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남아도는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바다 밑에 8GW 규모의 직류 전력 동맥을 새로 까는 일이 시작됐다. 송전탑 대신 해저케이블을, 교류 대신 직류를 택한 이유를 짚는다.
한국의 전력 지도는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다. 햇빛과 바람이 좋고 땅값이 싼 호남과 서남해안에는 태양광과 해상풍력 발전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정작 그 전기를 쓸 공장과 도시는 수백 km 떨어진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발전소와 소비처가 따로 노는 이 구조가 서해안 HVDC(초고압직류송전, High Voltage Direct Current) 사업이 등장한 근본 이유다.
숫자가 불균형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전력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국에서 발전 허가를 받은 재생에너지 물량 74.6GW 가운데 호남권이 39GW로 절반이 넘는다. 새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2024년 34GW에서 100GW로 늘리겠다고 한 만큼, 호남에 쏠린 발전 설비는 더 빠르게 불어날 전망이다. 반면 호남권이 실제로 계통에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수용 용량)은 2026년 21.3GW 수준에 그친다.
발전 설비는 넘치는데 실어 나를 길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햇빛이 강한 한낮처럼 발전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멀쩡히 돌아가는 발전기의 출력을 강제로 줄이는 출력제한(curtailment)이 걸린다. 이미 만들 수 있는 전기를 버리는 셈이다. 길을 넓히지 못하면 재생에너지를 아무리 늘려도 그 절반은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기존 방식대로 거대한 철탑과 가공송전선로를 새로 세우기도 어렵다. 2008년 밀양 송전탑 갈등이 남긴 상처가 깊고, 전자파 우려와 보상 문제로 주민 수용성(주민이 시설 건설을 받아들이는 정도)이 낮아 송전망 하나를 짓는 데 십수 년이 걸리는 일도 흔하다. 결국 남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낼 새로운 길이 필요하되, 그 길은 땅 위 철탑이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서해안 HVDC는 이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풀려는 답이다.
발전이 몰린 호남에서 수요가 몰린 수도권까지, 서해 바다 밑으로 직류 송전선로 4개를 깔아 전기를 실어 나르는 구조다.
서해안 HVDC 에너지고속도로는 호남권 재생에너지를 수도권 등 주요 수요처로 보내기 위한 국가기간 전력망이다. 전압 525kV, 용량 2GW급 해저 송전선로 4개로 구성되며, 2030년부터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지어진다. 전체 길이는 약 1,070km, 네 선로를 합친 전송용량은 8GW, 사업비는 약 12조 원 규모로, 전력 인프라로는 보기 드문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한국전력의 제11차 장기송변전설비계획(2024-2038년)에 담겨 구체화됐다. 흥미로운 점은 계획이 바뀐 과정이다. 직전 제10차 계획에서는 4GW급 큰 선로 2개로 구상됐는데, 11차 계획에서 2GW급 4개로 잘게 쪼개고 송전 기술도 전류형에서 전압형으로 바꿨다. 뒤에서 보겠지만, 이 두 가지 변경이 서해안 HVDC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결정이다. 중간 접속 지점도 태안화력에서 당진화력 쪽으로 옮겨졌다.
전체 노선 중 가장 먼저 완성될 1단계는 새만금에서 경기 서화성을 잇는 구간이다. 당초 2031년 준공 예정이던 것을 1년 앞당겨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한국전력은 8개 변환소 부지 선정을 2025년에 마쳤고, 2026년 초 해저케이블 경과지(케이블이 지나갈 경로) 설계에 본격 착수했다.
우리가 쓰는 전기는 거의 모두 교류(AC, Alternating Current)다. 발전, 변압, 가정용 콘센트까지 교류 체계로 짜여 있다. 그런데 서해안 HVDC는 굳이 교류를 직류(DC, Direct Current)로 바꿨다가 다시 교류로 되돌리는 번거로운 길을 택한다. 양쪽 끝에 값비싼 변환소를 세워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장거리 해저 구간에서는 교류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해저케이블의 물리적 특성에 있다. 바다 밑 케이블은 도체와 바닷물 사이가 절연체로 채워진 구조라, 전기적으로 거대한 축전기(콘덴서)처럼 행동한다. 교류를 흘리면 케이블 자체가 1초에 수십 번씩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는데, 이때 흐르는 충전전류가 케이블이 실어 나를 수 있는 용량을 갉아먹는다. 케이블이 길어질수록 이 충전전류는 커지고, 어느 길이를 넘어서면 정작 보내려던 전력을 위한 여유가 거의 남지 않는다. 교류 해저케이블이 통상 수십 km 안팎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다.
