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 시장 중심으로 굳어 있던 한국 전력거래 구조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2024년 6월 14일 시행) 시행 이후 본격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실시간시장과 보조서비스시장이 신설되고, 수요자원과 분산자원을 하나의 발전기처럼 묶는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VPP) 플랫폼이 시장에 진입한다. 한국 전력산업 30년의 골격이 어디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시장 구조, 기술 요건, 제도 변화의 세 측면에서 정리한다.
한국 전력시장은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가 시작되어 2001년 한국전력공사(KEPCO)에서 6개 발전자회사가 분리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거래의 큰 줄기는 단순하다. 발전사업자는 한국전력거래소(KPX, Korea Power Exchange)에 전기를 도매로 팔고, KPX는 이를 한국전력공사(KEPCO)에 도매가격으로 넘긴다. 한국전력공사는 이를 소매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한 뒤, 받은 요금에서 도매대금을 발전사업자에게 다시 지불한다.
이 거래의 한가운데서 한국전력공사는 거의 모든 전기를 독점적으로 매입한다. 일부 구역전기사업자가 자가 수요를 충당하지 못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일부 전력을 사오는 경우 정도가 예외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 이후에는 분산에너지사업자가 일정 범위에서 직접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거래 총량의 절대 비중은 여전히 한국전력공사를 거친다.
발전사업자와 한국전력공사 사이에는 송전망 사용에 대한 망 이용료(전력산업기반기금과는 별개의 송배전 사용료)가 부과된다. 일반 가정이 한국전력공사에 전기요금을 내듯, 발전사업자도 송전망을 쓰는 대가를 지불하는 구조다.
전력시장의 거래 구조는 대형 농산물 도매시장과 비슷하다. 농가(발전사업자)가 가락시장(한국전력거래소)에 채소를 도매가로 넘기고, 중간 유통업체(한국전력공사)가 그것을 다시 동네 마트로 보내 소비자에게 소매가로 판다. 농가는 자기 트럭으로 시장에 들어오는 통행료(망 사용료)를 따로 낸다.
중앙급전 발전기를 운영하는 발전사업자는 두 가지 항목으로 수익을 얻는다. 하나는 용량요금(Capacity Payment, CP)이고, 다른 하나는 시스템한계가격(System Marginal Price, SMP)이다.
용량요금은 일정 용량의 발전기를 시장에 대기시켜 놓은 대가로 지급된다. 그날 전기를 생산했는지 안 했는지와 무관하게, 중앙급전 발전기로 등록되어 있으면 용량에 따라 자동으로 지급된다. 시스템한계가격은 매 시간대 시장에서 결정되는 도매단가다. 시간별로 가장 비싼 입찰가가 결정되며, 발전을 실제로 한 양에 이 단가를 곱한 금액이 발전사업자에게 지불된다.
여기서 중요한 분기점이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 발전사업자에게는 용량요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뒤 자체적으로 설치한 자원이라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6개 발전자회사를 비롯한 중앙급전 사업자만 용량요금 대상이다.
발전 계획과 실제 운영 사이에는 차이가 생긴다. 사전 계획대로 발전한 부분은 시스템한계가격으로 정산되지만, 계통 제약 때문에 더 발전하거나 덜 발전한 경우는 별도 항목으로 처리된다. 사전 계획된 발전이 계통 제약으로 정지(Constraint Off, COFF)된 경우, 받았어야 할 수익에서 연료비를 뺀 기회비용을 받는다. 사전 계획에 없었는데 계통 사정상 추가로 가동(Constraint On, CON)된 경우에는 그 시간대 가장 비싼 단가로 정산된다.
