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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의 가장 비싼 역설

버려지는 햇빛과 바람: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의 심각성과 대책

2026년 5월 · 전력 계통과 재생에너지 정책

맑게 갠 봄날 정오, 태양광 패널이 가장 많은 전기를 쏟아내는 바로 그 시각에 전국 곳곳의 태양광·풍력 발전소가 강제로 멈춰 선다. 멀쩡히 만들 수 있는 깨끗한 전기를 그냥 버리는 것이다. 이를 출력제어(curtailment)라 부른다. 한때 제주도만의 문제로 여겨졌던 출력제어는 이제 호남을 거쳐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으로 번졌다. 재생에너지를 늘릴수록 더 많은 전기를 버리게 되는 이 역설은 왜 생기며, 어떻게 풀 수 있을까.

1출력제어란 무엇인가

전력망에는 절대 규칙이 하나 있다. 매 순간 생산되는 전기와 소비되는 전기의 양이 정확히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이 깨지면 전력망의 주파수(우리나라는 60헤르츠)가 흔들리고, 심하면 발전기와 송전설비를 보호하기 위해 광범위한 정전, 즉 블랙아웃이 일어난다.

화력·원자력처럼 사람이 출력을 조절하는 발전기는 수요에 맞춰 발전량을 올리고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햇빛과 바람이 발전량을 결정한다. 수요보다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데 그 남는 전기를 저장하거나 다른 곳으로 보낼 방법이 없을 때, 계통운영자는 최후의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을 강제로 줄이거나 멈춘다. 이것이 출력제어다.

비유로 이해하기

전력망을 욕조에 비유해 보자. 수도꼭지에서 들어오는 물(발전)과 배수구로 빠지는 물(소비)의 양이 같아야 수위(주파수)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화력·원전은 손으로 잠글 수 있는 수도꼭지지만, 태양광·풍력은 날씨에 따라 쏟아지는 빗물에 가깝다. 빗물이 세차게 들어오는데 배수구를 넓힐 수도, 받아둘 큰 통도 없다면, 욕조가 넘치지 않도록 빗물받이를 일부 치워 버리는 수밖에 없다. 출력제어가 바로 그 '빗물 버리기'다.

전력 수요 태양광 발전 전력량 0시 6시 12시 18시 24시 남는 전기 → 출력제어 대상
맑은 날의 전력 수요(초록)와 태양광 발전량(주황) 개념도. 정오 무렵 태양광이 수요를 넘어서면 남는 전기가 생기고, 저장·송전 수단이 부족하면 진한 색으로 표시된 만큼이 출력제어 대상이 된다.

2얼마나 심각한가

숫자는 분명하다. 제주도에서 출력제어는 2015년 풍력 3회로 시작했다. 그 뒤 해마다 불어나 2023년 181회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10월까지만 누적 497회에 이르렀다(제민일보 집계). 풍력 출력제어량은 2017년 약 1,300메가와트시에서 2021년 약 2만 5천 메가와트시로, 4년 만에 스무 배 가까이 늘었다.

100200300400500 (횟수) 3·154677 65132181 497 201820192020 2021202220232024 (~10월 누적)
제주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횟수 추이. 2018년 막대의 '3'은 출력제어가 처음 발생한 2015년 수치를 함께 표기한 것이며, 2024년은 10월까지의 누적이다. 자료: 언론 보도 종합.

제주의 경고는 곧 육지의 현실이 됐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육지의 출력제어는 2023년 호남에서 처음 시작됐고, 지금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시행된다. 특히 전국 태양광 설비의 약 3분의 2가 몰린 호남·경남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호남권 출력제어는 2024년 한 해 26회였으나 2025년에는 상반기에만 44회로 늘었고, 제어된 발전 규모도 약 다섯 배로 불었다(태양광 업계 집계). 2025년에는 출력제어 지시를 따르지 않은 태양광 발전소 여덟 곳에 처음으로 과징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497회
2024년 제주 출력제어 누적(~10월). 2015년 3회에서 9년 만의 폭증
약 67%
호남·경남에 몰린 전국 태양광 설비 비중. 출력제어 직격탄
약 5배
2025년 상반기 호남권 출력제어 규모 증가폭(전년 대비)

3왜 발생하는가

출력제어가 늘어나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구조적 문제가 겹친 결과다.

