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언어, 자연상수 e
원주율 π가 도형에서 태어났다면, 오일러 수(Euler's number)라 불리는 e는 ‘변화’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복리 계산에서 출발해 미적분과 자연현상, 확률과 복소수까지 가로지르는 한 숫자의 이야기.
1서로 다른 두 상수, π와 e
수학에는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상수가 몇 개 있다. 원주율 파이(π)가 대표적이고, 황금비와 루트 2가 그 뒤를 잇는다. 그 목록의 맨 앞자리를 π와 나란히 차지하는 수가 하나 더 있다. 2.718281828…로 시작하는 무리수, e다.
π와 e는 둘 다 무리수이고 둘 다 수학 곳곳에 깊이 박혀 있지만, 태생이 전혀 다르다. π는 도형에서 나온다.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눈 값이 곧 π이고, 이 정의는 고대 그리스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반면 e는 도형과 무관하다. 어떤 모양에서도, 자와 컴퍼스 어디에서도 e는 나오지 않는다.
e는 ‘변화’와 ‘성장’에서 나온 수다. 무언가가 끊임없이 자라거나 줄어드는 상황을 수식으로 적으면, 거의 예외 없이 e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왜 하필 성장을 다루는 자리에 이 특정한 숫자가 등장하는가. 그 답은 17세기의 한 은행 계산 문제에서 시작된다.
2복리가 낳은 수
이야기는 단순한 금융 문제에서 출발한다. 원금이 1이라고 하자. 그리고 아주 후한 은행이 연 100%의 이자를 준다고 하자. 1년이 지나면 원금 1에 이자 1이 붙어 잔액은 2가 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
이제 조건을 살짝 바꿔 보자. 1년에 한 번 100%를 주는 대신, 6개월마다 50%씩 두 번 준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득일까 손해일까. 처음 6개월이 지나면 1에 50%가 붙어 1.5가 된다. 다음 6개월에는 이 1.5에 다시 50%가 붙는다. 50%면 0.75이므로 잔액은 1.5 + 0.75 = 2.25가 된다. 연 1회로 받았을 때의 2보다 많다. 이자를 쪼개 더 자주 받았더니, 같은 연 100%인데도 결과가 더 커졌다.
핵심은 이것이다. 중간에 붙은 이자에 다시 이자가 붙기 때문에, 정산을 자주 할수록 잔액이 늘어난다. 이를 흔히 복리(複利, compound interest), 곧 ‘이자가 이자를 낳는’ 구조라 부른다.
복리는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작은 눈덩이지만, 한 바퀴 굴러 커진 눈덩이는 다음 한 바퀴에서 더 많은 눈을 끌어모은다. 굴리는 횟수를 잘게 쪼갤수록—한 바퀴 대신 반 바퀴씩 더 자주 굴릴수록—같은 거리를 굴려도 눈덩이는 조금씩 더 커진다.
그렇다면 정산을 더 자주 하면 얼마나 더 늘어날까. 매월 정산한다고 하자. 연 100%를 12로 나누면 매달 이자율은 112이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잔액에 (1 + 112)를 곱하고, 이를 1년에 12번 반복한다. 즉 1 × (1 + 112)12 ≈ 2.613이다. 매주(52번)면 약 2.693, 매일(365번)이면 약 2.715가 된다.
여기서 분명한 규칙이 보인다. 1년을 n번으로 쪼개 정산하면 잔액은 다음과 같다.
n이 커질수록 잔액은 계속 커진다—그런데 늘어나는 폭이 점점 줄어든다. 2.613, 2.693, 2.715… 증가분이 빠르게 작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끝까지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매초, 매 순간, 쉴 새 없이 연속으로 이자를 받는다면. 이것이 연속 복리(continuous compounding)이고, 수식으로는 n을 무한대로 보내는 극한이다. 바로 이 극한값이 e다.
