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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정독

점, 사랑, 죽음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

단 15분, 단 세 가지 이야기. 대학을 중퇴한 사람이 세계 최고 대학의 졸업생에게 건넨 이 축사가, 어떻게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졸업 연설이 되었는가. 원고를 한 문장씩 따라 읽으며 그 구조와 무게를 풀어본다.

일시

2005년 6월 12일

장소

스탠퍼드대 제114회 졸업식

분량

약 15분 · 세 가지 이야기

누적 조회

1억 2천만 회 이상

출처: 스탠퍼드대 공보(Stanford Report), 스티브 잡스 아카이브(Steve Jobs Archive).


들어가며

2005년 6월 12일,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검은 졸업 가운 안에 청바지와 샌들을 신은 채 스탠퍼드대학교 제114회 졸업식 연단에 섰다. 그는 첫 문장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신은 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으며, 이 자리가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와 본 순간이라고. 세계 최고로 꼽히는 대학의 졸업생들 앞에 선 중퇴자라는 역설은, 이후 15분의 연설을 관통하는 정서를 미리 깔아 둔다.

잡스는 거창한 인생론을 늘어놓는 대신 단 세 가지 이야기를 골랐다. 점(dot)을 잇는 이야기,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각 이야기는 자신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 하나를 가져와 거기서 단 하나의 교훈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추상적 조언이 아니라 구체적 일화로 말한다는 점이 이 연설의 첫 번째 설계 원칙이다.

이 축사는 그 뒤 20여 년 동안 가장 널리 회자된 졸업 연설로 남았다. 스티브 잡스 아카이브에 따르면 영상은 누적 1억 2천만 회 넘게 재생되었고, 2016년 미국 프로농구(NBA) 결승에서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가 결정적 경기 직전 라커룸에서 이 연설의 한 대목을 동료들에게 들려준 일화까지 전해질 만큼 대중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 아래에서는 세 이야기를 차례로 따라가며 잡스가 무엇을 말했고, 그것이 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는지를 살펴본다.

이야기 1 점 잇기 과거를 돌아볼 때만 점은 이어진다 이야기 2 사랑과 상실 사랑하는 일을 찾고 타협하지 마라 이야기 3 죽음 시간은 한정돼 있다 자기 삶을 살아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세 이야기는 각기 다른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하나의 마무리 — "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라" — 로 수렴한다.

01점들을 잇기

FIRST STORY — Connecting the dots

첫 번째 이야기는 잡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된다. 미혼의 대학원생이던 친어머니는 그를 입양 보내기로 하면서,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강하게 내걸었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될 예정이었으나, 아기가 사내아이로 태어나자 그 부부는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대기자 명단에 있던 노동자 계층 부부에게 한밤중 전화가 걸려 왔고, 잡스는 그들의 아들이 되었다. 친어머니는 양어머니가 대학을 마치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입양 서류 서명을 거부했다가, 아이를 반드시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몇 달 뒤 물러섰다.

17년 뒤 그는 약속대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순진하게도 스탠퍼드만큼이나 학비가 비싼 리드대학(Reed College)을 골랐고, 노동자 계층 부모가 평생 모은 돈이 학비로 빠져나갔다. 여섯 달이 지나도록 그는 그 비용의 가치를 찾지 못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대학이 그것을 어떻게 도와줄지도 알 수 없었다. 부모의 평생 저축을 그렇게 쓰는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자퇴를 결심한다. 다 잘될 것이라 믿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두려운 결정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다고 그는 말한다.

자퇴의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규 학생이 아니게 되자 흥미 없는 필수 과목을 들을 의무가 사라졌고, 대신 흥미로워 보이는 강의에 청강생으로 끼어들 수 있었다. 낭만적인 시절은 아니었다. 기숙사 방이 없어 친구들 방 바닥에서 잤고, 콜라병을 반납해 받은 5센트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고 일요일 밤마다 11킬로미터(7마일)를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까지 갔다. 그러나 그는 그 시절을 좋아했다.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우연히 발을 들인 것들이 훗날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캘리그래피(서예) 수업이다. 당시 리드대학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캘리그래피 교육을 제공했고, 캠퍼스 곳곳의 포스터와 서랍 라벨까지 아름답게 손으로 쓰여 있었다. 청강생이 된 잡스는 세리프(serif)와 산세리프(sans-serif) 글자체, 글자 조합에 따라 간격을 달리하는 법, 좋은 타이포그래피를 좋게 만드는 요소를 배웠다. 과학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섬세함에 그는 매료되었다. 그 어떤 실용적 쓸모도 보이지 않던 지식이었다.