① 발전소는 빠르게, 전력망은 느리게

태양광·풍력 발전소는 빠르면 1~2년이면 짓지만, 그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선은 부지 확보와 주민 동의에 10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사업 중 하나는 준공이 88개월, 또 다른 송전선로는 137개월이나 미뤄졌다. 밀양 송전탑 갈등이 보여주듯, 송전망 건설은 늘 지역 수용성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발전 설비가 전력망을 앞질러 늘어나니, 전기를 보낼 길이 막힌다.

재생에너지 밀집 호남 · 제주 전기를 많이 생산 전력 수요 밀집 수도권 전기를 많이 소비 기존 송전선 — 용량 부족(병목) 대용량 송전 HVDC '에너지고속도로' — 대용량 신설
전기를 많이 만드는 지역과 많이 쓰는 지역이 떨어져 있고, 이를 잇는 기존 송전선은 용량이 부족하다(위 가는 선). 해법은 대용량 HVDC 간선, 이른바 '에너지고속도로'로 더 굵은 길을 내는 것이다(아래 굵은 화살표).

②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기저전원

석탄·원자력 같은 대형 발전기는 안정적 운전을 위해 일정 수준 아래로는 출력을 낮추지 않는다. 우리나라 발전기의 평균 최소발전용량은 약 47%로,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20~40%보다 높다. 기저전원이 자리를 충분히 비워주지 않으니, 남는 전기를 떠안고 멈추는 쪽은 늘 재생에너지가 된다.

③ 수요와 공급의 시공간 불일치

전기를 많이 만드는 곳(호남·제주)과 많이 쓰는 곳(수도권)이 멀리 떨어져 있고, 가장 많이 만드는 시간(맑은 정오)과 가장 많이 쓰는 시간(저녁)이 어긋난다. 공간의 불일치는 송전 병목을, 시간의 불일치는 정오의 과잉을 낳는다. 위 그림처럼, 가는 길로는 넘치는 전기를 다 보낼 수 없다.

④ 시장의 사각지대

지금까지 태양광·풍력은 전력거래소가 직접 출력을 조정하는 '중앙급전' 발전기가 아니었다. 출력을 지시받지도, 멈췄을 때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시장이 재생에너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니, 조정은 결국 '강제로 끄기'라는 거친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비유로 이해하기

갓 짜낸 신선한 우유를 그대로 버리는 낙농가를 상상해 보자. 우유(전기)는 넘치는데, 도시로 실어 나를 트럭(송전선)이 모자라고, 남는 동안 보관할 냉장고(저장장치)도 없다. 결국 멀쩡한 우유를 하수구에 흘려보낸다. 출력제어는 전력판 '우유 버리기'다. 문제는 우유 자체가 아니라, 트럭과 냉장고와 유통 체계가 모자란 데 있다.

4무엇을 잃는가

버려지는 것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첫째,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만든 청정 전기를 버리는 것은 그만큼 온실가스 감축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그 빈자리는 대개 화석연료 발전이 메운다. 둘째, 발전사업자에게는 곧바로 수익 손실이다. 만들 수 있었던 전기를 팔지 못하니 투자 회수가 늦어지고, 이는 신규 재생에너지 투자를 위축시켜 보급 확대 자체를 더디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셋째, 비싸게 지은 발전 설비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자원 낭비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는 나라들이 공통으로 겪는 성장통이다. 중국은 2025년 상반기 태양광·풍력 출력제어율이 모두 6% 안팎으로, 1년 전 3~4%대에서 두 배가량 올랐다. 재생에너지가 밀집한 티베트에서는 풍력의 30%, 태양광의 34%가 버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2024년 한 해 340만 메가와트시의 태양광·풍력을 버렸는데, 이는 전년보다 29% 늘어난 양이며 그중 93%가 태양광이었다(미국 에너지정보청, EIA). 차이가 있다면, 이들 역시 출력제어를 '버리는 문제'에서 '활용하는 문제'로 바꾸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5어떻게 풀 것인가

해법은 결국 네 갈래로 모인다. 더 굵은 길을 내고, 남는 전기를 담아두고, 시장을 손보고, 쓰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며, 네 가지를 함께 밀어붙여야 한다.

