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13조 원 — 동해안 민자 석탄발전소 송전제약의 구조적 진단
강원 동해안에 줄지어 선 최신 석탄화력발전소들이 1년의 절반 이상을 멈춰 있다. 발전소가 고장 난 것이 아니다.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길이 없을 뿐이다. 이 글은 가동률·송전 용량·정산 구조라는 세 축으로 그 실상을 해부하고, 왜 이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지를 따진다.
강원도 삼척·동해·강릉 해안에는 2020년대 초반에 차례로 완공된 대형 석탄화력발전소가 늘어서 있다. 설비는 세계 최신 수준이고 연료도 쌓여 있다. 그런데 이 중 민간이 지은 발전소들은 가동률이 한 자릿수에서 30% 사이를 맴돈다. 자동차로 치면 새 차를 뽑아 시동까지 걸어놓고도 차고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유는 단 하나, 생산한 전기를 최대 수요처인 수도권까지 실어 나를 송전선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문제의 뿌리는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9월 15일, 폭염 속 전력 수요 급증과 전력 당국의 관리 실패가 겹치며 전국에 예고 없는 순환정전이 발생했다. 그 책임으로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 장관이 물러났고, 정부는 예비력 보강을 명분으로 대규모 발전설비 확충에 나섰다. 그 결과가 2013년 2월 확정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며, 동해안 민간 석탄발전소들은 바로 이 계획을 통해 사업 허가를 받았다. 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선 민간 기업들은 정부의 수급계획을 믿고 수조 원대 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전기를 실어 나를 도로, 즉 송전망 건설은 발전소 준공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01지금 동해안에서 벌어지는 일 — 숫자로 본 현황
먼저 규모를 확인하자. 동해안 한 곳에 모여 있는 발전설비는 크게 세 묶음이다. 한울·신한울 원자력발전소 8기(약 8.7기가와트), 양양·예천 등 양수발전 약 1.8기가와트, 그리고 석탄화력 8기 약 7.4기가와트다. 모두 합치면 약 17.9기가와트(GW, 기가와트 = 100만 킬로와트)에 이른다. 참고로 1기가와트는 통상 원전 1기 규모에 해당하며, 대략 수십만 가구가 동시에 쓰는 전력에 맞먹는다.
반면 이 전기를 동해안 밖으로 빼낼 수 있는 송전망의 운영 용량은 약 11.6기가와트 수준에 머문다. 생산 능력은 17.9기가와트인데 빠져나갈 통로는 11.6기가와트뿐이니, 산술적으로 6기가와트가 넘는 전기가 갈 곳을 잃는다. 이것이 이른바 송전제약(발전제약)이다. 실제 제약 규모는 계절과 발전기 가동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데, 2022년 여름만 해도 1.2기가와트 수준이던 것이 2024년 9월에는 6.4기가와트까지, 조건이 나쁠 때는 화력 전체 용량에 맞먹는 7.4기가와트까지 치솟았다.
발전소별로 보면 격차가 더 또렷해진다. 동해안 석탄 8기 중 한국남부발전이 운영하는 삼척그린파워만 공기업이고, 나머지 세 곳은 민간이 지었다. 민간 발전소들의 가동률은 처참하다. 국내 마지막 석탄발전소로 불리는 삼척블루파워는 2025년 1분기 가동률이 약 9%에 그쳤고, 강릉안인은 두 호기 모두 가동을 멈추라는 지시를 받아 가동률 0%를 기록한 날도 있었다. 발전소가 건설비와 연료비 같은 고정비를 회수하려면 통상 가동률이 60%는 되어야 하는데,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하루에 얼마를 보내느냐"를 따지면 이렇다. 송전 통로 11.6기가와트 가운데 약 8.7기가와트를 원자력이 거의 상시 점유한다. 원자력은 출력을 자유롭게 올리고 내리기 어려운 데다 발전 단가가 가장 낮아, 사실상 우선권을 갖는다. 남는 통로는 3기가와트 안팎. 양수발전과 필수운전 설비 몫을 떼고 나면 석탄 8기가 실제로 내보내는 양은 평균 1.5~2.2기가와트 수준에 머문다. 하루 에너지로 환산하면 석탄 전체가 보내는 양이 약 40~50기가와트시(GWh)인데, 이는 같은 통로로 원자력이 하루에 내보내는 약 190기가와트시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통로의 4분의 3을 원자력이 쓰고, 석탄 8기가 나머지를 나눠 쓰는 구조다.
| 발전소 | 운영 주체 | 구분 | 설비용량 | 상업운전 |
|---|---|---|---|---|
| 삼척그린파워 | 한국남부발전 | 공기업 | 약 2,044MW | 2016~2017년 |
| 북평(동해)화력 | GS동해전력 | 민간 | 약 1,190MW | 2017년 |
| 강릉안인화력 | 강릉에코파워 | 민간 | 약 2,080MW | 2022~2023년 |
| 삼척화력 | 삼척블루파워 | 민간 | 약 2,100MW | 2024~2025년 |
동해안 송전 통로를 함께 쓰는 석탄 8기, 합계 약 7.4기가와트. 경남 고성의 고성그린파워(약 2,080메가와트)도 같은 제6차 계획에서 나온 민간 석탄이지만, 송전 노선이 달라 동해안 제약 문제와는 구분된다. 다만 뒤에서 볼 정산 차별 측면에서는 함께 묶인다.
