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PEOPLE · SEMICONDUCTOR

리사 수 — AMD를 다시 만든 엔지니어

2014년, 시가총액 30억 달러로 침몰 직전이던 반도체 회사를 맡아 10여 년 만에 AI 시대의 핵심 공급자로 되돌려놓은 이의 이야기. 그녀의 이력은 흔한 경영자 신화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끝까지 엔지니어의 어휘로 회사를 고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례 연구에 가깝다.

01침몰선의 새 선장

2014년 10월 8일, AMD(Advanced Micro Devices) 이사회는 새로운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경영자)를 발표했다. 당시 회사는 인텔(Intel)과의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 경쟁에서 한 자릿수 점유율로 밀려나 있었고,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 시장에서도 엔비디아(NVIDIA)에 격차를 허용하고 있었다. 시가총액은 약 30억 달러, 주가는 한때 2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이때 자리에 오른 사람이 리사 수(Lisa Su) 박사, 중국식 표기 蘇姿丰(쑤쯔펑)이다. 당시 만 44세, AMD 입사 2년 차였다.

10여 년이 지난 2026년 현재, AMD의 시가총액은 7,000억 달러를 넘었고, 인텔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데이터센터 매출은 분기당 4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OpenAI 및 메타(Meta)와 각각 6GW(기가와트) 규모의 AI 인프라 공급 계약을 맺어둔 상태다. 같은 회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반전이다.

02타이난에서 퀸스까지

리사 수는 1969년 11월 7일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시 퀸스(Queens) 자치구에서 자랐다. 아버지 쑤춘화이(蘇春槐)는 뉴욕시청에서 통계 업무를 했고, 어머니 산디 뤄(羅淑雅)는 회계사로 일하다 사업가가 됐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일곱 살부터 구구단을 시켰고,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사업 개념을 가르쳤다고 한다.

열 살 무렵부터 오빠의 무선 조종 자동차를 분해해 다시 조립했고, 중학생 때 첫 컴퓨터로 애플 II(Apple II)를 가졌다. 고등학교는 뉴욕 시 공립 영재학교인 브롱크스 사이언스(Bronx High School of Science)를 졸업했다. 부모가 제시한 세 가지 진로—의사, 콘서트 피아니스트, 엔지니어—가운데 그녀의 선택은 엔지니어였다.

03MIT, 반도체와 만나다

1986년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 클린룸에서 일하며 진로를 반도체 쪽으로 굳혔고, 1990년 학사, 1991년 석사, 1994년 박사를 모두 MIT에서 받았다. 박사 논문은 SOI(Silicon-On-Insulator, 절연체 위 실리콘) 트랜지스터 연구였다.

SOI는 실리콘 기판 안에 얇은 절연층을 끼워 트랜지스터의 누설 전류를 줄이는 기술로, 1990년대 후반부터 IBM 칩의 핵심 차별화 기술이 된다. 그녀가 졸업과 동시에 첫 직장으로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exas Instruments)에 들어가 반도체 공정·소자 센터에서 1년간 근무하고, 1995년 IBM으로 옮긴 것도 자기 연구 주제를 산업 현장에서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04IBM 13년 — 권력과 기술의 학교

IBM에서 그녀는 13년을 머물며 엔지니어이자 경영자로 단련된다. 그녀가 이끈 팀은 구리 배선(copper interconnect) 기술을 양산 공정에 정착시켰는데, 이 성과는 PowerPC 계열과 이후 셀(Cell)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 향상으로 이어졌다. 셀 프로세서는 소니(Sony)의 플레이스테이션 3(PlayStation 3)에 탑재돼 게이밍 콘솔의 연산 한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00년에는 당시 IBM CEO의 기술보좌역(Technical Assistant)을 맡으며 경영 수업을 받았고, 이후 떠오르는 제품 부문(Emerging Products)을 신설해 바이오칩과 저전력 반도체 같은 신영역을 개척했다. 마지막 직책은 반도체 연구개발센터(Semiconductor Research and Development Center) 부사장으로, IBM 실리콘 기술 전략과 공동 개발 동맹을 책임지는 자리였다. 2009년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전기전자공학자협회) 펠로우로 선출된 것은 이 시기의 누적된 성과를 토대로 한다.

05프리스케일 우회 — CEO로 가는 정거장

2007년 그녀는 IBM을 떠나 프리스케일 반도체(Freescale Semiconductor)로 옮겨 네트워킹·멀티미디어 부문 CTO(Chief Technology Officer, 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았다. 곧 같은 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해 회사의 주력 사업 한 축을 직접 운영했고, 2011년 프리스케일의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 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기의 의미는 단순하다 — 그녀는 처음으로 손익을 직접 책임지는 사업가의 경험을 했다. IBM이 그녀에게 기술과 거대 조직의 권력 구조를 가르쳤다면, 프리스케일은 P&L(profit and loss, 손익) 관리와 시장 응대를 가르쳤다.

