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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2026 · 세계경제포럼

AGI 다음 날: 아모데이와 하사비스가 본 임계점

한 무대에 좀처럼 함께 서지 않는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같은 목적지를 보면서도 도착 시각은 달랐고, 정작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따로 있었다.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2026(다보스) · ‘The Day After AGI’ 세션 정리 · 2026년 5월 23일

WEF(World Economic Forum, 세계경제포럼)가 2026년 다보스 연차총회에 마련한 한 세션의 제목은 ‘AGI 다음 날(The Day After AGI)’이었다.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는 기계가 사실상 대부분의 일을 인간보다 잘하게 되는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 무대에는 그 기계를 실제로 만들고 있는 두 사람이 올랐다. 앤트로픽(Anthropic)의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와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그리고 진행은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편집장 재니 민턴 베도스(Zanny Minton Beddoes)가 맡았다.

제목은 이미 AGI가 와 있다고 전제했지만, 대화의 실제 무게중심은 그보다 앞쪽에 있었다. 얼마나 빨리, 어떤 길로 그곳에 닿는가. 그리고 닿은 다음 인간 사회가 감당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두 사람의 진단은 시간표에서 갈렸고, 위험의 목록에서 다시 만났다. 이 글은 그 한 시간 남짓의 대화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정리한 것이다.


01시간표 — 1-2년인가, 10년인가

같은 곡선을 보면서도 기울기를 다르게 읽는다

아모데이는 지난해 파리에서 “여러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 수준의 일을 해내는 모델이 2026-2027년 안에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1년이 지난 이번 자리에서도 그 전망을 크게 거두지 않았다. 그가 그리는 경로는 단순하다. 코딩과 AI 연구를 잘하는 모델을 만들고, 그 모델로 다음 세대 모델을 더 빨리 만든다. 이렇게 개발 속도 자체가 빨라지는 순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앤트로픽 안에는 더 이상 코드를 직접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엔지니어들이 있다. 모델에게 코드를 쓰게 하고, 자신은 그것을 다듬고 주변을 정리할 뿐이라는 것이다.다리오 아모데이

그는 모델이 SWE(Software Engineer,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일의 대부분을, 어쩌면 전부를 대신하는 시점이 6-12개월 앞이라고 보았다. 다만 그 순환을 무한정 빠르게 돌릴 수는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칩 설계와 제조, 모델 학습에 걸리는 시간처럼 AI가 줄여 줄 수 없는 물리적 단계가 중간중간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론은 분명했다. 몇 년이 걸릴 수는 있어도, 그보다 더 오래 걸리는 그림은 그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사비스의 시계는 조금 느리게 간다. 그는 인간이 가진 모든 인지 능력을 갖춘 시스템이 나올 확률을 “이번 10년이 끝나기 전 50퍼센트”로 본다고 했다. 지난해와 같은 시간표다. 차이를 만드는 건 영역의 성질이다. 코딩과 수학은 답이 맞았는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어 자동화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자연과학은 다르다. 새로 만든 화합물이나 물리 예측이 옳은지는 실험으로 검증해야 하고, 그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그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이미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을 넘어, 좋은 질문과 가설을 스스로 세우는 일이다. 그는 이것을 과학적 창의성의 가장 높은 단계로 꼽으며, 한두 가지 재료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고 했다.

202620272028202920302031 아모데이 (Anthropic) 거의 모든 분야서 인간 능가 · 1-2년 하사비스 (Google DeepMind) 10년 내 도달 확률 50퍼센트 (≈2030) 같은 목적지, 다른 도착 시각
두 사람의 AGI 시간표. 아모데이는 1-2년, 하사비스는 이번 10년 안 50퍼센트로 본다. 차이의 핵심은 ‘검증 가능성’과 자기개선 순환이 닫히는 속도에 있다.
비유 · 검증 가능성

왜 코딩과 수학은 빠르고 자연과학은 느릴까. 객관식 시험은 답안지가 있어 채점이 즉시 끝난다. 코드가 돌아가는지, 수학 증명이 맞는지도 그 자리에서 판가름 난다. 그래서 기계가 스스로 시도하고 고치며 빠르게 늘 수 있다. 반면 새 약물이나 새 물리 이론이 옳은지는 답안지가 없다. 실험실에서 몇 달, 몇 년을 들여 확인해야 한다. 채점이 느린 과목일수록 기계의 학습도 느려진다.

