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사 · 2,500년의 발견
한때 미래와 하늘은 신의 영역이었다. 인류는 약 2,500년에 걸쳐 그 영역을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상식을 버려야 했다. 숫자에서 시작해 표준 모형에 이르는, 그리고 지금도 풀리지 않은 벽 앞에 멈춰 선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하늘은 완벽한 세계였다. 달 너머의 천상계는 영원불변하는 신성한 물질로 가득 차 있었고, 별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을 그리며 돌았다. 일식과 월식이 언제 일어날지, 행성이 어디로 향할지는 인간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질서였다. 그러나 지난 수백 년 사이 인류는 일식의 시각을 초 단위로 예측하고, 행성의 궤도를 계산하고, 우주의 탄생 순간을 되짚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입자의 존재를 수식만으로 예언하게 되었다. 이 글은 그 능력을 만들어 낸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방법이 우리에게 어떻게 거듭 상식을 포기하라고 요구해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리학의 역사는 흔히 위대한 천재들의 발견을 나열한 목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깊은 줄기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자체의 변화다. 세상의 본질을 숫자에서 찾던 시대에서, 관념이 아닌 경험과 실험으로 검증하는 시대로, 그리고 객관적 사실 위에서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로 반증 가능성을 열어 두는 과학적 방법으로. 아래 그림은 그 사고방식의 진화를 압축한 것이다. 본문은 이 흐름을 따라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까지 차례로 짚어 간다.
기원전 약 500년 ~ 300년 · 고대 그리스
기원전 500년경, 피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에서 짧은 두 변의 제곱의 합이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관계를 다루었고, 현악기 줄의 길이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현상을 수치로 기술했다. 그는 숫자가 세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인류가 처음으로 자연의 배후에 수학적 질서가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흔히 "피타고라스가 그 정리를 발견했다"고 말하지만, 직각삼각형의 변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그보다 1,000년 이상 앞서 알려져 있었다. 기원전 1900~1600년경의 바빌로니아 점토판은 √2를 매우 정확히 계산하고 직각삼각형을 만드는 수의 조합을 담고 있으며, 이집트와 인도에서도 같은 관계가 실용적으로 쓰였다. 피타고라스가 정리를 직접 증명했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그의 학파는 비밀결사처럼 운영되며 구성원의 발견을 모두 스승의 이름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정리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은 발견의 공로라기보다, 수학적 사고를 하나의 학파로 조직하고 널리 퍼뜨린 영향력의 흔적에 가깝다.
기원전 450년경 엠페도클레스는 세계가 물·불·공기·흙의 네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400년경 플라톤은 세계가 불완전한 현실 세계와, 완벽하고 변하지 않는 관념의 세계 곧 이데아로 나뉘어 있다고 보았다. 현실은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모방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기원전 350년경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반적 진리에서 출발해 구체적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식, 곧 연역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플라톤과 달리 경험적 지식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고 본 점이 중요하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식의 추론이다. 그는 세계를 달 아래의 지상계와 달 너머의 완벽한 천상계로 나누고, 천상계는 신성한 물질인 에테르로 가득 차 별들이 영원한 원운동을 한다고 보았다. 이 지구 중심의 완벽한 하늘 그림은 이후 약 2,000년 동안 서구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된다.
기원전 300년경 유클리드는 매끄럽고 평평한 공간에서 도형의 성질을 다루는 기하학을 체계화했다. 그는 몇 개의 공리에서 출발해 연역만으로 방대한 결론을 끌어냈다. 이 공리에서 추론으로라는 형식은 이후 모든 엄밀한 학문의 본보기가 되었다.
개념 풀이 · 연역법과 귀납법
연역법은 이미 참이라고 받아들인 일반 원리에서 출발해 개별 결론을 끌어낸다. "모든 금속은 늘어난다 → 그러므로 이 구리선도 늘어난다"처럼, 전제가 옳으면 결론도 반드시 옳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이 이 방식이다.
