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전략
신사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대개 사업계획서부터 쓴다. 10년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5년, 1년, 올해의 로드맵으로 잘게 쪼갠 뒤 투자 계획까지 붙인다. 그러나 이 정교한 계획은 자주, 그것도 완성되기도 전에 빗나간다. 이미 굴러가는 사업은 외부 변수에 맞춰 어떻게든 돌아가지만, 신사업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와 내부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계획이 왜 무너지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무엇으로 대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정리한다.
가령 일반 소비자와 법률 전문가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법률 플랫폼을 떠올려 보자. 변호사와 일반인을 잇겠다는 구상에 여러 해짜리 사업계획서가 붙는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에 생성형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대중화되면, 사람들은 가벼운 법률 문제를 변호사에게 전화하기 전에 AI에게 먼저 묻기 시작한다. 변호사의 도움 없이 AI만으로 소송에서 이겼다는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단순한 사건에 한정된다는 반론이 따르지만, 그 경계선은 꾸준히 위로 올라가고 있다.
법률의 본질을 단순화하면 이렇다. 수많은 판례와 법조문을 머릿속에 담아 두고, 지금 사건에 들어맞는 과거 판례를 찾아 연결하는 일이다. 변호사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어떤 변호사가 수십 년 전 판례 하나를 찾아내 무죄를 입증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그 판례 하나를 찾기 위해 도서관을 뒤지거나 동료의 기억에 기대야 했다. AI는 전 세계의 판례와 법전을 사실상 망각 없이 보유하고 그것을 순식간에 조합한다. 그런 도구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사이 차별점으로 삼았던 가치는 토대째 흔들린다.
또 다른 예로, 누구나 손쉽게 자기만의 곡을 만들게 돕는 음악 교육 서비스를 떠올려 보자. 초중고 학생부터 성인까지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게 하겠다는 그림이다. 이 구상은 더 빨리 무너진다. 문장 몇 줄을 입력하면 완성된 곡이 나오는 AI 음악 생성 도구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작곡가"라는 차별점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짧은 글 한 편을 음악으로 바꿔 달라고 입력하면 몇 분 만에 곡이 나오는 시대다.
두 경우 모두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이 변화는 개별 스타트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거대 기업도 같은 파도를 맞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오피스(파워포인트, 엑셀, 워드)는 지금도 상당한 수익원이다. 한 번 사면 평생 쓰던 방식이 어느 순간 구독료 방식으로 바뀌어 사용자 불만을 사기도 했지만 여전히 잘 팔린다. 그런데 이 오랜 사업이 위기를 맞았다.
파워포인트와 엑셀의 작동 방식을 떼어 놓고 보면 이렇다. 먼저 소프트웨어를 켠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원하는 글자와 숫자를 채워 넣는다. 그런데 AI는 이 과정 자체를 지운다. 파워포인트를 켤 필요 없이 "이런 내용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줘"라고 말하면 슬라이드든 PDF든 결과물이 나온다. 엑셀을 켜고 영수증을 입력해 가계부를 만드는 대신, AI에 영수증을 넣으면 알아서 표와 그래프가 나온다.
비유 — 사스(SaaS)란 무엇인가
사스(SaaS, Software as a Service)는 노션, 슬랙, 파워포인트처럼 켜서 쓰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말한다. 지금의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이런 앱이 잔뜩 깔려 있고,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켠다.
그런데 미래의 컴퓨터는 바탕화면의 앱을 하나씩 켜는 대신 AI 하나에 말을 거는 형태로 바뀔 수 있다. 발표 자료가 필요하면 말로 시키면 되고, 영수증을 넣으면 가계부가 나오고, 메모를 시키면 정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켜서 쓰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통째로 흔들린다. 이 충격을 가리켜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 부른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부터 자사의 AI 비서 코파일럿(Copilot)에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 모델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오픈AI(OpenAI)에 의존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외부 AI를 오피스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다만 이 방어에는 모순이 있다. 사용자는 결국 AI에 말만 걸면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길은 여전히 "파워포인트를 켠 다음 그 안에서 AI를 쓰는" 형태에 머물러 있다. 켜는 단계 자체가 사라지는 흐름 앞에서 기존 앱을 못 버리고 있는 셈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인재가 모인 마이크로소프트조차 불과 몇 달 앞의 자기 사업을 예측하지 못했다. 만약 정확히 예측했다면, AI가 모든 것을 뒤집기 직전에 가령 평생 사용권을 한 번에 파는 마지막 카드로 자금을 끌어모은 뒤 오피스 사업을 정리하는 편이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큰 수익을 안겨 준 사업이고 최고의 인재가 있었는데도 그랬다.
엔비디아(NVIDIA)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 젠슨 황(Jensen Huang)은 수치 목표나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말해 왔다. 그래픽 칩을 월별 생산 개수로 쪼개 목표를 세우기 좋아 보이는 회사인데도 그렇다. 이유는 낭만이 아니라 논리다. 첫째, 목표와 계획에 묶여 일했을 때 자신과 직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성과가 나지 않더라는 경험이다. 둘째, 예측하기 쉬워 보이는 생산 중심의 사업조차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이다. 한때 세상의 중심처럼 보이던 위치도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오래 사업해 온 그는 안다. 엄격한 계획이 없다는 것은 방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끊임없이 배우고 조정한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엔비디아도 애송이가 아니다. 그들조차 미래를 통제하지 못하는데, 신사업을 시작하는 개인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계획서 아래에 깔린 전제의 문제다.
비유 — 두 운전자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쥐면 도로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운전자가 있다. 반대로 도로의 90퍼센트는 날씨, 다른 차, 신호처럼 내 손 밖이라고 보는 운전자가 있다. 앞의 운전자는 사고가 나면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뒤의 운전자는 통제할 수 있는 10퍼센트, 즉 내 속도와 시선과 반응에 집중한다.
