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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만에만 석유가 고인 이유: 호르무즈 해협의 2억 5천만 년 지질사

폭 33km의 좁은 바다 길목 하나가 세계 경제를 흔든다. 그 길목 너머의 작은 바다가 지구 석유 매장량의 절반가량을 품게 된 까닭은 국경선이 아니라, 2억 5천만 년에 걸친 대륙의 이동과 충돌에 새겨져 있다. 지정학의 뿌리를 지질학에서 다시 읽는다.

2026년 봄,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과 이란의 보복, 그리고 이란이 해협 일부에 기뢰를 부설할 수 있다는 신호가 오가면서, 유조선은 한때 우회를 강요받았고 국제 유가는 출렁였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그 원유의 대부분이 바로 이 해협을 지난다. 좁은 물길 하나가 막히면 멀리 떨어진 나라의 주유소 가격표까지 흔들리는 구조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떠오른다. 왜 하필 페르시아만일까. 세계의 바다는 넓고, 석유는 미국·러시아·서아프리카에서도 난다. 그런데도 검증된 원유 매장량의 절반 안팎이 이 작은 바다 하나의 주변에 몰려 있고, 그 석유가 거의 예외 없이 호르무즈라는 단 하나의 출구로만 빠져나간다. 이 글은 그 이유가 외교나 분쟁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된 원인 즉 지질학적 진화 과정에 있다는 이야기다.

약 33km
호르무즈 해협 최협부 폭
약 20%
세계 석유 해상 물동량 중 해협 통과 비중
55~68%
페르시아만 분지의 세계 원유 매장량 점유(추정)
40%↑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점유(추정)

01무대: 작은 바다와 더 작은 출구

먼저 지도부터 머릿속에 그려 두자.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길쭉하게 파고든 좁은 바다가 홍해(紅海)다. 홍해 북쪽 끝에는 수에즈 운하가 있어, 이 운하를 통해 지중해와 유럽으로 곧장 나갈 수 있다. 즉 홍해는 막혀도 위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아라비아 반도 반대편, 그러니까 반도와 이란 사이에 또 하나의 좁은 바다가 있는데 이것이 페르시아만이다. 페르시아만으로 드나드는 유일한 입구가 호르무즈 해협이고, 해협을 나서면 오만만을 거쳐 인도양이라는 큰 바다로 이어진다. 홍해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여기 있다. 페르시아만은 호르무즈를 통과하지 못하면 빠져나갈 다른 길이 아예 없다. 안에서 무엇이 생산되든 반드시 이 한 점을 지나야 한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지정학적 급소가 바로 이 구조에서 비롯된다.

아프리카 홍해 수에즈 운하 → 지중해·유럽 아라비아 반도 이란 자그로스 산맥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오만 오만만 · 인도양 유일한 출구 개념도 (실제 축척·해안선과 다름)
홍해는 북쪽 수에즈 운하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페르시아만은 동쪽 호르무즈 해협이 유일한 출구다. 이 구조가 해협을 세계 에너지의 급소로 만든다.

02왜 호르무즈만 병목이 되는가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33km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폭 전체로 배가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심이 충분히 깊은 항로는 오만 쪽에 치우쳐 있고, 이란 연안 쪽은 얕다. 만재 상태의 초대형 유조선은 깊은 물길로만 다닐 수 있으므로, 실제 통항은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을 나눈 좁은 두 갈래(통항 분리 방식)로 제한된다. 빈 배로 들어갈 때는 비교적 얕은 안쪽, 가득 싣고 나올 때는 더 깊은 바깥쪽을 쓰는 식이다.

게다가 해협 안쪽에는 라라크섬·게슘섬처럼 땅속 소금층(암염)이 솟아올라 만들어진 섬들이 흩어져 있어 지형이 복잡하다. 200만 배럴급 대형 유조선이 이 섬 사이를 비집고 다니기란 쉽지 않다. 결국 통항 가능한 실효 폭은 명목상의 폭보다 훨씬 좁다. 좁은 길에 큰 배가 줄지어 다녀야 하니, 한쪽이 막히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

비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떠올리면 쉽다. 갓길까지 합치면 도로가 넓어 보여도, 실제로 차가 지나갈 수 있는 차로는 가운데 두세 개뿐이다. 그 차로에 사고가 나면 도로 폭이 아무리 넓어도 정체가 풀리지 않는다. 호르무즈에서 깊은 항로가 바로 그 차로에 해당한다.