귀납법은 반대로, 수많은 개별 관찰을 모아 일반 법칙을 세운다. "관찰한 모든 백조가 희다 → 그러므로 백조는 희다"처럼, 경험이 쌓일수록 법칙이 단단해지지만 단 하나의 반례로 무너질 수도 있다. 훗날 베이컨과 갈릴레오가 실험과 함께 이 길을 열었고, 근대 과학은 두 방법을 함께 쓰게 된다.
1543년 ~ 1687년 · 과학혁명
유클리드 이후 약 1,000년 동안 물리학적 사고는 더디게 흘렀다. 그 정체를 깨뜨린 것이 관측이었다.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관측을 근거로 태양이 중심이라는 지동설을 내놓았다. 종교의 영향이 짙던 당시 서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별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을 믿고 있었기에, 이는 단순한 천문학적 주장이 아니라 세계관에 대한 도전이었다.
1609년부터 1619년에 걸쳐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는 정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해, 행성이 완벽한 원이 아니라 타원 궤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태양과 행성 사이의 거리에 따라 속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수학적으로 기술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완벽한 원"이 처음으로 깨진 순간이다.
1620년경 잉글랜드의 철학자 베이컨은 세계에 대한 탐구가 현실의 경험과 관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귀납법이다. 인류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경험과 이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1637년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공간 속 도형의 성질을 좌표 위의 점들로 설명하는 좌표계를 고안해, 대수와 기하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방법의 혁명을 완성한 사람은 갈릴레오였다. 그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을 발견해 모든 것이 지구를 도는 것은 아님을 보였고, 금성의 위상 변화를 통해 천동설이 틀렸음을 확신했다. 망원경으로 본 달의 표면은 거칠고 울퉁불퉁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상하던 매끄럽고 완벽한 천체가 아니었다. 그는 자유낙하와 관성의 법칙을 정립하고, 훗날 상대성 이론의 토대가 되는 갈릴레이 변환을 제시했으며, 소리의 진동수가 음의 높낮이를 좌우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경험적 사실에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과 수학으로 검증한 그를 흔히 최초의 과학자라 부른다. 인류가 비로소 과학적 방법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1687년 잉글랜드의 물리학자 뉴턴은 물체의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했다. 그는 시간에 따른 운동의 변화를 다루기 위해 미적분학을 개발했고, 프리즘으로 빛을 색깔별로 분리하는 분광 실험도 남겼다. 그가 한 일은 본질적으로,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미래와 천상계를 인간의 계산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힘과 달을 붙드는 힘이 같다는 그의 통찰 위에서, 과학과 산업의 혁명이 시작된다.
신의 영역이던 미래가, 인간이 계산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1738년 ~ 1870년대 · 역학에서 열역학으로
뉴턴 역학을 손에 쥔 인류는 자연 곳곳에서 변하지 않고 보존되는 양을 찾기 시작했다. 1738년 스위스의 물리학자 베르누이는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에너지가 형태를 바꾸며 보존된다는 생각의 첫 단서였다. 1740년경 프랑스의 자연철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는 여러 실험 증거를 바탕으로 운동에너지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mv²)는 초기 형태의 공식을 정리했다. 운동량이 열이나 소리 같은 다른 형태로 바뀌어 보존될 수 있다는 통찰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옮기며 깊은 주석을 단 것도 그녀였다.
1747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달랑베르는 현악기 줄의 진동, 곧 파동을 다루는 1차원 파동 방정식을 처음으로 기술했다. 같은 시기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세 천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삼체 문제를 연구해, 달과 행성의 움직임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했다. 세 물체의 중력 상호작용은 일반적인 해를 구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오늘날까지도 물리학과 수학에서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다.
1770년대에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물질이 여러 원소의 화합물이며 화학 변화에서 그 질량이 언제나 보존된다는 사실을 밝혔다(질량 보존 법칙은 1789년 그의 저서에서 정식화된다). 1785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쿨롱은 두 전하 사이의 전기력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실험으로 정립했고(쿨롱 법칙), 1799년 프랑스의 화학자 프루스트는 화합물을 이루는 원소들의 질량비가 항상 일정하다는 일정성분비 법칙을 발견했다. 이 발견들은 곧이어 원자설로 이어진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24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카르노는 효율 좋은 증기기관을 연구하던 중,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며 효율 100%의 열기관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훗날 열역학 제2법칙과 엔트로피 개념의 씨앗이 된다.
