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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를 읽는 법 - 투자·채용 현장이 주목하는 신호들
스타트업의 제품과 사업 모델은 언제든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러나 팀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창업자의 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합류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사업 아이템보다 사람이 더 믿을 만한 판단 근거가 된다.
아래 내용은 다수의 창업자를 가까이서 지켜본 투자·채용 현장의 관찰을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합류 여부를 가늠하는 단서로, 창업자에게는 자기 점검의 항목으로 읽힐 수 있다.
01가장 먼저 보는 신호, 메타인지
좋은 창업자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으로 흔히 꼽히는 것은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자존감이나 자신감 같은 감정을 모두 걷어낸 채, 우리 회사와 나,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다른 대상과 비교했을 때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왜곡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의 문제다. 오래된 표현을 빌리면 "너 자신을 알라"에 가깝다.
메타인지는 채용 협상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재 시장에서 우리 포지션이 갑인지 을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행동은 갈린다. 지원자가 몰리는 자리라면 후보자를 선별하는 입장으로 움직이고, 반대로 한 명을 잡기도 어려운 자리라면 설득을 기본값으로 깔고 접근한다. 자기 위치를 정확히 읽는 창업자는 이 차이에 맞춰 자연스럽게 태도를 조정한다.
메타인지가 작동하는 사람에게는 겸손이 기본값으로 깔려 있다. 충분히 잘하고 있을 때조차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반대로 메타인지가 약한 사람은 작은 성과가 나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대단한 팀으로 착각하기 쉽다. 흔히 말하는 창업자병은 여기서 출발한다.
메타인지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거울이 흐리거나 굴절되어 있으면 실제보다 커 보이거나 작아 보인다. 좋은 창업자는 자기 회사와 자신을 왜곡 없이 비추는 평평한 거울을 가지고 있고, 그 상에 맞춰 다음 행동을 정한다.
02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굿바이의 인상
채용 과정은 창업자의 인성이 의외로 빨리 노출되는 자리다. 일부 사업 리더는 후보자의 수준이 낮다고 판단하는 순간부터 예의를 거두고 대화를 서둘러 끝내려 한다. 본인은 감추려 해도 상대에게는 그대로 전달된다.
반대로 일을 잘하는 창업자는 이번에 합류하지 않을 사람에게도 끝까지 정성을 다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어떤 인연이 어디서 다시 닿을지 모른다. 떠난 사람은 밖에서 그 회사가 어땠는지를 전하는 일종의 평판 전달자가 된다. 둘째,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할 수 있다. 사람은 잘나가던 순간에 누가 축하해 주었는지보다, 어려운 순간에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처음 만나 인사할 때보다 헤어질 때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인터뷰는 한 방향 평가가 아니다. 회사가 후보자를 보는 동시에, 후보자도 회사의 수준을 본다. 질문의 깊이, 상대가 내 이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뛰어난 후보자일수록 면접이 끝난 뒤 회사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면접관이 일부러 남겨 둔 여백이다. 꼬리 질문을 유도하려고 답을 비워 두었는데 아무도 그 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호기심과 사고의 깊이가 그만큼이라는 신호로 읽힌다. 정작 핵심은 비워 둔 자리에 있는데 그것을 묻지 않는 것이다.
면접은 마주 세운 두 개의 거울과 같다. 회사가 후보자를 비추는 동안 후보자도 회사를 비춘다. 한쪽만 평가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자신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놓치게 된다.
03일 잘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3단계
인재의 사고 수준을 가늠하는 한 가지 틀은 일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아래 단계가 올라갈수록 검증된 인재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1단계는 인과 파악이다. 현실에서 벌어진 일은 대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였는지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난이도가 있다. 이 단계만 해내도 충분히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본다.
2단계는 예측이다. 인과를 논리적으로 짤 수 있으면, 원인을 바꾸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추론하고 그 예측을 자기 일에 적용할 수 있다.
3단계는 실행과 검증이다. 머릿속 예측을 현실에서 직접 돌려 보고,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변수까지 겪어 내며 결과를 손에 쥔 사람이다. 이 단계를 통과한 사람은 어디에 놓아도 제 몫을 한다.
