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전력산업 규제 거버넌스 발전 방안

도매시장·요금·계통,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매듭들

2024년 10월에 열린 한 공동 심포지엄의 발제와 패널 토론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다. 발표자·소속·장소 정보를 제외하고, 논의의 본문만을 재구성하였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오랫동안 '시장'보다 '규제'의 언어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어나고 데이터센터·인공지능 수요가 부상하면서, 기존의 단일 구매자 모델과 비용기반 도매시장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 글은 도매시장 감시체계, 전력시장 감독원 신설 구상, 계통 신뢰도 규제, 그리고 요금·시장·계통을 둘러싼 토론에서 드러난 쟁점들을 한 자리에 정리한다.

목차
  1. 왜 지금 규제 거버넌스인가
  2. 도매시장 — CBP에서 양방향 가격입찰로
  3. 시장감시는 무엇을 보는가
  4. 해외의 감시체계 — 미국·영국·일본
  5. 한국의 현행 감시체계와 한계
  6. 전력시장 감독원 신설 구상
  7. 전력계통 신뢰도 거버넌스
  8. 요금 — 정치화 차단과 총괄원가
  9. 시장 — 계약시장, 도소매 연동, 변동성 관리
  10. 계통 — 정전 수용, ISO·TSO·DSO, 망중립성
  11. 남는 과제

왜 지금 규제 거버넌스인가

한국의 전력산업은 발전 부문이 분할된 2001년 이후에도 본질적으로는 한국전력공사(KEPCO)라는 단일 구매자가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사들이고, 그 비용을 정부가 통제하는 소매요금으로 회수하는 구조다. 시장이라는 외형은 갖추었지만, 가격은 비용평가위원회가 산정하고, 발전사들은 물량만을 입찰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별도의 독립적 규제기관이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정책 결정과 시장 운영, 감독 기능이 모두 한 방향으로 묶여 있어도 큰 문제 없이 굴러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의 변화는 그 안정의 근거를 흔들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면서 계통의 변동성이 증가했고, 출력제한과 보상 문제가 새로운 분쟁의 영역을 만들었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송전망 보강의 시급성을 한층 높였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지역별 차등 요금제 같은 새로운 제도들이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한전의 누적 적자와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문제는 비용 회수 구조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가리키는 방향은 같다. 시장의 규칙이 복잡해지고, 참여자가 다양해지고, 의사결정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빈도가 늘어나면, 정책 기능과 규제 기능을 분리해서 운영할 수 있는 독립적·전문적 기구가 필요해진다. 심포지엄에서 발제자 한 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재생에너지가 사실상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다. 재생에너지가 그렇게 빠르게 늘지 않았다면, 아마 기존 체제는 더 오래 유지되었을 것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 왜 갑자기 규제 이야기인가

오랫동안 한 사람이 슈퍼마켓 주인이자 가격 결정자이자 검수원이었다. 손님도 적고, 물건도 단순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채소를 직접 키우는 농가, 자가발전을 하는 가게, 시간대마다 가격이 달라지는 신상품 도매업자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한 사람이 주인 노릇과 심판 노릇을 동시에 하기에는 거래가 너무 복잡해진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전력산업이 그 지점에 와 있다.

도매시장 — CBP에서 양방향 가격입찰로

한국의 도매전력시장은 비용기반시장(CBP, Cost Based Pool) 방식으로 운영된다. 발전회사는 시장에 물량(공급량)만을 입찰하고, 가격은 비용평가위원회가 발전기별 변동비를 평가해 결정한다. 가격 경쟁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사가 가격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없다. 단순하고 안정적인 방식이지만, 발전사 입장에서는 효율성 개선의 유인이 약하고, 시장의 수급 상황이 가격에 반영되지 못한다.

이 체계에서 다음 단계로 거론되는 것이 가격기반시장(PBP, Price Based Pool)이다. 발전사가 물량뿐 아니라 가격까지 입찰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비용평가위원회가 산정한 기준가격의 ±5%나 ±10% 범위 안에서만 자유롭게 입찰하게 하는 '제한적 가격입찰' 단계를 거치고, 경험이 쌓이면 그 밴드를 제거해 '전면적 가격입찰'로 넘어간다.

