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밀 독해
엔비디아는 어떻게 컴퓨팅 회사가 되었나
가속기 회사의 구조적 함정, 셰이더에서 쿠다로 이어진 디딤돌, 지포스에 쿠다를 얹은 사활의 결정, 그리고 믿음으로 미래를 앞당기는 경영. 젠슨 황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논리를 분해한다.
한때 시가총액이 수십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었던 회사가, 오늘날 그 1,000배에 가까운 가치로 평가받는다. 무엇이 이 격차를 만들었을까.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는 한 장시간 인터뷰에서 그 답을 기교가 아니라 한 줄의 논리로 풀어낸다. 전문가로 남으면서도 범용 컴퓨팅 회사가 되는 일, 양립하기 어려운 두 목표 사이의 좁은 길을 한 걸음씩 걸어온 과정이다.
이 글은 렉스 프리드먼(Lex Fridman) 팟캐스트에 공개된 약 116분 분량 대화 가운데, 엔비디아가 그래픽 가속기 회사에서 컴퓨팅·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회사로 전환한 과정과 그 의사결정 방식을 다룬 전반부를 집중적으로 읽는다. 기술 용어가 등장하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도 따라올 수 있도록 핵심 개념마다 비유와 용어 설명을 곁들였다.
1.전문가의 함정
엔비디아는 처음부터 그래픽 처리 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를 만드는 회사였다. GPU는 화면을 그리는 계산을 전담하는 전용 칩, 곧 가속기(accelerator)다. 가속기의 장점은 분명하다. 한 가지 일에 극도로 최적화되어 있어 그 일만큼은 누구보다 빠르다. 모든 전문가가 누리는 강점이다.
문제는 그 강점의 이면에 있다. 전문화가 깊어질수록 다룰 수 있는 시장은 좁아진다. 그리고 시장의 크기는 곧 연구개발(R&D, Research and Development) 여력을 결정하고, 연구개발 여력은 그 회사가 컴퓨팅 세계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를 결정한다. 좁은 전문성은 좁은 시장을, 좁은 시장은 작은 미래를 낳는다는 연쇄다.
그래서 엔비디아는 가속기에서 가속 컴퓨팅(accelerated computing)으로, 다시 범용 컴퓨팅 회사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범용 컴퓨팅 회사가 될수록 특정 작업에 대한 전문성은 옅어진다. 젠슨 황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두 단어를 의도적으로 충돌시켰다. 더 좋은 컴퓨팅 회사가 될수록 전문가로서는 약해지고, 더 깊은 전문가일수록 범용 컴퓨팅을 감당할 여력은 줄어든다.
엔비디아의 전략은 이 긴장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좁은 길을 한 걸음씩 걷는 것이었다. 전문성이라는 무기는 놓지 않으면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의 조리개(aperture)만 조금씩 넓혀 가는 방식이다.
외과 전문 병원과 종합병원을 떠올리면 쉽다. 전문 병원은 한 분야 수술만큼은 압도적이지만 환자층이 좁아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 종합병원은 환자는 많지만 어느 한 분야의 깊이는 흐려지기 쉽다. 엔비디아가 택한 길은 전문 병원의 수술 실력을 유지한 채, 진료 과목을 한 번에 하나씩만 늘려 가는 종합병원이 되는 것이었다. 욕심을 부려 한꺼번에 넓히지 않은 점이 핵심이다.
02 — 디딤돌 전략: 셰이더에서 쿠다까지
좁은 길을 걷는 방법은 디딤돌(stepping stone)이었다. 한 번에 컴퓨팅 회사로 도약하는 대신, 그래픽 칩 위에 프로그래밍 가능성을 한 단계씩 얹어 갔다. 젠슨 황이 설명하는 순서는 네 개의 디딤돌로 정리된다.
첫 번째 디딤돌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픽셀 셰이더(programmable pixel shader)였다. 그전까지 그래픽 칩은 정해진 방식으로만 화면을 그렸지만, 셰이더가 프로그래밍 가능해지면서 개발자가 칩의 계산 방식 일부를 직접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팅을 향한 첫걸음이다.
두 번째 디딤돌은 셰이더에 32비트 부동소수점(FP32, 32-bit Floating Point) 연산을 정식 규격에 맞게 넣은 것이었다. 이 단계가 결정적이었다. 정밀한 부동소수점 계산이 가능해지자, 그동안 중앙처리장치(CPU, Central Processing Unit) 위에서 스트림 프로세서나 데이터 흐름 처리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GPU를 발견했다. 자신들이 CPU용으로 짜 둔 계산 소프트웨어를 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GPU 위에서 돌려 볼 수 있겠다고 본 것이다.
