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이야기
송전망과 배전망: 전기가 발전소에서 콘센트까지 오는 길
같은 전기인데 왜 어떤 선은 산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탑에 매달려 있고, 어떤 선은 동네 전봇대에 걸려 있을까. 전력이 흐르는 길을 송전과 배전, 두 구간으로 나눠 본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면 곧바로 전기가 들어온다. 그러나 그 전기는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발전소에서 출발해 여러 단계를 거쳐 도착한 것이다. 이 길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뉜다. 발전소에서 도시 근처까지 전기를 멀리 실어 나르는 송전(送電)망과, 거기서부터 집과 가게로 잘게 나눠 배달하는 배전(配電)망이다.
둘은 같은 전기를 다루지만 생김새도, 전압도, 하는 일도 꽤 다르다. 그 차이를 알면 창밖의 거대한 철탑과 동네 전봇대가 왜 그렇게 다르게 생겼는지, 요즘 뉴스에 전력망 이야기가 왜 자주 나오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송전망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 배전망은 동네 안 좁은 골목길이라고 보면 쉽다. 고속도로에는 화물이 대량으로 빠르게 오가고, 골목길에서는 그 화물이 집집마다 조금씩 나뉘어 배달된다. 전기도 마찬가지로 먼 길은 한꺼번에 크게, 동네 안에서는 잘게 나눠 흐른다.
송전망 — 전기의 고속도로
발전소는 보통 1만~2만 볼트 정도의 전기를 만든다. 이 전기를 그대로 멀리 보내면 도중에 새어 나가는 손실이 너무 크다. 그래서 발전소 옆 승압변전소에서 전압을 단숨에 끌어올린다. 우리나라는 보통 345킬로볼트, 가장 굵은 간선 구간은 765킬로볼트까지 올린다.
이렇게 높인 고압 전기를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탑, 즉 송전탑에 매달린 전선으로 도시 인근까지 실어 나른다. 154킬로볼트는 좀 더 작은 지역 단위 송전과 대형 공장·시설 공급에 쓰인다. 창밖 멀리 보이는 우람한 철탑과 여러 가닥의 굵은 전선이 바로 이 송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송전망이 특히 중요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기는 주로 해안가와 동남부 지역의 큰 발전단지에서 만드는데, 정작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수도권이다.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 사이를 잇는 장거리 송전망이 전력 공급의 동맥 역할을 한다.
배전망 — 전기의 골목길
고압 전기가 도시 근처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전압을 낮출 차례다. 도시 외곽 변전소에서 22.9킬로볼트로 낮춘 전기가 동네 전봇대를 따라 도는 배전선이다. 마지막으로 전봇대 위에 매달린 회색 원통, 곧 주상변압기에서 가정용 220볼트로 한 번 더 낮춰 각 집으로 들어온다.
배전망은 송전망보다 전압이 훨씬 낮고, 거리가 짧으며, 갈래가 비교할 수 없이 많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히 보는 전봇대와 그 위의 어지러운 전선 대부분이 사실은 배전망이다. 고속도로는 멀리서 가끔 보이지만, 골목길은 집 앞마다 있는 것과 같다.
같은 220볼트라도 쓰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일반 가정에는 220볼트가, 공장이나 큰 건물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곳에는 380볼트가 주로 들어온다. 골목길이라도 일반 주택가 길과 시장 안 화물 다니는 길의 폭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왜 전압을 올렸다 내릴까 — 손실 때문
전기를 멀리 보내면 전선이 조금씩 뜨거워지면서 일부가 열로 빠져나간다. 이것이 송전 손실이다. 핵심은 이렇다. 같은 양의 전기를 보낼 때 전압을 높이면, 실제로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의 양이 줄어든다. 그런데 손실은 전류가 커질수록 급격히, 정확히는 전류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난다. 그러니 전압을 높여 전류를 줄이면 손실이 크게 줄어든다.
그래서 멀리 보낼 때는 전압을 최대한 올리고(송전), 집 앞에서 안전하게 쓰려고 다시 차근차근 낮춘다(배전). 765킬로볼트 같은 고압을 가정으로 그대로 들이면 위험하기 때문에, 단계를 밟아 내려오는 것이다.
전압을 물의 압력, 전류를 흐르는 물의 양에 빗대 보자. 같은 일을 하면서 압력을 높이면 흘려보내는 물의 양은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관 안에서 생기는 마찰 손실은 물이 많이 흐를수록 커진다. 압력을 높이고 물의 양을 줄이는 쪽이 멀리 보낼 때 손해가 적다. 송전이 전압을 높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변전소 — 전압을 바꾸는 길목
송전과 배전 사이, 그리고 각 단계 사이에서 전압을 올리고 내리는 곳이 변전소다. 발전소 옆 승압변전소는 전압을 끌어올려 멀리 보낼 준비를 하고, 도시로 들어오는 길목의 변전소들은 전압을 차례로 낮춘다.
