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교회교의학』과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의 구조·방법·핵심 교리 비교
20세기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을 대표하는 두 권의 교의학(dogmatics, 조직신학의 옛 명칭)이 있다. 한 권은 네덜란드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암스테르담)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가 19세기 말에 쓴 『개혁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 이하 GD)이고, 다른 한 권은 스위스 바젤대학교(Universität Basel)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가 20세기 중반까지 35년에 걸쳐 미완성으로 남긴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이하 KD)이다.
두 저작은 모두 "개혁주의" 전통을 자처한다. 그러나 두 책을 나란히 펴는 순간 독자는 곧 깨닫는다. 같은 깃발 아래 있으면서도 출발점·방법·결론에서 이만큼 갈라설 수 있는가. 두 신학은 같은 강의 양안(兩岸)에 서 있는 두 도시처럼,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결코 같은 동네는 아니다.
두 책의 관계는 같은 산을 오르는 두 등산로에 가깝다. 바빙크는 산 아래에서 출발해 자연·역사·이성·계시·구속사를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며 정상의 하나님께 도달한다. 바르트는 산꼭대기에서 이미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내려왔다고 선언한 다음, 그 빛이 비추는 만큼만 산 아래 풍경을 그려 내려간다. 두 사람은 같은 정상을 가리키지만, 등산 방향이 정반대다.
이 글은 두 작품을 비교한다. 단순한 줄거리 요약이 아니라, 어디서 갈라지고 왜 갈라지는지를 따져 본다. 신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따라올 수 있도록 핵심 개념마다 비유 박스를 두었다.
바빙크는 네덜란드 분리파(Afscheiding, 1834년 국가교회에서 분리된 보수 개혁 운동)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보수적 캄펜신학교(Kampen Theological School)에서 신학 교육을 시작했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거점이던 라이덴대학교(Universiteit Leide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수 진영에서 자유주의 학풍을 통과한 이력은 그의 신학에 결정적 색채를 부여한다. 정통 개혁신학을 고수하면서도 현대 학문(역사비평·자연과학·심리학·철학)을 외면하지 않는 균형이 그것이다.
1902년 그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의 뒤를 이어 자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가 됐다. 카이퍼가 정치가·언론인·운동가로 신칼뱅주의(Neo-Calvinism)의 외연을 확장했다면, 바빙크는 그 운동의 학문적 척추를 세웠다.
바르트는 스위스 바젤의 신학교수 가정에서 자라 베를린·튀빙겐·마르부르크에서 빌헬름 헤르만(Wilhelm Herrmann),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 같은 자유주의 거두들에게 배웠다. 그러나 1914년 8월, 93명의 독일 지식인이 제1차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성명에 그의 옛 스승들이 다수 이름을 올린 것을 보면서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 결정적 환멸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스위스 자펜빌(Safenwil)의 시골 목사로 강단에 서면서 그는 자유주의 설교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고, 1919년 『로마서 강해』(Der Römerbrief) 초판, 1922년 전면 개정판으로 신학계에 폭탄을 던졌다. 이 책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다"는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식 무한한 질적 차이를 외치며, 인간 종교·문화·도덕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려던 19세기 자유주의 기획을 정면으로 부쉈다.
괴팅겐·뮌스터·본 대학교를 거쳐 1935년 나치 정권의 충성 서약 거부로 독일에서 추방된 그는 모교 바젤에서 1962년 은퇴까지 강의했다. 1934년 그가 기초한 바르멘 선언(Barmer Theologische Erklärung)은 "독일 그리스도인"(Deutsche Christen)이라 자칭하며 히틀러를 지지하던 어용 교회에 맞선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의 헌장이 됐다.
