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산업 분석
애플은 인공지능 경쟁에서 한참 뒤처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회사가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도 동시에 존재한다. 제조에서도 마찬가지다. 업계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압도적 수익성과, 생산 거점이 한 나라에 쏠려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이 한 몸에 있다. 이 글은 인공지능 전략과 공급망이라는 두 축에서 애플이 처한 모순을 정리한다.
현재 거대 기술 기업들의 행보는 비슷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모델을 돌리기 위해 막대한 클라우드 인프라를 짓는 일이다. 수천억 원에서 수십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데이터센터 건설에 투입되고, 그 안에는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 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가 빼곡히 들어찬다. 이 흐름에서 눈에 띄게 빠져 있는 회사가 애플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분석가들은 애플의 그 선택이 옳다고 본다.
애플이 인공지능 인프라 경쟁에 합류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굳이 직접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15억 명이 넘는 아이폰 사용자가 있고, 다른 애플 제품 사용자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강력한 거대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가진 어떤 회사든 이 사용자 기반에 접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애플은 인프라를 짓는 회사가 아니라, 그 인프라를 가진 회사들 가운데 가장 조건이 좋은 상대를 고르는 쪽에 설 수 있다.
이 구상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 시리(Siri) 음성 비서의 변화다. 2026년 1월, 애플과 구글은 다년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모델이 새로 설계된 시리와 차세대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 기능의 기반이 된다는 내용이다. 사용자가 말을 거는 대상은 여전히 시리이지만, 그 뒤에서 답을 만들어 내는 두뇌는 구글의 모델이 맡는 구조다. 직접 개발하는 대신 빌려 쓰는 길을 택한 것이다.
거대 인공지능 모델을 짓는 일은 도시 한복판에 거대한 발전소를 세우는 일과 같다. 막대한 자본과 부지, 끝없는 유지비가 든다. 애플은 발전소를 직접 짓는 대신, 그 도시에서 가장 비싼 상권의 건물주 자리를 이미 갖고 있다.
전기를 팔고 싶은 발전소가 한둘이 아니므로, 건물주는 발전소를 지을 필요가 없다.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발전소를 골라 입주 계약만 맺으면 된다. 애플이 인공지능 인프라 대신 협상력을 자산으로 삼는 방식이 이와 같다.
이 협상력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기존 계약 하나로 분명해진다. 구글은 아이폰에서 기본 검색 엔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플에 해마다 약 200억 달러를 지불한다. 검색이라는 단일 기능의 기본값을 차지하는 대가로만 그만한 금액이 오가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무언가를 만들어 그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닿는 통로를 내주는 대가를 받는 구조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구성이다. 애플은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가장 구매력이 높은 상위 5분의 1을 사실상 거느리고 있다. 앱을 만드는 회사라면 누구나 이 사용자층에 접근하고 싶어 한다. 인공지능 모델을 가진 회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애플은 클라우드 인프라를 짓지 않고도, 그 인프라를 가진 회사와 별도의 제휴를 맺어 결과물만 자기 기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선택지를 갖는다.
그러나 협상력이라는 카드를 인정하더라도, 애플이 인공지능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현실은 그대로 남는다. 인공지능 분야의 최전선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이름들은 구글 제미나이, 오픈AI의 챗GPT, 앤트로픽, 퍼플렉시티, 그리고 프랑스의 미스트랄 같은 회사들이다. 애플은 이 상위 그룹에 들지 못한다. 대화의 한복판에 있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이 정체는 시리의 역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시리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2011년이다. 그 이후 십여 년 동안 시리가 체감될 만큼 똑똑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공지능이 분기 단위로 모습을 바꾸는 속도로 발전하는 동안, 애플의 음성 비서는 그 변화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1983년의 한 강연에서 스티브 잡스는 먼 미래의 컴퓨팅을 그리며, 언젠가는 세상을 떠난 위대한 사상가에게도 기계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그가 든 예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 구상은 지금 현실에 가까워졌다. 누구나 휴대폰을 꺼내 옛 사상가를 흉내 낸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다만 그 대화를 떠받치는 모델은 애플의 것이 아니다. 여러 회사가 만든 모델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 그중 어느 것도 애플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비관적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인공지능이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데 애플이 계속 바깥에 있다면, 격차는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벌어진다. 회사 차원에서 혁신의 동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그 약점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바로 인공지능이라는 진단도 함께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낙관적 시나리오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핵심은 애플이 자기 생태계의 세 층위, 곧 운영체제(OS, Operating System)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소유한 유일한 사업자라는 점이다. 아이폰 안에서 애플은 사실상 독점적 지위에 있다. 이 통합이 인공지능과 만날 때 다른 회사가 흉내 내기 어려운 위치가 생긴다.
