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단독 기본계획, 무엇이 달라졌고 어디를 봐야 하는가
2026년 5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2026~2035)은 단순한 차수 갱신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법에서 신에너지가 분리된 이후 재생에너지만을 다루는 최초의 법정 계획이며,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의 사실상 폐지를 포함한 시장 구조 자체의 재편을 예고한다. 발표문 표지에 드러난 숫자들 — 2030년 100GW, 2035년 발전비중 30% 이상 — 만큼이나 그 너머에 깔린 정책 좌표 이동이 더 중요하다.
1. 이 문서가 “제1차”인 이유
이 계획의 정식 명칭은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이다. 그러나 본문이 동시에 인정하듯 1차부터 5차까지의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이 2001년 이래 약 25년간 이미 존재했다. 그런데도 차수가 1차로 새로 시작되는 데에는 법적·정책적 단절이 있다.
2026년 3월 17일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 개정되면서 수소·연료전지 등 신에너지가 별도 법체계로 분리되었고, 9월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지열·해양에너지·재생열)만을 대상으로 하는 단독 법체계가 처음 완성되었다. 이번 계획은 그 첫 적용 사례이며, 따라서 차수가 리셋되었다.
비유법체계의 분가
한 지붕 아래 살던 형(재생에너지)과 동생(신에너지)이 25년 만에 분가한 셈이다. 형이 따로 살림을 차리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첫 가계부를 쓰는 것이 이번 계획이다. 동생(수소경제)은 이미 「수소법」 제5조에 따른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이라는 별도 가계부를 쓰고 있어, 형이 부담하던 가계 분담이 정리되고 형은 본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이 분리가 단순한 정리정돈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통계 기저의 변화 때문이다. 과거 통계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는 폐기물·연료전지가 포함되어 비중을 부풀리는 효과가 있었다. 신에너지가 빠진 순수 재생에너지 기준으로 다시 정렬한 결과 2025년 발전비중은 9.8%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4.4%의 4분의 1을 약간 넘는 수준에 머문다. 이번 계획이 “2035년 30% 이상”을 내세운 출발점도 결국 이 정직한 9.8%다.
2. 숫자가 말하는 것: 목표와 현실의 격차
2.1 보급 목표
이번 계획의 정량 목표는 두 축으로 압축된다. 2030년 누적 설비 100GW와 2035년 발전비중 30% 이상이다. 표지 한 장을 채울 만큼 단순하지만, 실제 보급 추이와 대조하면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 구분 | 2025년 실적 | 2030년 목표 | 증가량 | 연평균 신규 필요 |
|---|---|---|---|---|
| 전체 재생에너지 | 37.1 GW | 100 GW | +62.9 GW | 약 12.6 GW/년 |
| 최근 5년 평균 신규 보급 | 3.1 ~ 4.6 GW/년 (2020~2025) | 현재의 약 3배 | ||
본문 9페이지의 신규 보급 추이는 2020년 4.6GW에서 2025년 3.9GW로 오히려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5년간 연평균이 약 3.6GW에 그친 상황에서, 2026~2030년 5년 사이 매년 12GW 이상을 새로 설치해야 100GW 목표가 성립한다. 현 추세 대비 약 3배의 속도 가속이 전제되어 있다.
2.2 비용 목표
비용 목표는 보급 목표보다 더 도전적이다. 본문은 kWh당 계약단가 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 원별 | 2026 | 2030 | 2035 | 비교 기준 (2025년) |
|---|---|---|---|---|
| 태양광 | 150 | 100 | 80 이하 | 원자력 정산단가 79원/kWh |
| 육상풍력 | 180 | 150 | 120 이하 | LNG(액화천연가스) 정산단가 158원/kWh |
| 해상풍력 | 330 | 250 | 150 이하 | 산업용 전기요금 182원/kWh |
특히 태양광 80원/kWh 이하는 2025년 원자력 정산단가(79원)와 사실상 같은 수준이다. 해상풍력의 경우 9년 안에 330원에서 150원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본문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 RPS 폐지, 장기 고정가격계약, 공동접속설비, 공공입찰 확대, 정책금융을 묶음으로 제시한다.
현실 점검해외 LCOE와의 격차
본문 6페이지는 2025년 기준 국내 LCOE(Levelized Cost of Energy, 균등화발전비용)가 글로벌 평균 대비 태양광 2.2배, 육상풍력 3.2배라고 명시한다. 이는 입지·인허가·공급망·금융비용이 동시에 누적된 결과이며, 목표 단가 달성은 어느 하나만 개선해서는 불가능하다. 계획서가 ‘민관 비용평가위원회(가칭)’를 신설하겠다는 것은 그동안의 가격 형성 과정 자체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신호다.
