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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 창업

입장이 아니라 이해관계
창업가를 위한 협상의 기본기

대부분의 신생 기업은 기술이나 자금이 아니라 사람 문제로 무너진다. 공동창업자와의 첫 대화부터 회사 간 계약 분쟁까지, 평생 쓰는 협상의 뼈대를 정리한다.

출처: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15.393 “Nuts and Bolts of New Ventures” 협상 세션(강사 Mindy Garber, MIT 공개강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고 도식을 새로 구성했다.

창업 강의의 단골 명제가 있다. 대부분의 벤처는 기술이 부족하거나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깨져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두 창업자가 끝내 서로를 견디지 못하면 그 지식재산은 그대로 사장된다. 이 강의는 그 명제를 출발점으로 삼아, 협상을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대화의 기술’로 다룬다.

강사는 자신을 엔지니어이자 조정가(mediator)라고 소개한다. 음성인식 회사를 공동 창업했고, 이후 분쟁을 중재하는 일을 해 왔다. 그가 말하는 두 직업의 차이가 이 글 전체의 태도를 압축한다.

비유 · 엔지니어와 조정가

엔지니어는 모든 사실을 모아 하나의 최적해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반면 조정가는 정답을 들고 오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그동안 서로 하지 못했던 대화를 하도록 돕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풀게 만드는 것이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옳은 답을 제시해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이다.

1협상을 보는 두 가지 시선

협상에는 크게 두 관점이 있다. 하나는 제로섬(zero-sum), 곧 승패 게임으로 보는 시선이다. 내가 얻으면 그만큼 상대가 잃는다고 전제하며, 상대와의 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른 하나는 협업으로 보는 시선이다. 협상을 두 사람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보고, 관계 자체를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다. 이 강의가 따르는 관점은 후자이며, 그 바탕에는 하버드 협상 프로그램에서 나온 고전 ‘Getting to Yes’(Roger Fisher, William Ury)가 있다.

승패 게임의 함정은 ‘한 번 보고 끝’이라는 착각이다. 현실에서 그런 협상은 거의 없다. 오늘 짓밟은 상대가 다른 회사로 옮겨 가 다시 마주칠 수 있고, 다시는 우리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평판은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다. 그래서 강의는 ‘원칙 있는 협상가’가 되라고 말한다. 한 번의 이득보다 반복되는 신뢰가 길게 보면 더 크다.

이 절의 요점 협상은 한 번의 승부가 아니라, 평판이 누적되는 반복 게임이다.

2입장과 이해관계 — 협상의 핵심 구분

협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상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는 것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필요와 목표와 바람과 두려움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자기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조차 모른 채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여기서 두 단어를 구분해야 한다. 입장(position)은 겉으로 내건 요구이고, 이해관계(interest)는 그 요구 뒤에 숨은 진짜 이유다. 강의가 든 예가 직관적이다. 누군가 “500달러를 달라”고 한다. 이것이 입장이다. 왜냐고 물으면 “당신 차가 내 울타리를 부쉈고, 고치는 데 500달러가 든다”고 한다. 진짜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멀쩡한 울타리, 곧 울타리 수리다. 이것이 이해관계다.

차이가 왜 중요한가. 입장만 보면 협상은 500달러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울타리 수리’임을 알면 새로운 선택지가 열린다. “내 동생이 울타리를 고친다. 새것처럼 만들어 줄 테니 당신은 한 푼도 안 내도 된다”고 제안할 수 있다. 입장은 하나였지만 이해관계를 알자 해법이 여러 개로 늘어난 것이다.

수면 입장 이해관계 입장 (Position) · 겉으로 내건 요구 “500달러를 달라” 이해관계 (Interest) · 진짜 원하는 것 왜? 망가진 울타리를 고쳐야 한다 그러면 해법이 늘어난다 예) 이웃이 무료로 고쳐 줄 수도 → 한 푼도 안 쓰고 해결
겉으로 보이는 것은 입장이고, 수면 아래에 진짜 이해관계가 있다.

