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전력계통 운영의 핵심

발전기 기동정지
전력망은 매 순간 어떤 발전기를 켤지 어떻게 정하는가

전기는 거의 저장되지 않는다. 발전과 소비가 매 순간 정확히 같아야 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에서, 수백 대의 발전기 중 어느 것을 켜고 끌지 결정하는 거대한 최적화 문제가 태어난다. 그 이름이 발전기 기동정지(Unit Commitment, UC)다.

2026년 5월 26일 · 전력시스템 · 약 18분 분량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들어온다. 너무 당연해서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전국 어딘가의 발전소들은 지금 이 나라가 쓰는 전력량을 거의 오차 없이 맞추어 돌아가고 있다. 발전이 소비보다 조금이라도 많거나 적으면 전력망의 주파수가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커지면 광역 정전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전기를 창고에 쌓아 둘 수 없다는 데 있다. 한낮에 남는 전기를 모아 저녁에 꺼내 쓰는 일이 대규모로는 아직 어렵다. 그래서 전력망 운영자는 시간마다 달라지는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발전기를 미리 켜 두고 또 적절히 꺼야 한다. 그런데 발전기는 전등 스위치처럼 즉시 켜지지 않는다. 대형 화력발전기는 차가운 상태에서 전력을 낼 때까지 몇 시간이 걸리고, 한 번 켜면 연료를 태워 데우는 비용이 든다. 그러니 "지금 부족하니 켜자"는 즉흥적 대응으로는 늦다. 몇 시간 뒤, 길게는 며칠 뒤의 수요를 내다보고 어떤 발전기를 언제 켜고 끌지 미리 계획해야 한다.

이 계획을 세우는 일이 바로 발전기 기동정지(Unit Commitment, UC)다. 한국전력거래소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계통 운영기관이 매일 푸는 문제이고, 전력시스템 공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최적화 문제 중 하나다. 이 글은 그 문제가 무엇이고, 왜 어렵고, 어떻게 풀리며, 재생에너지 시대에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 본다.

01두 개의 결정 — 켤 것인가, 얼마나 낼 것인가

전력망을 운영하는 데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 결정이 필요하다. 첫째는 "어떤 발전기를 켤 것인가"이고, 둘째는 "켜진 발전기가 각각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이다. 둘은 흔히 한 덩어리로 여겨지지만, 수학적으로도 운영상으로도 분명히 다른 문제다.

첫 번째가 기동정지(UC)다. 답은 켜짐 아니면 꺼짐, 즉 1 또는 0이라는 둘 중 하나의 값이다. 중간은 없다. 발전기를 60퍼센트만 켤 수는 없으니, 켜거나 끄거나 둘 중 하나다. 이렇게 둘 중 하나로만 답이 나오는 변수를 수학에서는 이진변수(binary variable)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결정은 보통 하루 전, 길게는 일주일 전에 미리 내려진다. 발전기를 데우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가 경제급전(Economic Dispatch, ED)이다. 켤 발전기가 정해지고 나면, 이제 그 발전기들에게 출력을 얼마나 낼지 나누어 배분한다. 이 답은 0이냐 1이냐가 아니라 "몇 메가와트"라는 연속적인 양이다. 그리고 이 배분은 실시간에 가깝게, 보통 5분에서 15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다시 계산된다. 수요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기동정지와 경제급전의 관계기동정지가 켤 발전기를 정하면 경제급전이 각 발전기의 출력을 실시간으로 정한다. ① 기동정지 (Unit Commitment) 질문: 어떤 발전기를 켤 것인가? · 하루-일주일 전 결정 · 답은 켜짐(1)/꺼짐(0) 원자력 ON 석탄 #1 ON LNG #1 ON LNG #2 OFF 가스터빈 OFF 확정된 '켜진 발전기' 목록을 넘김 ② 경제급전 (Economic Dispatch) 질문: 켜진 발전기가 각각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 · 5-15분마다 실시간 · 답은 출력량(MW) 원자력 95% 석탄 #1 70% LNG #1 45%
그림 1. 기동정지는 어떤 발전기를 켤지(켜짐 1 / 꺼짐 0)를 하루 전에 정하고, 경제급전은 켜진 발전기가 실시간으로 얼마씩 발전할지(메가와트)를 정한다. 위 결정이 아래 결정의 전제가 된다.
비유 — 식당 주방