두 사람의 시간표는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한다. 코딩에서 시작된 자기개선의 순환이 인간의 손을 떼고도 닫힐 수 있는가. 닫힌다면 아모데이의 빠른 시계가 맞고, 군데군데 인간이나 실험이 끼어들어야 한다면 하사비스의 느린 시계가 맞는다.

02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꼽은 신호 — AI가 AI를 만든다

시간표가 갈려도, 무엇을 지켜봐야 하는지는 같았다

대화 막바지에 진행자가 물었다. 1년 뒤 다시 만난다면 무엇이 달라져 있을 것 같은가. 두 사람의 답은 사실상 하나였다. AI가 AI를 만드는 일이 어디까지 가느냐, 그것이 모든 것을 가른다는 것이다. 이 순환이 닫히면 AGI는 몇 년 더 가까워지고, 닫히지 않으면 시간을 번다.

아모데이에게 이 순환은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다. 코딩과 연구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 가장 큰 변수라는 것이다. 하사비스는 좀 더 신중했다. 코딩과 수학에서는 이미 순환이 일부 작동하지만, 사람이 빠진 채 완전히 닫히는 일은 아직 미지수라고 보았다. 어떤 영역에서는 그것 자체에 AGI가 필요할지 모르고, 답을 빠르게 검증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문제들, 그리고 로봇처럼 하드웨어가 끼어드는 물리적 AI에서는 자기개선의 속도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자기개선 루프 AI가 코드를 스스로 작성 AI 연구 자체를 가속 더 강력한 차세대 모델 제동 물리적 병목 칩 제조 · 학습 시간 · 하드웨어 — 루프 속도를 제한한다 두 거장이 꼽은 가장 중요한 신호
코드를 쓰는 AI가 AI 연구를 가속하고, 그 결과로 더 강한 모델이 나와 다시 코드를 쓴다. 다만 칩 제조와 학습 시간 같은 물리적 단계가 순환 속도에 제동을 건다.
비유 · 복리와 제동

자기개선 루프는 복리 이자와 닮았다. 불어난 원금이 다음 이자를 더 키우듯, 똑똑해진 모델이 다음 모델을 더 빨리 똑똑하게 만든다. 한 바퀴가 짧아질수록 전체 속도는 가파르게 치솟는다. 그러나 이 순환에는 자동으로 빨라지지 않는 마디가 있다. 새 칩을 설계하고 공장에서 찍어내고 거대한 모델을 며칠씩 학습시키는 일은 소프트웨어처럼 순식간에 압축되지 않는다. 엔진이 아무리 세져도 바퀴 갈아 끼우는 시간은 따로 드는 셈이다. 이 제동이 얼마나 강하냐가 빠른 시계와 느린 시계를 가른다.

하사비스는 자기개선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다른 연구 갈래도 언급했다. 세계를 내부에 모형으로 갖는 월드 모델, 한 번 배우고 멈추지 않는 지속 학습 같은 것들이다. 로봇 공학이 어느 순간 도약하는 국면도 그는 내다봤다.


03판도 — 제미나이 3, ‘코드 레드’, 그리고 독립 기업의 생존

1년 사이 순위가 흔들렸고, 돈의 문제도 같이 따라왔다

진행자는 지난 1년 동안 경쟁의 서열이 바뀌었다고 짚었다. 1년 전만 해도 중국 딥시크(DeepSeek)의 등장이 화제였고, 구글 딥마인드는 오픈AI(OpenAI)에 뒤처진 듯 보였다. 지금은 그림이 다르다. 구글이 2025년 11월 제미나이 3(Gemini 3)를 자사 생태계 전반에 한꺼번에 내놓자, 12월 초 오픈AI의 샘 올트먼(Sam Altman)은 사내에 ‘코드 레드(code red)’를 선언하며 챗GPT(ChatGPT) 개선에 자원을 몰아넣겠다고 밝혔다.