두 책은 외양부터 다르다. 한쪽은 단정하게 정돈된 4권짜리 체계서, 다른 쪽은 35년에 걸쳐 13권으로 부풀어 오른 미완성 거탑이다.
| 구분 | 바빙크 GD | 바르트 KD |
|---|---|---|
| 원전 언어 | 네덜란드어 | 독일어 |
| 초판 출간 | 1895~1899 | 1932~1967 |
| 제2판 | 1906~1911 (대폭 개정) | 해당 없음 |
| 권수 | 4권 | 13분책(5권 구상 중 4권 부분 완성) |
| 총 분량 | 약 2,800면(영역본 4권 기준) | 약 9,300면, 약 6백만 단어 |
| 집필 기간 | 약 4~5년 | 약 35년(미완) |
| 완성 여부 | 완결 | 제IV권 4분책에서 중단, V권 미작 |
| 최초 영역 | 1996~2008 (Baker) | 1936~1977 (T&T Clark) |
바빙크의 4권은 학문적 체계의 모범 같다. 서론(Prolegomena)에서 신학의 본질과 방법을 정리하고, 본론은 신론·인간론·기독론·구원론·교회론·종말론을 위로부터 차곡차곡 쌓는 전통적 순서를 따른다.
바르트의 13분책은 5권으로 구상됐으나 마지막 1권(구속론)은 손도 대지 못한 채 1968년 그가 세상을 떠났다. 각 권이 너무 길어져 분책(Teilband)으로 쪼개졌고, 그 분책마저 다시 분책되기도 한다.
두 책의 분량 차이는 단순한 욕심의 차이가 아니다. 바빙크는 잘 설계된 4층 석조 건물이라면, 바르트는 처음에 작은 집을 짓다가 한 방을 들여다보다 거기서 다시 새로운 방을 발견하고, 그 방에서 또 새 복도를 발굴하면서 거대한 미궁이 되어 버린 건축물이다. 특히 II/2 선택론 항목에서 그는 자신이 평생 만나리라 예상치 못했던 광맥을 만났고, 그 뒤로 모든 교리가 그 광맥에서 다시 길어 올려진다.
두 신학의 분기점은 "어디서 시작하는가"에서 갈린다. 신학 방법론이란, 신학자가 자기 작업을 어떤 토대 위에 어떤 순서로 쌓아 나가는지에 관한 약속이다.
"교의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GD 제1권의 정의다. 바빙크는 신학을 하나님을 객체로 삼는 학문(scientia de Deo)으로 규정하고, 출발 원리(principium)를 셋으로 정리한다. (1) 인식 외적 원리(principium essendi): 하나님 자신. (2) 인식 외적 원리의 외화(principium cognoscendi externum): 계시(Scripture). (3) 주관적 인식 원리(principium cognoscendi internum): 신앙으로 조명되는 인간 정신. 이 세 원리가 함께 작동해 신학이 성립한다.
바빙크는 "유기체적"(organisch)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신학은 부분이 단순히 더해져 전체가 되는 기계가 아니라, 모든 부분이 살아 있는 전체로 통합되는 생명체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모든 교리를 다른 모든 교리와 짜인 옷감처럼 직조한다. 신론·인간론·기독론·교회론이 하나의 큰 그림을 향해 수렴한다.
방법론적으로 그는 세 가지를 동시에 한다.
바르트의 방법은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바빙크의 방법이 도시의 격자 계획에 가깝다면 — 큰 길과 작은 길이 정연하게 교차하고 어느 모퉁이에서나 다른 모퉁이가 보인다 — 바르트의 방법은 동심원으로 짜인 옛 도시에 가깝다. 한가운데에는 그리스도라는 중앙 광장이 있고, 모든 골목이 그 광장을 향해 안쪽으로 휘어진다. 어디서 출발해도 결국 같은 광장으로 빠져나오는 미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셨다는 사실 → 그 빛으로 모든 다른 교리(창조·인간·죄·교회)를 다시 본다.
인간 이성·자연·역사로부터 하나님을 추론하는 길은 처음부터 차단된다.
일반계시(자연·역사·양심)와 특별계시(성경·그리스도)가 함께 작동한다 → 신앙으로 조명된 정신이 그 둘을 받아 교의로 짠다.
이성과 자연이 구속에는 부족하지만, 신학의 자료에서 배제되지는 않는다.