이후 열과 에너지의 정체가 빠르게 밝혀진다. 1842년 오스트리아의 도플러는 음원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음파의 파장이 길어지는 도플러 효과를 발견했다. 1843년 잉글랜드의 줄은 열과 일이 서로 변환되는 관계를 정확한 수치로 증명했다. 1847년 독일의 헬름홀츠는 운동·열·빛·전기·자기가 하나의 에너지가 형태를 달리한 것이며 서로 변환되고 보존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의 탄생이다. 1850년 무렵 독일의 클라우지우스와 영국의 켈빈은 열역학 제1·제2법칙을 수학적으로 정립했고, 1870년대 오스트리아의 볼츠만은 열이 왜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지를, 무수한 기체 입자들의 배열에 대한 확률로 설명하는 통계역학을 열었다. 자연의 거대한 흐름이 미시 입자들의 통계로 환원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빛의 속도를 둘러싼 발견도 이어졌다. 1848년 프랑스의 피조는 도플러 효과가 빛에도 적용됨을 알아냈고(멀어지는 광원의 빛은 파장이 길어진다 — 훗날의 적색편이), 1849년 피조와 1862년 푸코는 각자의 방식으로 빛의 속도를 실제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사실은 곧, 천문학자가 먼 천체를 볼 때 사실은 그 천체의 과거를 보고 있으며, 멀수록 더 오래된 과거를 관측한다는 뜻이었다.
개념 풀이 · 에너지 보존
에너지는 잔액이 일정한 계좌와 같다. 운동에너지가 마찰로 줄어들면 그만큼 열이 늘고, 떨어지는 물체의 높이가 낮아지면 그만큼 속도가 붙는다.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닫힌 계 안에서 전체 합계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19세기 물리학자들은 이 "총액"이 정말 보존된다는 사실을, 열·일·전기·자기를 넘나드는 실험으로 하나씩 확인해 나갔다.
1801년 ~ 1900년 · 빛의 정체를 밝히다
전기와 자기는 오랫동안 별개의 현상으로 여겨졌다. 그 둘이 하나로 묶이는 과정은 19세기 물리학의 가장 우아한 장면이다. 출발점은 빛이었다. 1801년 영국의 토마스 영은 빛이 두 틈을 지날 때 만드는 간섭무늬를 통해 빛의 파동성을 보였고, 색깔별 파장을 계산했다. 1814년 독일의 프라운호퍼는 태양 스펙트럼에서 약 600개의 검은 선을 발견했다(그 정체는 한참 뒤에 밝혀진다).
1831년경 영국의 패러데이는 전기력과 자기력이 서로 얽혀 있음을 발견하고, 그 힘이 전달되는 방식을 당시로서는 낯선 장(field)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 했다. 공간 자체가 힘을 머금고 전달한다는 발상이다. 1833년 아일랜드의 해밀턴은, 자연 현상이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일어난다는 최소작용의 원리를 수학적으로 발전시켰다. 1859년 독일의 분젠과 키르히호프는 원소마다 고유한 불연속 선 스펙트럼이 나타남을 발견하고, 앞서 프라운호퍼가 본 태양의 검은 선들이 태양을 이루는 원소들의 지문임을 밝혔다.
1865년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앞선 연구들이 밝혀낸 전기와 자기의 성질을 단 네 개의 방정식으로 통합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를 일으키며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가 존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파동의 이론적 속도는 그동안 측정된 빛의 속도와 정확히 같았다. 빛이 곧 전자기파의 한 종류일지 모른다는 강력한 암시였다.
