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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정리 · 관점 보고서

성공·학습·행복: 어느 엔지니어의 생각 정리

스물둘의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나눈 긴 대화에는, 성공과 일과 인공지능과 행복에 관한 또래 세대의 사고방식이 압축되어 있었다. 화자가 누구인지를 가리키는 정보는 모두 덜어내고, 오간 이야기 그 자체만을 주제별로 다시 엮었다.

정리: 2026년 5월 · 사실관계가 다투어지는 수치는 별도로 검증해 본문에 표시했다.


01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을 묻자 그는 돈이나 직함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가 말한 성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부양할 수 있는 상태, 다른 하나는 매일의 일이 자신을 갉아먹지 않는 상태였다. 회사 일이든 창업이든 그 무엇이든, 하고 나서 진이 빠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정의가 결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향한다는 데 있다. 얼마를 벌었는가보다, 그 일을 내일도 모레도 소진되지 않고 이어 갈 수 있는가를 성공의 잣대로 둔 셈이다. 화자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 부조차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놓았다. 돈을 번 다음에야 정말 하고 싶은 일, 이를테면 가르치는 일이나 공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순서였다.

02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유효한가

아메리칸 드림은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된다고 그는 전제했다. 가장 흔한 그림은 교외의 집 한 채, 배우자와 아이들로 이루어진 단란한 가정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꿈은 창업해 이른 나이에 회사를 매각하고 큰 부를 손에 쥐는 쪽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대목은 집을 둘러싼 역설이었다. 고소득 지역에서 집을 사는 일은 자산을 한곳에 묶어 두는 일이고, 큰 빚을 떠안는 일이며, 부동산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자신의 순자산 전체가 함께 출렁이는 일이다. 평생 모은 자산이 집 한 채에 묶이고 그 위에 불어나는 부채를 안고 사는 삶을, 과연 꿈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고 그는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희망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던진 더 날카로운 진단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이 부자나 최고경영자를 미워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이 결코 그들 중 하나가 되지 못하리라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식시장과 주택난을 겪으며 상향 이동의 믿음이 사라지자, 미움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는 진단이다. 만약 모두가 언젠가 자신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다면, 성공한 이들을 향한 적의는 그만큼 옅어진다. 아메리칸 드림의 진짜 기능은 자산 증식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상향 이동의 믿음에 있다는 관점이다.

03창업: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창업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한편으로, 끈기가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시작 자체를 겁낼 필요는 없으며, 일단 시작해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학습이라고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0에서 1로 가는 단계는 특별한 자질을 요구한다고 선을 그었다. 남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일종의 불공정한 우위, 곧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꼭 코딩일 필요는 없다. 영업일 수도,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일 수도 있다. 다만 어느 한 분야에서는 천재에 가까울 만큼 뛰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자금 조달의 생리도 짚었다.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 VC)을 통해 자금을 받으려면 그들의 시선을 이해해야 한다. 투자자 역시 좋은 성과를 내고 좋아 보이고 싶어 하며, 포모(Fear Of Missing Out, FOMO), 곧 좋은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움직인다. 그래서 좋은 투자자 한 곳을 먼저 끌어들여야 다른 투자자들이 따라붙는다.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먼저 좋은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구조와 똑같다는 것이다.

경험의 순환 고리좋은 경력과 좋은 일자리가 서로를 요구하는 구조 좋은 경력·경험 좋은 일자리 …을(를) 요구함 …을(를) 요구함 서로가 서로의 전제 조건 — 그래서 첫 시작이 가장 어렵다
좋은 일자리와 좋은 경력은 서로를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 투자 유치도, 취업도 같은 구조에 놓인다.
비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다. 좋은 알(경력)을 낳으려면 좋은 닭(일자리)이 필요한데, 좋은 닭이 되려면 먼저 좋은 알에서 나와야 한다. 어느 쪽도 먼저 갖기 어렵기에, 이 고리를 처음 끊고 들어가는 데에는 실력만큼이나 운과 끈기가 작동한다.

04일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

일 잘하는 사람의 조건을 그는 또렷하게 정리했다. 첫째, 날카롭다. 문제를 짚어 줄 필요도 없이 스스로 찾아낸다. 둘째, 찾은 문제의 범위를 명확히 좁히고 무엇을 할지 단계별로 설계한다. 셋째, 적임자를 안다. 모든 기술을 본인이 최고로 해낼 필요는 없되, 누가 그 일의 적임자인지 판단할 줄 안다. 넷째, 신뢰할 수 있다. 이틀 안에 끝내기로 한 일은 이틀 안에, 혹은 그보다 빨리 끝낸다.