캘리그래피 수업 1973년경 · 리드대 청강 "쓸모없어 보이던 점" 매킨토시 출시 1984년 · 최초의 아름다운 활자 "이어진 점" 약 11년의 시차
당시에는 무용해 보이던 캘리그래피 지식이, 10여 년 뒤 최초의 매킨토시 활자 설계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약 11년 뒤, 최초의 매킨토시(Macintosh) 컴퓨터를 설계할 때 그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잡스 팀은 그 지식을 매킨토시에 그대로 녹여 넣었고, 매킨토시는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갖춘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다. 그가 그 수업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에 여러 종류의 글자체나 비례 간격 글꼴은 없었을 것이고, 매킨토시를 본떠 만든 윈도(Windows) 역시 그러했을 것이며, 결국 어떤 개인용 컴퓨터에도 그런 활자는 없었을지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점 잇기란 무엇인가

밤하늘의 별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흩어진 별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누군가 그것들을 선으로 이으면 비로소 별자리라는 형태가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별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는 어떤 별이 어떤 별과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잡스가 말하는 '점'은 인생에서 마주치는 경험·선택·우연이다. 캘리그래피 수업이라는 점을 찍던 순간, 그것이 매킨토시라는 점과 이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점은 미래를 향해 이을 수 없고, 오직 과거를 돌아볼 때만 이어진다. 그러니 지금 찍는 점이 언젠가 이어지리라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 1의 결론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이을 수는 없다. 점은 오직 과거를 돌아볼 때만 이어진다. 그러므로 지금의 점들이 언젠가 어떻게든 이어지리라 믿어야 한다. 그 믿음 — 직관이든, 운명이든, 무엇이든 — 이 마음을 따를 용기를 준다.


02사랑과 상실

SECOND STORY — Love and loss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하는 일을 일찍 찾은 행운에서 출발한다. 잡스는 스무 살 때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함께 부모의 차고에서 애플(Apple)을 시작했다. 두 사람뿐이던 차고의 회사는 10년 만에 직원 4천 명, 기업 가치 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최고의 역작인 매킨토시를 출시한 지 1년이 지났고, 그는 막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해고당했다.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는가. 애플이 커지면서 잡스는 회사를 함께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한 인물을 영입했다. 처음 1년 남짓은 순조로웠으나, 미래에 대한 두 사람의 비전이 갈라지면서 결국 충돌이 일어났고, 이사회는 그가 아니라 상대의 손을 들어 주었다. 서른의 잡스는 그렇게, 그것도 매우 공개적으로 회사 밖으로 밀려났다. 전기 작가들이 기록하듯 그 상대는 잡스 자신이 펩시(Pepsi)에서 영입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였지만, 잡스는 연설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성인기 전체의 초점이던 것이 사라졌고, 그것은 그를 무너뜨렸다. 그는 몇 달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전 세대 기업가들을 실망시켰다는 느낌, 넘겨받던 바통을 떨어뜨렸다는 자책에 빠진 그는 휼렛패커드(HP)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와 인텔(Intel) 공동창업자 밥 노이스(Bob Noyce)를 찾아가 일을 그르친 데 대해 사과하려 했다.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것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천천히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하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애플에서 벌어진 사건도 그 마음만은 조금도 바꾸지 못했다. 거절당했을 뿐, 사랑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성공의 무거움이 다시 초심자가 된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에 덜 확신하게 된 그 상태가, 나를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기로 들어서게 해 주었다.— 해고를 돌아보며

이후 5년 동안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세웠고, 픽사(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일구었으며, 훗날 아내가 될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를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애플로 복귀했고,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 부활의 심장이 되었다. 아내 로렌(Laurene)과는 멋진 가정을 이루었다.

사실 보강: 잡스는 픽사를 "세웠다"고 표현했지만, 정확히는 1986년 루카스필름(Lucasfilm)의 컴퓨터 부문을 인수해 독립 회사로 키운 것이다. 〈토이 스토리〉는 1995년 개봉했고, 애플의 넥스트 인수는 1996~1997년에 마무리되어 넥스트의 운영체제 기술이 이후 맥 운영체제(Mac OS X)의 토대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잡스는 확신한다. 끔찍하게 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는 필요한 약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이 때로 벽돌로 머리를 후려치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를 버티게 한 유일한 힘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뿐이었기 때문이다.

왜 '상실'이 '사랑'과 한 이야기인가

비싼 도자기를 빚는 장인을 떠올려 보자. 가마에서 그릇이 깨지면 장인은 잠시 무너진다. 그러나 그릇을 향한 사랑이 진짜라면, 그는 다시 흙을 빚는다. 깨진 그릇은 그가 흙을 사랑했는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시험이다.

