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분석 · 수학과 인공지능

지식이 공짜가 된 시대,
지능은 무엇으로 남는가

정수론의 대가가 인공지능 앞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좌절이었다. 그는 몇 달 뒤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줄곧 지능을 잘못 재 왔다는 것이다.

수학자 켄 오노(Ken Ono)의 강연을 출발점으로 삼되, 그가 언급한 인물과 사건을 공개된 자료로 따로 확인하고 배경을 보태어 정리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과 교육을 둘러싼 그의 주장을 검토한다.


Part 01 — 인물

대가는 왜 제자의 회사로 갔나

켄 오노는 정수론, 그중에서도 인도 수학자 라마누잔이 남긴 문제들을 평생 파고든 학자다. 라마누잔 합동식과 분할수, 엄브럴 문샤인 같은 난해한 영역에서 이름을 알렸고, 버지니아대학교 석좌교수로 30명이 넘는 박사를 길러냈다. 한때 그는 강연을 이런 농담으로 열곤 했다. 자신은 AI가 아니라 NI, 곧 '천연 지능(Naturally Intelligent)'이라는 것이다. 수영 선수의 영법을 분석하고 맥주 광고에 출연한 이력까지 있는, 다방면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학교를 휴직한 채 실리콘밸리의 AI 스타트업 액시엄 매스(Axiom Math)에서 '창립 수학자'로 일한다.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은 그의 옛 제자 카리나 홍(Carina Hong)이다. 스탠퍼드에서 수학 박사 과정과 법학 학위를 동시에 밟던 20대 중반의 인물로, 한 수학 평가 프로그램의 비공개 후원 논란을 공론화하며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회사가 내건 목표는 도전적이다. 알려진 수학 문제를 추론하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며, 그 답을 형식 증명으로 스스로 검증하는 'AI 수학자'를 만드는 것이다. 한때 인공지능 회의론자였던 노학자가 그 깃발 아래로 옮겨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Part 02 — 좌절

기계가 얼마나 아는지 마주한 순간

전환점은 '프런티어 매스(Frontier Math)'라는 평가였다. AI 연구기관 에포크 AI(Epoch AI)가 세계 60명이 넘는 직업 수학자를 모아, 최신 모델조차 풀지 못할 만큼 어려운 문제를 짜내게 한 프로젝트다. 출제 의도부터가 모델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 데 있었다. 실제로 이 평가가 처음 공개됐을 때 최고 수준의 모델조차 문제의 2퍼센트도 풀지 못했다.

오노에게 주어진 임무도 그런 문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출제대 앞에 서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애를 먹었다. 그가 충격을 받은 지점은 모델이 문제를 푸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모델이 인간이라면 평생을 들여 모을 분량의 수학적 사실을, 이미 손안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풀이의 깊이에서는 여전히 빈틈이 있었지만, 아는 것의 양과 넓이에서는 이미 어떤 인간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가 받은 인상은 에포크 AI 스스로가 적어 둔 관찰과도 겹친다. 기계의 수학 지식 폭이 이미 최상위 인간을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몇 달간 한 가지 질문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하면 내가 AI보다 계속 앞설 수 있을까. 그러다 그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결론지었다. AI보다 앞서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한, 인간은 결국 진다는 것이다.

비유

우사인 볼트와 오토바이

아무도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사인 볼트가 오토바이와 겨루는 경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애초에 공정한 경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올림픽을 본다. 기계가 모든 신체 능력에서 인간을 앞선다는 사실을 우리는 진작 받아들였고, 그래도 인간의 달리기는 의미를 잃지 않았다.

오노가 말하려는 것은, 같은 일이 이제 '머리'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일은 기계와 같은 트랙에서 더 빨리 달리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목을 찾는 것이다.

Part 03 — 다시 보기

가장 비범한 사서, 그러나 사서일 뿐

그렇다면 대규모 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이하 LLM)의 정체는 무엇인가. 오노는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비범한 사서(司書)에 비유한다. 글로 적힌 것이라면 거의 다 읽었고, 영상으로 올라온 것이면 학습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오늘 아침 신문 기사도 오후면 이미 봤을 존재다. 정보를 모으는 능력에서 인간이 이길 길은 없다.