엔지니어에게 익숙한 예도 나온다. “이건 C++로 짜야 한다”는 주장은 입장이다. 왜냐고 물으면 “다른 언어를 새로 배우면 여섯 달이 걸리지만 C++는 이미 알아서 3주면 된다”고 한다. 진짜 이해관계는 특정 언어가 아니라 ‘빨리 끝내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드러나면, 그 언어를 고집할 이유도 함께 풀린다.

비유 · 빙산

입장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 끄트머리를 두고 다툰다. 그러나 빙산의 대부분은 물 아래 잠겨 있고, 협상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그 아래의 이해관계다. 물 위만 깎아 내면 또 다른 끄트머리가 떠오를 뿐이다. 물 아래를 보면, 같은 이해관계를 채우는 길이 하나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절의 요점 입장은 하나지만, 그 뒤의 이해관계를 알면 해법은 여러 개가 된다.

3이해관계 원 — 머릿속을 한 페이지에

이해관계를 다루는 단순한 도구가 하나 있다.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안에 나와 상대를 그린 뒤, 각자의 이해관계를 적어 넣는 것이다. 강의는 이를 ‘이해관계 원(circle of interest)’이라 부른다. 핵심은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이해관계를 말 그대로 한 페이지에 모으는 데 있다.

이해관계 원 관계 유지 공정한 보상 평판 보호 상대 예산·현금 신속한 마무리 위험 회피 모든 이해관계를 한 페이지에 모아 본다
나와 상대의 이해관계를 한 원 안에 적어 두면, 보이지 않던 접점이 드러난다.

강의가 멘토링한 두 창업자 사례가 이 도구의 쓸모를 보여 준다. 강사가 각자에게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묻고 답을 받아 적어 나란히 놓자, 두 사람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둘 다 같은 아이디어를 하고 싶어 했지만, 정작 상대가 왜 그것을 하려는지는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적어 보기 전까지는 모두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 절의 요점 머릿속에만 있던 이해관계를 한 페이지에 적어 두면, 안다고 착각했던 빈틈이 드러난다.

4창업가가 마주하는 세 가지 협상

창업가는 한 종류의 협상만 하지 않는다. 강의는 이를 세 겹으로 나눈다. 먼저 공동창업자와 협상하고, 회사가 자라면 회사 내부에서 상사·동료·회사를 상대로 협상하며, 결국 다른 회사들과 협상한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권력의 차이, 법적 문제, 여러 당사자, 더 높은 수준의 비밀유지가 끼어든다. 그러나 도구는 같다. 어느 단계든 이해관계 원을 그리는 데서 시작한다.

공동창업자 한 회사 안, 두 사람 지분·역할·합의서 회사 내부 상사·동료·회사 승진·자원·책임 회사 간 고객·협력사·경쟁사 계약·납품·분쟁 협상의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같은 사람도 단계마다 다른 협상을 한다. 공동창업자에서 출발해 회사 안, 다시 회사 밖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4-1. 공동창업자와의 협상

모든 협상 중 가장 먼저, 가장 자주 미뤄지는 것이 공동창업자와의 협상이다. 강의는 세 가지 첫 질문을 권한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셋째 질문이 특히 중요하다. 누군가는 대학원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좋은 회사의 입사 제안을 포기했다. 상대가 무엇을 걸고 들어왔는지 알아야 그 사람의 절박함과 기대를 이해할 수 있다.

질문만큼 중요한 것이 듣는 방식이다. 답을 듣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그러니까 당신은 이 분야의 과학을 진전시키려고 이걸 하는군요” 하는 식으로 되짚어 주는 것이 좋다. 이 적극적 경청과 재진술을 거치면 양쪽 모두 ‘내 말이 들렸다’고 느낀다. 들렸다는 감각이 협상의 토대가 된다.

