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역사신학
장 칼뱅, 존 오웬, 프란시스 튜레틴, 페트뤼스 판 마스트리흐트, 조나단 에드워즈. 한 세기 반에 걸쳐 제네바·런던·위트레흐트·뉴잉글랜드를 잇는 다섯 신학자의 교의 체계를, 일곱 개의 핵심 주제로 나누어 견주어 본다.
1747년 1월, 매사추세츠 노샘프턴의 목회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자 조셉 벨라미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라틴어로 된 두 권의 묵직한 신학 대작 — 마스트리흐트의 『이론적·실천적 신학』과 튜레틴의 『변증신학 강요』 — 가운데 무엇을 사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에드워즈는 둘 다 탁월하다고 전제한 뒤, 논쟁적 주제만 깊이 파고들 사람에게는 튜레틴이 낫지만, 교리·실천·논쟁을 하나로 아우르는 신학 전체의 체계로는 마스트리흐트가 더 낫다고 적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책은 성경을 제외하면 세상 어떤 책보다 낫다고.
이 짧은 추천사 한 줄에는 17–18세기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지형이 압축되어 있다. 제네바의 칼뱅에게서 시작된 한 갈래의 신학이, 한 세기 반 만에 영국 청교도 오웬, 제네바의 튜레틴,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흐트라는 세 줄기 정통주의를 거쳐, 대서양 건너 신대륙의 에드워즈에게 전해지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다섯 사람은 같은 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도르트 신경으로 대표되는 개혁주의 정통)을 공유했지만, 저마다 다른 시대·다른 문제·다른 방법으로 그 신앙을 진술하였다.
이 글은 다섯 신학자의 조직신학을 일곱 개의 전통적 주제 — 신학 서론과 성경론, 신론, 인간론과 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과 성례론, 종말론 — 로 나누어 비교한다. 다섯 사람을 출생 연도순(칼뱅 1509, 오웬 1616, 튜레틴 1623, 마스트리흐트 1630, 에드워즈 1703)으로 배열하는 까닭은, 이 순서가 개혁주의 교의학이 어떻게 다듬어지고 확장되었는지를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비교에 앞서 오래된 논쟁 하나를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이른바 “칼뱅 대 칼뱅주의자들” 명제다. 20세기 중반 일부 학자(대표적으로 R. T. 켄들)는, 칼뱅의 따뜻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앙이 베자·오웬·튜레틴 같은 후대 스콜라주의자들의 손에서 예정론을 축으로 한 차갑고 경직된 논리 체계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리처드 멀러로 대표되는 최근의 후기 종교개혁 연구는 이 도식을 상당 부분 무너뜨렸다. ‘스콜라주의’란 특정한 신학 내용이 아니라 대학 강단에서 정의·구분·반론을 다루던 방법론이었으며, 칼뱅과 후대 정통주의 사이에는 단절보다 연속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연속성과, 그럼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강조점의 차이를 함께 살핀다.
비교에 들어가기 전에, 다섯 신학자의 자리와 대표작을 간략히 정리한다.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나 법학과 인문학을 공부한 뒤, 망명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대표작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는 1536년 여섯 장짜리 소책자로 출발하여 1559년 4권 80장의 완성판에 이르렀다. 개혁주의 신학의 원천이자 그 이후 모든 진술이 되돌아가 참조하는 표준을 놓았다.
잉글랜드 옥스퍼드셔 출신의 청교도로, 회중교회(독립파)의 지도자이자 크롬웰 치하 옥스퍼드 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하나의 대작 대신 방대한 개별 논저(전 16권 전집)로 거의 모든 교리를 깊이 다루었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죽음의 죽음』(1647)으로 제한속죄를, 『성령론』(1674)으로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정초한 ‘영국 신학자들의 군주’로 불린다.
루카에서 제네바로 망명한 이탈리아계 가문 출신으로, 제네바 아카데미의 신학 교수였다. 『변증신학 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3권, 1679–1685)는 스콜라적 정밀성의 정점으로 꼽힌다. 아르미니우스주의·로마 가톨릭·소키누스주의·아미로주의에 맞서 정통을 변증하였고, 이 책은 19세기 구(舊) 프린스턴 신학교의 표준 교과서로 쓰였다.