하사비스는 딥마인드가 정상권으로 돌아오리라는 데 늘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가장 깊고 넓은 연구 인력을 한 방향으로 결집하고, 스타트업의 강도와 집중을 조직 전체에 되살리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제미나이 3 같은 모델뿐 아니라 제미나이 앱의 점유율 상승도 그 진전의 한 단면으로 들었다.

여기서 진행자는 아모데이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앤트로픽은 하사비스와 달리 거대 플랫폼 기업에 속하지 않은 독립 모델 기업이다. 수익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독립 기업이 버틸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모데이의 대답은 곡선 이야기였다. 모델이 똑똑해질수록 벌어들이는 돈도 함께 가파르게 늘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매출이 매년 약 10배씩 늘었다고 했다. 0에서 1억 달러(2023년), 1억에서 10억 달러(2024년), 다시 10억에서 100억 달러 규모(2025년)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0.1B$1B$10B ≈$0.1B ≈$1B ≈$9B $14B 2023말2024말2025말2026.2 ×10 ×10 발언 이후 보고치 매년 약 10배 — 로그 눈금 (연환산 런레이트)
앤트로픽 연환산 매출(런레이트). 세로축은 로그 눈금이라 막대가 비슷한 높이로 한 칸씩 오르는 것이 곧 ‘매년 약 10배’를 뜻한다. 점선 막대는 세션 이후 보고된 값이다.
수치 확인. 발언 속 숫자는 연환산 매출 런레이트 기준으로 대체로 들어맞는다. 공개된 수치로는 2023년 말 약 1억 달러, 2024년 말 약 10억 달러, 2025년 말 약 90억 달러였다. 세션 이후인 2026년 2월에는 약 140억 달러, 4월에는 약 300억 달러까지 보고되었다. 즉 ‘2025년에 100억 달러’는 약 90억 달러를 반올림한 표현에 가깝다.

아모데이는 두 회사의 공통점을 짚으며 마무리했다. 모델에 집중하고 세상의 중요한 문제를 북극성으로 삼는, 연구자가 이끄는 회사라는 점이다. 그런 회사가 앞으로 살아남으리라는 것이다. 진행자가 “그렇다면 연구자가 이끌지 않는 회사는 어떻게 되느냐”고 농담처럼 물었지만, 두 사람은 답하지 않았다.


04일자리 — 능력과 대체 사이의 시간차

새 일자리가 생기느냐가 아니라, 충분히 빨리 생기느냐가 쟁점이다

아모데이는 일찍이 신입급 사무직의 절반가량이 1-5년 안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해 왔다. 진행자는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시장에 뚜렷한 충격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미국 실업률이 다소 올랐지만, 여러 연구는 그 원인을 팬데믹 이후의 과잉 채용으로 보지 AI 때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AI 역량을 키우려는 채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하사비스는 단기적으로는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된 정상적인 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일부 일자리는 사라지지만, 더 가치 있고 어쩌면 더 의미 있는 새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인턴이나 신입급 일자리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일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학부생들에게는 분명한 조언을 남겼다.

지금 학부생들 앞에 선다면, 이 도구들에 믿기 어려울 만큼 능숙해지라고 말하겠다. 그것이 전통적인 인턴십보다 나을 수 있다.데미스 하사비스

아모데이는 자신의 과거 발언이 당시 노동시장에 충격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정리했다. 다만 지금은 소프트웨어와 코딩에서 그 시작이 보이며, 앤트로픽 내부에서도 신입급과 중간급에서 사람이 더 적게 필요해지는 시점을 내다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6개월 전 기준으로 1-5년이라는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시간차다. 거의 모든 일을 인간보다 잘하는 AI가 1-2년 안에 나올 수 있다는 전망과, 일자리 대체가 1-5년에 걸친다는 전망은 언뜻 어긋나 보인다. 아모데이는 그 사이에 지연과 적응의 과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시장은 분명 적응력이 있다. 한때 인구의 80퍼센트가 농사를 짓다가 공장 노동자가 되고 다시 지식 노동자가 된 역사가 그렇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이 지수적 변화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앞질러 버리는 경우다.