3. 5대 과제의 구조
계획은 5대 과제, 10대 전략으로 구성된다. 표면적인 항목 나열은 본문에 잘 정리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각 과제가 풀어야 할 핵심 변수만 정리한다.
| 과제 | 표면 목표 | 핵심 변수 (행간) |
|---|---|---|
| 1. 신속한 보급 확대 | 2030년 100GW | 입지 발굴 속도, 계통 수용성, 이격거리 규제, 인허가 병목 |
| 2. 획기적 비용 저감 | 태양광 80원/kWh 이하 (2035) | RPS 폐지, 장기 고정가격계약, 부지 임대료, 금융비용 |
| 3. 산업경쟁력 강화 | 모듈 국산 80%, 터빈 60% | 중국산 의존 차단, 인버터·셀 공급망, 차세대 기술 R&D |
| 4. 소득 공유 및 국민체감 | 1,000만명 재생e 소득 | 주민수용성, 이익공유 모델, 자가설비 인증서(REGO) |
| 5. 거버넌스 확대 | 전부처·지방정부 전담화 | 중앙-지방 관계 재편, 발전공기업 5사 통폐합, 재생열 신산업 |
4. 행간 분석: 본문이 직접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절은 이번 계획에서 진짜 봐야 할 7가지 지점이다. 정책 본문은 정중하게 서술하지만, 행간에서는 시장 구조와 산업 지형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4.1 RPS 사실상 폐지 — 25년 시장 구조의 전복
가장 큰 변화는 본문 26~27페이지에 압축되어 있다. 2012년 시행된 RPS 제도는 대규모 발전사에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계획은 이 의무 부과 단위를 발전량에서 설비용량으로 바꾼다. 동시에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현물시장을 2027년부터 신규 진입 금지, 2029년부터 폐지로 정리한다.
비유출석부에서 좌석배치도로
기존 RPS가 “학기말까지 출석률 15% 채우면 된다”는 출석부였다면, 새 제도는 “정해진 좌석 수만큼 책상을 직접 만들어 놓으라”는 좌석배치도다. 출석률은 결석한 친구의 출석 대납권(REC)을 사서 채울 수 있지만, 좌석은 실물이 있어야 한다. 발전사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REC를 사들여 의무를 이행하는 길이 막히고, 직접 발전소를 짓거나 SPC(Special Purpose Company, 특수목적법인)를 통해 공동 건설해야 한다.
이 변화의 파급은 다층적이다. 첫째, REC 현물시장에서 발전량을 팔던 수만 개의 소규모 태양광 사업자가 2~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장기 고정가격계약 시장으로 강제 이전된다. 둘째, 발전공기업은 단순 의무이행자에서 직접 사업자로 위상이 바뀐다. 셋째, 정부는 원별·연도별 입찰 물량과 상한가를 직접 제시함으로써 가격 형성에 훨씬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본문이 표 한 장으로 정리한 “현행 RPS 거래체계 → 재생e 계약시장제도 거래체계” 전환은, 사실상 25년 묵은 시장 인프라 전체를 갈아엎는 작업이다. 사업자·금융권·중개기관 모두 영업 모델을 다시 짜야 한다.
4.2 “공공주도”로의 이동 — 직전 계획에 대한 자기비판
본문 6페이지의 “보완·개선 필요사항”과 9페이지의 “대내 여건”은 정책 문서치고 이례적으로 직설적이다. 핵심 구절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재생e 신규보급 추이(GW): (’20) 4.6 → (’21) 4.2 → (’22) 3.1 → (’23) 3.1 → (’24) 3.3 → (’25) 3.9 / 지원예산 34% 감소(’22년 1.3조원→’25년 0.9조원) 등 정책역량 약화로 보급은 후퇴·정체
2022년 이후 신규 보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시기는 직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기와 정확히 겹친다. 본문은 정치적 판단을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골든타임 소진”, “정책역량 약화”, “민간 주도의 재생에너지 보급 추진으로 공공 역할 결여”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 시계열로 책임 소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처방은 명확하다 — 공공주도로의 환원이다.
실제 정책 도구를 보면 이 방향성이 일관된다. 발전공기업의 K-RE100 의무 부과, 보급실적 경영평가, 공공기관 보유 부지 우선 발굴, 공영주차장·학교·전통시장 등 공공 인프라 활용, 새만금·시화호·간척지 같은 국공유지 활용 등이 모두 첫 번째 과제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본문 48페이지에는 “석탄발전 위주의 발전공기업 5사 통폐합 → 재생 중심 공기업으로 전환 모색”이라는 한 줄이 들어 있는데, 이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20년 넘게 유지된 5개 발전공기업 체제의 재편을 공식 문서에 처음 명시한 것에 가깝다.