1886년부터 독일의 헤르츠는 맥스웰이 예측한 전자기파를 실험으로 만들어 내고 관측하는 데 성공해, 빛이 전자기파의 한 형태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1887년 미국의 마이컬슨과 몰리는 빛을 전달한다고 믿어지던 매질 "에테르"를 찾는 실험을 진행하다, 오히려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으며 빛의 속도가 관찰자의 운동과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광속 불변은 우주의 한계 속도를 가리키는 단서로, 곧 물리학의 토대를 뒤흔들게 된다.
개념 풀이 · 전자기파가 곧 빛이다
맥스웰은 방정식을 풀다가,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퍼져 나가는 파동의 속도를 계산해 냈다. 그 값은 이미 실험으로 알려져 있던 빛의 속도와 똑같았다. 방정식을 풀었더니 답이 이미 아는 다른 이름이더라는 것이다. 라디오파·마이크로파·X선·가시광선은 모두 같은 전자기파가 파장만 다른 모습일 뿐이다.
1803년 ~ 1932년 · 물질의 안쪽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물음은 고대 원자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과학적 답은 19세기에 나왔다. 1803년 잉글랜드의 화학자 돌턴은 질량 보존 법칙과 일정성분비 법칙을 따르는 원자설을 발표했다. 인류가 물질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과학적 방법으로 처음 이해한 것이다. 1869년 러시아의 멘델레예프는 그때까지 알려진 원소들을 성질에 따라 배열한 주기율표를 만들었고, 이 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의 존재까지 예측해 냈다.
그런데 원자는 끝이 아니었다. 1896년 프랑스의 베크렐은 우라늄이 스스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퀴리 부부가 이를 방사능이라 이름 붙였다. 1897년 영국의 톰슨은 원자 속에서 전자를 발견했다. 원자가 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인류는 더 작은 미시 세계로의 탐구를 시작한다.
1899년 영국의 러더퍼드는 방사선이 전자기장에서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고 각각 알파선·베타선이라 이름 붙였고, 1900년 프랑스의 빌라르는 감마선을 추가로 발견했다. 뒤에 알파선은 헬륨 원자핵, 베타선은 전자, 감마선은 고에너지 전자기파임이 밝혀진다. 1911년 러더퍼드는 실험을 통해 원자 중심에 질량 대부분이 몰린 작은 핵이 있고 전자가 그 주위를 도는 행성 모형을 제시했다. 1913년 덴마크의 보어는 원소 스펙트럼의 불연속적인 선들을 설명하기 위해 전자가 정해진 궤도에만 머문다는 개념을 더했다. 같은 해 파얀스와 소디는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며 다른 원소로 바뀌는 규칙(변위 법칙)을 발견했다.
원자핵의 구성은 1932년에 완성된다. 영국의 채드윅이 질량은 양성자와 비슷하지만 전하가 없는 중성자를 발견하면서, 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졌음이 드러났다. 같은 해 미국의 앤더슨은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가 반대인 입자, 곧 양전자를 발견했다. 이는 수식만으로 예언되었던 반물질의 첫 실물이었다. 그 예언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다음 장에서 만난다.
1900년 ~ 1935년 · 현대 물리학의 시작
20세기 초, 물리학은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을 세운다. 아주 빠르거나 아주 무거운 세계를 다루는 상대성 이론과, 아주 작은 세계를 다루는 양자 역학이다. 두 이론은 모두 인간의 상식을 정면으로 거슬렀고, 그럼에도 실험은 거듭 그 손을 들어 주었다.
문을 연 것은 1900년 독일의 플랑크였다. 그는 기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던 흑체복사 실험 결과를, 빛의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인 양자 단위로만 주고받아진다고 가정해 풀어냈다. 양자 역학으로 들어가는 문에 처음으로 열쇠를 꽂은 셈이다.
1905년 독일 태생의 아인슈타인은 한 해에 물리학의 두 갈래를 동시에 뒤집었다. 하나는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뉴턴 역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는 절대적 무대였지만,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일정하기 때문에 그 한계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마다 다르게 경험된다고 보았다. 그 결과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변환될 수 있으며(E=mc²),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시간이 느려지고 길이가 줄어든다. 따로 떨어져 있던 질량 보존 법칙과 에너지 보존 법칙이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었다.