| 구분 | 지급 항목 | 설명 |
|---|---|---|
| 대기 보상 | 용량요금(CP) | 중앙급전 발전기 등록만으로 매시간 자동 지급 |
| 계획 발전 | SMP × 발전량 | 하루 전 시장 입찰 결과에 따라 정산 |
| 제약 정지(COFF) | 예상수익 − 연료비 | 계통 제약으로 발전 중단 시 기회비용 보전 |
| 제약 가동(CON) | 해당 시간 최고가 | 계통 요청으로 추가 가동 시 프리미엄 지급 |
| 자발 가동 | min(연료비, SMP) | 사업자 필요에 따른 추가 발전은 최저가로 정산 |
계획과 실제의 차이를 메우기 위한 추가 비용이 1년에 약 5,000억 원 규모로 발생한다. 이를 업리프트라고 부른다.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실시간시장을 신설하는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이 5,000억 원짜리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 전력계통의 표준 주파수는 60Hz이며 허용 범위는 ±0.2Hz다. 산업통상자원부 운영기준에 따르면 최대 용량 발전기 1기 고장 시에도 최저 59.7Hz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1분 이내 59.8Hz로 회복되어야 한다. 패스트 수요반응(Fast Demand Response, Fast DR)은 59.85Hz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발동된다.
왜 이렇게 좁은 범위를 고집하는가. 주파수가 떨어지면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 공급 측에서는 발전기 회전체 부품에 무리가 가고, 사용 측에서는 회전기기의 속도가 흐트러져 생산 공정이 망가진다. 주파수와 전압은 비례 관계는 아니지만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주파수가 올라가는 쪽은 전압이 함께 올라가 어디 한 군데가 터지는 사고로 끝나지만, 떨어지는 쪽은 사고 범위가 넓다. 그래서 떨어지는 방향이 훨씬 위험하다.
전력계통의 주파수 안정도는 가스 배관망의 압력과 같다. 너무 낮으면 가정마다 불이 들어오지 않고, 너무 높으면 어딘가 약한 곳이 터진다. 한국 전력망은 60Hz라는 기준 압력을 60.0 ± 0.2의 범위로 유지하기 위해 전국 발전기를 동시에 미세 조정하는 거대한 압력 제어 시스템이다.
발전기가 갑자기 멈추면 주파수는 빠르게 하락하다가 가장 낮은 지점(Nadir, 나디르)을 찍고 다시 회복한다. 이 회복 곡선의 모양이 재생에너지 비중에 따라 달라진다. 화력·원자력처럼 회전체의 관성이 큰 자원은 주파수가 천천히 떨어지고 폭도 작다. 반대로 인버터를 통해 연결되는 재생에너지는 관성이 거의 없어 주파수 하강 속도가 빠르고 하강 폭도 깊다. 이를 '계통 관성(System Inertia) 부족' 문제라고 한다.
나디르 직후의 10초가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이 시간 안에 무엇이든 출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추가 발전기가 연쇄 탈락한다. 가장 빠르게 응답할 수 있는 자원은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이고, 그다음이 부하를 끄는 수요반응(DR)이다. 이 두 자원에 일정한 동작 지령을 미리 심어두는 것이 부족전압 계전기(Under Frequency Relay, UFR)다. UFR은 주파수가 59.85Hz 이하로 떨어지면 사전에 계약된 부하를 자동으로 차단한다.
한국 전력시장은 오랫동안 '하루 전 시장(Day-Ahead Market, 현물시장)' 하나에 의존해 왔다. 영문권에서 부르는 '핫스팟 마켓(Hot Spot Market)'과 같은 개념이다. 내일의 시간대별 발전량을 오늘 오전에 입찰하고, 그 결과로 다음 날 운영이 결정된다. 문제는 이 입찰이 적용되는 24시간 동안 수요와 발전 가능량이 예측에서 벗어나면 비용이 누적된다는 점이다.
