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 이후 개혁신학의 정점, 한 권의 책으로 들여다보기
19세기 말 네덜란드의 작은 신학교 교수실에서 한 권씩 출간되어 나온 네 권의 책이,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개혁신학의 표준 교과서로 남아 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개혁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 이야기다. 이 글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도 따라올 수 있도록, 이 책이 어떤 책이고 왜 중요하며 어떤 신학적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 본다.
‘교의학(教義學, dogmatics)’이라는 말부터 낯설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데, 두 말은 거의 같은 작업을 가리킨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인간, 죄, 그리스도, 구원, 교회, 종말과 같은 주제들을 흩어진 본문 그대로 두지 않고 한 체계 안에서 정리하고 서로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학문이다. ‘교의’라는 말이 강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어원상으로는 교회가 공적으로 고백해 온 가르침을 뜻한다.
성경 본문 하나하나를 별처럼 본다면, 교의학은 그 별들이 이루는 별자리를 그리는 작업이다. 별의 위치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래 거기 있는 별들이 어떤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려 보이는 작업에 가깝다.
이 장르에는 시대마다 정점을 이룬 책이 있다. 4세기의 어거스틴(Augustine),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16세기 장 칼뱅(Jean Calvin)의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9~20세기의 칼 바르트(Karl Barth)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등이 흔히 거론된다. 그리고 개혁주의(Reformed) 진영에서, 칼뱅과 바르트 사이에 놓이는 가장 큰 봉우리가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분량이 아니다. 칼뱅이 16세기 종교개혁의 신학적 윤곽을 그렸다면, 바빙크는 그 이후 300년 동안 누적된 개혁파 정통신학, 청교도 신학, 그리고 18~19세기 계몽주의와 현대 사상의 도전까지 모두 흡수한 위에 한 번 더 종합을 시도했다. 그래서 한국 신학계에서는 이 책을 두고 흔히 “칼뱅 이후 개혁주의 신학의 완성”이라고 부른다.
헤르만 바빙크는 1854년 12월 13일, 네덜란드 북부 호프베인(Hoogevee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분리파(Afscheiding)’ 교회의 목회자였다. 분리파는 19세기 초 네덜란드 국가교회(Hervormde Kerk)의 자유주의화에 반발해 분리해 나온 보수 개혁파 흐름이었고, 바빙크는 이 정통 신앙의 토양 위에서 자랐다.
그가 처음 신학을 공부한 곳은 분리파가 세운 캄펜 신학교(Theologische School te Kampen)였다. 그러나 1년 만에 그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본거지였던 레이덴 대학교(Universiteit Leiden)로 옮긴다. 보수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학문적 자유주의의 한복판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1880년 박사학위를 받으며 학업을 마쳤다. 이 경험은 그의 평생 학문에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과 현대 사상의 언어와 논리를 안에서부터 알게 되었고,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 거리도 유지하게 된다.
학위 후 그는 1881년 프리슬란트(Friesland)주의 프라네커(Franeker)에서 18개월간 목회했고, 1883년 캄펜 신학교의 교의학·윤리학 교수로 부임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캄펜 시기(1883~1902) 19년 동안 그는 자신의 대표작 『개혁교의학』 초판 네 권(1895~1901)을 완성했다.
1902년, 그는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Amsterdam) 신학부 교수로 옮긴다. 자유대학교는 동시대의 또 다른 거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1880년에 세운 학교였고, 바빙크는 카이퍼의 후임으로 조직신학 교수직을 이어받은 셈이었다. 자유대 시기(1902~1921)에 그는 『개혁교의학』의 개정증보 2판(1906~1911)과 3판(1918)을 펴냈고, 동시에 네덜란드 상원의원으로 정치에도 참여하며 교육·심리학·계시 철학 등 신학 너머의 영역으로 활동을 확장했다. 1921년 7월 29일 암스테르담에서 별세했다.
