다.

시동 모터와 엔진  자동차 엔진이 처음 돌기까지는 외부 동력이 필요하다. 스타터 모터가 한 번 크게 돌려줘야 그다음에야 엔진이 스스로 돌기 시작한다.

AI 산업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누군가 큰 규모로 인프라와 수요를 만들어 시동을 걸어줘야 한다. 이 역할을 민간만으로 하기는 어려워서, 강연자는 공공 수요를 한곳에 모아 발화점을 만들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주문하였다.

공공 수요 결집: 정부가 가장 큰 첫 손님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공공 수요 결집이다. 국민 건강관리, 주민 행정, 1인 1개 단위의 개인 비서 서비스 등에 AI를 본격적으로 적용하면 행정 비용은 내려가고 서비스 수준은 올라간다는 것이 강연자의 주장이다. 이때 발주 방식과 입찰 제도가 발목을 잡지 않도록, 빠르게 일감을 풀어내는 것이 관건으로 지목되었다.

공공이 수요의 시드(seed, 씨앗)를 깔아주면 민간 기업들도 자기 비용으로 사내 AI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한국 사회 전체가 'AI 네이티브(AI-native, AI 친화적으로 설계된)' 국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그림이다.

소버린 AI 수출: 만든 것을 팔자

세 번째 단계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자국 주권 AI) 모델의 수출이다. 강연자는 통째로 패키지를 사 갈 나라는 많지 않겠지만, 헬스케어 시스템처럼 사회 일부 영역에 특화된 AI 패키지는 충분히 제3세계 시장에 팔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한국의 성장 모델을 상품 수출에서 지능 수출로 전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I 전략의 세 키워드 ① 스피드 — 불완전해도 빨리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 ② 스케일 — 기가와트급 단위의 큰 그림을 먼저 발표해 시장 형성을 유도한다. ③ 인프라 선투자 — 정부가 인프라를 깔아주면 그 위에 민간 자본이 자발적으로 흘러든다.

이 세 가지는 사실 엔비디아의 자체 전략을 국가 단위로 옮겨놓은 것이라는 자기 인식도 강연 안에 포함되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자체 칩을 만들고 있지만 결국 엔비디아의 업그레이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관찰이 그 근거다.


CHAPTER 05뉴 캐피탈리즘: AI 충격에 대비한 사회가치 경제

강연의 두 번째 큰 축은 AI가 가져올 일자리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 부분에서 최 회장은 본인이 11년째 천착해온 사회 가치(Social Value) 측정 방법론을 꺼내며, 자본주의 자체를 다시 설계하자고 제안하였다.

지오폴리틱스 쇼크보다 길어질 AI 충격

전쟁이나 외교 갈등 같은 충격은 길어도 1~2년이면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다. 그러나 AI가 가져올 충격은 약 10년에 걸쳐 사회 전반에 미친다는 것이 강연자의 견해다. 새로운 직무가 생기는 속도보다 기존 직무가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빠를 가능성이 있고, 사람의 적응 속도가 이에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본주의의 한계

현재 자본주의는 자본이 더 많은 자본을 만드는 쪽으로 돈을 흘려보낸다. 기업은 결국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고, 일자리는 부수적인 산출물이 된다. 한 기업의 산출물에는 사실 돈만 있는 것이 아니라 ① 상품, ② 일자리, ③ 세금, 그리고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④ 환경 비용이 함께 묶여 있는데, 지금 시스템은 ①번과 ③번 일부만을 화폐 단위로 측정한다는 것이 강연자의 진단이다.

측정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  시험에서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 과목은 학생들이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는다.

장애인 고용, 환경 보호 같은 '착한 일'은 사회적으로 칭찬받을 수 있어도 그 가치가 화폐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되지도, 충분한 자본이 흘러들지도 않는다. 측정 방법론이 만들어지면 비로소 자원이 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최 회장이 11년째 매달리고 있다는 일이 정확히 이 측정 작업이다.

세금을 사회 가치 창출자에게 직접 주자

강연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제안은 이렇다. 현재는 기업이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정부가 그 세금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정부가 직접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측정된 사회 가치만큼 그 가치를 만든 사람과 조직에 직접 리워드(reward, 보상)를 돌려주자는 제안이다.

