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런티어(Palantir)를 이끄는 알렉산더 케드몬 카프(Alexander Caedmon Karp). 난독증을 가진 진보주의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박사, 그리고 시가총액 3,400억 달러 규모 안보·데이터 기업의 최고경영자.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는 한 인물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실리콘밸리에서 카프만큼 분류하기 어려운 인물도 드물다. 그는 스탠퍼드 중퇴자도 아니고, 코드를 짜는 엔지니어도 아니다. 30대 중반까지 그는 테크 업계에 발을 들이지도 않은 독일 거주 사회이론 박사였다.
카프는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나 곧 필라델피아로 옮겨졌다. 아버지는 유대계 소아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도시에서 그 조합은 흔하지 않았다. 가족은 시민권 운동과 사회 정의 활동을 일상의 배경으로 삼았고, 카프는 자라면서 부모를 따라 시위 현장에 나가곤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난독증(dyslexia)을 진단받았다. 글자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아이는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법, 그리고 언어를 통째로 ‘조립’하는 법을 일찍 익혔다. 본인은 이 경험이 훗날 자신의 사고 방식을 결정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난독증은 흔히 ‘읽기 장애’로 번역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글자 단위 처리 회로’가 느리게 작동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순서대로 읽는 길이 막혀 있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우회로를 만들어 ‘덩어리 단위’로 의미를 잡아내는 방향으로 발달합니다. 카프가 자주 보여주는 — 한 문장 안에 추상 명제 여러 개를 겹쳐 쌓는 — 화법은 이 우회로의 흔적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 센트럴 고등학교(Central High School)를 1985년에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의 인문 명문 해버포드 칼리지(Haverford College)에 진학해 철학을 전공했다. 1989년 학사 학위를 받은 뒤, 그는 진로의 두 갈래 중 ‘직업으로서의 법’ 쪽을 먼저 택한다.
1989년 카프는 스탠퍼드 로스쿨(Stanford Law School)에 입학했다. 같은 해 같은 학교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피터 틸(Peter Thiel)이다. 정치적으로 우파, 자유지상주의 성향이 강했던 틸과, 좌파 성향이었던 카프는 첫 만남에서 서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러나 둘은 그 충돌이 끝나기 전에 이미 서로의 지적 동지를 알아봤다.
카프가 더 사회주의자였고, 나는 더 자본주의자였다. 그런데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잘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피터 틸 — 카프와의 관계를 회고하며 (여러 인터뷰)
1992년 카프는 JD(Juris Doctor,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거나 로펌에 들어가는 통상의 경로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독일로 떠난다.
카프가 향한 곳은 괴테 대학교 프랑크푸르트(Goethe-Universität Frankfurt)였다. 이곳은 20세기 후반 비판이론의 본거지였다. 그는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영향권 안에서 ‘신고전 사회이론(neoclassical social theory)’ 박사 과정을 밟았고, 2002년 Dr. phil.(독일식 박사학위)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언어와 공격성이 문화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다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짧게 설명하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일상의 문화’ 자체가 사람을 어떻게 길들이는가”를 집요하게 파헤친 사상가 집단입니다. 광고, 영화, 학교, 가정 같은 평범한 것들이 어떻게 사람의 사고 범위를 좁히는지를 봤죠. 카프가 훗날 실리콘밸리의 ‘소비자 앱 중심 문화’를 “지적 게으름”이라고 비판하는 어조는, 학창 시절의 이 훈련에서 곧장 이어집니다.
박사 시절의 카프는 결코 미래 CEO의 모습이 아니었다. 베를린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머리가 자주 헝클어진 보헤미안 학자. 카프 평전을 쓴 작가 마이클 슈타인버거(Michael Steinberger)에 따르면, 당시 그를 알았던 사람들 가운데 그가 훗날 수천억 달러짜리 안보 기업의 수장이 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없었다.