한국 개혁신학계에서는 흔히 바빙크를 카이퍼, 미국 프린스턴의 벤저민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와 함께 ‘19~20세기 세계 3대 칼뱅주의 신학자’로 꼽는다. 이는 학술적 객관 지표라기보다 한국 개혁신학자들의 평가 관행에 가깝지만, 이 세 사람이 같은 시기에 활동하며 개혁신학의 학문적 부흥을 이끌었다는 점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개혁교의학』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태어난 시대를 봐야 한다.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종교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시기였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1859년 『종의 기원』 발간), 헤겔(G. W. F. Hegel)의 관념론,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이후의 자유주의 신학,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막 부상하던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전통적 기독교 신앙의 지반을 흔들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네오 칼뱅주의(Neo-Calvinism, 신칼뱅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두 인물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었다. 정치가이자 신학자였던 카이퍼와, 학자였던 바빙크다. 카이퍼가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 — 정치·학문·예술·가정 등 삶의 각 영역이 하나님 아래 고유한 권한을 갖는다는 사상 — 을 통해 칼뱅주의를 사회와 문화 전반으로 확장하려 했다면, 바빙크는 그 운동의 신학적 기초를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역할을 맡았다.
카이퍼가 칼뱅주의의 ‘영토를 넓히는 장군’이었다면, 바빙크는 그 영토의 ‘지도와 헌법을 만든 학자’에 가까웠다. 둘은 같은 운동의 두 얼굴이었다.
이 시대 배경은 책의 문체에도 흔적을 남긴다. 바빙크는 한 페이지 안에서 4세기 교부, 중세 스콜라 신학자, 16세기 종교개혁자, 17세기 개혁파 정통신학, 그리고 동시대 자유주의 신학자와 자연과학자를 두루 인용한다. 그가 상대한 것은 한두 시대의 신학이 아니라, 기독교 사상 전체와 동시대 사상계 전체였다.
초판은 캄펜의 J. H. 보스(J. H. Bos) 출판사에서 1895년부터 1901년까지 한 권씩 출간되었다. 자유대학교로 옮긴 뒤 1906~1911년에 J. H. 콕(J. H. Kok) 출판사에서 개정증보 2판이 나왔고, 1918년에 3판이 나왔다. 영역본은 2003~2008년에 베이커 아카데믹(Baker Academic)에서 존 볼트(John Bolt) 편집, 존 브린트(John Vriend)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은 2011년에 부흥과개혁사에서 박태현 역으로 완간되었는데, 이는 네덜란드어 원전을 기준으로 한 세계 두 번째 완역이다(영역본 다음).
네 권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권 | 주제(영역본 부제) | 대응 신학 분과 |
|---|---|---|
| 제1권 | 서론(Prolegomena) | 신학 방법론, 계시론, 성경론 |
| 제2권 | 하나님과 창조(God and Creation) | 신론, 삼위일체론, 창조론, 섭리론, 인간론 |
| 제3권 | 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Sin and Salvation in Christ) | 죄론, 언약론, 기독론, 속죄론, 구원론 일부 |
| 제4권 | 성령, 교회, 새 창조(Holy Spirit, Church, and New Creation) | 성령론, 구원의 적용, 교회론, 성례론, 종말론 |
이 구성은 단순한 분류표가 아니다. 바빙크는 신학의 흐름이 ‘하나님 → 창조 → 죄 → 구속 → 완성’이라는 한 거대한 이야기 안에서 움직인다고 본다. 그래서 네 권은 독립된 책이라기보다 한 편의 서사시처럼 이어진다.
네 권을 관통하는 굵직한 신학적 주제들이 있다. 이것들이 사실상 바빙크 신학의 ‘서명’이라 할 수 있다.
바빙크 신학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는 ‘유기적(有機的, organic)’이라는 단어다. 그는 신학과 세계와 교회를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로 본다. 기계는 부품을 조립한 것이고, 부품 하나만 봐도 전체와 분리해서 분석할 수 있다. 반면 유기체는 부분이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 있고, 한 부분이 흔들리면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이 관점은 그의 거의 모든 신학적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삼위일체에서 세 위격이 기계적으로 나란히 놓인 것이 아니라 한 본질 안에서 서로를 향해 살아 있는 관계로 존재한다고 보고, 성경의 권위를 본문 한 구절씩 따로 변호하기보다 성경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에서 찾으며, 교회의 다양한 직분과 은사를 한 몸의 다양한 지체로 본다.