같은 해 그는 플랑크의 양자 개념을 발전시켜, 빛이 광자라 불리는 알갱이 형태로 존재하기에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광전효과).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는 이 이중성이 양자 역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된다. 흥미롭게도 아인슈타인은 훗날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 그 배후에 숨은 결정론적 변수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상대성 이론은 기하학의 도움을 받아 단단해진다. 1908년 러시아 태생의 수학자 민코프스키는 3차원 공간에 1차원 시간을 결합한 4차원 시공간을 기하학으로 정식화했고, 이 무대 위에서 특수상대성이론은 더없이 자연스럽게 설명되었다. 한편 기하학 자체에도 혁명이 있었다. 1829년부터 1854년에 걸쳐 로바체프스키·가우스·리만 등은 2,000년 넘게 의심받지 않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에 허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공간이 꼭 매끄럽고 평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서 힘을 얻어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중력은 평평한 절대 공간에 작용하는 뉴턴식 힘이 아니라, 질량이 시공간을 휘어 만든 굴곡 그 자체였다. 1916년 독일의 슈바르츠실트는 이 이론으로부터, 질량이 한 점에 극도로 몰리면 현대적 의미의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은 일식 때 태양 주변에서 빛이 휘는 정도가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과 일치함을 관측했다. 휘어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현실에 적용된다는 확인이자, 상대성 이론이라는 한 기둥의 완성이었다.
개념 풀이 · 시공간의 곡률
팽팽한 트램펄린 한가운데에 무거운 볼링공을 올려놓으면 천이 움푹 팬다. 거기에 구슬을 굴리면 구슬은 팬 곳을 따라 휘어 돌게 된다. 두 물체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작용해서가 아니라, 바닥이 휘었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을 꼭 이렇게 설명한다. 무거운 별이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행성은 그 휘어진 길을 따라 돌 뿐이다.
다른 한 기둥인 양자 역학은 192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1924년 프랑스의 드 브로이는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이듯, 전자 같은 물질 입자도 파동의 성질을 지닌다고 제안했다. 1925년 독일의 하이젠베르크는 관측 가능한 물리량만으로 원자 속을 기술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는 1927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로 이어진다.
같은 시기 독일의 파울리는 원소 스펙트럼의 미세한 갈라짐을 설명하기 위해, 전자가 한 궤도에서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상태를 가정했다. 미국의 울런벡과 호우트스밋은 이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는 전자의 회전으로 풀이했지만, 그러려면 전자의 표면이 빛보다 빨리 돌아야 한다는 모순이 나왔다. 파울리는 이 성질을 고전적 회전이 아니라 전자가 본래 지닌 고유 속성으로 규정하고 스핀이라 이름 붙였다. 같은 상태에 둘 이상의 입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파울리 배타 원리의 탄생이다.
1926년 오스트리아의 슈뢰딩거는 드 브로이의 물질파를 발전시켜 파동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세웠다. 같은 해 독일의 보른은 그 파동함수의 제곱이 입자가 어디에 있을 확률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입자의 위치가 더 이상 정해진 점이 아니라 확률의 구름이 된 것이다. 한편 입자들은 통계적으로 두 부류로 나뉘었다. 1924년 인도의 보스와 아인슈타인이 정리한 통계를 따르는 입자는 훗날 보손으로, 1926년 페르미와 디랙이 배타 원리에 맞춰 세운 통계를 따르는 입자는 페르미온으로 분류된다.
양자 세계의 기묘함은 예측력으로 보답했다. 1927년 독일의 훈트는 입자가 고전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확률적으로 통과하는 양자 터널링이 가능함을 발견했고, 1928년 가모프는 이를 이용해 방사성 물질이 알파 입자를 내놓는 현상을 정확히 계산했다. 이 예측은 1930년경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인류가 높은 정확도로 미시 세계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28년 영국의 디랙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전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까지 다루도록 발전시켰다. 양자 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합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 방정식에서는 전자의 스핀이 저절로 유도되었고, 더 나아가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의 존재까지 예언되었다. 4년 뒤 앤더슨이 실험에서 발견한 바로 그 입자다. 현대 물리학은 이제 수식만으로 미래뿐 아니라, 아직 본 적 없는 물질과 그 성질까지 예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바닥에는 한 수학자의 통찰이 깔려 있었다. 1918년 독일의 수학자 에미 뇌터는, 여러 물리량 보존 법칙이 사실은 자연의 대칭성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보존 법칙이 "왜" 성립하는지를 처음으로 설명한 이 뇌터의 정리는, 이후 양자 역학과 입자물리학 전체를 떠받치는 주춧돌이 된다.
