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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 사고법

탈학습: 지식이 값을 잃는 시대의 학습법


인공지능이 가파른 곡선을 그릴 때,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이 폭등하는가. 그리고 그 변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다시 배워야 하는가.

0불안의 정체

새로운 기술이 쏟아질 때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내가 하는 일이 앞으로도 쓸모가 있을까. 옆 사람은 무언가 바삐 준비하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이 불안은 단순한 일자리 걱정으로 보이지만, 더 깊은 곳에는 다른 감각이 깔려 있다. 내가 옳다고 믿어온 상식이 통째로 틀려지는 사회로 들어섰다는 감각이다.

그래서 새로 등장한 기술의 이름을 외우는 일은 답이 되지 못한다. 목록은 매년 갈아엎어진다. 먼저 필요한 것은 두 장의 지도다. 하나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즉 끝점의 지도다.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무엇의 값이 무너지고 무엇의 값이 오르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즉 가치 전환의 지도다. 이 두 장이 있어야 비로소 무엇을 배울지가 정해진다.

비유 — 지도 없이 들어선 숲

지도가 없으면 숲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가장 빨리 길을 잃는다. 보이는 나무마다 표식을 남기고, 들리는 소문마다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기술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 이와 같다. 먼저 숲 전체의 모양과 출구의 방향을 알아야,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의미를 갖는다.

1끝점부터 읽는다 — 인공지능의 세 단계

핵심 메시지: 과거의 기술은 인간을 편리하게 했지만, 이 기술의 목표는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은 구조적이다.

인공지능이 가는 길은 대체로 세 단계로 그려진다. 첫 단계는 도구다. 지금 우리가 실제로 검증한 쓰임은 대부분 여기에 머문다. 시장에는 과장된 약속이 많지만, 현재 가장 확실하게 작동하는 것은 업무의 효율화와 자동화 수준이다.

두 번째 단계는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다. 대단히 유능한 전문가가 늘 곁에서 말을 거는 상태로 비유된다. 문제를 정의해 주고, 방법을 알려 주고, 전략을 짜 주는 조언자가 상시 옆에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초인공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이다. 인간이 상상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단계이며, 이 기술이 향하는 끝점으로 여겨진다.

지난 100년간의 기술이 인간을 더 편하게 만드는 방향이었다면, 이 흐름의 끝점은 인간이 하던 일 자체를 대신하는 데 있다. 끝점이 그러하므로,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정확한 감각이다.

인공지능 발전의 세 단계 기술의 끝점 → 인간 대체 범위 ↑ 1단계 · 도구 효율화와 자동화 지금 검증된 쓰임 2단계 · 범용 AI 상시 곁의 전문가 문제 정의·전략 제시 3단계 · 초지능 상상의 실현 기술의 끝점
그림 1. 인공지능 발전의 세 단계. 도구에서 시작해 범용 지능을 거쳐,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끝점으로 향한다.

2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 의식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핵심 메시지: 기술 곡선이 가팔라도 사람의 적응은 느리다. 그리고 그 느린 적응은 예측 가능하다.

끝점이 정해져 있더라도 거기에 단숨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이미 도로 위에는 완전 자율주행(FSD, Full Self-Driving) 기능을 갖춘 차가 다닌다. 그러나 그 기능을 갖춘 차주 가운데 실제로 그것을 쓰는 비율은 전체의 10퍼센트대에 머문다. 2025년 말 공개된 수치 기준으로 누적 판매 대수 대비 사용자 비율은 약 12퍼센트 수준이다. 기술이 있어도 사람이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원리가 드러난다. 의식의 발전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이 지점이 역설적으로 기회가 된다. 기술의 도약은 예측이 어렵지만, 사람의 의식이 새 기술에 적응해 가는 단계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끝점의 지도를 그려 두고, 그 사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읽으면, 무엇을 먼저 준비해야 할지가 보인다.

비유 — 다리를 놓아도 건너지 않는 사람들

강 위에 튼튼한 다리를 다 놓아도, 사람들은 한동안 옛 나루터로 돌아간다. 다리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의심, 새 길에 대한 낯섦 때문이다. 기술이 다리라면, 그 위를 실제로 걷기 시작하는 시점은 늘 한 박자 늦다. 이 시차를 읽는 사람이 가장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한다.

3가장 떨어지는 가치, 가장 오르는 가치

핵심 메시지: 지식의 값이 떨어질수록, 단 하나 오르는 것이 있다. 관계다.

질문을 거꾸로 던지면 답이 빨리 나온다. 무엇의 값이 가장 빨리 떨어지는가. 지식이다. 과거에는 많이 아는 사람, 전문가 수준에 이른 사람이 비쌌다. 그러나 묻기만 하면 지식이 쏟아지는 시대에는 지식의 단가가 급락한다.

