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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력계통의 부가서비스

재생에너지·디지털화 시대를 위한 실무 중심 종합 리뷰 - IEEE Access 서베이 논문 해설

대상 논문
제목
Ancillary Services in Modern Power Systems: A Practical Survey
저자
Vahid Hosseinnezhad, Mohammad Esmaeil Honarmand, Barry Hayes, Michael Phelan, Paul Conlon, Paulo M. G. Da Costa Sobral
출처
IEEE Access, 제14권, 35608–35632쪽
발행일
2026년 2월 27일
식별자
DOI 10.1109/ACCESS.2026.3668800 · ISSN 2169-3536
라이선스
Open Access (CC BY 4.0)

전등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온다. 이 단순한 경험 뒤에서 전력계통은 매 순간 수요와 공급을 0.1초 단위로 맞추고 있다. 이렇게 계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기능들을 묶어 부가서비스(Ancillary Services, 계통 보조서비스)라 부른다. 이 논문은 화석연료 발전소가 떠받치던 전통적 부가서비스가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기술의 확산으로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정의, 분류, 기술, 국제사례의 네 축으로 정리한 서베이다.

이 글은 해당 논문을 전력계통 비전공자도 따라올 수 있도록 풀어 쓴 해설 보고서다. 핵심 개념마다 일상의 비유 박스를 두었고, 주파수 제어 타이밍처럼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은 도해로 보완했다. 논문이 다루는 범위가 넓은 만큼, 전체 지형을 먼저 보고 세부로 들어가는 순서로 구성했다.

목차
  1. 부가서비스란 무엇인가
  2. 정의의 진화: FERC에서 오늘까지
  3. 분류 체계: 수혜자 기준의 송전·배전
  4. 주파수 제어: 4단계 방어선
  5. 전압 제어와 계통 복구
  6. 저관성 계통의 새로운 서비스
  7. 기술 혁신: DR·EV·BESS·마이크로그리드
  8. V2G 실증: 4개 파일럿의 성적표
  9. 국제 사례: 아일랜드·영국·일본
  10. 미래 트렌드와 과제
  11. 평가와 시사점

1.부가서비스란 무엇인가

전력은 저장이 어렵다. 발전소가 만들어낸 전기는 사실상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어야 하며, 이 균형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계통 주파수가 흔들리고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가서비스는 바로 이 균형을 유지하고, 전압과 주파수를 정상 범위에 묶어두며, 사고가 났을 때 계통을 복구하는 일련의 기능을 가리킨다. 전기 그 자체(에너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안전하게 흐르게 만드는 부수적 기능을 거래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비유 - 고속도로의 운영 시스템

발전과 송전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전기 에너지)라면, 부가서비스는 그 도로가 막히지 않고 사고 없이 굴러가게 하는 운영 시스템이다. 차량 흐름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신호등(주파수 제어), 차선이 쏠리지 않게 잡아주는 가드레일(전압 제어), 사고 직후 도로를 다시 여는 견인차와 응급팀(계통 복구)이 모두 부가서비스에 해당한다. 운전자는 이런 시스템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없으면 도로 전체가 마비된다.

전통적으로 이 기능들은 석탄·가스·수력 같은 대형 동기발전기가 발전과 묶어서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러나 전력산업이 시장 중심으로 구조 개편되면서, 부가서비스는 발전과 분리되어 독립적인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계통운영자는 이제 민간 사업자로부터 부가서비스를 조달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이 흐름은 더욱 빨라졌고, 배터리·전기차·마이크로그리드 같은 분산자원이 대형 발전소를 대신해 부가서비스의 주요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2.정의의 진화: FERC에서 오늘까지

부가서비스의 정의는 시장 제도와 함께 계속 확장되어 왔다. 논문은 그 변천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가장 이른 정의 중 하나는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가 제시했다. FERC는 부가서비스를 “상호연계된 송전계통의 신뢰성 있는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 판매자에서 구매자로 전력을 송전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로 규정했다. 당시 식별된 핵심 서비스는 여섯 가지였다. 스케줄링·계통제어·급전, 무효전력 및 전압제어, 조정 및 주파수 응답, 에너지 불균형, 그리고 운전예비력(동기·대기) 등이다.