바쁜 식당을 떠올려 보자. 사장은 아침에 "오늘 요리사를 몇 명 부를까"를 정한다. 손님이 몰리는 저녁을 대비해 미리 불러야 하고, 한 번 부른 요리사를 한두 시간 만에 돌려보내면 출근 수당이 아까우니 어느 정도는 붙잡아 둔다. 이것이 기동정지다 — 누구를 출근시킬지를 미리 정하는 일.

막상 영업이 시작되면, 출근한 요리사들에게 "너는 지금 주문 다섯 개, 너는 세 개"라며 일감을 실시간으로 나눠 준다. 가장 빠르고 손이 싼 요리사에게 더 많이 맡기는 게 합리적이다. 이것이 경제급전이다 — 이미 나온 사람들에게 일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

이 글의 주제는 첫 번째 결정, 즉 기동정지다. 경제급전은 켜진 발전기들 사이에서 출력을 매끄럽게 나누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문제다. 진짜 어려움은 "켜느냐 끄느냐"라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수백 대의 발전기에 걸쳐 시간마다 얽힐 때 폭발적으로 커진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발전기마다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를 봐야 한다.

02왜 "싼 것부터"로 끝나지 않는가

발전기는 종류마다 비용 구조와 성격이 크게 다르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눈다.

기저부하(base load) 발전기는 원자력과 대형 석탄화력이 대표적이다. 한 번 켜면 연료비가 싸서 종일 돌리는 게 이득이지만, 출력을 빠르게 올리고 내리기 어렵고 기동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치 무거운 화물열차처럼, 일단 달리면 효율적이지만 멈추고 다시 출발하는 데 큰 대가가 따른다.

중간부하(mid-merit) 발전기는 주로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 복합화력이다. 연료비는 석탄보다 비싸지만 출력 조절이 한결 유연해서, 낮 동안 수요가 오르내릴 때 그 변동을 따라가는 역할을 한다.

첨두부하(peak load) 발전기는 가스터빈처럼 빠르게 켜고 끌 수 있는 설비다. 연료비는 가장 비싸지만 수 분에서 수십 분 만에 전력을 낼 수 있어, 하루 중 수요가 가장 높은 짧은 시간대에만 잠깐 가동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운영 원칙은 단순하다. 연료비가 싼 발전기부터 차례로 쌓아 올려 수요를 채운다. 이것을 급전순위(merit order)라고 부른다. 싼 발전기부터 줄을 세우고, 수요가 늘면 더 비싼 발전기를 하나씩 추가로 가동하는 것이다.

메리트오더(급전순위) 계단 한계비용이 낮은 발전기부터 차례로 쌓아 수요량과 만나는 지점이 시장가격을 결정한다. 급전순위 — 싼 발전기부터 쌓아 올린다 한계비용 (원/kWh) 원자력석탄LNG 복합가스터빈시장가격(SMP) = 마지막 가동기 한계비용수요량04080 누적 발전용량 (싼 발전기 → 비싼 발전기) →
그림 2. 급전순위. 한계비용이 낮은 발전기(원자력, 석탄)부터 비싼 발전기(가스터빈) 순으로 쌓아 올려 수요를 채운다. 수요량과 만나는 마지막 발전기의 한계비용이 그 시각의 시장가격(우리나라에서는 계통한계가격, SMP)을 결정한다.