사업도 같다. 세상을 100퍼센트 통제할 수 있다고 보면 정교한 다개년 계획에 매달리게 되고, 10퍼센트만 통제할 수 있다고 보면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이 둘은 큰 차이다.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뒤의 전제가 현실에 가깝다.
대안 없는 비판은 비관에 불과하다. 통제할 수 있는 10퍼센트, 즉 오늘과 과정에 집중하는 구체적 방법은 두 갈래로 나뉜다. 흥미롭게도 둘은 정반대의 시간축에 놓이지만 둘 다 작동한다. 정작 피해야 할 것은 그 가운데에 있다.
첫째 길은 빨리 몰입해 만들고, 빨리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본 뒤, 안 되면 빨리 버리고 방향을 트는 것이다. 무모한 주장이 아니라 실리콘밸리가 수년 전부터 해 온 방식으로, 최소기능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빠르게 출시하라는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리 정교한 1년 계획을 세워도 그 1년 사이 세상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빨리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아니면 버리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는 편이 낫다. 하나가 성공해도 안주하지 않고 판이 바뀌면 곧바로 방향을 바꾼다. 이를 피벗(pivot)이라 한다.
오래 살아남은 창업자일수록 처음 시작한 사업과 지금의 사업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신념이 없어서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변수로 무너진 자리에서 다음 10년을 빠르게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길의 전제는 분명하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 시장 트렌드를 길게 분석하는 사이에도 시장은 바뀐다. 분석에 쓸 시간에 당기는 것을 빨리 만들어 내놓는 편이 낫다.
반대편 극단도 유효하다. 진심으로 열정을 느끼는 한 가지가 있다면, 5년 이상,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각오로 그것을 한다. 그 기간에는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시대 변수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오래전에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면 집안에서 말리던 시절이 있었다. 만화는 큰 이익을 내는 분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로지 그 일이 좋아 수십 년을 한 우물만 판 창작자들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흐름이 왔다. 웹툰이라는 형식이 자리 잡았고, 만화는 그 자체로 수익을 내는 동시에 지식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됐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귀해진 시대에, 오래 쌓인 만화는 곧바로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풍부한 원천이 됐다.
수십 년간 무관심 속에서 묵묵히 그려 온 창작자일수록, 어느 순간 그 축적이 큰 값으로 돌아오는 국면을 맞는다. 까닭은 단순하다. 남이 무엇이라 하든 좋아하는 일을 오래 했기에 그 분야에서 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길은 위험해 보인다. 보상이 5년 만에 올지 수십 년 만에 올지 미리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험은 뒤에 나오는 관점에서 다시 보면 줄어든다.
정작 피해야 할 것은 두 극단의 가운데, 즉 10년 계획을 세워 5년과 1년으로 잘게 쪼개 매일에 할당하는 방식이다. 실리콘밸리도, 무계획을 말하는 거대 기업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 달 만에 만들어 낼 것이든 30년을 버틸 것이든, 먼저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공통의 출발점이다.
목표를 거의 없애고 핵심 가치 하나로만 운영되는 회사들이 있다. 직원이 출근해서 매일 몰입할 단 하나의 기준만 정해 주는 방식이다.
아마존(Amazon)의 출발점이 그랬다. 창업 초기, 책상을 완제품으로 사는 것보다 버려진 문짝에 다리를 다는 편이 싸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렇게 책상을 만들었다. 이 문짝 책상(door desk)은 비용 절감이라는 핵심 가치의 상징이 됐고, 지금도 비용을 아낀 직원에게 주는 사내 포상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최저가 공급에 집착하는 유통과 가구 기업들이 비슷한 절약 문화를 공유한다. 직원이 매일 출근해 몰입할 기준은 단순하다. 비용을 줄인다. 그것으로 끝이다.
엔비디아의 무목표 경영도 같은 맥락이다. 먼 미래의 목표를 좇기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끊임없이 배우고 조정하며 오늘의 과업을 최선으로 해낸다.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계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루의 기준은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몇 년 뒤의 먼 결과다. 핵심 가치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몰입할 거리다. 이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은 가장 밑바닥에 깔린 기준의 문제다. 인생과 사업을 결과에 두느냐, 과정에 두느냐.
결과에 두면, 먼 목표를 정해 놓고 하루하루를 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소비한다. 달성되면 내 인생은 가치 있는 것이고, 달성되지 않으면 그동안의 시간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보상이 오기 전까지의 40년에서 50년은 줄곧 결핍의 시간이고, 끝내 이루지 못하면 전부 손실이다.
과정에 두면 다르다. 앞서 말한, 오래 한 우물을 판 창작자에게 지난 수십 년이 오늘의 보상을 위한 시간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는 것이다. 그는 매 순간에서 만족을 얻었고, 시대가 맞아떨어져 찾아온 보상은 거기에 더해진 덤이었다. 그래서 그의 길은 극단적이지 않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행복이다. 그렇다면 과정에서 이미 행복을 얻는 길은 위험해 보이는 만큼 위험하지 않다.
사업계획서와 투자 계획은 껍질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아래에 깔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기준이다. 먼 목표를 정해 하루를 수단으로 쓰고 달성 여부로 인생의 가치를 매기는 전제. 이 글은 그 반대편의 관점을 보여 주려 했다. 세상의 대부분은 내 통제 밖에 있다는 전제 위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오늘과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빠르게 만들어 내놓고 빠르게 버리든, 좋아하는 한 가지에 수십 년을 걸든, 핵심은 같다. 계획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 쓸 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오늘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