이 누적 오차를 줄이기 위해 시간축이 다양한 입찰 시장이 차례로 도입되고 있다.
| 시장 종류 | 대상 시점 | 역할 |
|---|---|---|
| 선도시장 | 수년~수개월 전 | 장기 발전설비 투자 유도, 발전소 건설 결정 지원 |
| 하루 전 시장 | 당일 D-1 | 현재 한국 전력시장의 주력. 24시간 시간대별 입찰 |
| 당일 시장 | D−2시간 | 예측 오차 보정. 신규 도입 단계 |
| 실시간 시장 | D−75분, 15분 단위 | 수급 균형 및 보조서비스 통합.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 후 육지 확대 |
선도시장은 발전설비 건설을 유도하기 위한 장기계약 시장이다. 수력은 건설에 수년이 걸리고 원자력·석탄화력도 마찬가지로 길다. 가스복합화력은 입지가 확보되면 약 1년 만에 들어올 수 있어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가장 많이 진입해 온 분야다. 그래서 가스복합화력이 갑자기 늘어나면 수급 균형이 빠르게 변동한다. 선도시장이 열리면 이런 단기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장기 계약 신호가 형성된다.
실시간시장은 제주도에서 재생에너지 입찰과 함께 먼저 시범 운영되고 있다. 15분 단위로 입찰을 받아 하루에 96회의 시장이 열리는 구조다. 75분 전부터 입찰을 받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짧은 사이클에 자기 자원의 출력 변화를 반영해 가격을 다시 매길 수 있다. 이 방식이 검증되면 본격적으로 육지 시장에서도 운영을 시작하는 단계가 이어진다.
15분은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성을 잡기 위한 실용적 한계다. 더 짧게 끊을 수도 있지만 매번 입찰을 처리하는 시스템 비용과 사업자 부담이 가파르게 늘어난다. 유럽 여러 국가도 15분 단위 시장을 표준으로 운영한다.
시간축이 세분화되는 것과 동시에 공간축도 쪼개진다. 한국의 송전망은 영남·호남에서 수도권으로 끌어올리는 단방향 구조에 가깝다. 신재생 자원은 호남(특히 전라남도)에 집중되어 있는데 송전망 용량이 부족해 약 2GW 규모의 접속 대기 물량이 누적되어 있다. 강원도 동해안에는 1,200MW급 석탄화력 2기와 1,300MW급 원전이 새로 들어와 약 4,000MW 가까운 발전 자원이 추가되었지만, 송전망 보강이 늦어 약 2,000MW가 그대로 묶여 있다.
해결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데이터센터 같은 대형 수요를 발전 지역으로 유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발전 지역에서 직접 소비를 만들어내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제도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구역 안에서 분산에너지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그 구역 안에서 우선 소비할 수 있다. 망 건설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재생에너지 수용 한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실시간시장 옆에는 '보조서비스시장'이 자리 잡는다. 주파수 안정도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 시장이며, 응답 속도에 따라 시장이 잘게 쪼개진다.
| 응답 속도 | 유지 시간 | 주요 자원 | 비고 |
|---|---|---|---|
| 1초 이내 | ~10분 | ESS, 동기조상기 | 호주에서 핵심 시장 형성. 단가 매우 높음 |
| 10초 이내 | 10분 | 패스트 DR, ESS | 한국에서 시범 운영 중 |
| 1분 이내 | 10~15분 | 디젤 발전기, ESS | 2차 예비력 대체 후보 |
| 5~10분 | 수십 분 | 가스터빈, DR | 3차 예비력 영역 |
| 1시간 이상 | 장시간 | 일반 발전기, 표준 DR | 현재 운영 중 |
이 분류를 '시간 그래뉴리티(Time Granularity)' 또는 시간 입자도라고 부른다. 응답이 빠를수록 단가가 비싸다. 한국의 패스트 DR은 일반 시스템한계가격의 약 50배 수준으로 정산된다. 평균 SMP가 110원/kWh일 때 패스트 DR은 약 5,400원/kWh가 지급된다.
가격이 이만큼 차이 나는 이유는 시장 참여 자체의 비효율 때문이다. 1초짜리 응답을 800MW 규모로 ESS로 만든다면 설치 비용에 더해 1년 유지비만 60억 원이 든다. 그러나 그 설비는 1년에 겨우 몇 분, 길어야 수십 분만 가동된다. 이용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설비를 누군가 유지하게 하려면 가동 시간당 단가를 크게 높여줘야 한다. 반대로 DR은 설치 비용이 거의 없다. 부하를 끄는 대가만 지불하면 된다. 그래서 같은 응답 속도라도 DR이 ESS보다 훨씬 경제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
보조서비스시장은 응급실의 의료 인력 대기 체계와 닮았다. 코드 블루(심정지) 상황에 1분 안에 달려가야 하는 의사는 평소 거의 호출되지 않더라도 항상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한다. 출근비와 대기 수당을 일반 의사보다 훨씬 많이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초짜리 ESS 단가가 비싼 것도 같은 이치다.
