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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데니스 부스에서 세계 최고 기업까지

대만에서 태어나 켄터키 기숙학교 화장실을 닦던 소년이 어떻게 인공지능 시대의 인프라를 장악하게 되었는가

2026년 5월 18일 · 인물 · 약 13분 분량

한 줄 약력

본명
젠슨 황 (Jen-Hsun Huang, 黃仁勳)
출생
1963년 2월 17일, 대만 타이난
학력
오리건 주립대 전기공학 학사(1984),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석사(1992)
경력
AMD, LSI Logic 근무 후 1993년 NVIDIA(엔비디아) 공동창업, 현재까지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
현황
2026년 5월 기준 자산 약 2,000억 달러, 세계 7위 부호. 시가총액 3조 달러 이상의 세계 최고가 기업을 이끌고 있다.

가죽 재킷, 어깨에 새긴 회사 로고 문신, 그리고 무대 위에서 새 칩을 들어 올리며 "더 많이 살수록 더 많이 절약한다"고 외치는 모습 — 2020년대 후반의 어느 IT 컨퍼런스 화면을 본 적이 있다면 젠슨 황이 누구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비싼 부품을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의 창업자이자, 33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CEO다.

그런데 이 사람의 출발선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실리콘밸리 신화의 모범 답안과 꽤 다르다. 차고에서 시작한 명문대 중퇴생도 아니었고, 부유한 집안의 영재도 아니었다. 켄터키 시골의 한 기숙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의 화장실을 닦던 아홉 살 동양인 소년 —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만에서 켄터키까지

젠슨 황은 1963년 2월,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황싱타이(黃興泰)는 화학공학자였고, 어머니 뤄차이슈(羅彩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형제 중 둘째였다.

다섯 살이 되던 1968년, 가족은 태국으로 이주한다. 아버지가 미국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Carrier)의 직원 연수 프로그램에 다녀온 뒤 미국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고, 자녀들만큼은 미국에서 교육시키고 싶어 했다. 어머니는 매일 영어 단어 열 개씩을 무작위로 뽑아 아이들에게 외우게 했다. 정작 단어의 뜻은 그녀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한다.

1972년, 아홉 살이던 젠슨은 형과 함께 워싱턴 주 타코마에 사는 삼촌 집으로 보내진다. 부모는 태국에 남았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삼촌은 켄터키 주에 있는 오나이다 침례교 학원(Oneida Baptist Institute)이 명문 사립 기숙학교라고 착각해 형제를 그리로 보내버린다. 실제로는 문제아들을 교화하기 위한 종교 기반 교정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황은 매일 기숙사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고, 형은 담배 농장에서 일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 차별과 따돌림, 때로는 칼로 위협받는 일까지 겪었다. 훗날 그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겁이 났고 슬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어린아이여서 미국이라는 곳이 크고 화려해 보였고, 맥도날드와 피자헛 같은 신기한 식당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몇 년 뒤 부모가 미국으로 합류하면서 가족은 오리건 주에 정착한다. 황은 오리건 비버튼의 알로하 고등학교에 다녔고, 16세에 졸업했다. 학교 밖에서는 탁구에 빠져 있었다. 1978년, 15세의 나이로 미국 탁구 오픈 청소년부 복식 부문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잠깐, 비유

황의 어린 시절은 흔히 떠올리는 "엘리트 코스"와는 정반대다. 한국식으로 비유하면, 강원도 산골 미인가 기숙학원에 잘못 들어가 화장실 청소를 하던 초등학생이 30년 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열 배쯤 능가하는 회사를 세운 셈이다. 그가 종종 "어려움 자체가 자산"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데니스, 그리고 한 평짜리 대학 실험실

15세 무렵 황은 미국의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데니스(Denny's)에서 버스보이(테이블 정리·설거지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나중에 웨이터까지 승진한다. 본인은 이 경험이 압박 상황에서의 침착함을 길러줬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왔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높아지면 오히려 심박수가 떨어지고 최고의 성과가 나온다 — 데니스 러시아워에서 배운 것"이라는 식이다.

고등학교를 일찍 마친 황은 1980년 오리건 주립대(Oregon State University) 전기공학과에 입학한다. 같은 학년의 실험 파트너로 만난 여학생이 로리 밀스(Lori Mills)였다. 두 사람은 이후 결혼해 두 자녀를 둔다.