네덜란드 신학자로,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히스베르튀스 포에티위스의 뒤를 이어 신학을 가르쳤다. 『이론적·실천적 신학』(Theoretico-Practica Theologia)에서 모든 주제를 주해·교리·논쟁·실천의 네 단계로 다루는 독특한 방법을 구사하였다. 교리와 경건을 한 몸으로 묶은 화란 제2종교개혁(나데러 레포르마치)의 결실이며, 에드워즈가 ‘성경 다음가는 책’으로 꼽은 바로 그 저작이다.
코네티컷 이스트윈저에서 태어나 뉴잉글랜드 회중교회를 목회하였고, 1차 대각성의 중심 인물이자 프린스턴 대학 학장(부임 직후 천연두 접종 후유증으로 별세)이었다. 『신앙감정론』(1746), 『의지의 자유』(1754), 『원죄론』(1758),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1765) 등을 남겼다. 개혁주의 정통을 로크 이후의 계몽주의 철학과 정면으로 대결시킨, 마지막 청교도이자 첫 미국 신학자다.
조직신학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신지식의 토대(성경과 자연계시), 신학이라는 작업의 본성과 방법, 성경의 권위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흥미롭게도 다섯 사람은 이 첫 단추부터 서로 다른 무게중심을 보인다.
같은 사람을 두 가지로 알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치는 ‘존재하는 한 인물’로 아는 것과, ‘물에 빠진 나를 건져 준 은인’으로 아는 것은 종류가 다른 앎이다. 칼뱅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아는 지식(자연·양심·피조 세계가 주는)과 구속주로 아는 지식(그리스도와 성경이 주는)을 구별하고, 『기독교 강요』의 1·2권을 바로 이 ‘두 겹의 신지식(duplex cognitio Dei)’ 위에 세웠다.
별도의 방대한 서론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인간에게는 ‘신성에 대한 본유적 감각(sensus divinitatis)’이 있으나 죄로 흐려졌기에, 성경이라는 ‘안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바르게 본다고 보았다. 성경의 권위는 교회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스스로 증언하며(자증성), 그 확신은 성령의 내적 증거로 신자의 마음에 도장처럼 새겨진다. 신지식과 자기지식은 서로 얽혀 있다는 유명한 첫 문장이 강요를 연다.
『테올로구메나 판토다파』(1661)에서 신학을 언약의 역사를 따라 전개되는 것으로 그렸다 — 일종의 ‘성경신학’이자 신학사다. 히브리어·헬라어 원어와 본문의 무결성에 깊은 학식을 쏟았고, 런던 대조성경에 실린 방대한 이문(異文) 목록이 본문의 권위를 흔든다고 보아 이를 강하게 논박하였다. 성경을 깨닫게 하는 성령의 ‘조명’을 거듭 강조하였다.
강요의 첫 주제(제1주제)가 곧 신학과 성경론이다. ‘원형 신학’(하나님 자신 안의 완전한 지식)과 ‘모형 신학’(인간에게 계시된 지식)을 구분하는 스콜라적 틀을 썼다. 성경의 축자영감을 옹호하여, 헤이데거와 함께 작성한 헬베티아 일치신조(1675)에서는 히브리어 본문의 자음뿐 아니라 모음점(母音點)까지 영감되었다고 단언하였다 — 소뮈르 학파의 본문비평에 대한 강경한 방어였다.
다섯 중 방법론이 가장 정교하다. 신학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사는 일의 교리”로 정의하여, 처음부터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주제를 주해 → 교리 → 논쟁 → 실천의 네 단계로 일관되게 풀어냈다. 성경은 신학의 유일하고 무오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형식적 서론은 약한 대신,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이라는 인식론을 제시하였다. 성령은 새로운 명제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계시된 진리의 아름다움을 직접 맛보게 하는 ‘마음의 새 감각(sense of the heart)’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로크의 경험론과 정면으로 대화하였고, 성경뿐 아니라 자연과 역사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type)’을 읽어 내는 유형론을 발전시켰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단순성·불변성·전능 등), 그리고 영원 전의 작정과 예정이 여기서 다루어진다. 신론은 개혁주의 신학의 심장이며, 다섯 사람 모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위에 무엇을 더 쌓았는지는 저마다 다르다.