비유

사서를 외과의로 앉히겠는가

도서관의 사서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사서에게 당신의 뇌수술을 맡기겠는가. 머리 위로 수백 대의 비행기가 오가는 하늘의 관제를 맡기겠는가.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많이 아는 일과, 그 앎으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일은 전혀 다른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노가 말하려는 것은 분명하다. LLM이 채운 것은 '사서의 자리'이지 '판단의 자리'가 아니다.

그가 던지는 한 문장이 핵심을 요약한다.

지식은 싸졌다. 그것을 어떻게 쓰고 검증하느냐가 비싸졌다.— 켄 오노

정보와 지식 자체는 흔해졌다. 그래서 값이 떨어졌다. 반대로 그 지식을 엮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옳은지 가려내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오히려 더 귀해졌다. AI 시대에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치가 놓인 자리가 옮겨간 것이다. 아래 그림이 그 이동을 한눈에 보여 준다.

지식은 흔해지고, 가치는 옮겨갔다 기계가 잘하는 것 지식 — 저장과 인출 세상에 적힌 거의 모든 글을 읽음 사실 암기와 정보 인출 압도적인 속도와 분량 지치지 않는 검색과 정리 → 값이 싸졌다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손에 넣는다 인간에게 남는 것 지능 — 생성과 판단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힘 분야를 넘나드는 패턴의 전이 기회의 순간을 알아보는 눈 옳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결과를 검증하고 책임지는 판단 → 값이 비싸졌다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자리 값이 옮겨간 만큼, 인간이 설 자리도 함께 옮겨갔다.
지식의 값은 떨어지고, 그것을 쓰고 검증하는 일의 값은 올랐다. AI 시대에 인간의 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Part 04 — 재정의

지능은 암기가 아니라 창조다

좌절을 지나며 오노의 지능관(知能觀)은 바뀌었다. 추론하고 올바른 추리를 해내는 능력 — 그것을 빠르게 하든 느리게 하든 — 은 더 이상 핵심이 아니다. 그가 다시 정의한 지능은 사실의 되뇌임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는 몇 가지를 꼽는다. 새로운 개념을 창조할 수 있는가. 여러 개념을 깊이 있게 엮어낼 수 있는가. 한 분야에서 알아본 패턴을 다른 분야로 옮겨 그쪽을 전진시킬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가 — 그것이 하나의 산업이든, 컴퓨터 프로그램이든, 완전히 새로운 학문 영역이든. 이런 깊은 지능은 학교의 어느 단계에서도 좀처럼 측정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기회를 알아보는 눈'이다. 5년 전이라면 그는 위대한 발견을 두고 "그저 적절한 때 적절한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 깎아내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본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그 관측을 해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본인이다. 알아챌 만한 기회를 알아보는 것, 그 자체가 천재성이라는 것이다. 자기 분야를 매일 한 걸음씩 파고들어 끝내 그 좁은 영역의 전문가가 되는 끈질김 역시, 우리가 반드시 알아봐 줘야 할 또 하나의 지능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Part 05 — 라마누잔

발견되지 못한 천재라는 문제

왜 그는 '알아봄'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길까. 답은 그의 뿌리에 있다. 그 뿌리에는 한 세기 전의 인도 수학자, 라마누잔이 있다.

맥락

라마누잔이라는 실화

1887년 인도에서 태어난 라마누잔은 정식 수학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독학자였다. 수학에 빠져 다른 과목을 돌보지 않은 탓에 대학 장학금을 잃을 만큼 어긋난 길을 걸었지만, 1913년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G. H. 하디에게 증명도 없는 정리 수십 개를 편지로 보냈고, 그 천재성을 알아본 하디가 이듬해 그를 케임브리지로 불러들였다.