기존 자본주의와 뉴 캐피탈리즘 흐름 비교 기존 모델은 기업→세금→정부→복지 흐름이고, 뉴 캐피탈리즘은 사회 가치 창출자에게 직접 보상이 흘러간다. 기존 모델 기업이 돈 번다 세금 납부 정부 사회 지출 국민 복지 뉴 캐피탈리즘 기업이 돈 번다 세금 납부 (정부가 심판) 사회 가치 창출자 에게 직접 리워드 국민 복지
정부가 모든 사회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모델에서, 사회 가치를 만든 주체에게 직접 보상이 흘러가는 모델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이 모델이 작동하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사회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론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상을 받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강연자는 본인이 직접 측정 방법론 연구를 수년째 진행하고 있고, 이를 위한 연구기관도 만들었다고 밝혔다.

제안의 핵심 AI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사이, 사회 가치 창출 활동을 직업으로 성립할 만큼 수익이 나는 시장으로 만들면,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AI의 진전을 막거나 사회 충격을 떠안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CHAPTER 06한일 경제 통합: 새로운 성장 설계

세 번째 축은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다. 강연자는 AI 전략이 모두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백업 옵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경제 단위의 한계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북쪽이 막혀 있는 사실상의 섬이다. 경제 규모도 미국·중국과 단독으로 협상하기에는 작다.

강연 수치  한국 GDP 약 1.8조 달러, 중국은 한국의 약 10배, 미국은 약 15~20배 검증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데이터 기준 2024년 한국 GDP는 약 1.87조 달러, 중국 약 17~18조 달러, 미국 약 27~28조 달러다. 강연자의 비교 비율은 거의 정확하다. 한일 통합 시 6조 달러 추정도 일본 GDP 약 4.2조 달러를 더한 값과 부합한다.

"우리가 보는 중국과, 중국이 보는 한국은 다르다"는 표현이 강연 중 등장했는데, 자국 GDP의 10분의 1 수준인 경제권을 굳이 신경 쓸 이유가 큰 강대국은 없다는 냉정한 진단이다.

동급 친구가 있어야 협상이 가능하다  교실에서 가장 덩치 큰 두 학생(미국·중국)이 룰을 만든다고 하자. 혼자서 그들과 협상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체급의 친구(일본) 한 명과 짝을 이루면 비로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무게가 생긴다.

경제 통합이 "협조" 수준이 아니라 외부에서 봤을 때 "하나의 경제 단위로 보이는" 수준까지 가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 강연자의 주장이다.

왜 일본인가

강연자는 한일 통합 연구를 5년 이상 진행해왔고, 학자들과 시너지 효과를 측정하는 작업도 함께 해왔다고 밝혔다. 학자 이름을 묻는 의원의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고 "필요하면 정리해 보내드리겠다"고 답하였다.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일본 측 상공회의소와도 정기적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일본과 통합하면 GDP는 6조 달러 규모로 뛴다. 중국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룰을 받는 입장(rule-taker)에서 룰을 만드는 입장(rule-maker)으로 옮겨가려면 적어도 이 정도 규모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구체 사례: 전력선·가스 파이프라인 연결

박정현 의원의 질의에서 구체적인 통합 아이템이 거론되었다. 강연자가 작성한 30개 통합 항목 리스트 중에는 한일 간 전력선 및 가스 파이프라인 연결이 포함되어 있다. 해저 터널까지는 아니지만, 해저 케이블을 통한 전력 거래는 충분히 검토 가능한 영역이라는 답변이 이어졌다.

에너지 시너지의 의미 한일 간 전력선 연결이 가능해지면 양국 모두 잉여 전력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는 전기 비용을 낮추고, 데이터센터 등 신산업의 입지 선택지를 넓힌다. 두 나라가 동시에 고비용 사회로 흘러가는 흐름을 통합으로 막아보자는 발상이다.

남방 모델과 북방 모델

한일 통합을 1차 목표로 삼으면, 그다음 두 가지 발전 시나리오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 강연자의 설계다.

남방 모델 — 아시안 유니언

한일 통합으로 만들어진 6조 달러 경제권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자연스러운 인력(引力)을 발휘한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한일 경제권에 편입되기를 원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에 비견되는 '아시안 유니언(Asian Union)' 형태가 형성될 수 있다는 그림이다. 다만 EU 27개국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릴 때 비효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룰링(ruling, 규칙 제정·운영)을 주도하는 코어 국가가 필요하고 그 자리에 한국이 들어가야 한다는 시각이다.

