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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사

아테네의 광장에서 태어난 철학
소피스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철학은 조용한 서재가 아니라 시끄러운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말로 사람을 설득해야 출세하던 도시, 말로 진리를 묻던 철학자, 그리고 그 진리를 영원한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어 거대한 체계를 세운 두 거인. 이 글은 소피스트의 등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까지, 약 150년에 걸친 사상의 흐름을 한 편으로 정리한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인류 역사상 말솜씨가 가장 중요했던 사회 중 하나였다. 모든 공적 결정이 시민들이 모이는 민회(民會)를 거쳐야 했고, 법정에는 변호사도 판사도 없어 누구나 자기 입으로 자기를 변호해야 했다. 이런 사회에서 설득의 기술을 파는 직업 교사들이 등장했으니 이들이 소피스트다. 그러나 그 설득의 기술은 진리보다 승리를 좇았고, 결국 아테네 공론장을 병들게 했다. 소크라테스는 그 흐름에 맞서 보편적 기준을 세우려다 사형당했고, 그의 죽음은 제자 플라톤을 통해 서양 철학 전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글은 다섯 인물군의 사상을 차례로 따라간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도록 핵심 개념마다 비유와 도식을 곁들였다.

소피스트 ~B.C. 450 소크라테스 B.C. 470~399 플라톤 B.C. 427~347 아리스토텔레스 B.C. 384~322 자연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체계로 — 철학의 무게중심 이동

제1부소피스트 — 광장의 설득술과 그 두 얼굴

흔히 소피스트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궤변이라도 늘어놓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이 부정적 이미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평가에는 소피스트와 평생 대립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입김이 짙게 배어 있다.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소피스트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왜 하필 아테네에서 등장했나

소피스트는 역사상 말솜씨가 가장 중요했던 사회에서 살았다. 기원전 594년 솔론의 중도 개혁으로 사회 붕괴를 막은 아테네는, 이후 클레이스테네스와 페리클레스를 거치며 민회를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주의를 안착시켰다. 모든 공적 사안이 반드시 민회를 거치게 되자, 정치적 뜻을 관철하려는 사람은 시민들을 직접 말로 설득해야 했다.

법정도 마찬가지였다. 아테네 시민은 누구나 타인을 고발할 권리가 있었지만, 전문 법조인이 없었기에 본인이 직접 소송을 진행했다. 물시계로 잰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배심원을 설득해야 했으니, 말솜씨가 곧 생존과 직결되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수사학 책을 사 읽었고, 재산이 많거나 정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변론술을 배웠다. 이 수요를 따라 그리스 각지의 학자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고, 이들을 통틀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에서 소피스트라 불렀다.

핵심 메시지

소피스트는 하나의 학파가 아니었다. 사상적 공통점은 없었고, 다만 그들이 가르치는 기술이 정치적 성공과 법정 승리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있었다는 점만 같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피스트는 궤변가라는 악명을 얻었다. 그들이 전한 지식은 진리 탐구가 아니라,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논리라도 일단 상대 주장을 무력화하고 청중의 지지를 얻으면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펼쳐지던 아테네에서 토론과 논쟁은 운동 경기처럼 즐겨졌고, 승자에게는 인기와 권위, 출세길이 주어졌다. 소피스트는 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존재였다.

프로타고라스의 수업료 소송 (전해지는 일화)

한 청년이 프로타고라스에게 변론술을 배우며, 졸업 후 첫 재판에서 이겨 받는 돈으로 수업료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청년은 정작 소송을 하지 않았고, 결국 스승이 수업료 청구 소송을 걸었다. 청년은 말했다. "제가 이기면 재판에서 이겼으니 안 내도 되고, 지면 약속한 첫 승소를 못 했으니 안 내도 됩니다." 스승은 반박했다. "내가 이기면 판결대로 받고, 네가 이기면 네 첫 승소이니 약속대로 받는다." 두 주장 모두 사실은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후대에 지어진 우화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당대인이 떠올린 소피스트의 '말로 발라버리는 기술'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억울한 측면 — 계몽 운동으로서의 소피스트

그러나 소피스트에게는 억울한 면도 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 탈레스·헤라클레이토스·파르메니데스 같은 자연철학자들은 끝없는 전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근원(아르케)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만물의 근원에 대한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이 좌절 속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회의주의가 번졌고, 그 흐름의 중심에 소피스트가 있었다.

이전 철학자들이 대중과 동떨어진 은둔 현자나 교주에 가까웠다면, 아테네로 모인 소피스트는 우주가 아닌 눈앞의 인간을 상대했다. 실제 생활에 필요한 언어 기법을 팔았기에, 영원한 진리보다 당장의 효용을 추구했다. 이 실용주의가 철학의 방향을 우주에서 인간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를 지닌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에 고착된 종교·도덕·정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는 뜻하지 않게 신 중심의 전통 세계관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계몽 운동으로 나타났다. 후대의 한 학자는 이 흐름을 '소피스트 운동'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혼자 하는 사변적 추론이 아니라 논증을 통한 상호 토론으로 공론장이 풍부해진 것이다.