03"홍해로 돌아가면 되지 않나"의 함정

해협이 막히면 아라비아 반도 반대편 홍해로 실어 나르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쪽 페르시아만에서 반도를 가로질러 서쪽 홍해까지 약 1,200km 길이의 송유관을 이미 깔아 두었다. 이 동·서 횡단 송유관은 하루 수백만 배럴을 옮길 수 있다.

다만 이 설비는 본래 유럽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다. 유럽 입장에서는 호르무즈를 돌아 나오는 먼 뱃길보다, 페르시아만에서 송유관으로 홍해까지 끌어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들어가는 편이 훨씬 가깝다. 그래서 만든 지름길이지, 동아시아로 보내려고 만든 우회로가 아니다.

한국처럼 동쪽 끝에서 사 오는 처지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래는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곧장 배에 실어 호르무즈를 통과해 동쪽으로 직항하는 것이 가장 짧고 싸다. 홍해 경로를 쓰려면 (1) 페르시아만에서 송유관으로 옮겨 싣는 추가 비용이 들고, (2) 홍해에서 다시 배에 옮겨 실어야 하며, (3) 항로 자체가 도리어 더 길어진다. 석유 값에서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우회는 곧 가격 상승을 뜻한다.

위험 요소도 겹친다. 홍해 남쪽 끝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예멘 인근 세력의 공격에 노출되어 왔고, 횡단 송유관 자체도 지상 노출 구간이 있어 미사일 한 발이면 끊길 수 있다. 정리하면, 홍해 우회는 급할 때 쓰는 임시방편일 뿐 호르무즈를 대체할 항구적 해법은 되지 못한다. 근본 해결은 결국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풀리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더 깊은 질문으로 돌아가자. 애초에 왜 석유가 페르시아만에만 이토록 몰려 있을까.

042억 5천만 년 전으로: 대륙은 움직인다

이야기는 약 2억 5천만 년 전, 고생대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무렵 지구의 대륙들은 하나로 뭉쳐 거대한 초대륙 판게아(Pangaea)를 이루고 있었다. 판게아는 다시 남쪽의 곤드와나(Gondwana, 남미·아프리카·아라비아·인도·남극·호주)와 북쪽의 로라시아(Laurasia, 북미·유라시아)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둘 사이로 거대한 바다가 쐐기처럼 파고들어 있었는데, 그 바다의 이름이 테티스해(Tethys)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 테티스해다.

개념 정리

당시 아라비아는 독립된 땅이 아니라 아프리카 동쪽에 붙어 있었고(둘을 합쳐 아프로·아라비아라 부른다), 홍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라비아의 북쪽 가장자리는 테티스해를 향해 열린 잔잔한 해안, 이른바 수동형 대륙 주변부였다. 지각 운동이 조용하고 퇴적물이 차곡차곡 쌓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대륙이 통째로 움직인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 한 기상학자가, 남미 동해안의 튀어나온 부분과 아프리카 서해안의 들어간 부분이 직소 퍼즐처럼 맞아떨어지고, 바다로 갈라진 양쪽 대륙에서 같은 육상 생물 화석이 발견된다는 점을 근거로 "대륙 이동설"을 제기했다. 지질학계의 정식 일원이 아니었던 탓에 그는 거센 비난에 시달렸지만, 그의 통찰은 훗날 판구조론(板構造論)이라는 거대한 체계의 주춧돌이 되었다. 오랜 경력과 권위가 곧 진리는 아니라는 점, 때로는 선입견이 없는 새로운 눈이 과학을 진전시킨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다.

테티스해의 일생 — 쌓임에서 솟아오름까지 2.5억 년 전 초대륙 판게아 하나로 뭉침 1.6~1.2억 년 전 대륙 분리 시작 대서양이 벌어짐 약 1억 년 전 테티스해 축소 아라비아 북상 약 3천만 년 전 충돌·홍해 열림 자그로스 융기 현재 페르시아만 완성 전호분지 형성
테티스해는 고생대부터 유기물을 쌓아 왔고, 아라비아판이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며 그 퇴적층이 산맥과 분지로 솟아올라 오늘의 유전 구조가 되었다.

