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 20세기 신학의 거대한 미완성 교향곡
35년에 걸쳐 쓰인 600만 단어, 13권의 분책, 그리고 끝내 쓰이지 못한 마지막 권에 관하여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 영역명 Church Dogmatics)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이 도달한 가장 거대한 봉우리이다. 1932년 첫 분책이 나왔고, 저자가 196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5년 넘게 집필이 이어졌다. 완간되지 못한 채 13권의 분책으로 남았으며, 전체 분량은 약 9,000쪽, 약 600만 단어에 이른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의 두 배, 장 칼뱅의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의 아홉 배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 글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교회교의학』이 어떤 책인지, 왜 쓰였고, 무엇을 말하며, 왜 오늘 다시 읽히는지를 정리한 글이다. 600만 단어를 한 편의 글로 요약하는 일은 본래 불가능하지만, 책의 골격과 핵심 사상을 알면 읽지 않고도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1. 저자 — 위기 속에서 신학을 다시 묻기 시작한 사람
칼 바르트는 1886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베른·베를린·튀빙겐 등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의 스승들은 19세기 후반 독일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의 거장들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종교적 경험과 도덕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성서를 그 경험의 역사적 기록으로 다루며, 예수를 도덕적 모범으로 그려내는 흐름이었다.
이 신학적 자신감을 무너뜨린 사건이 1914년에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바르트가 존경하던 독일 신학자 93인이 빌헬름 2세의 전쟁 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바르트는 훗날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따르던 모든 신학 교사들이 그 명단에 있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신학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자펜빌(Safenwil)에서 목회하던 시기, 그는 설교단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1919년에 출간된 『로마서 강해』(Der Römerbrief)이다. 1922년 전면 개정된 제2판은 신학계를 뒤흔들었다.
"신학자가 마치 어두운 종탑의 계단을 오르다 균형을 잡으려 난간을 잡으려 한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종을 울리는 줄이었다." — 바르트가 『로마서 강해』의 충격을 회상하며
『로마서 강해』는 '인간이 신에 관해 가지는 생각'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 관해 갖는 생각'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되돌리려 한 책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더듬어 올라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위로부터 수직으로 침투해 오는 '전적 타자'(der ganz Andere, the Wholly Other)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었다. 이 시기 그의 신학을 흔히 '변증법적 신학'(dialectical theology)이라 부른다.
변증법적이라는 말은 어렵지만, 전기공학의 비유가 도움이 된다. 신호를 1Hz의 단순 양극(+)이나 음극(−)으로만 표현하면 정보를 충분히 담을 수 없다. 양과 음을 빠르게 교차시키면서 그 진동 자체가 의미를 만든다. 바르트의 초기 신학도 그렇다. "하나님에 관해 말해야 한다 —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의무와 무능력을 동시에 인정해야 한다." 긍정과 부정을 한쪽으로 무너뜨리지 않고 진동시키는 방식이 변증법이다.
1921년 괴팅엔(Göttingen) 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그는 본격적으로 조직신학 강의를 시작했다. 본(Bonn)과 바젤(Basel)을 거치면서 35년에 걸쳐 쓰인 책이 바로 『교회교의학』이다. 그 사이 1934년에는 나치 정권 아래 굴종해가던 독일 교회에 맞서 '바르멘 선언'(Theologische Erklärung von Barmen, Theological Declaration of Barmen)의 본문을 거의 단독으로 작성했다. 선언의 첫 조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들어야 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한 분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한 문장이 그의 평생 신학을 압축한다.
2. '교의학'이라는 단어 — 왜 이 두꺼운 책인가
책 제목의 '교의학'(독일어 Dogmatik, 영어 dogmatics)은 한국어로 옮기기 까다로운 단어이다. '교리'(doctrine)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같지 않다. 교의학은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학문이다. 바르트의 정의를 빌리면, 교의학은 "교회의 자기 비판적 학문"이다.