프로타고라스 —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가장 대표적인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기원전 490년경~415년경)는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의 압데라 출신으로,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고향이었다. 흥미롭게도 상대주의를 대표한 그를 포함해 주요 소피스트 중 아테네 토박이는 거의 없었다. 외지에서 모여든 이방의 지식인들이었기에 하나의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았던 셈이다. 그의 시그니처 문장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이다. 여기서 척도란 판단 기준을 뜻한다. 곧 인간만이 모든 사물의 진리성을 재는 기준이라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 인간이란 종(種)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개별 인간 각각을 가리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별 인간이 척도라면 문제가 생긴다.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 객관성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날씨가 누군가에겐 춥고 누군가에겐 포근하듯, 누군가의 이익이 다른 누군가에겐 손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명제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고, 진리가 개인 주관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주관적 상대주의를 표방한다.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이 객관적으로 옳은 일은 없으며, 대립하는 두 진술이 모두 참일 수 있다.

다만 프로타고라스는 극단적 상대주의에서 한발 물러섰다. 대립하는 의견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나을 수는 있다고 본 것이다. 어떤 견해가 더 많은 사람의 찬성을 받으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의견 혹은 진리로 퍼진다. 발언의 진리성을 질(質)이 아니라 양(量)에 둔 셈이다. 이 관점은 곧 민주주의로 이어진다. 객관적 진리가 없다면 어떤 개인도 다른 개인보다 더 지혜롭지 않으므로, 모든 시민이 동등한 정치적 능력을 갖는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인간은 만물의 척도"를 오로지 극단적 상대주의로 읽는 해석은 상당 부분 플라톤의 비판적 재구성에 기댄 것이다. 현대의 일부 연구자들은 이 명제를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회의론이라기보다, 인간의 일상적 경험을 앎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일종의 경험주의로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프로타고라스가 진리의 기준을 신이나 우주가 아니라 인간 쪽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고르기아스 — 극단적 회의주의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극단적 회의주의를 펼쳤다. 그의 악명 높은 세 가지 논변은 다음과 같다.

고르기아스의 세 논변

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론의 부정)

② 비록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인식론의 부정)

③ 안다 해도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언어·소통의 부정)

첫째 논변은 변화나 한계가 없는 영원한 것은 현실에서 관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며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둘째는 세계가 끊임없이 변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도 변하며, 감각 능력마저 사람마다 다르니 확실한 지식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는 인간의 언어가 불완전하여 자신의 생각을 완벽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고르기아스에게도 중요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설득이었다. 세상에는 오로지 의견만 있으며, 그 의견으로 남을 설득하는 힘이 곧 수사학이라고 보았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꽂아 넣는 '적시(適時)'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도 그였다.

피시스와 노모스 — 소피스트의 진짜 기여

소피스트가 철학사에서 의미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피시스(physis)와 노모스(nomos)를 주요 주제로 처음 다뤘다는 점이다. 피시스는 자연이 부여한 질서, 특히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가리키고, 노모스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 질서 곧 법·규범·관습을 가리킨다.

많은 소피스트는 사람 손을 탄 노모스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노모스가 자연스러운 피시스를 억제하여 인간의 자유와 이익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안티폰은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면 노모스를 어기는 것이 현명하다고까지 말했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 주장했다. 지도자들이 자기 이익을 반영해 법을 만들었으니, 정의가 법으로 구현되는 것이라면 결국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논리다.

노모스와 피시스, 신호등에 비유하면

노모스는 빨간불에 멈추라는 신호등 규칙이다. 인간이 합의로 만든 인위적 질서다. 피시스는 빨리 가고 싶은 본능이다. 안티폰류의 소피스트는 "아무도 안 볼 때, 처벌받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신호를 무시하는 게 영리하다"고 조언한 셈이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사회라면 굳이 규칙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소피스트 사상은 기존의 강압적 공동체 논리를 해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다만 그들은 해체 이후의 재구성이나 비전 제시에는 관심이 없었다. 공동선이 사라진 자리에 무수한 개인선만 들어섰고, 잘 산다는 것은 함께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욕망을 추구하고 부와 권력을 얻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절제는 비겁함으로 여겨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을 격파해 성공하는 데만 관심이 쏠렸다. 이 분위기는 아테네 공론장을 망가뜨렸고, 망가진 공론장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와 아테네 몰락의 한 원인이 되었다.

제2부소크라테스 — 무지의 지와 영혼 돌봄

아테네 몰락 이후, 시민들은 그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았다. 원한은 결국 소피스트들을 향했지만, 정작 유명한 소피스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한 사람을 소피스트의 대표로 내세워 사형시켰다. 평생 소피스트와 투쟁했으나, 그저 말을 잘한다는 이유로 소피스트와 한데 묶여 인식되었던 인물 — 소크라테스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형이 그를 불멸의 이름으로 만들었다.

강철 멘탈의 석공에서 철학자로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 태어났다.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아테네에서 결코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으나, 자존감이 넘쳤고 자신의 외모를 철학에 인용하기까지 했다. 강철 멘탈과 초인적 신체 능력의 소유자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큰 전투에 세 번 참전했다. 한겨울 맨발로 행군하고 밤새 술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으며, 한 생각에 빠지면 한자리에 밤새 서 있기도 했다.

그는 본래 가업인 석공 일을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사제는 "없다"고 답했다. 자신은 아무 지혜도 없다고 믿어온 소크라테스는 충격을 받았고, 신탁이 맞는지 시험하려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갔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무지의 지

지혜롭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자신처럼 지혜롭지 않았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단 하나를 더 알고 있었다 — 자신에게 지혜가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무지'란 무식이 아니라, 신들에게 속한 참된 지혜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지혜는 결국 하나의 의견에 불과함을 아는 것, 이것이 그가 가장 지혜로운 이유였다.