이후 북미전력신뢰도위원회(NERC, 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uncil)가 정의를 가다듬었고, 전력연구원(EPRI, Electric Power Research Institute)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목록은 부하추종, 백업공급, 동적 스케줄링, 실전력 송전손실, 계통안정화 서비스, 블랙스타트 능력 등으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유럽전력산업협회(Union of the Electricity Industry)는 부가서비스를 “송전계통운영자(TSO) 또는 배전계통운영자(DSO)가 계통의 무결성과 안정성, 전력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서비스”로 폭넓게 정의했다.

논문은 이 서비스들이 전통적으로 세 가지 축으로 분류되어 왔다고 정리한다. 실전력(주파수 조정·램핑·에너지 불균형·손실 보상·기동정지 계획)과 무효전력(전압 조정·콘덴서 투입·발전기 스케줄링)으로 나뉘는 전력 종류 축, 즉각(초)·빠름(분)·느림(시간)으로 나뉘는 응답 시간 축, 그리고 가용성 축이다. 기능 면에서는 흔히 주파수 제어, 계통 제어, 계통 복구의 세 묶음으로 분류한다.

핵심 메시지 부가서비스는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계통 환경에 따라 진화하는 개념이다. 재생에너지가 늘면서 빠른 주파수 응답(FFR), 합성관성(synthetic inertia)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목록에 추가되고 있다는 점이 이 논문의 출발점이다.

3.분류 체계: 수혜자 기준의 송전·배전

논문이 채택한 분류 원칙이 명료하다. 서비스를 그 자원이 물리적으로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연결점)가 아니라, 누가 그 서비스의 혜택을 보는지(수혜자)를 기준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배전망에 연결된 배터리라도 계통 전체의 안정도를 떠받치는 데 쓰인다면 송전계통(TS, Transmission System) 차원 서비스로, 그 지역의 전압이나 과부하를 다루는 데 쓰인다면 배전계통(DS, Distribution System) 차원 서비스로 분류한다.

분산자원 배터리 · EV · 분산발전 (배전망에 연결) 송전계통 차원 (TS-level) · TSO 책임 수혜자 = 계통 전체 안정도 · 신뢰도 주파수 제어 전압 안정 블랙스타트 동기 관성 예비력 (FCR/FRR) 배전계통 차원 (DS-level) · DSO 책임 수혜자 = 국부 전압 · 열적 제약 · 전력품질 전력품질 혼잡 완화 FRT 출력 평활 전압 불평형 완화 계통 전체가 수혜 국부 목적 연결점이 아니라 수혜자로 분류
그림 1. 동일한 배전망 분산자원이라도 누가 혜택을 보느냐에 따라 송전급(TS) 또는 배전급(DS) 서비스로 분류된다. 배전 연결 자원이 송전급 상품을 제공할 때는 TSO–DSO 협조를 통해 급전·정산된다.

이 원칙이 중요한 이유는, 분산자원이 계통의 어느 계층에 기여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시장에서 정당한 보상과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숙한 시장에서는 분산자원 기반 솔루션이 전체 예비력 용량의 최대 35%까지 공급할 수 있다고 논문은 인용한다. 송전과 배전 양쪽 운영자가 부가서비스 공급에서 모두 상당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4.주파수 제어: 4단계 방어선

주파수 제어는 부가서비스의 심장이다. 계통 주파수(50 Hz 또는 60 Hz)는 발전과 수요가 정확히 일치할 때만 유지된다. 큰 발전기 한 대가 갑자기 탈락하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주파수가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응답 속도가 다른 여러 예비력이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투입된다.

비유 - 화재 진압의 단계별 대응

주파수가 떨어지는 것은 건물에 불이 난 상황과 같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건물 자체의 스프링클러(관성 응답)로, 사람이 개입하기 전에 물리적으로 즉시 작동한다. 다음으로 인근 소화기를 든 사람(FFR·1차 FCR)이 수초 안에 초기 진화에 나선다. 그 사이 출동한 소방차(2차 FRR)가 분 단위로 본격 진압을 맡고, 마지막으로 교대 인력과 장비(3차 RR)가 장시간 잔불을 정리한다. 각 단계가 빈틈없이 이어져야 큰불(정전)을 막을 수 있다.

