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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 · 고대 그리스

근원을 묻다

신화의 시대가 저물고, 인류가 처음으로 세계를 이성의 언어로 다시 쓰기 시작한 약 150년의 기록. 탈레스의 물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까지,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자들이 던진 질문을 따라간다.

읽는 시간 약 20분 · 비전공자를 위한 개념 정리와 도식 포함


01 — 시작경이로움에서 철학으로

철학은 경이로움에서 시작되었다. 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 마른하늘의 벼락 같은 현상 앞에서 초창기 인류는 놀라움을 느꼈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경이로움이 곧바로 철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처음에 그것은 신화로 흘러갔다. 각각의 신이 맡은 영역에 따라 자연현상이 일어난다는 식의, 풍부하고 재미있지만 근거는 없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 방식을 그리스어로 미토스(mythos)라 한다.

최초의 철학자들은 미토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호기심을 풀려 했다. 신이라는 초월적 힘에 기대는 대신, 물리적 실체를 관찰하고 그 현상을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적 관계로 파악하려 한 것이다. 이 이성적 사유 방식을 로고스(logos)라 부른다. 세계를 의인화된 신들의 투쟁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실체의 인과로 설명하기 시작한 이 지점이, 인류 정신사의 전환점이었다.

미토스에서 로고스로신화적 설명에서 이성적 설명으로의 전환 미토스신화 - 이야기경이로움→ 신들의의지로 설명근거 없음 · 의미 모호전환로고스이성 - 논리관찰원인 · 결과아르케 가설세계를 신들의 투쟁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실체의 인과로 파악하기 시작한 지점
미토스에서 로고스로. 같은 경이로움을 두고, 신들의 의지로 답하던 자리에 관찰과 인과 추론이 들어선다.

아르케 - 변하는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것

신을 대신해 철학자들이 찾으려 한 것은 아르케(arche)였다. 아르케는 시작·근원·원리를 뜻하는 말로, 만물을 이루는 근본 물질이자 근본 원리를 가리킨다. 오늘날 '원형'을 뜻하는 아키타입(archetype)이나 '고고학(archaeology)' 같은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스어에는 '명령하다'라는 뜻의 동족 단어도 있어서, 도시의 집정관을 아르콘이라 불렀다. 집정관이 도시에 명령을 내리듯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는 근원적 무언가가 있지 않겠는가 - 이 질문에서 아르케라는 개념이 나왔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비유

아르케를 찾는 일은 식탁 위 수백 가지 음식을 몇 가지 기본 재료로 되돌려 보는 작업과 닮았다. 빵·국수·과자는 전혀 달라 보여도 그 바탕에는 밀가루와 물이라는 소수의 재료가 있다. 자연철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 뒤에도 그런 '기본 재료'가 있으리라 가정하고, 그것 하나로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아르케로의 환원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근원으로 환원 변화무쌍한 현상들바람생명아르케근원 · 원리하나(혹은 몇 개)의 변하지 않는 실체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
다양한 현상을 하나(혹은 몇 개)의 변하지 않는 실체로 환원하려는 시도가 곧 아르케 탐구다.

이것이 왜 사유의 혁명인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본 탈레스를 철학의 창시자로 지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왜 하필 그때였나

철학자들이 변하지 않는 근원을 찾으려 한 데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기원전 750년경부터 약 두 세기 동안, 그리스는 인구 증가로 비옥한 땅을 둘러싼 전쟁과 해외 식민 원정이 끊이지 않았다. 자다 일어나 전쟁터로 끌려가고, 곁에 있던 사람이 죽고, 어제까지 멀쩡하던 나라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격변에 사람들은 계속 노출되었다. 모든 계획이 무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는 삶의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허무가 찾아왔다.

이 격동의 시기에 그리스인의 정신은 두 갈래로 뻗었다. 한쪽에서는 사포와 아르킬로코스 같은 시인들이 사랑과 상실, 순간의 감정을 노래하는 서정시를 꽃피웠다. 다른 한쪽에서는 끊임없는 변화 한복판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하나, 곧 아르케를 찾으려는 철학적 시도가 싹텄다. 흔들리는 세계에 발 디딜 단단한 바닥을 구한다는 점에서, 아르케를 찾는 일은 결국 '진짜로 있는 것'을 찾는 일이었다.