전면적 가격입찰 단계에서는 발전사들이 전략적으로 행동할 공간이 열린다. 이때 단일 구매자인 한전이 발전사의 전략적 가격 인상에 대응할 수단이 거의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거론되는 것이 '양방향 가격입찰(Two-way price bidding)'이다. 수요 측, 즉 한전과 직접 구매자도 자신이 사려는 가격을 입찰에 제출하게 하는 구조다. 해외 사례에서 수요 입찰은 단순히 가격 수준만이 아니라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도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단계별 도매시장 진화 경로

① CBP (현재): 발전사 물량 입찰, 정부가 가격 결정
② 제한적 가격입찰: 기준가 ±5~10% 범위 내 가격 입찰
③ 전면적 가격입찰: 발전사 자유 가격 입찰
④ 양방향 가격입찰: 발전사·수요자 모두 가격 입찰

문제는 한 단계 진전될수록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을 두고 전략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커진다는 점이다. 해외 도매시장에서 흔히 보고되는 불공정행위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공급량을 줄이거나 변동비를 부풀려 입찰해 시장가격을 끌어올리는 '시장가격 조작(market price manipulation)'이다. 둘째, 송전망의 혼잡을 의도적으로 유발해 특정 지역의 가격을 띄우는 '혼잡 유발(congestion gaming)'이다. 셋째, 비용 자료를 허위로 제출하는 행위다. 전력시장은 송전망의 물리적 제약과 결합하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크지 않은 사업자도 특정 지역에서는 '지역적 시장지배력(local market power)'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시장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비유로 이해하기 — 송전망과 지역 시장지배력

전국에 매장을 가진 빵집 체인이 있다고 하자. 전국 점유율로 보면 5%에 불과해도, 어떤 외딴 동네에서는 그 체인의 매장이 유일한 빵집일 수 있다. 그 동네에서는 가격을 마음대로 정해도 다른 곳에서 빵을 사 올 도로가 막혀 있어 손님이 떠나지 못한다. 전력의 송전선로 혼잡이 이와 같다. 송전선이 막히면 특정 지역에서는 몇몇 발전기 외에는 전기를 살 곳이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부러 그 혼잡을 유발하는 입찰 패턴까지 동원되면, 전국 점유율이 낮은 발전사도 그 지역에서는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

지역별 한계가격(LMP, Locational Marginal Pricing)이나 존별 가격(zonal pricing)이 도입되면 이런 효과는 한층 강화된다. 따라서 전력시장이 가격기반으로 진전될수록 시장감시 기능을 함께 강화하지 않으면 시장의 정상 작동을 담보하기 어렵다. 발제에서 강하게 강조된 메시지가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 한국의 시장감시 인력과 권한으로는 전면적 가격입찰을 떠받칠 수 없다. 시장감시 기능의 보강 없이 가격입찰만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진단이다.

시장감시는 무엇을 보는가

흔히 떠올리는 시장감시는 시장 참여자의 규칙 위반을 잡아내는 일이다. 발전사가 전략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예방정비 중이라 공급능력이 없는데도 입찰에 참여해 용량요금을 받으려 하거나, 이런 행위들을 적발하고 제재하는 것이 좁은 의미의 시장감시다. 그러나 넓게 보면 시장감시의 대상은 훨씬 더 넓다. 시장의 규칙이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는지, 구조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거래소 자체가 시장을 적정하게 운영하고 있는지까지 모두 감시 범위에 들어간다.

이 두 층위의 감시를 한 기관이 모두 수행하기는 어렵다. 시장 참여자의 입찰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일과, 시장 운영기관의 운영 전반을 평가하는 일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두 기능을 분리한 하이브리드 구조가 자리잡았다.

비유로 이해하기 — 신용카드 부정사용 탐지

해외 출장 중에 평소와 다른 패턴으로 카드를 쓰면 카드사가 거래를 자동 정지시킨다. 짧은 시간에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하며 평소 한 달치를 하루에 다 결제하면, 카드사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이상 패턴을 감지하고 카드를 잠근다. 도매전력시장의 내부 시장감시기구(MMU, Market Monitoring Unit)가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발전사들의 입찰 패턴과 가격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정상 패턴을 벗어나는 전략적 행위를 자동으로 잡아낸다. 인공지능 기반 패턴 인식이 결합되면 이 감시는 더 정교해질 수 있다.