두 신학의 차이는 계시론(revelation)에서 가장 또렷이 드러난다. 같은 단어 "계시"를 두고 두 사람은 거의 다른 사물을 가리킨다.
바빙크는 종교개혁 이래의 전통적 구분을 충실히 따른다.
중요한 점: 바빙크에게 일반계시는 결코 구원의 통로가 아니다. 그러나 일반계시는 (1) 인류에게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은혜(common grace, 일반은총)의 토대가 되고, (2) 학문·예술·국가·결혼 등 비종교적 영역의 존립 근거가 되며, (3) 특별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학적 전제를 마련한다.
바르트는 1934년 에밀 브룬너(Emil Brunner)와의 유명한 논쟁에서 "자연신학에 대해 단호히 아니오(Nein!)"라고 외쳤다. 그가 거부한 것은 인간 이성·자연·역사로부터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모든 시도다. 그에게 계시는 오직 한 사건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
KD I/1에서 그는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태(dreifache Gestalt des Wortes Gottes)를 제시한다.
주의할 점은 바르트가 성경 자체를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써,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말씀하시는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말씀이 된다. 이 구조 때문에 바르트는 보수 진영에서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성경주의자다"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성경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를 비유하면 이렇다. 바빙크는 성경을 "살아 있는 나무"로 본다. 뿌리는 그리스도이고 본문은 가지·잎인데, 가지와 잎까지 한 그루 나무로서 유기적으로 살아 있는 말씀이다(유기적 영감설, organic inspiration). 바르트는 성경을 "달의 빛"으로 본다. 달 자체는 어둠 속의 돌이지만, 해(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때 환하게 빛난다. 달이 어둡지 않다고 우기는 것도, 달빛이 가짜라고 부정하는 것도 모두 빗나간 길이다.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란 성경 계시와 별개로, 자연·이성·역사를 토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구성하려는 시도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다섯 가지 길이 그 고전적 예다. 이 자연신학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20세기 개혁신학의 분수령이었다.
바빙크는 자연신학을 전면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이를 "잘못 사용되어 왔을 뿐 본래 정당한 자료"로 본다. 칼뱅의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첫머리, "어떤 사람도 자기 안에 신성에 대한 감각(sensus divinitatis)을 갖지 않은 채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명제를 그는 신학의 인간학적 전제로 채택한다.
다만 그는 두 가지 단서를 단다. (1) 자연신학은 결코 구원하는 지식을 줄 수 없다. (2) 자연신학의 추론은 항상 성경 계시의 빛 아래에서만 그 한계와 정당성이 드러난다. 즉 그가 옹호하는 것은 "성경 안에서 재정초된 자연신학"이지, 중세적 의미의 자율적 자연신학이 아니다.
바르트는 1934년 에밀 브룬너의 소책자 『자연과 은총』(Natur und Gnade)에 대한 응답으로 『아니오! — 에밀 브룬너에 대한 답변』(Nein! Antwort an Emil Brunner)을 출간한다. 브룬너는 매우 신중하게 — 그는 결코 19세기적 자연신학자가 아니다 — 인간 안에 그리스도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접촉점"(Anknüpfungspunkt)이 남아 있다는 정도를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그 한 발자국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신학에 대해서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신학적 자연주의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말한다. 어떤 인간학적 접점도, 어떤 잔존하는 하나님 형상의 기능도, 어떤 일반계시의 자취도 — 그것들이 결국 우리를 그리스도 외의 다른 길로 인도하는 한, 모두 거부되어야 한다."
— 바르트, 『아니오!』(1934), 요지 정리
바르트가 이렇게 강경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신학적 이유다. 그리스도라는 한 사건의 절대적 신선함이 자연·역사·이성의 어떤 연속선 위에 있는 것으로 풀이되면, 계시는 더 이상 계시가 아니게 된다. 둘째는 정치적 이유다. 1934년 독일에서 "자연·민족·역사" 안에서 "독일적 그리스도"를 발견하려던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 그 신학적 어용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 바르트에게 자연신학은 단순히 학문적 문제가 아니라 우상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자연·민족·국가·문화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 시대 권력자의 얼굴을 가진 우상을 빚어낸다. 바르멘 선언이 이 우려의 정치적 표현이다.