① 더 굵은 길 — 전력망 확충

가장 근본적인 처방은 송전망을 늘리는 것이다. 2025년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정부가 직접 나서 인허가를 앞당기고 주민 수용성을 높일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동해안과 서해안을 잇는 HVDC 간선, 이른바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이 핵심이다. 제주에서는 2024년 12월 제주–완도 제3해저연계선이 가동되며 남는 전기를 육지로 보낼 길이 넓어졌고, 그 결과 2024년 제주의 출력제어 완화율은 86%까지 올랐다(전력거래소 운영실적). 다만 송전망 건설은 효과가 가장 크지만 가장 오래 걸린다는 한계가 있다.

② 담아두고 비켜주기 — 계통 유연성

두 번째는 전력망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선 기저전원의 최소발전용량을 낮춰 재생에너지가 들어올 자리를 비워줄 수 있다. 한 분석은 제주에서 최소발전용량을 20%까지 낮추면 출력제어의 70%가량을 피하고 약 45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동시에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와 양수발전을 늘리면, 정오의 과잉을 저녁의 부족으로 옮길 수 있다.

③ 끄지 말고 사고팔기 — 시장제도 개편

세 번째는 '강제로 끄기'를 '시장에서 조정하기'로 바꾸는 것이다. 제주도는 2024년 6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도입했다. 발전사업자가 다음 날 발전량을 예측해 하루 전 시장과 실시간 시장에 입찰하고, 15분 단위로 계획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2026년부터는 이 입찰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또한 2026년 봄부터 재생에너지 준중앙제도가 시행되어, 그동안 보상 사각지대에 있던 태양광·풍력도 출력제어에 따른 손실을 보상받는 길이 열렸다.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투자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차액계약(CfD, Contract for Difference)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④ 쓰는 방식 바꾸기 — 수요 이동과 섹터커플링

마지막은 남는 시간에 전기를 쓰도록 수요를 옮기는 것이다. 잉여전력으로 열을 만들거나(P2H, Power to Heat), 물을 분해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P2G, Power to Gas) 방식이 대표적이다. 제주 행원에서는 풍력·태양광 전기로 하루 최대 1.3톤의 그린수소를 만드는 실증이 진행 중이다. 전기차 배터리를 거대한 분산 저장장치로 활용하는 전기차–전력망 연계(V2G, Vehicle to Grid)와, 흩어진 소규모 자원을 묶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도 주목받는다. 정부는 제주·전남·부산·경기 등을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하고 이후 울산·포항 등으로 넓혔으며, 전기를 많이 쓰는 데이터센터를 태양광이 밀집한 전남 해남·영암으로 유치해 '생산지에서 소비'를 꾀하고 있다.

비유로 이해하기

출력제어를 푸는 일은 교통체증을 푸는 일과 닮았다. 길을 넓히고(송전망·HVDC), 차고지를 만들어 차를 잠시 세워두고(저장장치), 통행료로 혼잡을 조절하며(시장·요금제), 출퇴근 시간을 분산시키는(수요 이동) 네 가지를 함께 써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막힌 길이 끝까지 뚫리지 않는다.

6버리지 않는 전환을 향하여

출력제어는 재생에너지가 실패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빠르게 늘었다는 증거다. 발전 설비가 전력망과 제도보다 앞서 달려 나가면서 생긴 성장통에 가깝다. 문제는 이 성장통을 방치하면 곧 성장의 족쇄가 된다는 점이다. 애써 지은 태양광·풍력이 전기를 버리는 일이 반복되면 투자 수익이 불확실해지고, 그러면 다음 투자가 위축되어 전환 자체가 느려진다.

2026년은 하나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10월 환경부의 기후 기능과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의 에너지 기능을 합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하면서, 전력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한 부처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정부는 2026년을 '에너지 대전환의 성과를 내는 원년'으로 삼고 재생에너지 설비 100기가와트(GW, Gigawatt) 시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같은 해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와 준중앙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 태양광·풍력도 시장 안에서 거래되고 손실을 보상받는 자원으로 자리 잡는다.

결국 관건은 속도 경쟁이다. 설비는 빠르게 느는데 송전망과 시장제도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출력제어는 계속 늘어난다. 반대로 전력망 건설을 앞당기고 저장장치를 깔고 시장을 정비하는 일이 설비 증가만큼 빠르게 이뤄진다면, 버려지는 전기는 줄고 전환의 비용도 낮아진다. 햇빛과 바람은 공짜다. 그러나 그 공짜 에너지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쓰는 일에는 투자와 제도와 시간이 든다. 지금 한국이 마주한 과제는 바로 그 마지막 한 걸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