여기까지면 문제가 쉬워 보인다. 매 시각 싼 것부터 차례로 켜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발전기는 시각마다 독립적으로 켜고 끌 수 있는 전등이 아니다. 한 번 내린 결정이 이후 몇 시간을 묶어 버린다. 발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운전 제약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최소 가동시간과 최소 정지시간

대형 발전기는 한 번 켜면 일정 시간 이상 계속 돌려야 하고(최소 가동시간), 한 번 끄면 일정 시간 동안 다시 켤 수 없다(최소 정지시간). 금속 부품을 급격히 데우거나 식히면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녁 한 시간만 잠깐 켜자"가 불가능한 발전기가 많다.

출력변화율 한계

켜져 있는 발전기라도 출력을 한꺼번에 확 올리거나 내릴 수 없다. 분당 얼마 이상은 바꾸지 못한다는 제한이 있다(출력변화율, ramp rate). 수요가 급히 늘면, 지금 켜진 발전기들이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지를 미리 따져야 한다.

최소출력과 최대출력

발전기는 켜져 있는 한 어떤 최소출력 이상은 내야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0과 최대출력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게 아니라, 최소출력과 최대출력 사이의 좁은 띠 안에서만 움직인다.

기동비용

발전기를 켤 때마다 연료를 태워 설비를 데우는 별도의 비용이 든다. 이 기동비용 때문에, 비싼 첨두 발전기를 잠깐 켰다 끄는 것보다 차라리 싼 발전기를 계속 돌리는 편이 전체적으로 이득일 수도 있다. 순간의 연료비만 보면 안 되고, 켜고 끄는 행위 자체의 비용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뜻이다.

발전기 운전 제약최소 가동시간, 최소 정지시간, 출력변화율, 최소·최대 출력 제약을 한 발전기의 출력 곡선으로 표현. 발전기 하나가 지켜야 하는 운전 제약 최대출력 Pmax 최소출력 Pmin 출력변화율 한계 최소 가동시간 (한번 켜면 일정시간 유지) 최소 정지시간 (한번 끄면 일정시간 못 켬) 0시 6시 12시 18시 24시
그림 3. 발전기 하나의 하루 출력 곡선으로 본 운전 제약. 기동·정지 시 출력은 정해진 변화율로만 오르내리고(경사 구간), 한 번 켜면 최소 가동시간 동안 유지해야 하며, 한 번 끄면 최소 정지시간 동안 다시 켤 수 없다. 켜져 있는 동안에는 최소출력과 최대출력 사이에만 머문다.
비유 — 자동차 엔진

발전기를 끄고 켜는 일은 전등보다 자동차에 가깝다. 시동을 걸 때 연료가 더 들고(기동비용), 차가운 엔진이 제 성능을 내려면 예열이 필요하며(기동시간), 급가속과 급제동에는 한계가 있다(출력변화율). 신호마다 시동을 껐다 켜는 운전이 오히려 손해이듯, 발전기도 잠깐의 수요를 위해 함부로 껐다 켜면 손해다. 그래서 몇 시간 앞을 내다본 계획이 필요하다.

이 제약들이 핵심이다. 이것들 때문에 "이 시각에 무엇을 켤까"라는 결정이 "다음 몇 시간 동안 무엇을 켜 둘까"라는 결정과 분리될 수 없다. 지금 첨두 발전기를 켜면, 최소 가동시간 때문에 수요가 빠진 뒤에도 한동안 계속 켜 둬야 한다. 지금 기저 발전기를 끄면, 최소 정지시간 때문에 저녁에 다시 필요해도 제때 켜지 못한다. 모든 시각의 결정이 서로 묶여 있다.

03그래서 하루 스케줄은 이렇게 짜인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하루의 발전 계획은 층층이 쌓인 모양이 된다. 맨 아래에는 원자력과 석탄이 24시간 깔려 있고, 그 위로 중간부하 LNG 복합화력이 수요가 오르는 낮 시간에 들고 나며, 맨 위에는 가스터빈이 아침과 저녁의 짧은 피크에만 잠깐 올라탄다.