비유

우리는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진짜'를 가려낸다. 수많은 뉴스 가운데 진짜 뉴스를,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진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자연철학자들이 현상 너머의 '실재'를 찾은 것은, 바로 이 충동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였다.

그렇다면 아르케 탐구는 과학인가 종교인가. 관찰과 법칙에 기댄다는 점에서 과학에 가깝지만, 현상 너머의 영원한 것을 찾는다는 점에서 종교적 색채도 있다. 다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종교가 믿음과 계시로 답을 얻는다면, 철학은 이성과 논쟁으로 답을 찾는다. 믿음이 아니라 회의에서 출발하며, 언제든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 - 이 점에서 철학은 종교와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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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 밀레토스 학파근본 물질을 묻다

최초의 철학은 이오니아 지방, 그중에서도 무역항 밀레토스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튀르키예 서부 해안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동방의 선진 문물이 그리스 본토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천문학·달력·기하학 같은 앞선 지식이 머물렀고, 상업이 발달해 계산에 밝은 합리적 사고가 자랐다. 무엇보다 그리스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특정 권력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전제군주나 사제 계급이 모든 담론을 쥐고 있는 곳에서는 자유로운 사상이 싹트기 어렵다. 한 해석에서는 이 '지배 없음'의 분위기가 바로 이오니아에서 철학이 시작된 토양이었다고 본다.

탈레스 - 만물은 물이다

기원전 6세기 초 · 밀레토스

탈레스는 만물을 이루는 물질이 무엇인가를 물은 최초의 인물이다. 항구도시에 살았던 그는 물이 얼음·눈·비·구름·안개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만물이 물이라는 주장은, 눈앞의 모든 것이 결국 물의 다른 형태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생명의 자양분이 축축하다는 점, 물 없이는 무엇도 살 수 없다는 점이 그런 추론의 근거였으리라고 후대는 분석한다.

황당하게 들려도 가볍게 넘기면 안 된다.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는 세계의 비밀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기원전 585년의 일식을 예측했다고 전해지고, 닮은꼴 삼각형을 이용해 그림자로 피라미드 높이를 쟀다고도 한다. 그런 그였기에 만물이 물이라는 결론도 즉흥적 직감이 아니라 관찰과 가설, 증명을 잇는 합리적 사유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그저 "세상이 물에서 나왔다"고 단언하던 신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탈레스의 의의 · 자연과 인간 지성 사이의 신화적 연결고리를 끊고, 세계를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처음 세웠다.

아낙시만드로스 - 무규정자, 아페이론

탈레스의 제자 · 서양 최초의 철학사가 시작되는 지점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며 자기 이론을 세웠다. 철학이 신화와 갈라지는 지점은 바로 이 비판에 있다. 믿음을 잇는 것이 아니라 앞선 생각을 따져 인식을 정교하게 만드는 것 - 탈레스에서 아낙시만드로스로 이어지는 이 비판의 고리가 서양 철학사의 첫 마디다.

그는 물었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면, 불은 왜 안 되는가. 그가 보기에 물·불·공기·흙은 대등한 지위를 가진다. 만약 물이 근원이라면 불은 진작 물에 꺼져 사라졌을 것이고, 불이 근원이라면 물은 증발해 버렸을 것이다. 어느 한 성질이 지나치게 강하면 나머지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근원이란 건조함·축축함·뜨거움 같은 특정 성질을 지녀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가 내세운 것은 우리가 감각으로 접하는 현상계 너머의 무언가, 곧 아페이론(apeiron)이다.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고 형체도 없으며 무한하다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무규정자 또는 무한정자로 옮긴다. 아르케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 바로 그다.