철학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지혜를 사랑함'이라는 뜻이다. 지혜로운 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신뿐이기에, 인간은 아직 지혜롭지 못해도 지혜를 사랑하며 끊임없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탁을 기점으로 석공을 그만두고, 신전 입구에 적힌 "너 자신을 알라"를 실천하기로 한다.

왜 언어와 개념부터 따졌나

소크라테스는 공동체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용어와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뜬금없어 보이는 이 출발점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언어란 그 자체로 불완전하고 사람마다 의미를 다르게 쓰기에 소통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저 사람은 복숭아 같아"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상큼함을, 알레르기가 있는 이에겐 끔찍함을 떠올리게 하듯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상대주의적 언어관이 아테네 시민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돈과 권력만 얻을 수 있다면 일관성 없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가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한 것이다. 그는 의견 충돌 아래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근본 원리가 있지 않은지, 그 지점을 찾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감각 외에 또 하나의 능력, 곧 이성이 있기에 객관적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성을 통해 사적 관심을 배제한 채 대상의 객관적 본질을 드러내고, 이를 개념과 용어에 담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앎과 덕은 하나다

소크라테스는 무언가를 제대로 알면 반드시 그것을 행하게 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보통 안다고 다 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흡연이 해롭다는 걸 알아도 끊지 못하니까.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앎은 노하우나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 앎이다.

자전거 타기로 이해하는 '실천적 앎'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은 일부러 넘어지려 하지 않는 한 넘어지지 않는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물에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앎은 노력해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안다는 사실 자체가 곧 행동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참된 앎이 이렇다. 그래서 그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범죄가 나쁘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이다. 악행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궁극적으로 알고자 한 개념은 덕(德)이었다. 덕은 그리스어 아레테(arete)를 옮긴 말로, 모든 사물의 훌륭한 상태를 뜻한다.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이 안경의 아레테, 잘 자르게 해주는 것이 가위의 아레테다. 사람으로 치면 자신의 기능을 최적화해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는 탁월함이 아레테다. 인간의 아레테는 곧 훌륭하게 잘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며, 이 지점이 '덕'으로 번역된다.

문답법 — 논박술과 산파술

소크라테스의 대화 방식을 문답법이라 한다. 여기엔 두 기능이 있다. 하나는 논박술, 다른 하나는 산파술이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의 두 기능
기능방식목적
논박술상대가 내린 정의에서 모순을 찾아내, 모순을 제거한 새 정의를 다시 요구한다. 이를 반복하며 개념의 모순을 줄여간다.스스로의 무지를 인식시킨다
산파술논증의 근거를 외부 지식이 아니라 대화 상대가 이미 가진 신념에서 끌어낸다.상대 안에 이미 있는 지혜를 꺼내도록 돕는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어머니가 산파였듯, 자신은 지혜를 직접 낳을 수는 없고 대화 상대가 더 나은 생각을 낳도록 도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즐겨 사용한 사례가 '경건'에 관한 대화다. 한 종교인이 "경건이란 신들에게 사랑받는 것"이라 정의하자, 소크라테스는 신들 사이에도 다툼이 있으니 같은 행동이 어떤 신에게는 사랑받고 다른 신에게는 미움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동일한 행동이 경건하면서 동시에 불경할 수 있다는 모순이 생긴다.

대화 상대는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리는데, 이 상태를 아포리아(aporia)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고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포리아 앞에서 부끄러워하거나 화를 냈다. 특히 전문가라 자부하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문제를 자신이 아닌 소크라테스에게 돌렸다. 그를 '유도신문으로 함정에 빠뜨리는 자'로 여긴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아테네의 쇠파리'라 불렀다. 달리는 말을 물어뜯어 잠들지 못하게 하는 쇠파리처럼, 편견과 궤변으로 가득한 아테네를 끊임없이 귀찮게 깨우겠다는 각오였다.

재판과 죽음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 후 아테네는 혼란에 빠졌고, 소크라테스는 결국 세 시민에게 고발당했다. 혐의는 두 가지였다.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격(다이몬)을 들여왔다는 불경죄, 그리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다. 후자에는 그가 추첨제 민주주의를 비판했고, 그의 제자 중에 아테네를 배신한 알키비아데스와 공포정치를 편 크리티아스가 있었다는 정치적 맥락이 깔려 있었다.

1차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동정을 구하지 않고 "법과 진실에 따라 판단하라"고 말했다. 약 500명의 배심원 중 유죄 280여 표 대 무죄 220표로 유죄가 선고되었다(자료에 따라 280:220 또는 281:220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형량을 정하는 2차 재판이었다. 피고가 적당한 형량을 제시해야 했는데,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나는 아테네 시민의 영혼을 고양시킨 국가 유공자이니 영빈관에서 식사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태도에 표차는 약 360 대 140으로 벌어졌고, 무죄에 투표했던 이들조차 사형 쪽으로 돌아섰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제게는 죽으러 떠날 시간이며, 여러분에게는 살기 위해 떠날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릅니다. — 소크라테스의 최후 변론(플라톤의 기록)

사형 선고 후,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했다. 당시 사형수가 국외로 도피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거부했다. 자신이 평생 아테네의 법 체계를 인정하며 살아왔는데, 판결이 불리하다고 법을 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법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효력이 인정된다는 '법적 안정성'을 위함이었다. (흔히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실제로 했다는 기록은 없다.) 결국 그는 기원전 399년, 70세의 나이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가 남긴 사상의 집대성은 "그대의 영혼을 돌보라"는 한마디였고, 이 말은 제자 플라톤을 통해 서양 철학사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다.