요약하면 문제를 발견하고 구조화하며,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약속한 시점에 결과를 내놓는 사람이다. 기술적 깊이는 기본 조건일 뿐, 그것을 둘러싼 판단과 실행의 신뢰성이 진짜 변별점이라는 이야기다.

05매일 바뀌는 인공지능을 따라잡는 법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하루만 소식을 놓쳐도 한참 뒤처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따라잡는 통로는 여러 갈래였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가장 먼저 글이 올라오는 소셜 미디어, 최신 기반 기술과 기업 동향을 짚어 주는 뉴스, 그리고 팟캐스트가 그것이다. 한 주를 통째로 훑어 주는 방송과 매일의 소식을 전하는 방송을 함께 듣는다고 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도구의 목록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어떤 기업이 데이터센터를 짓고 또 어떤 기업이 중단했는지가 날마다 바뀌는 영역에서는, 정보를 한 번에 몰아 습득하기보다 매일 조금씩 흐름에 발을 담그는 습관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06인공지능 전문가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전문가라는 말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데서 그는 출발했다. 진짜 전문가라면 대기업에서 인공지능을 총괄하는 수준의 사람을 꼽겠지만, 뉴스를 읽고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는 자칭 전문가가 정말 전문가인지는 알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매우 넓은 분야임을 환기했다. 원하는 형태의 결과물, 곧 이미지든 영상이든 텍스트든을 토큰 단위로 생성해 내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있고, 무작위에 가까운 점들에서 출발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확산 모델(diffusion model) 계열이 있다. 한때는 박사 학위가 있어야 다룰 수 있던 영역이지만, 지금은 충분히 파고들면 누구나 자기 분야의 작은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를 가려내는 데 매달리지 말라는 쪽이었다. 이제 누구나 사실을 검증할 도구를 손에 쥐고 있으니, 호기심을 유지하되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눈앞의 영상조차 만들어진 가짜일 수 있다는 경계를, 그는 농담처럼 덧붙였다.

07인공지능을 잘 쓰는 법

활용법을 묻자 답은 단순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금 당장 쓰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매일 쓰는 사람은 그만큼 빠르게 익히고, 익혀 두면 나중이 쉬워진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일상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할 수 있어도, 결국 거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시점이 온다. 그때가 오기 전에 미리 충분히 노출되어 두어야 그 도구를 윤리적으로, 그리고 자기 역량을 최대로 끌어내는 방향으로 다룰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핵심은 거창한 활용 사례가 아니라 노출의 누적이다. 영상 편집이든 무엇이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라면 일단 손에 익히라는 권고다.

08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법

그는 배움의 대상을 둘로 나누었다. 협상, 인간 본성, 명상처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주제는 책이 가장 좋은 스승이다. 반면 빠르게 바뀌는 기술은 대개 직접 해 보며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자신도 부수 프로젝트를 만들며 배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에게 코드를 한 줄 한 줄 설명하게 하고, 처음 보는 언어라도 모든 코드를 스스로 이해하려 애쓰며, 모범 사례까지 묻는 방식이다.

물론 모두에게 같은 방법이 통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영상으로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편이 더 맞을 수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한 원칙은 하나였다. 만들면서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다.

09그래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영상이 책을 대체했다는 통념에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영상은 산만해지기 쉽다. 손에 든 화면은 어느새 음식이나 우스운 영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반면 책의 가치는 다른 데 있다. 화면이 현실을 직접 보여 주는 이차원의 매체라면, 책은 거의 일차원에 가까워서 독자가 자신의 상상에 더 크게 기댄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글자라는 재료만으로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그는 책을 읽을 때 더 느긋해지고 덜 조급해진다고 했고, 그 경험이 사람의 성품과 태도를 더 낫게 다듬어 준다고 보았다.

10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조언을 청하자, 그는 먼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끈기가 핵심이고, 운도 크게 작용한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동시에 막연한 격려에 그치지 않고 진단을 권했다. 지원을 많이 했는데도 회신이 없다면, 다른 자리로 방향을 틀거나 이력서를 손볼 때라는 신호다. 이미 서류 전형을 통과한 사람에게 이력서를 보여 주고 무엇이 다른지 묻고, 그 차이를 고치라는 것이다.