비유 · 노동 총량의 오류

‘일의 양은 정해져 있어서 기계가 가져가면 사람 몫이 준다’는 생각을 경제학에서는 노동 총량의 오류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는 틀린 쪽이었다. 농기계가 농부를 밀어내자 사람들은 공장으로, 다시 사무실로 옮겨 갔고 일자리 총량은 오히려 늘었다. 두 사람도 새 일자리가 생긴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진짜 쟁점은 속도다. 옛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보다 새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이 옮겨 갈 준비를 갖추는 속도가 느리면, 결과가 옳더라도 그 사이의 통증은 실재한다.

아모데이는 정부가 이 변화의 규모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조차 그 이후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에 거듭 놀란다고 했다. 정책 대응을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경고였다.


05낙관과 그림자 — ‘사랑과 은총의 기계’, 그리고 기술적 사춘기

강력하기에 좋은 일을 하고, 강력하기에 위험하다

아모데이는 2024년 ‘사랑과 은총의 기계(Machines of Loving Grace)’라는 글에서 AI가 열어 줄 밝은 미래를 그린 바 있다. 암을 정복하고 열대병을 근절하며 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이터센터 안의 천재들의 나라’ 같은 그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AI는 대단히 강력할 것이고, 바로 그렇기에 이 모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강력함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이번 휴가 동안 위험을 다루는 새 글을 썼다고 밝혔다. 낙관적인 글이 쓰기에 더 쉽고 즐거워 그쪽을 먼저 썼을 뿐, 위험을 다룰 때조차 그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라는 전투 계획의 틀로 접근했다고 했다.

그가 빌려 온 장면은 칼 세이건 원작의 영화 ‘콘택트(Contact)’다. 외계 생명과 처음 만날 인류 대표를 뽑는 면접에서, 한 후보가 말한다. 외계인에게 단 하나만 물을 수 있다면 이렇게 묻겠다고. “당신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이 기술적 사춘기를 통과했는가.” 아모데이는 지금 인류가 바로 그 문 앞에 서 있다고 보았다. 모래로 기계를 만들어 내는,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의 문이다.

불을 다루기 시작한 순간 이 능력에 도달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다리오 아모데이

그가 추린 위험은 네 갈래다. 인간보다 똑똑하고 고도로 자율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개인이 이를 악용해 생물 테러 같은 일을 벌이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국가가 — 그는 중국 공산당과 권위주의 정부를 거론했다 — 이를 오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리고 노동 대체를 포함한 경제적 충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위험은 아직 우리가 생각조차 못 한 것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06의미와 반발 — 일이 사라진 다음, 그리고 보여 주기

기술이 잘 풀려도 남는 질문이 있다

진행자는 대중의 반발이 커져 정부가 어설픈 대응을 하게 될 위험을 물었다. 1990년대 세계화 국면에서 일부 일자리가 옮겨 갔고, 정부의 대응이 충분치 않자 반발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비교였다. 하사비스는 그런 위험이 분명히 있으며, 일자리와 생계에 대한 두려움은 합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산업이 알파폴드(AlphaFold) 같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백한 선의 사례 쪽으로 더 기울어야 한다고 보았다. 질병을 고치고 새 에너지원을 찾는 일이다.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더 어렵게 본 것은 일자리 자체보다 그 너머다. 설령 기술이 잘 풀리고 새로 생긴 풍요를 더 공정하게 나눌 길을 찾는다 해도 — 어쩌면 결핍이 사라진 세계가 온다 해도 — 의미와 목적이라는 질문은 남는다. 사람이 일에서 얻는 것은 돈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었다. 인간은 이미 경제적 이득과 무관한 활동들, 극한 스포츠나 예술 같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 왔고, 앞으로는 더 정교한 형태로, 나아가 별을 탐사하며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5-10년이라는 자신의 시간표로 보아도 지금부터 고민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공유한 처방은 국제 협력이었다. 기업 간 경쟁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있는 만큼, 최소한의 배포 안전 기준 같은 것에 대한 국제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기술은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사비스는 가능하다면 지금 예측보다 속도를 조금 늦춰 사회가 제대로 준비할 시간을 벌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그것은 조율을 전제로 한다.