전력 계통에 비유하면 이렇다.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은 마치 발전소가 송출하는 전력과 같다. 그런데 이 전력이 정해진 주파수와 전압을 유지하지 못하면 계통 전체가 흔들린다. 교의학은 송출된 전력을 표준 기준(=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끊임없이 대조하는 보호계전기와 같다. 새 교의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이미 선포되고 있는 말씀이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책 제목이 '교회'교의학이다. 이것은 강단의 학문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수행되는 학문이라는 선언이다. 바르트는 본래 1927년 뮌스터(Münster)에서 『그리스도교 교의학』(Die Christliche Dogmatik)이라는 제목으로 첫 권을 냈다가 방법론적 결함을 인정하고 폐기했다. 1932년부터는 '그리스도교'를 '교회'로 바꿔 다시 시작했다. 신학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일반'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구체적 교회'의 자기 점검이라는 의미 전환이 이 제목 변경에 담겨 있다.
3. 책의 구조 — 4권 13분책, 그리고 쓰이지 못한 5권
바르트는 처음에 다섯 권으로 구성된 교의학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 권 한 권이 너무 방대해져 각각 여러 분책(Teilband, part-volume)으로 나뉘었고, 끝내 마지막 권은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각 권의 주제는 기독교 신학의 전통적 주제 순서를 따른다. 다만 그 순서가 일반적인 조직신학 교과서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론' 안에 곧바로 '선택론'(election)을 배치했다. 보통은 '구원론' 단계에서 다루는 주제를 하나님 자신에 관한 교리 안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 배치 자체가 그의 신학적 선언이며, 뒤에서 다시 설명한다.
| 권 | 주제 | 다루는 내용 |
|---|---|---|
| I | 하나님 말씀론 Doctrine of the Word of God | 신학의 가능성과 방법, 계시·성서·설교의 삼중 형식, 삼위일체 |
| II | 하나님론 Doctrine of God |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 |
| III | 창조론 Doctrine of Creation | 창조의 사역, 피조물로서의 인간, 섭리·악, 창조 안에서의 윤리 |
| IV | 화해론 Doctrine of Reconciliation |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죄, 칭의·성화·소명, 교회와 신자 |
| V | 구속론(미집필) Doctrine of Redemption | 종말론 — 그리스도의 재림과 만물의 완성으로 계획되었으나 쓰이지 못함 |
바르트는 출간 직후의 한 좌담에서 제II권, 특히 II/1과 II/2를 "이 책 전체의 정점"이라고 직접 평한 적이 있다. 책을 완독한 독자들 다수도 그 평가에 동의한다. 그러나 후대에 끼친 영향력 측면에서는 제IV권 화해론(특히 IV/1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자기 비하 분석)이 가장 많이 인용된다.
4. 핵심 사상 ① —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식
제I권의 가장 유명한 개념은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식'(threefold form of the Word of God)이다. 바르트는 묻는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그의 답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가지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세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그는 말한다.
- 계시된 말씀(revealed Word) —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신 사건. 이것이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말씀'이다.
- 기록된 말씀(written Word) — 성서.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기보다, 본래적 말씀인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와 예언자들의 권위 있는 증언이다.
- 선포된 말씀(proclaimed Word) — 교회의 설교. 성서를 충실히 듣고 다시 증언할 때 그 설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전력 송배전 계통에 비유해 보자.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력(=계시 자체, 그리스도)이 송전선(=성서)을 통해 운반되고, 각 가정의 콘센트(=설교)에서 실제로 사용된다.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단계지만 본질은 동일한 '전력'이다. 송전선만 따로 떼어서 전력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없고, 콘센트만 따로 떼어 전력 자체와 동일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콘센트에서 빛이 켜질 때, 그것이 곧 발전소에서 보내온 전력의 작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비유의 한계는 분명하다. 바르트에게 그리스도는 '발전된 전력'이 아니라 '발전소 자체이면서 동시에 모든 단계에 임재하는 분'이다. 그러나 세 단계의 위계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이 구조의 정치적 함의는 즉각적이다. 만약 어떤 정치 이념이나 민족적 정서가 '교회의 설교'를 점령하더라도, 그것은 '기록된 말씀'인 성서에 의해 점검받아야 하고, 성서는 다시 '계시된 말씀'인 그리스도에 의해 판정받는다. 1934년 바르멘 선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한 분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선언하면서 나치 이념을 거부했을 때, 그 신학적 기반이 바로 이 삼중 구조이다.
