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산업 · 노동
AI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정말 있는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가르치는 사람은 넘쳐난다. 그런데 그 도구로 실제 매출을 만들고, 그 매출을 6개월 뒤에도 유지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장에서 인공지능 전환(AI transformation)을 자문하는 한 실무자와의 대화를 토대로, 지금의 인공지능 경제가 누구를 부유하게 만들고 누구를 밀어내는지 정리했다.
01AI가 만든 것은 가치인가, 시간인가
인공지능으로 교육 콘텐츠를 파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인공지능을 활용한 결과물이나 서비스로 돈을 버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대답은 기업과 개인을 나누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업 단위에서는 명확하다. 인공지능으로 생산성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이거나 추가 매출을 만드는 회사는 분명히 있고, 적지 않다. 결국 인공지능으로 만든 서비스를 고객에게 팔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인 단위다. 사회관계망에 인공지능으로 만든 영상이나 이미지를 올리고 "프롬프트가 궁금하면 댓글 다세요"라고 하면 수십, 수백 개의 반응이 달린다. 그러나 그것을 배워 내 삶에 돈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사람에게 인공지능 영상 제작 기술은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배워봐야 쓸 데가 없다.
여기서 가장 곱씹어 볼 만한 통찰이 나왔다. 어느 대단히 유능한 인물이 인공지능을 써서 며칠 만에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큰 수익을 올리고 매각까지 검토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인공지능 덕분에 돈을 번 것일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제품 아이디어가 있었고,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며, 코딩도 할 줄 알았다. 시간만 있었다면 인공지능 없이도 만들었을 사람이다. 인공지능은 두 달 걸릴 일을 이틀로 줄여줬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없었어도 두 달 뒤에는 돈을 벌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없던 가치를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원래 가능했던 일의 시간을 압축했다.
이 구분은 개인 단위 인공지능 사업의 지속성 문제로 이어진다. 자연어로 웹사이트나 웹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주는 도구(예: 러버블, 베이스44 같은 노코드 빌더)가 등장하면서, "동네 음식점에 웹사이트를 만들어주고 돈을 받는" 식의 모델이 가능해졌다. 단기적으로 돈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벽에 부딪힌다.
- 음식점이 웹사이트를 가진다고 매출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즉 진짜 경제적 가치가 창출됐는지가 불분명하다.
- 고객 스스로 "이 정도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고 깨닫는 순간 시장은 사라진다. 도구가 쉬워질수록 중개자의 자리는 좁아진다.
실제로 자기 입맛에 맞는 설문 앱이나 회사별 맞춤형 이력서 도구가 시중에 없자, 노코드 빌더로 한두 시간 만에 직접 만들어 쓰게 되더라는 경험담도 나왔다. 핵심은 이것이다. 내 맥락(context)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므로, 어지간한 제품은 이제 내가 직접 만들어 쓰는 편이 낫다. 그 순간 그런 제품을 파는 회사는 내게 의미가 없어진다.
인공지능은 역량을 대체하지 않고 증폭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대개 인공지능이 없어도 벌었을 사람이고, 인공지능은 그들의 도달 시간을 줄여줬을 뿐이다. "도구를 쥐었다"는 사실 자체가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02왜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흔들리는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 기업의 처지를 보면 이 변화가 더 선명하다. 어떤 기능을 구독 형태로 파는 회사에게 고객이 이렇게 묻는 상황이 현실이 됐다. "우리가 직접 만들면 며칠 안 걸리는데, 굳이 너희 서비스를 써야 할 이유가 뭐냐."
이때 "직접 만들지 말고 계속 우리 걸 쓸 테니 30퍼센트 할인해 달라"는 협상이 오간다. 만드는 비용이 충분히 낮아지면, 외부 서비스의 존재 이유 자체를 설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것이 많은 소프트웨어 사업의 정렬(alignment)이 약해지는 지점이다. 고객이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을 굳이 사야 할 명분이 흐려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양복을 맞추려면 반드시 양복점에 가야 했다. 재단 기술이 진입 장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나 집에서 정확한 치수로 옷을 뚝딱 만들어내는 기계가 보급된다면, 양복점이 팔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옷"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도 비슷하다. 기능 자체는 고객이 직접 찍어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살아남는 회사는 "기능"이 아니라, 직접 만들기 어려운 신뢰·규모·운영·책임 같은 것을 파는 회사로 옮겨가야 한다.