하루 전력수요 곡선과 발전기 기동정지 스케줄 야간에는 기저 발전기만, 저녁 피크에는 첨두 발전기까지 켜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 동안 어떤 발전기를 켜고 끌까 — 수요와 기동정지 스케줄 수요 (정규화) 저녁 피크 04080 기저부하 — 원자력·석탄 (24시간 가동)중간부하 — LNG 복합 A중간부하 — LNG 복합 B첨두부하 — 가스터빈 (피크에만 기동) 0시6시12시18시24시
그림 4. 하루 수요 곡선(위)과 그에 맞춘 발전기 기동정지 스케줄(아래). 기저 발전기는 종일 켜져 있고, 중간부하 발전기는 수요가 오르는 시간대에 들고 나며, 첨두 발전기는 아침·저녁 피크에만 잠깐 가동한다. 색칠된 구간이 발전기가 켜져 있는 시간이다.

이 그림은 결과만 보면 매끈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한 장의 스케줄을 얻기까지 운영자는 어마어마한 수의 경우를 따져야 한다.

04경우의 수가 폭발한다

발전기가 N대 있고 하루를 한 시간 단위로 24개의 구간으로 나눈다고 하자. 각 발전기는 각 시간에 켜짐 또는 꺼짐 둘 중 하나다. 그러면 따져야 할 켜짐·꺼짐 조합의 수는 2를 (발전기 수 곱하기 시간 구간 수)만큼 거듭제곱한 값이 된다. 우리나라 계통처럼 발전기가 수백 대인 경우, 이 숫자는 천문학적이다.

21200 가지
발전기 50대 × 24시간만 따져도 나오는 켜짐·꺼짐 조합의 수
(제약을 무시한 단순 경우의 수). 우주의 원자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실제로는 앞서 본 제약들이 가능한 조합을 많이 쳐낸다. 그러나 그래도 남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비교해 가장 싼 것을 고르는 방식은 컴퓨터로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진변수가 섞인 이런 종류의 최적화 문제는 수학적으로 풀기 어려운 부류(NP-난해, NP-hard)에 속한다. 발전기 수가 늘면 풀이 시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수학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된다. 정확한 수식 대신 뼈대만 옮기면 이렇다.

목적: 하루 전체 발전 비용의 합을 최소화한다

(기동비용 + 무부하비용 + 연료비용을 모든 발전기·모든 시간에 대해 합산)

다음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면서:

이렇게 이진변수(켜짐·꺼짐)와 연속변수(출력량)가 함께 들어가고, 비용과 제약이 모두 일차식으로 표현되는 최적화 문제를 혼합정수선형계획법(Mixed-Integer Linear Programming, MILP) 문제라고 부른다. 발전기 기동정지는 전력산업에서 가장 대표적인 MILP 문제이며, 오늘날 거의 모든 계통 운영기관이 이 형태로 문제를 세워 푼다.

05어떻게 푸는가 — 풀이법의 진화

이 어려운 문제를 푸는 방법은 계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여러 세대를 거쳐 왔다.

초기 — 어림과 분해

컴퓨터 성능이 제한적이던 시절에는 정답 대신 충분히 좋은 답을 빠르게 찾는 방법들이 쓰였다. 싼 발전기부터 단순히 줄 세우는 우선순위법(priority list), 시간을 단계로 나누어 단계마다 최적을 이어 붙이는 동적계획법(dynamic programming), 그리고 어려운 제약을 잠시 느슨하게 풀어 큰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개는 라그랑지 완화(Lagrangian relaxation)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빠르지만 반드시 최적해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현재 — 상용 솔버와 분기한정

1990년대 이후 최적화 솔버와 컴퓨터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MILP 문제를 직접 푸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핵심 기법은 분기한정법(branch and bound)이다. 가능한 경우를 나무처럼 가지치며 탐색하되, 어떤 가지가 더 나은 답을 줄 수 없다고 수학적으로 판명되면 그 가지 전체를 잘라 버려 탐색량을 극적으로 줄인다. 기보(Gurobi), 시플렉스(CPLEX) 같은 상용 솔버가 이 일을 맡는다. 덕분에 과거에는 근사해로 만족하던 문제를, 이제는 증명된 최적해(또는 최적에 매우 가까운 해)로 푸는 것이 가능해졌다.