경험할 수 없는 차원을 논리적으로 추론해 하나의 개념으로 뽑아낸 것 - 이것이 최초의 형이상학적 사유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우주의 균형이 깨질 때 그것을 만회하려 다른 물질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물이 넘치면 불이 나타나는 식의 견제 속에서 우주가 무한히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 균형의 법칙을 사회에까지 적용해, 인간 사회의 정의 역시 이 우주적 질서를 따르는 것이라 했다. 신 없이도 정의와 윤리를 논할 수 있다고 본 셈이다.

그의 통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구가 다른 무엇에도 받쳐지지 않은 채 우주 한가운데 떠 있다고 보았다. 모든 방향에서 같은 거리에 있으니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이 발상을 인류 사상사에서 가장 대담한 관념의 하나로 꼽았다. 그는 또 해와 달과 별이 지구에서 각기 다른 거리에 있다고 보았고, 인간이 처음에는 물에서 물고기 비슷한 모습으로 살다가 뭍으로 올라왔다는 진화적 사고까지 펼쳤다. 전하는 바로는 그가 세계 최초의 지도를 그렸고, 산문으로 책을 쓴 첫 인물이기도 하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의의 · 경험을 넘어선 추상 개념으로 세계를 설명한 최초의 형이상학자. 그의 글 가운데 직접 인용되어 전하는 문장이 한 줄 남아 있다는 이유로, 탈레스가 아니라 그를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아낙시메네스 - 응축과 희박의 메커니즘

밀레토스 학파의 세 번째 인물

아낙시메네스는 스승을 다시 비판했다. 아페이론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해도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으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찾은 근원은 공기였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고, 그는 이 숨을 영혼이자 생명의 원리로 이해해 세계 전체로 확장했다.

물·불·공기·흙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는 점만 보면 스승보다 후퇴한 듯하다. 그러나 그의 진짜 기여는 메커니즘에 있었다. 그는 공기가 그냥 다른 물질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응축과 희박이라는 구체적 과정을 거쳐 변한다고 보았다. 공기가 응축해 밀도가 높아지고 차가워지면 차례로 바람·구름·물·흙·돌이 되고, 반대로 옅어지고 뜨거워지면 불이 된다. 그는 여기에 일상의 관찰까지 근거로 들었다. 입을 오므려 '후' 하고 불면 찬 바람이 나오고, 입을 벌려 '하' 하고 내쉬면 따뜻한 숨이 나온다. 같은 숨도 압축되면 차가워지고 퍼지면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전하는 단편에 남은 이 예는, 주장을 눈앞의 증거로 뒷받침하려 한 가장 이른 시도의 하나로 꼽힌다.

공기의 응축과 희박밀도 차이가 만물의 질적 차이를 만든다 공기바람구름아르케(근원)희박해짐 · 뜨거워짐응축됨 · 차가워짐 · 밀도 증가하나의 근본 물질(공기)이 양적 밀도 차이만으로 서로 다른 물질이 된다
밀도가 곧 차이를 만든다. 하나의 근본 물질이 양적 밀도 차이만으로 전혀 다른 물질이 된다는 발상. '양적 차이가 질적 차이를 낳는다'는 생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는 물(탈레스)과 현상계에 없는 아페이론(아낙시만드로스) 사이, 곧 경험과 이론의 중간 어딘가에서 공기를 찾았다. 두 선배의 관점을 종합하려 한 것이다.

밀레토스 학파는 페르시아가 이오니아를 파괴하면서 막을 내렸지만, 이들이 시작한 사유 방식 - 세계의 변화를 신화가 아니라 개념과 원리로 설명하기 - 은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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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피타고라스만물은 수다