이 틀은 단순한 질문으로 확인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왔는가."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굳이 세 단계로 나누어 묻지 않아도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자체가 세 단계로 구성된다. 합류했을 때 받아 든 문제는 무엇이었고, 원인은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바꾸면 어떻게 될 거라 보았고, 실제로 운영해 보니 어떤 문제가 생겨 무엇을 개선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경계할 지점이 있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다. 실행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실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변수를 통제하지 못한다. 겪어 보지 않아 모르기 때문이다. 면접 자리에서 경험을 완벽하게 꾸며 내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래서 대개는 걸러진다.
운전에 빗대면 이렇다. 교통 법규를 외우는 단계가 1단계, 이 길로 가면 막힐지 안 막힐지 예측하는 단계가 2단계, 실제로 도로에 나가 끼어들기와 돌발 상황까지 겪으며 목적지에 도착해 본 단계가 3단계다. 면허증만으로는 도로의 변수를 알 수 없다.
04가면 안 되는 팀의 신호
첫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인성
가장 분명한 경계 신호로 꼽히는 것은 팀원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두고 한마디 하는 정도가 아니라, 면전에서 감정을 저급하게 쏟아 내는 경우다. 공동 창업자의 가족까지 끌어들이는 극단적인 사례가 회자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흔한 반론이 따라붙는다. 역사적으로 칭송받는 창업자 중에도 팀원에게 가혹했다고 알려진 인물이 적지 않은데, 그렇다면 그들의 성과까지 낮게 평가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쪽의 답은 명확하다. 그들이 이뤄 낸 결과는 존중하되, 인성까지 존중하는 것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큰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 거친 태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시장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해진다. 인재풀이 좁고 평판이 빠르게 퍼진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한 기록은 머지않아 채용난으로 되돌아온다. 정해진 인재풀이 닫히면 다음 풀을 새로 끌어오거나 자신이 달라졌음을 시장에 증명해야 하는데,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굳이 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하는가. 답은 대개 하나로 모인다. 자기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손님이 적은 동네의 작은 가게를 떠올리면 된다. 오가는 사람이 한정된 곳에서 한 번 무례하게 굴면 소문은 금세 동네 전체에 돈다. 인재풀이 좁은 시장에서 평판은 그렇게 움직인다.
둘째, 소규모 팀인데 대표를 만나지 못하는 면접
또 하나의 신호는 채용 과정에서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다. 인원이 서른 명 안팎인 초기 조직에서 면접을 보는데 "대표는 합류하시면 보게 되실 거예요"라는 답이 돌아온다면 신중해야 한다. 회사에 들어올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가족으로 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채용을 제품만큼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리크루팅 전략이나 인원 계획을 대표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본인이 들어가는 면접보다 들어가지 않는 면접이 더 많다면, 그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가 드러난다.
처음 인사할 때보다 헤어질 때 어떤 인상을 남기는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좋을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 드러난다.
05합류를 결정하는 두 축, 비전이냐 보상이냐
스타트업에 합류하려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대체로 세 가지로 모인다. 더 넓은 업무 범위, 직접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경험, 그리고 그 성장이 실현됐을 때 큰 회사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보상이다. 이 기대를 어디로 채울 수 있는 팀인지를 보면 합류 판단이 한결 단순해진다.
괜찮은 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비전이 큰 팀이다. 현실성과는 별개로, 창업자가 그 정도의 꿈을 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다른 하나는 비전이 크지 않더라도 어떻게 돈을 벌 것이며 그 이익이 합류한 사람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팀이다. 이 둘 중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 애매한 팀이라면 굳이 합류할 이유가 약해진다.
그래서 합류 전 가장 먼저 던질 질문은 자신을 향한다. 나는 이 이직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돈인가, 성장인가, 경험인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디딤돌인가.
보상이 1순위라면 엑싯(exit, 투자 회수·매각 등을 통한 성과 실현) 가능성이 검증된 팀으로 가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미 한 번 회사를 키워 본 연쇄 창업가는 어느 정도의 성과 실현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실현될 확률이 있는 쪽이 보상이라는 목적에는 더 맞는다. 투자자들이 연쇄 창업가를 선호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성장이 1순위라면 큰 물에서 헤엄치는 편이 낫다. 다만 전제가 있다. 고강도의 환경에서 부딪히는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성향이어야 한다. 그 성향이 받쳐 주지 않으면 분위기만 좇다가 빠르게 이탈하거나 소진되기 쉽다.