신론의 중심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섭리는 우연을 허용하지 않고 만물을 다스린다. 그는 선택과 유기를 함께 말하는 이중예정을 명시하였는데, 주목할 점은 예정을 신론이 아니라 구원론 문맥(강요 3권)에 배치하였다는 것이다 — 예정은 차가운 사변이 아니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고 누리는 위로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세르베투스의 반(反)삼위일체에 맞서 정통을 변증하였고, 하나님은 인간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어(accommodatio)’ 계시한다고 보았다.
삼위일체를 경건의 한복판에 놓았다. 『하나님과의 교제』(1657)에서 그는 신자가 성부와는 사랑으로, 성자와는 은혜로, 성령과는 위로로 각각 구별된 교제를 나눈다고 가르쳤다.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삼위 각 위격과의 친밀한 사귐을 그린 것이다. 성령의 인격마저 부정하던 소키누스주의에 맞서서는 『삼위일체 교리 변증』으로 응수하였다.
단순성·불변성 같은 속성과 작정을 스콜라적 정밀성으로 전개하였다. 성자의 영원한 발생과 성령의 발출을 정통대로 진술하였고, 예수회·아르미니우스주의가 의지한 ‘중간지식(scientia media)’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롭게 무엇을 ‘택할지’를 미리 엿보아 작정을 조정하는 분이 아니라, 주권적으로 작정하시는 분이다. 작정의 논리적 순서에서는 후택설(타락을 전제한 선택)을 취하였다.
속성과 삼위일체를 스콜라적 순서로 다루되, 항목마다 ‘이 진리가 우리 삶에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실천부를 빠짐없이 붙였다. 그의 신론은 머리로 끝나지 않고 무릎으로 이어진다. 특히 삼위의 경륜적 사역 — 성부의 작정, 성자의 성취, 성령의 적용 — 을 또렷이 구분하여, 구원의 전 과정을 삼위일체의 협력으로 읽었다.
다섯 중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논쟁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창조의 궁극 목적으로 논증하였고(『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을 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자기 충만을 흘려보내는 소통적 존재’로 그렸다.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적·심리학적 모델을 제시하였다 — 성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완전히 아는 ‘관념’이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 사이에 오가는 ‘사랑’ 그 자체다. 아름다움·탁월함을 신적 완전으로 끌어올렸고, 철학적 관념론과 기회원인론을 신론에 결합하였는데, 후대 연구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가 정통의 경계를 넘어 범재신론에 다가갔는지를 두고 논쟁한다.
에드워즈의 ‘영광의 흘러나감과 되돌아옴’은 태양을 떠올리면 쉽다. 태양은 끊임없이 빛과 열을 내뿜는다(흘러나감, emanation). 그 빛은 산과 바다와 사람의 얼굴을 비추어, 받은 광채를 도로 반사한다(되돌아옴, remanation). 에드워즈에게 하나님의 영광도 그러하다 — 자기 충만이 피조 세계로 흘러나가고,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과 기쁨과 찬미를 통해 그 영광이 하나님께 되돌아온다. 창조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나누어’ 누리시는 데 있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 행위언약, 타락과 원죄, 그리고 타락 이후 인간 의지의 상태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다섯 사람은 모두 ‘전적 부패’라는 종교개혁의 유산을 공유하지만, 그 부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은 점점 더 정밀해진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타락으로 전적 부패에 빠졌다고 보았다. 이는 인간성의 소멸이 아니라, 의지·이성·감정 전 인격에 죄가 스며들어 스스로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능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피기우스와의 논쟁서 『의지의 속박과 해방』에서 그는, 인간의 의지가 외부에서 강제되지는 않으나(자발적이나) 죄에 매여 있다고 논증하였다.
죄의 ‘내주(內住)’와 ‘기만’을 누구보다 깊이 파헤쳤다(『신자 안에 내주하는 죄의 본성·능력·기만』). 죄는 단지 과거의 외적 행위가 아니라, 거듭난 신자 안에도 남아 끊임없이 속이고 마음을 무디게 하는 능동적 세력이다. 그래서 ‘죄 죽이기(mortification)’는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평생의 전투가 된다 — 그의 가장 실천적인 통찰이다.
원죄와 아담 죄의 ‘전가’를 법정적 정밀성으로 다루었다. 그는 아담의 죄책이 후손에게 직접 전가된다고 보았다 — 우리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머리인 아담의 죄책이 곧바로 우리에게 돌려지기 때문에 정죄받는다. 인간 의지는 죄에 매여 있으나 강제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정통대로 확인하였다.