1984년 학사를 받은 황은 실리콘밸리로 향한다. 처음 들어간 회사는 AMD(Advanced Micro Devices,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즈),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업무를 맡았다. 곧 LSI 로직(LSI Logic)으로 옮겨 CoreWare 사업부 디렉터까지 올라간다. 일과 병행하며 스탠퍼드대 대학원에 다녔고, 1992년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1993년 4월: 부스 한 칸에서 시작된 회사

1992년, 황은 같은 업계에서 알고 지내던 두 명의 칩 설계 전문가와 자주 만나기 시작한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엔지니어 크리스 말라초프스키(Chris Malachowsky), 그리고 IBM과 선을 거친 그래픽 칩 설계자 커티스 프리엠(Curtis Priem)이다.

약속 장소는 캘리포니아 산호세 동쪽 베리에사 로드(Berryessa Road)의 데니스 매장이었다. 황의 표현으로는 "집보다 조용하고 커피가 쌌다." 그가 10대 시절 일했던 그 체인이기도 했다. 부스에 앉아 PC용 그래픽 칩 회사를 차리자는 사업계획을 짰다.

회사 이름은 처음에 NVision으로 정했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화장지 제조사가 이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라틴어 invidia(시기, 부러움 — 경쟁자들이 부러워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i'를 떼어 NVIDIA가 된다. 떼어낸 'i'는 당시 개발 중이던 첫 칩 NV1을 기리는 의미였다.

1993년 4월 5일, 회사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초기 자본은 단돈 4만 달러. 황은 그 시점에 자기 주머니에 있던 200달러를 변호사에게 건네 법인 등록 비용을 댔다. 곧 LSI 로직 시절 상사였던 윌프레드 코리건(Wilfred Corrigan)의 소개로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의 돈 발렌타인(Don Valentine)을 만난다. 황은 본인 표현으로 "발표가 형편없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세쿼이아와 서터 힐(Sutter Hill)이 합쳐 2,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30세였던 황이 CEO를 맡았다. 동료 창업자들은 본인들보다 어린 그에게 경영을 맡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첫날부터 젠슨에게 모든 걸 맡겼다. 우리가 할 줄 모르는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했다."

죽음의 골짜기, 그리고 살아남기

NVIDIA의 1990년대 중반은 거의 망하기 직전이었다. 1995년 출시한 첫 칩 NV1은 시장에서 실패했다. 사운드와 입출력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멀티미디어 칩이었는데,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그래픽 표준 다이렉트X(DirectX)와 호환되지 않았다. NV1이 채택될 거라 기대했던 세가(Sega)의 새 콘솔(새턴, 그리고 이후 드림캐스트)이 다른 회사 칩으로 갈아타면서 회사는 자금난에 빠졌다.

황은 직원의 절반을 해고하고 남은 자원을 단 하나의 다음 제품에 쏟아붓는 결정을 내렸다. 1997년 출시된 RIVA 128이다. 업계 표준이 된 삼각형 기반 3D 렌더링에 최적화한 그래픽 카드였고, 처음으로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팔린 NVIDIA 제품이 됐다. 회사는 살아남았다.

1999년 1월 22일, NVIDIA는 나스닥에 상장한다. 공모가는 주당 12달러였다. 같은 해 8월, 회사는 GeForce 256(지포스 256)이라는 새 칩을 내놓으며 이걸 "세계 최초의 GPU"라고 명명한다.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라는 단어 자체가 이때 NVIDIA의 마케팅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GPU가 뭐길래

일반적인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 처리 장치)는 똑똑한 회계사 한 명이 복잡한 계산을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에 가깝다. 반면 GPU는 사칙연산만 할 줄 아는 초등학생을 수천 명 모아 동시에 시키는 구조다. 화면의 모든 픽셀에 같은 종류의 계산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그래픽 렌더링에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빠르다.

이 "수천 명을 동시에 부리는 구조"가 훗날 인공지능 계산에도 그대로 통한다는 사실이 NVIDIA의 운명을 바꾼다. 다만 1999년 시점에는 그 누구도 그걸 몰랐다.

GeForce는 PC 게임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2001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콘솔 엑스박스(Xbox)에 들어갈 그래픽 칩 공급사로 선정됐다. 같은 해 NVIDIA는 S&P 500 지수에 편입됐다. 주가가 100달러를 처음 돌파하던 날, 황은 왼쪽 어깨에 회사 로고 문신을 새겼다. 본인 말로는 "다시는 안 할 것"이라고 한다.