개념 풀이 · 양자화와 불확정성
양자화란 에너지가 동전처럼 정해진 단위로만 주고받아진다는 뜻이다. 흐르는 물처럼 아무 양이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동전 1개나 2개는 되어도 1.5개는 안 된다. 빛도 광자라는 알갱이 단위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불확정성 원리는 장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본래 그렇다는 선언이다. 입자의 위치를 더 정밀하게 짚을수록 그 운동량은 더 흐릿해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시 세계에서 입자는 '여기 있다'가 아니라 '여기 있을 확률이 높다'로만 말할 수 있다.
개념 풀이 · 대칭성과 보존 법칙
뇌터의 정리는 자연의 모든 대칭에 보존되는 양이 하나씩 짝지어진다고 말한다. 실험을 어느 시각에 하든 결과가 같다는 시간 대칭에서는 에너지 보존이, 어느 위치에서 하든 같다는 공간 대칭에서는 운동량 보존이,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든 같다는 회전 대칭에서는 각운동량 보존이 따라 나온다. 그동안 경험으로만 알던 보존 법칙들에 비로소 깊은 이유가 생긴 것이다.
1919년 ~ 1965년 · 원자핵 물리학과 우주론
두 기둥이 세워지자 인류의 시선은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으로 동시에 뻗어 나갔다. 그 둘을 잇는 다리는 뜻밖에도 E=mc²이었다. 1919년 영국의 애스턴은 질량분석기를 만들어, 양성자 네 개를 따로 잰 질량의 합보다 그 넷이 뭉친 헬륨 원자핵의 질량이 약 0.8% 가볍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20년경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은 여기에서 착안해, 태양이 타오르는 에너지의 원천이 수소의 핵융합이라고 제안했다. 핵융합 과정에서 사라진 질량이 E=mc²을 거쳐 막대한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이다.
우주 전체에 대한 그림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1912년 미국의 슬라이퍼는 먼 은하에서 오는 빛이 대부분 적색편이되어 있음을, 곧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관측했다. 1922년 소련의 프리드만은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우주가 수축하거나 팽창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같은 해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카프테인은 별들의 운동 속도가 보이는 질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음을 지적하며, 보이지 않는 어떤 물질의 존재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이 암흑물질의 단서는 1933년 스위스의 츠비키가 은하단을 연구하며 한층 분명해진다. 은하들이 보이는 질량으로 묶어 두기에는 너무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츠비키는 이 보이지 않는 질량을 "암흑물질(dunkle Materie)"이라 불렀다.
1927년 벨기에의 천문학자 르메트르는 관측 증거를 토대로,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해 팽창해 왔다는 우주 팽창론을 제시했다. 1929년 미국의 허블은 먼 은하의 적색편이를 분석해, 은하가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비례 관계를 밝혔다(이 팽창률이 훗날의 허블 상수다). 우주는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부풀고 있었다.