이 시장을 잘게 쪼개는 또 다른 이유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이 시간축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풍력의 돌풍 변동은 초 단위, 태양광의 구름 그늘은 분 단위, 일출과 일몰은 시간 단위로 움직인다. 각 시간 스케일마다 다른 자원이 대응해야 효율이 나온다.
2024년부터 일정 용량 이상의 재생에너지는 전력시장 입찰이 의무화된다. 1MW를 초과하는 재생에너지 설비는 한국전력거래소를 통해 거래해야 하고, 1MW 이하는 한국전력공사와의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이나 다른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2024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새 인버터 기준에 따르면 200kW 이상 설비는 출력 조절이 가능한 형태의 인버터 적용이 의무화된다.
입찰 방식은 두 갈래다. 단독형은 풍력 같은 대용량 설비 한 기를 직접 입찰하는 방식이다. 태양광은 한 기당 용량이 작아 100kW 단위 자원을 모아야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이런 소규모 자원을 묶어 시장에 대신 입찰해 주는 사업자가 중개사업자(Aggregator, 애그리게이터)다.
태양광 사업자의 입찰 전략은 단순하다. 한국은 예측 오차에 대한 페널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업자는 자기 설비의 최대 출력(Full Power)을 그대로 입찰한다. 정확도보다 발전 가능량 자체를 최대로 신고하는 것이 수익을 올리는 길이다. 그러나 가상발전소 체제가 굳어지면 이런 전략은 위험해진다. 가상발전소 안에서는 약속한 양을 지키지 못할 경우 부족분을 비싸게 사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실시간 시장 정산 구조는 다음과 같다. 하루 전에 계약한 양은 하루 전 가격으로 정산한다. 실제 발전이 계약량보다 부족하면 부족분만큼 비싼 단가로 사서 메운다. 실제 발전이 계약량을 초과하면, 초과분은 실시간 시간대 단가로 정산한다. 이 구조에서 ESS는 가상발전소의 약속 이행을 안정화해 주는 핵심 자원이 된다.
가상발전소(VPP)는 분산되어 있는 발전자원, 수요자원, 저장자원을 정보통신 기술로 묶어 하나의 가상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플랫폼이다. 운영 주체는 자기 자원 풀(Pool)의 전체 가용량을 시장에 입찰하고, 필요할 때 ESS와 DR을 함께 동원해 약속한 양을 맞춘다.
가상발전소는 어떤 자원을 핵심에 두느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유형 | 핵심 자원 | 주요 사례 | 한국에서의 적합성 |
|---|---|---|---|
| 공급기반 VPP | 재생에너지 발전기 | 유럽·영국 | 제약 큼. 재생에너지 보급 비중이 아직 낮음 |
| 수요기반 VPP | DR, ESS, 산업부하 | 한국, 미국 일부 | 유리. 산업·상업 수요 비중이 크고 DR 인프라 성숙 |
유럽과 영국은 재생에너지 보급이 일찍 시작되어 발전 자원 자체가 풍부하기 때문에 공급기반 가상발전소가 발달했다. 반면 한국은 산업·상업 수요가 크고 DR 시장이 성숙되어 있어 수요기반 가상발전소가 훨씬 효과적이다. 두 방식을 혼합해도 좋지만, 한국 환경에서는 수요기반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가상발전소는 용도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상업적 VPP(Commercial VPP, CVPP)는 시장 입찰과 수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형태이고, 기술적 VPP(Technical VPP, TVPP)는 계통 안정도 유지에 우선순위를 둔다. 한국에서는 한 플랫폼이 두 용도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구조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표준 DR도 한 자원을 여러 시장에서 중복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같은 자원을 상업적 목적과 기술적 목적에 동시에 활용하는 구조가 자연스럽다.