02"공기업에 차별받는가" — 오해와 진실
동해안 민간 발전사들은 "원전이 우선권을 갖고 우리는 뒤로 밀린다"고 호소한다.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차별의 실체를 두 층으로 나눠 봐야 한다.
층위 1 — 급전 순위는 차별이 아니라 시장 원리다
전력시장은 발전 단가가 싼 발전기부터 가동하는 경제급전(메리트 오더, merit order) 원리로 돌아간다. 원자력은 연료비가 가장 싸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가동된다. 이는 발전소가 공기업이냐 민간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연료비가 싸냐 비싸냐를 따지는 것이다. 송전 통로가 한정돼 있을 때 그 통로를 단가 낮은 원자력이 먼저 차지하는 것은 소비자 전기요금을 낮추는 방향이며, 그 자체로는 소유 형태에 따른 차별이 아니다. 같은 논리라면 공기업이 운영하는 삼척그린파워 역시 원자력 뒤로 밀린다. 실제로도 밀린다.
층위 2 — 정산 잣대의 비대칭
요컨대 "원전에 밀린다"는 호소는 시장 구조에 대한 오해에 가깝고, 진짜 불만은 "같은 제도 안에서 공기업과 다른 잣대를 적용받는다"는 데 있다. 가동을 못 하는 상황 자체는 송전망 부족이라는 물리적 제약 탓이지 소유 형태 탓이 아니지만, 그로 인한 손실을 메우는 회계 처리에서는 민간이 더 인색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발전사들이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03왜 송전선은 제때 깔리지 않았나
발전소는 빨리 짓고 송전망은 늦게 깐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동해안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핵심 통로는 울진에서 경기 하남까지 280킬로미터를 잇는 8기가와트급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선로다. 사업비만 4조 6,000억 원대. 이 노선은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처음 반영됐고, 당초 2019년 준공이 목표였다. 그러나 발전소들은 2020년대 초반에 줄줄이 완공된 반면, 송전선은 첫 삽조차 한참 늦게 떴다.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송전선과 변전소가 지나가는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다. 2013년 밀양 송전탑 사태는 송전망 건설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뒤로 어느 지역도 자기 마을에 거대한 철탑이 서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동해안 노선만 해도 입지 선정에만 13년이 걸렸다. 2025년 5월에야 노선이 지나는 79개 마을 전 구간에서 주민 합의가 100% 마무리됐다.
마지막 관문은 송전선의 끝, 즉 수도권으로 전기를 받아들이는 동서울변전소다. 경기 하남시가 도시 미관 훼손을 이유로 변전소 증설에 반대하면서 행정소송까지 번졌다. 2025년 8월 경관 심의가 조건부로 통과되며 한 고비를 넘겼지만, 추가 인허가가 남아 있어 2단계 완공은 더 늦춰질 수 있다. 송전선이라는 도로의 마지막 진입로가 막혀, 1단계가 끝나도 전체 효과를 보려면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04역설 — 멈춰 있는데도 흑자가 난다
여기서 이 사태의 가장 기이한 대목이 등장한다. 1년의 절반 이상을 멈춰 있는 발전소들이 장부상으로는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실적을 보면 삼척블루파워는 약 1,779억 원, GS동해전력은 약 59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강릉에코파워만 약 140억 원 적자였다. 가동도 거의 못 한 발전소가 어떻게 이익을 낼까.
답은 총괄원가보상제에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서 발전사는 실제로 전기를 얼마나 팔았느냐와 별개로, 투입한 설비 투자비와 운영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금액을 정산받도록 설계돼 있다. 즉 송전제약으로 전기를 못 팔아도, 일정 부분의 수익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문제는 그 보장의 재원이 결국 전기요금, 다시 말해 전체 전력 소비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발전사가 망한다"는 단순한 그림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일부 발전사는 유동성 위기를 호소하지만, 동시에 제도가 손실의 상당 부분을 사회 전체로 분산시키고 있다. 비판자들이 이들을 좀비 발전소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스스로 살아남을 경쟁력은 없지만, 제도적 수혈로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05해법의 목록과 저마다의 막다른 길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해법이 저마다의 벽에 부딪힌다.