4.3 “100GW”의 내막 — 태양광에 극단적으로 쏠려 있다
100GW라는 숫자는 균형 잡힌 묶음처럼 보이지만, 원별로 풀어 보면 비대칭이 뚜렷하다.
| 원별 | 2025년 | 2030년 | 증가량 | 2030년 비중 |
|---|---|---|---|---|
| 태양광 | 30.8 GW | 87 GW | +56.2 GW | 87% |
| 육상풍력 | 2.1 GW | 6 GW | +3.9 GW | 6% |
| 해상풍력 | 0.4 GW | 3 GW | +2.6 GW | 3% |
| 기타 | 3.9 GW | 4 GW | +0.1 GW | 4% |
2030년 누적 100GW에서 태양광이 87%를 차지한다. 본문 12페이지의 “단기간·신속한 태양광 중심 보급 확대” 표현은 정직한 자기 진단이다. 풍력은 “중장기 대규모 보급 기반 조성” 단계로 사실상 2030년대 후반의 과제로 미뤄진다.
함의한 바구니에 담는 위험
태양광 발전은 일조 시간대(주간)에만 집중되며 계절적으로는 봄·가을, 기상조건에 따라 변동성이 크다. 풍력은 야간·겨울 기여도가 있어 상호 보완 관계를 형성하지만, 87:9의 비율은 그 보완 효과를 거의 살리지 못하는 수준이다. 본문 22페이지가 “재생e 패키지(태양광+ESS(에너지저장장치)+히트펌프+전기차)” 모델을 강하게 밀고, ESS 활용 확대를 별도 전략으로 격상시킨 것은 이 편중을 ESS로 보완하겠다는 의도다. 다만 ESS 비용 자체가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한다.
해상풍력 3GW(2030년)는 그동안 발표된 여러 로드맵 대비 보수적인 수치다. 본문은 21페이지에서 WTIV(Wind Turbine Installation Vessel, 풍력터빈 설치선박) 공급 가능 물량이 2030년 4GW/년에 도달하는 일정을 제시하는데, 이는 설치선박 자체가 보급 속도의 상한선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즉 해상풍력의 본격적인 성장 곡선은 203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다.
4.4 산업 공급망 — “게임체인저”라는 단어 뒤의 불안
본문 9페이지는 국산 모듈 사용 비율 추이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2018년 72.5% → 2021년 66.0% → 2024년 41.6%. 7년 사이에 국산 비중이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다. 풍력 터빈 국산 비중도 39%에 머문다. 보급이 늘어나는 동안 그 수혜를 중국 공급망이 가져갔다는 뜻이다.
3번 과제(산업경쟁력 강화)의 세부 항목들은 이 흐름을 되돌리려는 시도다. 핵심 도구는 세 가지다.
- 공공사업 국산 의무화: 햇빛소득마을·학교·주차장 등 공공사업에 국산 인버터·모듈 의무 사용
- 경제안보품목 지정: 태양전지·모듈을 「국가자원안보특별법」(2025년 2월 시행)상 핵심자원으로 추가 지정 추진
- 저탄소 인증 강화: 국내 셀로 생산한 모듈에만 1등급 부여, 공공입찰 가점 차별화
다만 본문 자체가 “미래 게임체인저 기술·제품 선점”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작 차세대 태양전지(탠덤셀)의 상용화 목표를 2028년으로 잡고 있다. 현재 시장은 중국이 점유한 페로브스카이트·탑콘셀로 빠르게 이동 중이며, 2028년 상용화는 추격 일정이지 선도 일정은 아니다. 풍력 20MW+급 초대형 터빈의 양산 체계 구축은 2033년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동기간 글로벌 시장이 18~22MW급 양산을 시작하는 시점과 거의 일치하거나 약간 뒤다.