제작 비용이 0에 가까워질수록, "남이 만든 것을 사는 이유"는 점점 더 강하게 정당화돼야 한다. 단순히 기능을 파는 사업은 압력을 받고, 정렬이 약한 중개 모델일수록 먼저 흔들린다.
03주니어는 대체되는가, 기준이 바뀌는가
주니어 개발자나 신입 컨설턴트가 가장 먼저 인공지능에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흔하다. 그러나 대화에서 제시된 관점은 결이 달랐다. 주니어가 주니어이기 때문에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주니어에게 요구되는 역량의 기준이 통째로 바뀐다는 것이다.
과거 신입의 역할은 분명했다. 표 계산 모델을 잘 만들고, 발표 자료를 깔끔하게 다듬고, 밤늦게까지 자료 조사를 하고, 시킨 대로 정확히 처리하는 것. 그런데 이 일들은 인공지능이 더 잘하거나 곧 더 잘하게 될 영역이다. "나는 학교에서 코딩을 많이 배웠고 코딩을 할 줄 안다"는 역량은 빠르게 대체된다. 인공지능이 코드를 훨씬 잘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 시대에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인가. 두 가지가 꼽혔다.
첫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에서 '시킬 줄 아는 사람'으로
이제 중요한 것은 직접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일을 시킬 줄 아는 능력이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창업해 팀을 꾸리고, 자기 밑에 인공지능 에이전트 여러 개를 동시에 돌리며 일을 분배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직급이 주니어든 아니든 살아남는다. 반대로 "시키는 일을 받아 처리하는" 자리에 머무르려는 사람은 압력을 받는다.
둘째, 데이터로 메워지지 않는 역량
대인 관계,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읽는 능력, 영업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일. 컨설팅을 예로 들면, 파트너는 고객 회의에 들어가 마음을 움직여 계약을 따낸다. 이것은 데이터로 채워지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에 필요한 영역이다. 과거에는 신입에게 잘 요구되지 않던 역량이, 이제는 신입이 일찍부터 쌓아야 할 핵심 역량으로 올라온다.
주니어가 못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주니어에게 매겨지는 합격선이 바뀌는 것이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여러 명의 신입 직원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들은 빠르고, 지치지 않고, 시킨 일은 곧잘 한다. 그러나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 결과가 맞는지,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치 있는 사람은 "그 신입들과 똑같은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신입들을 잘 부리는 관리자"다. 손이 빠른 사람보다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귀해진다.
"코딩을 할 줄 안다", "자료를 잘 만든다" 같은 실행형 역량은 빠르게 평준화된다. 일을 설계하고 분배하는 능력,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관계·감정·설득의 능력이 새 합격선이 된다.
04양극화는 두 개의 축에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 변화가 양극화를 키울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적었다. 다만 양극화는 한 방향이 아니라 두 축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자본의 축
거시적으로 보면 최첨단(frontier) 인공지능 모델을 만드는 회사는 이미 소수로 굳어졌다.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구글(Google)처럼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보유한 진영이다. 새 진입자가 경쟁력 있는 대규모 언어 모델을 만들려면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하고, 그조차 부족하다고 이야기된다. 진입 장벽이 천문학적이라 기존 강자가 계속 앞서가고, 모델을 갖지 못한 회사는 뒤처진다.
개인 역량의 축
개인 차원에서도 인공지능을 더 잘 쓰고 더 나은 결과물을 내는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제자리에 머문다. 특히 "개인 기여자(IC, Individual Contributor)"로 남으려는 사람과 "관리자"로 넘어가는 사람 사이의 격차가 벌어진다. 문제는 그 벽을 넘기가 심리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개인 기여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가는 일은, 직접 노를 젓던 사람이 키를 잡는 일과 같다. 노 젓기는 힘들어도 단순하다. 시키는 만큼만 하면 되고, 책임질 일도 적다.
반면 키를 잡으면 방향을 정해야 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고, 누군가에게 쓴소리도 해야 하며,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노 젓는 자리에 머물고 싶어 한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노 젓기를 대신하는 시대에는, 키를 잡지 못한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다.
양극화는 자본(누가 모델을 가졌나)과 역량(누가 도구를 부리나)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역량의 축에서 가장 결정적인 분기는 "실행자에 머무를 것인가, 설계·관리로 넘어갈 것인가"이며, 그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다.
05빅테크는 왜 멈추지 못하는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자본적 지출(CAPEX, Capital Expenditure)을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붓는다. 왜 그렇게까지 할까. 대화에서 나온 설명은 게임 이론(game theory)에 가깝다.