그가 거듭 강조한 위로는 그것이 대개 당신 탓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채용 담당자는 당신을 모른다. 그들은 6초 남짓 이력서를 훑고 적합 여부를 가른다. 그것은 한 사람을 제대로 담아내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니 슬퍼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짚은 구조적 아이러니는 뼈아팠다. 좋은 회사는 지원자가 그보다 이름난 곳에서 좋은 경험을 했는지를 본다. 그 이름난 곳 역시 또 다른 좋은 곳에서의 경험을 본다. 결국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이미 좋은 자리를 거쳐야 하는, 03장의 순환 고리가 취업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답은 게임의 규칙을 인정하고, 끝까지 버티며, 운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11문화 차이는 학습된 것이다

여러 문화를 가까이서 겪어 온 그는, 볼수록 문화 사이의 차이가 점점 작게 느껴진다고 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은 더욱 그렇고,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가 거듭 강조한 핵심은 문화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정 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오래 살면 그 문화를 자기 것처럼 체화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지낸 끝에, 그 문화의 사람으로 오해받을 만큼 익숙해진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차이가 본질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임을 보여 준다고 그는 보았다.

처음에는 소수자로서 약간의 편견과 마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오해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자 곧 풀렸다. 사람들은 결국 겉으로 떠도는 인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을 보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12대도시의 사회 문제를 보는 눈

그가 사는 대도시의 가장 큰 문제로 그는 거리의 노숙 문제를 꼽았다. 많은 이가 정신 건강 문제나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 광경을 보는 일은 슬프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대응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전하며, 노숙인 한 명을 거처에 들이는 데 연간 80만 달러가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 자신이 이 수치를 두고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분명히 단서를 달았다.

검증. 노숙인 1인당 연 80만 달러라는 수치는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한 대도시의 노숙 대응 예산 전체를 추정 노숙인 수로 나눈 값은 계산 방식에 따라 대략 연 4만-10만 달러대로 보고된다. 셸터(임시 거처)에 한 사람을 수용하는 비용 추정치도 대체로 연 6만-7만 달러 안팎으로 인용된다. 즉 실제 수치보다 한 자릿수가량 부풀려진 셈이며, 화자도 이를 전해 들은 이야기로 못 박았다.

그가 의심한 비효율의 한 원인은 이해관계였다. 일부 기업이 노숙인용 주거를 짓는 사업에서,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그 건물을 자기 수익으로 돌릴 수 있는 계약 구조를 통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지은 건물에서 이후 사익을 챙기는 구조라면,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유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더 자극적인 주장도 옮겼다. 노숙인을 돕는 부서가 거리에 일정 수의 노숙인이 남아 있어야 예산과 혜택을 계속 받기에, 문제를 해결할 유인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이 대목에서도 그는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이 있음을 함께 전하며, 일부가 그렇게 믿는다는 정도로 거리를 두었다. 따뜻한 날씨와 큰 도시라는 조건이 노숙 문제를 끌어당기는 면도 있다고 보면서, 결국 더 나은 정책과 함께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연민이 필요하다는 데로 이야기를 맺었다.

13과소평가된 가치: 느림과 인내

현대 사회가 가장 과소평가하는 가치를 묻자, 그는 빠른 보상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소셜 미디어는 즉각적인 도파민을 떠받들지만, 속도를 늦추는 힘은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긴 영상을 보지 않고 짧은 토막만 소비하며, 그 습관이 문화를, 나아가 우리가 도파민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고 그는 보았다.

특정 서비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려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선을 그었다. 다만 자신은 그런 매체가 스스로의 보상 회로를 바꾸는 것을 느껴 개인적으로 멀리한다고 했다. 속도를 늦추는 일, 인내심을 갖는 일은 현대인이 길러야 할 좋은 자질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14사랑과 연민은 어디서 오는가

사랑과 연민이 가장 과소평가된 가치라는 다른 이들의 답을 전하며 사랑의 근원을 묻자, 그는 도덕적 우위에 서서 모두를 사랑하라고 말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연민을 품기를 기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배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가정에서 컸는지를 모른 채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거나 삶의 고통이 너무 큰 사람에게, 타인을 향한 연민은 더 어려운 일이 된다.