챗GPT 같은 외부 모델을 휴대폰에 넣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앱이다. 앱은 자기 자신 안만 본다. 휴대폰에 깔린 다른 앱들, 다른 데이터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반면 시리는 운영체제의 일부로서 기기 전체를 가로질러 움직일 수 있다. 메일에 있든, 문자에 있든, 공유된 메모에 있든, 흩어진 정보를 한데 모아 답을 만들 권한이 있다.
외부 인공지능 앱은 집에 초대된 손님과 같다. 거실 한 칸에는 머물 수 있어도 침실이나 서재, 창고 문은 열 수 없다. 친구가 예전에 추천해 준 책 제목을 찾고 싶은데 그것이 메일이었는지 문자였는지 메모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손님은 거실 밖을 뒤질 수 없으니 도와줄 방법이 없다.
운영체제와 한 몸인 비서는 집주인이다. 모든 방의 열쇠를 쥐고 있으므로 어느 서랍이든 열어 그 책 제목을 찾아낸다. 같은 인공지능이라도 어디에 자리 잡았느냐에 따라 권한이 전혀 달라진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 가능한 한 많은 처리를 클라우드가 아니라 기기 안의 칩에서 직접 해내는 방향이다. 애플의 칩은 대만 반도체 제조 회사(TSMC,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가 위탁 생산하며, 해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보여 준다. 클라우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칩 하나에 옮겨 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상당한 질의는 기기 안에서 처리할 여지가 있다. 비행기 모드에서도, 인터넷이 끊긴 상태에서도, 칩이 내 메일과 사진과 메모를 뒤져 개인화된 답을 내놓는 상황을 그려 볼 수 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아이폰 생태계 안에서 어떤 경쟁자도 따라올 수 없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다만 두 가지 단서를 붙여야 한다. 첫째, 같은 위치를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구글이 차지하고 있다. 구글은 자사 운영체제와 모델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삼성 같은 제조사와 제휴해 비슷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애플의 유리함은 세계 스마트폰 무대 전체에서의 독보성이 아니라, 운영체제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꺼번에 소유한 아이폰 생태계 안에서의 독보성으로 한정된다.
인공지능에서 시선을 돌려 기기 사업 자체를 보면, 애플의 또 다른 성격이 드러난다. 두 회사의 차이는 성능보다 제품군의 범위에 있다. 삼성은 보급형부터 최고급형까지 가격대의 전 구간에 걸쳐 휴대폰을 만든다. 한 해에 내놓는 물량의 대부분은 중저가 모델이고, 최고급 모델은 그중 일부에 그친다. 반면 애플은 사실상 최상단 가격대에서만 경쟁한다. 최신 갤럭시와 최신 아이폰을 사양만 놓고 견주면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취향의 문제에 가깝다. 두 회사를 가르는 것은 성능의 우열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가격대의 폭이다.
한 백화점은 지하 식품관부터 중층의 생활용품, 꼭대기의 명품관까지 모든 층을 운영한다. 매장 면적도, 드나드는 손님 수도 대부분은 아래층이 차지하고, 명품관은 좁은 한 층에 불과하다.
또 다른 가게는 그 명품관만 따로 떼어 낸 단일 매장이다. 들어오는 손님 수는 백화점 전체보다 적지만, 한 사람이 쓰고 가는 금액과 가게에 남는 이윤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삼성이 전 층을 운영하는 백화점이라면, 애플은 명품관만 차린 가게에 가깝다.
이 구조가 숫자로 확인되는 지점이 출하량과 이익의 어긋남이다. 애플이 만드는 휴대폰은 전 세계 출하량의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 삼성도 비슷한 규모를 출하한다. 그런데 업계 전체 이익에서 애플이 가져가는 몫은 약 80퍼센트에 이른다. 같은 수의 휴대폰을 팔면서도 시가총액과 매출에서 두 회사가 크게 벌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삼성은 가장 싼 모델부터 최고급까지 가격대 전 구간을 오르내리며 팔고, 애플은 가장 윗칸에만 머문다.
애플은 휴대폰의 5분의 1을 만들고 이익의 5분의 4를 가져간다. 이 어긋남이 두 회사의 격차를 설명한다.
수익성에서의 압도적 우위는 그러나 또 다른 약점과 짝을 이룬다. 제품을 어디서 만드느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삼성과 애플의 처지는 뒤바뀐다.
삼성은 생산의 회복 탄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아르헨티나에서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여섯 곳가량의 생산 거점을 세계에 분산해 두었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의 생산은 사실상 중국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인도에서 최종 조립을 한다고는 하지만, 부품의 주요 생산은 이미 중국에서 끝난 뒤에 인도로 넘어간다.