일반계시·일반은총을 부정하면 학문·예술·국가·문화의 신학적 토대가 사라진다. 신앙인은 세속 영역에서 작업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신학은 게토(ghetto)에 갇힌다.
이 두 우려는 둘 다 정당하다. 그 둘이 서로 길항 관계라는 사실, 어느 한쪽이 결정적으로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20세기 개혁신학의 가장 까다로운 유산이다.
바빙크의 신론은 전통적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신의 본질·속성·삼위일체를 차례로 다룬다.
그의 신론에서 주목할 대목은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에 관한 논의다. 인간은 유한하기에 하나님을 무한정 알 수는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i, 유한자는 무한자를 담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인간의 능력에 맞춰 낮추어 계시하셨기에(accommodatio, 적응), 인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되 부족하게 알 수 있다.
바르트의 신론(KD II/1, II/2)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행위 속에서 자기 자신이시다. 정적 존재론이 아니라 사건의 존재론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이것이다.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자유로우신 분이시다"(Gott ist der in der Liebe Freie). 이 명제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한다. (1) 자유 — 하나님은 어떤 외부 조건이나 필연성에 매이지 않으신다. (2) 사랑 — 그러나 그 자유는 고립이 아니라 관계를 향한 자유다. 그 자유 안에서 그는 영원부터 자기 자신과 관계 맺고(삼위일체), 시간 안에서 인간과 관계 맺으신다(언약).
바빙크 역시 삼위일체를 신학의 "심장"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전통 순서를 유지한다 —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먼저 다루고, 그 본질이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안에서 풀이한다. 그에게 삼위일체는 (계시론의 결론이라기보다) 모든 교리가 그 안에서 통일되는 종합 원리다. "삼위일체야말로 개혁신학을 다른 어떤 신학 체계와도 구분 짓는 중심 교리다."
두 사람 모두 삼위일체를 핵심으로 삼는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위치가 다르다. 바빙크에게 삼위일체는 신학의 중심이고, 바르트에게는 신학의 출입구다.
두 신학이 가장 극명하게 갈라지는 지점이 선택(election)·예정(predestination) 교리다. KD II/2의 선택론(Die Gnadenwahl)은 20세기 개혁신학에서 가장 큰 논쟁을 일으킨 단일 단락이다.
바빙크는 도르트 신경(Canons of Dort, 1619)의 입장을 충실히 잇는다.
이는 칼뱅(John Calvin), 베자(Theodore Beza), 푸치우스(Gisbertus Voetius) 등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가 발전시킨 표준 입장이다.
바르트는 이 전통을 정면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KD II/2에서 칼뱅의 선택론을 깊이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핵심 결함을 지적한다. 칼뱅의 선택론에는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는 선택의 도구로만 등장할 뿐, 선택 그 자체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지 않다.
바르트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선택받은 인간이시다." (KD II/2, §33)
이 한 문장이 전통적 선택론을 뒤집는다.
이 구조의 결과는? 만인구원론(universalism)이라는 비판이 곧장 따라온다.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되었다면, 결국 모두가 구원받지 않는가?
바르트는 이를 부인하지도 단호히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apokatastasis(만유회복)를 교리로 주장할 수는 없으나, 그 가능성을 미리 닫아 둘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영원한 지옥형벌을 적극 가르치지도, 만인구원을 적극 가르치지도 않는다. 단지 그리스도의 화해 행위의 보편적 폭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진술할 뿐이다.
전통적 선택론은 두 개의 명단을 상상한다 — 영원의 책상 위에 "구원" 명단과 "유기" 명단이 별개로 놓여 있다. 바르트는 이 두 명단을 한 장의 종이로 만든다. 그 종이의 표면에는 "선택"이 쓰여 있고, 그 뒷면에는 "유기"가 쓰여 있다. 그러나 그 종이의 양면에 적힌 이름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다른 인간들의 이름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그늘 안에서 — 그러나 그리스도의 운명을 분담하는 자가 아니라 그분의 운명에 안긴 자로서 — 존재한다.
