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깊이 써 본 사람들 사이에서 흥분과는 다른 묘한 감정이 번지고 있다. 그 감정의 정체와, 그것을 통과한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에 관한 기록.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처음 만난 사람의 첫 반응은 대체로 흥분이다. 못 하던 일이 갑자기 되고, 막혔던 작업이 풀리고,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을 해치운다. 황홀하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도구를 충분히 깊이, 충분히 오래 써 본 사람들에게서 흥분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 관찰된다. 그동안 자신의 가치라고 믿었던 것 — 숫자 더미에서 의미를 뽑아내는 능력, 코드를 한 줄 한 줄 짜내던 솜씨, 오랜 경험으로 쌓은 판단력 — 이 한순간에 무력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우울에 가까운 이 침체를 여기서는 편의상 침체기라 부르겠다.
흥미로운 점은, AI를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이 감정을 먼저 겪고, 아직 덜 쓰는 사람은 "이렇게 좋은 걸 왜 우울하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특정 직군만의 현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환경에서는 직군을 가리지 않고 같은 침체가 번지고 있었다.
이 변화를 세 단계로 정리하면 이렇다. 처음에는 가능성에 흥분하고, 그 가능성을 몸으로 충분히 겪고 나면 자기 쓸모를 의심하는 침체로 접어들며, 그 침체를 지나야 비로소 새로운 균형 — 도구를 자기 것으로 삼아 더 큰 일을 해내는 단계 — 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 3단 구조는 새로 만들어낸 발상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오래 설명해 온 기존 모델과 맞닿아 있다.
신기술을 향한 기대와 실망의 흐름은 이미 잘 정리되어 있다. 한 기술 분석기관이 제시한 곡선은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정점을 지나 환멸의 골짜기로 떨어졌다가, 깨달음의 비탈을 거쳐 생산성의 안정기에 이른다고 본다. 변화 앞에서 사람이 겪는 감정을 다룬 한 심리 모델은 부정과 좌절, 침체를 지나 수용으로 나아가는 경로를 그린다. 실제로 생성형 AI 도입 과정을 이 두 틀로 분석한 연구도 나와 있는데, 사람들이 충격과 좌절, 침체를 거쳐 실험과 통합으로 옮겨간다는 관찰이 데이터로 뒷받침된다. 흥분에서 침체를 거쳐 만개에 이르는 경로는 그 흐름을 일상의 언어로 옮긴 것에 가깝다.
이 모델의 핵심은 순서다. 골짜기를 건너뛰고 만개로 직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한 번은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고, 그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통과 의례에 가깝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 보자. 물이 좋아 보여 뛰어든 사람도, 발이 안 닿는 깊이에서 한 번은 가라앉는 공포를 겪는다. 그 공포를 우회해 곧장 능숙한 수영으로 넘어가는 길은 없다. 가라앉아 본 사람만이 물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운다.
AI에 대한 침체도 이 가라앉음과 같다. 불편하지만, 건너야 할 물이다.
침체는 모두에게 동시에 오지 않는다. 도구를 얼마나 깊이 쓰느냐에 따라 도착 시간이 다르다. 소프트웨어 개발 영역에서는 이미 사람이 한 줄씩 코드를 쓰는 일이 옛 장인의 수작업처럼 느껴질 만큼, AI가 코드를 짜고 다시 AI가 그 코드를 검토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침체를 통과했다.
반대로 일상 업무에서 AI를 덜 쓰는 사람은 아직 침체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변화의 최전선에 가까운 환경에서는 직군과 무관하게 침체가 먼저 찾아온다는 점이 관찰된다. 비개발 직군이라도 변화의 앞단에 노출되면 같은 골짜기를 먼저 지나고, 그 뒤에 만개를 향한다.
도구가 좋기만 한데 왜 가라앉느냐는 의문은, 아직 그 도구를 충분히 깊이 써 보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여기서 따라오는 실용적 함의가 있다. 침체를 빨리, 의도적으로 겪는 편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것이다. 골짜기는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변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결국 대부분에게 찾아온다. 일찍 통과한 사람일수록 만개에 먼저 도달한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질문은 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AI가 다 해주는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내가 더 키워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인류가 무엇으로 쓸모를 인정받아 왔는지를 길게 보는 편이 도움이 된다.