제3부플라톤 — 이데아라는 거대한 가설

서양 철학에서 플라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에는 "서양 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화이트헤드의 극찬이, 다른 쪽에는 "유럽 최대의 재난"이라는 니체의 혹평이 있다. 그러나 그 지독한 니체조차 "나의 철학은 전도된 플라톤주의"라 말했을 정도로, 누구도 플라톤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가의 꿈에서 철학자로

플라톤은 기원전 428/427년경 아테네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이며, '플라톤'은 넓은 어깨를 뜻하는 별명이었다. 레슬링 대회에서 세 번 우승할 만큼 건장했고, 서정시와 비극을 쓸 만큼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다. 스무 살 무렵 비극 경연 대회에 참가하려던 그는, 우연히 소크라테스의 연설을 듣고 충격을 받아 습작을 모두 불태우고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플라톤은 본래 철학적 소양을 갖춘 정치인을 꿈꿨다. 그러나 그가 정의롭다 여긴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정에 의해 사형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당시 28세), 정치가의 꿈을 버리고 아테네 민주주의를 증오하게 된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남부 등지를 떠돌며 두 사상을 흡수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는 영혼론과 수학(이성으로 영원불멸의 세계에 접근한다는 관념)을, 파르메니데스 학파로부터는 "영원 부동의 일자(一者)만이 참된 존재"라는 존재론을 받아들였다. 이 둘이 소크라테스의 '영혼' 개념과 화학 반응을 일으켜 이데아론이 탄생한다.

기원전 387년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영웅 아카데모스를 기리는 숲에 철학 학교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출입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에 들어오지 말라"는 현판이 걸렸다고 한다. 아카데미아는 약 900년간 고대 지성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왜 '변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야 했나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의외로 현실 정치적 동기에서 출발했다. 당시 아테네 정신은 소피스트들의 감각주의·상대주의·개인주의가 주도하고 있었고, 이는 공동선이 아닌 개인선 추구로 직접민주정에 타격을 주었다. 폴리스 공동체는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플라톤은 훌륭한 삶을 살려면, 소크라테스처럼 답이 있는지도 모를 무언가를 무작정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무엇이 훌륭한지 가늠해 줄 절대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만 알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세계를 상정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데아다. 이는 고르기아스의 세 회의주의 논변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고르기아스의 회의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응답
고르기아스플라톤의 답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이데아라는 불변의 세계가 실재한다
존재해도 알 수 없다영혼을 통해 이데아를 알 수 있다
알아도 전달할 수 없다영혼의 이성으로 보편적 지식을 이해·공유할 수 있다

이데아란 무엇인가 — 본질이자 존재 근거

이데아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사물의 본질이다. 우리가 사는 감각 세계에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지만, 꽃은 시들고 피부는 처지며 도자기는 깨진다. 모든 개별 사물은 시간적 유한성을 품고 있어 변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사물이 사라지면 아름다움도 사라지는가? 아니다. 아름다운 사물이 곧 아름다움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그 자체'가 따로 있으니, 그것이 아름다움의 이데아다.

이데아 세계 (실재 / 원형) 영원 · 불변 · 이성으로만 인식 美 자체 모방 · 분유 현상 세계 (그림자 / 모상) 변화 · 소멸 · 감각으로 경험 얼굴 노을
현상 세계의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나누어 갖거나(분유) 모방함으로써 아름답다.

둘째, 이데아는 사물의 존재 근거다. 시간 속에 끊임없이 변하는 사물이 그래도 하나의 사물로 존재하려면, 그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아침에 부은 나와 저녁에 부기 빠진 나가 같은 '나'로 여겨지려면, 변화 가운데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변화하는 현상 세계는 그 근거가 될 수 없다. 달걀의 원인을 달걀들 사이에서 찾을 수 없고 닭을 상정해야 하듯, 변화하는 사물의 근거는 완전한 이데아 세계에 있어야 한다.

플라톤은 사물이 이데아를 부분적으로 나눠 갖는다는 '분유(分有) 이론'으로 둘을 연결했다. 미녀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자신의 일부를 나눠 줬기 때문이다. 사물마다 나눠 가진 양이 다르므로 질적 차이가 생기고, 세상 모든 사물은 완전한 이데아를 향해 위계를 이룬다. 이데아들 역시 무질서하지 않고, 모든 이데아의 원천인 '좋음(善)의 이데아' 아래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여기서 좋음은 '맛있다' 같은 주관적 좋음이 아니라,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뜻한다.

영혼 삼분설 — 마차의 비유

플라톤은 인간 정신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 영혼 삼분설을 제시했다. 머리에는 이성이 있어 지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고, 가슴에는 기개가 있어 분노·야망·열정의 동력이 되며, 횡격막 아래에는 욕망이 있어 식욕·성욕 등 생명 유지와 쾌락을 담당한다.

마차의 비유

영혼은 한 대의 마차다. 이성은 마부이고, 마차를 끄는 두 마리 말은 각각 기개와 욕망이다. 두 말이 제멋대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마차는 뒤집힌다. 마부(이성)의 통제 아래 두 말이 조화를 이뤄야 마차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달린다. 기개가 이성을 따르면 용기가 되고, 욕망이 이성의 지도를 받으면 절제가 되며, 셋이 조화를 이룬 상태가 곧 정의다.