판게아의 분열 과정을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자. 약 2억 년 전까지 대륙은 거의 한 덩어리였다가, 1억 6천만 년 전쯤부터 갈라지기 시작한다. 1억 2천만 년 전(공룡 시대인 백악기)에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인도 대륙이 떨어져 나와 북쪽으로 질주한다. 약 3천만 년 전, 마침내 홍해가 갈라지면서 아라비아가 아프리카에서 분리되고, 그 반동으로 아라비아판은 북동쪽 유라시아판을 향해 밀려간다.

두 대륙이 부딪힌 자리에는 거대한 주름이 생긴다. 인도가 들이받은 곳에는 히말라야가, 아라비아가 들이받은 곳에는 이란 남부를 활처럼 감싸는 자그로스 산맥이 솟아올랐다. 페르시아만이라는 바다는 바로 이 충돌의 마지막 단계에서, 비교적 최근에야 완성된 셈이다. 캐나다 지질학자 존 투조 윌슨이 정리한 "윌슨 사이클"은 이런 과정을 이렇게 요약한다. 지각판은 갈라져 바다를 만들고, 그 바다가 다시 한쪽으로 가라앉아(섭입) 사라지면, 마침내 대륙끼리 다시 만난다. 갈라짐과 합쳐짐이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다.

05석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석유가 만들어지려면 먼저 재료, 곧 유기물이 필요하다. 흔한 오해와 달리 주재료는 공룡이 아니다. 공룡은 덩치만 클 뿐 양이 많지 않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생물량을 차지하는 것은 바다의 플랑크톤이다. 바다에서 플랑크톤이 죽어 가라앉고, 강이 육지의 유기물을 실어 나르는 대륙 가장자리의 바닷가야말로 유기물이 가장 많이 쌓이는 곳이다.

그런데 유기물이 쌓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미생물에 분해되기 전에 빠르게 다른 퇴적물에 파묻혀야 한다. 파묻혀 점점 깊이 들어가면 온도와 압력이 올라가고, 유기물은 케로젠(kerogen)이라는 중간 물질을 거쳐 비로소 석유나 가스로 바뀐다. 핵심은 온도다.

땅속 온도가 정한다 — 석유의 생성 온도창 미성숙 아직 케로젠 단계 석유 생성창 원유가 만들어짐 가스 생성창 원유가 가스로 분해 과성숙·불모 타 버려 잔류물만 얕음 깊음 매몰 깊이 약 60°C 약 120°C 약 180°C 온도 증가 →
대략 60~120°C에서 원유가, 그보다 뜨거운 120~180°C에서는 가스가 만들어진다. 180~200°C를 넘기면 다 타 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온도가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안 된다.

대체로 60°C에서 120°C 사이가 원유가 만들어지는 "석유 생성창"이다. 이보다 더 깊이 묻혀 온도가 올라가면 원유가 더 작은 분자로 쪼개져 대부분 가스로 바뀌고, 180~200°C를 넘기면 그마저 다 타 버려 부산물만 남는다. 요리에 비유하면 알맞게 익혀야 제맛인데, 설익어도 안 되고 새까맣게 태워도 안 되는 셈이다. 지열이 높은 화산 지대에서는 얕은 깊이에서도 빠르게 "과조리"되어 버린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뒤에서 홍해와 동해를 설명할 때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비유

모든 산지의 석유가 똑같은 것도 아니다. 젓갈에 오징어젓·멸치젓·새우젓이 있듯, 석유도 어디서 어떻게 익었는지에 따라 성질이 다르다. 중동산 원유는 황 성분이 많아 정제가 까다로운 대신 값이 싸다. 한국의 정유 설비는 오랜 세월 이 값싼 중동산에 맞춰 거액을 투자해 왔기에, 다른 산지 원유로 손쉽게 갈아탈 수가 없다. 중동산을 계속 들여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다.