계통 주파수 정격 50 Hz Nadir (최저점) RoCoF (변화율) 관성 FFR 1차 · FCR 2차 · FRR 3차 · RR 즉시-2초 약 2초 수초-30초 30초-15분 15분-수시간 교란 2초 30초 15분 수시간 시간 축은 설명을 위한 비선형(개념) 척도
그림 2. 발전기 탈락 직후 주파수는 급격히 떨어졌다가(상단 곡선) 응답 속도가 다른 예비력이 차례로 투입되며 회복된다(하단 타임라인). 관성과 FFR이 최저점(Nadir)을 떠받치고, FCR이 안정시키며, FRR이 주파수를 정격으로 되돌리고, RR이 소진된 예비력을 보충한다.

1차 주파수 제어 (FCR, 주파수 억제 예비력)

1차 주파수 제어는 주파수 억제 예비력(FCR, Frequency Containment Reserve)으로도 불린다. 터빈 조속기나 그에 준하는 기술을 통해 수초 이내에 자동으로, 거의 즉각적으로 응답한다. 정상 상태용 FCR-N과 외란용 FCR-D로 세분되며, 빠른 조속기를 가진 발전기와 수요반응 자원이 공급원이다.

2차 주파수 제어 (FRR, 주파수 회복 예비력)

2차 주파수 제어는 주파수 회복 예비력(FRR, Frequency Restoration Reserve)으로, 외란 후 30초에서 15분 사이에 중앙집중식으로 작동한다. 자동(aFRR) 운전예비력 또는 수동(mFRR) 예비력에 의존하며, 자동발전제어(AGC, Automatic Generation Control)가 이 시간대에 발전기 출력을 조정한다. 떨어진 주파수를 정격으로 되돌리는 역할을 맡는다.

3차 주파수 제어 (RR, 대체 예비력)

3차 주파수 제어는 대체 예비력(RR, Replacement Reserve)이라 불린다. TSO가 수동으로 발동하며, 15분에서 수시간에 걸쳐 동기 또는 비동기 실전력 예비력을 동원해 장시간 외란 동안 FRR을 복원하거나 지원한다. 최근 시장은 이 역할에 유연부하를 점점 더 활용하고 있다.

빠른 주파수 응답 (FFR)

빠른 주파수 응답(FFR, Fast Frequency Response)은 주파수 하락을 멈추기 위해 전력을 신속히 주입하거나 차단하여, FCR이 작동할 시간을 벌어주는 서비스다. 전통 발전기도 참여할 수 있지만, 풍력·태양광·배터리 같은 인버터 기반 자원과 수요반응이 이제 주역을 맡는다. 시장에 따라 차단가능부하 부가서비스(ILAS)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5.전압 제어와 계통 복구

전압 제어 - 무효전력의 세계

주파수가 계통 전체의 공통 지표라면, 전압은 위치마다 다르다. 각 지점의 전압은 그 노드에 주입되거나 흡수되는 무효전력에 좌우된다. TSO는 설비 손상과 발전기 탈락, 광역 불안정을 막기 위해 망 전체의 전압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전압 제어도 주파수처럼 응답 속도에 따라 계층화된다.

비유 - 수도 배관의 압력

전압을 수돗물의 수압에 비유하면, 무효전력은 그 수압을 만들어내는 펌프의 힘에 해당한다. 실전력(주파수)이 실제로 흘러 일을 하는 물이라면, 무효전력은 물을 적정 압력으로 밀어 올리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압력이 너무 낮으면 끝단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오고(전압 강하), 너무 높으면 배관이 터진다(과전압). 곳곳의 펌프를 조율해 압력을 균일하게 맞추는 일이 전압 제어다.

