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경제학자 바라트 찬다르(Bharat Chandar)는 미국 수백만 명의 급여 기록을 분석해,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에 남기기 시작한 첫 흔적을 찾아냈다. 그 흔적은 모두에게 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가장 또렷하게 흔들린 쪽은 갓 사회에 진입한 젊은 노동자였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일자리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더 유능하게 만들 것인가. 이 물음은 오래되었지만 오랫동안 답이 없었다. 답이 없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흔히 쓰는 노동통계는 "2025년 5월,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고용 상태"처럼 특정 나이대와 특정 직업을 실시간으로 좁혀 보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신문에는 신입 개발자의 취업난 같은 일화가 넘쳐났지만, 그것이 통계적으로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마땅치 않았다.
찬다르와 동료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 루유 첸(Ruyu Chen)은 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ADP(Automatic Data Processing, 미국 최대의 급여 처리 회사)와 손을 잡았다. ADP는 매달 수백만 명의 임금을 실제로 처리하는 회사이고, 그 데이터에는 나이와 직업, 임금이 고빈도로 담겨 있다. 연구진은 이 자료를 2025년 9월까지 추적했다. 논문 제목에 등장하는 "탄광 속 카나리아(canary in the coal mine)"는 광부들이 유독가스를 먼저 감지하려고 데리고 들어가던 새를 가리킨다. 젊은 노동자가 바로 그 카나리아, 곧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리는 신호라는 뜻이다.
그래프의 빨간 선이 핵심이다. 같은 직업, 같은 회사 안에서도 가장 어린 22-25세 집단의 고용만 가파르게 내려간다. 26-30세는 완만하게 줄고, 35세 이상은 오히려 늘었다. 흥미롭게도 간병·재택간호 같은 대면 직군에서는 정반대 그림이 나온다. 그곳에서는 가장 어린 집단의 고용이 가장 빠르게 늘었다.
논문은 ADP 데이터에서 읽어낸 결과를 여섯 가지 사실로 정리한다. 어느 하나가 결정적이라기보다, 여섯 개가 한 방향을 가리킬 때 그림이 또렷해진다.
찬다르가 직접 점검한 대안 설명들은 흔히 떠올릴 만한 것들이다. 첫째, 금리 인상이 원인일까. 그러나 금리에 민감한 업종은 건설·운송처럼 오히려 AI 노출도가 낮은 쪽이다. 둘째, 코로나 시기 과잉 채용했던 기술 업계의 감원 탓일까. 기술 부문을 빼도 결과는 비슷했다. 셋째, 재택근무 종료나 팬데믹기 학력 저하 탓일까. 재택 불가능 직군에서도, 대졸자가 드문 직군에서도 같은 그림이 나왔다. 하나씩 지워 나가도 신입에게 집중된 고용 감소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찬다르 본인이 거듭 강조하는 단서가 있다. 이 연구는 "AI가 있는 세상"과 "AI가 없는 세상"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깨끗한 실험이 아니다. 같은 시기 미국 경제에는 다른 변화도 많았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급격한 하락은 AI만으로 전부 설명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가 말하는 것은 "AI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가 아니라, "관측된 패턴이 AI의 영향과 부합한다"이다. 인과의 단정이 아니라 정황의 일치다.
가장 의외인 대목은 충격이 신입에게 쏠렸다는 점이다. 찬다르는 이를 지식의 두 종류로 설명한다. 하나는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지식, 이른바 정형화된 지식이다.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는 암묵지(tacit knowledge)다. 암묵지는 책에 잘 적혀 있지 않다. 특정 조직의 맥락, 상황을 읽는 감각, 사람을 다루는 요령, 전략적 판단처럼 직접 부딪쳐 봐야 쌓이는 종류의 앎이다.
사회 초년생이 회사에서 처음 맡는 일은 대체로 책에서 배운 지식을 적용하는 실행 업무다. 그런데 바로 그 영역이 오늘날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과 정면으로 겹친다. AI는 책으로 정리할 수 있는 지식, 즉 정형화된 지식에 유난히 강하다. 반면 경험 많은 노동자가 쥔 암묵지에서는 AI가, 그리고 신입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결국 신입은 자신이 가진 무기가 AI와 가장 많이 겹치는 자리에 서 있는 셈이다.