06잘되는 대표는 채용에 진심이다
잘되는 창업자에게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공통점 하나는 채용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채용이 중요하다고 말로는 하면서도 정작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대표는 의외로 많다. 반대로 채용을 제품처럼 바라보고 세부까지 파고들어 풀어내려는 대표의 팀은, 어려운 시기에도 다음 라운드로 잘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 일은 독서와 비슷한 데가 있다.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어야지 하고 미루면 결국 한 권도 읽지 못한다. 인사 문제는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시간을 떼어 고민하는 일이 자꾸 뒤로 밀린다. 그래서 일정에 채용 시간을 아예 고정해 두는 사람이 강한 팀을 만든다.
한 사례에서는, 한 분기 동안 매주 스무 시간을 오직 채용에만 쓰기로 못 박은 대표가 있었다. 면접에서는 후보자의 능력과 무관하게 그 사람이 우리 회사를 선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직접 아웃바운드로 인재를 찾아 나선 그 시간의 결과로 팀은 눈에 띄게 단단해졌다.
채용은 운동이나 독서처럼 중요하지만 급하지는 않은 일에 속한다. 이런 일은 캘린더에 자리를 고정해 두지 않으면 더 급해 보이는 일들에 밀려 사라진다. 잘되는 대표는 채용을 급한 일의 칸이 아니라 고정된 칸에 넣어 둔다.
07AI 시대, 인재를 둘러싼 경쟁
채용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보는 근거는 시장 구조의 변화에 있다. 과거 모바일 전환기에는 매력적으로 갈 만한 기술 회사 자체가 많지 않아,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지금은 다르다. 파괴적인 신생 기업이 계속 등장하는 동시에 기존 강자들도 여전히 인재를 붙들고 있어서, 한 사람을 두고 여러 곳이 경쟁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압력이 더해진다. AI(인공지능)로 인해 채용 정원, 곧 자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모셔 올 수 있는 슬롯이 적어지니 가장 좋은 사람을 데려오려는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게다가 잘하는 사람과 중간층의 격차는 벌어지고, 정해진 수의 상위 인재 가운데 일부는 해외로, 일부는 직접 창업으로 빠져나간다. 근로자가 창업자가 되는 흐름 속에서 상위 인재 풀은 점점 얇아진다.
이런 환경에서 대표가 채용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면서 더 좋은 무기나 더 나은 전우를 데려갈 생각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재 확보가 대표의 핵심 역할로 부상하는 이유이며, 그 출발점은 채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제로 인지하고 있느냐에 있다.
여기서 대표의 역할을 정리할 수 있다. 제품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거나 PMF(Product-Market Fit, 제품이 시장에 맞아떨어지는 상태)를 찾은 이후의 단계에서, 완성형 경영자가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은 우리 상황과 문화에 맞는 사람을 뽑고, 그가 열심히 일할 동기를 만들어 주며,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도록 붙드는 것이다. PMF를 찾는 일 자체는 그 이전 단계로, 대표가 직접 해내야 하는 몫이다.
08평이 극과 극인 천재형 대표, 합류할 것인가
현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려운 판단을 하나 옮겨 본다. 설립 6년 차, 매출이 있고 시리즈 A 단계인 서른 명 규모의 회사가 있다. 그런데 이 회사 대표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가 극단으로 갈린다. 한쪽에서는 진짜 천재이고 1년 일하면서 5년 치를 배운 것 같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팅이 끝날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져 도저히 다니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두 평가가 모두 자주 들린다. 이 회사에서 6년 차 시니어 PM(Product Manager, 제품 책임자)에게 합류 제안이 왔다면, 권할 것인가 말릴 것인가.
말리는 쪽의 논리는 직책에 주목한다. 6년 차이고 직함이 시니어 PM이라면, 들어오자마자 일정 영역에 대한 오너십을 쥐고 명확한 성과를 내 주기를 기대받는다. 그런데 6년 차라는 연차는 애매한 구간이다. 이전 회사에서 일을 잘했더라도 새 환경에서 처음부터 똑같이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능력이 평균이거나 평균보다 약간 높은 정도라면, 기회를 주기보다 모욕으로 무너뜨리는 환경에서는 꽃이 피다가 지기 쉽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면 소진의 위험이 더 크다. 실제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여러 조사에서도 창업자 집단을 비롯해 이 분야 종사자들이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비율이 낮지 않게 나타난다.