지식의 값이 떨어질수록 거꾸로 오르는 단 하나가 있다. 관계다. 다만 여기서도 상식을 한번 버려야 한다. 관계를 흔히 말하는 인맥으로만 이해하면 절반은 틀린다. 관계(關係)라는 글자 자체가 실이 얽히고설킨 모양을 담고 있다. 무언가가 다른 것들과 촘촘히 얽혀 있을 때 비로소 값이 오른다는 뜻이다. 이 관계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원인과 결과가 얽힌 인과관계, 곧 맥락이다.

가치의 교차 — 지식과 관계 가치 AI·기술의 발전 → 교차점 지식 ↓ 관계 ↑
그림 2. 가치의 교차. 기술이 발전할수록 지식의 값은 떨어지고 관계의 값은 오른다.

4맥락 부자 — 인공지능이 못 하는 것

핵심 메시지: 인공지능은 정보를 주지만 인과를 주지 못한다. 맥락을 쥔 사람이 프리미엄 자산을 가진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준다. 그러나 그 정보에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없다. 인공지능이 약한 것이 바로 인과관계다. 같은 단어 하나를 떠올려 보자. 어떤 이가 그 단어를 검색하면 일반적인 정보가 나온다. 반면 어떤 이는 그 단어 안에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 온 경험과 인과의 사슬을 통째로 담고 있다. 뒤의 사람은 맥락 부자이며 관계 부자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프리미엄 자산이다.

소비의 방식도 같은 이유로 바뀐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사기 위해 검색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은 검색해서 사지 않는다. 대신 어떤 키워드와 맥락이 머릿속에 미리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특정 분야를 떠올리면 곧바로 특정한 이름이 함께 떠오르도록 맥락을 설계해 두는 일이다. 한 번 보고 곧장 구매하지 않는 시대에는, 그 맥락을 설계하고 인과를 직접 살아 낸 사람의 값이 오른다.

비유 — 같은 단어, 다른 두께

사전에 적힌 단어는 누구에게나 같은 두께다. 그러나 한 장인이 평생 그 단어를 살아 냈다면, 그에게 그 단어는 수백 겹의 경험이 눌려 붙은 두꺼운 책과 같다. 정보는 복사되지만, 두께는 복사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복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두께다.

5새로운 커뮤니티 — 평적으로 공부하는 시대

핵심 메시지: 아무도 정답을 모를 때, 사람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경계를 지우고 나란히 공부한다.

기술이 가파르게 치솟으면 다음에 어떤 기술이 나올지 누구도 단언하지 못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여서 함께 공부하기 시작한다. 어떤 분야든 갓 태동하는 시기에는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의 경계가 흐려지고, 모두가 나란히 수평으로 함께 더듬어 나간다. 아무도 정답을 쥐고 있지 않으니,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떠올리던 커뮤니티는 회사, 동아리, 종교 같은 형태였다. 앞으로 등장할 커뮤니티는 다르다. 함께 공부하고 소통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돈을 벌고 서로를 돕는 상부상조의 모임이다. 이런 형태의 공동체가 한동안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90퍼센트를 버려라 — 금기를 깨는 자리에 승률이 있다

핵심 메시지: 모두가 아는 전략으로는 모두를 이길 수 없다. 남이 안 가는 10퍼센트에 승산이 있다.

교과서나 강연, 영상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미 낡았거나 지금 환경에는 맞지 않는다. 전 세계 사람의 90퍼센트가 아는 전략과 전술을 들고 싸우면 어떻게 이기겠는가. 모두가 같은 무기를 들고 같은 길로 가기 때문이다. 승부는 나머지에 있다. 남들이 안 가는 영역, 흔히 금기라 불리며 안 된다고 말리는 쪽에 오히려 더 높은 확률이 숨어 있다.

비유 — 가위바위보의 규칙이 무너질 때

가위는 보자기를 이긴다. 모두가 아는 규칙이다. 그런데 그 보자기가 옛날의 천이 아니라 지금의 탄소섬유라면? 가위가 손가락이 아니라 레이저나 물줄기라면? 10년 사이에 재료와 도구가 바뀌면, 가위바위보의 승패 논리 자체가 무너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옛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 이렇게 단순한 것조차 좀처럼 다시 따져 보지 않는다.

7탈학습의 세 단계 — 버리고, 다시 보고, 새로 엮는다

핵심 메시지: 학습은 낡은 지도를 버리는 데서 시작해, 본질을 다시 보고, 끝내 자기만의 일을 짓는 것으로 완성된다.