플라톤은 인간의 네 가지 핵심 덕목을 제시했다. 이성의 덕인 지혜, 기개의 덕인 용기, 욕망의 덕인 절제, 그리고 이 셋을 통합·조화시키는 정의다. 정의로운 영혼을 지닌 자는 최고의 좋음의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다.

동굴의 비유

플라톤의 대표작 『국가』에는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어릴 때부터 동굴에 사슬로 묶인 죄수들은 한쪽 벽면만 바라보며,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 착각하며 산다. 어느 날 한 죄수가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간다. 처음엔 빛이 부셔 고통스럽지만, 점차 적응하며 진짜 사물을 보게 되고, 마침내 빛의 원천인 태양까지 응시한다.

동굴 안 (현상 세계) 죄수=대중 그림자 상승 동굴 밖 (이데아 세계) 태양 =좋음의 이데아 철학자
벽의 그림자만 보던 죄수가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좋음의 이데아)을 응시한다. 진리 인식은 영혼 전체의 상승 운동을 요한다.

동굴 밖을 본 죄수는 철학자를, 동굴 속 죄수들은 무지한 군중을 의미한다. 진리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영혼 전체가 현상 세계에서 이데아 세계로 상승해야 겨우 얻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진리를 깨달은 철학자가 다시 동굴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좋은 삶은 공동체 안에서만 실현되기에, 철학적 진리는 공공선의 실천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죄수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심지어 죽이려 할 수도 있다 —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에로스 — 영혼을 끌어올리는 힘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사슬을 끊고 상승하는가? 플라톤은 강렬한 충동인 에로스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흔히 '플라토닉 러브'를 육체를 배제한 정신적 사랑으로 알지만, 사실 플라톤에게 그것은 반드시 육체적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름다운 신체를 사랑하다 보면 '무엇이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아름다움 자체는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만 알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추동이며, 신적 지혜가 없는 인간이 그 결여를 채우려 열렬히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곧 철학이다.

철인정치와 이상국가

『국가』의 핵심 주장은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는 철인정치론이다. 플라톤은 국가를 개인 영혼의 확대판으로 보았다. 영혼이 이성·기개·욕망의 조화로 정의로워지듯, 국가도 세 계층의 조화로 정의로워진다.

영혼과 국가의 대응 구조
영혼국가 계층기능
이성 (머리)지혜통치자통치
기개 (가슴)용기수호자(군인·공무원)국민 보호
욕망 (하체)절제생산자(농부·상인·장인)물질적 수요 충족

각 계층은 타고난 본성과 소질에 따라, 그리고 엄격한 교육 과정을 통해 가려진다. 교육은 성별·신분과 무관하게 시작되며, 단계마다 선발을 거쳐 통과한 자가 더 높은 일을 맡는다. 최종 통과자는 50세에 이르러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지도자가 된다. 주목할 점은 이 엘리트주의에 어떤 특권이나 상속도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능력에 따라 오를 수 있으며, 당시 통념과 달리 여성도 능력에 따라 수호자·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가장 비판받는 지점은, 수호자·통치자 계층에게 가족과 사유재산을 금지한 부분이다. 사적 재산이 있으면 시민을 동료가 아닌 지배 대상으로 보게 되고, 가족애가 사적 이익 추구로 흐르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종종 전체주의라 비판받는다. 다만 통상의 전체주의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 달리, 이상국가는 지배 계층의 자유를 제한한다. 권력은 가졌으나 돈도 못 벌고 결혼도 못 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

플라톤도 이상국가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음을 알았다. 다만 하나의 '본(本)'으로 제시함으로써, 정치인이 통치할 때 그것을 상기하며 자신을 다스리게 하려 했다. 그가 이데아라는 가설을 세운 궁극적 목적은 형이상학 자체가 아니라, 존재의 본성을 탐구하고 지혜를 추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끝내 그가 이데아를 경유해 도달하려 한 곳은 다시 현실이었다.

제4부아리스토텔레스 (1) — 논리학과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전방위적인 지적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다. 철학·논리학·윤리학·정치학·생물학·천문학·의학·수사학·시학을 두루 다뤘고, 무엇보다 학문 체계 자체를 최초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선대의 연구를 모아 분석하고 분류한 뒤 자신의 이론을 얹었다.

현실을 향한 시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 스타게이라에서 의사 집안에 태어났다. 17세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 20년간 머물렀다(10년은 학생, 10년은 교수). 그는 스승의 핵심 사상인 이데아론을 정면으로 비판했지만 사적 보복을 당하지 않았는데, 이는 서양 철학에 이어질 합리적 비판 정신의 출발로 볼 수 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친구와 진리 둘 다 소중하지만 진리를 더 존중하는 것이 경건하다"고 적었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이데아)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으로 땅(현실)을 가리킨다. 이 포즈가 두 사람의 차이를 압축한다. 의사 집안에서 자란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변화의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에게 이데아 세계는 허구였다. 변하지 않는 이데아가 어떻게 변하는 현상의 원인이 되며, 동떨어진 세계가 어떻게 감각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 그는 결론 내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 전환

이데아(형상)는 감각 세계와 분리된 초월적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형상은 각각의 사물 안에 내재해 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이데아 세계 때문이 아니라, 꽃 안에 아름다움이라는 본질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는 관측과 실험을 통해 현상 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

논리학 — 올바른 사고의 법칙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올바르게 사고할 때 어떤 법칙을 따르는지 궁금해했고, 그 결과 논리학이 탄생했다. 그의 논리학 저술들은 '도구'를 뜻하는 오르가논이라 불린다. 본격적인 학문 탐구에 앞서 익혀야 하는 예비 학문이라는 뜻이다. 칸트는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고 평할 정도였다.