한때는 잘 싸우거나 좋은 물건을 만드는 손기술이 각광받았다. 산업혁명은 기계화로 그 상대적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고, 대신 지능이 높은 사람이 부상했다. 이제 AI가 지능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남는 영역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자주 꼽히는 후보는 카리스마, 소통 능력, 타인의 감정을 읽는 힘, 협상, 호감, 그리고 사람을 직접 움직이는 영향력이다. 흔히 감성지능(EQ, Emotional Quotient)이나 소프트 스킬(soft skill, 대인·정서 역량)로 묶이는 것들이다.
이 직관은 자료로도 뒷받침된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이 펴낸 일자리 미래 보고서는 2030년까지 핵심 직무 역량의 약 39퍼센트가 바뀔 것으로 전망하면서, 가장 빠르게 중요해지는 역량으로 인공지능·빅데이터 같은 기술 역량과 더불어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 회복탄력성과 유연성, 공감과 경청, 호기심과 평생학습을 꼽았다. 기계가 잘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역량의 값이 오른다는 신호다.
주목할 점은 이것들이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다만 책상에서 익히기는 어렵고, 결국 경험으로 체득된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떤 경험이 이런 역량을 길러주는가"로 넘어간다.
사람의 사고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편안하고 익숙한 자리에서는 좀처럼 새로운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익숙한 환경이 흔들리는 순간,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는 종류의 질문 앞에 서게 되고, 그 충격이 사고의 틀을 바꾼다.
익숙한 사례 하나를 일반화해 보자. 정답을 고르는 시험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 전혀 다른 교육 문화권에 놓여, 두 입장을 견주어 논하라는 식의 열린 질문을 처음 마주한다. 무엇을 외웠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묻는 질문은, 언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접근 방식 자체를 흔든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흔들림이, 이후 오랜 기간을 버티게 하는 동력으로 남곤 한다.
환경이 편안하기만 하면 창의적인 상황은 잘 나오지 않는다. 창의성은 기존의 틀을 바꿀 수밖에 없는 자리에 놓였을 때 따라오는 부산물에 가깝다.
여기서 흔히 말하는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는 조언의 한계도 드러난다. 창의성은 수업으로 주입되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 큰 목표, 다른 사고방식에 둘러싸여 자기 생각이 깨지는 경험을 할 때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그런 환경에 사는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가능한 한 다양하고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을 자주 겪어보는 것이다.
북유럽의 평등주의 정서를 압축한 표현으로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라는 것이 있다. 1933년 한 풍자소설이 가상의 마을 규칙으로 제시한 열 개 조항이 실제 사회 태도를 가리키는 관용어로 굳은 것인데, 그 첫 줄이 "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이다. 늘 자신이 특별하다고 배워 온 문화에서 자란 사람에게 이는 정반대의 충격이다.
그런데 그 사회는 잘 굴러간다. 내가 터부시하던 방식으로도 세상이 멀쩡히 작동할 수 있다는 발견 — 이런 사고의 균열은 책으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 직접 서 봐야 일어난다.
경험의 결정적 가치는 전이의 어려움에 있다. 같은 것을 겪은 사람끼리는 몇 마디로 통하지만,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풀어 설명해도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말로 옮겨지지 않기에, 경험은 복제 불가능한 자산이 된다.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자산으로 흔히 꼽히는 것이 관계다. 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도, 처음 보는 이에게는 좀처럼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오래 쌓인 신뢰가 있을 때 비로소 상대는 진짜 아는 것을 솔직하게 내놓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비대칭이 생긴다. 모두가 같은 AI를 입력 도구로 쓰는 시대에, 차이를 만드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도구에 넣을 입력 — 즉 누구로부터 어떤 솔직한 통찰을 끌어낼 수 있는가 — 이다. 그리고 그 입력은 관계의 깊이에 비례한다.
AI는 기획과 정리와 소통의 초안을 훌륭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하자"와 "말자"를 결정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끌어모으고, 자리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실행 자체는 위임되지 않는다.