정리산업 정책의 솔직한 자기 위치
계획서가 산업을 “제2의 반도체·제2의 조선”으로 키우겠다고 했을 때, 비교 대상이 반도체와 조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반도체는 한국이 일정 부분 추격에 성공한 사례, 조선은 잃었다 되찾은 사례다. 재생에너지 제조업은 한 번 잃은 시장(태양광 셀·모듈)을 되찾는 “조선 모델”에 가깝다. 본문이 “신속 재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4.5 “에너지 안보”라는 새 프레임 — 중동전쟁이 바꾼 정책 언어
3장 “대외 여건”의 첫 문장이 이번 계획의 정치적 좌표를 압축한다. “재생에너지는 ‘탄소 감축 수단’을 넘어 ‘핵심 안보 자산’으로 격상.” 그동안 한국 에너지 정책에서 재생에너지의 정당성은 주로 기후 대응(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서 도출되었다. 이번 계획은 그 정당성을 안보로 옮긴다.
본문은 이 전환의 직접적 계기로 2026년 중동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그로 인한 원유·가스 공급 차질을 든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의존도 93.7%(2023년)라는 숫자가 안보 자산론의 논거로 등장한다. 같은 논리에 따라 다음과 같은 표현이 본문 곳곳에 배치된다.
- “얼마나 적게 수입하느냐”, “연료 수입 없는 경제 체계” (7페이지)
- “국내 생산 에너지(Home-grown energy)” (7페이지)
- “에너지 자립국으로 탈바꿈” (10페이지)
이 프레임 전환은 두 가지 정책 결과를 낳는다. 첫째, 재생에너지 산업 보호를 통상규범(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이 아니라 안보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의 핵심자원 지정 확대가 그 도구다. 둘째, 원자력과의 정치적 대립 구도가 약화된다. 안보 자산론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모두 “수입 의존을 줄이는 수단”으로 묶을 수 있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본문이 원전 비중 축소를 명시하지 않고, 대신 “석탄발전 조기 폐지”에 집중하는 것은 이 정치적 균형의 산물이다.
4.6 1,000만명 “재생에너지 소득” — 정치 자산화 시도
과제 4는 다른 과제들과 결이 다르다. 햇빛·바람소득 820만명, 계통소득 180만명을 합쳐 1,000만명에게 재생에너지로부터 소득이 발생하게 한다는 목표다. 본문 40페이지의 그림은 시각적으로 인상적이다.
메커니즘이익공유의 두 경로
햇빛·바람소득마을은 주민이 협동조합 형태로 발전사업에 100% 또는 일부 투자해 발전수익을 직접 나눠 갖는 구조다. 마을당 평균 1MW 내외 소규모 태양광이 표준 모델이며, 본문은 2030년까지 약 2,100개 마을, 2035년까지 4,200개 마을을 목표로 한다.
계통소득은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인근 주민에게 투자 기회와 수익 지분을 제공하는 모델이다. 송주법(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우회·보완해, 보상이 아니라 지분 수익으로 풀어내는 접근이다.
이 구조의 정치적 의미는 분명하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보급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입지 갈등과 주민 반발이었다. 보상금으로 풀던 갈등을 “지분 참여 → 지속 소득”으로 전환해 사업의 수명 내내 지지 기반을 만든다. 동시에 1,000만명이라는 숫자는 인구의 약 19%에 해당하며, 이는 재생에너지 정책에 정치적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다만 1MW급 마을 발전사업 4,000여 개의 행정·재무 관리 부담, REGO(Renewable Energy Guarantees of Origin, 재생에너지 보증서) 거래의 실효성, 협동조합 거버넌스의 지속가능성은 별도의 검증을 요구한다. 본문은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 신설을 함께 추진한다고 명시하는데, 이 입법 자체가 변수다.
4.7 지방정부 12GW 전가 — 분권의 양면
5번 과제와 별첨 2의 지방정부별 보급 계획은 분권화의 외양을 띠지만 실질은 책임의 위임이다. 17개 시·도가 제시한 2031~2035년 태양광 신규 목표 34GW 중 약 12GW를 2030년 이전으로 앞당기겠다는 것이 별첨 2의 핵심이다. 즉 중앙이 목표한 100GW와 시·도가 제시한 누적치(2030년 76~111GW 범위) 간 차이를 지방정부가 메우는 구조다.
지방정부 별 보급 목표를 보면 전남(2030년 11.7GW), 전북(11.3GW), 경북(15.3GW), 충남(11.1GW)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진다. 수도권(경기 7.7GW, 인천 0.6GW, 서울 0.1GW)은 상대적으로 작다. 이는 “수요는 수도권, 공급은 비수도권”이라는 기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본문 14페이지가 강조한 “수요공급 인접화” 원칙(수도권 GW급 프로젝트 12GW 발굴)이 별첨 2에서는 충실히 반영되지 못한 셈이다.