이 모든 통찰을 하나로 묶는 학습법이 탈학습, 재학습, 신학습의 세 단계다. 첫 단계 탈학습(脫學習)은 낡은 지도를 버리는 일이다. 알고 있던 지식, 상식, 개념, 정의, 공식을 일단 의심한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 재학습(再學習)은 본질을 다시 보는 일이다. 낡은 지도를 버리고 지형을 다시 살피면, 익숙한 것이 새롭게 정의된다. 예컨대 나이를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데이터가 켜켜이 쌓인 두께로 다시 보는 식이다. 세 번째 단계 신학습(新學習)은 이 시대의 기술과 자신만의 통찰을 엮어,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단계다.

탈학습의 세 단계 탈학습 脫學習 낡은 지도를 버린다 상식·공식을 의심 재학습 再學習 본질을 다시 본다 지형을 재정의 신학습 新學習 기술과 통찰을 엮어 자기 일을 만든다
그림 3. 탈학습의 세 단계. 버리고, 다시 보고, 새로 엮는다.

여기에 핵심 원리가 하나 있다. 남의 지식이 머릿속에 그대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라는 것이다. 지난 10년, 혹은 100년간 맞아떨어졌던 지식도 환경이 바뀌면 틀려진다. 어떤 앎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30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1년만 지나도 세상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니 기본 원리는 유지하되, 그것을 신봉할 이유는 없다. 듣기는 듣되, 머릿속에서 한 번 걸러 낸다.

그렇다면 지식을 외부에 맡기면서도 왜 굳이 배워야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시각을 자기 중심에서 제3자 또는 사회의 관점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관점을 남의 관점, 사회적 관점, 제3자의 관점으로 바꿔 보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아는 지식의 허점이 비로소 보인다. 둘째, 자신이 다루는 문제의 크기를 계속 키우기 위해서다. 같은 사람도 위치와 경험이 달라지면 품는 비전의 크기가 달라진다.

단, 한 가지는 절대 외부에 맡기면 안 된다. 의식을 가지고 직접 생각하는 영역이다. 모두가 같은 전략, 같은 전술, 같은 지식으로 판단을 내리면 결국 누구의 결론이든 똑같아진다. 남들이 떠올리지 못한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영역만큼은 자기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8세 개의 좌표 — 10년, 3년, 3개월

핵심 메시지: 끝점·경유지·당장의 세 점을 정해 두면, 현재의 한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어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세 개의 좌표가 필요하다. 첫째는 1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좌표, 곧 끝점이자 방향이다. 둘째는 3년 뒤의 좌표, 곧 중간 경유지다. 셋째는 3개월 뒤의 좌표, 곧 당장의 계획이다. 이 세 점을 연결한 선 위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이 방식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위성 항법 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이 세 점을 잡아 위치를 계산하듯, 시간 축에서도 세 좌표를 알면 지금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가 정해진다. 예컨대 사람은 점점 오래 사는데 그 비용을 감당할 재원은 부족해진다는 10년 뒤의 큰 흐름을 먼저 잡는다. 그 위에서 3년 뒤에 무엇을 시도할지, 다시 3개월 안에 무엇을 할지를 차례로 놓으면, 길이 한 줄로 이어진다.

세 개의 좌표로 위치를 잡는다 10년 뒤 · 끝점 3년 뒤 · 경유지 3개월 뒤 · 당장 현재의 나 세 좌표를 이으면 지금 갈 방향이 보인다
그림 4. 세 개의 좌표. 10년, 3년, 3개월 뒤를 정해 두면 현재의 방향이 결정된다.

9독학의 산수 — 전공은 700시간이면 된다

핵심 메시지: 한 분야의 핵심 분량은 생각보다 작다. 하루 두 시간이면 한 영역을 스스로 정복할 수 있다.

전공이라는 것의 무게를 한번 계산해 보자. 대학 4년 과정에서 전공이 70학점이라 하고, 한 과목(3학점)을 시험에 대비해 10시간씩 공부한다고 치면, 70학점에 10시간을 곱해 700시간이 나온다. 1년을 약 300일로 잡고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하면, 700시간을 채우는 데 1년 남짓이 걸린다. 한 과목으로 좁히면 30시간, 곧 하루 두 시간씩 보름이면 핵심을 잡는다. 선생이 없어 다소 헤매더라도, 한 달이면 한 영역의 전공을 스스로 익힐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 산수는 정밀한 측정이 아니라 하나의 비유에 가깝다. 요점은 숫자의 정확함이 아니라, 한 분야의 핵심 분량이 우리가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 그리고 매일 두 시간의 꾸준함이면 낯선 영역도 독학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비유 — 퍼즐 조각과 코끼리

퍼즐 조각이 10개뿐이면 코끼리 같다는 짐작에 그친다. 그러나 20개쯤 모이면 이건 코끼리다 하고 형태가 또렷해진다. 독학이란 흩어진 조각을 모아 전체를 상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은, 대개 나중에야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10비전을 팔아라 — 물건을 팔면 을, 비전을 팔면 갑

핵심 메시지: 손에 잡히는 것을 팔면 검사 대상이 된다. 아직 보이지 않는 비전을 팔면 주도권을 쥔다.