박사학위를 받기 전후로 카프는 런던에 자리를 잡고 ‘케드몬 그룹(Caedmon Group)’이라는 작은 투자회사를 차렸다. 이름은 자신의 미들네임에서 가져왔다. 주된 일은 부유한 유럽 투자자들의 자산을 굴리는 것이었다. 또한 스타트업과 주식에도 투자했다. 이 시기에 그는 처음으로 “돈을 굴리는 일”에 진지하게 손을 댄다.
여기서 옛 동기 피터 틸이 다시 등장한다. 틸은 페이팔(PayPal) 매각 직후 헤지펀드 클래리엄 캐피털(Clarium Capital)을 세웠고, 카프에게 자본 조달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카프는 인맥을 동원해 유럽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줬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학우 → 동지 → 비즈니스 파트너’의 순서로 깊어졌다.
2001년 9·11 테러는 미국 정보기관들에게 뼈아픈 질문을 남겼다. 사건의 단서들은 사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 — FBI(연방수사국)에, CIA(중앙정보국)에, 출입국 기록에. 그러나 그 조각들을 연결할 시스템이 없었다. 이 ‘데이터 사일로(silo, 사일로처럼 격리된 정보 저장소)’ 문제를 풀어 보자는 발상에서 팰런티어가 출발한다.
2003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Palo Alto)에서 피터 틸을 포함한 다섯 명의 공동창업자가 회사를 세웠다. 회사명 ‘팰런티어’는 J. R. R. 톨킨(J. R. R. Tolkien)의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멀리 보는 돌(Palantíri)’에서 가져왔다. CIA의 벤처투자 부서인 인큐텔(In-Q-Tel)이 초기 자본을 댔다.
틸은 회사의 사상적 기둥이자 자본가였지만, 일상의 경영을 맡을 사람은 따로 필요했다. 틸은 CEO 자리에 카프를 앉혔다. 표면적으로는 의외의 선택이었다. 카프는 코드를 짤 줄 몰랐고, 회계도 약했으며, 사업 경력이라곤 작은 펀드 운용이 전부였다. 그러나 틸이 본 것은 그의 ‘설득력’과 ‘이질적 사고력’이었다. 정부 고객, 까다로운 엔지니어, 회의적인 언론을 동시에 다뤄야 하는 회사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은 기술만큼 중요했다.
팰런티어의 핵심 제품을 단순화하면 “정부와 대기업이 가진 여러 데이터베이스 위에 ‘공통 지도’를 깔아 주는 소프트웨어”입니다. 경찰 데이터, 출입국 데이터, 통신 데이터, 회계 데이터가 따로 놀고 있을 때, 그 위에 “이 사람·사물·사건은 사실 같은 대상”이라는 의미 지도를 만드는 일이죠. 이 지도를 팰런티어는 ‘온톨로지(ontology)’라고 부릅니다. 데이터를 늘리는 게 아니라, 흩어진 데이터에 ‘의미’를 입혀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창업 후 17년 동안 팰런티어는 비상장 회사로 남았다. 주력 고객은 미국 국방부(DoD, Department of Defense), CIA, FBI, 그리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의 정보·군 기관이었다. 알 카에다 추적,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작전 지원, 마약 카르텔 자금 추적 등에 팰런티어 소프트웨어가 쓰였다고 보도된 사례가 잇따랐다.
이 시기 카프는 두 가지를 동시에 했다. 하나는 정부 영업 — 끝없는 의회 자문, 국방부 데모, 보안 인증 획득. 다른 하나는 회사의 ‘얼굴’ 역할 — 의도적으로 거친 외모를 유지하며, “우리는 데이터로 서구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진보 성향 엔지니어들이 “정부 일을 하는 회사”에 가지는 거부감이 점점 커지던 2010년대 중반, 그는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깃발을 들었다.