피타고라스는 한 사람으로 묶기 어려운 인물이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종교 교단의 지도자이자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합리의 극단인 수학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콩을 먹지 마라" 같은 비합리적 계율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에게 합리와 비합리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진리의 두 측면이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數)로 보았다. 상업이 발달한 도시 사람들에게 수는 실무에서 늘 다루는 익숙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로 거창하게 다가왔으니 낯선 설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한 발 더 나아간 데서 나왔다. 수로 이루어진 우주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향해 질서 지어져 있다는 생각이었다. 전하는 바로는, 우주가 무질서가 아니라 수적 질서로 조화를 이룬 상태임을 가리켜 코스모스(kosmos)라 부른 첫 인물이 그라고 한다. 고대에도 이 명명을 두고 파르메니데스나 헤시오도스를 꼽는 다른 설이 있었지만, 질서와 아름다움을 함께 뜻하는 이 말이 피타고라스의 세계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분명하다. 계산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끝에는 정답이 있듯, 고단한 삶 끝에도 조화의 궁극이 있다는 믿음 - 그 안정감은 거의 구원에 가까웠다.

화음 - 수가 아름다움이 되는 자리

피타고라스는 아름다운 소리에서 화음의 법칙을 발견했다. 두 현을 동시에 튕길 때, 현의 길이 비율에 따라 화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의 길이가 2 대 1이면 정확히 한 옥타브 차이가 나고, 3 대 2면 완전 5도 화음이 난다. 음들 사이의 조화로운 간격이 단순한 정수비로 표현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이는 최초의 음악 이론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수학적 비례와 연결한 서구 미학 전통의 시작이었다.

현의 길이 비율과 화음단순한 정수비가 협화음을 만든다 기준음 (도)전체 길이한 옥타브 위길이비 2 : 1완전 5도 (솔)길이비 3 : 2두 현의 길이가 단순한 정수비를 이룰 때 귀에 조화로운 화음이 들린다
조화는 셈할 수 있다. 현의 길이가 단순한 정수비를 이룰 때 귀에 협화음이 들린다. 감각의 영역이던 아름다움이 수의 질서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같은 맥락에 있다. 직각삼각형에서 두 변의 제곱의 합이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이 공식 덕분에, 우리는 세 변이 3·4·5인 삼각형을 직접 보지 않고도 그것이 직각삼각형임을 안다. 모양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오직 수 계산만으로 추론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화면에 출력되는 영상도, 위성항법장치도, 우주선의 궤도 계산도 - 공간을 수로 표현해 다루는 모든 기술의 출발점에는 이 발상이 있다.

수학이 곧 수행이던 공동체

피타고라스 학파는 단순한 수학 모임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였다. 그들은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으며, 금욕과 수행을 통해 영혼을 정화하면 윤회의 사슬을 끊고 신성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살생과 육식을 금하고, 검소하게 살며, 입교하려면 오랜 수행을 거치고 전 재산을 공동체에 내놓아야 했다. 그 마지막 수행 가운데 하나가 수학 연구였다. 변함없이 같은 답에 이르는 수학의 세계는 그들에게 완벽 그 자체였고, 정답에 닿는 순간의 환희는 세계의 진리에 가닿는 느낌이었다.

이 믿음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그들은 자연수와 그 비례만을 수로 여겼는데, 어느 날 그 비율로 표현되지 않는 수, 곧 무리수를 발견하고 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사실을 밖으로 발설한 제자 히파소스는 그 대가로 물에 빠져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왜 중요한가

피타고라스의 핵심 관념은 이것이다 - 우주는 목적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법(이법)에 따라 움직이며, 수학을 탐구함으로써 그 신성한 질서에 다가갈 수 있다. 감각이 아니라 이성으로 영원불변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 생각은 훗날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으로 이어진다. 변하는 감각 세계 너머에 변하지 않는 참된 세계가 있고 그것을 이성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플라톤 철학의 골격이 이미 여기에 잡혀 있다고 보는 연구자가 많다.