그는 이 문제를 매우 분석적으로 풀어냈다. 매슬로 욕구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을 끌어와, 사람이 사랑을 느끼려면 먼저 거처와 음식 같은 토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위에서 보살핌받는 느낌과 사회적 관계가 채워져야 비로소 자아실현으로, 곧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매슬로 욕구 5단계피라미드. 가운데 애정·소속 단계 강조. 자아실현 존중 욕구 애정·소속 욕구 안전 욕구 생리적 욕구 토대 정점
매슬로 욕구단계설.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운데)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이라는 토대가 채워진 뒤에야 채워진다. 사랑을 베풀 여력은 이 위계의 결과물에 가깝다.
비유

건물을 떠올리면 쉽다. 1층의 기초와 2층의 골조가 서지 않은 채로 3층에 사랑이라는 방을 들일 수는 없다. 누군가 타인에게 모질게 군다면, 그것은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직 아래층이 비어 있어서일 수 있다. 연민을 요구하기 전에 토대를 살피라는 이야기다.

그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우리가 사랑을 주고받으려 하는 까닭을 진화에서 찾았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 서로 돕도록 진화했고, 그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과 연민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낫게 만들어 사회 전체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오래된 본성에 가깝다는 관점이었다.

15두 가지 자신감: 갑옷과 산

그의 답변이 시종 단단해 보인 이유를 묻자, 정작 그는 늘 자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릴 적 좋은 교육과 예절을 익히며 자랐지만, 십 대 시절에는 끊임없는 과잉 사고와 어울리려는 압박 탓에 자신감을 갖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감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두 가지 자신감갑옷형(외부 의존) vs 산형(자기 수용) 갑옷형 자신감 지위·성취에 기댐 · 속은 불안 산형 자신감 비바람에도 그대로 · 자기 수용에서 옴
갑옷형 자신감은 지위와 성취라는 외피에 기대며, 그 안쪽은 정작 불안하다. 산형 자신감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선다.

하나는 갑옷을 두른 자신감이다. 자랑할 만한 지위나 성취를 외피처럼 걸치고 자신 있는 척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자기 자신과 편안하지 못하다. 그는 이것을 진짜 자신감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다른 하나는 산을 닮은 자신감이다. 비가 오든 상황이 아무리 나쁘든,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을 믿는 것이다.

산을 닮은 자신감을 가지려면 먼저 자신의 결함을 끌어안아야 한다. 슬퍼해도 괜찮고, 늘 자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여기서 그는 작은 역설을 짚었다. 늘 자신 있을 수 없다는 사실,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감은 결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결함을 안고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16행복: 끝내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지금 행복하냐는 마지막 물음 앞에서 그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평온하고, 대체로 행복한 것 같다고 답하면서도, 그는 자신에 관한 한 가지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은 늘 더 많은 것을 원하리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솔직히 그렸다. 몇 해 전이라면 좋은 일자리만 얻어도 행복하리라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서자 창업을 원했고, 창업하면 매각으로 큰돈을 쥐기를, 그다음에는 그 돈을 잘 굴리기를 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도착하는 순간 결승선은 늘 한 칸 더 앞으로 물러난다.

만족의 쳇바퀴기대했던 행복은 늘 실제 만족보다 앞서 있다 행복 취업 창업 엑시트 재투자 기대했던 행복 실제 만족
다음 목표에 도달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지만, 막상 도착하면 기대치도 함께 올라간다. 기대했던 행복은 늘 실제 만족보다 한 칸 앞에 있다.
비유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 풍경은 끊임없이 다가오지만 발밑의 위치는 그대로다. 결승선처럼 보이던 목표에 닿는 순간 결승선은 다시 저만치 물러난다. 문제는 달리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결승선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도 달릴 수 있느냐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 끝없는 갈망을 결함이 아니라 강점으로도 보았다.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기에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더 많은 자기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며, 언젠가는 어떤 상황에 있든 자기 자신에 만족할 수 있는 지점에 닿고 싶다고 했다. 끝없이 달리는 힘과,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길 줄 아는 평온을 함께 갖추는 것, 그것이 그가 향하는 방향이었다.


맺으며

대화의 끝에서 화자는 가장 후회되는 일로, 더 어릴 때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것을 꼽았다. 어울리려고, 너무 똑똑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정작 어린 두뇌로 더 많이 배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렇게 매듭지었다. 그것은 누구든 피할 수 있는 후회이며, 무언가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때는 언제나 지금이라고.

돈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는 양쪽을 모두 인정했다. 돈이 때로는 행복을 사 주기도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청하자 그가 남긴 말은, 그 마음가짐의 요약처럼 들렸다. 좋은 곳에 있기를, 좋은 일을 하고 있기를, 그리고 어떤 일도 부정하게 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