행위언약, 하나님의 형상, 타락, 원죄를 체계적으로 배열하고, 각 항목마다 실천적 적용을 붙였다. 인간의 비참을 다루는 그의 목적은 절망에 빠뜨리는 데 있지 않고, 자기 무능을 절감한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피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교리(이론)와 회개(실천)가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두 권의 대작으로 이 주제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원죄론』(1758)에서 그는 원죄의 전가와 본성의 부패를 변증하되, 인류가 아담과 ‘하나’로 묶이는 근거를 하나님의 ‘신적 작정(constitution)’에서 찾는 독특한 논의를 펼쳤다. 『의지의 자유』(1754)에서는 정교한 양립가능론을 전개하였다 — 의지는 언제나 가장 강한 동기를 따르며, ‘자연적 무능’과 ‘도덕적 무능’을 구분함으로써, 무차별적 자기 결정 능력을 주장하는 아르미니우스적 자유의지론을 논파하였다.
에드워즈의 ‘자연적 무능 대 도덕적 무능’은 두 죄수로 그려진다. 한 사람은 쇠창살에 갇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다 — 자연적 무능(의지가 있어도 능력이 없음). 다른 사람은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도, 바깥세상을 너무도 싫어해 결코 나가지 않는다 — 도덕적 무능(나갈 능력은 있으나 나갈 마음이 없음). 에드워즈에게 죄인의 무능은 후자다. 하나님께 나아갈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 의지는 늘 가장 강한 끌림을 따르므로, 마음 자체가 새로워지지 않는 한 죄인은 스스로 돌이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임은 온전히 그에게 있고, 구원은 전적으로 마음을 바꾸시는 은혜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이루셨는가.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지닌 한 인격, 선지자·제사장·왕의 삼중직, 그리고 속죄의 본질과 범위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인격’ 틀은 칼뱅이 놓았고, 그 ‘사역(특히 속죄의 범위)’은 17세기 정통주의가 가장 치열하게 벼린 전장이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체계화하였고(강요 2권 15장),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 연합한다는 정통 기독론을 다듬었다. 그의 독특한 기여는 이른바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이다 — 영원한 로고스(말씀)는 인간 육신에 참되게 ‘담기되’ 그 육신 안에 ‘갇히지’ 않고, 여전히 육신 ‘밖에서도(extra)’ 온 우주를 충만히 다스린다. 다만 속죄의 ‘범위’를 후대처럼 명시적으로 제한하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의 오랜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속죄론에 결정적 족적을 남겼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죽음의 죽음』(1647)은 확정(제한)속죄의 고전적 변증이다 —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가능적으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택자를 위해 ‘실제로, 효력 있게’ 죽으셨다. 누구의 어떤 죄를 위한 죽음이었는지를 따지는 그의 논증은 지금도 인용된다. 『그리스도론』(1679)에서는 그리스도 인격의 영광을 깊이 묵상하였다.
속죄의 ‘만족(satisfactio)’을 정밀하게 변증하였다(『그리스도의 만족론』). 아미로주의의 가정적 보편구원 — 그리스도가 모두를 위해 죽되 택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절충 — 에 맞서 확정속죄를 옹호하였다. 또한 ‘구속언약(pactum salutis)’, 곧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협약을 정형화하여, 그리스도를 택자의 ‘보증인’으로 제시하였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체계적으로 다루되, ‘은혜언약’을 그 틀로 삼아 중보자 그리스도를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제시하였다. 구속의 객관적 사실(그리스도가 무엇을 이루셨는가)과 주관적 적용(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임하는가)을 늘 함께 붙들었다.
그리스도를 ‘탁월함의 존재’로 그렸다. 유명한 ‘그리스도 안의 서로 다른 탁월함들의 놀라운 결합’ — 사자의 위엄과 어린양의 온유가 한 분 안에 공존한다는 묵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구속사』에서 창세부터 종말까지의 모든 역사를 그리스도를 축으로 한 한 편의 드라마로 읽었다. 속죄는 형벌 대속으로 굳게 붙들되, 교리를 늘 ‘감격의 대상’으로 되살렸다.