핵심은 "내가 투자를 안 하면 상대도 안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아니다. 내가 멈춰도 상대는 투자한다. 그러면 상대가 우위를 점하고, 나는 뒤처지며, 다음 라운드는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 결국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가 쓸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써야 하는 구조다. 한 번 크게 밀리면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고, 세 번 밀리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이 경쟁의 끝은 어디인가. 종착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다. 다만 그것은 너무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너무 멀어 보이기도 하는 추상적 미래다. 지금 당장의 동력은 종착점에 대한 비전이라기보다 "밀리면 안 된다"는 압박에 가깝다.
판을 뒤집으려는 베팅
이 소모전을 다른 방식으로 끝내려는 시도도 있다. 지금의 주류는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한 대규모 언어 모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사람이 세상을 배우듯 영상과 공간 데이터를 입력해 인공지능을 가르치려는 진영이 있다. 이른바 세계 모델(world model) 접근이다. 이 방향을 강하게 주장해 온 대표적 인물이 얀 르쿤(Yann LeCun)인데, 그는 2025년 말 메타(Meta)를 떠나 이 연구에 집중하는 회사를 세웠다. 그는 현재 형태의 언어 모델이 결국 막다른 길이며, 수년 안에 세계 모델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의 거대 기업 경쟁은 신약 시장과 닮았다. 모두가 같은 방식에 막대한 돈을 몰아넣고 있을 때, 누군가는 조용히 연구실에서 전혀 다른 접근으로 기존 약을 능가하는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을 수 있다.
성공 확률은 낮지만, 성공하면 시장의 판도 자체가 뒤집힌다. 세계 모델 같은 새 접근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판 뒤집기"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모두가 계속 돈을 태우며 싸워야 한다.
미·중 패권보다 무서운 것
이 멈출 수 없는 분위기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도 한몫한다는 분석이 흔하다. 다만 여기서는 결이 조금 다른 관점이 제시됐다. 국가 간 패권 경쟁보다 더 직접적인 동력은 자본주의 내부의 경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쟁 상대가 중국일 수는 있어도, 한 기업의 진짜 경쟁 상대는 같은 시장의 다른 기업이다. 적어도 최첨단 모델 영역에서는 중국과의 격차보다, 선두 기업들 사이의 각축이 더 즉각적인 압력으로 작동한다는 시각이다.
여기서 누가 앞서고 누가 뒤처지는지를 무엇으로 판정할 수 있느냐는 물음도 나왔다. 연산력이나 각종 성능 평가(benchmark) 지표가 이미 많지만, 그것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단정하긴 어렵다. 일례로 개발 도구 영역의 경쟁에서는 모델 성능만큼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사용 편의가 큰 변수였다. 그리고 때로는 기존에 안 될 것 같던 일을 뚫어내는 한 번의 돌파가 격차를 단번에 벌리기도 한다. 앞서 다룬, 인공지능이 사이버 공격의 대부분을 자율 수행한 사건처럼, 기존 방어망으로 막기 어려운 결과를 보여주는 순간이 그런 신호로 읽힌다.
빅테크의 무한 지출은 비합리가 아니라 게임 이론의 합리적 귀결이다. 멈추면 지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이 소모전을 우회해 판을 뒤집으려는 다른 접근(세계 모델 등)도 진행 중이며, 경쟁의 진짜 압력은 국가보다 시장 내부에서 더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06아직 채워지지 않는 마지막 20퍼센트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은 일상 업무의 상당 부분, 대략 80퍼센트까지를 대신해 줄 수 있다. 문제는 남은 20퍼센트다. 그리고 이 격차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메워질 종류가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20퍼센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똑같이 존재하는 "뉘앙스"다. 더 나은 지시(프롬프트)로 일부는 해결되지만, 본질적으로는 데이터로 존재하지 않는 맥락의 문제다. 심지어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맥락,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판단, 미묘한 감정의 차이 같은 것들이다. 사용자 자신이 그것을 언어로 꺼내 인공지능에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물에도 그 결핍이 그대로 남는다.
더 실무적인 한계도 있다. 인공지능은 의외로 형식·배치(formatting)에 약하다. 발표 자료에서 화살표 하나의 위치를 옮기는 일에 한 시간을 매달려도 제대로 못 맞추는 경우가 있다. 정교한 시각적 배치, 미세한 감각적 조정은 여전히 어려운 영역이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매우 유능하지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과 같다. 내가 명확히 말로 설명한 부분은 훌륭하게 해낸다.