직류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전류 방향이 일정해 케이블이 끊임없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지 않으므로, 충전전류로 인한 거리 제약이 사실상 사라진다. 1,070km에 이르는 장거리 해저 송전에 직류가 거의 유일한 현실적 선택인 까닭이다. 여기에 더해 직류는 같은 굵기의 케이블로 더 많은 전력을 보내고, 장거리 송전손실도 작으며, 주파수가 다른 계통을 비동기로 잇는 데도 유리하다.
쉽게 말하면
교류 해저케이블은 1초에 수십 번 물을 채웠다 비우길 반복하는 긴 물탱크와 같다. 탱크가 길수록 채우고 비우는 데 드는 물이 많아져, 정작 끝까지 흘려보낼 물이 줄어든다. 직류는 그런 반복 없이 한 방향으로만 물을 흘려보내므로, 아무리 길어도 끝까지 거의 그대로 도달한다. 그래서 짧은 구간이면 교류로 충분하지만, 수백 km 바다를 건너야 한다면 직류가 답이 된다.
거리가 길어질수록 교류 해저케이블은 충전전류 탓에 실제로 보낼 수 있는 전력이 빠르게 줄어든다. 직류는 이 제약이 거의 없어 장거리 해저 송전에 적합하다. 수치는 개념 설명을 위한 도식이다.
HVDC라고 다 같은 HVDC가 아니다.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변환소의 방식에 따라 크게 전류형(LCC, Line Commutated Converter)과 전압형(VSC, Voltage Sourced Converter)으로 나뉜다. 국내 기존 HVDC는 대부분 전류형이었지만, 서해안 HVDC는 전압형을 택했다. 이 선택이 사업 설계를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다.
전류형은 사이리스터라는 반도체 스위치를 쓰며, 대용량 장거리 송전에 오래 검증됐고 값도 상대적으로 싸다. 다만 변환기가 작동하려면 양쪽에 충분히 강한 교류계통이 버티고 있어야 한다. 외부 교류전압의 흐름에 맞춰서만 전류를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효전력을 많이 잡아먹어 대형 보상설비가 필요하고, 정전 상태에서 계통을 되살리는 블랙스타트(자체 기동)가 어렵다.
전압형은 IGBT라는 더 빠른 스위치를 모듈로 쌓아 올린 구조(MMC, Modular Multilevel Converter)로, 유효전력과 무효전력을 따로따로 실시간 제어한다. 핵심은 외부 계통이 약하거나 흔들려도 스스로 전압과 박자를 만들어 동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시시각각 출렁여 주변 계통을 약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전압형은 이런 약계통에서도 안정적으로 버티며 오히려 전압을 떠받쳐 준다. 서해안 HVDC가 전압형을 고른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하면
전류형은 합주단의 박자에 맞춰서만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와 같다. 합주단(교류계통)이 든든하면 잘 따라가지만, 박자가 약하거나 멈추면 함께 멈춘다. 전압형은 스스로 박자를 만드는 연주자다. 주변이 흔들려도 혼자 박자를 잡고, 다른 연주자가 따라오도록 이끌 수도 있다.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는 합주단의 박자를 자주 흐트러뜨리기 때문에, 스스로 박자를 잡는 전압형이 필요하다.
전류형은 외부 교류계통의 박자에 의존하지만, 전압형은 스스로 박자를 만들어 약한 계통에서도 동작한다. 재생에너지 연계에 전압형이 유리한 이유다.
| 구분 | 전류형 (LCC) | 전압형 (VSC) |
|---|---|---|
| 스위치 소자 | 사이리스터 | IGBT (MMC 구조) |
| 약한 계통 연계 | 어려움 (강계통 필요) | 유리 (재생에너지 적합) |
| 전력 제어 | 방향 전환 시 극성 반전 필요 | 유·무효전력 실시간 양방향 제어 |
| 블랙스타트 | 불가 | 가능 |
| 단위 용량 | 크게 가능 (4GW급 이상) | 현재 약 2GW급이 한계 |
| 비용 | 상대적으로 저렴 | 상대적으로 고가 |
전압형을 택하면서 사업 구조도 따라 바뀌었다. 현재 전압형 변환소의 단위 최대용량이 약 2GW에 머무는 까닭에, 직전 계획의 4GW급 선로 2개를 2GW급 선로 4개로 다시 짠 것이다. 큰 선로 적게가 아니라 적당한 선로 여럿으로 가면, 한 선로가 멈춰도 나머지가 전력을 나눠 흘릴 수 있어 계통 운영의 유연성도 높아진다.
당초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망은 육상 가공송전선로(철탑 위로 전선을 거는 방식)로 구상됐다. 그러나 거대한 철탑과 고압선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주고, 전자파에 대한 우려와 보상 문제로 주민 반발이 거셌다. 2008년 밀양 송전탑 갈등은 우리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그 뒤로 육상 송전망 하나를 새로 까는 일은 점점 더 길고 어려운 과제가 됐다. 서남해상 구간에서는 공유수면 사용 허가, 어민 반대, 군부대 인허가까지 얽혀 있었다.