피타고라스의 의의 · 경험적 감각이 아닌 이성으로 발견하는 법칙을 통해 영원한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관념을 처음 내비쳤다. 영혼과 육체를 나누는 이원론의 씨앗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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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헤라클레이토스만물은 흐른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한 번 발을 담갔던 물은 이미 하류로 흘러가 그 자리에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두 번째로 발을 담그는 '나' 역시 첫 번째의 나와 같지 않다. 그사이 나는 미세하게 늙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이 관점을 그는 '만물은 흐른다'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변한다는 것은, 매 순간 어떤 것의 동일성이 깨지고 차이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있으면서 있지 않다"고 표현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하는 이유를, 모든 것이 그 안에 대립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삶에는 죽음이, 젊음에는 늙음이, 밤에는 낮이 포함되어 있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통찰은 조화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우리가 안정되고 조화롭다고 여기는 상태조차 사실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

비유

겉으로 멈춰 있어 보이는 것도 실은 팽팽한 맞섬일 수 있다. 튼튼해 보이는 다리는 누르는 하중과 그것을 버티는 힘이 한 치의 양보 없이 겨루는 중이고, 건강한 몸은 면역 세포가 병원체와 쉼 없이 싸우는 중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조화란 이렇게 대립이 멈추지 않는 동적 균형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주를 영원한 투쟁과 갈등으로 보았고, 싸움과 갈등을 없앤다는 것은 세상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했다.

로고스 - 변화를 다스리는 원리

그렇다면 이 변화는 아무 원칙 없이 우연히 일어나는가.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변화를 주관하는 원리가 따로 있으니, 그것이 로고스다. 넓게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이성이고, 좁게는 사물을 움직이는 원리·법칙·논리다. 세상은 대립물의 투쟁이지만, 이 투쟁은 로고스에 따라 조화로 나아간다. 다만 조화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조화 속에서도 대립물은 살아 있고, 그 대립의 작용으로 조화가 깨지지도 않는 - 이 까다로운 순환을 로고스가 관장한다. 그는 이 원리를 "만물은 하나다"라는 명제로 압축하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같은 길이고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은 같은 것이라는 역설로 그 의미를 드러냈다.

그의 아르케는 이었다. 다만 여기서 불은 근원 물질이라기보다 원리에 가깝다. 세계는 적절한 만큼 타오르고 적절한 만큼 꺼지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같다는 것이다. 파괴와 부활, 생성과 소멸의 상징으로서의 불이다.

그는 또한 인간의 영혼에 이 로고스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영혼은 개별적인 것을 하나하나 파악하는 능력이 아니라, 전체적 관점에서 공통적인 것을 추출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그의 실천 철학이 나온다. "나에게 귀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 기울이라"는 그의 말은, 쉽게 말해 생각하며 살라는 뜻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지 말고, 무질서해 보이는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보라는 것. 잡다한 지식을 쌓는 것만으로는 지혜에 이를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세계 자체를 제대로 아는 일이라고 그는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의의 · 세계를 선악의 이분법이 아니라 대립과 충돌로 변화하는 것으로 본 변증법적 생성의 관점. 후대의 변증법, 스토아 학파, 그리고 '로고스를 신의 말씀'으로 읽은 기독교 신학이 모두 여기서 갈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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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파르메니데스있는 것은 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파르메니데스

단순해 보이는 이 한 문장에서 철학의 난이도는 단숨에 치솟는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 곧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다. 여기까지는 동어반복이라 어려울 게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무언가가 새로 생겨났다거나 변했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먼저 '없던 상태'를 머릿속에 떠올려야 한다. 그래야 없던 것에서 있는 것이 생겨나는 순서가 성립한다.

비유

'없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 떠올리는 순간 그것은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이 되어 버린다. 파르메니데스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떠올릴 수조차 없는 진짜 '무(無)'에서 무언가가 생겨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있는 것'의 성질들을 오직 논리만으로 추론해 나간다. 존재하는 것 이전에 없는 것이 없으므로, 존재하는 것은 기원을 따질 수 없는 완전한 것이다. 또 없는 것이 없다면 있는 것은 더 이상 나뉘지 않는다. 여러 개로 나뉘려면 그 사이를 가르는 '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은 단 하나, 곧 일자(一者)다. 나아가 운동도 변화도 없다. 무언가가 움직이려면 '없는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런 곳이 없고, 내가 늙으려면 지금의 내가 일단 없어져야 하는데 '없음'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실재하는 것은 생성도 소멸도 변화도 운동도 없는, 영원히 부동(不動)하는 하나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움직이고 늙어가는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 파르메니데스는 그것이 감각이 주는 허상이라고 답한다. 그는 두 갈래 길을 제시했다. 하나는 이성이 이끄는 참된 진리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저마다 자기 경험이 옳다고 우기는 의견의 길이다.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진리라면, 그 영원불변의 일자는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가 그토록 골치 아픈 논리를 펼친 것은, 끝내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파르메니데스의 의의 · 주관과 감각을 배제하고 논리만으로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 그리고 존재 자체를 묻는 존재론과 인식 주체를 묻는 인식론이 모두 그에게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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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후기 자연철학논리와 현상을 모두 구하다