2006년의 위험한 도박: CUDA

2006년, NVIDIA는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 통합 컴퓨팅 아키텍처)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발표한다. 그래픽 카드 위에서 일반적인 계산 작업을 돌릴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래밍 도구였다.

당시로서는 거의 비상식적인 결정이었다. 게임용 그래픽 카드 회사가 게이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기능을 위해 수년에 걸쳐 수십억 달러를 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NVIDIA 칩이 CUDA를 지원하도록 설계됐고, 회사는 이 베팅의 대가를 즉시 치렀다. 매출 대비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개발)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고, 월스트리트는 회의적이었다.

"가속 컴퓨팅은 언젠가 중요한 분야가 된다는 단순한 믿음 — 그게 NVIDIA의 비전이었다."

황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CUDA는 "시장 도전, 기술 도전, 생태계 도전이 모두 동시에 걸린, 성공 확률 0%에 가까운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칩에 이 기능을 박아 넣고 십수 년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에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 해가 2012년이다.

2012년, "인공지능의 빅뱅"

2012년, 토론토 대학교의 알렉스 크리제프스키(Alex Krizhevsky), 일리야 수츠케버(Ilya Sutskever), 그리고 그들의 지도교수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 훗날 "AI의 대부"로 불리게 되는 — 이 세 사람은 이미지 인식 대회 이미지넷(ImageNet)에 신경망 모델 하나를 출품한다. 이름은 AlexNet(알렉스넷). 1,400만 장의 사진으로 학습된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 CNN)이었다.

핵심은 학습 도구였다. 그들은 NVIDIA의 게이밍용 그래픽 카드 GeForce GTX 580 두 장으로 신경망을 훈련시켰다. CPU만 쓰던 동시대 다른 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랐다. AlexNet은 그해 이미지넷 대회에서 오류율을 거의 절반으로 낮추며 우승했고, 이 격차가 너무 커서 학계는 "이제부터는 모두 신경망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황은 훗날 GTC(GPU Technology Conference, NVIDIA의 연례 컨퍼런스) 무대에서 이 사건을 "현대 AI의 빅뱅"이라고 명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NVIDIA가 6년 전 게이머와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기능에 회사 운명을 건 이유 — 그 답이 6년 만에 토론토에서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도착했기 때문이다.

왜 AI 학습에 GPU가 필요한가

신경망을 학습시킨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행렬에 곱셈을 반복적으로 적용하는 일이다. 행렬 곱셈은 본질적으로 "여러 칸에 같은 종류의 계산을 동시에" 하는 작업이다. 이건 정확히 GPU가 잘하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AI 학습은 100층짜리 빌딩 전체를 한 번에 페인트칠해야 하는 일이다. 한 명의 천재 화가(CPU)보다는 어설프지만 수천 명의 페인트공(GPU)이 동시에 달려드는 편이 압도적으로 빠르다.

DGX-1을 직접 배달한 CEO

AlexNet 이후 황은 회사의 무게중심을 빠르게 옮긴다. 게이머용 그래픽 카드는 그대로 팔되, 회사의 진짜 미래는 AI 데이터센터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6년, NVIDIA는 인공지능 학습 전용으로 설계된 첫 슈퍼컴퓨터 DGX-1을 발표한다.

황은 첫 번째 DGX-1 한 대를 직접 트럭에 싣고 샌프란시스코의 OpenAI(오픈AI) 본사로 운반했다. 본체 위에 "지능의 미래에 — AI 컴퓨팅을 위한 세계 최초의 DGX-1을 OpenAI에 전달하며"라고 적은 사인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OpenAI는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이 비영리 연구소로 막 설립한 신생 조직이었고, 일리야 수츠케버 — 4년 전 AlexNet의 그 수츠케버 — 가 수석 연구원이었다.

이 한 대의 컴퓨터로 OpenAI의 실험 속도는 몇 주 단위로 빨라졌다. 그 위에서 진행된 연구가 결국 GPT 계열 거대 언어 모델의 토대가 됐고, 2022년 말 ChatGPT의 폭발로 이어진다. 황은 GPT-3 학습에 든 연산량이 AlexNet의 약 100만 배라고 자주 언급한다.