원자핵의 안쪽을 묶는 힘도 모습을 드러냈다. 1930년 오스트리아의 파울리는 베타 붕괴에서 에너지와 운동량이 어긋나 보이는 문제를 풀기 위해, 질량도 전하도 거의 없는 미지의 입자가 전자와 함께 방출된다고 제안했다(훗날의 중성미자). 1933년 이탈리아의 페르미는 이를 이론으로 정립했고(페르미 상호작용), 이는 약력 이론으로 발전한다. 1935년 일본의 유카와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는 강한 핵력의 존재와, 그 힘을 전달하는 입자(중간자)를 이론적으로 예측했다. 같은 해 독일의 바이츠제커는 원자핵을 액체방울에 비유한 초기 모형을 세웠다. 핵물리학이라는 분야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1938~39년, 마이트너·한·슈트라스만은 우라늄 핵분열에서 사라진 질량과 방출된 에너지의 관계를 E=mc²으로 계산했다. 그 크기는 실로 엄청났고, 훗날 원자폭탄의 위력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옳음을 비극적인 방식으로 다시 증명하게 된다. 1939년 독일 태생의 베테는 태양의 핵융합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정립했고, 1946년 이후 영국의 호일은 더 무거운 별 내부에서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별의 탄생과 죽음이 우주의 원소를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1948년 앨퍼·베테·가모프는 우주를 이루는 원소들의 비율을 계산해, 가장 가벼운 원소가 우주 대부분을 차지함을 보였다. 이는 우주가 뜨거운 한 점에서 시작했다는 모형과 잘 맞아떨어졌다. 흥미롭게도 "빅뱅"이라는 이름은 이 팽창론을 못마땅해하던 호일이 1949년 라디오 방송에서 "그럼 우주가 쾅 터졌다는 거냐"는 식으로 비꼰 데서 나왔다. 조롱이 이론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결정적 증거는 1965년에 나왔다. 미국의 펜지어스와 윌슨이 우주 전체에 고르게 퍼진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를 관측하면서, 빅뱅은 단단한 사실의 자리에 올랐다.
1948년 ~ 2012년 · 가장 잘 맞는 세계의 설명
양자 역학은 곧 큰 벽에 부딪혔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텅 빈 진공조차 에너지가 끊임없이 출렁이는 양자 요동으로 가득하고, 이를 그대로 계산하면 무한대의 에너지가 튀어나왔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1950년 무렵 여러 물리학자가 이 무한대를 수학적으로 솎아 내는 기법을 개발했는데, 이것을 재규격화라 한다. 그렇게 네 가지 기본 힘 가운데 전자기력을 다루는 첫 번째 단단한 이론,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이 완성되었다.
과학의 발전은 곧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 이후 정교해진 입자 검출기에서 원자핵을 이루는 새로운 입자들이 잇따라 발견되었고, 물리학자들은 이들을 성질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존 양자장론은 전자기력은 잘 설명했지만 약력과 강력에 대해서는 무한대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1954년 여러 과학자가 대칭성에 기반한 게이지 이론을 발전시킨 것은 이 난관을 넘기 위해서였다. 1956년에는 파울리와 페르미가 예측했던 중성미자가 실험으로 직접 관측되었다.
이 무렵 자연은 또 하나의 상식을 깼다. 1956년 중국 출신의 양전닝과 리정다오는 약력에서 대칭성이 깨질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보였고, 우젠슝이 실험으로 입증했다. 뇌터의 정리에 따르면 필연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양이, 약력의 세계에서는 보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1961년, 높은 온도에서는 전자기력과 약력이 하나의 힘으로 합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약력을 전달하는 W·Z 보손의 존재가 예측되었다. 전자기약력 이론의 완성이다.
물질의 가장 깊은 층도 드러났다. 1964년 미국의 겔만과 츠바이크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더 근본적인 입자인 쿼크로 이루어졌다고 제안했다. 같은 해 물리학자들은 약력에서 깨지는 대칭성을 보완하기 위해, 스스로 대칭성을 깨뜨리는 힉스 장을 도입했다. 이 장이 W·Z 보손에 질량을 부여하면서도 전체 대칭성은 유지된다는 설명이었다(힉스 메커니즘). 그리고 1973년, 쿼크가 양·음전하와는 다른 새로운 전하인 색전하를 가지며 그 힘을 글루온이 전달한다는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 QCD)이 완성되었다. 강력에 대한 이론이 갖춰진 것이다.
전자기약력 이론과 양자색역학 위에 세워진 표준 모형은, 알려진 모든 기본 입자와 그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인류 역사상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기술하는 이론으로, 지금까지 이를 대체할 후보는 나오지 않았다. 아래는 표준 모형이 다루는 입자들을 정리한 것이다.