그는 1918년 왕립학회 회원과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로 선출된 첫 인도인이 되었고, 노트에 약 3,900건의 결과를 남겼다. 그러나 병약했던 그는 1919년 귀국한 뒤 1920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망인 자나키 암말은 그의 원고를 지켜 후대 연구에 넘겼고, 훗날 전기 『무한을 본 남자(The Man Who Knew Infinity)』와 동명의 영화가 그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오노에게 이 이야기는 책 속의 일화가 아니라 가족사였다. 그는 수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가 정해 둔 길 위에 있었다. 세 형제 가운데 맏형은 피아니스트, 막내인 자신은 수학자, 그리고 수학에도 음악에도 재능이 없다는 평을 들은 가운데 형 산타 오노(Santa Ono)는 "그냥 은행에 취직해 먹고살라"는 말을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은 가운데 형을 분발하게 했고, 그는 훗날 미시간대학교 총장(2022-2025년 재임)에까지 올랐다.

정작 막내 오노는 어긋났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되기 싫었던 것이 부모가 바라는 모습이었고, 그는 결국 학교를 중퇴한 채 1984년 4월에는 집을 떠나 다시는 부모를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100년은 묵은 듯 누렇게 바랜 종이에 적힌 그 편지는, 라마누잔의 미망인 자나키 암말이 보낸 것이었다. 라마누잔을 기리는 동상 건립에 작은 성금을 보낸 아버지에게 전하는 감사의 글이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아버지가 그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렸고,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노는 훗날에야 아버지가 그토록 마음을 빼앗긴 까닭을 이해했다. 전쟁의 시대에 대학을 다닌 아버지에게, 식량 배급 줄에서 벗어나는 통로가 수학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일본의 대학을 재건하려 보낸 수학자들 가운데, 아버지는 한 학회에서 프린스턴의 교수에게 발탁되어 학자의 길을 열었다. 명문대를 나온 완벽한 우등생이 아니라, 대학을 중퇴한 사람도 영웅일 수 있다는 것 — 반항하던 막내에게는 바로 그 점이 필요했다.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학 시절 형편없는 학생이던 오노는 졸업을 앞두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라마누잔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로잡혔고, 곧 라마누잔의 연구에 기대어 박사 논문을 쓰기로 한다. 그가 다룬 것은 '갈루아 표현론(Galois representations)'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20세기 수학의 최대 사건이라 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증명의 한복판에 바로 그 갈루아 표현론이 있었다. 앤드루 와일스가 1993년 케임브리지에서 이 증명을 처음 발표할 때 강연 제목이 「모듈러 형식, 타원곡선, 그리고 갈루아 표현」이었을 정도다. 라마누잔의 외진 수학을 들여다보던 도구가, 350년 묵은 난제의 해법과 맞닿아 있던 셈이다.

라마누잔이 한때 거의 잊혔다는 사실에서 오노는 한 가지 질문을 길어 올린다. 그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어디에 있었을까. 이 질문은 자기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 위 어딘가에 아직 발견되지 못한 또 다른 라마누잔이 걷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특권의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찾고, 찾은 뒤에는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오노는 한동안 '라마누잔의 정신(Spirit of Ramanujan)'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발굴되지 않은 재능을 찾았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 초기 수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그의 연구 프로그램에서 함께한 제자, 카리나 홍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제자가 세운 회사에서 일한다. 발견의 사슬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발견의 사슬 — 희망은 어떻게 이어졌는가 라마누잔 1887-1920 · 인도 독학 천재 하디가 알아보다 노트 약 3,900건 다카시 오노 전후 일본 수학자 켄 오노의 아버지 라마누잔에게서 '희망'을 보다 켄 오노 강연자 · 수학자 라마누잔 연구로 박사 갈루아 표현론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카리나 홍 켄 오노의 제자 '라마누잔의 정신' 장학생 Axiom Math 창업 Axiom Math AI 수학 스타트업 'AI 수학자'를 만드는 회사 켄 오노 = 창립 수학자 제자였던 창업자가, 스승을 고용하다
라마누잔에게서 시작된 영감이 아버지 다카시 오노를 거쳐 켄 오노에게로, 다시 제자 카리나 홍과 액시엄 매스로 이어진다. 점선은 그 사슬이 한 바퀴를 돌아 닫힌 지점을 가리킨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라마누잔처럼 생산적인 방식으로 창조해낼 잠재력은 우리 모두 안에 있다. 다만 모든 연령의 학생에게 두 가지를 줘야 한다. 호기심에 따라 움직일 용기, 그리고 그 호기심을 품어 줄 시스템이다.