가상발전소 플랫폼 개발에서 중요한 능력은 다음 다섯 가지다.
이 중 재생에너지 출력 예측의 정확도가 수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시장에서는 일정 기준 이상의 예측 정확도를 달성한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과 인센티브 사이의 균형은 사업자가 직접 판단해야 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은 2023년 6월 13일 국회에서 제정되어 2024년 6월 14일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법의 핵심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송배전망 건설 부담을 줄이는 것이고, 둘째는 재생에너지 수용 한도를 확대하면서 계통 안정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주요 제도는 다음과 같다.
500MW까지를 분산에너지 사업으로 묶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분산에너지 정의는 국제적인 통념보다 훨씬 큰 자원까지 포괄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분산에너지는 보통 수 MW에서 수십 MW 이하의 소규모 자원을 가리킨다. 한국 정의의 상한이 500MW까지 올라간 배경은 가스복합화력 단위 용량과 SK 같은 대기업의 자회사형 구역전기 사업 모델을 포괄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이다.
업리프트 등 예측 오차로 발생하던 약 5,000억 원 규모가 실시간시장과 보조서비스시장으로 흘러갈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표준 DR 시장 2,000~2,500억 원과 새로 형성될 단시간 응답 시장이 더해지면 유연성 자원 시장의 총 규모는 1조 원에 근접할 수 있다.
배전계통 운영자(Distribution System Operator, DSO) 전환은 송배전 분리와 분산자원 통합의 핵심 제도다. 현재 한국의 배전망은 한국전력공사가 단독으로 운영한다. 송전계통 운영자(Transmission System Operator, TSO)에 해당하는 송전망 운영도 한국전력공사가 맡고 있어, 송배전 양쪽을 한 사업자가 통합 운영하는 구조다.
DSO가 도입되면 배전망 운영 권한이 분리되고, 분산자원 통합과 지역별 자율 운영의 폭이 넓어진다. 원래 DSO는 민간 개방을 전제로 한 논의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전력공사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전력공사가 송전망과 배전망에 대한 정보통신 인프라를 이미 깊숙이 보유하고 있고, 영업 조직과 판매 권한까지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 인프라 측면에서는 한국이 후진국이 아닌 영역이다. DR과 실시간 시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모든 국가는 배전망까지 디지털 통신망이 깔린 나라들이다. 한국은 이미 그 단계를 통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상발전소나 디지털 트윈 같은 상위 기능을 얹는 데 인프라 자체가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데이터센터 입지 문제는 별개다. 강원도 동해안에는 1,200MW급 석탄화력 2기와 1,300MW급 원전 신규 호기가 들어와 약 4,000MW 가까운 발전 용량이 추가되었지만 송전망 한계로 약 2,000MW가 묶여 있다. 이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면 발전 지역에서 직접 소비를 발생시켜 수도권 송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에 가까운 가평 일대까지의 송전 부지가 확보되지 않아 추가 송전 건설도 늦어지고 있다.
전기차의 배터리를 전력망에 양방향으로 연결해 분산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V2G(Vehicle-to-Grid)라고 한다. 가상발전소 입장에서 V2G는 매력적인 자원이지만, 현실적인 장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동시 접속 인프라다. V2G가 자원으로 동작하려면 다수의 차량이 동시에 충전기에 접속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800대 규모의 주차 빌딩 단위 V2G 실증이 진행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어 있지 않다. 출근 시간에 다수의 차량이 한 건물 주차장에 동시 접속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V2G가 가상발전소 자원으로 등록될 수 있다.
둘째는 사용 시간대의 어긋남이다. 차량은 운전자가 출퇴근에 쓰는 시간 동안 전력망에서 떨어져 있다. 정작 가상발전소가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대(낮 시간 산업·상업 부하 피크, 일몰 직후 태양광 출력 감소)는 차량이 도로 위에 있거나 다른 곳에 주차되어 있을 때다.