06AMD라는 선택 — 2012년의 도박

2012년 1월, 수는 AMD에 글로벌 비즈니스 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합류한다. 당시 AMD는 PC 시장 침체와 인텔의 압도적인 공정 우위로 매출이 줄어드는 중이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주변에서는 "왜 굳이 AMD에 가느냐"는 만류가 많았다. 그녀가 본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인텔이 한 회사로서 모든 컴퓨팅 영역을 독점하는 구도는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 둘째, AMD는 이미 CPU와 GPU를 모두 가진 거의 유일한 회사였고, 이 둘의 결합 가능성은 PC 외 영역(콘솔·임베디드·서버)에서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었다.

합류 후 2년간 그녀는 부문 통합, 콘솔 사업 강화(엑스박스 원·플레이스테이션 4용 SoC 수주), 제품 로드맵 단순화를 추진했다. 2014년 10월 8일, AMD 이사회는 그녀를 CEO로 선임한다. 취임 직후 그녀가 공개적으로 강조한 우선순위는 단순했다 — "옳은 기술에 투자한다", "제품 라인을 단순화한다", "PC 의존도를 낮춘다". 이 세 문장은 이후 10년의 모든 의사결정을 관통한다.

07Zen — 한 번에 모든 것을 거는 도박

AMD 부활의 기술적 핵심은 2017년 출시된 젠(Zen) 아키텍처였다. 젠은 인텔과의 IPC(Instructions Per Cycle, 사이클당 명령어 수) 격차를 단번에 좁힌 새로운 CPU 코어 설계로, 데스크톱용 라이젠(Ryzen)과 서버용 에픽(EPYC) 계열로 나뉘어 출시됐다. 2017년 2분기 출시 직후 라이젠의 PC CPU 점유율이 빠르게 회복됐고, 서버용 에픽은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인텔 제온(Xeon)의 사실상 단독 구도를 깨기 시작했다. 2025년 기준 AMD의 서버 CPU 점유율은 약 40% 수준에 이른다.

비유 — CPU와 GPU는 무엇이 다른가

CPU는 만능 비서에 가깝다. 회의 일정 조율, 문서 검토, 손님 응대 같이 다양한 일을 빠르게 전환하며 처리한다. 반면 GPU는 우표 분류 작업자 수천 명에 가깝다. 단순한 분류 한 가지 작업을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으로 처리한다.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일은 거대한 행렬 곱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작업이고, 이 단순 반복에는 GPU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AMD가 CPU 부활 이후 GPU에 다시 힘을 쏟은 것은 단순히 게이밍이 아니라 이 AI 시장 때문이었다.

08자일링스 인수 — 의장직과 함께

2022년 2월, AMD는 약 490억 달러 규모로 자일링스(Xilinx)를 인수했다. 자일링스는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 현장 프로그래머블 게이트 어레이) 분야의 1위 기업이었다. FPGA는 미리 정해진 회로가 아니라 사용자가 필요할 때 회로 구성을 바꿀 수 있는 칩으로, 통신 기지국, 항공우주, 자동차, 데이터센터 가속기 같이 사양이 자주 바뀌는 영역에 폭넓게 쓰인다.

인수 직후 수는 CEO에 더해 의장(Chair) 직책을 겸하게 된다. AMD는 이로써 CPU·GPU·FPGA를 모두 갖춘 종합 컴퓨팅 회사가 됐고, 이후 AI 가속기 라인업의 통신·메모리 컨트롤러 설계에 자일링스의 자산이 흡수되기 시작한다.

09AI 시대 — MI 시리즈와 두 개의 거대 계약

AMD의 AI 가속기 라인업은 인스팅트(Instinct) MI 시리즈다. 2023년 출시된 MI300X는 192GB HBM3(High Bandwidth Memory 3세대) 메모리를 탑재해 같은 시기 엔비디아 H100(80GB)의 두 배 이상 용량을 제공했고, 이후 2025년 MI350 시리즈, 2026년 이후 MI400 및 MI450 시리즈로 이어진다.

2025년 10월 6일, AMD는 OpenAI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향후 수년 동안 총 6GW 규모의 AMD GPU를 OpenAI 인프라에 배치한다는 내용으로, MI450 시리즈부터 적용된다. 발표 당일 AMD 주가는 약 24% 급등하며 2002년 이후 최대 일간 상승률을 기록했고, 시가총액에 약 800억 달러가 더해졌다.