오르가논은 언어를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분석해 간다. 가장 먼저 나오는 『범주론』은 아직 문장이 되지 않은 낱말을 요소별로 분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정에 쏟아지는 진술들의 술어(述語)에 주목해, 더 이상 상위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열 개의 범주를 찾아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열 가지 범주 (예: 소크라테스)
범주예시범주예시
실체사람이다시간어제 있었다
키가 170cm다자세누워 있다
피부가 희다소유무기를 가졌다
관계~의 남편이다능동이야기를 한다
장소아고라에 있다수동이야기를 듣는다

이 중 으뜸은 실체다. 어떤 대상을 파악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이 "그것은 무엇이냐"이고, 그 무엇이 바로 실체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라는 실체가 있어야 그의 키나 피부색을 물을 수 있다. 그래서 실체는 주어로 쓰이고 술어로 쓰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는 가능해도 "사람은 소크라테스다"는 안 되는 것처럼.

삼단논법 — 모든 학문의 기초

논리학에서 형식 논리학의 시작이라 할 만한 것이 『분석론 전서』의 삼단논법이다. 삼단논법은 두 명제(전제)를 묶어 하나의 결론을 끌어내는 연역 논증이다.

대전제 모든 사람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사람이다 결론 따라서 소크라테스죽는다
두 전제에 공통으로 든 '사람'(매개념)이 '소크라테스'와 '죽는다'를 연결해 결론을 만든다.

두 전제에 공통으로 든 '사람'을 매개념(중개념)이라 한다. 이 매개념이 다리 역할을 해 결론이 도출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개념의 위치에 따라 논법의 격(格)을 구별하고, 타당한 형식과 잘못된 형식을 두루 정리했다. 그가 이토록 공들인 이유는, 삼단논법이 모든 학문의 기초 곧 증명 그 자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역은 확실한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 전제 자체는 어디서 얻는가? 『분석론 후서』가 이 문제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본 명제가 연역이 아니라 귀납으로 알려진다고 보았다. 개별자를 직접 관찰·경험한 귀납을 통해 근본 명제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의 귀납법은 오늘날의 열린 귀납법과 달리, 참으로 여겨지는 필연적 전제를 향해 가는 닫힌 형태였다.

형이상학 — '있음' 그 자체를 묻다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말은 사실 우연의 산물이다. 후대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편찬하면서 자연학(physica) 저술들 '뒤에 오는 것들(meta ta physica)'을 묶어 부른 데서 나왔다. 그런데 '메타'에는 '뒤'뿐 아니라 '넘어서'라는 뜻도 있어, 물리적 세계를 초월한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형이상학은 '있음(존재)'을 전제로 '있는 것(존재자)'을 탐구하는 존재론이다. 자연학이 변화의 관점에서, 수학이 양적 관점에서 사물을 다룬다면, 형이상학은 오로지 '있음'의 관점에서 사물을 다룬다. 그리고 여기서도 핵심은 실체였다. 열 범주 중 첫째로 있는 것이 실체이고, 다른 모든 것은 실체에 의존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실체란 무엇인가"로 바뀐다.

사원인설 — 조각상의 네 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가 존재하려면 네 가지 원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원인설 (예: 신을 위한 조각상)
원인의미조각상의 경우
질료인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재료)
형상인무엇의 형태인가 (설계)특정한 조각의 형태
작용인무엇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조각가의 망치질
목적인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가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실체를 질료(質料)와 형상(形相)의 결합체로 보았다. 질료는 아직 형태가 주어지지 않은 재료이고, 형상은 그것을 특정한 무엇이게 하는 고유한 형태나 기능이다. 책상은 나무(질료)만으로는 안 되고, 책상이게 하는 형태(형상)가 결합해야 한다. 인간으로 치면 육체가 질료, 영혼이 형상이다.

플라톤과의 결정적 차이는, 플라톤이 형상을 '그 자체인 하나'로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실체마다 고유한 형상이 있다고 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형상과 플라톤의 형상이 따로 있다. 다만 그것을 보편적으로 기술할 수는 있어, 사람·동물 같은 종(種)과 유(類)로 분류하고 학문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가능태와 현실태, 도토리와 참나무

질료는 아직 무언가가 되어가는 가능성의 상태(가능태)이고, 형상과 결합해 현실성을 얻은 상태가 현실태다. 도토리는 참나무가 될 가능성을 품은 가능태이고, 다 자란 참나무는 현실태다. 운동과 변화란, 질료 내부에 잠재한 가능성이 형상을 향해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나올 수 없으니 변화는 불가능하다"던 파르메니데스의 난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논의가 진행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바뀐다. 하나의 개체에서 질료와 형상 중 어느 것이 더 실체인가? 그는 형상이 질료보다 더 실체라는 결론에 이른다. 질료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형상은 시간을 벗어나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의자가 책상과 같은 나무로 되어 있어도 의자인 이유는 의자의 형상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결국 "참된 앎은 영원하고 필연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플라톤적 대전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돌고 돌아 플라톤 형이상학으로 돌아온 셈이다.