세 번째 디딤돌은 그 FP32 위에 C 언어를 얹은 Cg(C for Graphics)였다. 그래픽 전용 언어이긴 했지만, 친숙한 C 문법으로 GPU를 다루게 했다는 점에서 다음 단계로 가는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네 번째 디딤돌이 바로 쿠다(CUDA, 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다. Cg가 걸어온 길 끝에서, GPU를 그래픽이 아닌 범용 계산에 본격적으로 쓰는 통합 플랫폼이 등장했다.
GPU - 화면 그래픽 계산을 전담하던 칩. 수천 개의 단순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강하다.
셰이더 - 화면의 각 픽셀이 어떤 색과 밝기를 가질지 계산하는 작은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가능'해졌다는 것은 그 계산 규칙을 개발자가 바꿀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FP32 - 소수점이 있는 수를 32비트로 표현해 계산하는 방식. 과학 계산과 머신러닝에서 요구하는 정밀도의 기본 단위다.
Cg - 그래픽용으로 만든 C 계열 언어. GPU 프로그래밍을 익숙한 문법으로 끌어들였다.
쿠다(CUDA) - GPU를 범용 계산기로 쓰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오늘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계산 대부분이 이 위에서 돌아간다.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다. 젠슨 황이 말하는 순서는 '논리적 전개'이지 정확한 연표는 아니다. 프로그래밍 가능한 셰이더는 2001년 무렵, Cg는 2002년경, 규격을 갖춘 FP32 셰이더는 2003-2004년, 쿠다는 2006-2007년에 등장했다. 디딤돌이라는 비유가 강조하는 것은 정확한 날짜가 아니라,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발판이 되었다는 인과의 사슬이다.
03 — 사활을 건 결정: 지포스에 쿠다를 얹다
쿠다를 만든 것과 쿠다를 보급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컴퓨팅 플랫폼의 성패는 개발자에게 달려 있는데, 개발자는 단지 성능이 좋다는 이유로 새 플랫폼에 오지 않는다. 그들이 모이는 곳은 사용자가 많은 곳, 곧 설치 기반(install base)이 큰 곳이다. 자기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설치 기반이 아키텍처의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요소라고 단언한다. 그는 두 가지 사례를 든다. 한쪽에는 x86이 있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은 아키텍처이지만, 오늘날 컴퓨팅을 정의하는 표준으로 살아남았다. 다른 쪽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과학자들이 아름답게 설계한 여러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계열 아키텍처가 있다. 설계는 빼어났지만 대부분 시장에서 사라졌다. 설계의 우아함이 아니라 설치 기반이 아키텍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지포스(GeForce)에 쿠다를 얹는 것이었다. 당시 엔비디아는 게임용 지포스 GPU를 한 해 수백만 개씩 팔고 있었다. 고객이 그 기능을 쓰든 안 쓰든, 모든 지포스에 쿠다를 넣어 모든 PC에 깔리게 했다. 그렇게 설치 기반을 미리 깔아 두고, 그 위에서 대학을 돌며 강의하고 책을 쓰고 쿠다를 가르쳤다. 사용자가 깔린 땅 위에 개발자를 불러 모으는 순서다.
새로 깐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된다. 길이 아무리 잘 닦여 있어도 주변에 마을이 없으면 아무도 다니지 않는다. 엔비디아는 먼저 전국의 모든 집 앞에 도로를 깔아 두는 쪽을 택했다. 당장은 그 길로 다니는 차가 없어 손해였지만, 일단 길이 모든 곳에 닿아 있으니 나중에 마을이 생기자 모두가 그 길을 쓰게 되었다. 도로망이 깔린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더 많은 길이 그곳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04 — 십 년의 골짜기
이 결정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랐다. 쿠다는 소비자용 제품인 지포스의 원가를 크게 끌어올렸고, 그만큼 회사의 매출총이익을 통째로 갉아먹었다. 젠슨 황은 그 시기 시가총액이 크게 무너져 한참을 바닥에서 기어 나와야 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도 지포스 위의 쿠다는 끝까지 지켜 냈다.
인터뷰의 자동 자막에는 시가총액이 '5억 달러(one half billion)'까지 떨어졌다고 나오지만, 이는 약 10배 어긋난 수치다. 2008년 저점의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대략 35억-40억 달러 수준이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제출 자료 기준 발행 주식 수가 약 5억6천만-6억1천만 주, 2008년 말 주가 저점이 6-7달러대였던 점을 곱하면 나오는 값이다.