1차 전압 제어는 자동전압조정기(AVR, Automatic Voltage Regulator), 정지형 보상기, 부하시 탭전환변압기 등으로 약 1분 이내에 국부 모선 전압을 설정값 근처로 유지한다. 2차 전압 제어는 콘덴서뱅크, 리액터, 동기·정지형 보상기, 부하시 탭전환장치(OLTC, On-Load Tap Changer)를 이용해 수분에 걸쳐 구역 단위로 무효전력을 관리한다. 3차 전압 제어는 전압 편차 발생 10–30분 후 수동으로 무효전력 흐름을 계통 차원에서 최적화하며, 안전성과 경제성을 함께 고려해 2차 제어기의 기준값을 설정한다.

여기에 더해, 고장 시 수 밀리초에서 수분 내에 작동해 전압 붕괴를 막는 빠른 무효전류 주입(FRCI, Fast Reactive Current Injection)이 있다. 회전 발전기,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STATCOM 등이 공급하며,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계통에서 의무화되는 경우가 많다.

계통 복구 - 정전 후 다시 켜기

전면적이거나 부분적인 정전은 드물지만 위험이 큰 사건이다. 블랙스타트(Black Start) 능력은 외부 전원 없이 스스로 기동할 수 있는 발전 설비가 제공하며, 망의 일부를 재충전해 다른 발전기가 다시 가동될 수 있게 한다. 모든 발전소가 이 기능을 갖춘 것은 아니어서, 공급원 선정은 신중하게 이뤄진다. 아일랜딩(Islanding) 운전 능력은 분리된 망 구간이 최소 한 대의 발전 설비나 저장장치, 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연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주파수와 전압을 조절하며 운전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 밖의 주요 서비스

논문은 이 외에도 여러 서비스를 나열한다. 유연송전시스템(FACTS, Flexible AC Transmission Systems)이나 전력시스템안정화장치(PSS, Power System Stabilizer)를 이용해 진동을 억제하는 전력진동감쇠(POD), 고장 중에도 재생에너지 자원이 계통에서 분리되지 않게 하는 고장통과(FRT, Fault Ride-Through) 능력, 송전선 과부하를 다루는 혼잡관리, 수요 급변에 대응하는 램프 제어 등이다. 특히 대형 동기발전기가 외란 시 즉각적인 토크를 제공하는 동기 관성 응답은 인버터 기반의 합성관성이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기능으로 강조된다.

6.저관성 계통의 새로운 서비스

이 논문이 거듭 강조하는 변화의 핵심은 관성 감소다. 석탄·가스·원자력 같은 동기발전기는 거대한 회전체를 돌리며 막대한 운동에너지를 저장한다. 발전기가 갑자기 탈락해도 이 회전 관성이 주파수 하락 속도를 늦춰, 예비력이 작동할 시간을 벌어준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인버터를 통해 계통에 연결되므로 이런 회전 관성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계통의 관성이 줄고, 같은 사고에도 주파수가 더 가파르고 깊게 떨어진다.

비유 - 무거운 자전거와 가벼운 자전거

관성은 자전거의 무게와 같다. 무거운 자전거(높은 관성, 동기발전기 위주)는 갑자기 페달을 멈춰도 한동안 천천히 굴러가, 다시 균형을 잡을 여유가 있다. 반면 아주 가벼운 자전거(낮은 관성, 재생에너지 위주)는 페달을 멈추는 순간 급격히 흔들려 넘어지기 쉽다. 가벼운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려면 더 빠른 반사신경(FFR)과, 무게를 흉내 내는 보조장치(합성관성)가 필요하다.

정격 50 Hz 저주파수 부하차단 위험선 교란 발생 후 시간 → 주파수 높은 관성 (동기발전기 多) 낮은 관성 (재생에너지 多) 완만한 RoCoF 가파른 RoCoF FFR · 합성관성이 메워야 할 간극
그림 3. 같은 발전기 탈락이라도 관성이 낮은 계통(점선)에서는 주파수가 더 가파르게(높은 RoCoF) 더 깊게 떨어져, 부하차단 위험선에 가까워진다. 이 간극을 빠른 주파수 응답(FFR)과 합성관성이 메워야 한다.