제주도는 예외적 환경이다. 산업시설이 적고 관광업 중심이라 전기 소비가 저녁 7시 이후에 피크를 친다. 이 시간대에 차량 다수가 호텔 주차장이나 가정에 접속되어 있어 V2G가 자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 본토는 다른 양상이다.
V2G의 한계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아 24시간 식당을 운영하는 상황과 같다. 한 명 한 명은 능력이 있어도, 정작 점심 피크 시간에 다들 다른 일정으로 다른 곳에 있어서 식당이 가장 바쁠 때 인력이 없다. 자원의 총량보다 가용 시간이 핵심 변수다.
한국 계통의 위험도를 가늠하는 데 자주 비교되는 사례가 영국의 2019년 8월 9일 정전이다. 그날 영국 표준 50Hz 계통은 낙뢰가 송전선로를 가격하면서 시작된 일련의 사고로 약 100만 명 규모의 정전을 겪었다. 정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위험 노출은 더 크다. 영국 계통은 프랑스·노르웨이 등과 해저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어 예비력 확보 비율이 낮아도 운영이 된다. 영국이 약 1GW의 예비력을 유지하는 데 비해 한국은 단독계통이라 약 5GW 수준을 상시 확보해야 한다. 그만큼 단일 사고에 대한 외부 차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호주는 1초 단위 응답을 보장하는 ESS 주파수 안정화 시장이 가장 활발히 운영되는 국가다. 대용량 ESS가 1초 안에 응답해 계통을 잡는 시장이며, 응답 자원의 단가가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다. 2017년 남호주의 대정전 이후 200MW급 ESS가 본격 도입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수용 역사가 길어 예비력 시장부터 보조서비스 시장까지 세분화되어 있다. 유연성 자원의 가치가 명확하게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ESS 등 응답 자원의 사업성이 확보된다. 한국이 ESS 주파수 보정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단가는 해외 대비 약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어 사업 동기가 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재생에너지가 일정 비중을 넘어서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간대가 생긴다. 이때 도매 가격이 음(陰)이 되는 현상이 유럽과 미국 일부 시장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다. 마이너스 시스템한계가격(Negative SMP)은 발전을 안 하는 쪽이 이익이 되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다.
한국은 아직 마이너스 SMP를 제도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너스 입찰 방식의 출력 제한은 이미 시작되었다. 재생에너지를 시장에서 줄이지 않으면 수급이 맞지 않는 시간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SMP까지 완전히 도입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가격 시그널 없이 출력만 강제로 줄이는 방식은 사업자의 수익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잉여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활발한 것은 P2G(Power-to-Gas, 잉여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다. 독일은 20MW급 대용량 수소 생산 설비를 도입했다. 한국은 같은 시기 약 1MW급 설비 수준에 있다. 독일의 P2G 성공은 정유·제철 같은 수소 수요 기반이 충분히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도 정유·제철 산업의 수소 수요는 큰 편이지만 P2G 정책 전환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한국 전력시장의 방향은 분명하다. 시간축으로는 하루 전 시장에서 실시간시장과 보조서비스시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공간축으로는 단일 시장에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같은 지역 단위 시장으로 다양화된다. 자원 측면에서는 중앙급전 대형 발전기 중심에서 가상발전소가 묶은 분산자원 풀로 비중이 이동한다.
이 흐름에서 가상발전소 플랫폼이 갖춰야 할 역량을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정확도를 시장 요구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그로 인해 얻는 추가 인센티브 사이의 손익은 사업자가 직접 판단할 영역이다. 다만 가상발전소 운영자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약속한 양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페널티이므로, 예측 정확도와 ESS의 보정 능력은 단순히 수익 극대화의 도구가 아니라 사업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자원이다.
한국 전력시장이 30년 만에 본격적으로 재설계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시장 규칙의 골격이 다시 깔리는 시기에는 인프라를 먼저 갖춘 사업자가 다음 10년의 위치를 정한다. 가상발전소,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보조서비스시장의 세 축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향후 시장의 방향을 가늠하는 가장 빠른 지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