바빙크의 기독론은 칼케돈 신경(Chalcedonian Creed, 451)의 양성론(兩性論, two natures doctrine)을 충실히 따른다. 그리스도는 한 위격(person) 안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natures)을 가지신다. "혼동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나뉘지 않는" 두 본성의 연합(hypostatic union, 위격적 연합).
속죄론(atonement)에서 그는 형벌대속론(penal substitution)을 옹호한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신해 율법의 형벌을 짊어지셨고, 그의 의(義)가 신자에게 전가(imputation)됨으로써 칭의(justification)가 이루어진다.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의 만족설(satisfaction theory)을 종교개혁이 형벌대속론으로 발전시킨 노선이다.
주목할 점은 바빙크가 속죄의 범위를 "택자(elect)에게 한정된" 효력으로 본다는 사실이다(특수속죄, particular atonement).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자체로는 무한한 가치이지만, 그 효력은 영원 전 선택된 자들에게 적용된다.
바르트의 화해론(KD IV)은 그의 신학 전체의 정점이다. 분량만으로도 KD 전체의 거의 절반이다. 그는 화해(Versöhnung)를 세 가지 각도에서 다룬다.
이 삼중 구조는 그리스도의 삼중직(munus triplex, 왕·제사장·예언자)을 새롭게 풀이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왕직, 제사장적 자기 낮춤)·인성(인자로서의 높임)·중보(예언자적 자기 증언)를 세 거대한 화해 운동으로 펼친다.
IV/1: 신성·비하·죄·칭의
IV/2: 인성·승귀·게으름·성화
IV/3: 중보자·예언자직·거짓·소명
IV/4(단편): 세례 — 도덕 윤리
제1부: 인간의 죄와 비참
제2부: 그리스도의 위격 (양성론)
제3부: 그리스도의 사역 (삼중직)
제4부: 속죄의 본질과 범위 (특수속죄)
구원의 적용에서 두 사람의 차이도 또렷하다. 바빙크는 전통적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부르심·중생·회심·신앙·칭의·양자됨·성화·견인·영화)을 충실히 따른다. 한 시점에 한 단계씩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다. 바르트는 이런 시간적 단계로서의 서정을 비판한다. 그에게 칭의·성화·소명은 그리스도의 한 화해 사건의 세 측면이며, 신자의 삶에서 순차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용한다.
바빙크의 인간론은 전통적 구도를 따른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으며, 영혼과 육체의 단일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1) 좁은 의미의 형상(거룩·의·지식) — 타락으로 상실. (2) 넓은 의미의 형상(이성·의지·관계 능력) — 타락으로 손상되었으나 잔존, 으로 구분한다. 후자가 일반은총·문화·국가의 토대다.
바르트의 인간론(KD III/2)은 그리스도 안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무엇인가는 일반적 인간학적 관찰이 아니라, 참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본 다음에 답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존재"(Mitmenschlichkeit, 동료성)로 정의한다 — 그리스도가 "다른 인간을 위해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은 고립된 개체성이 아니라 만남·언약·관계다.
바빙크는 죄를 본성으로 본다. 아담의 원죄(original sin)는 (1) 죄책(guilt)과 (2) 부패(corruption)의 두 측면으로 후손에게 전가·전수된다. 인간은 의지의 자유는 가지나, 그 의지가 죄로 향하는 경향성(propensitas ad malum) 자체는 의지보다 깊은 본성에 박혀 있다.
바르트는 죄를 불가능한 가능성(unmögliche Möglichkeit)이라 부른다. 죄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 안에 본래 자리가 없는,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모순이다. 그는 죄를 세 가지 형태로 분석한다 — 교만(Hochmut,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한 거부), 게으름(Trägheit, 그리스도의 승귀에 대한 거부), 거짓(Lüge, 그리스도의 진리 증언에 대한 거부). 죄의 세 형태가 그리스도의 삼중 화해 운동의 정확한 부정태(否定態)다.