요리로 바꿔 보면 이해가 쉽다. 신입은 요리책을 막 떼고 들어온 사람이다. 계량과 레시피, 기본 손질은 정확히 안다. 그런데 레시피대로 따라 하는 일이라면 이제 AI가 더 빠르고 더 싸게 해낸다. 반대로 베테랑 주방장이 가진 것은 책에 없다. 오늘 들어온 생선의 상태를 손끝으로 가늠하고, 손님의 표정을 보고 간을 조절하며, 주방 전체의 흐름을 지휘하는 감각이다. AI가 잘하는 일은 레시피 쪽이고, 좀처럼 못하는 일은 주방장의 감각 쪽이다. 그래서 레시피만 무기로 가진 신입이 가장 먼저 압박을 받는다.
물론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회사들이 아직 관망 중이라는 가설이다. AI가 실제로 생산성을 올리는지, 인건비를 줄여 주는지 시험하는 동안에는 기존 직원을 내보내기보다 신규 채용을 미루는 편이 쉽다. 이 경우에도 원인은 결국 AI지만 경로가 다르다. 회사들이 AI 활용법을 익히고 나면 다시 신입을 더 뽑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진실은 두 설명 사이 어딘가이거나, 아직 우리가 못 본 제3의 무엇일 수 있다.
그렇다면 회사들이 알아서 신입을 키우면 되지 않을까. 미래의 중간 관리자와 숙련 인력을 확보하려면 지금 젊은 사람을 뽑아 가르쳐야 하니 말이다. 찬다르는 이 논리가 맞지만 충분하지는 않다고 본다.
문제는 사적인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어긋난다는 데 있다. 한 회사가 신입을 정성껏 훈련시켜도, 그 신입은 언제든 다른 회사로 떠날 수 있다. 들인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별 회사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만큼 젊은 인력을 뽑지도, 가르치지도 않으려 한다. 일부는 뽑겠지만, 사회 전체에 이로운 만큼은 아니다. 신입 훈련이라는 일종의 공공재가 시장에서 과소 공급되는 전형적인 구도다.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찬다르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AI가 잘하기 어려운 영역 셋을 짚는다. 사람이 가치를 더할 자리가 거기에 있다.
이 가운데 찬다르가 갈수록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가운데, 전략적 사고다. 그의 전망에 따르면 미래의 일은 상당 부분 이런 모습이 된다. 사람이 무엇을 만들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 AI 에이전트에게 지시하고, 실행은 AI가 맡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방향을 잡아 주는 능력이 핵심 기술이 된다. 이는 본래 회사에서 관리자가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일정 부분 관리자처럼 일하게 될 수 있다.
미래의 일은 점점, 사람이 무엇을 할지 정해 AI 에이전트에게 맡기고 방향을 이끄는 모습으로 기운다.
새 기술이 노동을 흔든 일은 처음이 아니다. 찬다르는 두 역사적 국면을 비교한다. 19세기 산업혁명에서 더 큰 위험에 놓였던 쪽은 의외로 가장 숙련된 노동자였다. 기계 파괴 운동으로 알려진 러다이트(Luddites)는 사실 고숙련 직물공이었다. 새 방직 기계가 등장하자 그들의 솜씨가 가치를 잃었다. 반대로 20세기의 전기와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 혁명에서는 양상이 뒤집혔다. 타격을 받은 쪽은 중·저숙련 노동이었고, 가장 교육받은 사람들은 새 기술의 수혜를 크게 입었다.