잡스에게 해고는 깨진 그릇이었다. 그것은 그가 일 자체를 사랑했음을 거꾸로 증명했고, 동시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무거운 껍데기를 벗겨 다시 자유롭게 흙을 빚게 했다. 그래서 사랑과 상실은 분리된 두 사건이 아니라,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야기 2의 결론

일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위대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되, 안주하지 마라.


03죽음

THIRD STORY —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이다. 잡스는 열일곱 살 때 읽은 한 구절을 떠올린다.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인 듯 살면 언젠가 그 말이 반드시 맞게 된다는 취지의 문장이었다. 그 말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33년 동안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이 일을 하고 싶을까. 그리고 그 답이 며칠씩 연달아 "아니오"였다면, 무언가를 바꿔야 할 때임을 알았다.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릴 때 그가 만난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외부의 기대, 자존심, 망신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 이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떨어져 나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이미 벌거벗은 상태이므로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 추상적이던 개념이 1년쯤 전 현실이 되었다.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침 7시 30분 검사에서 췌장의 종양이 또렷이 보였다. 그는 췌장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의사들은 거의 확실히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며,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을 예상하라고 말했다. 집에 가서 신변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권고는, 곧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앞으로 10년에 걸쳐 들려줄 줄 알았던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단 몇 달 만에 다 전하고, 가족이 가능한 한 편하도록 모든 것을 매듭짓고, 작별 인사를 하라는 의미였다.

그날 저녁 조직검사가 이뤄졌다. 내시경을 목으로 넣어 위를 거쳐 장까지 내려보낸 뒤 췌장에 바늘을 찔러 종양 세포를 채취했다. 진정 상태였던 잡스 대신 곁을 지키던 아내가 전하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본 의사들이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매우 드문 형태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을 받았고, 연설 시점에는 괜찮다고 말한다.

죽음은 아마도 삶이 만들어 낸 단 하나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일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動因)이다.— 죽음에 대하여

죽음이 '발명품'이라는 말의 뜻

오래된 숲을 떠올려 보자. 거대한 나무가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다면, 그 그늘 아래에서는 어떤 새싹도 빛을 받지 못한다. 늙은 나무가 쓰러져 흙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햇빛이 바닥에 닿고, 새 생명이 자란다. 죽음은 낡은 것을 치워 새것에 자리를 내주는 숲의 규칙과 같다.

잡스는 이 규칙이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지금은 졸업생들이 새것이지만, 머지않아 그들도 낡은 것이 되어 치워질 것이다. 잔인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이며, 바로 그 한계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

이야기 3의 결론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남의 인생을 사느라 낭비하지 마라. 남들의 생각의 결과에 갇히는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타인의 의견이라는 소음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덮게 두지 마라. 무엇보다,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져라. 그 둘은 당신이 진정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미 알고 있다.


마무리 — "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라"

잡스는 자신의 세대에게 성경과도 같았던 한 출판물의 이야기로 연설을 맺는다. 〈홀 어스 카탈로그(The Whole Earth Catalog)〉다.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가 19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멘로파크(Menlo Park)에서 만든 이 책은, 개인용 컴퓨터도 탁상 출판도 없던 시절 타자기와 가위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만으로 제작되었다. 잡스는 그것을 "구글이 나오기 35년 전, 종이 형태의 구글"이라고 불렀다. 이상주의적이면서 기발한 도구와 발상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는 뜻이다.

브랜드와 동료들은 여러 호를 펴낸 뒤, 1970년대 중반 마지막 호를 내며 작업을 마쳤다. 그 마지막 호의 뒤표지에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을 법한,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작별 인사처럼 적힌 문구가 바로 "Stay Hungry. Stay Foolish." — 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라 — 였다. 잡스는 늘 자신에게 그러기를 바라 왔다고 말하며, 이제 새로 출발하는 졸업생들에게도 같은 것을 빈다고 연설을 끝맺는다.


왜 이 연설은 남았는가

15분짜리 졸업 축사가 20년 넘게 회자되는 데에는 몇 가지 설계상의 이유가 있다.

1. 셋의 구조

잡스는 처음부터 "세 가지 이야기"라고 못 박는다. 셋은 기억하기에 가장 안정적인 수다.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아 청중이 끝까지 구조를 붙들 수 있다. 각 이야기가 하나의 사건과 하나의 교훈으로 단순하게 짝지어져 있어, 듣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는다.

2. 추상이 아니라 일화

"꿈을 좇으라"는 식의 추상적 조언은 흔하고 쉽게 잊힌다. 잡스는 대신 입양, 자퇴, 해고, 암 진단이라는 구체적 사건을 던지고 그 안에서 교훈을 끌어낸다. 사람은 명제보다 이야기를 훨씬 오래 기억한다.