팰런티어는 2020년 9월 30일 뉴욕증권거래소(NYSE, New York Stock Exchange)에 직상장(direct listing) 방식으로 상장했다. 그해 카프는 1.1억 달러가 아닌 약 11억 달러어치 보상을 받아, 미국 상장사 CEO 중 보상이 가장 많은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회사는 이후 몇 년간 큰 변화를 겪는다.
특히 2023년 4월에 내놓은 AIP는 회사의 성격을 한 단계 바꿔 놓은 제품이다. 이전까지 팰런티어는 “정부 데이터 통합 소프트웨어 회사”였다면, AIP 출시 이후엔 “대형 언어모델을 기업의 실제 업무 위에 얹어 주는 회사”로 시장에서 다시 정의되기 시작했다.
AIP를 거칠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일반 챗GPT가 “회사 사정을 모르는 외부 컨설턴트”라면, AIP는 “회사 내부 ERP, CRM, 공정 데이터, 직원 권한, 의사결정 절차를 다 학습한 사내 AI 비서”에 가깝습니다. 모델 자체보다 ‘회사의 의미 지도(온톨로지)’ 위에서만 행동하도록 묶어 둔다는 점이 차별점이고, 이 덕분에 ‘말은 잘하는데 회사 일에는 쓸 수 없는 AI’ 문제를 줄였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회사는 ‘과대평가 논쟁’의 한복판으로도 들어갔다. 2025년 말 기준 팰런티어 주가는 향후 1년 예상 매출 대비 약 85배에 거래되며 S&P 500 중 가장 비싼 종목이 되었고, 『이코노미스트』는 “어쩌면 역대 가장 과대평가된 기업일지 모른다”고 평했다. 매출 약 44.8억 달러 규모 회사의 시가총액이 한때 4,000억 달러를 넘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의 양극단 반응을 보여 준다.
2025년 2월, 카프는 회사의 법률·홍보 총괄인 니컬러스 자미스카(Nicholas Zamiska)와 함께 『기술 공화국 — 하드 파워, 소프트 신념, 그리고 서구의 미래(The Technological Republic: Hard Power, Soft Belief, and the Future of the West)』를 펴냈다.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내용을 간추리면 세 가지다.
첫째, 실리콘밸리는 길을 잃었다. 20세기 미국 기술 산업의 출발점은 정부·군과의 진지한 협력이었는데(레이더, 반도체, 인터넷, GPS가 모두 그 산물), 오늘날의 기술자들은 사진 공유 앱과 광고 알고리즘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둘째, 시장은 ‘얕은 기술 참여’에만 보상을 주고 있다. 가장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가장 시시한 문제를 풀고 있다는 진단이다.
셋째, 서구가 권위주의 진영(특히 중국·러시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 산업이 다시 국가 안보·국방의 어려운 문제로 돌아와야 하고, 정부 또한 실리콘밸리식 엔지니어링 사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뛰어난 공학적 지성을 사소한 소비자 제품에 낭비해 왔다. 한 세대 전체가 후기 자본주의 경제가 요구하는 좁은 추구를 자신의 소명이라 부르도록 길러졌다. 알렉스 카프 · 니컬러스 자미스카, 『기술 공화국』 1장 ‘잃어버린 밸리’
이 책은 우호적 평과 적대적 평이 거의 동시에 쏟아졌다. 칼럼니스트 조지 윌(George F. Will)은 “1987년 앨런 블룸(Allan Bloom)의 『미국 정신의 종말』 이후 가장 광범위한 문화 비판”이라고 평했다. 반면 비판자들은 “팰런티어가 정부 계약을 더 따 내기 위한 사상적 포장”이라며 깎아내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 카프 본인이 평소 인터뷰에서 빠르게 던지던 명제들을, 한 권의 정돈된 문서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카프는 자신을 “사회주의자(socialist)”이자 “진보주의자(progressive)”라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말해 왔다. 동시에 그는 미군과 이스라엘의 강한 지지자이며, 팰런티어가 이민세관단속국(ICE,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일을 옹호해 왔다. 외형상의 모순처럼 보이지만, 본인의 설명 방식은 일관된다 — “서구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고, 그것을 방어하지 않는 좌파는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2023년 컬럼비아 대학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격화되자, 카프는 미국 명문대를 향해 “이단의 종교 — 평범함과 차별과 폭력의 이단”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팰런티어는 이어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들며 ‘유대인 대졸자 대상 180개 자리’를 따로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카프의 정치적 위치는 한 번 더 미묘해졌다. 자칭 좌파이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 관계를 키우고 ICE에 더 깊이 들어간 모양새는, 그가 한때 속했던 진보 진영에서 격렬한 비판을 불러왔다. 카프 본인은 이 모순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results)”와 “인기(likeability)”를 분리해서 봐 달라고 요구한다.