이 때문에 논문은 저관성 계통을 위한 새로운 부가서비스의 부상을 핵심 기여로 꼽는다. 첫째는 빠른 주파수 응답(FFR)으로, 인버터 자원의 즉각적 응답으로 주파수 하락 속도(RoCoF, Rate of Change of Frequency)를 늦추고 최저점을 끌어올린다. 둘째는 합성관성(synthetic inertia)으로, 인버터 제어를 통해 동기발전기의 관성 응답을 모사한다. 가상동기기(VSM, Virtual Synchronous Machine) 개념이 대표적이며, BESS를 단독 또는 발전 설비와 결합해 가상관성을 제공하는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 다만 논문은 합성관성이 진짜 회전 관성을 완전히 복제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함께 지적한다.

7.기술 혁신: DR · EV · BESS · 마이크로그리드

논문 3장은 부가서비스 지형을 바꾸고 있는 네 가지 기술과, 이들을 묶는 어그리게이터를 다룬다. 공통된 열쇳말은 유연성(flexibility), 즉 수급 불일치에 신속히 반응하는 능력이다. 중앙집중식 발전에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현대 계통은 분산된 작은 자원들의 유연성을 끌어모아 부가서비스를 공급한다.

수요반응 (DR)

수요반응(DR, Demand Response)은 부하의 유연성 자체를 부가서비스로 활용한다. 첨두부하 시 계통 안정성을 보강하고, 정전을 줄이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상쇄한다. 특히 식품·철강·알루미늄·화학 같은 산업 공정은 큰 부하를 조절할 수 있어 DR 기반 부가서비스의 핵심 공급원으로 꼽힌다. 다만 산업 공정의 복잡성과 생산 차질 가능성이 확대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논문은 DR이 주파수 제어, 전압 조정, 혼잡관리, 전력품질 개선, 출력 평활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기여할 수 있음을 사례와 함께 정리한다. 슈퍼마켓 냉장 시스템을 모아 FFR을 제공하는 사례처럼, 흩어진 상업 부하의 집합이 갖는 가치가 부각된다.

전기차와 V2G

전기차(EV, Electric Vehicle)는 차량 탑재 배터리를 활용해 송전과 배전 양쪽을 지원할 잠재력을 지닌다. DR과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이동성과 양방향 충방전이라는 고유한 특성 때문에 별도로 다뤄진다. 핵심 개념은 차량-그리드 통합(VGI, Vehicle-Grid Integration)으로, 무제어 충전(V0G), 스마트 충전(V1G), 건물 내 방전(V2H/V2B), 완전한 그리드 역송전(V2G, Vehicle-to-Grid)으로 단계가 나뉜다. 승용 EV는 실제 충전에 필요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주차되어 있어, 이 대기 시간의 유연성을 적절한 연계·계량·제어와 결합하면 주파수·예비력 상품에 투입할 수 있다.

비유 - 주차장에 잠든 발전소

도시의 주차장에는 수많은 전기차가 배터리를 가득 채운 채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서 있다. V2G는 이 잠들어 있는 배터리들을 깨워, 계통이 필요할 때 잠깐씩 전기를 되돌려주는 작은 발전소들의 집합으로 바꾼다. 차주는 다음 날 출근에 필요한 충전량만 지키면, 주차해 둔 시간에 계통을 도운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BESS)

BESS는 빠른 응답, 높은 램프율, 양방향 전력 제어라는 특성 덕분에 가장 다재다능한 부가서비스 공급원으로 부상했다. 특히 집합화되면 주파수 억제·회복 같은 대규모 고속 응답을 제공한다. 논문은 BESS가 주파수 조정, 전압 조정, 혼잡관리, 손실 관리, 회복력 향상, 전력품질 개선, 출력 평활, 관성 응답, 블랙스타트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을 항목별로 정리한다. 디젤 발전기를 대신해 대규모 블랙스타트에 투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마이크로그리드

마이크로그리드는 분산자원과 저장장치, 조절 가능 부하를 중앙에서 관리하는 소규모 망으로, 계통연계 모드와 독립(islanded) 모드를 오간다. 계통연계 모드에서는 주파수·전압 지원, 혼잡관리, 손실 저감, 전력품질 개선을 망 전체로 확장해 제공하고, 독립 모드에서는 국부 발전만으로 수요를 맞추며 droop 제어와 가상관성으로 안정성을 유지한다. 망을 더 작은 나노그리드로 세분해 분산자원을 조율하는 유연한 구조가 강점이다.