해외의 감시체계 — 미국·영국·일본

미국 — 연방-주 2층 구조와 하이브리드 MMU

미국의 전력산업 규제는 두 개의 층으로 나뉜다. 연방 수준에서는 에너지부(DOE, Department of Energy) 산하의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가 도매전력시장을 규제한다. 주 수준에서는 각 주의 공익사업위원회(PUC, Public Utility Commission)가 소매요금과 배전을 규제한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캘리포니아 공익사업위원회(CPUC, California Public Utilities Commission)가 그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더해 신뢰도 기준을 담당하는 북미전력신뢰도기구(NERC, 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rporation)가 별도로 존재한다.

도매전력시장 자체의 운영은 독립계통운영자(ISO, Independent System Operator) 또는 지역송전기구(RTO, Regional Transmission Organization)가 맡는다. PJM, 뉴욕ISO(NYISO), 뉴잉글랜드ISO(ISO-NE), 캘리포니아ISO(CAISO) 등이 그 예다. FERC가 이 ISO들을 규제하는 구조다.

시장감시는 이중 구조다. ISO 내부에 시장감시기구(내부 MMU)가 있어 시장 참여자들의 입찰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이상 패턴을 잡아낸다. PJM, NYISO, ISO-NE, CAISO 같은 주요 ISO들은 모두 이런 내부 MMU를 운영한다. 동시에 ISO 외부에 별도의 시장감시 조직(외부 MMU)이 있어 ISO 자체의 운영 적정성, 시장 규칙의 효율성, 시장 구조의 문제점을 평가한다. 외부 MMU는 회사 내부의 감사실과 별도로 회사 외부의 감사원이 회사 전반을 감사하는 구조와 비슷하다.

구분내부 MMU외부 MMU
역할시장 참여자 실시간 감시ISO 운영·시장 구조 평가
주된 업무입찰 패턴 분석, 전략적 행위 탐지시장 규칙 효율성, 구조 개선 권고
수단실시간 데이터, 패턴 인식정책 평가, 보고서
비유회사 내부 감사실회사 외부 감사기관

영국 — Ofgem과 단일 규제기관

영국에서는 가스전력시장규제기관(Ofgem, 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이 전력과 가스를 한꺼번에 규제한다. Ofgem이 시장 참여자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수행하고, 시장 참여자가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별도의 항소 패널에 제기하는 구조다. Ofgem 자체는 가스전력시장위원회(GEMA, Gas and Electricity Markets Authority)에 의해 관리된다.

일본 — 산업성 소속 시장감시위원회

일본은 경제산업성(METI, Ministry of Economy, Trade and Industry) 산하에 전력가스시장감시위원회(EGCC, Electricity and Gas Market Surveillance Commission)를 두고 있다. 이 위원회가 지역별 시장감시실을 지휘·감독하면서 에너지 시장을 감시하는 체계다.

한국의 현행 감시체계와 한계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전기위원회가 있고, 전기위원회 안에 전력시장감시위원회를 둔다. 전력시장감시위원회 사무국이 별도로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인원이 부족해, 전력거래소의 시장감시실이 사실상 사무국 역할을 보조한다. 전력시장감시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일정 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공무원, 전력거래소 담당 임원, 회계사, 변호사, 그리고 전기 관련 전문 교수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장은 위원들 사이의 호선으로 선출된다.

전력시장감시위원회는 13가지 정도의 감시 대상을 정해 두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항목 중 하나가 '전력거래소의 전력계통 운영의 적정성'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보면 전력거래소의 시장 운영 자체도 감시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행 체계에서는 그런 감시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CBP 체제에서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감시할 대상이 많지 않은 것이다.

현행 한국 전력시장 감시의 한계

발제와 토론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한계는 다음과 같다.

이런 구조 아래서 전면적 가격입찰로 넘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가격을 둘러싼 전략적 행위가 본격화되는데 그것을 감지하고 제재할 역량이 없다면, 시장은 빠르게 신뢰를 잃는다.