AI는 어느 쪽을 닮을까. 지금까지의 신호는 산업혁명 쪽에 가깝다. 더 교육받은 지식 노동자가 더 큰 AI 노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다르는 결론을 미룬다. 어느 방향이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기술과 AI 사이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능력이 향상되는 속도다. 새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도, 대개는 새로운 일과 새로운 수요가 생겨 사람이 그쪽으로 옮겨 갔다. 문제는 그 새 일까지 AI가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느냐다. AI는 3년 전보다 지금 훨씬 많은 일을 해낸다. 한 소프트웨어 공학 문제 모음에서 AI가 풀어낸 비율은 2023년 약 4.4%에서 이듬해 약 71.7%로 한 해 만에 크게 뛰었다. 새 일이 생기는 속도보다 AI가 그 일을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면, 과거의 낙관적 시나리오가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찬다르의 진단에서 가장 실용적인 구분이 여기 있다. AI를 쓰는 방식은 두 갈래다.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자동화(automate)와,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돕는 증강(augment)이다. 여섯 가지 사실 가운데 셋째가 바로 이 구분이었다. 고용이 줄어든 곳은 자동화가 강한 직무였고, 증강이 강한 직무에서는 오히려 고용이 늘었다.
증강의 좋은 예로 찬다르는 군살 없는 소수 인원의 스타트업 창업자를 든다. 예전 같으면 손도 못 댔을 여러 기능을, 이제는 AI 도구를 끼고 혼자서도 해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자동화와 증강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하나다. 내가 다룰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는가, 아니면 기술이 들어오면서 좁아지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찬다르가 내놓는 구체적 해법은 AI를 사람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도구로 쓰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를 가장 확실하게 더 유능하게 만든 방법이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으면 사람은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보기에 지금은 100년, 어쩌면 그 이상 만에 찾아온 학습 능력의 가장 큰 변화의 기회다. 개인 맞춤형 학습이 그 핵심이다.
다만 조건이 붙는다. AI에게 답을 받아 베끼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찬다르는 칸 아카데미(Khan Academy)의 사례를 든다. 그곳의 AI 도구는 정답을 바로 주지 않는다. 대신 학생이 스스로 답에 이르도록 사고 과정을 함께 밟아 준다. 과제를 떠넘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기르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방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는 일도 훨씬 쉬워진다. 어떤 일의 수요가 갑자기 커졌을 때 사람들이 더 빠르게 그쪽으로 옮겨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잠재력이 풀린다.
찬다르 자신의 사용 습관은 증강의 좋은 사례다. 그는 수학에 AI를 적극 쓴다. 모형을 세우거나 무언가를 증명할 때 AI가 매우 유용한데, 이유가 흥미롭다. 무언가를 처음부터 직접 써 내려가는 것보다, 이미 나온 결과가 맞는지 검증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AI가 초안을 내면 그는 검토자가 된다.
반대로 글쓰기에는 AI를 쓰지 않는다. AI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글쓰기가 곧 사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직접 써 봐야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데, AI에게 맡기면 바로 그 가치를 잃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위임할 것과 인간이 지킬 것을 가르는 기준을 제시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가치,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한 선호, 그리고 원하는 바를 알아 가는 성찰의 과정. 이런 일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자동화하기 어려운, 인간에게 더 고유한 영역이다. AI는 그 방향이 정해진 뒤의 실행을 맡는 쪽에 가깝다.
건축에 빗대면 이렇다. 어떤 집을 지을지, 무엇을 위해 짓는지, 어떤 삶을 담을지 정하는 일은 건축주와 설계자의 몫이다. 그 결정에는 취향과 가치,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오랜 고민이 들어간다. 일단 도면이 정해지면 벽돌을 쌓고 배관을 까는 실행은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수록 좋다. 찬다르의 구도에서 사람은 건축주와 설계자, AI는 시공팀이다. 정작 어려운 것은 시공이 아니라 무엇을 지을지 정하는 일이다.
AI가 불평등에 미칠 영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찬다르는 정반대의 두 시나리오를 함께 제시한다.
한쪽 시나리오에서는 불평등이 줄어든다. AI가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는 데 필요한 가장 어려운 일들을 대신해 준다면, 그 분야에 진입하는 문턱이 낮아진다. 학교에서 많이 배우고 매우 유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좁아지는 것이다. 학습에 대한 투자와 불평등 사이에 묘한 맞교환이 생긴다.
다른 쪽 시나리오에서는 불평등이 커진다. 만약 AI가 전략적 사고나 사회적 기술의 가치를 오히려 끌어올린다면, 학교에서 열심히 노력해 그런 능력을 길러 둔 사람이 노동시장에서 훨씬 더 값지게 된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아직 열려 있다.