개념 풀이 · 힉스 메커니즘
힉스 장은 공간을 가득 채운 보이지 않는 매질과 같다. 이 매질과 강하게 부딪히는 입자일수록 움직이기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 '걸리적거림'이 곧 질량이다. 마치 꿀단지 속을 헤엄칠 때 몸집 큰 사람일수록 더 큰 저항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2012년 거대강입자가속기에서 힉스 입자가 관측되며, 이 매질의 존재가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표준 모형이 자리를 잡는 동안, 우주는 더 깊은 수수께끼를 던졌다. 1970년경 정밀한 관측으로, 은하가 도는 속도가 눈에 보이는 별들의 질량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면서 암흑물질 이론은 강한 지지를 받았다. 1998년에는 먼 초신성을 관측하던 과학자들이 우주의 팽창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팽창을 가속하는 미지의 에너지, 곧 암흑에너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2000년 무렵 우주배경복사 분석은 충격적인 결론을 내놓았다. 우주의 에너지 가운데 약 68%는 암흑에너지, 약 27%는 암흑물질이며, 우리가 아는 보통의 물질은 약 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표준 모형의 마지막 조각은 2012년에 맞춰졌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LHC)에서 힉스 입자가 관측되며, 표준 모형이 예측한 모든 입자가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론이 예측한 천체들도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2015년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가 두 블랙홀이 충돌하며 만든 시공간의 잔물결, 곧 중력파를 처음으로 직접 검출하면서(2016년 발표) 약 100년 전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이 확인되었다. 2019년에는 사건지평선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 EHT)이 블랙홀의 모습을 처음으로 직접 촬영했고, 2022년에는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까지 포착했다. 과학적 방법이야말로 과거와 미래,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가장 탁월한 길임이 거듭 증명된 것이다.
현재 · 표준 모형을 넘어
현대 물리학은 표준 모형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두 축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그러나 가장 완벽해 보이는 이 체계는 다시 한번 큰 벽 앞에 서 있다. 표준 모형은 양자 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은 통합했지만, 중력을 다루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끝내 끌어안지 못했다. 중력은 미시 세계의 입자들 사이에서는 너무도 미약해, 표준 모형이 아예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들어가면 전자기력과 약력은 하나로 합쳐졌지만 강력은 여전히 별도로 존재하고, 우주의 95%를 차지하는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에 대한 설명도 표준 모형 안에는 없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더 큰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중력을 뺀 세 가지 힘을 하나로 묶는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 GUT), 지금의 게이지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칭인 초대칭 이론, 그리고 네 가지 힘을 모두 통합하려는 끈 이론과 루프 양자중력 이론 등이 그 후보다. 만약 이 가운데 하나가 완성되고 검증을 통과한다면, 그 이론은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이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들 중 일부가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차원의 설명이어서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약 400년에 걸쳐 인류에게 폭발적인 진보를 안겨 준 과학적 방법은, 객관적 사실에서 출발해 관찰과 가설, 실험과 데이터 분석, 결론 도출과 검증을 거치며 언제나 반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한 번 옳다고 결론 난 것도 더 나은 증거 앞에서는 기꺼이 수정된다는 이 태도가, 신화와 철학을 과학과 갈라놓은 핵심이다.
그 과정은 곧 상식을 거듭 포기해 온 역사이기도 했다. 과학은 신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미래와 천상계가 사실은 예측 가능하다는, 당시로서는 비상식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그토록 정확히 예측 가능하리라 믿었던 우주가 근본적으로는 불확정성을 품고 있다는, 또 다른 비상식적인 사실까지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완벽한 천상계는 무지에서 비롯된 이상에 불과했고, 그 자리를 메운 현대 물리학은 지금 다시 풀리지 않은 벽 앞에 서 있다.
우리의 상식을 또 한 번 뒤엎을 과학 혁명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다만 지난 2,500년이 보여 준 것은 분명하다. 과학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