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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정리

경량문명·핵개인·AI라는 동료
송길영과 이동진의 대담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 작가·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편

이동진이 진행하는 영화·문화 대담 프로그램에 작가이자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데이터로 사람의 마음을 캐는 사람) 송길영이 출연하여, 신작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을 중심으로 나눈 대화를 정리하였다. 송길영은 2023년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2024년 『시대예보: 호명사회』에 이어 매년 한 권씩 「시대예보」 시리즈를 펴내 왔으며, 세 번째 책에서 관찰의 단위를 개인에서 조직과 문명으로 넓혔다.

01현상에서 출발하여 이름을 짓는 사람

송길영은 자신을 여러 호칭으로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빅데이터 전문가, 인문학자, 한국데이터마이닝학회 부회장, 바이브컴퍼니(옛 다음소프트) 부사장.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호칭은 작가다. 펜과 워드프로세서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고, 학위처럼 누가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주장하면 독자가 받아 주는 직업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든다.

그의 작업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일관된다. 먼저 사람들이 남긴 글과 그림, 일상의 기록을 관찰하여 현상을 늘어놓는다. 그다음 자신이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내가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가"를 스스로 되묻는다. 그 끝에서 하나의 단어가 떠오르면, 그것이 책의 제목이 된다. 핵개인, 호명사회, 경량문명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본문을 다 쓴 뒤에야 제목을 정하는 방식을 세 권 내내 지켰다.

좋은 제목의 조건으로 그는 세 가지를 든다. 궁금증을 일으킬 것, 의미가 한 방향으로 닫히지 않고 열려 있을 것, 그리고 낯설면서도 익숙할 것. 전혀 모르는 말이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고, 너무 익숙한 말이면 지적인 자극이 약해진다. 경량문명이라는 말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그 중간 지대에 놓인다. 그래서 제대로 알려면 책을 읽게 된다.

이름은 새로 짓더라도, 그 이름이 가리키는 변화는 이미 일상에 들어와 있다.

이 태도는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송길영은 독자가 이미 그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전제하고, 자신은 그것을 이렇게 바라본다는 식으로 겸손하게 다가간다. 그가 제목과 후보 개념을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에게 먼저 검토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을 그는 도반이라 부른다.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02심상이 먼저, 설명은 그다음

대담에서 이동진이 특히 인상 깊게 꼽은 대목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가 사람을 돕는 방식을 둘로 나눈 설명이다. 송길영은 AI가 하는 일을 두 갈래로 구분한다. 하나는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거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앞의 것을 그는 병렬지능, 뒤의 것을 직렬지능이라 부른다.

여기에 그는 무협의 비유를 입힌다. 병렬지능은 경공술에 가깝다. 몸이 가벼우면 여럿이 동시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이다. 직렬지능은 축지법에 가깝다. 거리를 접어 단숨에 건너뛰는 이 술법은 단순한 가벼움이 아니라 도를 깨쳐야 가능하다. 사람이 애초에 닿을 수 없던 영역으로 데려다주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병렬지능 하기 힘든 일을 동시에 경공술 · 가벼우면 여럿이 빠르게 직렬지능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AI 축지법 · 도를 깨치면 거리를 접는다
병렬지능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여럿이 나누어 빠르게(경공술), 직렬지능은 사람이 닿을 수 없던 일을 단숨에(축지법) 처리한다.

이 설명이 힘을 갖는 까닭은, 송길영이 개념을 먼저 정의하고 비유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는 머릿속에 먼저 장면을 떠올린다. 작은 조력자들이 동시에 일을 거드는 게임 속 한 장면, 또는 영화 「전우치」에서 인물이 그림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장면 같은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심상을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메타포가 따라 나온다. 어려운 것을 쉽게 옮기려면 비유가 필요했고, 그래서 강연 자료에도 책에도 같은 그림이 등장한다.