전력시장 감독원 신설 구상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한국 자본시장의 규제 구조다. 자본시장에서는 금융위원회가 정책 기능을, 그 산하의 증권선물위원회가 의결 기능을, 그리고 금융감독원이 실제 조사·감시 기능을 분담한다. 금융감독원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로 운영된다. 공공기관으로 만들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인력 확보였다. 변호사·회계사 같은 고급 전문 인력을 공공기관 임금 체계로는 유치하기 어렵다. 그래서 금융감독원은 2,000명을 넘는 규모로 운영되고, 매년 상당한 인원을 충원하면서 시장의 전문성에 발맞춘다.

한국거래소 안에는 또 다른 시장감시위원회가 있어, 주식시장의 시세 조종 같은 불법 행위를 1차적으로 적발한다. 거래소가 적발한 사안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하면, 금융위원회가 증권선물위원회를 통해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지시하고, 금융감독원이 심층 조사한 결과를 증권선물위원회에 보고해 그곳에서 제재가 이루어진다.

이 구조를 전력시장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온다.

층위자본시장전력시장 (제안)
정책금융위원회전기위원회
의결증권선물위원회전력시장감시위원회
조사·감독금융감독원전력시장감독원 (신설 제안)
거래소 내부 감시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전력거래소 시장감시실

단기적으로는 기존 전력시장감시위원회를 확대·강화하는 방안이 제안된다. 인원을 늘리고, 단순 모니터링을 넘어 감독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기능을 확장한다.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본시장의 금융감독원처럼 2,000명 규모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전력시장감독원을 신설하는 방안이 제안된다. 금융감독원의 사례처럼 민간기구 형태로 만들어 전문 인력을 충분히 충원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분담금으로 재정을 마련하는 모델이다. 외부 시장감독원과 거래소 내부의 시장감시실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구조다. 다만 발제자들은 한국이 작은 시장임을 감안할 때, 도매·소매·계통을 모두 아우르는 단일한 '전력감독원'을 만들고 그 안에 도매·소매·계통 부문을 두는 형태가 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전력계통 신뢰도 거버넌스

도매시장 감시와 별개로, 전력계통의 신뢰도(reliability)를 감시·평가하는 거버넌스도 별도의 쟁점이다. 발전 설비의 노후화, 송배전 설비의 한계,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로 인한 전원 믹스의 변화, 분산에너지자원(DER, Distributed Energy Resources)의 증가, 물리적·사이버 위협의 증가 같은 요인들이 계통 신뢰도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올랐다.

해외에서는 신뢰도 표준의 제정·집행·감시 기능이 독립적인 기관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NERC, 유럽의 송전계통운영자 네트워크(ENTSO-E) 등이 그 예다. 신뢰도 표준의 준수 여부를 평가하는 감시기관이 규제기관에 보고하고, 규제기관이 위반 사항에 대해 제재 조치를 총괄하는 구조다.

한국에서는 전기사업법 제27조의2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전력계통 신뢰도 유지 기준을 정해 고시하고, 한국전력거래소와 송전사업자가 그 기준에 따라 신뢰도를 유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뢰도 유지 실적에 대해 감시·평가·조사·감독을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전기위원회는 실질적으로는 심의 기능만 수행하고, 외국이라면 독립적 규제기구가 다룰 사항들이 산업부 고시와 협의회 운영의 형태로 처리된다.

구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인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서 산업부 장관이 전력계통 신뢰도 협의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협의회 운영의 실무는 전력거래소가 담당하고, 거래소가 신뢰도 유지 실적을 분석·평가해 산업부 장관에게 보고한다. 그런데 전력거래소는 신뢰도 유지 기준을 준수해야 할 당사자이기도 하다. 신뢰도 유지 실적에 대한 감시·평가·조사 같은 본질상의 사업 자체가 거래소에 위임되어 있는 셈인데, 이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발제에서 제기되었다.

