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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권력 · 문명

권력은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세는가

금서와 통계로 읽는 기록의 역사. 인류 최초의 글자는 시도, 기도도 아닌 장부였다. 무엇을 기록하고 누가 그 권한을 쥐느냐를 둘러싼 다툼은 문명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글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장부였다. 누가 보리 몇 자루를 들여왔고, 누가 양 몇 마리를 세금으로 냈는가 하는 기록. 문자라는 발명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회계에서 태어났다.

기록은 그 시작부터 권력과 한 몸이었다. 국가가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두 가지 상반된 몸짓이 나타난다. 하나는 어떤 기록을 지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기록을 빠짐없이 남기는 일이다. 앞의 것은 검열과 금서로, 뒤의 것은 인구조사와 조세 장부로 모습을 드러낸다. 둘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묻는 질문은 같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그리고 그 권한을 누가 쥐는가.

기록을 다루는 권력의 두 얼굴. 한쪽은 지우고, 다른 한쪽은 빠짐없이 센다.

이 글은 그 두 얼굴을 따라간다. 중세 유럽이 불태운 책에서 시작해, 정복왕이 잉글랜드의 숟가락까지 세어 적은 장부를 지나, 점토판에 새겨진 5천 년 전의 영수증과 미래의 죽음마저 계산해 낸 18세기 수학으로 이어진다. 종착지는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가 일정 주기로 실시하는 경제 통계 조사다.

  1. 기원전 8000년경물표(物標)의 등장점토 모형으로 물품과 수량을 기록
  2. 기원전 3300년경쐐기문자 탄생회계 기호가 문자로 발전
  3. 1086년둠즈데이 북잉글랜드 전역의 전수 조사
  4. 1559년금서목록 공식화이후 약 400년간 유지
  5. 1744년미망인 기금통계와 확률이 만나 보험을 낳다
  6. 1799년최초의 소득세토지에서 소득으로, 과세의 전환
  7. 오늘경제 통계 조사국가 경제의 정기 건강검진
1장

지우는 권력: 금지된 책의 역사

먼저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흔히 한데 묶어 금서라 부르지만, 권력이 책을 다루는 방식에는 결이 다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대놓고 읽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 목록에서 슬그머니 빼버리는 것이다.

성서의 정경(正經)이 만들어진 과정이 후자의 좋은 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성경은 고대에 존재하던 수많은 문헌 가운데 일부를 골라 엮은 결과물이다. 선택받지 못한 문서들은 외경(外經)이라 불린다. 대표적인 것이 에녹서다. 이 책에는 하늘의 감시자였던 천사들이 지상의 여인들에게 반해 내려오고, 그 사이에서 네피림이라는 거인족이 태어나 인간에게 금지된 지식과 기술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간에게 불을 건넨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닮은 이 서사는 초기 기독교에서 널리 읽혔지만 끝내 정경에는 들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지금도 에녹서를 정경으로 인정한다. 같은 책이 한쪽에서는 경전이고 다른 쪽에서는 외경인 셈이다. 외경은 금지된 책이라기보다 권하지 않는 책에 가깝다.

비유

금서는 도서관 문에 붙은 대출 금지 딱지이고, 외경은 사서가 추천 목록에서 슬며시 빼놓은 책이다. 앞의 것은 명령이고, 뒤의 것은 큐레이션이다. 둘 다 무엇을 읽힐지 권력이 정한다는 점만은 같다.

진짜 금지는 따로 있었다. 1517년 종교개혁이 시작된 뒤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거치며 반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고, 그 산물 중 하나가 금서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 금지된 책들의 목록)이었다. 최초의 공식 목록은 1559년에 나왔고, 1564년 개정판이 이후 모든 판본의 기준이 되었다. 이 목록은 1966년에야 폐지되었으니, 무려 400년 가까이 유지된 셈이다.