03경량문명이란 무엇인가

경량문명은 한마디로 무거움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산업혁명 이후 약 200년 동안 문명은 거대 조직과 대량 생산을 축으로 굴러갔다. 끈끈하게 얽히고 겹겹이 쌓인 구조가 효율과 안전을 보장하던 시대였다. 송길영은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본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지식에 닿을 수 있고, 개인이 AI와 결합하여 증강되면서, 조직과의 관계를 느슨하게 풀어도 더 빠르고 가볍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 변화의 징후로 든 것이 희망퇴직의 상시화다. 한때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이 잠시 쓰던 긴급 처방이, 이제는 상시 제도처럼 자리 잡았다. 대상도 10년 이상 일한 50대에서 입사 1년 차 20대까지 넓어졌다. 송길영은 이를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조직 자체의 의미와 구조가 흔들리는 신호로 읽는다. 무겁고 느린 구조는 더 이상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며, 가볍고 민첩한 조직과 개인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04AI는 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나누는 동료

경량문명에서 AI는 도구라기보다 동료에 가깝다. 송길영은 여기서 표현 하나를 강조한다. AI에게 일을 시킨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일을 나누어 준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다르다. 일을 시키면 결국 모든 단계가 나에게로 돌아와 종결된다. 결정도 내가 하고 버튼도 내가 누르고 공정의 마디마다 내가 관여하면, 나의 생리적 한계가 전체 작업의 속도를 좌우하는 병목이 된다.

그래서 그는 위임할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넘기라고 말한다. 그러면 동료가 된 AI가 병렬로 처리하고 일정한 자율성을 갖게 되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총량 자체가 늘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동료의 이름이 실제로 에이전트(agent)라는 점이다. 송길영은 이 변화를 행위자와 대행의 대비로 짚는다.

대행하던 자리는 줄고, 스스로 행하는 개인이 남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 못하거나 번거로워하던 일은 다른 사람, 곧 대행자(agency)에게 맡겨야 했다. 그 일을 이제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면 굳이 외부에 위탁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전체 과정을 혼자 끌고 가는 개인이 늘어난다. 사람을 관리하던 시대에서 일을 관리하는 시대로 옮겨 간다는 뜻이며, 기업 안에서 인력 지원 부서의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05고용의 구조가 바뀐 까닭: 인당 시가총액

송길영이 『핵개인의 시대』 출간을 2주 앞당긴 이유가 대담에서 공개된다. 그는 원고를 다듬던 중 한 표현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인당 시가총액, 곧 직원 한 명당 기업 가치다. 이 지표가 부상한다는 것은, 직원 수 대비 가치가 높은 기업을 선호하는 투자자가 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기업도 자연히 같은 요구를 받게 된다.

이 압력 앞에서 CFO(Chief Financial Officer, 최고재무책임자)의 선택지는 둘뿐이다. 매출을 올리거나, 인원을 줄이거나. 그런데 매출을 끌어올리는 일은 본래 사업을 책임지는 CBO(Chief Business Officer, 최고사업책임자)의 몫이다. 주가를 관리해야 하는 CFO로서는 결국 인력 쪽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송길영은 이 구조 때문에 대량 고용이 예전 같지 않게 줄어드는 흐름은 막기 어렵다고 본다. 그가 책의 출간을 서두른 것도, 이 변화가 생각보다 빠르고 심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한 글로벌 기업의 사례도 인용한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쇼피파이(Shopify)의 경영진은, 어떤 업무를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 그 일을 AI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사람을 새로 뽑지 않겠다는 신호다. 이런 흐름이 사회 전반에서 효율화로 향하는 것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선발에서 업 선언으로

이 변화를 송길영은 비관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읽는다. 한국에서 출세란 오랫동안 선발의 과정을 멋지게 통과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할 권한을 얻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좁은 등용문을 지나 상대적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면, 남은 인생을 비교적 수월하게 사는 성공 서사다. 그러나 그 공식은 더 이상 잘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선발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업을 스스로 선언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그의 관찰이다.

선발의 시대 한 줄로 줄 세워 선착순 하나의 문 업을 선언하는 시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하나의 좁은 문을 향해 줄 세우던 선발의 시대에서, 각자가 제 방향으로 뛰며 자기 업을 선언하는 시대로.