변전소가 하는 일은 전압 변환만이 아니다. 들어온 전기를 여러 방향으로 갈라 내보내고, 어딘가에서 사고가 나면 그 구간만 재빨리 끊어 피해가 번지지 않게 막는 역할도 한다.
변전소는 고속도로의 나들목과 비슷하다. 빠른 본선(고압 송전)과 느린 동네 길(저압 배전)이 만나는 지점에서 속도와 차선을 바꿔 주고, 사고가 나면 진입을 통제해 정체가 퍼지지 않게 한다.
송전망과 배전망, 한눈에 비교
| 항목 | 송전망 | 배전망 |
|---|---|---|
| 전압 | 154·345·765kV (높음) | 22.9kV에서 220·380V로 (낮음) |
| 비유 |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 | 동네 안 골목길 |
| 거리 | 수십~수백 km, 장거리 | 짧고 수요지 가까이 |
| 구조 | 그물망, 여러 경로 | 나뭇가지, 한 방향 |
| 눈에 보이는 것 | 산·들의 거대한 철탑 | 동네 전봇대와 전선 |
표에서 가장 흥미로운 항목은 구조다. 송전망은 여러 변전소가 그물처럼 촘촘히 이어져 있어, 한 경로가 끊겨도 다른 길로 우회할 수 있다. 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한 설계다. 반면 배전망은 변전소에서 집 쪽으로 갈라져 나가기만 하는 나뭇가지 구조라, 한 가지가 끊기면 그 끝에 매달린 집들이 정전된다.
누가 이 길을 운영하나
전기를 만드는 일에는 여러 주체가 참여한다. 한국전력공사(한전, KEPCO)의 발전 자회사, 민간 발전사, 그리고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모두 전기를 생산한다.
반면 송전망과 배전망이라는 길 자체를 짓고 소유하고 관리하는 일은 한전이 도맡는다. 현행 제도에서 전국 규모의 전력망 사업자는 사실상 한전 하나뿐이다. 한편 어느 발전기를 얼마나 돌려서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와 공급을 정확히 맞출지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일은 한국전력거래소(전력거래소, KPX, Korea Power Exchange)가 맡는다.
한전이 도로를 깔고 유지·보수하는 도로공사라면, 전력거래소는 전국의 차량 흐름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신호와 진입을 조율하는 관제센터에 가깝다. 길을 만드는 쪽과 흐름을 통제하는 쪽이 나뉘어 있는 셈이다.
요즘 왜 송전망·배전망이 자주 화제일까
오랫동안 전력망은 비교적 조용한 기반 시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전력망, 특히 송전망과 배전망이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됐다. 크게 세 가지 변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1.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의 거리
앞서 본 대로 전기는 주로 지방에서 만들고 수도권에서 많이 쓴다. 그 간극을 메우려면 송전선을 더 깔아야 하는데, 거대한 철탑과 송전선을 새로 짓는 일은 비용이 막대할 뿐 아니라 그 선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잦다. 길을 넓히고 싶어도 쉽게 넓히지 못하는 상황이다.
2. 동네로 들어온 태양광
예전에는 전기가 큰 발전소에서 송전망을 타고 배전망으로 내려오는 한 방향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동네 곳곳의 태양광 설비가 배전망에 직접 연결되면서, 전기가 거꾸로도 흐르기 시작했다. 태양광 발전설비의 상당수가 이 좁은 배전망에 붙어 있다 보니 길이 붐비고, 받아 줄 여력이 모자라 한낮의 발전을 일부 줄이는 이른바 출력제어가 늘고 있다. 일방통행로였던 골목길에 양방향 차량이 다니기 시작한 셈이다.
3. 제도와 돈
2024년 6월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에너지법)은 먼 발전소에 의존하는 대신 전기를 쓰는 곳 가까이에서 만들어 쓰도록 유도한다. 자연히 배전망의 역할과 중요성이 커진다. 한편 한전이 내놓은 계획을 보면 앞으로 송전망에 약 73조 원, 배전망에 약 10조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제시됐다. 다만 한전은 총부채가 200조 원을 넘는 부담을 안고 있어, 이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만만치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정리
송전망은 전기를 멀리, 대량으로 보내는 고압 고속도로다. 배전망은 그 전기를 집 앞까지 잘게 나눠 배달하는 저압 골목길이다. 전압을 올렸다 다시 내리는 까닭은 멀리 보낼 때의 손실을 줄이고, 가까이에서 안전하게 쓰기 위해서다.
전기를 더 많이, 더 깨끗하게 쓰려는 변화 속에서 이 두 길을 어떻게 넓히고 얼마나 똑똑하게 운영하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다. 다음에 창밖의 거대한 철탑이나 동네 전봇대를 보거든, 같은 전기가 어느 구간을 지나는 중인지 한 번쯤 가늠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