안보를 더한 기동정지 — SCUC

실제 계통에서는 발전기를 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전력이 송전선을 타고 수요지까지 흘러야 하는데, 송전선에도 용량 한계가 있다. 특정 발전기를 켰을 때 어떤 송전선에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는지, 발전기나 송전선 하나가 갑자기 고장 나도 계통이 버틸 수 있는지까지 함께 따지는 것을 안보제약 기동정지(Security-Constrained Unit Commitment, SCUC)라고 한다. 오늘날 운영기관이 실제로 푸는 것은 단순 UC가 아니라 이 SCUC다.

06재생에너지가 판을 바꾸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발전기를 운영자가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있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그렇지 않다. 해가 비치고 바람이 불 때만 발전하며, 그 양은 운영자가 정하는 게 아니라 날씨가 정한다. 게다가 정확히 얼마나 발전할지는 예측에 의존하므로 늘 오차가 따른다. 이 두 가지 — 통제 불가능성과 불확실성 — 이 기동정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핵심 개념이 순부하(net load)다. 전체 수요에서 태양광·풍력이 알아서 채워 주는 양을 뺀, 나머지 발전기들이 실제로 책임져야 할 부하를 말한다. 운영자가 기동정지로 맞춰야 하는 대상은 전체 수요가 아니라 바로 이 순부하다. 그런데 태양광이 늘면서 이 순부하 곡선의 모양이 기묘하게 변했다.

순부하 덕커브 태양광이 한낮 수요를 깎아 순부하 곡선이 오리 모양이 되고 저녁에 급경사가 생긴다. 태양광이 만드는 순부하 곡선 — 한낮은 꺼지고 저녁엔 급경사 3-4시간 만에 가파른 상승 040800시6시12시18시24시총수요태양광순부하순부하 =총수요 − 태양광
그림 5. 태양광이 만드는 순부하 곡선. 한낮에는 태양광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채워 순부하가 깊이 꺼졌다가, 해가 지는 저녁에 태양광이 사라지면서 순부하가 가파르게 치솟는다. 이 오리 모양 곡선을 흔히 덕커브(duck curve)라고 부른다.

이 곡선이 기동정지에 던지는 숙제는 두 가지다. 첫째, 한낮에는 순부하가 너무 낮아져 켜 둘 발전기가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원자력이나 석탄을 함부로 껐다가는 저녁에 제때 못 켠다. 둘째, 저녁의 가파른 상승이다. 태양광이 사라지는 몇 시간 안에 순부하가 급등하므로,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유연한 발전기를 충분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출력변화율이 빠른 발전기와 에너지저장장치의 가치가 여기서 커진다.

불확실성도 문제다. 내일의 태양광·풍력 발전량은 예측일 뿐, 빗나갈 수 있다. 예측이 빗나가도 계통이 버티도록 기동정지를 짜는 두 가지 접근이 발전했다. 하나는 여러 가능한 날씨 시나리오를 확률적으로 함께 고려해 평균적으로 가장 싼 계획을 찾는 확률적 기동정지(stochastic UC)이고, 다른 하나는 예측이 최악으로 빗나가는 경우에도 안전하도록 보수적으로 계획하는 강건 기동정지(robust UC)다. 둘 다 불확실성을 문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대신, 풀어야 할 문제를 훨씬 크고 어렵게 만든다.

여기에 한 가지 물리적 문제가 더해진다. 태양광·풍력은 회전하는 거대한 발전기 없이 전자 부품(인버터)으로 전력을 만든다. 그래서 기존 발전기가 회전 질량으로 제공하던 관성, 즉 주파수가 갑자기 흔들릴 때 이를 버텨 주는 완충 능력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주파수 안정성까지 기동정지 단계에서 함께 보장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단순히 발전량의 합만 맞추는 것을 넘어, 사고가 나도 주파수가 위험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발전기를 켜 두게 만드는 것이다.