계통 신뢰도 위험 요인의 위계

높은 위험: 재생에너지 급격 확대에 따른 전원 믹스 변화, 화석연료 발전설비 비중 축소에 따른 유연성·관성(inertia) 부족, 계통 보호·제어 시스템의 복잡성 증가

중간 위험: 계통 상황감시 시스템의 전환 부족, 전력설비의 물리적 안전 취약성, 자연재해와 사이버 공격의 취약성 증가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 신뢰도 위험 분석 인력·조직의 부족 (그러나 갈수록 절실해질 영역)

발제에서는 전력계통 신뢰도를 감시·평가하는 독립적 기관, 잠정적으로 '계통신뢰도 감시기관'이라 부를 수 있는 조직의 신설이 제안되었다. 정책 기능과 집행 기능을 분리해, 산업부의 정책 권한과 별개로 독립성·전문성·공정성을 확보한 기관이 신뢰도 감시·평가를 수행하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단기적으로는 전기사업법 개정이나 전기위원회 권한 강화의 형태로, 장기적으로는 가스 등 다른 에너지 부문과 통합된 에너지규제위원회 형태로 발전시키는 방안이 함께 제시되었다.

요금 — 정치화 차단과 총괄원가

전기요금은 이번 토론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로 다뤄졌다. 핵심 진단은 비교적 단순하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과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실제로는 후자의 비중이 훨씬 크다. 즉, 전기요금이 사실상 거시경제 차원의 물가 관리 도구로 운영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의 본질은 전기라는 자원에 대한 대가이고, 비용적 측면에서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전기 판매사업의 특수성에 비추어 국민이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수준의 요금을 부담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인데, 거시경제 변수를 더 중시하면서 그 취지가 흐려졌다는 비판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한국전력공사는 송전선로의 지중화 같은 새로운 비용 부담을 누적적으로 떠안게 된다. 유럽에서는 지중선로 확장을 권장하면서 그 비용을 전기요금에 별도 부과금으로 신설하거나 통합해 회수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과적으로 사업자(한전)가 사업을 위해 제공하는 시설의 설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법정 분쟁의 영역이 생겨난다.

거버넌스의 부재가 만든 정체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는 1974년 누진제 도입 이후 여러 차례 단계와 배수가 조정되어 왔지만, 2000년대 들어 현행 체계의 큰 틀을 다듬은 굵직한 개편은 손에 꼽힐 정도다. 2016년 12월에는 6단계 11.7배수 누진 구조가 3단계 3배수로 완화되었고, 2018년에는 폭염 대응 한시 할인이 시행되었으며, 2020년 12월에 발표되어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개편으로 연료비 연동제와 기후환경요금이 도입되었다. 큰 틀의 개편은 그 정도다.

2021년 시행된 연료비 연동제는 분기별로 연료비 변동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구조였지만, 이후 실제 운영에서는 정부의 유보 결정이 반복되면서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제도의 형식은 있는데, 실제 결정 단계에서는 정치적 고려가 압도해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 자동 온도조절장치를 꺼버린 집

방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자동 온도조절장치(서모스탯)를 설치해 놓고는, 실제로는 매번 사람이 다이얼을 직접 돌려 결정한다. 그것도 추운 날에는 비싸다는 이유로, 더운 날에는 표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동 조절을 거부한다. 결국 자동 조절은 명목상 존재할 뿐이고, 실제 결정은 다른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한국의 전기요금 결정 구조가 이와 닮아 있다는 진단이다.

총괄원가와 검증

전기요금 규제의 기본 원칙은 총괄원가 보상이다. 합리적으로 발생한 비용은 적정하게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되, 과도한 비용 인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규제기관이 통제하는 구조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총괄원가를 충분히 회수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요금이 결정되는 상황이 누적되어 왔다.

여기에 한 층 더해지는 쟁점은 총괄원가 자체가 적정한가다. 2018년에 한 차례 총괄원가 검증위원회가 운영된 적이 있는데, 한전이라는 거대한 사업자가 산정하는 총괄원가가 과연 적정한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상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토론에서 제기되었다.

전기요금 약자 보호와 소비자 소통

전기요금 거버넌스에서 종종 빠지는 영역이 전기요금 취약계층 보호다. 에너지바우처 같은 전기요금 약자 지원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 같은 다른 부처가 담당한다. 그래서 요금 개편 과정에서 약자 보호의 관점을 통합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진다면 이 부분에 대한 보호 장치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는 제안이다.

토론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또 다른 영역은 소비자와의 소통이다. 요금이 어떤 근거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요금 인상을 일방적으로 누르거나 발표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거버넌스의 핵심 자산이 신뢰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보 공개와 의사결정의 투명성이 출발점이라는 진단이다.