카프는 통상적인 ‘테크 거물’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헝클어진 회색 곱슬머리, 둥근 안경, 종종 운동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회사 내부에 명상 수업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으며, 스키와 격렬한 운동을 일상의 일부로 삼는다. 영어와 독일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인터뷰에서 비트겐슈타인이나 아이재이아 벌린(Isaiah Berlin)을 인용하는 일이 잦다.
거주지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New Hampshire)주의 시골이다. 실리콘밸리 CEO 중에서도 ‘본거지에서 가장 떨어져 사는 사람’에 속한다. 본인은 “베이 에어리어의 집단 사고에서 거리를 두고 싶었다”고 설명해 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는 사실이다. 슈타인버거의 평전은 그가 일과 정치적 사명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쓰는 인물로 그린다 — 어떤 의미에서 카프 자신이 “기술 공화국”이라는 프로젝트를 자기 삶의 형식으로 채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카프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보는 사람의 좌표에 따라 크게 갈린다.
한쪽에서 그는 ‘기술과 국가의 잃어버린 동맹을 복원한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까지 미국 기술의 기둥이었던 ‘정부 — 대학 — 민간 R&D 삼각 동맹’이 1980년대 이후 약해졌고, 카프는 그 결합을 다시 ‘안보 데이터 인프라’의 형태로 복원했다. AIP는 이 흐름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쪽에서 그는 ‘민주주의의 기술적 외주화(outsourcing)’의 얼굴이다. 정부의 핵심 기능 — 정보 분석, 경찰 데이터 운용, 출입국 관리, 의료 데이터 통합 — 이 한 민간 기업의 독점적 소프트웨어 위에서 돌아갈 때, 그 책임과 통제는 누가 지는가. 비판자들은 이것을 ‘기술 봉건주의(techno-feudalism)’라 부른다.
가운데에는 더 평범한 진단이 있다. 카프는 ‘분류 불가능한 인물’이다. 사회이론 박사이자 군사 기술 CEO, 자칭 사회주의자이자 미국 안보 산업의 가장 큰 수혜자, 진보주의자이자 보수 우파의 지적 우상. 이 모순들이 한 사람 안에 어색하게 공존하기 때문에, 그는 21세기 초반 ‘기술과 권력’ 문제를 들여다 볼 때 빼놓기 어려운 좌표가 됐다.
카프를 단순화하면 “스탠퍼드 로스쿨을 나와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박사를 받은 사람이, 9·11 직후 CIA 돈을 받아 만든 회사의 CEO가 되어, 20년 뒤 미국 상장사 CEO 중 보상이 가장 많은 인물이 된” 이야기입니다. 한 줄 안에 ‘비판이론 — 정보기관 — 시가총액 3,000억 달러’가 모두 들어 있는 경력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를 한 카테고리로 가둘 때마다, 그 카테고리 자체가 깨집니다.
카프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을 이렇게 요약한 적이 있다. “나는 적이 분명한 회사를 운영한다.” 그가 가리키는 ‘적’은 단지 외부 권위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서구 내부의 ‘진지함의 부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의 회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정말로 그 적을 막아 낼 수 있는지, 혹은 다른 종류의 위험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앞으로 10년 동안 가장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