좋은 공동창업자를 어떻게 고르느냐는 질문도 자주 나온다. 강의의 답은 신중하다. 같은 기술을 가진 두 사람이면 함께 창업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핵심은 서로의 역량과 성격을 솔직히 평가하고, 우리에게 없는 스킬이 무엇인지 알아 그것을 보강하는 데 있다. 회사를 세우는 데는 한 가지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창업자 합의서(founders agreement)다.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기여하는가, 지분은 어떻게 나누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 한 명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기여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며 바뀐다. 초기에는 발명자가 거의 모든 일을 하지만, 회사가 자라면 다른 사람들의 몫이 커진다. 그러니 무엇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 진짜 대화를 나누고, 그 결론을 적어 두어야 한다.

마지막은 팀 합의서(team agreement)다. 둘 이상이 함께 일하면 그 자체로 팀이고, 어떻게 함께 일할지를 미리 적는 것이 팀 합의서다. 어떤 문화를 만들 것인가(회사의 윤리와 행동 규범), 역할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의견이 갈리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첫 직원들이 알아서 회사의 문화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합의는 한 번 적고 끝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다시 본다. 강사는 6개월마다 공동창업자 점검을 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팀으로서 어떻게 협력하고 있느냐를 점검하는 자리다.

이 절의 요점 합의서의 진짜 가치는, 갈등이 생겼을 때 “우리가 이렇게 정했다”고 말할 공통 언어를 미리 마련해 두는 데 있다.
사례 1

5. 산드라와 학생들 — 합의를 미룬 대가

실제로 MIT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드라는 원유를 값싸게 정제하는 방법을 발명한 박사다. 다만 시제품은 한 번에 원유 한 컵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이 발명을 전해 들은 학부생 몇 명이 산드라를 소개받았고, 마음이 잘 맞아 교내 창업 경진대회(100K 대회)에 나가 회사를 차려 보기로 했다. 그런데 발명자와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한 번도 문서로 남겨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사업계획서를 맹렬히 써 내려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형 정유사 임원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었으며, 때로는 본업인 학업까지 뒷전으로 미룰 만큼 매달렸다. 그런데 대회 직전, 산드라가 발을 빼려 한다. 발명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두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어긋남이 분명하다. 산드라는 한 컵을 하루 수백만 갤런으로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확장 가능성 자체가 불확실했다. 문서화된 합의도 없고, 학생들이 회사를 운영할 역량이 있는지도 미덥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것은 그녀의 발명이었고, 그녀는 자기 지식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 — 지식재산권)과 자신의 평판을 지키고 싶어 했다. 반면 학생들은 박사 학위를 가진 산드라를 우러러보았고, 합의서 같은 불편한 주제를 꺼내기를 꺼렸다. 노력으로 증명하면 다 잘 풀릴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강의실에서는 양쪽의 이해관계를 함께 적어 보는 연습을 했다. 학생들의 이해관계로는 창업 경험, 임원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것, 세상에 도움이 되는 새 기술을 내놓는 것, 이력서 한 줄과 향후의 진로, 그리고 쏟아부은 시간에 대한 보상이 나왔다. 산드라의 이해관계로는 지식재산권 보호, 통제권, 그리고 확장 가능하고 믿을 만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평판 부담이 나왔다. 정답을 맞히는 연습이 아니라, 같은 상황을 양쪽 눈으로 동시에 보는 연습이었다.

실제로는 어떻게 됐을까. 둘은 끝내 어떤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가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는지조차 제대로 말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산드라는 발명을 들고 전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회사를 차렸다. 강사가 중립적인 조력자로 대화를 도와주겠다고 거듭 제안했지만, 학생들은 “괜찮아요, 열심히 하면 잘 될 거예요”라며 사양했다. 학생들은 모두 졸업해 좋은 경력을 쌓았으니 값진 학습 경험이었다고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회사는 끝내 그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이 사례의 요점 관계가 좋을 때, 일이 잘 풀릴 때 이해관계를 꺼내 놓고 문서로 남겨야 한다. 불편해서 미룬 대화는 사라지지 않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비용으로 돌아온다.

650 대 50의 함정과 의사결정 규칙

공동창업자 지분을 정확히 절반씩 나눈 50 대 50 구조는 가장 공평해 보이지만, 의견이 갈렸을 때 누구도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강의는 이 교착을 어떻게 풀지를 수강생들에게 직접 물었고, 현장에서 여러 방법이 나왔다.