긴장분권의 명과 암
지방정부 권한 강화는 입지 발굴과 주민 협의에 유리하다. 그러나 지방정부 간 보급 부담 격차가 클 때 형평성 논란이 발생한다. 특히 송전망 건설 부담을 지는 지역(전남·전북·경북 등)과 전력을 소비하는 지역(수도권) 사이의 정치·경제적 비대칭은 본문이 직접 다루지 않는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과의 정합성,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 일정 등이 이 비대칭을 풀 후속 변수가 된다.
5. 도전 과제: 100GW까지 가는 길의 병목
이번 계획이 명시적·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위험 요인은 네 가지다. 각각이 단독으로도 100GW 달성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5.1 계통 — 가장 큰 단일 변수
2030년까지 56.2GW 신규 태양광이 들어오면 출력제어량은 현재보다 한 자릿수 이상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본문 22페이지는 “전력계통 혁신대책 수립(12차 전기본 반영)”을 약속하지만, 구체적 내용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미뤄져 있다. 유연접속 확대와 NWAs(Non-Wire Alternatives, 비송전 대안)는 망 건설 지연을 완화하는 임시 처방이며,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1단계 4GW 준공(2026년) 외에 대규모 망 보강 일정은 본문에 명시되지 않았다.
5.2 인허가 — 이격거리 규제의 실효성
본문 18페이지는 「재생에너지법」 개정(2026년 3월 공포, 9월 시행)을 통해 이격거리 규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시행령에 예외”로 정리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안은 주거지 200m, 도로 100m 이내로 여전히 광범위한 예외를 두고 있어, 실제 입지 가능 면적의 확대 폭은 시행 후 1~2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지방정부 조례 단계의 규제는 본문이 직접 다루지 않는다.
5.3 산업 공급망 — 시간이 부족하다
국내 모듈 생산능력 10GW/년(2030년 목표)은 2030년 신규 보급 12GW/년에 못 미친다. 즉 목표 자체가 “신규 보급의 일부는 수입에 의존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셀 단계의 국산화는 본문에 정량 목표가 없으며, 인버터 국산화는 공공사업 의무화에 의존한다. 풍력 터빈 3GW/년 생산능력 목표도 해외 합작·기술이전을 전제로 한 일정이다.
5.4 비용 — 80원/kWh의 가정
2035년 태양광 80원/kWh는 입지비용·금융비용·기자재 가격이 모두 동시에 하락하는 시나리오에서 성립한다. 글로벌 LCOE 대비 2.2배인 격차를 절반 이상 좁히기 위해서는 RPS 폐지에 따른 거래비용 감소만으로는 부족하며, 국공유지 임대료 감면(현행 50% → 확대), 정책금융 마중물, 공동구매, 표준품셈 도입이 모두 효과를 내야 한다. 어느 하나만 차질이 생겨도 100원/kWh 선에서 정체될 가능성이 있다.
6. 종합 평가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은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신·재생에너지 분리 이후 첫 단독 법정계획으로서, 통계와 정책언어를 모두 “순수 재생에너지” 기준으로 재정렬했다. 9.8%라는 출발점은 정직하며, 2035년 30% 목표는 그 정직함 위에서 의미를 가진다.
둘째, RPS 폐지와 장기 고정가격계약 일원화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25년 묵은 시장 구조의 재편이다. 사업자·금융권·중개기관의 영업 모델이 모두 재구성되어야 하며, 그 과정의 마찰이 향후 2~3년 정책의 시험대가 된다.
셋째, 안보 프레임으로의 이동은 재생에너지 정책을 기후 정치의 영역에서 산업·안보 정치의 영역으로 옮긴다. 이는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진폭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동시에 “안보” 논리가 다른 정책 영역(원자력, 화석연료 비축 등)과 어떻게 정합되는지는 후속 과제로 남는다.
한편, 이번 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좌우할 변수는 본문 안에 없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담길 계통 보강 일정, 「해상풍력특별법」 시행령의 발전지구 지정 속도, 영농형태양광법 하위 규정, 발전공기업 통폐합의 정치적 일정 — 이 네 가지가 향후 1년 안에 확정되어야 100GW 시계는 의미를 갖는다. 계획서 자체는 좌표를 명확히 찍었으나, 좌표로 가는 항로는 다른 문서들에서 결정된다.
한 문장 요약
이번 계획의 진짜 새로움은 “100GW”라는 숫자가 아니라, RPS 폐지·공공주도 회귀·안보 프레임 전환이 동시에 한 문서에 담겼다는 점이다. 세 변화는 각각이 25년 정책 누적의 방향 전환이며, 셋이 동시에 추진되는 동안의 마찰이 향후 5년 한국 재생에너지 시장의 실제 모습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