목록에 오른 면면은 놀라울 만큼 넓다.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는 당연했지만, 스피노자와 홉스, 볼테르, 루소, 칸트로 이어지는 철학자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케플러 같은 과학자들이 함께 올랐다. 더 의외인 것은 소설이다. 위고의 레 미제라블, 뒤마의 삼총사,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발자크와 졸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까지 줄줄이 금지되었다. 신학적 이단만이 아니라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가 폭넓게 적용된 결과였다.

여기서 금서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것은 특정 사상을 막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종종 권력은 특정 인물 자체를 지운다. 어떤 저자가 미움을 사면 그의 모든 저작이 통째로 금지되고, 학술 문헌에서 그의 이름은 인용조차 사라진다. 20세기 전체주의 국가들이 즐겨 쓴 방식이 그러했다. 한 사람이 비국민으로 낙인찍히면 그가 남긴 모든 흔적이 공식 기록에서 증발했다. 이름이 빠진 자리만 어색하게 비어 글의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였다. 지식의 통제는 곧 사람의 통제였다.

이 통제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분출한 사건이 1988년에 있었다. 그해 출간된 한 소설이 신성모독으로 지목되자, 이듬해인 1989년 이란의 종교 지도자는 저자와 출판·번역에 관여한 모든 이를 향해 살해를 정당화하는 파트와(이슬람 법학상의 명령)를 내렸다. 이 소설을 옮긴 일본어 번역가는 1991년 대학 연구실에서 살해되었고, 이탈리아어 번역가와 노르웨이 출판인도 잇따라 공격받았다. 금서가 더 이상 목록 속 활자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겨눈 칼이 된 순간이었다.

2장

세는 권력: 둠즈데이 북과 세금의 기원

권력의 반대편 몸짓, 곧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 주는 문서가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 심판의 날 장부)이다.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뒤, 그는 새로 차지한 땅을 따라온 신하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야 했다. 그러려면 먼저 그 땅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1086년, 왕은 잉글랜드 전역을 대상으로 인구와 토지, 가축의 머릿수, 재산을 샅샅이 조사해 거대한 장부로 묶었다.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까지 빠뜨리지 않은 이 조사를 두고 당대 사람들은 심판의 날 장부라 불렀다.

이름이 섬뜩한 데는 이유가 있다. 최후의 심판 날 천사가 사람이 살아생전 지은 죄를 낱낱이 들춰내듯, 이 장부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한번 기록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심판처럼 최종적이고 번복이 불가능하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었다. 가진 것을 탈탈 털린 기분, 그것이 둠즈데이였다.

비유

둠즈데이 북은 11세기판 빅데이터였다. 국가가 가구마다 숟가락 개수까지 들여다보는 일은 두려움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공평한 분배의 전제이기도 하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지 알아야 비로소 공정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감시와 공정은 같은 데이터의 양면이다.

그런데 이런 전수 조사는 잉글랜드만의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생겨나는 곳에는 어디서든 조사가 실과 바늘처럼 따라붙었다. 인간은 돈이 걸리면 가장 정직해지고 가장 꼼꼼해진다.

기록을 향한 권력의 집착은 새로운 세금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소득세조차 비교적 최근의 발명이다. 1799년 영국 총리 윌리엄 피트(소)는 프랑스와의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사상 최초의 소득세를 도입했다. 그전까지 세금은 대체로 토지나 그 생산물에 매겨졌다. 사람이 얼마를 버는가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때 일어났다. 연 60파운드가 넘는 소득에 0.83퍼센트, 200파운드가 넘으면 10퍼센트를 물린 이 누진세는 전쟁이 끝난 1816년 폐지되었고, 의회는 관련 기록을 모조리 파기하라고까지 명령했다. 그러나 한번 세상에 나온 세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소득세는 곧 모든 근대 국가의 기본 세목으로 자리 잡았다.