원인도 단순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와 더불어, 노트북용 GPU 패키징 결함으로 약 1억9천6백만 달러의 보증 비용을 떠안은 사건(이른바 범프게이트)이 겹쳤다. 공식 인터뷰 기록에서 젠슨 황은 이 시기를 매출총이익률로 설명한다. 원가는 50퍼센트가량 올랐고 회사는 35퍼센트 안팎의 마진 구조였으며, 회복에 십 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덧붙이면, 인터뷰에서 그는 '쿠다가 나왔을 때 OpenCL(Open Computing Language)이 이미 있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쿠다가 2006년 발표로 조금 더 앞섰고 OpenCL 1.0은 2008년에 나왔다.
젠슨 황이 즐겨 쓰는 표현이 있다. 엔비디아는 '지포스가 지은 집'이라는 것이다. 쿠다를 세상 구석구석으로 실어 나른 것이 바로 지포스였기 때문이다. 연구자와 과학자들 상당수가 게이머였고, 대학 연구실에서 직접 PC를 조립하거나 PC 부품으로 클러스터를 꾸렸다. 그들이 지포스 위에서 쿠다를 발견했다. 그렇게 깔린 토대 위에서 2012년 무렵 딥러닝 혁명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엔비디아의 가치는 그 바닥과 견주면 약 1,000배 수준에 이른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시점에 회사는 4조 달러 규모를 넘어선 상태였다. 십 년의 골짜기를 견딘 베팅이 만들어 낸 격차다.
05 — 믿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경영
이런 도약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젠슨 황은 먼저 호기심을 든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추론의 사슬이 한 결론을 너무도 분명하게 가리키면, 그것을 마음속에서 믿게 된다고 말한다. 일단 믿으면 미래가 머릿속에서 너무 선명해져서 일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사이에 고통은 많지만, 믿는 바를 믿어야 한다고 그는 표현한다. 미래를 먼저 그려 내고, 그것이 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지를 추론하며, 거기에 어떻게 도달할지를 따져 나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그 믿음을 조직에 심는 방식이다. 많은 리더는 조용히 정보를 모았다가 어느 날 거창한 선언을 한다. 새해가 되면 완전히 새로운 계획, 대규모 조직 개편, 새 사명문과 로고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식이다. 젠슨 황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자기 생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그는 주변 모두에게 그것이 흥미롭고 중요하며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그때그때 분명히 알린다. 새로운 정보, 통찰, 엔지니어링 성과, 이정표가 나올 때마다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의 믿음 체계를 조금씩 다듬는다. 이사회에도, 경영진에도, 직원들에게도 매일같이 그렇게 한다.
그래서 어느 날 그가 '멜라녹스(Mellanox)를 인수하자' 또는 '딥러닝에 전력을 다하자'고 선언할 때면, 모두에게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결론으로 들린다. 이미 오랫동안 벽돌을 한 장씩 깔아 두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그 순간 직원들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묻는 듯한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뒤에서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날이 오기까지 모두의 믿음을 빚어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먼저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큰 배의 방향을 바꾸는 일에 가깝다. 키를 갑자기 꺾으면 배는 휘청이고 짐은 쏟아진다. 노련한 항해사는 목적지를 정한 순간부터 키를 아주 조금씩 돌려 둔다. 선원들은 매일의 작은 조정에 익숙해지고, 마침내 항로가 분명해질 때쯤이면 배는 이미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 방향 전환의 선언은 마지막 형식일 뿐, 실제 회전은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엔비디아의 연례 행사 GTC(GPU Technology Conference)의 기조연설을 시간순으로 되짚어 보면, 그가 파트너와 업계, 직원의 믿음을 어떻게 미리 빚어 왔는지가 드러난다.
06 — 정리: 다섯 문장
- 가속기의 깊이와 컴퓨팅의 넓이는 본질적으로 충돌하며, 엔비디아의 전략은 그 사이의 좁은 길을 한 걸음씩 걷는 것이었다.
- 셰이더에서 FP32, Cg를 거쳐 쿠다에 이른 디딤돌 전략은 도약이 아니라 발판을 쌓는 인과의 사슬이었다.
- 아키텍처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설계의 우아함이 아니라 설치 기반이며, 지포스에 쿠다를 얹은 결정이 그 원리를 실행에 옮긴 사례다.
- 그 베팅에는 십 년에 걸친 손실의 골짜기가 따랐고, 그것을 견뎌 낸 끝에 딥러닝 시대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 큰 결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래를 먼저 믿고, 그 믿음을 조직에 매일 조금씩 심어 선언의 순간을 당연하게 만드는 경영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