찬다르가 그리는 희망적 미래의 핵심 비유가 여기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경력을 사다리(career ladder)로 그려 왔다. 한 칸씩 위로 올라가는 외길이다. 이 구도에서는 사다리가 흔들리거나 발판이 사라지면 위험이 크다. 떨어지면 다시 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입의 발판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번 연구의 발견은 바로 이 사다리의 아래 칸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찬다르가 바라는 것은 사다리가 아니라 경력 격자(career lattice)다. 위로만이 아니라 옆으로도 옮겨 갈 수 있는 그물망이다. 어떤 직업의 수요가 줄고 다른 직업의 수요가 늘 때, 사람들이 그 사이를 빠르게 건너갈 수 있다면 기술 변화의 위험은 훨씬 줄어든다. 그리고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가 바로 AI를 학습 도구로 쓰는 일이다.
이 연구를 확정된 결론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짚을 점이 있다. 이 논문은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작업 논문(working paper)이며, 분석 대상은 ADP가 급여를 처리하는 미국 내 약 2,500만 명의 기록이다. 표본은 방대하지만, 특정 급여 처리 회사의 고객사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도 함께 안고 있다. 또한 직군별 AI 노출도는 GPT-4 기반 직업 노출 측정치(Eloundou 등, 2024)와 앤트로픽 경제지수(Anthropic Economic Index, Handa 등, 2025)를 함께 빌려 온 것이라, 측정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여지가 남는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독립적인 정황도 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대학 학위가 안겨 주던 임금 우위가 줄고 있다고 분석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2022년 이후 대졸 신입의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을 웃돌기 시작했다고 관측했다. 최근 들어 보기 드문 역전이다. 이런 신호들은 신입의 발판이 흔들린다는 이번 연구의 그림과 어긋나지 않는다.
반대편의 목소리도 또렷하다. 예일대 예산연구소(Yale Budget Lab)는 챗GPT 등장 이후 약 3년 동안 경제 전체로는 AI 때문이라고 단정할 만한 뚜렷한 고용 충격이 보이지 않는다고 본다. 이들이 가장 힘주어 말하는 반론은 노출도와 실제 사용은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노출도로 분류돼도 소프트웨어 개발자처럼 AI를 빠르게 대거 도입한 직군이 있는가 하면, 사무직처럼 도입이 더딘 직군도 있다. 노출도만으로 직군을 묶으면 영향이 부풀려지거나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의 2023년 보고서, 그리고 덴마크 노동자를 다룬 후속 연구도 생성형 AI가 임금이나 일자리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두 진영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들여다보는 층위가 다르다. 찬다르팀은 가장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가장 어린 집단이라는 좁고 깊은 단면을 봤고, 예일팀은 경제 전체라는 넓은 평균을 봤다. 카나리아의 비유 그대로다. 갱도 전체의 공기는 아직 멀쩡해 보여도, 가장 예민한 새가 먼저 반응할 수 있다. 어느 해석이 옳은지는 앞으로 쌓일 데이터가 가른다.
젊은 세대를 향한 찬다르의 조언은 단순하다. AI 도구를 가능한 한 많이 쓰고, 그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며, 전략적 사고를 기르라는 것이다. 이 도구를 어떻게 가장 잘 활용할지, 어디서 도구가 약한지, 그리고 그 약한 지점에서 사람인 내가 어디에 가치를 더할 수 있는지를 익히라는 뜻이다. 새로운 일의 방식에 빨리 적응할수록 노동시장의 충격을 견디기 쉬워진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갈래로 읽힌다. 한쪽에는 경고가 있다. 신입의 발판이 약해지고 있고, 그 변화가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일 가능성이 있다. 다른 쪽에는 선택지가 있다. AI를 사람을 밀어내는 도구로 쓸지, 사람을 더 유능하게 만드는 도구로 쓸지는 아직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카나리아는 이미 울고 있다. 그 울음을 경고로 들을지, 잠시의 고요로 흘려보낼지가 남은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