Part 06 — 교육

지식이 공짜인 시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오노는 한국과 미국을 가리지 않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어쩌면 중학교에서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 좋은 시험 점수 — 그러나 그것이 단지 채워야 할 칸이기 때문에 매달리는 것이라면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시스템에 참여하지 말라는 순진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한 번쯤 멈춰 서서 자각하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출발점은 따로 있다. 자신이 사는 세계를,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비유

아이의 블록 쌓기는 곧 과학이다

갓난아이와 블록을 쌓으며 노는 일을 떠올려 보자. 아이는 블록을 쌓아 올렸다가 무너뜨리고, 깔깔 웃고, 다시 쌓는다. 자기가 중력을 배우는 줄도 모르면서, 사실은 중력을 배우고 있다.

아이에게 놀이는 그대로 과학이다. 미래나 평판을 걱정하지 않고 세계를 알아가는 그 경이로움을, 오노는 병에 담아 두고 싶다고 말한다. 세상이 다 새로워 보이는 아이의 그 감각을 어른이 되어서도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식이 공짜가 된 현실은 교육의 셈법을 흔든다. 미국에서 대학에 1년 다니는 데 8만 달러가 들 수 있다. 그런데 그가 털어놓는 '불편한 비밀'은 이렇다. 책으로 배우는 학문적 지식이라면, 그 대부분을 LLM에게서 자기 속도에 맞춰, 어쩌면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 LLM이 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 그 분야에서 옳은 질문이 어떻게 길어 올려졌는지, 그리고 다음에 던질 질문이 무엇인지 — 이것은 책에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대학에 가고, 여전히 교수가 필요하다. 반대로 개인 교습이나 정밀한 반복 학습 같은 나머지는 AI가 충분히 도울 수 있다고 그는 본다.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잃어버린 경이다. 부모 초청의 날, 유치원이나 1학년 교실에 가 보면 아이들은 "저는 소수(素數)를 다 알아요", "저는 덧셈을 진짜 잘해요"라며 신이 나 있다. 그 경이와 에너지를 어떻게든 지켜낼 수 있다면 — 그러나 우리가 평범한 시험에서의 완벽함과 속도만을 떠받든다면, 실험실에서 "혹시 이게 참일까" 하고 혼잣말하던 다음 세대의 아인슈타인을 어떻게 길러내겠느냐고 그는 묻는다.

그 반대편 끝에는 그가 '연옥'이라 부르는 풍경이 있다. 미국에서는 학부를 마치며 15만 달러의 빚을 지고, 전문대학원에서 다시 20만 달러를 더 얹은 뒤, 3년이 지나서야 "나는 피를 보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미 빚 때문에 그 직업을 떠날 수 없다. 그때 삶은 청구서를 갚으려 출근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Part 07 — 정체성

당신의 정체성은 누구의 것인가

강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는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의 정체성은 누구의 것인가. 오노의 대답은 단호하다. 당신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열정을 좇을 허락을 스스로에게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허락이 어디선가 자꾸 사라진다.

학부 강의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묻곤 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학생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 학생은 면담 시간에 찾아와 "교수님은 제가 뭐라고 쓰길 바라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답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라고. 자신은 학생에게서,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듣고 싶다고.

당신의 정체성은 누구의 것입니까. 당신의 것입니다.— 켄 오노

여기서 AI 이야기와 교육 이야기가 한 줄로 묶인다. 지식이 흔해진 것은 인간을 작아지게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자리 —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분야를 가로질러 패턴을 옮기고, 결과를 판단하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누군가를 알아보는 일 — 로 우리를 밀어 놓는다. 가장 뛰어난 과학자도 여전히 세계를 경이로운 것으로 바라봐야 하고, 가장 뛰어난 의사도 자신의 일이 선의에서 나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좌절에서 출발한 강연이 끝내 도착한 곳은 비관이 아니었다. 기계가 더 많이 아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은 몫은,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만의 것이었던 그 자리 — 호기심을 따를 용기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소유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