2018: RTX와 광선 추적

2018년, NVIDIA는 RTX 시리즈를 발표한다. 광선 추적(ray tracing) — 화면 안의 각 광선을 물리적으로 시뮬레이션해 그림자와 반사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기법 — 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첫 소비자용 GPU였다. 게이밍 시장은 여전히 NVIDIA의 든든한 매출원이었다.

같은 시기, 데이터센터 매출이 게이밍 매출을 빠르게 따라잡기 시작한다. V100, A100 같은 데이터센터 전용 칩은 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클라우드 기업들이 앞다투어 사들이는 부품이 됐다.

2022~2024: 생성형 AI와 3조 달러

2022년 11월, OpenAI가 ChatGPT를 일반에 공개한다. 이 사건은 그동안 일부 연구자들의 영역이던 거대 언어 모델을 한순간에 대중의 화두로 끌어올렸고, 그 모델들을 학습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GPU 수요가 폭발했다. NVIDIA의 H100, 이어 Blackwell(블랙웰) 아키텍처 기반 칩들은 출시되기도 전에 수년치 주문이 밀려 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2024년 6월, NVIDIA의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3조 달러를 돌파했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모두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장 기업이 된다. 황의 보유 지분은 회사 전체의 약 3.5% 수준이지만, 그 가치만으로도 그는 세계 최고 부호 명단에 진입했다.

같은 해, 황의 인기는 본인 표현이 아닌 외부에서 만든 단어로 표현되기 시작한다. 대만 컴퓨텍스(Computex) 컨퍼런스에서는 공식 발표자도 아닌데 그가 어디를 가든 팬과 파파라치가 따라붙었고, 현지 언론은 이 현상을 2012년 NBA의 "린새너티(Linsanity, 제레미 린 열풍)"에 빗대 "젠새너티(Jensanity)"라고 불렀다.

2026년 봄, 지금

2026년 5월 기준, NVIDIA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장 기업이다. 황 본인의 순자산은 약 2,000억 달러로, 포브스 기준 세계 7위 부호다. 같은 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PCAST(President's Council of Advisors on Science and Technology,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황은 33년째 같은 회사의 CEO다. 빅테크 기업 중에 창업자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채 그만큼 오래 자리를 지킨 사례는 거의 없다.

33년 같은 자리, 이상한 조직 운영

황의 경영 스타일은 실리콘밸리의 일반적인 매뉴얼과 여러 면에서 어긋난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60명 넘는 직접 보고선"이다. 일반 대기업 CEO가 보통 8~10명의 임원을 직접 관리하는 것과 달리, 황은 60명 이상의 임원을 직접 거느린다. 그것도 대부분 깊은 엔지니어링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는 정기 일대일 미팅도 거의 잡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가 문제를 들고 오면, 그 문제와 관련된 메모리 전문가, 네트워킹 전문가, 전력 전문가, GPU 설계자가 한 방에 모여 동시에 듣고 같이 푼다. 본인은 이를 "익스트림 코디자인(extreme co-design)", 즉 극단적 동시 설계라고 부른다.

업무용 메일은 한 통당 몇 줄을 넘기지 않는다. 본인은 매일 100통 정도의 짧은 "사건 보고"를 받고, 그걸로 회사 전체의 신경계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인사 평가 보고서 같은 정형화된 문서는 회사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식 비교

한국 대기업 회장이 60명에게 직보를 받고, 일대일 보고도 거의 안 받고, 회의 때 임원·실무자가 한 방에 동시에 모여 같이 문제를 푸는 모습이라고 상상해보면 된다.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운영 방식이다. 황은 "행정 관료층을 얇게 유지하는 것이 회사의 신경 반응 속도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AMD의 회장 겸 CEO 리사 수(Lisa Su) — NVIDIA의 직접적인 경쟁사 수장 — 와 그는 친척이다. 정확히는 5촌 관계(황의 어머니가 수의 외할아버지의 막내 여동생)이며, 본인들도 수가 AMD의 CEO가 된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AI 칩과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 가장 치열한 두 경쟁사의 수장이 친척이라는 사실은 업계에서 종종 회자된다.

가죽 재킷, 데니스, 그리고 문신

황을 상징하는 검은 가죽 재킷은 아내 로리가 90년대에 선물한 옷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어느 시점부터는 공식 무대에 거의 매번 같은 스타일의 재킷을 입고 등장한다. 본인 표현으로는 "옷에 신경 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

2023년에는 회사의 창업지인 산호세 베리에사 로드의 데니스 매장 그 부스에 "1조 달러 기업의 탄생지"라는 명판이 붙었다. 데니스 CEO 켈리 발레이드가 직접 황과 함께 자리해 헌정식을 열었다.