07지정학과 칩 — 느려질 수 없는 경주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칩을 둘러싼 선택

진행자는 파리에서 만난 이후 지정학 환경이 한층 복잡해졌다고 짚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전보다 거침없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칩은 팔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모데이의 정책 권고는 그대로였다. 칩을 팔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변화를 감당할 시간을 버는 가장 큰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하사비스의 느린 시계를 차라리 바란다고 했다. 5-10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속도를 늦추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늦출 수 없는 이유를 들었다. 비슷한 속도로 같은 기술을 만드는 지정학적 경쟁자가 있는 한, 양쪽이 함께 속도를 늦추는 합의를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칩만 팔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면 이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 데미스의 경쟁이 된다. 그건 우리가 충분히 풀 수 있다고 확신한다.다리오 아모데이

중국을 미국 공급망에 묶어 두려면 칩을 팔아야 한다는 행정부의 논리에는 정면으로 반대했다. 핵심은 기술의 중대성이라는 것이다. 통신 장비라면 미국 표준을 세계에 퍼뜨리는 전략이 말이 되겠지만, 이 기술은 다르다. 그는 강한 비유를 들었다. 보잉(Boeing)에 이윤이 남는다는 이유로 북한에 핵무기를 파는 셈이라는 것이다. 칩을 팔아 단기 이익을 얻고 미국이 이긴다고 자축하는 그림이 얼마나 어긋났는지를 드러내려는 비유였다.


08통제 — 기만하는 모델, 그리고 뇌를 들여다보기

파국론에는 회의적이지만, 위험은 실재한다

이른바 파국론자들은 전능하고 악의적인 AI를 걱정한다. 두 사람 모두 그런 식의 운명론에는 회의적이었다. 다만 진행자가 짚었듯, 지난 1년 사이 모델들은 기만과 거짓을 보일 수 있음을 드러냈다. 생각이 달라졌는가.

아모데이는 앤트로픽이 처음부터 이 위험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초기의 연구는 매우 이론적이었고, 그 핵심이 기계적 해석가능성(mechanistic interpretability)이라는 분야였다. 모델 안을 들여다보며 그것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다. 시간이 흐르며 모델의 나쁜 행동이 드러날 때마다 기록해 왔고, 이제는 해석가능성으로 그것을 다루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끝장났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의 운명론을 거부했다. 이것은 함께 노력하면 다룰 수 있는 위험이라는 것이다. 다만 모두가 경주에 몰려 가드레일 없이 너무 빨리 달리면, 무언가 잘못될 위험이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비유 · 뇌를 여는 신경과학

모델을 평가하는 흔한 방법은 행동을 보는 것이다. 입력을 넣고 출력을 채점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모델이 왜 그렇게 답했는지, 혹시 겉으로만 맞추고 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기계적 해석가능성은 그 안으로 들어가 신경망의 ‘뇌’를 직접 읽으려는 시도다. 환자의 말과 행동만 관찰하던 의사가 뇌 영상을 들여다보게 된 것에 가깝다. 두 사람 모두 신경과학을 공부한 배경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 비유는 그들에게 자연스럽다.