파르메니데스는 후배들에게 거대한 숙제를 남겼다. 논리적으로는 그의 말이 맞는 듯한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히 변하고 움직인다. 늘어가는 주름과 불어나는 체중을 모두 허상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기 자연철학자들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로 했다.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변화하는 현상 세계를 구제하는 것이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비유

스물 몇 개의 자모로 수만 개의 단어를 만드는 일을 떠올려 보자. 글자 자체는 새로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지만, 어떤 글자를 어떤 순서로 늘어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낱말이 만들어진다. 후기 자연철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의 '하나(일자)'를 이렇게 여러 개(다자)로 쪼개어, 변하지 않는 재료로 변하는 세계를 설명했다. 변화는 일어나되, 그것은 재료 자체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절대적 변화가 아니라 재료들의 배열과 관계가 바뀌는 상대적 변화일 뿐이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원자를 알파벳 글자에 빗댄 것도 같은 발상이었다.

엠페도클레스 - 네 뿌리, 그리고 사랑과 불화

후기 자연철학 · 분석적 사고의 출발

엠페도클레스는 영원부동의 일자를 네 개의 바구니에 나눠 담았다. 물·불·공기·흙이다. 그는 이 넷을 만물의 '네 뿌리'라 불렀고, 후대에 이것이 원소라는 말로 바뀌었다. 네 원소 각각의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이들의 관계는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 넷이 뭉치고 흩어지는 상대적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발상에는 과학사적 의미가 있다. 과학적 사고란 복잡한 것을 근본 요소로 거슬러 내려가 분석하고, 그 요소들의 조합으로 복잡함을 설명하는 사고다. 최소 단위인 네 원소를 찾아낸 점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최초로 분석적 사고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원소를 움직이는 힘을 외부에 두어 체계화했는데, 그 힘이 바로 사랑불화다. 당시에는 '힘'에 대응하는 과학 개념이 없었기에 익숙한 감정의 언어를 끌어온 것으로 보면 된다. 사랑은 서로 다른 것을 결합시키고, 불화는 같은 것끼리 모이게 해 만물을 네 원소로 해체한다.

사랑과 불화의 우주 순환결합과 해체가 주기적으로 순환한다 사랑 ↔ 불화결합과 해체의 순환사랑 절정모든 것이 결합한 신적인 구(球)불화 침입분리 시작 — 우리 우주불화 절정물·불·흙·공기로 층층이 분리사랑 침투재결합 — 우리 우주
결합과 해체의 영원한 순환. 사랑이 절정일 때 모든 것이 하나로 결합한 신적인 구가 되고, 불화가 침입하며 분리가 시작된다. 분리와 재결합의 과도기에 태양도 바다도 생물도 - 우리가 사는 우주가 생겨난다.

한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세상이 원소로 빈틈없이 꽉 차 있다면 무엇도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려면 빈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엠페도클레스는 클렙시드라(klepsydra)라는 물시계를 예로 들었다. 위아래에 구멍이 뚫린 이 그릇은 윗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물에 담그면 물이 들어오지 않는데, 안에 든 공기가 물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떼면 공기가 빠지면서 비로소 물이 들어찬다. '비어 보이는 곳'도 사실은 공기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공기가 빈 공간이 아니라 실체임을 보인 가장 이른 사례의 하나로 자주 인용된다. 다만 그것이 통제된 실험이었는지, 아니면 호흡 현상을 설명하려고 끌어온 비유였는지를 두고는 후대 학자들의 해석이 갈린다.