같은 시계라도 ‘기계 시계’와 ‘디지털 시계’를 비교하면 차이가 또렷하다. 톱니바퀴 시계는 톱니 하나가 빠지면 그 자리만 비지만, 나무는 뿌리 한 줄이 다쳐도 잎과 가지에 함께 영향이 간다. 바빙크는 신학이 톱니바퀴가 아니라 나무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바빙크 신학의 가장 유명한 표어가 “은혜는 자연을 회복한다(genade herstelt de natuur)”이다. 라틴어 격언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은혜는 자연을 폐하지 않고 완성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온 — 의 개혁신학적 변주다. 그는 ‘폐하지 않고 완성한다’보다 ‘회복하고 완성한다’ 쪽에 무게를 둔다. 차이는 미묘하지만 중요하다.
이 표어가 말하려는 바는 이렇다. 구원은 창조세계와 인간 본성을 폐기하고 전혀 새로운 것을 들여오는 사건이 아니다. 죄로 망가진 창조세계 자체를 다시 회복하고, 본래 향하던 종착점으로 데려가는 사건이다. 따라서 자연(피조 세계)과 은혜(구원), 일반 영역(정치·학문·예술·가정)과 영적 영역(교회·예배·신앙) 사이에는 본질적 단절이 없다. 둘은 서로 다른 평면이 아니라, 같은 한 세계의 두 국면이다.
훼손된 옛 명화를 복원하는 미술관 보존가를 떠올려 보자. 그는 그림 위에 전혀 다른 그림을 덧칠하지 않는다. 본래의 색과 구도를 되살리고, 작가가 의도한 마무리에 더 가깝게 만든다. 바빙크가 본 은혜의 작용이 이와 비슷하다.
이 한 문장이 네오 칼뱅주의 사회·문화 신학의 출발점이 된다. 신앙은 일요일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평일의 학문·정치·예술·가정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카이퍼의 그 유명한 “이 세상에 우주의 단 한 평방인치도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 외치지 않으시는 곳은 없다”는 표어와 같은 신학적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카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는 거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본래 ‘보편적인’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왔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교회(holy catholic church)”의 그 ‘공(公)’이다. 바빙크는 개혁신학이 한 분파의 신학이 아니라, 어거스틴부터 중세 스콜라, 종교개혁, 청교도, 그리고 자신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전체 기독교 전통의 정당한 계승자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자기와 입장이 다른 신학자를 적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길게 인용하고 정중하게 비판하며, 루터파 신학자들의 통찰을 인정하면서도 차이점을 명확히 하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문제 제기를 정직하게 받아 안은 뒤에 응답한다. 한 페이지 안에 등장하는 인용의 폭이 굉장히 넓고, 그 인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논증의 일부다.
『개혁교의학』의 신학적 중심은 삼위일체론이다. 바빙크는 삼위일체가 기독교의 ‘교리 목록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교리를 떠받치는 토대라고 본다. 창조와 구속, 교회와 종말이 모두 성부·성자·성령의 사역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인식 능력 자체도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삼위일체적이다. 삼위일체가 없다면 창조도 구속도 의미를 잃는다.”
— 『개혁교의학』 제2권의 논지를 요약하면
바빙크는 제1권에서 ‘계시(啓示, revelation)’를 자세히 다룬다. 그는 계시를 두 갈래로 본다. 자연·역사·인간 양심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반계시(general revelation)’, 그리고 성경과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특별계시(special revelation)’가 그것이다.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한 분 하나님의 두 가지 자기 드러냄이다.
이 구분은 바빙크가 자연과학과 일반 학문을 적대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 안에서 발견되는 질서, 인간 양심 안에 새겨진 도덕의 흔적도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죄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특별계시가 필요하다고 본다.