하사비스는 상승 잠재력과 위험 중 무엇에 더 마음이 기우느냐는 물음에, 자신이 20년 넘게 AI에 매달린 이유는 과학을 위한 궁극의 도구라는 상승 쪽이었다고 답했다. 위험 역시 딥마인드 초창기인 15년 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했다. 상승의 힘을 얻으면 그것은 양날의 기술이 되어 악의적 행위자가 해로운 목적으로 되돌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독창성을 깊이 신뢰한다고 했다. 관건은 시간과 집중, 그리고 최고의 인재들이 함께 매달릴 수 있느냐다. 그것만 갖춰진다면 기술적 안전 문제는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거꾸로 시간이 없고 여러 진영이 흩어져 서로 경주하면, 안전을 담보하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09곁가지 — 페르미 역설과 거대한 필터

우주의 침묵이 파국의 증거일까

한 청중이 물었다. 파국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페르미 역설, 곧 우리 은하에서 지적 생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아니냐는 것이다. 하사비스는 그것이 이유일 수 없다고 답했다. 만약 문명들이 제 기술에 스스로 무너졌다면, 그 폭주한 AI가 만든 흔적이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여야 한다. 거대한 구조물도, 별을 둘러싼 인공 구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페르미 역설의 답은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비유 · 거대한 필터

페르미 역설은 간단한 모순이다. 우주는 광막하고 별은 무수한데, 왜 외계 문명의 신호는 들리지 않는가. 한 가지 설명이 ‘거대한 필터(Great Filter)’다. 생명이 별을 누비는 문명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거의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는 관문이 있다는 가설이다. 그 관문이 우리 앞에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둡고, 뒤에 있다면 우리는 이미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긴 셈이다. 하사비스의 직감은 후자였다. 가장 넘기 힘들었던 관문은 아마도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명으로의 도약이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위안 같은 것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인류가 직접 써야 한다는 것이다.


10정리 — 무엇을 지켜봐야 하나

시간표의 차이보다 더 또렷한 것은 공유된 신호와 공유된 불안이다

한 시간 남짓의 대화에서 두 사람이 가장 또렷이 합의한 지점은,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문장이었다. AI가 AI를 만드는 일을 지켜보라는 것이다. 그 순환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가, AGI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아니면 경이와 거대한 비상사태가 한꺼번에 우리 앞에 닥칠지를 가른다. 하사비스는 자기개선이 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월드 모델과 지속 학습 같은 다른 갈래가 필요할 것이며, 로봇 공학이 도약하는 순간도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모데이의 1-2년과 하사비스의 5-10년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목적지가 아니라 도착 시각의 차이다. 어느 시계가 맞든, 인간을 능가하는 자율 시스템을 안전하게 다룰 제도와 기술적 통제를 갖출 시간은 넉넉지 않다. 두 사람이 시간표에서 갈라섰다가 위험의 목록에서 다시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화의 끝에서 진행자는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조금 더 천천히 오기를 바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덧붙였다. 그건 다름 아닌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웃음과 박수 속에 세션은 끝났지만, 그 농담은 이 대화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질문이기도 했다.

출처

  1.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2026(다보스), ‘The Day After AGI’ 세션 — 데미스 하사비스, 다리오 아모데이, 진행 재니 민턴 베도스(이코노미스트). 본문 인용과 발언은 해당 세션 기록에 근거한다.
  2. 구글 제미나이 3 공개(2025년 11월) 및 오픈AI 샘 올트먼의 ‘코드 레드’ 사내 메모(2025년 12월 초) — The Information, 월스트리트저널 보도.
  3. 앤트로픽 연환산 매출 런레이트 수치(2023-2026) — 앤트로픽 공식 발표 및 로이터 보도. 2024년 1월 약 0.87억 달러, 2024년 말 약 10억 달러, 2025년 말 약 90억 달러, 2026년 2월 약 140억 달러, 4월 약 300억 달러.
  4. 다리오 아모데이, ‘Machines of Loving Grace’(사랑과 은총의 기계), 2024년 10월. ‘데이터센터 안의 천재들의 나라’라는 표현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