미래의 요금제 — 시간적·지역적 가치 반영

지금까지의 요금 논쟁이 인상 폭에 머물러 있었다면, 앞으로의 요금은 시간대별·지역별로 달라지는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토론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다. 도매 전력시장의 가격은 시간별·지역별로 다르게 형성된다. 해외에서는 LMP나 실시간 가격제, 인버티드(역방향) 계시별 요금제(inverted TOU, Time-of-Use)가 이미 운영되고 있다.

전통적인 계시별 요금제에서는 봄·가을 낮 시간이 가장 싼 시간대였다. 그러나 태양광이 대규모로 도입된 환경에서는 봄·가을 낮 시간의 공급 잉여가 가장 큰 시간대가 되어, 오히려 요금이 가장 높아야 효율적인 신호가 된다. 미국 일부 시장에서는 이미 이런 구조의 요금제가 운영되고 있다. 도매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시간적·지역적 가치를 소매요금이 받아 안도록 설계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과제다.

시장 — 계약시장, 도소매 연동, 변동성 관리

현물시장 100%라는 한국적 특수성

한국 도매전력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거의 모든 거래가 현물시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토론에서 지적된 것처럼, 해외 대부분의 도매전력시장은 현물시장을 100% 비중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계약시장(선도·선물시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현물시장은 그 사이의 잔여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한국이 현물시장 100% 구조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정산조정계수를 통해 발전사 단위로 비용을 보전해 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고, 둘째, 그 정산조정계수 자체가 한전의 조달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운영되어 왔다. 사실상 규제로 운영되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이 구조에서 가격 입찰(price bidding)으로 넘어가면 가격 변동성이 폭발적으로 커진다. 현물시장 100%로는 변동성을 흡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토론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방향은 계약시장 비중의 확대다. 거래의 70~80%를 계약으로 묶고, 현물시장은 그 잔여 균형을 맞추는 역할로 축소하자는 제안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 농산물 시장의 계약재배

농산물도 대부분은 계약재배나 선도계약으로 미리 가격이 정해진다. 도매시장 경매에서 결정되는 시세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갑작스러운 폭우나 한파로 시세가 폭락하거나 폭등해도 계약분은 그 영향을 덜 받는다. 만약 모든 농산물이 매일 경매로만 거래된다면, 농가도 도매상도 모두 가격 변동에 노출되어 안정적인 거래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력시장도 마찬가지다.

단일 구매자 구조에서의 계약시장 확대

토론에서 제기된 한 가지 질문은 단일 구매자 구조에서 계약시장을 확대하면 결국 발전사가 한전과만 더 깊이 묶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이 부분은 토론자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인정되었다. 한전이 유일한 카운터파티가 되는 계약은 위험 분산이라는 계약의 본래 기능을 충분히 살리기 어렵다.

그래서 계약시장 확대는 도매시장 변화 단독으로는 완결되지 않는다. 소매시장 개방 또는 다양한 직거래 채널의 확대와 함께 가야 한다는 진단이다. 직접 구매자 제도, 송전망 이용 양자계약(망 활용 PPA), 직접 PPA(전력구매계약), 제3자 PPA 같은 우회 경로가 이미 일정 부분 작동하고 있다. 토론자들은 한전과의 계약뿐 아니라 기업 간 직접 PPA의 확대, 재무적 헤지 수단의 다양화가 함께 진행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시장 규모의 변화와 감시 역량

도매전력시장이 처음 만들어진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지금의 시장은 양적·질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당시 시장 참여자는 발전 자회사들과 일부 독립발전사업자(IPP, Independent Power Producer) 정도였다. 지금은 민간 발전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다수의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와 있다. 시장 운영 규칙도 더 복잡해졌고, 위반 행위도 다양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기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은 오히려 축소된 측면이 있다. 시장의 복잡성이 커진 만큼 시장감시 거버넌스가 함께 진화해야 하는데, 그 방향과 속도가 어긋나 있다는 것이 토론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만 보더라도 위반 행위에 대한 판정 기준을 시간이 흐르면서 개별 사안마다 축적해 왔다. 전력시장 감시도 그런 축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시작점에 해당하는 법적 근거조차 불명확한 상태다.