3. 평이한 언어와 취약성의 공개

연설에는 어려운 단어도, 경영 용어도 거의 없다. 짧은 문장과 일상어로 이뤄져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억만장자 최고경영자가 실패·두려움·죽음의 공포를 솔직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성공담만 늘어놓았다면 거리감이 생겼겠지만, 약점을 먼저 펼쳐 보임으로써 그의 조언은 신뢰를 얻었다.

4. 반복되는 후렴

"점은 과거를 돌아볼 때만 이어진다", "안주하지 마라(Don't settle)", 그리고 마지막의 "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라". 노래의 후렴처럼 핵심 문장이 반복되며 청중의 기억에 박힌다. 특히 마지막 문구는 연설 전체를 한 줄로 압축하는 표어가 되었다.


연설 이후, 역사가 더한 무게

이 연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읽힌다. 가장 큰 이유는 잡스 자신의 결말 때문이다.

연설에서 그는 "이제 괜찮다"고 했지만, 그가 앓은 암은 흔하고 치명적인 췌장 선암(adenocarcinoma)이 아니라 췌장 신경내분비종양(pNET, pancreatic Neuroendocrine Tumor) — 그중에서도 도세포(islet cell) 종양 — 이었다. 전체 췌장암의 약 1퍼센트에 불과한 드문 유형으로, 더디게 자라기에 진단 후에도 여러 해를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3년 10월 진단을 받은 잡스는 진단 직후 약 9개월간 수술 대신 대체요법을 택했고, 이 선택은 이후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전기에서 두고두고 논쟁이 되었다. 수술은 2004년에 이뤄졌다.

1955
캘리포니아에서 출생, 입양 — 친어머니의 대학 졸업 조건
1973년경
리드대 자퇴 후 캘리그래피 청강 — 이야기 1의 '점'
1976
워즈니악과 부모 차고에서 애플 창업
1984
매킨토시 출시 — 아름다운 활자를 지닌 최초의 컴퓨터
1985
서른 살, 애플에서 공개적으로 해고 후 넥스트 설립 — 이야기 2의 '상실'
1986
픽사 인수 — 루카스필름 컴퓨터 부문
1995
〈토이 스토리〉 개봉 —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1997
애플의 넥스트 인수로 복귀 — 애플 부활의 시작
2003
췌장 신경내분비종양 진단
2004
종양 절제 수술 — "완치" 선언
2005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 — 이야기 3의 '죽음'
2009
간이식 — 암의 간 전이를 시사
2011
8월 최고경영자 사임, 10월 5일 56세로 별세

시점·유형 출처: 미국 ABC뉴스 보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잡스 본인의 2004년 사내 이메일.

2009년 그는 간이식을 받았다. 신경내분비종양이 가장 흔히 전이되는 곳이 간이라는 점에서, 이는 암이 재발 또는 전이되었음을 시사한다. 2011년 8월 24일 잡스는 더 이상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의 책무를 다할 수 없다며 사임했고, 같은 해 10월 5일 팰로앨토 자택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전이된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에 따른 호흡 정지였다.

그래서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다", "죽음은 우리 모두가 향하는 종착지이며 누구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연설 속 문장은, 6년 뒤 잡스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2005년의 그는 죽음을 한 번 비껴갔다고 믿으며 그것을 삶의 동력으로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종착지에 닿았다. 연설의 낙관과 실제 결말 사이의 이 간극이, 역설적으로 이 축사를 더 깊고 진실하게 만든다. 죽음을 모면한 자의 교훈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의 기록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남기는 말

이 연설의 힘은 명쾌한 정답을 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잡스는 직관을 따르라고 권하면서, 그 길의 불확실성과 대가까지 함께 드러낸다. 점은 미래를 향해 이을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는 상실이 따른다는 것, 그리고 모든 시간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는 이 셋을 위로가 아니라 사실로 제시한다.

대학을 마치지 않은 사람이 최고 대학의 졸업생에게 건넨 이 역설의 축사가 20년 넘게 살아남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성공의 비결을 알려 주는 매뉴얼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살아낼지에 대한 한 사람의 솔직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문장은 여전히 가장 짧은 요약으로 남아 있다 — 늘 갈망하고, 늘 우직하라.

참고: 이 글은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 연설(2005년 6월 12일) 원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해설한 것이다. 연설 원문의 저작권은 스탠퍼드대학교에 있으며, 본문은 직접 인용을 최소화하고 대부분 한국어로 풀어 옮겼다. 생애 연표 및 의학적 사실은 스탠퍼드대 공보, 스티브 잡스 아카이브, ABC뉴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의 보도를 교차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