3장

장부가 문자를 낳았다

이쯤에서 가장 근본적인 사실로 돌아가 보자. 문자는 무엇을 위해 발명되었을까. 답은 의외로 무미건조하다. 시를 짓기 위해서도, 신을 찬미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물건을 세고 거래를 적기 위해서였다.

인류 최초의 문자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회계에서 자라났다. 그 뿌리는 문자보다 훨씬 앞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8000년경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물표(物標)라 불리는 작은 점토 모형을 썼다. 원뿔, 구, 원반 같은 단순한 형태가 각각 곡식 한 자루, 양 한 마리 같은 물품과 수량을 나타냈다.

문제는 이 물표를 어떻게 위조 없이 보관하느냐였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불라(bulla)다. 물표 여러 개를 점토로 빚은 속 빈 공 안에 넣어 봉인하고, 겉면에 도장을 찍는다. 내용을 확인하려면 공을 깨야 하는데, 깨는 순간 도장도 함께 부서지므로 누군가 손을 댔는지 한눈에 드러났다. 5천 년도 더 된 이 봉인 영수증은, 깨뜨려야만 검증되는 위·변조 방지 장치의 원형이었다.

셈을 위한 점토 모형이 봉인 용기를 거쳐 납작한 점토판의 기호로, 마침내 문자로 굳어졌다.

비유

불라는 인류 최초의 위조 방지 봉투였다. 안에 무엇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봉인하고, 봉인을 건드리면 흔적이 남게 한 구조다. 한번 적으면 고치기 어렵게 만들어 기록의 신뢰를 지키려는 오늘날 디지털 장부의 발상과 놀랄 만큼 닮았다.

이윽고 사람들은 공을 깨지 않고도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겉면에 안에 든 물표의 모양과 개수를 눌러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의 물표는 점점 불필요해졌고, 납작한 점토판에 기호를 새기는 방식만 남았다. 이것이 쐐기문자의 출발이다. 문자는 몇 개라는 회계 정보를 적으려는 노력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기원의 흔적은 점토판의 내용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수많은 점토판 가운데 신화나 문학 작품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무엇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갔는지를 적은 거래 기록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문학은 이 방대한 장부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던 셈이다. 멀리 인더스 문명의 문자 역시 아직 해독되지는 않았으나, 상거래를 위해 만들어졌으리라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실제로 여러 고대 문명에서 1부터 10까지의 숫자는 가장 먼저 등장한 기호에 속한다. 말보다 셈이 먼저 글자가 된 것이다.

4장

숫자가 미래를 계산하다

세는 일은 오랫동안 지금 여기의 사실을 붙잡는 데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숫자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 전환의 무대 중 하나가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였다. 14세기 피렌체의 연대기 작가 조반니 빌라니는 도시의 인구와 교회 수, 직물 생산량, 은행과 전문직 종사자의 숫자까지 꼼꼼히 적었다. 후대 역사가들은 1338년경의 이 기록을 두고 역사 서술에 통계가 적극적으로 들어온 최초의 사례라 평가한다.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던 베네치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보가 곧 생명인 해상 국가였던 만큼, 함선을 몇 척이나 건조할 수 있고 그러려면 목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집계했다. 19세기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이 도시의 정밀한 통계 감각을 높이 산 것도 그래서다.

진짜 도약은 통계에 확률이라는 도구가 결합하면서 일어났다. 1744년 스코틀랜드의 두 목사 알렉산더 웹스터와 로버트 월리스는, 동료 목사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미망인과 아이들을 위한 기금을 만들고자 했다. 문제는 목사들이 매년 얼마씩 내야 기금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였다. 이를 알려면 해마다 몇 명의 목사가 죽고, 몇 명의 미망인이 남으며, 그들이 남편보다 몇 해를 더 사는지를 예측해야 했다.

두 목사는 기도하지 않았다. 대신 에든버러 대학의 수학 교수 콜린 매클로린을 찾아갔다. 매클로린은 야코프 베르누이가 정리한 큰 수의 법칙을 끌어들였다. 한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누구도 맞힐 수 없지만, 비슷한 사건이 충분히 많이 모이면 그 평균은 놀랍도록 정확하게 예측된다는 원리다.