계통 — 정전 수용, ISO·TSO·DSO, 망중립성

정전이라는 금기어

토론에서 가장 도발적으로 던져진 질문은 '정전을 사회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였다. 한국은 정전에 대해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부하차단(load shedding)이라는 정상적인 계통 제어 수단이 존재하는데도,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2011년 9월 15일의 순환정전(rolling blackout)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광역 정전을 막기 위해 지역별로 차단을 분산한 행위였지만, 결과적으로 운영자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시스템의 입장에서 보면, 광역 정전을 피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부하를 차단하는 것은 손실을 최소화하는 표준적 제어 수단이다. 미국에서는 1969년의 대정전을 계기로 전력신뢰도 규제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대규모 정전이 두세 차례 더 발생했지만, 핵심은 정전 사후의 조사·소통·개선 절차가 신뢰도 규제기관을 통해 체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전을 무조건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전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으로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규제기관의 역할이다.

공급지장비용(VoLL)이라는 개념

공급지장비용(VoLL, Value of Lost Load)은 정전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가 지불할 의향이 있는 금액을 의미한다. 설문조사에서 한국 소비자의 VoLL은 상당히 높게 나타나지만, 동시에 실제 비용 부담에는 매우 민감하다. 정전을 피하고 싶지만 그 비용은 적게 내고 싶다는 비대칭이 존재한다. 송전선로 같은 인프라를 100% 이용률로 활용하기 위해 무한히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어느 수준의 부하차단을 허용하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지의 사회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정전 경험이 적어 정전 자체에 대한 대비가 매우 약하다는 관찰도 토론에서 나왔다. 정전이 일어나면 휴대폰을 보면 된다고 답한 학생에게 휴대폰 충전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일화는, 정전이라는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ISO와 TSO,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DSO

한국의 전력계통 운영 구조는 미국식 독립계통운영자(ISO) 모델과 유럽식 송전계통운영자(TSO, Transmission System Operator) 모델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전력거래소가 계통 운영을 맡고, 송전망 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가 송전 자산을 보유·운영하는 구조다. 이는 형식상 미국식 ISO 모델에 가깝다.

2011년 9.15 순환정전 직후 국정감사에서 거래소와 한전의 협조 부족 문제가 부각되면서, 두 기관의 통합 방안이 거론된 적이 있다. 토론에서 제기된 한 가지 시각은, 진정한 망 중립성(grid neutrality)을 위해 한전의 송전 부문을 분리해 거래소와 통합하고, 한전은 배전과 판매에 집중하는 형태가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한전이 발전·송전·배전·판매를 모두 가지고 있는 한, 망 중립성을 구조적으로 담보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다만 ISO 모델이 곧 단일 송전사업자(TO, Transmission Owner)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CAISO 안에 세 개의 수직통합형 투자가소유의 전력회사(IOU, Investor-Owned Utility)가 각자 담당 구역에서 발전·송전·배전·판매를 모두 운영한다. PG&E(Pacific Gas and Electric), SCE(Southern California Edison), SDG&E(San Diego Gas and Electric)가 그것이다. 즉, ISO 시스템에서도 TO와 SO(System Operator)가 분리된 운영자가 공존하는 사례가 있다. 외관상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한편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TSO 시스템이 ISO 시스템에 비해 사회적 전력공급 비용을 줄이는 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는 평가가 보고된 적이 있다. TSO는 요금 기저(rate base) 확대가 수익 모델이고, ISO는 시스템 운영자가 소비자와 더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다양한 비망(non-wire) 자원을 활용할 유인이 강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와 새로운 자원의 비중이 늘어나는 환경에서는 어떤 모델이 우월한지 새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배전계통운영자(DSO)라는 새 변수

여기에 더해 배전계통운영자(DSO, Distribution System Operator)라는 새로운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실험 단계에 있다. DSO는 분산에너지자원이 배전망에 대규모로 연결되는 환경에서 배전망 운영자에게 송전계통과 비슷한 수준의 운영·시장 기능을 부여하는 모델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다양한 시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완성된 모델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이 배워올 모범 사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인 셈이다.