3못 푼 사람과 푼 사람
이 극한을 처음 들여다본 사람은 17세기 후반의 수학자 야코프 베르누이(Jacob Bernoulli)였다. 1683년, 그는 바로 이 복리 문제를 연구하다가 (1+1/n)n이 n이 커질 때 어떤 값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만 그는 그 값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구하지 못했고, 이항정리(binomial theorem)를 이용해 그 값이 2와 3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까지만 밝혔다. 역사적으로 이는 어떤 수가 ‘극한이라는 과정’을 통해 정의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값을 끝까지 계산해낸 사람은 약 반세기 뒤의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였다. 그는 이 상수를 소수점 아래 여러 자리까지 구했고—1748년의 저작에서는 18자리까지 계산했다—이 수에 e라는 이름을 붙였다.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오일러가 자기 이름(Euler)의 머리글자를 따서 e라 부른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미 다른 곳에 a를 쓰고 있었기에 그다음 모음인 e를 골랐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결과적으로 ‘e가 오일러(Euler)의 e’가 된 것은 멋진 우연의 일치인 셈이다. e라는 표기가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731년, 오일러가 동료 골드바흐(Christian Goldbach)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흥미롭게도 e는 베르누이의 복리 문제보다 더 이른 시기에 다른 모습으로 이미 어른거리고 있었다. 17세기 초 존 네이피어(John Napier)의 로그(logarithm) 연구에 딸린 한 수표(數表)에는 사실상 자연로그에 해당하는 값들이 들어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이 값과 복리 문제 사이의 연결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4e는 왜 무리수인가
e가 2.718281828…로 끝없이 이어지는 무리수라는 사실은 오일러가 1737년에 증명했다(논문은 7년 뒤에야 출판되었다). 그는 e를 ‘연분수(continued fraction)’라는 형태로 표현했는데, 분모 자리에 나타나는 숫자들을 죽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른다.
이 패턴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리수(분수로 적을 수 있는 수)는 연분수로 적으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끝난다. 나누어떨어지는 나눗셈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반대로 연분수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그 수는 어떤 분수로도 적을 수 없다는 뜻이다. e의 연분수는 규칙을 지키며 무한히 이어지므로, e는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무리수다.
오일러는 e를 계산하기 위해 또 다른 공식도 썼다. 팩토리얼(factorial, 계승)을 이용한 무한급수다.
분모의 팩토리얼이 폭발적으로 빨리 커지기 때문에, 이 급수는 몇 항만 더해도 e에 매우 빠르게 가까워진다. 1 + 1 + 0.5 + 0.1667 + 0.0417…만 더해도 벌써 약 2.708이다. 이 급수 형태는 e가 무리수임을 보이는 더 간결한 증명으로도 이어진다. 만약 e가 a/b라는 분수라고 가정하면, 위 급수를 적당히 변형했을 때 ‘0과 1 사이에 있는 정수’라는 모순이 생긴다. 정수이면서 0과 1 사이에 있을 수는 없으므로, 처음의 가정이 틀렸다는 결론에 이른다.
5미적분이 사랑하는 함수
e가 수학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e를 밑으로 하는 지수함수 y = ex의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이 곡선을 그려 보자. x = 0에서 곡선은 높이 1을 지난다(e0 = 1이므로). 곡선 위의 어떤 점을 잡든, 그 점에서 세 가지 양이 모두 똑같다.
- 그 점에서의 함숫값, 곧 높이는 ex이다.
- 그 점에서 곡선에 그은 접선의 기울기(순간 변화율)도 ex이다.
- 곡선 아래에서 그 점 왼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이도 ex이다.
값과 기울기와 넓이가 모든 점에서 일치하는 함수는 ex가 유일하다. 특히 ‘기울기가 곧 자기 자신과 같다’는 성질은 미적분에서 결정적이다. 미분이란 곧 변화율(기울기)을 구하는 일인데, ex는 미분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ex로 남는 유일한 함수다. 풀어 말하면, ex는 ‘현재 값에 비례하는 속도로 변하는’ 양을 나타낸다.
ex는 자기 키에 정확히 비례하는 속도로 자라는 나무와 같다. 키가 2미터일 때는 시간당 2의 속도로, 키가 5미터가 되면 시간당 5의 속도로 자란다. 커질수록 더 빨리 커지고, 그 ‘빠르기’가 언제나 ‘현재 키’와 정확히 같다. 자연계의 수많은 성장과 감소가 바로 이 방식—현재 양에 비례해 변하는 방식—을 따른다.
이 성질 덕분에 e는 미적분의 자연스러운 언어가 된다. 변화율과 성장, 넓이를 다루는 계산을 e로 적으면 식이 깔끔해지는 반면, e를 일부러 피하려 하면 곳곳에 불필요한 상수가 달라붙어 식이 지저분해진다. 로그도 마찬가지다. e를 밑으로 하는 로그를 자연로그(natural logarithm)라 부르는데, 자연로그는 미분하면 1x이라는 더없이 단순한 형태가 된다.
6자연은 e로 자란다
‘현재 값에 비례해 변한다’는 조건은 자연과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e도 그만큼 자주 등장한다.