송길영은 이를 축복이라 부른다. 시험 한 번의 운에 인생의 많은 부분이 좌우되던 시스템은 공정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았는데, 마땅한 대안이 없었을 뿐이다. 이제 출발선을 여러 개로 그을 수 있게 되었다면, 문제는 각자가 자기 업을 어떻게 찾고 자신에 대한 선언을 무엇으로 증거할 것인가로 옮겨 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거대한 재언(再言), 곧 다시 시작하라는 권유에 가깝다.

06어떤 일이 살아남는가: 역발상의 세 조건

대담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업종이 사라지고 어떤 업종이 살아남느냐는 것이다. 송길영은 미국에서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는데, 그 결론이 직관과 정반대다. 개인 사업자가 돈을 버는 일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요약하면, 재미없고 면허가 필요하며 그다지 돈이 안 되는 일이라야 개인이 버틸 수 있다는 역설이다. 송길영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그렇게 따분한 일로 근근이 먹고사는 것은 슬프지 않은가. 그래서 그의 결론은 단순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좋아하면 잘하게 되고, 좋아하는 과정 자체가 삶을 채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보다, 나 혼자라도 깊이 빠질 수 있는 일이 낫다.

모두가 재미있어하는 일은 이미 결과가 좋거나, 아니면 탁월하게 잘해야만 살아남는 레드오션이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엔 시시해도 내가 깊이 빠질 수 있는 영역에서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편이 낫다. 그는 소리를 듣는 일만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옛말 귀명창을 예로 든다. 노래를 부르지 못해도, 오래된 음반을 모으고 복각하여 음반으로 펴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업이 된다. 좋아하는 대상이 분명하면 길은 만들어지고, 그 길 위에서 AI는 다시 한 번 든든한 동료가 된다.

07한국이라는 콘텐츠: 낯선 눈이 발견한 것

책의 한 챕터는 한국이라는 장소가 어떻게 콘텐츠가 되었는지를 다룬다. 출발점은 관광의 변화다. 예전에는 외국 손님이 오면 경복궁과 한국적 자랑거리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 방문객들은 한국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그 일상을 보러 온다. 이미 드라마와 영화로 가상 경험을 마친 뒤 직접 경험을 하러 오는 것이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온다.

그 결과 우리가 익숙해서 가치를 두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발견된다. 한 프랑스 사진작가가 가장 좋아한 장소로 을지로 뒷골목을 꼽았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네온사인과 전신주의 어지러운 전선, 그 사이의 예쁜 바와 인쇄소가 뒤섞인 풍경이 그에게는 SF 영화 속 미래처럼, 곧 사이버펑크 코리아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먼저 찍어 올려 유명해진 야경 명소도 마찬가지다. 부산이 아니라 서울 금호동의 한 동네 공원이 그렇게 발견되었고, 지금은 한국인이 오히려 외국인에게 명소를 배우는 일이 벌어진다.

비유

익숙한 살림집은 정작 그 안에 사는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 들어온 손님이 "이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 좋다"고 말해 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한강에서 라면을 먹는 평범한 장면이 세계적 콘텐츠가 된 것도,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 보지 못한 것을 낯선 눈이 짚어 준 결과다.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키운 사건으로 송길영은 팬데믹을 든다. 코로나19로 해외의 영상 제작이 멈춰 있던 2021년 무렵, 한국은 정보통신 인프라와 행정 시스템 덕분에 제작을 이어 갔다.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거리두기를 실행할 만큼의 디지털 역량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오징어 게임」이 그 공백 속으로 들어가 전무후무한 흥행을 기록했고, 이를 본 팬들이 한국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팬덤이 확장되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 주파수 인식) 같은 기술 기반까지 포함한 사회 전체의 준비가 콘텐츠의 폭발을 받쳐 주었다는 진단이다.

변화는 관광객 수에 그치지 않는다. 단체 관광에서 개별 여행으로, 짧은 체류에서 5일에서 9일에 이르는 긴 체류로, 그리고 재방문으로 이어진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방문객이 그냥 돌아가지 않고 물건을 사 간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김 정도였다면, 지금은 화장품과 패션, 식음료로 품목이 넓어졌다. 송길영은 한국의 소비재가 이렇게 폭넓게 각광받는 것은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규모와 박한 마진으로 버티던 중후장대 산업에서, 선망을 파는 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다.