5. 핵심 사상 ② — 자연신학에 대한 거부
1934년 바르트는 동료 신학자 에밀 브룬너(Emil Brunner)의 글 "자연과 은총"에 격렬한 반박문을 발표한다.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니오!"(Nein!) 이 짧은 두 글자가 그의 신학적 입장을 가장 잘 압축한다.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양심, 자연 질서의 관찰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어떤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학적 입장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길'(Quinque Viae, Five Ways) 같은 신 존재 증명이 대표적이다.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 일반론도 넓은 의미에서 이 흐름에 속한다.
바르트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에 도달할 어떤 자연적 능력도 없다. 하나님은 오직 자기 자신을 계시하실 때만 알려진다. 인간의 종교·문화·도덕은 그 자체로는 하나님을 향한 사다리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빛 앞에서 심판받는 자리이다.
"자연신학과 자연인의 종교는 …은총의 빛 아래에서 무너져야 한다." — 『교회교의학』 II/1 §26 요지
방향이 중요하다. 바르트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인식 경로(인간 이성 → 하나님)를 거부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로(하나님의 자기 계시 → 인간)만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인정한다. 이는 수신기와 송신기의 관계와 비슷하다. 수신기 자체에 송신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없다. 송신기가 신호를 보내야만 비로소 수신이 일어난다. 자연신학은 수신기 안에서 송신기를 합성하려는 시도라는 것이 바르트의 진단이다.
1930년대 독일에서 이 입장의 실천적 의미는 결정적이었다. 나치를 지지하던 '독일적 그리스도인'(Deutsche Christen, German Christians)들은 '독일 민족'과 '피와 땅'(Blut und Boden, Blood and Soil)을 하나님의 또 다른 계시 통로로 주장했다. 바르트의 자연신학 거부는 이런 주장에 신학적으로 단단한 거절의 근거를 제공했다. 자연·역사·민족 안에는 어떤 별도의 계시 통로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다만 바르트의 자연신학 거부가 자연과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매일 들었고, 신문 읽기를 신학자의 의무로 여겼다. 그의 거부는 '자연이 하나님 인식의 별도 통로가 된다'는 주장을 향한 것이지, '자연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자연과 문화는 자기 자리를 되찾는다.
6. 핵심 사상 ③ — 선택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교회교의학』 전체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논쟁적인 장은 제II권 2분책(II/2)의 선택론이다. 그는 여기서 종교개혁 전통, 특히 칼뱅주의의 이중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을 정면으로 재구성한다.
전통적 칼뱅주의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두 무리로 나누어 일부는 구원에 이르도록(elect), 일부는 멸망에 이르도록(reprobate) 미리 정하셨다. 누가 어디에 속하는지는 인간이 알 수 없다.
바르트는 이 도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이 도식의 근본 결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택의 대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묻는다. 만약 그리스도가 단지 이미 선택된 자들에게 적용되는 구원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뒤에 숨은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하나님의 결정'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두는 셈이 아닌가? 그것은 결국 자연신학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닌가?
그의 재구성은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이다.