어그리게이터와 가상발전소

이 모든 분산자원을 시장에서 의미 있는 규모로 묶는 것이 어그리게이터다. 계량 뒤편의 배터리, 수요반응 자원, EV 차량군 같은 작고 분산된 자산을 모아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를 구성하면, 주파수 조정·전압 지원·비상 예비력을 조율된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균형서비스공급자(BSP)로도 불리는 어그리게이터는 중앙집중(혼합정수선형계획·심층강화학습 등)과 분산(ADMM·블록체인 등) 방식을 함께 활용한다. 최소 용량 문턱 같은 진입 장벽을 없애 분산자원의 집합을 촉진하는 시장 설계가 효과적 참여의 관건이라고 논문은 짚는다.

8.V2G 실증: 4개 파일럿의 성적표

논문은 V2G가 이론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유럽·호주의 대표 실증으로 검증한다. 아직 대부분 파일럿 또는 초기 상용 단계지만, 계통 주파수 신호를 추종해 양방향 출력 지령을 따르고 부가서비스 요구를 충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상 수치는 시점·제품·환산 방식에 따라 달라지므로, 각국이 공표한 단위 그대로 인용한다.

실증 (국가)규모 · 설비참여 시장보고된 보상 (차량당 연간)
Parker
덴마크
양방향 DC 약 10 kW (CHAdeMO, Enel X), NUVVE 집합 유럽대륙 FCR (응답 약 5-150초) 약 9.25 kW, 연 6,150시간 참여 시 약 1,400유로 (최대 잠재 약 1,510유로)
Sciurus
영국
가정용 V2G 충전기 320기 이상 (약 6 kW, Indra), Kaluza/OVO 최적화 소매 요금 차익 + FFR + Dynamic Containment 요금 최적화만 약 340파운드, FFR 포함 약 513파운드, Dynamic Containment 포함 최대 약 725파운드
Powerloop
영국
가정 약 135가구, Nissan LEAF + Wallbox Quasar (약 7 kW), Octopus 집합 균형시장(BM) 가상 대표사업자로 2022년 시험 1 MW 미만 계량 뒤편 차량군이 사용자 충전량·시각 제약을 지키며 BM 급전 추종 입증
REVS
호주
LEAF 51대 + Wallbox Quasar 51기 (약 7 kW), ACT 11개 건물 60초 비상 주파수제어(FCAS) 오후 늦은 접속 패턴으로 약 357 kW FCAS 상향 용량, 2022년 NSW 가격 기준 약 2.0-2.6천 호주달러 (표준·등록 제약으로 실현은 제한)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시판 EV가 실제 주파수 신호를 추종해 계통 부가서비스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이 Parker에서 입증됐다. 둘째, Sciurus가 보여주듯 요금 차익과 부가서비스를 겹쳐 쌓으면(stacking) 차주의 충전 선호를 해치지 않으면서 수익을 키울 수 있다. 셋째, REVS의 사례처럼 기술적 타당성이 충분해도 표준과 등록 제도가 실현 수준을 좌우한다. 제도 정비가 V2G 확산의 실질적 병목임을 시사한다.

9.국제 사례: 아일랜드 · 영국 · 일본

논문 4장은 세 나라의 부가서비스 시장을 깊이 들여다본다. 모두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같은 압력에 직면했지만, 역사와 제도가 달라 서로 다른 해법을 발전시켰다.