오웬의 확정속죄는 ‘빚’으로 그려진다. 누군가 당신의 빚을 완전히 대신 갚았다면, 채권자는 같은 빚을 당신에게 다시 청구할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실제로 대신 치르셨다면, 단 한 사람도 그 죄로 다시 정죄받을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멸망하는 자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두를 위한 가능성’이 아니라 ‘택자를 위한 실제 지불’이며, 그 지불은 반드시 그들의 구원을 ‘확정’한다 — 정확히 건너갈 사람들을 위해 놓인 다리처럼.
구원은 어떻게 내 것이 되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효과적 부르심, 칭의와 성화, 신앙과 회개, 그리고 구원의 순서(ordo salutis)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개혁주의 구원론의 한 가지 천재성은 ‘칭의(법적 신분)’와 ‘성화(삶의 변화)’를 분리하지도, 혼동하지도 않는 데 있다. 다섯 사람은 이 균형을 저마다 다른 각도에서 지킨다.
구원론의 뿌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두었다. 신자가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그에게서 칭의와 성화라는 ‘이중 은혜’가 동시에 흘러나온다 —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 법정적 선언이고, 신앙은 그 약속을 붙드는, 성령이 마음에 인친 확실한 지식이다.
칭의의 법정적 성격을 깊이 변증하였다(『이신칭의론』, 1677) —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된다. 동시에 『성령론』(1674)에서 중생·성화에 이르는 성령의 사역을 전 생애에 걸쳐 추적하였다. 일찍이 『성도의 견인론』(1654)으로 한번 참되게 구원받은 자가 끝까지 보전됨을 옹호하였다. 그에게 구원은 법정의 선언이자 평생의 성령론적 여정이다.
칭의를 철저히 법정적으로 정의하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율법을 온전히 지키심)과 ‘수동적 순종’(형벌을 대신 받으심)이 함께 전가된다고 정밀하게 진술하였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라는 언약 구조 위에서 효과적 부르심·칭의·견인을 배열하여,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맞서 구원의 순서를 단단히 못 박았다.
구원의 순서를 체계적으로 배열하되, 특히 중생과 그 경험적 차원에 무게를 실었다(그의 『중생론』은 독립 저작으로도 널리 읽혔다). 칭의·성화·견인 각 단계마다 실천부를 붙여, 교리가 신자의 실제 경건으로 열매 맺게 하였다. 화란 제2종교개혁의 ‘체험적 정통’이 여기서 또렷하다.
『이신칭의』(1738)로 칭의의 정통을 지키면서도, 『신앙감정론』(1746)에서 참된 신앙의 자리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 참 종교는 거룩한 ‘감정(affections)’에 있으며, 회심은 마음에 ‘새로운 영적 감각’이 주입되는 사건이다. 그에게 신앙은 단순한 머리의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직접 맛보는 마음의 새 미각이다. 대각성의 회심 체험을 분별하는 잣대를 세운 것도 이 통찰에서다.
칼뱅의 ‘연합과 이중 은혜’는 접붙임으로 그려진다. 포도나무에 가지를 접붙이면, 그 가지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는다 — 나무의 일원이 되는 새로운 ‘신분’과, 나무에서 흘러드는 ‘수액(생명)’.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순간 신자도 그러하다. 칭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법적 신분)와 성화(그 생명으로 자라가는 변화)를 동시에 받는다. 둘은 구별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 한 나무에 접붙은 가지가 신분과 수액을 따로 떼어 받을 수 없듯이.
교회란 무엇이며, 성례는 무엇을 하는가. 교회의 본질과 표지, 정치 형태, 그리고 두 성례(세례와 성찬)의 의미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다섯 사람 모두 두 개의 성례와 유아세례를 지키며 성찬을 단순한 기념 이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하나지만, 교회의 ‘정치 형태’에서 두 진영으로 갈린다.
교회를 신자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로 불렀다. 참 교회의 표지는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이며, 직제는 목사·교사·장로·집사의 네 직분으로 정돈된다(장로교 정치의 원형). 성찬에 대해서는 ‘영적 임재’를 가르쳤다 —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있으나, 성령이 신자를 들어 올려 그 몸과 피로 참되게 먹이신다. 화체설도, 루터파 편재설도, 단순 기념설도 아닌 제3의 길이다. 세례는 유아에게도 베푼다.
회중교회(독립파) 정치를 택하였다 — 교회는 ‘가시적 성도들’의 자발적 언약 공동체이며, 개교회가 그리스도 아래에서 자율적이다(『복음적 교회의 참된 본질』). 장로교의 상회(上會) 권위에 거리를 두었고, 박해 시대에는 비국교도의 양심의 자유를 변호하였다. 다만 그 역시 유아세례를 지지하였다 — 정치 형태가 회중주의라고 해서 침례파인 것은 아니다.