이 재구성의 결과 가운데 가장 도발적인 장면이 가룟 유다 해석이다. 바르트는 II/2에서 유다 한 사람을 위해 무려 약 90쪽을 할애한다. 전통적으로 유다는 '버려진 자'(reprobate)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유다 역시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의 자리에 들어가심으로써 새 빛을 받는 인물로 읽는다. "버림받음"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두가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는 '만인구원론'(universalism)인가? 바르트는 이 라벨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모두가 구원받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를 소망한다"라고 말한다. 이 입장을 두고 후대 신학자들은 '잠정적 만인구원론'(hopeful universalism) 혹은 '객관적 만인 화해'(objective universal reconcili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한다.
관점이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 전통 도식이 '구원 보험증서를 내가 가지고 있는가'라는 사적 자문을 유발했다면, 바르트의 도식은 '그리스도가 모두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객관적 사실에 시선을 둔다. 동일한 별을 보면서 어떤 좌표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위치 좌표가 다르게 기술되는 것과 비슷하다. 별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좌표계가 바뀌면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펼쳐진다.
7. 핵심 사상 ④ — 신앙의 유비
제II권 1분책(II/1) §27 후반부에서 바르트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제시한다.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 analogy of faith)이다. 이것은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 analogy of being)에 대한 그의 응답이다.
'존재의 유비'는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의 핵심 개념이다. 피조물의 존재 양식과 창조주의 존재 양식 사이에 어떤 유비적 닮음이 있어,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통해 하나님에 관해 미약하게라도 유추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바르트는 1932년에 이 개념을 가리켜 "적그리스도의 발명품"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했다(나중에는 표현을 완화한다).
바르트가 제안한 대안이 '신앙의 유비'이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유비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어 자신의 형상을 우리에게 부여하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신호의 비유로 돌아가자. 두 종류의 무선통신을 상상한다. 첫째, 수신기가 자기 안에 '아마 송신기는 이런 모양일 것이다'라고 추측하는 모델을 갖고 있어 그 모델로 송신기를 더듬어 찾는 방식. 둘째, 송신기가 먼저 자신의 정확한 신호를 보내고, 수신기는 그 신호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송신기는 이런 모양이구나'를 알게 되는 방식. '존재의 유비'가 첫째라면, '신앙의 유비'는 둘째이다. 바르트에게 신학은 둘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8. 핵심 사상 ⑤ — 화해론과 그리스도의 두 본성
제IV권 화해론은 분량으로도 가장 두껍고(분책 5권), 후대에 끼친 영향력 측면에서도 정점에 있다. 바르트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을 다루는 전통적 도식을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배열한다.
전통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먼저 논하고, 그 다음 인성(人性)을 논했다. 바르트는 이를 그리스도의 '운동'으로 다시 짠다.
- IV/1 — '주가 종이 되다': 신성의 그리스도가 종의 자리로 내려오는 비하(humiliation). 여기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심판받는 '주'이다. 죄와 칭의(justification)가 다뤄진다.
- IV/2 — '종이 주가 되다': 인성의 그리스도가 높여지는 승귀(exaltation). 여기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표하는 '종'이다. 인간의 교만이라는 죄와 성화(sanctification)가 다뤄진다.
- IV/3 — '참된 증인': 그리스도가 자신을 계시하는 예언자적 사역. 여기서 그리스도는 진리이다. 인간의 거짓이라는 죄와 소명(vocation)이 다뤄진다.
이 구조의 미덕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따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성과 인성, 비하와 승귀, 직무들이 모두 한 분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운동의 다른 측면으로 통합된다.
한국 신학계에서 화해론이 자주 인용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가르침'(christology)을 '그리스도의 일에 관한 가르침'(soteriology, 구원론)과 끊임없이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와 그가 '무엇을 하셨는가'는 두 다른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 핵심이다.
9. 미완으로 끝난 책
바르트는 IV/4의 짧은 단편(세례에 관한 부분)을 1967년에 출간한 뒤, 1968년 12월 10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책상 위에는 다음 강의 원고가 펼쳐져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미완성이었다.