06페르시아만이 축복받은 다섯 가지 이유

이제 모든 조각이 맞춰진다. 테티스해는 고생대부터 수억 년 동안 아라비아 북쪽 가장자리에 유기물을 차곡차곡 쌓아 온 거대한 저장고였다. 그 뒤 아라비아판이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서, 테티스의 해저 퇴적층이 한쪽은 산맥으로 솟아오르고(자그로스) 다른 한쪽은 움푹 꺼져 그릇이 되었다. 무거운 산맥이 지각을 누르면 그 옆이 가라앉는데, 이렇게 휘어져 생긴 저지대를 전호분지(前弧盆地, foreland basin)라 한다. 오늘의 페르시아만이 바로 이 전호분지다.

충돌이 만든 그릇 — 전호분지와 배사 트랩 페르시아만 전호분지의 저지대 석유 배사(背斜) 트랩 자그로스 산맥 아라비아판 충돌 안정된 대륙(아라비아 순상지) 표층 덮개암 저류암 근원암(유기물)
충돌로 솟은 자그로스 산맥이 지각을 누르자 그 옆이 휘어져 가라앉으며 전호분지(페르시아만)가 생겼다. 같은 충돌이 지층을 주름지게 해, 석유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는 배사 구조를 곳곳에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같은 충돌이 지층을 위로 볼록하게 주름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솟은 돔 모양의 주름을 배사 구조라 하는데, 위로 새어 나가려는 석유가 그 꼭대기 아래에 갇히는 천연 덫이 된다. 위에는 석유를 가두는 치밀한 덮개암, 아래에는 석유를 머금는 구멍 많은 저류암, 더 아래에는 유기물을 공급하는 근원암이 차례로 놓인다. 빨대 하나 정확히 꽂으면 쭉 뽑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페르시아만 일대 유전이 해안선을 따라 길쭉길쭉 늘어선 까닭도, 이 배사 주름의 방향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있다. 이 지역에는 석유 시스템이 한 층이 아니라 세 층으로 겹쳐 있다. 보통의 산유 지역은 하나의 지질 시대에 만들어진 시스템 하나에 의존한다. 그러나 페르시아만은 테티스 시절부터 고생대·중생대·신생대에 걸쳐 근원암과 저류암이 골고루 갖춰졌다. 신생대 지층에서 석유가 나고, 그 아래 중생대(공룡 시대) 지층에서 또 나고, 더 아래 고생대 지층에서 또 난다. 작은 바다에 석유가 유독 많은 이유는, 지하 1층·2층·3층이 모두 석유 창고이기 때문이다.

핵심 페르시아만의 풍요는 우연이 아니다. ① 수억 년치 유기물(테티스), ② 충돌이 만든 그릇(전호분지), ③ 석유를 가두는 주름(배사 트랩), ④ 세 시대에 걸친 삼중 석유 시스템, ⑤ 시추와 운송이 쉬운 얕은 바다 — 이 다섯이 한자리에 겹친 결과다.

마지막으로 바다라는 점도 큰 이점이다. 페르시아만은 수심 200m 이하의 얕은 대륙붕이라 시추 설비를 세우기 쉽고, 생산한 석유를 바로 초대형 유조선에 실어 가장 싸게 나를 수 있다. 자원이 많고, 캐기 쉽고, 나르기도 편한 조건이 한꺼번에 겹친 것이다.

07같은 중동인데, 홍해엔 왜 없을까

그렇다면 아라비아 반도 반대편 홍해 쪽에서도 석유를 캐면 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쪽에는 석유가 거의 없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순전히 지질학적이다.

앞서 보았듯 페르시아만은 대륙이 부딪쳐 가라앉은 "수렴"의 산물이다. 반대로 홍해는 약 3천만 년 전부터 땅이 갈라지기 시작한 "확장"의 현장이다. 땅이 갈라지는 곳은 아래에서 뜨거운 물질이 솟아오르며 양쪽 어깨가 들어올려진다. 들어올려진 땅은 비바람에 깎여 나간다. 그 결과 홍해를 낀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 해안에서는, 기껏 쌓였던 퇴적층이 융기와 침식으로 거의 벗겨져 나가 단단한 기반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왜 홍해엔 석유가 없나 — 벌어지는 땅의 운명 상승하는 마그마(열) 홍해 벌어지는 열곡 화산 융기로 깎여 나간 지층 화산열에 과성숙
홍해는 땅이 벌어지는 열곡이다. 양쪽 어깨가 들어올려져 지층이 깎여 나가고, 솟아오른 마그마와 화산열이 남은 유기물마저 과조리해 버린다. 석유가 보존될 자리가 없다.