죄에 대한 두 시각을 비유하면 이렇다. 바빙크는 죄를 "유전되는 질환"으로 본다. 우리는 모두 그 병을 가지고 태어났고, 본성이 그 병에 침식되어 있다. 바르트는 죄를 "있을 수 없는 그림자"로 본다. 빛(그리스도) 외에는 본래 존재할 수 없는데도 거기 있다고 우기는 모순이다. 빛이 비치는 순간 그림자는 객관적으로 사라져야 할 것인데, 그것이 여전히 어른거리는 — 이론적으로 설명 불가능하지만 실존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 사실 자체가 죄다.
바빙크의 은총론에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일반은총은 (1) 죄의 만연을 억제하고, (2) 인간 사회에 시민적 의를 유지하며, (3) 학문·예술·국가의 영역에서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게 한다. 카이퍼와 바빙크가 신칼뱅주의의 두 기둥으로 함께 발전시킨 개념이다.
바르트는 카이퍼·바빙크식 일반은총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에게 은총은 "특수한가 일반적인가"의 두 종류가 아니라 오직 하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총이다. "일반은총"이라는 표현 자체가 그리스도와 무관한 은총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 같아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인내"(Geduld Gottes)·"세계의 보존" 같은 개념으로 비슷한 기능을 일부 흡수한다.
바빙크의 교회론(GD 제4권)은 종교개혁 전통의 표준 구도를 따른다 — 보이지 않는 교회(ecclesia invisibilis)와 보이는 교회(ecclesia visibilis)의 구분, 교회의 네 표지(하나·거룩·보편·사도), 직제(목사·장로·집사), 두 성례(세례·성찬). 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이자 신자의 어머니로 정의한다.
바르트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시간 안에서 갖는 지상의 역사적 형태로 본다. 교회의 존재 의의는 "선포"에 있다 — 교회는 그리스도를 듣고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의 직제는 그 선포 사건을 섬기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은혜의 보관소가 아니다. 그는 직제·성례·전통의 객관적 효력보다 사건적·동사적 차원을 강조한다.
세례에 관한 가장 큰 논쟁점이 KD IV/4 단편에서 나온다. 바르트는 만년에 유아세례(infant baptism)를 강하게 비판하며 신앙고백 세례(believer's baptism) 쪽으로 기운다. 이는 칼뱅주의 개혁신학의 표준 입장(유아세례 옹호)에서 명백한 이탈이며, 정통 개혁 진영에서 그의 신학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커진 결정적 계기였다. 바빙크는 당연히 전통적 유아세례 옹호 입장에 굳건히 서 있다.
바빙크의 종말론(GD 제4권 말미)은 신자 개인의 죽음과 중간 상태,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 최후 심판, 영원한 상태(천국·지옥)를 차례로 다룬다. 그는 천년왕국설(millennialism)에 관해 무천년설(amillennialism)에 가까운 입장을 취한다.
바르트는 종말론을 별도 분책으로 다루지 못했다. KD V권으로 구상됐던 "구속론"이 종말론의 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자료들에서 우리는 그의 종말론적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종말은 시간의 마지막에 일어날 사건이라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결정된 사건이 시간 전체에 걸쳐 펼쳐지는 과정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영원한 종말의 첫 사건이며, 신자의 모든 삶은 그 종말 사건의 시간적 반향이다.
지옥과 영원한 형벌에 관해 바르트는 명시적 결론을 유보한다. 앞서 본 대로 그는 만유회복을 교리로 가르치지도, 영원한 지옥형벌을 강하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이 침묵 또는 보류는 그가 보수 개혁파에게 가장 큰 의심을 받는 두 번째 지점이다(첫 번째는 유아세례 비판).
한국 개혁신학계에서 두 신학자의 수용 양상은 흥미롭게 갈렸다.
바빙크는 한국 보수 개혁교회의 정통 신학 표준으로 받아들여졌다. 박형룡(1897~1978)의 『교의신학』은 바빙크의 GD를 주요 자료로 삼아 한국 장로교 신학의 골격을 세웠다(다만 박형룡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의 찰스 핫지(Charles Hodge)·벤자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 노선을 더 직접적으로 따른다). 합동·고신·합신 등 한국의 보수 개혁 진영은 바빙크를 비판 없이 표준으로 수용한다.