비유

큰 수의 법칙은 이렇게 작동한다. 동전을 한 번 던져 앞면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 번을 던지면 앞면의 비율은 거의 정확히 절반에 수렴한다. 개인의 운명은 안갯속이어도, 집단의 평균은 자로 잰 듯 드러난다.

자료를 모아 계산한 결과는 구체적이었다. 어느 시점에든 살아 있는 장로교 목사는 약 930명, 해마다 약 27명이 사망하고 그중 18명이 미망인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이 숫자를 바탕으로 적정 갹출액이 정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정확도였다. 두 사람은 기금이 20년 뒤 5만 8348파운드가 되리라 예측했는데, 실제 액수는 5만 8347파운드였다. 단 1파운드 차이였다.

개별 사건은 예측할 수 없어도, 사건이 충분히 쌓이면 그 평균은 한 점으로 수렴한다. 18세기의 두 목사는 이 원리로 20년 뒤의 기금 규모를 오차 1파운드 안에서 맞혔다.

이렇게 설계된 기금은 근대 보험과 연금의 토대가 되었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보험 회사는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미래의 죽음마저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된 것이다. 신의 뜻에 맡기던 영역이 확률의 영역으로 넘어온 순간이었다.

5장

국가의 건강검진: 오늘의 통계

지금까지 따라온 긴 흐름은 하나의 현대적 제도로 수렴한다. 거의 모든 나라가 일정 주기로 실시하는 경제 통계 조사다. 사람이 몇 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듯, 국가 경제도 정기적으로 전신을 검사받는 셈이다.

이 조사가 인구조사와 다른 점이 있다. 인구조사가 가구와 사람을 헤아린다면, 경제 조사는 사업체를 헤아린다. 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매출과 종사자 수, 업종을 조사한다. 본사 한 곳이 아니라 매장 하나하나를 따로 세는 이유는 그래야 지역별 통계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동네에 카페가 몇 개고 그 매출이 어떤지를 알아야,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정부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숫자는 한 나라의 지도가 된다.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 통계를 정밀하게 보정하고, 한 산업을 키우면 다른 산업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주는 산업연관표의 바탕이 되며, 예산을 어느 지역 어느 분야에 투입할지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 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조사 항목도 진화한다. 최근에는 사업체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지를 묻는 항목이 새로 들어가, 어느 지역과 분야가 뒤처지는지를 가려내는 데 쓰인다.

근대 국가들이 이 조사를 멈추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국이 일찍이 1790년부터 정기 인구조사를 헌법에 못 박은 것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었다. 인구에 따라 의회 의석을 나누고 세금 부담을 배분하기 위한 장치였고, 더 나아가 어느 나라가 더 강한가를 가늠하는 패권의 문제이기도 했다. 숫자를 쥔 쪽이 판을 읽었다.

비유

경제 통계는 한 나라가 그려 놓은 지도와 같다. 국가는 이 지도로 정책의 방향을 잡고, 개인은 같은 지도를 펼쳐 이 길은 좋고 저 길은 위험하다를 읽는다. 한때 심판의 장부로 두려움을 주던 전수 조사가, 이제는 모두가 함께 들여다보는 공공의 지도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의 두 얼굴이 다시 만나는 것을 본다. 권력은 여전히 무언가를 지우고 무언가를 센다. 그러나 잘 설계된 통계는 더 이상 일방적 감시에 그치지 않는다. 비밀이 법으로 보호되고 그 결과가 사회에 공개될 때, 숫자는 권력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시민이 함께 쥐는 지식이 된다.

점토 공 속의 물표에서 GDP 통계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기록하고 누가 그 권한을 쥐는가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문명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셈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행위다. 다만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가, 심판의 장부와 공공의 지도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