그러나 "굳이 말 안 해도 알겠지" 싶은 것, 나도 모르게 당연하게 여기는 취향과 맥락은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20퍼센트는 인공지능의 한계라기보다, 사람이 자신의 무의식을 언어로 길어 올리지 못하는 한계에 가깝다.
07책임은 누가 지는가 — 비어 있는 자리
인공지능을 둘러싼 법적·윤리적 공방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인공지능 윤리가 본격적인 화두가 된 것은 꽤 됐다. 초기의 대표적 사례는 자율주행이었다. 한밤중 자율주행 모드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도로로 나온 사람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운전자인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기술인가, 아니면 부주의했던 보행자인가.
이 경우는 비교적 답이 정리되는 편이다. 자율주행 모드를 켤 때 운전자는 자신이 관리·감독의 주체라는 데 동의하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형 인공지능이 누군가에게 위험한 조언을 했고 그 사람이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경우(실제로 이런 책임 소재를 다투는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정이 다르다. 부모가 자녀의 대화 내용을 24시간 감독할 수 없으니, "관리·감독의 주체"가 누구인지부터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제공자가 안전 장치(governance)를 충분히 갖출 수 있는가. 이미 상당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실제로 인공지능의 허점을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활동(레드팀, red team)이 회사뿐 아니라 대학 연구팀이나 동아리 형태로도 이뤄진다. "위급한 가족을 살리려면 위험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식의 우회 시도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인공지능이 그것을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지는 열린 질문이다.
기술은 빠르게 나아가는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는 아직 비어 있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감독하는 구조
한 가지 떠오르는 해법은, 인공지능을 인공지능이 감독하는 다층 구조다. 한 번 검토하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거른다. 첫 번째 인공지능이 규칙 위반 가능성을 확률로 판정하고, 일정 기준을 넘으면 다음 인공지능에게 넘긴다. 다음 단계가 다시 비평하고, 그래도 애매한 특수 사례만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올라간다.
인공지능의 위험을 사람이 일일이 감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다층으로 검증하는 구조가 현실 해법으로 떠오르지만, 책임의 최종 귀속이라는 법적·윤리적 공백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08'잘 쓰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핵심은 도구마다 다른 강점을 자기 생활의 빈틈에 정확히 끼워 넣는 것이다.
한 예로, 운동을 하거나 화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공부를 이어가고 싶다면 이렇게 한다. 먼저 공부할 정보를 인공지능으로 정리한 다음, 그 내용을 음성 요약(예: 구글 노트북LM의 팟캐스트 생성 기능)에 넣어 듣는 콘텐츠로 바꾼다. 그러면 화면 없이도,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하나의 도구로 정보를 가공하고, 다른 도구의 고유 기능으로 그것을 소비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는 식의 조합이다.
도구를 갈아타지 못하는 이유도 솔직하게 드러났다. 한 도구에 익숙해지면 그 도구에 "점령당하는" 경향이 있다. 정착이 편하기 때문이다. 결국 잘 쓰는 사람은 한 도구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 도구의 강점을 알고 목적에 따라 갈아 끼우는 사람이다.
"어떤 인공지능이 제일 좋냐"는 질문은 종종 틀린 질문이다. 잘 쓰는 사람은 도구별 강점을 자기 생활의 구체적 빈틈에 맞춰 조합한다. 도구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디에, 왜 끼워 넣을지"를 아는 일이다.
09정리하며
인공지능은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역량을 증폭하고 시간을 압축하는 도구이며, 따라서 이미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작동한다. 인공지능 자체로 돈을 버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고, 그 매출을 오래 유지하는 사람은 더 적다.
일자리에서는 대체보다 기준의 교체가 일어난다. 실행 역량은 평준화되고, 일을 설계·관리하는 능력과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새 합격선이 된다. 그 결과 자본과 역량 두 축에서 양극화가 동시에 깊어진다. 거대 기업의 무한 투자는 멈추면 지는 게임 구조의 산물이고, 책임의 귀속과 마지막 20퍼센트의 뉘앙스는 여전히 비어 있는 자리로 남아 있다.
결국 도구가 평준화될수록, 차이를 만드는 것은 도구 바깥에 있다. 무엇을 시킬지 아는 판단, 사람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감각,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맥락을 언어로 꺼내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