07더 빨리, 더 자주 — 최근의 연구 흐름

재생에너지가 늘수록 기동정지 문제는 더 커지고(불확실성 시나리오가 붙고) 더 자주 풀어야 한다(날씨 예측이 갱신될 때마다 다시 계획). 그러나 풀이에 허용되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진다. 이 긴장이 최근 연구의 방향을 정한다.

가장 주목받는 흐름이 기계학습의 결합이다. 발상은 단순하다. 계통 운영기관은 매일 같은 형태의 기동정지 문제를 푼다. 수요 패턴과 발전기 구성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과거에 풀었던 수많은 해 속에 오늘의 답에 대한 단서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로 "오늘은 이 발전기들이 켜질 가능성이 높다"를 미리 예측하고, 그 예측을 솔버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를 따뜻한 시작(warm start)이라고 한다. 확신이 높은 발전기는 켜짐·꺼짐을 아예 고정해 버려 솔버가 풀 문제의 크기 자체를 줄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신경망 구조도 다양해졌다. 발전기와 송전선의 연결 관계를 그래프로 보고 학습하는 그래프 신경망(Graph Neural Network), 그리고 시간에 따른 패턴을 잘 잡아내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 계열이 기동정지 예측에 적용되어, 솔버의 풀이 시간을 크게 줄였다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다. 다만 학습 모델의 예측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답(예: 최소 가동시간 위반)을 내놓을 수 있어, 반드시 사후 검증으로 실행 가능성을 보장한 뒤 솔버에 넘기는 안전장치가 함께 쓰인다.

또 다른 축은 계산 자체의 가속이다. 문제를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여러 프로세서가 동시에 푸는 병렬화, 그리고 대규모 수치 계산을 그래픽 처리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로 가속하는 시도가 이어진다. 더 빠른 풀이는 단순히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재생에너지가 늘어난 계통을 실시간으로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

08우리나라에서는 — 변동비반영발전계획

한국에서 이 일을 맡는 곳이 한국전력거래소(KPX, Korea Power Exchange)다. 전력거래소는 발전사업자와 판매사업자 사이에서 전력시장을 운영하고, 전국 발전소와 전력망의 가동 계획을 세우며, 24시간 실시간 급전을 지휘한다.

우리 전력시장은 발전사업자가 자기 발전기의 변동비(연료비 등 변동 원가)를 신고하면, 전력거래소가 그 변동비를 기준으로 급전순위를 매겨 중앙에서 발전 계획을 짜는 방식이다. 이렇게 변동비를 반영해 하루 전에 수립하는 발전 계획을 변동비반영발전계획(변발)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글에서 설명한 기동정지가 우리 제도 안에서 구현된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그날그날의 전력 도매가격도 결정된다. 수요를 채우기 위해 마지막으로 가동된 가장 비싼 발전기의 변동비가 그 시각 모든 발전의 정산 기준 가격이 되는데, 이것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계통한계가격(System Marginal Price, SMP)이다. 앞서 본 그림 2의 급전순위 계단에서 수요선과 만나는 마지막 발전기의 높이가 곧 SMP인 셈이다.


정리

발전기 기동정지는 "매 순간 발전과 소비가 같아야 한다"는 전력의 물리적 숙명에서 출발한다. 발전기마다 비용과 제약이 달라 단순히 싼 것부터 켜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고, 켜고 끄는 결정이 시간을 가로질러 서로 묶이면서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를 가진 최적화 문제가 된다. 수십 년간 어림에서 정밀 최적화로, 다시 기계학습과 계산 가속으로 풀이법이 진화해 왔고, 재생에너지의 확산은 불확실성과 유연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더하며 이 오래된 문제를 다시 최전선의 연구 주제로 끌어올렸다.

우리가 스위치를 올릴 때마다 불이 들어오는 일상의 안정 뒤에는, 누군가가 매일 다시 푸는 이 보이지 않는 계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