비유 — OpenAI에 주식을 왜 줬을까

이 계약의 가장 특이한 점은 AMD가 OpenAI에게 최대 1억 6,000만 주(완전 행사 시 약 10%)의 AMD 주식 매수 권리(워런트, warrant)를 행사가 1센트로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으로 비유하면 이렇다. 대규모 분양을 앞둔 건설사가 핵심 입주 예정 기업에게 "지금 분양받아 단지를 가득 채워주시면, 우리 회사 주가 상승의 일부를 함께 가져가실 수 있는 권리도 드리겠다"고 제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권리 행사는 실제 입주(GPU 배치 마일스톤)와 주가 목표 달성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AMD는 보조금 같은 단기 비용 대신 미래 지분을 내주는 대가로, 수요 측의 거대 고객을 자기 생태계에 묶었다.

2026년 2월에는 메타(Meta)와도 6GW 규모의 별도 계약을 발표했다. 메타는 자사 워크로드에 맞춰 커스텀화된 MI450 기반 GPU를 받기로 했고, 첫 1GW 분량은 2026년 하반기부터 출하된다. 두 계약을 합하면 AMD는 향후 5~7년에 걸쳐 단일 고객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AI 인프라 공급자가 된다.

데이터 — 리사 수 CEO 시기 AMD의 변화
CEO 취임 시 시가총액 (2014.10)약 30억 달러
2026년 5월 현재 시가총액7,000억 달러 이상
2025년 3분기 매출 (분기)92.5억 달러 (전년 동기 +36%)
2025년 3분기 데이터센터 매출43억 달러 (전년 동기 +22%)
OpenAI 계약 규모6GW · MI450 시리즈부터
Meta 계약 규모6GW · 커스텀 MI450 기반

10젠슨 황과의 가족 관계 — 친척이지만 만난 적 없는

대중적 관심이 큰 대목은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과의 가족 관계다. 두 사람 모두 타이난 출신이고, 가계도상 리사 수의 외할아버지가 젠슨 황의 어머니의 큰오빠다. 한국식으로 환산하면 5촌 친척에 해당한다. 다만 황은 어릴 때 미국 워싱턴주를 거쳐 오리건주로, 수는 뉴욕으로 이주해 따로 자랐고,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업계에 자리잡은 뒤에야 처음 마주쳤다. 수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 형제가 9명, 어머니 형제가 6명이어서 친척 모임에서 따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흥미로운 우연이지만, 두 회사의 경쟁 구도는 가족 서사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수는 2020년 한 행사에서 황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엔비디아는 훌륭한 회사다"라고 답한 뒤 "경쟁이 치열한 세계지만 가끔은 경쟁자와도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MD와 엔비디아는 실제로 GPU 시장에서 가장 첨예한 경쟁자이면서도, 표준 단체와 일부 공급망에서는 협력 관계에 놓여 있다.

11엔지니어가 CEO를 한다는 것

리사 수의 이력에서 일관된 패턴은 그녀가 끝까지 엔지니어의 어휘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분기 실적 발표에서 그녀는 IPC, 메모리 대역폭, 인터커넥트, 패키징 같은 단어를 직접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 차이가 아니라, 의사결정 속도와 신뢰의 문제다. 칩의 출시 일정과 성능 곡선은 마케팅 자료로 가릴 수 없고, 고객인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 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도 결국 엔지니어 출신 임원과 협상한다.

2024년 그녀는 TIME(타임)지의 '올해의 CEO'에 선정됐고, 2025년 포브스(Forbes)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위에 올랐다. IEEE는 2021년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 상인 로버트 노이스 메달(Robert N. Noyce Medal)을 수여하면서 처음으로 여성 수상자를 배출했다. 2022년 MIT는 새로 지은 나노과학·나노기술 연구동에 그녀의 이름(Lisa T. Su Building)을 붙였다. 그녀는 현재 텍사스 오스틴(Austin)에서 남편 대니얼 린(Daniel Lin)과 거주한다.

12마치며 — 같은 환경, 다른 결과

한 사람의 경영 실적을 영웅 서사로 단순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AMD의 부활에는 인텔의 공정 정체, 게이밍 콘솔 세대 교체, 그리고 AI 붐이라는 외부 변수가 모두 작용했다. 그러나 같은 외부 환경에서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었음을 감안하면, 리사 수의 10여 년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해진다.

그녀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 기술을 충분히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회사를 운영할 때, 흔히 말하는 '경영의 정석'은 얼마나 다시 쓰여야 하는가. 같은 질문이 한국의 종합 반도체 회사들에게도, 그 안의 연구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026. 5. 18.
주요 출처: 위키피디아 'Lisa Su' 항목, AMD 공식 임원 소개 페이지, 카네기 코퍼레이션, CNN, Tom's Hardware, AMD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 AMD-OpenAI 공식 보도자료 (2025.10.6.), Daily Political (2026.2.24. 메타 거래 보도), Stanford GSB View From The Top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