아낙사고라스 - 만물 속의 만물

후기 자연철학

아낙사고라스의 다자는 무한히 많은 씨앗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씨앗이 가장 단순한 성질로 환원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만물의 모든 성질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온갖 형태와 색과 맛, 살과 뼈, 돌과 금속이 모두 들어 있으면서도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지 않는다. "모든 것 속에 모든 것이 부분으로 들어 있다"는 그의 말 그대로다. 이 씨앗들을 누스(nous), 곧 우주적 정신이자 지성이 혼합하고 분리하면서 현상 세계의 변화가 만들어진다.

데모크리토스 - 원자와 허공

기원전 460년경 출생 · 후기 자연철학의 완성

관습으로 달고 관습으로 쓸 뿐, 실재하는 것은 원자와 허공뿐이다. 데모크리토스

물질을 반으로 쪼개고 또 쪼개기를 거듭하면 무엇이 남을까. 데모크리토스는 마지막에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는다는 가정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것을 그는 아토모스(atomos)라 불렀다. '자른다'는 말에 부정의 뜻을 붙인 것으로, 우리가 원자라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원자가 너무 작아 감각할 수 없을 뿐 실재한다고 보았다. 인간 감각의 한계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 설명은 대단히 현대적이다.

그의 진짜 독창성은 원자보다 오히려 허공을 허용한 데 있다. 파르메니데스의 명제를 따르면 '없는 것'에 해당하는 빈 공간이 없으므로 운동이 불가능하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 사이에 빈 공간을 인정함으로써 운동의 길을 열었다. "없는 것도 있는 것만큼이나 있다"는 그의 말이 그것이다. 원자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내부에 빈틈이 없다는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와 같지만, 그 원자들이 허공 속을 자유로이 떠다니다 충돌하고 결합해 복합 물질을 이룬다.

원자와 허공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가 빈 공간에서 움직인다 허공 (없는 것도 있는 것만큼 있다)자유로이 운동하는 원자들결합 → 복합 물질충돌·결합성질의 차이는 원자의 모양·크기·배열·위치 차이에서 생긴다 (질적 차이 없음)
모양·크기·배열·위치의 차이. 원자 사이에 질적 차이는 없다. 물도 불도 식물도 인간도, 또 맛이나 냄새 같은 성질도 모두 원자의 모양과 배열 차이에서 생긴다.

그는 우주가 원자의 결합과 분리로 생성과 소멸을 영원히 반복하며,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세계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어떤 세계는 자라고 어떤 세계는 무너지며, 해와 달이 없는 세계도 동식물이 없는 세계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최초의 다중우주 모델을 내놓은 셈이다. 무엇보다 그는 앞선 철학자들이 우주의 변화를 관장한다고 본 초월적 힘(로고스, 사랑과 불화, 누스)을 일절 상정하지 않았다. 오직 물질에 내재한 물리 법칙만으로 세계가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물론의 시초다. "왜 어떤 목적을 향해 가는가"가 아니라 "지금의 현상은 과거의 어떤 조건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묻는, 가장 현대 과학에 가까운 사고였다.

그의 윤리학도 원자론에서 나왔다. 영혼마저 원자로 되어 있다면 죽음은 원자가 흩어지는 단순한 물리적 사건일 뿐, 사후 세계는 없다. 그러니 사는 동안 유쾌하고 괴롭지 않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 다만 그가 말한 유쾌함은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대한 집착을 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족의 상태였다. 자기 능력 이상을 욕심내지 않을 때 영혼을 이루는 원자의 배열이 안정되고, 그 안정이 곧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은 훗날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로 이어진다.