책 자체의 학문적 색깔도 짚어 둘 필요가 있다. 바빙크가 매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 4단 구조 때문에 분량이 길고 인용이 많지만, 읽는 사람은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그 주제에 대해 인류가 무슨 이야기를 해 왔는지’를 한꺼번에 얻는 셈이 된다. 백과사전적이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의 일관된 시선으로 정리된 책이라는 점이 『개혁교의학』의 독특함이다.
1895년에 시작된 책이 130년이 지난 지금도 신학생과 목회자, 일반 독자에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오늘날의 신학적 논쟁점들이 사실은 19세기 말의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과학과 신앙, 진화론과 창조, 성경의 역사성,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 신학의 긴장, 종교 다원주의의 도전 — 이런 주제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장에 살아 있다. 바빙크는 이 모든 주제에 대해 차분하고 깊이 있는 응답을 이미 시도해 두었다.
둘째, 그의 ‘은혜는 자연을 회복한다’ 명제는 신앙을 사사로운 내면의 영역으로만 가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학문, 직업, 정치, 문화에 관여하려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유용한 신학적 자원이 된다. 미국·유럽·아시아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공신학(public theology)’ 논의의 흐름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바빙크와 카이퍼의 유산에 빚지고 있다.
셋째, 그의 문체는 학자적이지만 적대적이지 않다. 그는 자기와 다른 입장의 신학자를 깎아내리는 일이 거의 없고, 자기 진영의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이런 학문적 태도 자체가 오늘날 신학적 토론에서 자주 잊혀 가는 미덕이다.
한국 개혁신학계에서 바빙크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고, 2011년 한국어 완역(부흥과개혁사, 박태현 역)으로 결정적인 도약을 했다. 한국어판이 네덜란드어 원전 기준 세계 두 번째 완역이라는 사실은, 한국 개혁신학계의 학문적 의지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박태현은 네덜란드 아펠도른 신학대학교(Theologische Universiteit Apeldoorn)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번역에만 약 5~6년을 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네 권 모두 합치면 한국어판 기준 약 3,000쪽이 넘는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는 부담스럽다. 현실적인 독서 전략을 몇 가지 제안한다.
『개혁교의학』 자체로 들어가기 전에, 보다 얇은 입문 책을 권한다. 바빙크 자신이 더 일반 독자를 위해 쓴 『하나님의 큰 일(Magnalia Dei)』(이 책의 영역본은 Our Reasonable Faith) 같은 책이 좋은 디딤돌이다. 한국어판은 『하나님의 큰 일』(기독교문서선교회 등) 또는 단권 축약본 『개혁교의학 단권축약본(Reformed Dogmatics: Abridged in One Volume)』(존 볼트 편집, 한국어판 출간)이 진입을 한결 수월하게 해 준다.
전체를 처음부터 읽는 대신, 관심 주제를 골라 해당 부분만 읽는 방식이다. 예컨대 창조와 진화론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제2권 후반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심이 있다면 제3권 중반, 종말론이 궁금하다면 제4권 마지막 부분 식이다. 목차와 색인이 잘 정리되어 있어 발췌 독서에도 잘 어울린다.
신학생이나 진지한 독자라면 권 순서대로 읽는 것이 가장 보람 있다. 다만 제1권의 서론 부분은 인식론·계시론을 다루기 때문에 가장 어렵다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어렵게 느껴지면 제2권부터 시작해 1권으로 돌아오는 변형도 가능하다.
높은 산을 오르는 데도 여러 코스가 있다. 가장 빠른 직등 능선, 경치를 보며 도는 우회 코스, 캠프를 차리며 며칠에 걸쳐 오르는 종주 코스. 『개혁교의학』도 그렇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길로 오를 필요는 없고, 어디로 가든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같은 풍경이다.
『개혁교의학』은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쓴 책이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개혁신학의 표준 좌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책의 두께가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이고,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차분하고 폭넓은 답이 담겨 있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단단한 한 문장을 끝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은혜는 자연을 폐하지 않고 회복하며, 결국 본래 향하던 종착점까지 데려간다. 이 한 문장이 네 권을 받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