북방 모델 — 중국 동북 3성·산둥·러시아 연해주

경제권의 형성은 국경을 잘라 통째로 편입시키는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찰이 핵심이다. 중국의 동북 3성, 산둥, 강소성, 러시아 연해주 같이 지리적으로 한국에 가까운 지역들이 6조 달러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일본 경제권에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압력이 결국 북한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 대륙 연결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시나리오다.

한일 통합을 기점으로 한 두 갈래 확장 시나리오 한일 통합으로 6조 달러 경제권을 만든 뒤 남방으로는 아시안 유니언, 북방으로는 중국 동북3성과 러시아 연해주까지 확장하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한일 경제 통합 GDP 약 6조 달러 북방 모델 중국 동북 3성·산둥·강소성 러시아 연해주 → 북한 개방 유도 남방 모델 ASEAN 흡수 → 아시안 유니언 미국·중국에 비견되는 시장 규모
한일 통합이 만든 6조 달러 경제권이 인력(引力)으로 작동해, 남방과 북방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는 시나리오.

물론 강연자도 이 모델이 단기간에 실현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일본도 더 이상 미국에만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지금이 통합의 첫 단추를 끼우기 시작할 적절한 시점이라는 판단이다.


CHAPTER 07질의응답에서 드러난 추가 시각: 분산 발전

질의응답에서는 박정현 의원이 흥미로운 제안을 던졌다. SK그룹이 1년에 내는 전기 요금이 약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근거로, 대기업이 전기 요금을 선납하면 정부가 그 자금을 송전망 건설에 활용하는 새로운 제도를 검토하자는 것이었다. 강연자는 처음 듣는 제안이라며 검토하겠다고 답한 뒤, 더 본질적인 답을 따로 덧붙였다.

이제는 모든 걸 중앙 통제식으로 해서 대한민국에 벌어져서 돌아가는 전기를 한 군데서 전부 어 돌아와서 장악하고 이걸 준다, 뭐 그게 나쁘다고 제가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 그걸로 충분하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제는 분산 발전이라는 형태를 이제 들어오는 시대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 최태원 회장, 질의응답 중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이 알아서 전기를 만들어 쓰는 분산 발전(distributed generation) 체제가 송전망 부담을 줄이고 전체 효율을 높인다는 시각이다. 이는 본 강연의 두 번째 병목 부분에서 언급된 '데이터센터와 발전소를 함께 짓는' 글로벌 트렌드와 정확히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정책 시사점 중앙 집중식 전력 공급에서 분산 발전을 병행하는 체제로 이행하는 일은 단순한 발전 방식 변경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입지 정책·재생에너지 인센티브 설계·송배전망 투자 계획 전반을 다시 짜야 하는 과제다.

CHAPTER 08정리: 세 갈래 처방을 한 자리에 모으면

강연 전체를 한 장으로 줄이면 세 개의 처방으로 정리된다.

이 세 처방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같은 진단에서 나온다. AI가 만들어내는 경쟁의 본질이 결국 규모(돈·전기·메모리·인프라)의 싸움이고, 한국이라는 단일 경제권의 규모가 그 게임에서 명백히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그래서 인프라를 키우고,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고(사회 가치 시장), 경제권 자체의 크기를 키우는(한일 통합) 세 방향의 처방이 동시에 등장한다.

물론 강연자 본인이 모두에 밝혔듯이 이 모든 진단과 처방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일 경제 통합은 정치적으로 단숨에 풀릴 사안이 아니고, 사회 가치 측정 방법론은 아직 학계와 시장에서 충분히 합의된 표준이 없다. 10~30GW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는 그 자체로 수백조 원 단위의 자본 동원을 요구한다. 다만 이 세 가지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나오는지를 보여준 강연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앞으로 몇 년간 마주할 정책 선택지의 윤곽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히 유용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강연 정보 · 2026년 5월 10일(일) 국회 강연. 강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주제: 미중 패권 경쟁 속 AI와 대한민국의 성장 전략.

본 글은 강연 자막 전문을 기초로 정리하였으며, 인용된 수치는 엔비디아 2026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 Bernstein Research, Epoch AI, 한국 전력거래소, 한국수력원자력, 산업통상자원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IMF·세계은행 GDP 통계,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공식 발표 자료 등을 참고해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