특히 자유대학교 전통을 잇는 코람데오 신학, 신칼뱅주의 문화관(culture)·세계관(worldview)·일반은총론 등은 한국 개혁 진영의 교양과 실천에 깊이 자리 잡았다. 김영한·유해무·이상은 등 여러 한국 학자들이 바빙크 연구를 진척시켜 왔고, 4권 한국어 번역본도 부흥과개혁사 등에서 출간되어 있다.
바르트는 한국에서 훨씬 더 복잡한 길을 걸었다. 진보 진영(한신·기장 등)에서는 일찍부터 정대위·박봉랑·박순경 등을 통해 바르트가 적극 수용됐다. 박봉랑의 『기독교의 비종교화 — 본회퍼 연구』·『교의학방법론』 같은 작업이 바르트 수용의 대표 사례다.
그러나 보수 진영에서 바르트는 1950~70년대까지 "신정통주의(neo-orthodoxy) 위장 자유주의"로 강하게 의심받았다. 특히 박형룡은 바르트의 성경관·선택론을 자유주의의 변종으로 단정해 비판했다. 이런 평가 구도는 한국 장로교의 진보/보수 양분 구조와 맞물려 굳어졌다.
최근 20~30년 사이 분위기는 상당히 변했다. 보수 진영 학자들도 바르트를 단순한 자유주의자로 일축하기 어려움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김명용·최영·신준호 등에 의한 본격적 바르트 연구가 축적됐다. KD 한국어 번역(『교회교의학』 13권, 대한기독교서회)이 신준호의 작업으로 완성되어 한국 신학계의 중요 자산이 됐다.
한국에서 바빙크는 "주류 정통의 표준"으로, 바르트는 "검토와 논쟁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비대칭은 신학적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교회사의 정치적·교파적 구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아야 한다. 학문적으로 두 사람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단순히 능가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역사적·교의사적 폭넓음, 전통과 현대의 균형, 학문적 정밀성, 일반은총·문화관에서 신앙의 사회적 적용 가능성을 확보, 정통 개혁신학의 표준적 모범.
그리스도 중심의 강력한 일관성, 자유주의 신학과 자연 우상화에 대한 결정적 비판, 삼위일체와 화해론의 깊이, 교회 선포의 의미 회복.
19세기 말 학문 지형에 묶여 있어 현대 성서학·과학과의 대화가 부분적으로 낡음. 정통주의 합의를 비판적으로 흔드는 동력이 상대적으로 약함. 일반은총론이 문화 영역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옹호한다는 비판도 있음.
방대한 분량과 변증법적 서술로 인한 접근성 문제, 선택론의 만유회복 함의 논쟁, 자연신학·일반계시 부정으로 인한 학문·문화 영역의 신학적 토대 약화, 미완성으로 인한 체계적 일관성 검증의 한계.
이 질문은 정직한 답을 강요한다. 둘 사이에 어느 한쪽의 압도적 승리는 없다. 다만 다음과 같은 분리된 관찰이 가능하다.
두 책을 함께 읽는 일은 어렵지만 보람이 크다. 바빙크는 우리에게 개혁신학의 폭과 깊이가 어디까지 이르는지 보여 준다. 바르트는 우리에게 모든 교리가 그리스도라는 한 점에서 다시 길어 올려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준다. 한쪽만 읽으면 신학은 한쪽으로 기운다. 두 책을 함께 펴 두고 같은 주제를 양쪽에서 비교해 보는 작업, 이것이 20세기 개혁신학 유산을 진지하게 상속받는 길이다.
한 등반가가 어느 등산로가 정상에 더 가까운지 묻는다면, 우리는 둘 다 정상에 닿는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길에서 보이는 풍경이 더 풍부한지는 둘 다 걸어 본 사람만이 안다. 바빙크와 바르트는 어느 한 사람만 따라 걸으면 절반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