실행을 둘러싸고 자주 회자되는 관찰이 있다. 무언가를 일단 실행하면, 신기하게도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난다. 공간을 내주고, 후원이 붙고, 뜻밖의 인연이 연결된다. 계획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실행을 매개로 굴러간다. AI 시대일수록 이 실행력이 오히려 더 큰 차별점이 된다. 누구나 좋은 계획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을 실제 움직임으로 옮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변화라도 연차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변화를 여러 차례 겪어 온 사람은 "이번에도 어떻게든 적응하면 된다"는 경험치가 있다. 인생이 롤러코스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기에, 떨어질 때쯤 어떻게 다시 올라가는지에 대한 감각을 가진다. 여기서 회복 탄력성(resilience, 충격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이 중요한 기준점으로 떠오른다.
과거의 변화들을 통과한 적이 있어 적응의 패턴을 안다. 자기가 쌓은 성장의 기반 위에서 AI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더 멀리 갈 수 있다. 강점은 회복 탄력성.
아직 채워야 할 그릇이 비어 있어 흡수력이 크다. 다만 큰 변화를 처음 맞으면 어디에 어떻게 올라타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과제는 성장 경험을 어떻게 쌓느냐.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쪽에는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과거에는 선배에게 부딪히고 깨지며 성장했는데, AI가 일을 다 해주면 그렇게 부대낄 일 자체가 줄어든다. AI는 사람을 다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 경험이 있는 사람은 AI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계속 자라지만, 그 경험 자체가 없는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
이는 실제로 활발히 논의되는 문제다. 여러 분야의 관찰자들은 신참이 단순 업무를 거치며 전문가로 자라던 도제식 학습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급 직원이 겪던 시행착오를 AI가 대신 처리해 버리면, 신참과 숙련자 사이에서 일어나던 지식 전수의 고리가 끊긴다는 것이다. 한 기술 기업의 연구에서는 AI를 일상적으로 쓰는 지식 노동자일수록 비판적 사고의 필요를 덜 느끼고, AI를 더 신뢰할수록 스스로 문제를 파고드는 정도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답을 즉시 받아 드는 환경에서 시행착오의 근육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는, 그래서 더 무거운 물음이 된다.
하루를 마치고 바둑 복기를 하듯 "오늘 그 수가 최선이었나"를 되짚는 사람은, 그 복기 과정에서 자란다. 이미 복기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그 기반 위에서 AI와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문제는 아직 복기할 자기 기록조차 쌓지 못한 단계의 사람이다. 도구가 답을 먼저 줘 버리면, 스스로 두어 보고 틀려 보는 과정이 통째로 생략될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의 단계 모델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집단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AI가 켜진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AI는 극복할 변화가 아니라 그냥 생활의 일부다. 잃을 기존 자산이 없으니, 잃을까 두려워하는 침체도 겪지 않을 수 있다.
AI를 켜 두고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조립하며 노는 아이에게서 관찰되는 것은 우울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감각, 그리고 자기 잠재력에 한계를 덜 두는 태도다. 다만 모든 아이가 그런 환경을 누리는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그 환경을 갖지 못한 쪽에 새로운 격차로서의 침체가 생길 수 있다.
이 대목은 침체라는 표현이 줄곧 부정적으로만 들렸을 독자를 위한 균형추이기도 하다. AI의 순기능은 분명하다. 사람이 못 하던 일을 대신 해주고, 성공률을 높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침체는 그 강력함을 충분히 체감한 사람에게 따라오는 그림자일 뿐, 도구 자체의 결함이 아니다.
지금의 AI는 거대한 변화지만, 마지막 변화는 아니다. 앞으로도 이에 버금가는 파도가 거듭 밀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연습할 것은 특정 도구의 사용법이 아니라, 큰 파도가 올 때마다 잘 올라타는 법 자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관통하는 결론은 두 갈래의 병행으로 모인다. 한쪽으로는 AI를 능숙하게 다루고, 다른 한쪽으로는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사람 고유의 영역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AI에 맡길 일과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필요 없어진다던 AI의 시대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 모이고 더 소통하려 한다. 같은 골짜기를 건너는 이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를 확인하고, 함께 다음 단계로 가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변화의 한복판에서 사람을 다시 사람에게로 데려가는 것 — 그것이 침체가 가리키고 있던 방향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