아일랜드 - DS3 프로그램

아일랜드는 1999년 전력규제법으로 발전·공급에 경쟁을 도입했고, 2001년 계통운영자 EirGrid를 설립했다. 2007년 EirGrid와 SONI가 단일전력시장(SEM)을 출범시켰다. 핵심은 2011년 SEM 위원회가 도입한 DS3(Delivering a Secure, Sustainable Electricity System) 프로그램이다. 높은 풍력 비중이 만드는 통합 과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프로그램은 2016년까지 기존 체계를 완전히 대체했다. 그 결과 2022년 아일랜드는 비동기 침투율(SNSP, System Non-Synchronous Penetration) 75%를 달성하며 변동성 전원 운영의 세계적 선두에 섰고, 2030년 재생에너지 전력 80%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DS3는 주파수 제어, 관성·안정도, 전압 제어, 램핑·유연성의 네 묶음 아래 14개 시스템 서비스를 정의한다. 예컨대 FFR은 2초 이내의 초고속 응답을, 램핑마진(RM8)은 8시간에 걸친 램핑을 제공한다. 향후 EirGrid와 SONI는 더 높은 SNSP를 지원하기 위해 향상된 주파수 응답(EFR)과 합성관성(SI)을 도입할 계획이다. 정량 지표로는 최소 관성 하한 23,000 MW·s, 그리고 POR/SOR 예비력을 최대 단일 공급손실(LSI)의 0.75배로 규정한다.

영국 - 동적 서비스로의 전환

영국은 1989년 전력법으로 중앙발전국(CEGB)을 민영화했고, 2001년 신전력거래체계(NETA), 2005년 BETTA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를 묶은 통합 시장(GB)을 형성했다. 2019년 계통운영 기능이 분리되어 NGESO가 되었고, 2024년 10월 전력·가스를 아우르는 국가에너지계통운영자(NESO)로 확대됐다. 2024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0%를 넘어서면서, 더 빠르고 세밀한 주파수 응답이 필요해졌다.

그 답이 2020년 이후 도입된 동적 서비스 3종이다. 고장 후 심각한 주파수 하락을 잡는 약 1초 응답의 Dynamic Containment(DC), 중간 규모 변동을 다루는 Dynamic Moderation(DM), 50 Hz 근처의 미세한 지속적 불일치를 다듬는 Dynamic Regulation(DR)이다. 일/실시간 경매로 조달되는 이들이 기존 월 단위 FFR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예비력에서는 2024년 Quick Reserve(5분 발동)를 도입했고, STOR를 대체할 Slow Reserve(10-60분)를 준비 중이다. 또한 Stability Pathfinder를 통해 동기조상기와 그리드포밍 인버터를 계약해 관성과 단락용량을 확보한다. 2035년 무탄소 발전 목표를 향해 개혁이 이어지고 있으며, 2024년 최소 관성 요건은 120 GVA·s로 설정됐다.

일본 - 후쿠시마 이후의 재편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력산업을 크게 재편했다. 2020년까지 발전·송전을 법적으로 분리했고, 일본전력거래소(JEPX)는 거래 전력의 40% 이상을 처리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50 Hz와 60 Hz 계통을 잇는 광역계통운영을 담당하는 OCCTO가 설립됐고, 전력·가스시장감시위원회(EGC)가 공정 경쟁을 감독한다. 2021년부터는 균형시장을 통해 FCR, FRR, RR를 경쟁 조달하며, 재생에너지 예측 오차를 관리하기 위한 RR-FIT라는 독특한 상품을 운영한다. 2020년 첫 경매를 연 용량시장과 함께, 이 개혁들은 양자 계약을 대체하고 어그리게이터 기반 VPP를 촉진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가 이를 가속하고 있다.

구분아일랜드영국일본
핵심 제도DS3 프로그램 (14개 시스템 서비스)동적 서비스(DC/DM/DR) + Quick/Slow Reserve균형시장(FCR/FRR/RR) + RR-FIT
조달 방식역량별 조달, 시장 기반 신호 강화일/실시간 경매로 월 단위 상품 대체경쟁 조달로 양자 계약 대체
대표 성과2022년 SNSP 75% 달성재생e 40%+ 에서 균형비용 절감VPP·집합자원 참여 확대
장기 목표2030년 재생e 전력 80%2035년 무탄소 발전2050년 탄소중립
저관성 대응EFR·합성관성 도입 예정그리드포밍 인버터·동기조상기대형 배터리·그리드포밍 FFR 실증

세 사례가 던지는 공통 교훈은, 지역 여건에 맞춰진 시장 설계와 기술 표준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곳일수록 FFR, 합성관성, 새로운 전압 조정 방식이 우선순위를 차지하며, 이는 기민한 규제 틀과 동적 가격 구조, 현대화된 계통 코드를 요구한다.