제V권 구속론(終末論, eschatology)은 단 한 줄도 쓰이지 못했다. 바르트가 계획했던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만물의 완성'이었다. 그는 후기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권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답한 바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분책에서 나는 종말, 곧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게 될 그날에 관해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그날에 이르기 전에 떠나게 될 것이다." — 바르트의 후기 회상
이 미완 상태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도 흥미롭다.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을 항상 '잠정적'(provisional)이라고 불렀다. 신학은 결코 완성된 체계가 될 수 없으며,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평생의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가장 큰 책이 미완으로 끝난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신학 자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형식이기도 하다.
10. 영향과 비판
『교회교의학』은 출간 직후부터 20세기 신학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바젤로 바르트를 찾아가 직접 사사했고, 본회퍼의 옥중서신에 담긴 '값비싼 은혜'(costly grace) 개념도 바르트와의 대화에서 자란 것이다. 토마스 토런스(Thomas F. Torrance),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가톨릭 신학자) 등이 그의 영향력 있는 해석자가 되었다. 바르트는 1962년 4월 20일 미국 TIME지 표지에 실렸으며, 같은 해 시카고와 프린스턴에서 행한 강연은 그가 신학계를 넘어 대중에게도 영향을 끼친 인물임을 보여준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주요 비판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과잉 — 모든 신학적 주제를 그리스도론으로 환원하다 보니, 성령론과 창조론이 그리스도론에 흡수되어버린다는 비판. 동방정교회 신학자들이 특히 강하게 제기한다.
- 역사적 예수 연구와의 거리 —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가 빠졌던 '역사적 예수 재구성' 작업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이것이 성서학과의 단절을 낳았다는 비판이 있다.
- 만인구원론적 함의 — 본인이 거부했음에도, 선택론의 논리적 귀결로 보인다는 평가가 보수 복음주의 진영에서 자주 제기된다.
- 여성 신학적 관점 — III/4의 결혼·성 윤리 부분에서 남편-아내 관계를 '질서'(Ordnung)로 위계적으로 서술한 점이 후대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에게서 비판받았다. 또한 본문 전체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거의 일관되게 남성형이다.
- 독해의 어려움 자체 — 한 문장이 한 단락을 넘기는 일이 흔하고, 라틴어·헬라어·불어 인용이 번역되지 않은 채 본문에 박혀 있다. "『교회교의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한국 신학자는 손에 꼽을 것"이라는 학계의 자조 섞인 평가가 있다.
11. 한국에서의 수용 — 박순경의 번역과 대한기독교서회 완간
한국 신학계에서 바르트의 영향력은 분명하다. 그러나 『교회교의학』 원전 자체에 대한 한국어 접근은 오랫동안 제한적이었다. 바르트에 관한 해설서와 입문서는 수십 종이 출간되었지만, 본문 자체의 한국어 번역은 매우 늦게 진행되었다.
본문의 첫 한국어 분책 번역(I/1)이 출간된 것은 2003년경이다. 노(老) 신학자 박순경 박사가 대한기독교서회를 통해 작업했다. 박순경은 영문 번역본 또한 라틴어·헬라어·독일어 주석을 원문 그대로 남겨둔 그 부분까지 일일이 해독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여러 역자가 분담하여 작업이 이어졌고, 2017–2018년경 대한기독교서회는 『교회교의학』 13권 세트의 한국어 완역 출간을 발표했다. 이는 한국 신학계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책 일부만 읽고 교파 입장에 따라 바르트 신학을 평가해 온 오랜 관행을 점검할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다수 흐름은 칼뱅주의 전통, 특히 미국 프린스턴 신학 계열과 네덜란드 개혁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전통에서 보면 바르트의 선택론 재구성과 자연신학 거부, 만인구원론적 함의는 칼뱅의 정통 노선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기 쉽다. 반면 진보 신학 계열에서는 바르트의 정치적 행보(바르멘 선언, 반나치 저항)와 본회퍼·토런스 등에 끼친 영향력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용해 왔다. 이 두 진영 사이의 평가 차이가 한국에서 바르트가 폭넓게 읽히는 데 오래 장애가 되어 온 한 요인이다.