설령 유기물이 일부 남았더라도, 갈라지는 땅을 따라 솟아오른 마그마와 화산이 강한 열을 가해 석유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과조리"해 버린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도 가까운 홍해 쪽에서 석유가 났다면 수에즈 운하로 곧장 보낼 수 있어 훨씬 편했겠지만, 그쪽엔 캘 석유가 없다. 반도 전체로 보면 석유와 가스는 서남부가 아니라 동쪽 페르시아만 연안과 이란 남부 연안에 집중되어 있다. 대체로 서남쪽에서는 원유가, 동북쪽으로 갈수록 가스가 우세하다. 좁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운명이 갈린 것이다.

08그렇다면 한국의 동해는?

흥미롭게도, 한반도 동해에도 비슷한 지질 구조의 단서가 있다. 울릉도 남쪽으로 수심 100~2,000m의 깊은 바다인 울릉분지가 펼쳐지는데, 그 남쪽에는 "돌고래 충상습곡대"라 불리는 주름 구조가 있다. 자그로스 산맥이 학술적으로 "자그로스 충상습곡대"인 것과 같은 이름이다. 판이 밀려 지층이 구겨지고 휘어진 이 구조는, 마치 축소판 자그로스처럼 작용하며 분지 남부를 내리눌러 석유가 갇힐 만한 트랩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이 동해 가스전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2021년까지 약 17년간 천연가스를 생산하며 한때 산유국 대열에 들었던 것도 이런 지질 덕분이다.

비유

"트랩(trap)"은 말 그대로 덫이다. 지층이 위로 볼록하게 휘면, 가벼워서 위로 떠오르려는 석유가 그 꼭대기 아래에 모여 도망가지 못한다. 동해 남부에 이런 덫이 생기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자그로스와 닮은 대목이다.

다만 규모를 페르시아만과 견주는 것은 무리다.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시간이다. 동해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약 2,500만 년 전, 즉 신생대 들어서다. 페르시아만이 고생대·중생대·신생대에 걸친 "지하 3층" 석유 시스템을 갖춘 데 비해, 동해에는 가장 젊은 신생대 시스템 하나뿐이다. 역사가 그만큼 짧다.

둘째, 열이다. 동해 바닥에는 화산이 많아 지열이 높다. 화산은 석유 보존의 첫째가는 적이다. 지열이 조금만 낮았다면 알맞게 익어 원유가 되었을 텐데, 열이 강한 탓에 유기물이 더 익어 작은 분자, 즉 가스 쪽으로 치우친다. 강한 불에 빨리 익히면 요리가 금세 되지만 자칫 타기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동해는 원유보다 가스에 가까운 자원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요점은 동해가 페르시아만의 대안이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바다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다. 보유한 유전·가스전이 거의 없는 나라일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작은 자원이라도 스스로 가지고 있으면 든든하다. 산유국들이 "왜 여기에 석유가 있을 수밖에 없는가"를 지층 단위로 설명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듯, 대략적인 인상만으로 무턱대고 시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바다를 지질학적으로 정밀하게 읽어 내는 실력이 필요하다.


09지질이 곧 지정학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오늘의 긴장은 국제 정세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훨씬 더 깊고 오래된 데 있다. 2억 5천만 년 전 판게아가 하나였던 시절부터 테티스해의 바닥에 쌓여 온 유기물이, 대륙의 분열과 충돌을 거치며 캐낼 수 있는 석유 시스템으로 익어 갔다. 그 석유가 단 하나의 좁은 출구로만 흘러나오도록 만든 것도, 충돌이 빚은 지형이었다. 좁은 바닷길 하나가 세계 경제를 흔드는 힘은, 결국 수억 년에 걸친 땅의 움직임이 한 점에 새겨 놓은 결과인 셈이다.

지정학의 급소를 이해하려면 지도 위의 국경선만 봐서는 부족하다. 그 아래에서 대륙이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읽을 때, 왜 어떤 바다는 석유로 넘치고 어떤 바다는 메말랐는지가, 그리고 우리 발밑의 동해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