10.미래 트렌드와 과제

논문 5장은 부가서비스의 향방을 짚는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계속 늘면서 더 빠르고 유연한 주파수·전압·램핑 응답이 요구되고, FFR과 합성관성 같은 기술의 비중이 커진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데이터 기반 분석은 예측·실시간 최적화·자율 의사결정 지원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다만 규칙 기반, 모델예측제어, 머신러닝, 디지털 트윈 같은 제어 패러다임을 표준 시험조건에서 정면 비교하는 작업은 이 서베이의 범위를 넘어선 향후 과제로 남겨둔다.

TSO-DSO 협조는 더 깊어지고, 어그리게이터와 VPP는 핵심 공급자가 된다. 태양광-배터리 같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난방·교통의 전기화에 따른 부문 결합(sector coupling)도 새로운 부가서비스 수요를 만든다. 흥미로운 대목은 데이터센터다. 아일랜드는 이미 계통 경보 시 데이터센터를 백업 전원으로 전환하도록 규제해, 대규모 컴퓨팅 부하를 유연 자원으로 바꾸고 있다. 다른 지역도 유사한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

마지막 과제는 사이버보안과 회복력이다. 디지털 원격계측, 통신, 자동 제어(어그리게이터 플랫폼과 TSO-DSO 연계 인터페이스 포함)에 대한 의존이 커질수록 사이버 위험 노출도 커진다. 논문은 유럽의 ENTSO-E 사이버보안 망 코드, 영국의 NIS 체계(NCSC 사이버평가프레임워크), 북미의 NERC CIP 같은 관할별 요구사항을 예로 들고, 기술 구현에서 통신·프로토콜 보안 표준(IEC 62351)과 운영기술 보안 프레임워크(IEC 62443)가 결합된다고 정리한다. 다만 관할 간 비교 분석과 상세 보안 프레임워크는 향후 연구 방향으로 명시한다.

11.평가와 시사점

이 논문의 강점은 분류 체계의 명료함이다. 연결점이 아니라 수혜자를 기준으로 송전·배전 서비스를 가르는 원칙은, 분산자원이 양쪽 계층에 걸쳐 기여하는 현실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또한 단편 사례 나열에 그치지 않고 아일랜드·영국·일본이라는 서로 다른 제도 경로를 비교해, 제도가 기술 도입을 어떻게 좌우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산업 부하·EV·BESS·마이크로그리드를 영역별로 교차 정리한 점, 그리고 V2G 실증의 실제 보상 수치를 공표 단위 그대로 인용한 점도 실무적 가치가 크다.

한계는 저자들이 스스로 밝힌 부분과 겹친다. 제어 패러다임의 정량 벤치마크와 사이버보안의 관할 간 비교는 다루지 않으며, 부가서비스의 경제성·정산 메커니즘에 대한 깊이 있는 모델링도 이 서베이의 초점이 아니다. 서베이라는 형식상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기보다 기존 지형을 정리하는 데 무게가 실린다.

시사점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늘리는 계통은 예외 없이 빠른 주파수 응답과 관성 보강이라는 동일한 병목에 부딪힌다. 부가서비스 시장을 재설계하는 관할에 이 논문은 잘 정리된 출발점을 제공한다. 기술 자체보다 제도와 표준이 확산의 실질적 병목이라는 V2G 실증의 교훈은, 시장 개혁을 준비하는 모든 계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컨대 부가서비스는 더 이상 발전의 부수 기능이 아니라, 저탄소 계통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독립적이고 적극적으로 거래되는 상품군이 되었다. 대형 화력에서 분산자원으로 공급원이 옮겨가는 만큼 운영 복잡성도 커지지만, 유연성·데이터 보안·경제성을 함께 확보하는 시장 설계가 그 복잡성을 관리할 수 있음을 이 서베이는 보여준다.

출처 · V. Hosseinnezhad, M. E. Honarmand, B. Hayes, M. Phelan, P. Conlon, P. M. G. Da Costa Sobral, “Ancillary Services in Modern Power Systems: A Practical Survey,” IEEE Access, vol. 14, pp. 35608-35632, 2026. DOI 10.1109/ACCESS.2026.3668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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