첫째는 시간을 두고 식힌 뒤 솔직하게 다시 논의하는 것이다. 방을 나서면 아무것도 담아 두지 않기로 약속하고, 함께 식사를 하거나 자리를 옮겨 진짜 속내를 털어놓는다. 둘째는 처음부터 합의서에 ‘의견이 갈리면 이렇게 한다’는 규칙을 적어 두는 것이다. 셋째는 중립적인 제3자 — 전문가나 컨설턴트 — 의 의견을 따르기로 미리 합의해 두는 것이다. 어떤 회사는 결정권자 역할을 번갈아 맡기도 한다.

가장 실용적인 기준으로 나온 것이 결정의 되돌릴 수 있음, 즉 가역성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one-way door — 일방통행 문)처럼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이라면, 투자와 숙고를 충분히 들이고 외부 자문을 구하며 함께 신중하게 정한다. 반대로 양방향 문(two-way door — 양방향 문)처럼 언제든 되돌아올 수 있는 결정이라면, 일단 정해 실행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쪽 의견으로 바꾸면 된다. 결정의 무게와 가역성에 따라 의사결정 비용을 달리 쓰자는 것이다.

강사는 이 대목에서 변호사 친구의 조언을 전한다. “절대 50 대 50으로 두지 마라. 51 대 49로 만들어라.” 그러면서 동업자끼리 소송을 벌이고 법정에서 다투기까지 한 사건들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강사는 웃으며 받아쳤다. 자신이 만난 사람의 100%가 50 대 50이더라고. 그러니 그들이 변호사를 찾는 일을 피하도록 도구를 쥐여 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 이 강의의 출발점이라고.

이 절의 요점 지분을 어떻게 나누든, 교착이 생겼을 때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50 대 50은 갈등의 비용을 키운다. 결정의 가역성에 따라 들이는 공을 조절하는 것이 현실적인 규칙이다.
사례 2

7. 리틀 잉크 대 빅 잉크 — 첫 제안이 최선의 제안일 때

이번엔 강사 자신이 겪은 회사 간 협상이다. 강사 쪽은 직원 20명짜리 리틀 잉크(Little Inc.), 상대는 약 1만 명 규모의 빅 잉크(Big Inc.)였다. 두 회사는 빅 잉크가 비용을 미리 전부 치르는 고정가 계약을 맺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빅 잉크가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해지하면 리틀 잉크가 이미 한 작업에 대해 시간과 자재 비용을 쳐 준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그 정산 조항이 너무 모호해서,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얼마를 줄지 알아낼 것’이라는 식이었다. 아무리 두꺼운 계약서도 모든 상황을 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빅 잉크가 계약을 해지한 것은 리틀 잉크의 일이 부실해서가 아니었다. 빅 잉크 자신이 재정난을 겪어 모든 계약을 해지하던 중이었고, 리틀 잉크는 그중 작은 건 하나였을 뿐이다. 빅 잉크는 “돈을 좀 돌려받아야겠다. 얼마인지는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만 통보했다.

리틀 잉크 쪽 회의에는 영업 담당, 최고재무책임자(CFO, Chief Financial Officer — 최고재무책임자), 그리고 서비스 관리자였던 강사가 모였다. 처음엔 각자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말만 오갔고 아무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강사가 제안했다. 상대를 만나기 전에 우리 쪽 이해관계를 모두 적고, 상대의 이해관계까지 헤아려 보고,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 공간을 먼저 그려 보자고. 그렇게 정리한 이해관계가 무려 세 페이지에 달했다.