판매의 본질을 뒤집어 보면 이렇다. 물건을 팔러 가면 언제나 약자, 곧 을의 자리에 선다. 상대가 그 물건을 검사하고 트집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비전을 팔면 거꾸로 주도권을 쥔, 곧 갑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래서 비전은 너무 또렷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윤곽이 선명해지는 순간 그 역시 검사 대상이 되어 버린다.

같은 원리가 회의에도 적용된다. 회의는 일종의 전쟁터다. 회의에 들어갈 때는 을이지만, 끝나고 나올 때는 갑이 되어 있도록 사전 분석을 끝내 둔다. 결국 회의의 승부는 준비에서 갈린다. 그저 자료 없이 들어가 상대가 말하면 받아 적는 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의사결정을 얻어 내려면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 하나는 그 회사 전체에 무엇을 줄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 개인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다. 많은 사람이 앞의 것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뒤의 것이다. 물론 뒷돈 같은 저급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처지와 시점, 앞날에 맞는 가치를 설계해 주는 일이다.

비유 — 검사할 물건이 없는 협상

승진을 앞둔 결정권자를 떠올려 보자. 그에게 손에 잡히는 물건을 들이밀면 검사와 트집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다른 그림을 건넬 수 있다. 지금 이 선택을 해 두면 당신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른 뒤의 몇 해가 빛난다는 그림이다. 회사에 이로운 결정이 정작 결정권자 개인에게는 번거로움이나 손해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 걸림돌을 미리 치워 주지 않으면 결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판매란 결국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읽는 일이다.

11개인주의·집단주의·이기주의 — 섞지 말 것

핵심 메시지: 개인주의는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이기주의는 그저 자기 편함을 좇는다. 둘은 전혀 다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혼자 치고 나가지 말라는 것, 두루두루 잘 살자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 사회를 크게 밀어 올리는 동력은, 주위의 비판을 무릅쓰고 자기가 믿는 최고의 가치를 끝까지 밀어붙인 소수에게서 나오곤 한다. 그 한 사람이 만들어 낸 최고의 결과물 하나가 거대한 집단을 먹여 살리기도 한다.

여기서 흔히 두 가지를 뒤섞는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다. 이기주의는 최고의 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좋으면 그만이다. 반면 개인주의는 자기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를 향해 간다.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집단의 한가운데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머무르면, 그 집단의 성장은 거기서 멈춰 버린다.

12피터팬과 아이언맨 — 상상의 세계와 생존의 세계

핵심 메시지: 사람에게는 본질을 보는 상상의 세계와, 갑옷을 입고 살아남는 현실의 세계가 함께 필요하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필요하다. 하나는 피터팬과 어린왕자의 세계, 곧 상상력과 본질의 세계다. 다른 하나는 아이언맨의 세계, 곧 갑옷을 입고 악당과 싸워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의 세계다. 이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사람은 괴로워진다. 그래서 둘을 잘 조율해 맞추는 일이 평생의 과제가 된다.

한 가지 흔한 착각이 있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법칙을 발견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법칙은 원래 거기 있었고, 다만 우리가 받은 교육의 틀에 갇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상상의 세계를 잃지 않아야, 이미 거기 있던 것을 비로소 볼 수 있다.

13왜 일하는가 — 자기보다 높은 무언가

핵심 메시지: 돈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액수는 의미를 잃는다. 그다음의 동력은 자기보다 높은 가치다.

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액수 자체는 의미를 잃는다. 30년 동안 한 해에 100억 원씩 써도 3,000억 원인데, 사실 그렇게 쓰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계속 일하는가. 자기 목숨이나 자기 위주의 셈법보다 더 높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가치의 층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 직급에서 품던 비전과 그다음 직급에서 품는 비전의 크기가 다르듯, 경험이 쌓이면 향하는 곳이 달라진다.

닫으며 — 레이어를 쌓는 일

오늘 누군가의 단순하고 또렷한 생각은, 사실 한 층 한 층 쌓여 온 레이어의 결과다. 그 과정에는 힘들었던 날과 좋았던 날이 함께 눌려 들어가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계속 학습하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낡은 지도를 버리고(탈학습), 본질을 다시 보고(재학습), 시대의 기술과 자기 통찰을 엮어(신학습) 자기만의 일을 짓는다. 인공지능 시대의 불안에 대한 해독제는 새로 등장한 기술의 목록이 아니다. 무너진 지도를 스스로 다시 그리는 능력, 그리고 지식이 값을 잃는 자리에서 관계와 맥락을 쌓아 올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