참 교회의 표지를 변증하고, 로마 교회의 오류 — 특히 교황권 — 를 정밀하게 비판하였다(『로마 교회로부터의 필연적 분리에 관하여』). 성례는 은혜의 ‘표(sign)와 인(seal)’으로 규정하였다. 교회 질서는 개혁교회의 연결체적(노회·총회) 전통을 따른다.
개혁교회론과 성례를 체계적으로 다루되, 늘 그렇듯 실천부를 붙였다. 교회와 성례를 은혜언약의 ‘가시적 표징’으로 읽어, 보이지 않는 은혜가 보이는 공동체와 예식 안에서 어떻게 확증되는지를 밝혔다. 연결체적 개혁교회 질서를 전제한다.
가장 극적인 사건이 여기서 일어난다. 그의 외조부 솔로몬 스토더드는 성찬을 ‘회심을 일으키는 규례’로 보아 사실상 누구에게나 개방하였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완전한 교회 회원권과 성찬에는 참된 신앙의 신뢰할 만한 고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완전한 성찬 자격에 관한 겸손한 탐구』, 1749). 이 입장이 회중과 충돌하여, 그는 1750년 6월 단 한 표 차로 해임되었고, 7월 1일 고별설교를 남긴 뒤 변경의 스톡브리지로 옮겨 인디언 선교사가 되었다. 회중교회 전통 안에서 ‘가시적 성도’ 원칙을 회복하려 한 값비싼 시도였다.
에드워즈의 성찬 논쟁은 ‘시민권’으로 이해하면 또렷하다. 스토더드의 개방 성찬은 국경을 누구에게나 여는 것과 같았다 — 회심 여부를 묻지 않고 식탁에 초대하여, 성찬이 회심을 ‘일으키길’ 기대한 것이다. 당시 뉴잉글랜드에는 ‘중도언약(Half-Way Covenant)’이라는 어정쩡한 준회원 신분까지 있었다. 에드워즈는 완전한 회원권을 ‘충성 서약을 동반한 정식 시민권’으로 보았다 — 신뢰할 만한 신앙 고백 없이는 그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 타협을 거두고 더 엄격한 옛 청교도의 ‘가시적 성도’ 기준으로 돌아가려 하였고, 그 대가로 자기 강단을 잃었다.
마지막 일들 — 죽음, 부활, 최후 심판, 영원한 상태 — 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둘러싼 천년왕국(밀레니엄) 논의가 여기서 다루어진다. 핵심 교리(부활·심판·영생)에는 다섯 사람이 일치하지만, ‘역사가 끝을 향해 어떻게 흘러가는가’라는 전망에서는 절제와 낙관으로 갈린다.
절제된 종말론을 폈다. 몸의 부활, 최후 심판, 영생을 분명히 확언하되 시기와 양상에 관한 사변은 삼갔다. 그는 천년왕국설을 성경의 근거가 없는 ‘허구’로 배격하였고, 초기작 『프시코판니키아』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이 잠든다는 영혼 수면설을 반박하였다.
일정한 천년적 관심을 품었다. 교회의 ‘마지막 날의 영광’과 유대인의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품었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격변에 관해 설교하였다. 종말을 향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후천년적 색채가 그의 설교에 흐른다.
마지막 일들 — 죽음, 부활, 최후 심판, 영원한 상태 — 을 스콜라적으로 정밀하게 다루었다. 천년왕국을 둘러싼 사변에는 거리를 두어, 대체로 무천년적 경향을 보였다. 정통의 표준 종말론을 흔들림 없이 진술한 셈이다.
죽음·부활·심판·영원한 상태라는 표준 개혁주의 종말론을 체계적으로 배열하고, 각 항목에 실천부를 붙였다. 죽음을 기억함으로 오늘을 거룩히 살라는 권면이 그 끝에 놓인다 — 종말론마저 경건의 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다섯 중 가장 뚜렷한 후천년설을 폈다. 『구속사』에서 창세부터 종말까지를 한 편의 구속 드라마로 그렸고, 자신이 목격한 대각성을 천년왕국 시대가 동트는 징조로 읽기도 하였다. 『겸손한 시도』(1748)로 부흥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연합 기도를 호소하였다. 역사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점점 밝아져 마침내 영광에 이른다는 낙관이 그의 종말론을 관통한다.