한국전력은 2026년 초 경제성, 시공성, 에너지 안보를 종합적으로 따진 끝에 송전망을 해저로 깔기로 최종 결정했다. 기존 가공송전선로 계획 9개 가운데 4개를 해저 HVDC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단순한 공사비만 보면 해저가 비싸 보일 수 있지만, 주민 민원과 인허가 지연, 보상비 증가 같은 사회적 비용까지 더하면 오히려 해저선로가 땅속에 묻는 지중선로보다 공사비와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경과지도 양식장 같은 어업지역을 최대한 피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HVDC 송전망 하나를 짓는 데는 보통 9년 넘게 걸린다. 한국전력은 1단계 새만금-서화성 구간만큼은 이 표준 기간을 4년 단축해 2030년에 끝낸다는 도전적 목표를 내걸었다. 설계, 인허가, 제작, 시공을 차례대로가 아니라 동시에 굴리는 병렬 추진이 핵심이다. 1만 톤급 초대형 케이블 포설선을 투입하고, 보통 계약 이후에 하던 해양 조사를 미리 끝내 제조사가 계약 즉시 케이블 생산에 들어갈 수 있게 하며, 변환소 건축물 일부는 공장에서 먼저 조립하는 공법도 검토 중이다.
2025년 변환소 부지 선정을 시작으로, 2030년 1단계 준공을 거쳐 2038년 4개 선로를 모두 완성하는 단계적 일정이다.
돈을 대는 방식도 새롭다. 서해안 HVDC는 국내 전력망 사업으로는 처음으로 특수목적법인(SPC, Special Purpose Company)을 세우고 국민성장펀드 같은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는 구조를 적용한다. 12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를 한국전력 혼자 떠안기 어려운 현실과, 민간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정적으로 돌려줄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려는 흐름이 맞물린 결과다.
핵심 부품의 국산화도 함께 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9월 500kV급 대용량 전압형 HVDC 변환용 변압기 개발 사업자로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일진전기 네 곳을 선정했고, 2027년까지 기술 개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동안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핵심 설비를 국내에서 만들어 사업 일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포석이다.
한국의 HVDC 역사는 짧지 않다. 1998년 해남-제주를 시작으로 2014년 진도-서제주, 그리고 북당진-고덕까지 전류형 HVDC가 차례로 들어섰다. 2024년 준공된 완도-동제주 제3연계선은 전압형으로, 섬 계통의 안정화를 맡고 있다. 즉 전압형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서해안 HVDC만큼 대규모로 전압형을 묶어 본토 송전 골격을 짜는 시도는 처음이다.
수도권을 향한 전력 고속도로는 동쪽에서도 지어지고 있다. 건설 중인 동해안-신가평 HVDC는 ±500kV, 8GW 규모의 전류형으로, 동해안에 몰린 원자력과 석탄 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낸다. 큰 그림으로 보면, 동쪽에서는 대용량 기저 발전을 전류형으로, 서쪽에서는 변동성 큰 재생에너지를 전압형으로 끌어와 수도권 수요를 떠받치는 양대 축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속도전에는 만만찮은 시공 난제가 따른다. 서해안은 갯벌 구간이 길어 해저케이블을 충분한 깊이로 묻는 매설심도 확보가 까다롭다. 장거리 단심 HVDC 케이블은 양극과 음극을 동시에 깔아야 하고, 중간에 잇는 접속 개소를 최대한 줄여야 해, 전용 선박과 장비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와 해저 지질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공사 기간과 품질을 좌우할 전망이다.
해저로 옮겼다고 주민 수용성 문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호남과 충청 일부 지역, 어업 종사자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2025년 9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며 제도적 발판은 마련됐지만, 현장의 동의를 얻는 일은 별개의 숙제로 남아 있다. 한국전력이 어민 지원 확대 방안을 함께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는 전압형 변환소의 단위 용량을 키우는 일, 그리고 여러 대의 전압형 HVDC와 대규모 재생에너지가 한 계통에 동시에 물렸을 때의 안정적 협조 운영이 앞으로의 과제다. 핵심 설비 국산화가 2027년 목표대로 완성될지도 일정을 좌우할 변수다.
서해안 HVDC는 단순히 선로 4개를 더 까는 사업이 아니다. 발전과 소비가 따로 노는 전력 지도, 십수 년씩 걸리던 송전망 건설, 해외에 기대던 핵심 기술이라는 세 가지 묵은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 보려는 시도다. 2030년 첫 구간이 예정대로 바다 밑을 흐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호남의 전기가 수도권에 닿는 것을 넘어 국가 전력망을 짓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