이해관계는 사람마다 달랐다. 영업 담당은 자기 수수료와 후속 거래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고, 원래 계약은 공정했으니 우리가 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강사는 평판과 일자리, 그리고 오랜 고객과의 관계를 신경 썼다. 이 고객과는 다른 계약들도 진행 중이었기에 일회성 거래가 아니었다. 우리가 일을 제대로 했다는 점을 상대가 인정해 주기를 바랐고, 사안이 위로 번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최고재무책임자는 현금 흐름과 회계 처리(이미 매출로 잡은 돈을 되돌릴 수 있는지)를 걱정했고, 다윗과 골리앗처럼 일방적으로 짓밟히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이 합의한 두 가지가 있었다. 사안을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 — 최고경영자)에게까지 끌어올리지 말 것, 그리고 변호사를 끌어들이지 말 것. 변호사를 건당으로 써야 하는 리틀 잉크에는 너무 비싼 길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상대의 이해관계도 추정했다. 주주들에게 좋게 보이고 싶을 것, 관계를 이어 가고 싶을 것, 윗선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을 것.

회의 전날, 강사는 상대 담당자에게 전화해 힌트라도 달라고 졸랐다. 그는 답을 주는 대신 한 가지를 당부했다. “응답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 달라.” 다음 날, 세 사람이 좁은 사무실에 작은 스피커폰을 두고 모였다. 공기에 긴장이 흘렀다. 인사가 끝나자 상대가 곧장 돌려받고 싶은 금액을 말했다. 최고재무책임자는 고개를 들어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왜 첫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미리 해결 공간을 계산해 두었고, 그 금액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이자 예상보다 나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진짜 이해관계는 관계를 지키는 것이었고, 한 번 밀어붙였다가 모든 것이 무너질지 알 수 없었다. 강사는 이 이야기를 가르칠 때마다 “수탁자 의무를 생각하면 한 번쯤은 밀어붙였어야 한다”는 반론을 듣는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 한 번 더 욕심을 냈다가 거래 전체가 무너지고 다시는 함께 일하지 못한 동료의 사례도 있다. 강사의 3M 출신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 제안이 최선의 제안일 때가 있다.” 받아들일 만하고 관계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후 분위기는 풀렸고, 두 회사의 관계는 여러 해 이어졌으며 빅 잉크는 이후로도 더 많은 일을 맡겼다.

강의에서 ‘해결 공간’이라 부른 것은 협상 이론에서 합의 가능 구간(ZOPA, Zone of Possible Agreement — 합의 가능 구간)이라는 정식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와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가 겹치는 구간이다. 리틀 잉크가 사전에 계산해 둔 것이 바로 이 구간이었고, 상대의 첫 제안이 그 안에 들어왔기에 곧바로 합의할 수 있었다.

합의 가능 구간 (ZOPA)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적게 돌려줌 많이 돌려줌 상대가 받아들이는 범위 상대의 첫 제안
두 범위가 겹치는 구간이 합의 가능 구간(ZOPA)이다. 상대의 첫 제안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오면, 더 밀어붙이지 않아도 좋은 합의가 된다.
비유

합의 가능 구간은 두 사람이 약속 장소를 정하는 일과 닮았다. 나는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을 원하고, 상대도 자기 동선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동네를 지도에 칠해 보면 겹치는 구역이 생긴다. 그 겹친 구역 안이라면 어디서 만나도 둘 다 불만이 없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미리 각자의 범위를 그려 두면, 상대가 던진 제안이 겹친 구역 안에 있는지 한눈에 보인다. 리틀 잉크는 그 지도를 미리 그려 두었기에 첫 제안에 곧바로 “알겠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었다.

이 사례의 요점 준비의 핵심은 우리 범위와 상대 범위가 겹치는 합의 가능 구간을 미리 계산해 두는 것이다. 그 구간을 알면, 욕심을 부려 관계를 깨뜨릴 위험과 좋은 합의를 받아들일 시점을 구분할 수 있다.

8이해관계를 드러내는 것 — 무기인가 다리인가

한 수강생이 핵심을 찔렀다. 서로 원하는 바를 분명히 밝히면 합의가 쉬워지지만, 그 정보를 상대가 무기로 쓸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디까지 열어 보여야 하는가. 강사는 두 이야기로 답했다.