부동의 원동자 — 철학적 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목적론적이다. 모든 것은 목적을 향해 존재하며, 그 목적의 연결고리를 따라가면 하나의 궁극적 목적을 만난다. 그는 그 최종 목적을 이라 보았다. 다만 운동의 단계가 무한히 이어질 수는 없기에, 무한의 고리를 끊는 제일 원인이 필요했다.

부동의 원동자

제일 원인인 신은 도달해야 할 목적이 없으므로 스스로는 운동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목적으로 삼는 것들이 운동하게 한다. 그래서 신을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라 한다. 신은 질료가 없는 순수 형상이며, 가능태가 전혀 없는 순수 현실태다. 또한 육체가 없어 오직 사유 활동만 하는데, 다른 대상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유한다. 이를 "사유에 관한 사유"라 한다.

이러한 신 개념은 의인화된 그리스 신들과 구분되는 철학적 신 개념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있음'을 다루는 존재론에서 신을 다루는 신학으로 넘어간다. 전자를 일반 형이상학, 후자를 특수 형이상학이라 부르며, 이 연구는 오늘날까지 철학의 주요 분야로 남아 있다.

제5부아리스토텔레스 (2) — 행복의 윤리학

"철학은 일종의 행복의 형이상학"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철학자가 어려운 논리학과 형이상학 끝에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았고, 그 무수한 행복론을 거슬러 올라가면 맨 앞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최고선으로서의 행복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삶의 궁극적 목적을 행복이라 했다. 논의는 이렇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목적이 있다. 운동의 목적은 건강, 재테크의 목적은 돈, 군사훈련의 목적은 승리다. 그리고 이 목적들은 위계를 이룬다. 모의고사를 푸는 목적은 수능, 수능의 목적은 대학, 대학의 목적은 직업, 직업의 목적은 안정적인 삶이다. 이렇게 목적의 목적을 거슬러 오르면, 결국 더 이상 다른 무엇의 수단이 아닌 최종 목적을 만난다. 그것이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 했고, 이를 '최고선'이라 불렀다. 어원을 풀면 '좋은(eu)'과 '신령(daimon)'의 결합으로, 좋은 신령이 깃든 상태를 뜻한다. 다만 여기서 '선(善)'은 도덕적 착함보다 '좋음·훌륭함·탁월함'에 가깝고, 에우다이모니아는 한마디로 잘 행위하며(eu prattein) 잘 사는 것(eu zen)을 의미한다. 행복이 최고선인 이유는 두 가지다. 완전성 —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일 뿐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돈을 번다. 자족성 — 행복하기만 하면 다른 좋음을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그는 통념적 행복론을 차례로 검토한다. 쾌락은 동물도 추구하니 인간만의 최고 목적일 수 없다. 부(富)는 다른 목적의 수단일 뿐이며 운이 크게 작용한다. 명예는 남이 나에게 주는 것이라 자족성에 어긋난다. 셋 다 행복한 삶에 따라오는 부수적 좋음일 뿐, 최고선은 아니다.

인간의 아레테는 이성

그렇다면 인간이 도달해야 할 객관적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아레테(탁월성)라 했다. 인간만의 아레테를 찾기 위해 그는 생물의 기능을 비교한다. 식물의 고유 기능은 영양 섭취, 동물의 고유 기능은 감각·욕구·이동이다. 인간은 이 둘을 모두 갖되, 거기에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추가 기능 — 이성(로고스)을 갖는다.

'잘 드는 가위'로 이해하는 아레테

사물을 또렷이 잘 볼 때 최상의 눈이 되고, 잘 자를 때 최상의 가위가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고유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할 때 최상의 인간, 곧 행복한 인간이 된다. 다만 가위에도 잘 드는 가위와 무딘 가위가 있듯, 이성도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탁월하게 써야 행복해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완전한 아레테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아레테를 두 가지로 나눴다. 태도·성품과 관련된 성격적 탁월성, 그리고 영혼의 이성적 부분에 속하는 지적 탁월성이다.

중용 — 극단을 피하는 지혜

성격적 탁월성은 외부 자극(파토스)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분노나 공포가 솟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화를 그대로 표출하느냐, 적절히 표현하느냐는 나의 선택이다. 이 선택을 여러 번 반복해 일관된 태도가 되면 성품이 형성되고, 그 성품의 탁월성이 행복을 좌우한다.

문제는 무엇이 탁월한 태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 그 유명한 중용(中庸)이다. 무엇이 옳은지 정확히 모른다면, 일단 양극단만은 피하자는 것이다.

중용의 예시 — 양극단 사이의 적절함
부족 (악덕)중용 (탁월성)지나침 (악덕)
비겁용기만용
목석 같음절제무절제
화낼 줄 모름온화성마름
인색자유인다움낭비

여기서 중용은 산술적 중간이 아니다. 2와 6의 중간인 4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간 행위는 워낙 상황 의존적이라, 군인이 전장에서 화내는 것과 회사원이 화내는 것은 맥락이 다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우리와의 관계에서의 중간"이라 불렀다. 마땅한 때, 마땅한 일에, 마땅한 사람에게, 마땅한 목적으로, 마땅한 방식으로 취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모든 감정과 행위에 중용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시기나 살인처럼 그 자체로 나쁜 것에는 '적절한 정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용은 어디까지나 용기·절제·온화처럼 과부족의 양극단 사이에 적절함이 있을 수 있는 영역에서만 성립한다.