연속 복리로 불어나는 돈이 대표적이다. 원금 P를 연이율 r로 시간 t만큼 연속 복리로 굴리면 최종 금액은 다음과 같다.
방사성 붕괴(radioactive decay)가 그 예다. 방사성 물질은 남아 있는 양에 비례하는 속도로 붕괴한다. 그래서 시간에 따라 남는 양은 e의 지수로 줄어들고, 일정 시간마다 절반씩 줄어드는 ‘반감기(半減期, half‐life)’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고고학에서 유물의 연대를 재는 탄소‐14 연대측정(carbon‐14 dating)이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다.
뜨거운 물체가 식는 과정(뉴턴의 냉각 법칙, Newton's law of cooling), 개체 수가 불어나는 초기 단계의 인구 성장, 약물이 체내에서 분해되는 속도 등도 모두 같은 e 지수 꼴로 기술된다.
통계학에서도 e는 빠지지 않는다. 키, 측정 오차, 시험 점수처럼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데이터를 묘사하는 정규분포(正規分布, normal distribution)—흔히 종 모양 곡선이라 부르는—의 식 한가운데에 e가 들어 있다. 종 모양의 좌우 꼬리가 부드럽게 0으로 잦아드는 모양 자체가 e의 지수 감소에서 나온다.
7우연 속에 숨은 e
e가 성장이나 감소와 무관해 보이는 자리에서도 불쑥 튀어나온다는 점은 이 수의 보편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n명이 모자를 맡겼다가 뒤섞인 채 무작위로 하나씩 돌려받는다. 단 한 사람도 자기 모자를 돌려받지 못할 확률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n이 커지면 이 확률은 1e ≈ 0.368, 곧 약 37%로 수렴한다. 사람 수가 100명이든 100만 명이든 거의 같은 값이다. 이렇게 모두가 제자리를 벗어난 배열을 완전순열(derangement)이라 부른다.
비슷한 수가 의사결정 문제에도 나온다. 지원자를 한 명씩 순서대로 면접하되, 한 번 떨어뜨린 사람은 다시 부를 수 없고 최고의 한 명을 뽑아야 한다고 하자. 이때 최적 전략은 전체의 약 37%(정확히는 n/e명)를 무조건 보내며 기준만 살핀 뒤, 그 이후 지금까지 본 누구보다 나은 첫 지원자를 뽑는 것이다. 이 전략이 최고의 지원자를 고를 확률 역시 약 1e, 곧 37%다. ‘37% 규칙’이라 불리는 이 결과에도 e가 자리하고 있다.
8가장 아름다운 식
e가 가장 유명해진 계기는 아마 다음 한 줄의 식일 것이다. 오일러 항등식(Euler's identity)이라 불리는 식이다.
이 짧은 식 안에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상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성장의 상수 e, 허수 단위 i(제곱하면 −1이 되는 수, √−1), 원의 상수 π, 그리고 가장 기본이 되는 두 수 1과 0이다. 서로 출신이 전혀 다른 다섯 개의 수가 단 하나의 등식으로 묶인다.
이 식은 더 일반적인 관계, 오일러 공식(Euler's formula)에서 나온다.
이 공식은 e의 허수 지수가 복소평면에서 ‘회전’을 뜻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θ만큼의 각으로 단위원 위를 도는 것이다. 여기서 θ에 π(반 바퀴, 180도)를 넣으면, 점은 출발점 1의 정반대편인 −1에 정확히 도달한다. 즉 eiπ = −1이고, 양변에 1을 더하면 eiπ + 1 = 0이라는 항등식이 된다. 성장을 다루던 수 e가 회전과 원의 세계에서 π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식이다. 많은 수학자가 이 식을 가장 아름다운 수식으로 꼽는 이유다.
e는 도형에서 출발한 π와 달리, ‘변화 그 자체’를 재는 자에서 태어났다. 복리 계산이라는 평범한 질문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무리수이자 더 나아가 초월수(超越數, transcendental number)—유리수 계수의 어떤 다항방정식의 해도 될 수 없는 수—라는 사실이 19세기에 밝혀졌다(1873년 에르미트가 증명). 그리고 미적분, 자연현상, 확률, 복소수의 회전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변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시 나타난다. 2.718281828…이라는 끝없는 소수가 그토록 여러 분야에서 같은 얼굴로 마주치는 것은, e가 다름 아닌 ‘연속적인 변화의 공통 언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