그리고 어깨의 NVIDIA 로고 문신. 1999년 상장 후 주가가 100달러를 처음 찍었을 때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로 새긴 것이다. 황 본인은 문신을 새기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아팠다"며 다시는 안 할 거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가족과 기부

황은 1986년 오리건 주립대 실험 파트너였던 로리 밀스와 결혼했다. 두 자녀 매디슨과 스펜서는 모두 현재 NVIDIA에서 일한다. 매디슨은 제품 마케팅 디렉터, 스펜서는 제품 매니저다. 가족은 캘리포니아 로스앨토스 힐스에 거주하며, 하와이 와일레아와 샌프란시스코에 별장을 두고 있다.

황과 로리는 2007년 'Jen-Hsun & Lori Huang Foundation(젠슨 황 부부 재단)'을 설립했다. 처음 출연한 NVIDIA 주식 3억 3,000만 달러어치는 2025년 말 기준 약 12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고, 미국 최대 사립 재단 중 하나가 됐다. 모교인 스탠퍼드대 공학관, 오리건 주립대를 비롯해 교육·의료 기관에 꾸준히 기부해 왔다. 2025년 초에는 캘리포니아 공예대학교(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의 모금 운동에 매칭 펀드 형태로 2,250만 달러를 기부했다.

한눈에 보는 연표

1963
대만 타이난에서 출생
1968
가족이 태국으로 이주
1972
미국으로 보내짐. 켄터키 오나이다 침례교 학원 입학
1978
미국 탁구 오픈 청소년부 복식 3위
1984
오리건 주립대 전기공학 학사. AMD 입사
1985~92
LSI Logic 근무, 스탠퍼드대 석사 병행 후 1992년 졸업
1993
데니스 부스에서 NVIDIA 공동 창업, CEO 취임
1995
첫 칩 NV1 시장 실패, 회사 자금난
1997
RIVA 128으로 첫 상업적 성공
1999
나스닥 상장. GeForce 256 발표 — "최초의 GPU"
2006
CUDA 플랫폼 출시
2012
AlexNet이 NVIDIA GPU로 이미지넷 우승 — "AI의 빅뱅"
2016
DGX-1 슈퍼컴퓨터 발표, OpenAI에 직접 배달
2018
RTX 시리즈 발표(실시간 광선 추적)
2022
ChatGPT 공개, NVIDIA H100 수요 폭증
2024
시가총액 3조 달러 돌파. 한때 세계 최고가 기업으로 등극
2026
PCAST 위원 임명. 자산 약 2,000억 달러, 세계 7위 부호

마치며

젠슨 황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이 가장 자주 놀라는 지점은, 그가 어느 시점에 운명적인 통찰을 한 번 얻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가 1993년 친구들과 데니스 부스에서 그린 그림은 "PC 게이머용 그래픽 칩 회사"였다. 인공지능은 거기 없었다.

그가 한 일은 그보다 더 지루하고 더 어려웠다. 게이머용 칩 회사가 망하지 않게 6년을 버텼고, GPU를 발명한 뒤에는 그래픽이 아닌 일반 계산에도 쓸 수 있게 만드는 데 또 6년을 쏟아부었고, 그 도박이 결실을 보기까지 다시 6년을 더 기다렸다. 외부에서 "AI의 빅뱅"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이미 그 폭발의 도화선을 자기도 모르게 깔아둔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구가 "I wish upon you ample doses of pain and suffering(여러분에게 충분한 양의 고통과 시련이 있기를 바란다)"라는, 졸업식 축사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다. 2024년 칼텍 졸업 연설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행운보다 인내를 기원했다. 켄터키 시골의 기숙학교 화장실에서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를 만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참고: 위키피디아 영문판 'Jensen Huang'·'Nvidia' 항목, Britannica Money, NVIDIA 뉴스룸, 카네기 코퍼레이션 수상자 자료, 컴퓨터 역사 박물관(CHM) 프로필, Fortune·VentureBeat·Quartr 등 보도 및 2026년 5월 기준 공시 자료를 종합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시가총액·자산 규모는 작성 시점인 2026년 5월의 추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