08핵개인의 커트라인은 너무 높지 않은가

대담의 긴장이 가장 높아지는 지점은 이동진의 반론이다. 그는 이 책이 그리는 이상적인 핵개인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닌지 묻는다. 평생 배우고, 배움의 목적이 끊임없이 바뀌며,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 할 만큼 매력적이고, 모든 것을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는 사람. 이쯤 되면 철학에서 말하는 초인에 가깝지 않으냐는 것이다. 자신은 그렇게 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솔직한 토로이기도 했다.

송길영의 답은 기준을 낮추는 쪽이 아니라, 전제를 바꾸는 쪽이다. 그는 핵개인을 떠올릴 때 오히려 이동진 같은 사람을 예로 들었다고 말한다.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로 일하고, 조직 안에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방향으로 일을 끌고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흔한 망설임의 정체를 짚는다. 사람들이 "나는 그만큼 명철하지도, 오래 버틸 용기도 없다"고 말할 때, 송길영이 보기에 그들은 아직 자신의 본진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근거는 단순하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자리에 들어선 사람은 말려도 한다는 것이다. 시작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은 대개 외부의 말이다. 그건 쉽지 않다거나, 그 방식은 선호되지 않는다거나, 가장 나쁘게는 "내가 해 봤는데 안 되더라"는 경험담이다. 그러나 그때 안 되던 일이 지금은 되고, 그 사람에겐 안 됐어도 나에겐 될 수 있다. 그러니 자기 자리를 찾았다면 과감하게 시작하라는 것이 그의 권유다.

09낙관의 어법, 따뜻한 문장

이동진은 이 책에 부정적인 말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짚는다. 미래를 다루는 책은 대개 위기감을 자극하는데, 송길영의 책은 경량문명을 따뜻한 문명이라고까지 부른다. 개인이 꿈을 이루기 한결 쉬워진 환경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정말 긍정적인 면이 그만큼 많아서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가.

송길영의 대답은 의외로 솔직하다. 내용을 찬찬히 보면 책은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표현까지 부정적으로 쓰면 삶이 이미 고단한 독자를 더 지치게 만들 것 같아, 최대한 예쁘게 쓰려 노력했다고 한다. 길을 미리 꺾어 놓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평서문에 존댓말 어미를 붙이는 문체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냉정한 현실 관찰을 "그렇다"고 단언하면 누가 모르냐는 반발을 부르기 쉬우니, 어미로 완충재를 한 겹 깔아 두는 셈이다.

그가 거듭 강조하는 결론은 방향의 다양성이다. 같은 위기도 누군가에겐 기회가 된다. 예전에는 입시에 실패하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식의 좁은 길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더 가벼운 출발이 여러 갈래로 허락되었다. 그러니 한 자리에서의 작은 성취에 에너지를 다 쏟다 자기 인생을 후회로 채우기보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결승선을 향해 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권하는 태도다.

10맺으며: 본인이 장르가 되는 사람

대담의 끝은 영화로 향한다. 영화·문화 채널의 성격에 맞는 마무리이기도 하다. 송길영은 최근 본 작품 가운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 2025)를 깊이 인상 깊게 꼽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이 영화는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여러 부문을 수상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그는 또 앞선 책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꼽았던 일을 언급하며, 이런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은 지금 사회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읽어 낸 사람들이라고 평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대한 애정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와 함께 디에이징 기술로 인물의 젊은 시절을 구현한 「아이리시맨」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나이가 들도록 오랜 동료들과 함께 창작을 이어 가는 그 열정을 자신이 말한 도반의 모습과 겹쳐 본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 감독을 핵개인의 표상으로 든다. 화면을 보는 순간 누구의 작품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본인이 곧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짚은 핵심이 이 대담 전체를 요약한다. 자기 브랜드를 가진다는 것은 그 안에 자신만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고, 그렇게 본인이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은 AI가 오든 새로운 로봇이 오든 끝까지 남는다는 것이다. 경량문명이 비워 낸 자리에서 결국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한 사람의 고유함이라는 이야기다.

정리: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송길영 작가 편 대담을 주요 개념과 논점 중심으로 요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