일곱 주제를 가로질러 보면, 다섯 신학자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삼위일체, 전적 부패, 은혜로만 받는 구원, 그리스도 중심성 — 이 골격에서 다섯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 서론에서 짚은 멀러의 결론, 곧 ‘칼뱅 대 칼뱅주의자’라는 단절론이 과장이라는 평가는 이 비교로도 뒷받침된다. 후대 정통주의의 ‘스콜라주의’는 칼뱅과 다른 신학이 아니라, 같은 신학을 대학 강단의 정밀한 도구로 다듬은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크게 세 축이다. 첫째는 장르와 방법이다. 칼뱅은 인문주의적 명료함을 갖춘 단일 대작(『강요』)을, 튜레틴은 문제마다 정·반을 다투는 변증적 형식을, 마스트리흐트는 주해·교리·논쟁·실천을 한데 묶은 종합을, 오웬은 주제별 심층 논저들을, 에드워즈는 철학적 논고와 부흥 신학을 택하였다. 둘째는 강조점이다. 칼뱅은 연합과 신지식, 오웬은 속죄·성령·죄 죽이기, 튜레틴은 변증적 정밀함과 법정적 칭의, 마스트리흐트는 교리와 경건의 통합,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영광·아름다움·종교적 감정에 무게를 실었다. 셋째는 시대의 적수다. 칼뱅은 로마 교회·재세례파·세르베투스와, 오웬은 아르미니우스주의·소키누스주의와, 튜레틴은 아미로주의·예수회와, 마스트리흐트는 데카르트주의와, 에드워즈는 계몽주의 이신론·아르미니우스주의와 싸웠다. 각자의 신학은 자기 시대가 던진 질문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에드워즈가 유독 도드라지는 까닭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정통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번역’하였다. 스콜라적 라틴어가 아니라 로크의 인식론과 뉴턴적 우주라는 계몽주의의 언어로 개혁주의를 다시 말했고, 그 과정에서 철학적 관념론과 기회원인론 같은 모험을 감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섯 중 가장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이다 — 그의 사상이 정통의 경계 안에 머무는지를 두고 오늘도 토론이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의 1747년 편지로 돌아가 보자. 에드워즈가 튜레틴을 ‘논쟁(변증)의 책’으로, 마스트리흐트를 ‘체계 전체의 책’으로 갈라 평가한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혁주의 신학이 늘 ‘논쟁의 정밀함’과 ‘체계의 통전성’이라는 두 미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왔음을 증언한다. 칼뱅이 그 균형의 원천이라면, 네 후예는 저마다 한쪽 미덕을 극대화한 변주인 셈이다.
| 주제 | 칼뱅 | 오웬 | 튜레틴 | 마스트리흐트 | 에드워즈 |
|---|---|---|---|---|---|
| 서론·성경 | 성령의 내적 증거 | 본문·원어 변증 | 축자영감·모음점 | 주해→교리→논쟁→실천 | 마음의 새 감각 |
| 신론 | 주권·이중예정 | 삼위와의 교제 | 작정·중간지식 거부 | 경륜적 삼위일체 | 영광의 흘러나감 |
| 인간·죄 | 매인 의지 | 내주하는 죄 | 죄책의 직접 전가 | 비참→그리스도 | 양립가능론 |
| 기독론 | 삼중직·엑스트라 | 확정속죄 | 만족·구속언약 | 은혜언약의 성취자 | 탁월함의 결합 |
| 구원론 | 연합·이중 은혜 | 이신칭의·성령 | 능동·수동 순종 전가 | 중생·체험적 순서 | 거룩한 감정 |
| 교회·성례 | 장로교·영적 임재 | 회중주의 | 교황권 비판 | 언약의 표징 | 성찬 자격 논쟁 |
| 종말론 | 절제·반천년왕국 | 마지막 날의 영광 | 무천년적 경향 | 표준 + 실천 | 후천년설 |
참고: 본문의 라틴어·신학 용어는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말로 풀어 옮겼으며, 저작의 출간 연도는 통용되는 판본 기준이다. 칼뱅의 속죄 범위 이해처럼 학계의 해석이 갈리는 지점은 그 사실을 함께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