가장 확실하지만 가장 느린 길 — 송전망 확충
근본 해법은 송전선을 다 까는 것이다. 8기가와트 통로가 완공되면 동해안의 송전 운영 용량은 현재 11.6기가와트에서 약 19기가와트로 늘어, 발전설비 17.9기가와트를 충분히 소화한다. 그러나 앞서 봤듯 완공은 빨라야 2028~2029년이다. 그때까지 2년 넘는 시간을 발전소들은 멈춘 채 버텨야 한다.
임시 처방 — 계통 운영의 미세 조정
전력거래소는 송전제약을 줄이려 여러 대책을 운영 중이다. 출력 조정이 어려운 원자력의 출력을 상황에 따라 일부 낮추고, 발전 순서를 재조정(재급전)하며, 양수발전을 활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통로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통로 안에서 짐을 재배치하는 수준이라 효과에 한계가 분명하다. 더구나 원자력 출력을 자주 조정하는 것은 안전·운영 측면에서 부담이 크다.
저장하거나 바꾸거나 — ESS와 연료전환
남는 전기를 대형 배터리(ESS, 에너지저장장치)에 담았다가 통로가 한가할 때 내보내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7기가와트가 넘는 제약을 감당할 만한 배터리는 천문학적 비용을 요구한다. 한편 석탄 대신 암모니아나 바이오매스를 섞어 태우는 연료전환은 발전소를 살리면서 탄소를 줄이는 절충안이지만, 추가 설비 투자와 연료 경제성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남긴다.
아예 닫는 길 — 조기 폐쇄와 보상
탄소중립 흐름을 고려하면 이 발전소들을 예정보다 일찍 닫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해안 민자 석탄 3사에 투입된 사업비는 약 13조 원에 이르고, 아직 투자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조기 폐쇄하려면 막대한 보상이 필요하고, 그 재원과 사업자의 강한 저항이라는 벽이 즉시 등장한다.
06왜 깔끔하게 풀 수 없는가 — 트릴레마의 구조
이 문제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개별 해법의 기술적 난점이 아니라, 세 가지 목표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첫째, 투자 회수. 13조 원을 투입한 발전소가 정상 가동해 원금을 회수하려면 송전망이 뚫리고 발전소가 풀가동돼야 한다. 둘째, 탄소중립. 그러나 이 발전소들을 풀가동하면 석탄 소비와 탄소 배출이 급증한다. 동해안 8기는 2030년대 후반이면 전국 석탄발전의 3분의 1 규모를 차지하게 되고, 일부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연한을 넘긴 2053년까지 가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송전망을 뚫어 발전소를 살리는 것과 탄소를 줄이는 것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셋째, 소비자 보호. 발전소를 멈춰 둔 채 총괄원가로 손실을 보전하면 그 부담은 전기요금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세 꼭짓점 중 둘을 잡으면 나머지 하나가 무너진다. 송전망을 뚫어 투자도 회수하고 소비자 부담도 줄이면 탄소가 늘고, 탄소중립을 지키려 조기 폐쇄하면 투자 회수가 무너지며 보상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멈춰 둔 채 보상하면 투자도 탄소도 어정쩡한 상태로 비용만 누적된다. 어느 선택지도 세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한다.
게다가 송전망을 다 깔아도 석탄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급전 원리는 그대로다. 통로가 넓어지면 더 싼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먼저 그 통로를 채우고, 단가 높은 석탄은 여전히 뒤로 밀린다. 실제로 재생에너지가 늘수록 석탄을 우선 보장하는 현 구조가 거꾸로 재생에너지 출력제한을 부르는 모순까지 빚어지고 있다. 송전제약을 푸는 것이 석탄발전소의 회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책임 소재가 흩어져 있다는 점도 사태를 굳힌다. 발전소 건설을 허가한 정부의 수급계획, 송전망을 제때 못 깐 한국전력, 그 계획을 믿고 거액을 투자한 사업자, 송전탑을 거부한 지역사회. 어느 한쪽의 단일한 잘못으로 돌리기 어렵다 보니, 누구도 결정적 책임을 지고 손실을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 그 사이 비용은 매일 쌓이고, 가장 손쉬운 통로인 전기요금을 통해 조용히 소비자에게 흘러간다.
07남는 질문
동해안 민자 석탄발전소는 15년 전 한여름의 정전이 남긴 긴 그림자다. 위기 직후 "더 짓자"는 대응은 당시로선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발전소를 짓는 속도와 도로를 까는 속도가 어긋나는 순간 거대한 매몰비용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비용을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송전선은 결국 뚫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 뚫린 통로 위에서 이 석탄발전소들이 탄소중립 시대에 어떤 역할을 맡을지, 회수하지 못한 투자와 사회가 떠안은 비용을 어떻게 정리할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다. 멈춰 선 13조 원은, 발전 설비와 송전 설비를 따로 계획하고 따로 책임지는 구조가 만든 비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비싼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