권하는 쪽의 논리는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천재라는 평이 있다는 것은 어쨌든 배울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성공한 창업자에 대한 평은 원래 갈리기 마련이다. 다만 두 가지 단서가 붙는다. 비난이 법적 선을 넘는 수준이라면 가지 않는 것이 맞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부딪힘을 마주하고 그것을 능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큰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두 입장이 만나는 결론은 분명하다. 판단의 열쇠는 대표가 아니라 제안을 받은 사람의 성향과 능력에 있다. 공격적이고 성장을 강하게 원하며 영리함까지 갖춘 사람이라면 좋은 판이 된다. 반대로 능력이 받쳐 주지 않거나 스타트업의 분위기만을 원해서 가는 경우라면 금방 빠져나오게 되고, 후자의 상태로 합류하면 시리즈 B로 넘어갈 무렵 자리를 잃기 쉽다.
09될 창업자의 눈빛, 얼리스테이지의 광기
아주 초기 단계, 즉 프리시드나 얼리스테이지의 대표에게서 나타나는 한 가지 신호는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미쳐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끊이지 않고, 스스로 구구절절 말을 이어 가며, 말하는 동안 어딘가에 가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신호가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다.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문제 정의도, 고객 정의도, 판매 방식도 전부 새로 정해야 하는 과정이다. 정해진 것이 없으니 시도했다가 안 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결국 관건은 지치지 않고 얼마나 빠르게 많은 횟수를 반복할 수 있느냐인데, 미쳐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서 그 반복을 견뎌 낸다.
또 한 가지. 프리시드 단계에서 이 사업이 왜 잘될 수 있는지를 모든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돌아 있는 사람처럼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 창업자는, 논리가 다소 약하더라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이템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문이 들면서도 왠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다.
지도가 없는 사막을 건너는 일과 비슷하다. 끝까지 걷게 만드는 것은 정밀한 거리 계산이 아니라 반드시 건넌다는 확신이다. 얼리스테이지의 광기는 그 확신에 가깝고, 그 확신이 수없는 시행착오를 버티게 한다.
10성공한 창업자가 하지 않는 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경계할 말이 있다. 내가 성공한 방법을 알려 주겠다는 식의 단언이다.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같은 조건에서 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처한 맥락이 다르고, 한 번의 성공은 수많은 반복 시행 끝에 운 좋게 튀어나온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성공의 방정식을 정말로 누구에게나 팔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강연 대신 본인이 다시 그 일을 할 것이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를 다루는 방식은 구분하는 편이 낫다. 실패하는 방식은 책이 아니라 칩에 가깝다. 망하는 특징들은 비교적 뚜렷해서, 이건 안 된다고 머릿속 저장 장치에 꽂아 두고 피하면 곧바로 효과를 본다. 반면 성공하는 방식은 책처럼 다룰 일이다. 여러 사례를 읽으며 자기 생각과 섞어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누가 정답으로 건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의 답은 결국 본인이 내려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실무에서 더 빠르게 유용한 것은 무엇이 성공하는가보다 무엇이 실패하는가를 분명히 인지하는 일이다. 위에서 짚은 신호들 가운데 상당수가 잘되는 조건이 아니라 피해야 할 조건에 관한 것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합류를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점검
- 면접에서 대표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면, 특히 소규모 팀이라면 신중하게 본다.
- 내가 가는 목적이 보상인지 성장인지 먼저 정한다. 보상이면 엑싯 가능성, 성장이면 환경을 견딜 내 성향을 본다.
- 대표 평이 극과 극이라면 판단의 기준은 대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성향과 능력이다.
- 비전이 크거나, 돈 버는 경로와 내 몫이 명확하거나. 둘 다 아니면 합류 이유가 약하다.
창업자를 위한 자가 점검
- 인재 시장에서 우리 위치가 갑인지 을인지 정확히 보고 있는가.
- 합류하지 않을 사람에게도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가.
- 채용 시간을 일정에 고정해 두는가, 아니면 시간 남으면 하는 일로 미루는가.
- 팀원을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좁은 시장에서 평판은 빠르게 돌아온다.
이 글은 다수의 창업자를 가까이서 관찰한 투자·채용 현장의 시선을 주제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일반화된 경향을 정리한 것이므로 모든 팀과 사람에게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으며, 개별 판단의 출발점으로 읽는 편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