중요한 것은, 한두 번 덕을 실현한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중용을 실천해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져야 한다. 탁월성은 본성이 아니므로 후천적 선택과 노력으로 갖춰진다. 시행착오를 성찰의 재료로 삼아 진짜 용기, 진짜 온화함을 찾아가고, 그것을 반복해 안정된 성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실천적 지혜 — 숙고하는 능력

그러나 성격적 탁월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이성적 욕구(두려움·분노·질투)를 이성의 명령 아래 조절하려면 지적 탁월성, 그중에서도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가 더해져야 한다. 실천적 지혜의 핵심은 숙고(熟考)다.

우리는 수학처럼 불변하는 것은 숙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해진 게 없는 인간사에서는 심사숙고가 필수다. 오늘 점심 메뉴부터 결혼식 축의금 액수까지 숙고의 대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를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행동을 찾아내는, 숙고를 잘하는 능력"이라 정의했다.

두 탁월성의 협업

부당한 일을 본 사람이 맞서 싸우려는 마음(용기·의분)은 성격적 탁월성이 자동으로 일으킨다. 그러나 "어떤 수준으로, 어떻게 도울지"를 판단하는 것은 실천적 지혜다. 성격적 탁월성은 행위의 목표를 올바르게 만들고, 실천적 지혜는 합리적 수단을 강구한다. 둘이 함께할 때만 진정한 탁월함에 이른다. 성격적 탁월성 없이 실천적 지혜만 작동하면, 이성은 오히려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천적 지혜는 학식이 많다고 더 발휘되는 능력이 아니다. 삶 전체를 대상으로 어떻게 훌륭하게 살지 판단하는 능력이기에, 다양한 경험과 연륜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이가 윤리학·정치학 강의를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관조 — 가장 신적인 활동

탁월성들 가운데 최고는 관조(theoria)다. 영원한 진리를 사유하는 삶, 곧 철학하는 삶이다. 관조는 현실적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그 자체로 행복감을 얻는 활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유하는 삶은 곧 신적인 삶과 같다. 신이 자기 자신을 영원히 사유하듯, 인간도 관조를 통해 자기 안의 신적 요소를 대면한다.

관조는 완전성(신적 능력)과 자족성(혼자서도 충분히 가능)을 모두 충족하기에 최고의 행복이다. 다만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생업에서 벗어난 여가가 있어야 관조할 수 있다. 그리고 육체를 가진 인간은 그 신적 시간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우주를 사유하며 충만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때가 바로 신의 영역에 발을 담갔던 순간이다.

정치적 동물 — 공동체 속의 행복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만 달성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여기서 나온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가족에 속하고, 가족이 모여 마을을, 마을이 모여 국가를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 국가관의 특징은, 국가에 경제·안보 기능을 넘어 시민들이 훌륭한 삶을 살게 하는 궁극적 목표가 내재한다고 본 점이다. 이것이 근대 국가관과의 결정적 차이다. 그는 개인의 좋음을 넘어 공동체의 좋음으로 정의우정(필리아)을 제시했다. 특히 우정을 세 가지로 나눴는데, 쾌락을 추구하는 우정과 이익을 추구하는 우정은 상대를 수단으로 대하기에 변덕스럽고, 서로의 인격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우정만이 참된 우정이다. 그는 친구를 "또 다른 자신"이라 불렀다.

정치 체제에 관해서도 그는 중용을 강조했다. 탁월한 자가 한 명이면 왕정, 소수면 귀족정, 다수면 혼합정이 최선이다. 그가 현실적 최선으로 제시한 것은 혼합정이었으며, 그 핵심은 생계에 시달리지 않아 정치적 탁월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산층을 권력의 주체로 삼는 것이었다. "법가와 정치가는 본질적으로 교육가"라는 그의 말처럼, 시민이 탁월하게 훈련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정치가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독창성

탁월성이 습관화된 사람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타인의 좋음을 증진한다. 그저 자신의 좋음을 추구했을 뿐인데, 그것이 곧 이타적이고 정치적인 행위가 된다. 이기와 이타를 분리해 "남에게 봉사하라"고도, "남을 신경 쓰지 마라"고도 하지 않는 종합적 윤리학이라는 점에서 유니크하다.

맺음말 — 광장에서 체계로

이 긴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철학의 무게중심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체계로 이동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소피스트는 자연철학자들이 답하지 못한 근원의 물음을 접고, 시선을 눈앞의 인간과 광장으로 돌렸다. 그들의 상대주의는 공론장을 활성화하는 계몽의 순기능과, 진리 대신 승리만 좇아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역기능을 동시에 지녔다. 소크라테스는 그 상대주의에 맞서 모두가 동의할 보편적 기준을 세우려 했고, "무지의 지"와 문답법으로 인간의 아르케인 영혼을 발견했다.

플라톤은 스승의 "영혼을 돌보라"는 유언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데아라는 변하지 않는 세계를 세웠고, 그 위에 윤리·정치·우주론을 안정적으로 올려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데아를 초월적 세계에서 감각 세계로 끌어내려, 형상이 사물 안에 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참된 앎은 영원한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플라톤적 전제를 끝내 벗어나지 못해, 돌고 돌아 형이상학으로 회귀했다.

오늘날 우리는 정확한 과학적 사실을 위해 이들을 읽지 않는다. 시대적 한계로 틀린 내용도 많다. 그러나 첨단 기술로 모든 가치 기준이 모호해지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난제가 쏟아지는 지금, 좋은 삶을 위해 균형과 중용을 역설한 이들의 철학은 여전히 쓸모가 있다. 무엇보다, 실용적이지 않기에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엿보게 하는 철학의 힘은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