TO·SO·DSO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재배분 문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관련 규칙이 정비되기 시작했지만, 단순히 명칭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어떤 새로운 역할이 정의되었는지, 운영자들 사이의 협조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다.

남는 과제 — 망중립성과 망요금

망중립성의 두 축

망 중립성(grid neutrality)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접속의 비차별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망 접속을 신청한 모든 사업자에게 차별 없이 접속을 허용해야 한다. 한전이 가진 특수목적법인(SPC)에는 잘 접속해 주고 외부 사업자에게는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 원칙과 연결된다. 둘째는 요금의 비차별이다. 원인 유발자에게 적정한 망 이용 요금을 부과하되, 동일한 조건의 이용자 사이에서 자의적으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망 요금이 못 받는 비용

현재 한국의 망 이용 요금은 송배전 고정비를 충분히 회수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부족한 부분은 에너지요금(전력량요금)을 통해 회수해 왔는데, 이런 구조는 자가발전 설비를 갖춘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작동하지 않게 된다. 자가발전으로 망 이용을 줄이는 소비자는 망 고정비 회수에 기여하지 않게 되고, 그 비용은 망에 남아 있는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이 문제는 형평성 측면에서 점점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또 다른 축은 시간적·공간적 가치의 차이다. 송전망 혼잡은 어떤 계통에서도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혼잡이 전혀 없다는 것은 망을 너무 많이 지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잡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합리적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핵심이다. 혼잡은 곧 전기의 시간적·공간적 가치가 다르다는 의미이며, 그 차이를 가격 신호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망 요금이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전기의 공간적 가치가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운영해 왔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계기로 비로소 공간적 가치를 다르게 인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망 요금 체계 자체가 시간적·공간적 가치를 반영해 새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진단이다.

맺음말

심포지엄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 전력산업의 거버넌스는 단일 구매자, 비용기반 도매시장, 규제 중심 운영이라는 과거의 성공 모델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의 확대, 분산에너지의 등장, 새로운 수요 패턴, 사이버·물리적 위협의 증가, 한전의 재무 악화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정책 기능과 규제 기능의 분리, 시장감시의 강화, 계통 신뢰도 거버넌스의 독립, 망 요금의 합리화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토론자들은 동시에 한국적 맥락의 신중함도 강조했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공기업 비중이 매우 크고, 정부의 손발 노릇과 사업자 노릇이 한 기관에 섞여 있는 특수성이 있다. 외국 사례를 그대로 옮기면 모양은 좋지만 작동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구체적 데이터로 뒷받침하고, 24년간 축적된 시장 운영 데이터를 근거로 다음 단계를 설계하자는 제안이 마지막에 강조되었다.

이 글의 본문은 단순한 요약이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질문은 분명하다. 정책과 규제, 운영과 감시를 분리할 절박함이 사회적으로 인식되었는가. 인식되었다면, 첫발을 어디서부터 내딛을 것인가. 다음 단계의 논의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주요 약어: CBP(Cost Based Pool, 비용기반시장), PBP(Price Based Pool, 가격기반시장), LMP(Locational Marginal Pricing, 지역별한계가격), MMU(Market Monitoring Unit, 시장감시기구), ISO(Independent System Operator, 독립계통운영자), TSO(Transmission System Operator, 송전계통운영자), DSO(Distribution System Operator, 배전계통운영자), TO(Transmission Owner, 송전망 사업자), DER(Distributed Energy Resources, 분산에너지자원), FERC(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NERC(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rporation, 북미전력신뢰도기구), PUC(Public Utility Commission, 공익사업위원회), CPUC(California Public Utilities Commission, 캘리포니아 공익사업위원회), Ofgem(Office of Gas and Electricity Markets, 영국 가스전력시장 규제기관), GEMA(Gas and Electricity Markets Authority, 영국 가스전력시장위원회), EGCC(Electricity and Gas Market Surveillance Commission, 일본 전력가스시장감시위원회), METI(Ministry of Economy, Trade and Industry, 일본 경제산업성), IPP(Independent Power Producer, 독립발전사업자), IOU(Investor-Owned Utility, 투자가소유 전력회사),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 TOU(Time-of-Use, 계시별 요금제), VoLL(Value of Lost Load, 공급지장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