데모크리토스의 의의 · 원자와 허공만으로 세계를 설명한 엄밀한 유물론, 그리고 다중우주의 발상. 그의 원자론은 오랫동안 묻혔다가 근대에 이르러서야 복권되어 현대 물리학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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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마무리자연에서 인간으로

탈레스에서 시작해 데모크리토스로 끝난 약 150년의 사유는 한 가지 질문으로 꿰어진다. "변화무쌍한 이 세계의 밑바닥에, 변하지 않는 근원이 있는가." 물에서 출발한 답은 무규정자로, 공기로, 수로, 불로, 일자로, 4원소로, 씨앗으로, 마침내 원자로 이어졌다. 답은 저마다 달랐지만 방식은 같았다. 신화에 기대지 않고, 앞선 이의 생각을 비판하며, 관찰과 논리로 가설을 세우고 정당화했다. 이것이 철학이자 과학의 출발점이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계보자연철학에서 인간철학으로의 흐름 소크라테스 이전 — 자연(아르케)에서 인간으로탈레스기원전 6세기 초물 — 만물의 근원을 처음으로 합리적으로 물음아낙시만드로스탈레스의 제자아페이론(무규정자) — 경험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사유아낙시메네스밀레토스 학파공기 — 응축·희박의 메커니즘으로 변화 설명피타고라스기원전 570년경~수(數) — 만물은 수의 조화, 수학으로 본질에 접근헤라클레이토스변화의 철학불·로고스 — 만물은 대립의 투쟁 속에서 흐른다파르메니데스존재의 철학일자(一者) — 변화·운동 없는 영원부동의 존재엠페도클레스후기 자연철학4원소 + 사랑·불화 — 다원론으로 변화를 구제아낙사고라스후기 자연철학무한한 씨앗 + 누스 — 만물 속에 만물이 들어 있다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년경~원자 + 허공 — 유물론·다중우주의 출발점아테네 — 소크라테스 이후관심이 우주의 원리에서 인간·덕·공동체로 옮겨간다
아르케를 찾는 150년의 여정. 근본 물질을 묻는 데서 시작해, 변화와 존재를 둘러싼 논쟁을 거쳐, 다원론과 원자론으로 나아갔다. 각 철학자는 앞선 이를 비판하며 사유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러던 어느 시점, 철학의 무대가 바뀐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지고 폴리스 공동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우주의 원리에서 인간의 삶으로 옮겨갔다.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는 무엇인가가 더 절박한 물음이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한 철학자들이 윤리와 덕, 정치와 행복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철학의 중심은 그리스의 변방과 식민지에서 아테네로 옮겨간다.

왜 지금도 이들을 읽는가

하나의 원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위험을 품는다. 중심이 만들어지면 그 바깥의 것들이 부차적인 것, 소외된 것이 되기 쉽다. 그래서 현대 철학의 상당 부분은 차이와 우연, 개별성과 상대성을 사유하며 이 '중심주의'를 경계해 왔다. 그러나 반대편의 위험도 있다. 모든 것이 그저 다양한 의견일 뿐이라는 상대주의는 도덕과 정의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거대한 보편 원리를 찾으려는 욕구와 개별적 차이를 존중하려는 시선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 수 없다. 최초의 철학자들이 어떻게 근원을 물었는지 되짚는 일은, 이 두 방향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여전히 쓸모가 있다.

이들의 사유에는 오늘의 과학과 철학이 거의 다 들어 있다. 관찰과 가설과 증명을 잇는 방법(탈레스), 경험 너머를 추론하는 형이상학(아낙시만드로스), 양의 차이가 질의 차이를 낳는다는 발상(아낙시메네스), 수학으로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는 길(피타고라스), 대립과 생성의 변증법(헤라클레이토스), 논리만으로 존재를 파고드는 존재론(파르메니데스), 복잡함을 최소 단위로 분석하는 사고(엠페도클레스), 그리고 초월적 목적 없이 물질의 법칙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유물론(데모크리토스). 2,500년 전 지중해 변방에서 던져진 질문들은, 형태를 바꿔 가며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 · 위대한 답이 아니라 위대한 질문이 철학을 열었다. 신 대신 근원을 묻고, 믿음 대신 비판을 택한 그 태도가 인류 정신사의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