첫째, 어떤 빅 잉크가 모두가 탐내는 지식재산권을 가진 리틀 잉크를 인수하려던 일이다. 그 작은 회사 대표를 만나는 데만 여섯 달이 걸렸다. 강사는 미리 그의 이해관계와 우리 이해관계, 할 말과 그가 할 법한 말을 모두 그려 보라고 조언했다. 막상 들어서자 상대는 인사도 없이 “원하는 게 뭡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당신의 지식재산이 세상에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실 것 같았다, 우리가 그 제품을 세상에 내놓도록 돕고 싶다”며 자신이 추측한 상대의 이해관계부터 꺼냈다. 일부는 빗나갔지만 상대가 직접 고쳐 주었다. “그건 아니고, 나는 이게 관심사다.” 그녀가 자기 이해관계가 아니라 상대의 이해관계에 관심을 보이고 함께 풀 문제로 다루자, 거래는 성사됐고 그녀는 승진했다.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갈랐다.

둘째, 3M 동료가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 미국의 정보기술 기업)과 벌인 협상이다. 양쪽 다 변호사를 잔뜩 거느린 채 한 발도 못 나가던 때, 그가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을 말해 보겠다”며 3M의 이해관계를 먼저 풀어놓았다. 그러자 상대도 돌아서 자기 이해관계를 꺼내기 시작했다.

강사의 판단 기준은 이렇다. 이해관계는 무기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공동의 문제를 풀려 한다면 이해관계를 나눌 수 있다. 다만 “이 거래가 안 되면 우리 회사는 망한다” 같은 약점은 드러내지 않는다. 협상을 앞으로 밀어 줄 것만 공유하고, 나를 무너뜨릴 것은 감춘다. 상대가 누구일지 모를 때는 직접 물어도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이루려는지 물으면, 상대가 답을 피하는 태도 자체가 협상이 어디까지 갈지를 알려 준다. 결국 한쪽에는 사소하지만 다른 쪽에는 값진 것을 찾아내는 일이 협상의 본질이다.

보충 개념

합의 가능 구간(ZOPA)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 협상 결렬 시 최선의 대안(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 협상이 결렬됐을 때 택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대안)이다. 강의에서 이 용어를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밀어붙였다가 모든 것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망설임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합의가 깨졌을 때 내게 남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알면, 어디까지 양보할지와 언제 자리를 떠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리틀 잉크에게 결렬의 대안은 변호사를 쓰고 관계를 잃는 것이었고, 그 대안이 첫 제안보다 나쁘다는 것을 알았기에 “알겠습니다”라는 답이 합리적일 수 있었다.

9요약 — 무엇을 챙길 것인가

강의가 남긴 실천 지침은 단순하다. 창업 단계에서는 공동창업자의 이해관계를 반드시 이해할 것. 결정한 것은 적어 두고 주기적으로 다시 볼 것 — 회사도 생각도 빠르게 바뀌므로 ‘우리가 왜 그렇게 정했더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협상에서는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할 것. 내 이해관계와 상대의 이해관계, 그리고 둘이 겹치는 해결 구간을 미리 그려 두는 만큼 협상은 쉬워진다. 그리고 회의에서 끝까지 들을 것. 듣다 보면 미처 몰랐던 상대의 이해관계가 드러나고, 거기서 새로운 합의의 실마리가 나온다.

강의 끝에 사회자가 덧붙인 경험도 같은 결을 가리킨다. 큰 회사와의 분할 매각 협상에서 상대 측 열 명이 회사 곳곳에서 날아왔는데, 서로 말을 맞춰 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한 시간을 비워 그들끼리 정리할 시간을 주었더니, 비로소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됐다. 협상은 내 이해관계를 챙기는 일인 동시에, 상대가 자기 내부의 이해관계부터 정리하도록 돕는 일이기도 하다.

출처: MIT OpenCourseWare, 15.393 Nuts and Bolts of New Ventures (2025 IAP), Session 4 Part 2 — Negotiation Skills, 강사 민디 가버(Mindy Garber). 강의의 핵심 사례와 표현을 한국어로 정리했다.

합의 가능 구간(ZOPA)과 협상 결렬 시 최선의 대안(BATNA)은 강의에서 언급된 ‘해결 공간’과 ‘물러설 곳’을 협상 이론의 표준 용어로 보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