여기에는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아이폰을 분해해 부품의 원산지를 따져 보면 한국, 일본, 대만, 미국 같은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그 부품의 상당수는 실제로 그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나라에 본사를 둔 회사가 중국에 공장을 차려 생산한 것이다. 삼성 역시 그런 사례에 속한다. 결국 부품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으로의 집중은 겉보기보다 훨씬 깊다.
모든 생산이 중국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애플을 위태로운 자리에 세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되면 애플의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 위태로움을 누그러뜨리는 두 가지 완충 장치가 있다.
첫째는 규모 그 자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너무 커서 무너뜨릴 수 없었던 은행들처럼, 애플도 그런 위치에 가깝다. 애플은 오랫동안 미국인의 퇴직연금(401k) 계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목 가운데 하나였다. 인덱스 펀드에 돈을 넣어 둔 수억 명의 미국인에게 애플 주가의 하락은 곧 자기 노후 자산의 감소를 뜻한다. 어떤 정책 결정권자도 자국 유권자 대다수의 재산을 직접 깎아 내리는 선택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이 애플에게 일종의 구명줄이 된다.
둘째는 관세라는 정책 수단의 무딘 성질이다. 관세는 정교한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제품의 마지막 한 단계를 다른 나라에서 마치는 것만으로도 원산지 표기를 바꿀 수 있다. 거의 다 조립된 휴대폰을 인도의 공장으로 보내 마지막 결합만 거치면, 관세 기준으로는 그것이 인도산 제품으로 분류된다. 애플은 아이폰에서 이 방식을 써 왔고, 무선 이어폰 같은 제품은 베트남을 통해 비슷하게 처리해 왔다. 생산이 그토록 집중되어 있어도, 관세 규정이 원산지를 끝까지 추적하지는 않기에 우회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요리의 재료를 모두 한 주방에서 손질하고 익혀 거의 완성한 뒤, 마지막에 접시에 담는 일만 옆 가게에서 한다고 하자. 손님에게는 옆 가게 음식으로 표기된다. 재료의 99퍼센트는 원래 주방에서 나왔지만, 규정은 마지막으로 접시에 담은 곳을 원산지로 본다.
관세를 피하는 애플의 방식이 이와 같다. 부품과 조립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끝나고, 인도는 접시에 담는 마지막 손길만 맡는다. 그것만으로 '인도산'이라는 표기가 가능해진다.
공급망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경을 넘는 상거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오래된 격언 하나가 자주 인용된다. 상품이 국경을 넘지 않으면 군대가 넘는다는 말이다. 나라 사이의 교역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상호 의존이 충돌을 누그러뜨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키운다는 생각이다.
1990년대 말의 한 논평가는 이 발상을 '골든 아치 이론'이라 불렀다. 맥도날드가 들어선 두 나라가 서로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는 관찰이었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통합된 사회는 전쟁의 비용을 감당하려 하지 않으리라는 직관을 담은 표현이다.
이 격언이 애플의 사례와 만나는 지점은 분명하다. 문제의 본질은 교역 그 자체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한 곳으로의 과도한 집중이다. 애플에게는 대안이 없다. 중국 바깥에서 제품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인도에서 최종 조립을 맡는 인력이 약 3만 명이라면, 중국에서 애플 제품에 매달리는 인력은 약 300만 명에 이른다. 인도의 숫자는 그 1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사례가 가리키는 일반 원칙은 분명하다. 중국이 제공하는 효율과 높은 마진, 낮은 비용, 압도적인 규모는 강력한 유인이지만, 생산을 한 나라에 모두 맡기면 그 나라의 정세 변화가 곧 사업 전체의 위험으로 직결된다. 효율의 반대편에는 분산이 만들어 내는 회복 탄력성이 있고, 둘은 맞바꿔야 하는 관계에 놓인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다국적 기업, 특히 한국 기업에도 이 긴장은 똑같이 적용된다. 공급망 관리의 오래된 원칙, 곧 한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애플을 둘러싼 두 가지 모순은 사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집중이다. 인공지능에서는 인프라를 직접 짓는 대신 가장 비싼 사용자층을 틀어쥐는 데 집중했고, 그 덕에 뒤처진 듯 보이면서도 협상의 윗자리를 지킨다. 제조에서는 최상단 제품과 중국 한 곳의 생산에 집중했고, 그 덕에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면서도 한 나라의 정세에 모든 것을 건다.
집중은 애플의 가장 큰 힘이자 가장 큰 노출이다. 인공지능 경쟁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기울든,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어떻게 풀리든, 애플의 미래는 이 두 집중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아무리 뒤처져 보여도 손에 쥔 카드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한 곳에 모든 것을 걸어 두었다는 사실은 늘 함께 기억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