12. 오늘 다시 읽는 이유
『교회교의학』은 21세기 독자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책이다. 그 이유는 책이 다루는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째, 정치 이념과 종교의 결합 문제. 1934년 바르멘 선언이 거부한 것은 그저 나치즘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이나 '국가의 역사' 같은 자연 질서가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 인식의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발상 전체였다. 오늘날에도 종교가 정치적 이념의 도구로 동원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에서, 바르트의 자연신학 거부는 추상적 신학 논쟁이 아니라 실천적 분별의 도구이다.
둘째,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바르트는 추상적 신 개념에서 출발하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다원주의에 대한 응답이 '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다른 길로 오른다'는 식의 절충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산도 오를 수 없으며 다만 한 분이 우리에게 내려오셨음을 증언할 뿐이다'라는 식의 자기 한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셋째, 거대 체계에 대한 매혹과 의심. 『교회교의학』은 그 자체로 거대 체계의 기념비이다. 동시에 그 체계가 미완으로 남았다는 점, 저자가 자신의 신학을 항상 '잠정적'이라 부른 점은 거대 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충동에 대한 흥미로운 거울이 된다. 신학이든 과학이든 거대 체계는 동시에 '내가 다 안다'는 환상에 빠지기 쉬운데, 바르트는 가장 큰 책을 쓰면서 가장 큰 겸손을 보여주려 했다.
13.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입문 경로
13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신학 전공자에게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반 독자가 시도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로 몇 가지를 정리한다.
- 『교의학 개요』(Dogmatik im Grundriss) — 1946년 본 대학교에서 바르트가 종전 직후 행한 사도신경 강해 시리즈. 한 권 분량(약 200쪽)으로, 『교회교의학』의 압축판에 가깝다. 입문서로 가장 권할 만하다.
- 『복음주의 신학 입문』(Einfü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 1962년 미국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 바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후기 시점에서 정리한다.
- 제II권 2분책(II/2) 선택론 — 본문 중 한 분책을 직접 읽고자 한다면 이 권을 권한다. 바르트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이 이 안에 있다.
- 제IV권 1분책(IV/1) §59 '주가 종이 되다' — 화해론의 핵심. 그리스도의 십자가 분석으로 유명하다.
한국어로는 대한기독교서회의 완역본이 표준이다. 영어로는 토런스(T. F. Torrance)·브로마일리(G. W. Bromiley) 편역의 T&T Clark판이 가장 널리 인용되며, 2009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그리스어·라틴어·불어 인용을 모두 번역해 추가한 학습판도 있다.
맺음말
『교회교의학』은 끝까지 읽기 어렵고, 한 번 읽고 다 이해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결론을 받아 적는 데 있지 않다. 한 신학자가 35년에 걸쳐, 시대의 위기 한복판에서, 매일 책상 앞에 앉아 '하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다시 묻고 또 다시 묻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그 과정은 결국 한 가지 명제로 수렴한다. 바르멘 선언 제1조이자, 사실상 『교회교의학』 13권 전체의 한 줄 요약이기도 한 문장이다.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한 분 하나님의 말씀이다." — 바르멘 선언 제1조 (1934)
이 한 문장을 풀이하는 데 그는 600만 단어를 썼다. 그리고 그 작업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미완성 자체가 이 책의 가장 정직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이 글은 칼 바르트 일반 전기 자료, 프린스턴 신학교 바르트 연구센터 자료, 대한기독교서회 한국어판 완간 보도, T. F. 토런스 신학연구회 자료, 위키피디아 'Church Dogmatics' 항목 등을 종합해 작성했다. 분량과 출판 연도, 권별 출간 시기 등 사실 정보는 PostBarthian의 원본 출간일 정리표와 T. F. Torrance Theological Fellowship의 분책 목록을 대조해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