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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 네트워크 과학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 연결이 만드는 질서와 취약성

무작위 그물에서 척도 없는 세계까지 — 점이 아니라 선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결정한다는 발견, 그리고 그 발견이 인터넷·세포·전염병·경제를 어떻게 다시 쓰게 했는가.

2026년 5월 31일


세상을 이해하려는 오랜 전략은 대상을 잘게 쪼개는 것이었다. 물질을 원자로, 생명을 세포로, 사회를 개인으로 나누어 각 조각의 성질을 규명하면 전체가 설명되리라 믿었다. 이 환원주의(reductionism)는 20세기 과학의 눈부신 성취를 떠받친 기둥이었다. 그러나 조각들을 모두 손에 쥐고도 풀리지 않는 물음이 남았다. 똑같은 단백질을 시험관에 담아도 살아 있는 세포가 되지는 않으며, 뉴런 하나의 작동을 완벽히 안다 해도 의식이 어떻게 떠오르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빠진 것은 부품이 아니라 부품들 사이의 연결이었다.

네트워크 과학(network science)은 바로 그 연결을 정면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 사람, 컴퓨터, 단백질, 기업, 도시 — 구성 요소를 점(node, 노드)으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선(link, 링크)으로 환원하면 하나의 그래프(graph)가 된다. 놀라운 점은 출신이 전혀 다른 시스템들이 이렇게 추상화하고 나면 같은 구조적 규칙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웹 페이지의 연결 방식과 세포 안 분자들의 상호작용 방식, 그리고 사람들의 친분 관계가 수학적으로 닮아 있다. 이 보편성(universality)이야말로 네트워크 과학을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의 과학으로 만든다.

이 분야의 뿌리는 의외로 깊다. 1736년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곱 개의 다리를 모두 한 번씩만 건너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땅과 다리의 구체적 모양을 모두 지우고, 땅덩어리를 점으로 다리를 선으로 바꾼 뒤 그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했다. 대상의 본질을 점과 선의 연결 구조로 환원하는 사고방식, 즉 그래프 이론(graph theory)이 이때 태어났다. 그로부터 거의 3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래프 이론은 수학의 한 갈래로 조용히 자라났고, 20세기 말 컴퓨터와 대규모 데이터가 결합하면서 비로소 현실의 거대한 네트워크들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발견된 것들은 수학자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01우연의 그물: 무작위 네트워크

현실의 복잡한 연결망을 처음으로 수학의 언어로 진지하게 모형화한 것은 1950년대 말 두 헝가리 수학자 폴 에르되시(Paul Erdős)와 알프레드 레니(Alfréd Rényi)였다. 그들의 발상은 단순하고 대담했다. 수많은 점을 흩뿌려 놓고, 임의의 두 점을 정해진 확률에 따라 동전을 던지듯 무작위로 이어 보자는 것이었다. 어느 점이 어느 점과 연결될지에 아무런 규칙도 두지 않는 이 모형을 무작위 네트워크(random network)라 부른다. 설계도 없이 우연만으로 짜인 그물이다.

무작위 네트워크에서 각 점이 가진 연결의 수, 즉 연결선의 개수를 그 점의 연결정도(degree, 차수)라 한다. 연결이 순전히 우연으로 결정되므로 대부분의 점은 평균 부근의 연결정도를 가지며,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 연결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점은 드물다. 연결정도의 분포를 그래프로 그리면 종(鐘) 모양에 가까운 봉우리 하나가 솟은 형태, 수학적으로는 푸아송 분포(Poisson distribution)가 된다. 핵심은 이 분포에 뚜렷한 특성 척도(characteristic scale)가 있다는 점이다. 봉우리의 위치, 곧 평균 연결정도가 그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값으로 기능한다. 사람의 키를 떠올리면 된다. 성인 남성의 키에는 평균이라는 대표값이 있고, 키가 3미터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르되시와 레니가 밝혀낸 가장 인상적인 성질은 연결이 서서히가 아니라 갑자기 완성된다는 사실이었다. 점들을 잇는 확률을 0에서 조금씩 높여 가면 처음에는 작은 조각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평균 연결정도가 1이라는 문턱을 넘는 순간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거의 일시에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묶인다. 이렇게 네트워크 대부분을 빨아들이며 출현하는 단일한 연결 덩어리를 거대 연결 성분(giant connected component)이라 하고, 임계점에서 시스템의 성질이 급변하는 이 현상을 상전이(phase transition)라 부른다. 물이 0도에서 갑자기 어는 것과 같은 종류의 도약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빈 강당에 모인 사람들이 무작위로 한 명씩 손을 잡아 간다고 하자. 처음에는 두세 명짜리 작은 무리만 점점이 생긴다. 한 사람이 평균 한 명과 손을 잡는 수준에 이르는 순간, 흩어져 있던 무리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강당 안 거의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사슬로 연결된다. 악수의 평균 횟수를 아주 조금만 더 늘렸을 뿐인데 '끊긴 군중'이 '이어진 군중'으로 도약하는 것 — 이것이 상전이다. 변화는 점진적이지 않고 문턱에서 폭발한다.

무작위 네트워크 이론은 수십 년간 연결망 연구의 표준 언어였다. 그것은 우아했고, 수학적으로 다루기 쉬웠으며, '복잡한 것은 곧 무작위한 것'이라는 직관에 들어맞았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연구자들이 실제 네트워크들을 대규모로 측정하기 시작하자, 우연의 그물이 예측한 매끈한 봉우리는 어디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현실의 연결망은 훨씬 덜 민주적이었고, 훨씬 더 기묘했다.

02여섯 단계: 세상은 왜 좁은가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하다 뜻밖의 공통 지인을 발견하고 "세상 참 좁다"고 말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흔한 감탄을 처음 과학적 상상으로 옮긴 사람은 1929년 한 헝가리 작가였다. 그는 짧은 소설에서, 지구상의 어떤 두 사람이라도 다섯 명의 지인을 거치면 서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인물의 입을 통해 제시했다. 연결망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의 직관적 통찰이었다.

이 직관을 실험대에 올린 사람은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었다. 1960년대 후반 그는 미국 중서부에 사는 임의의 사람들에게 편지 꾸러미를 주고, 멀리 떨어진 보스턴의 한 특정 인물에게 전달하되 반드시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의 지인에게만 직접 건네라고 요청했다. 편지는 손에서 손으로 건너갔다. 끝까지 도착한 편지들을 추적해 보니, 출발점에서 목표 인물까지 평균 다섯 명 남짓의 중개자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그 유명한 '여섯 단계'(six degrees)라는 표현이 자라났다.

다만 이 실험은 종종 과장되어 인용된다. 출발한 편지 가운데 끝까지 도착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완성된 사슬만을 대상으로 평균을 냈으므로 표본에 치우침이 있었다. 또한 도착한 편지의 상당수가 목표 인물과 가까운 소수의 '연결 허브' 같은 인물들을 거쳐 갔다. 즉 모두가 고르게 가까운 것이 아니라, 소수의 잘 연결된 사람들이 세상을 좁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흥미롭게도 '여섯 단계의 분리'라는 정확한 표현 자체는 밀그램이 쓴 말이 아니라 후대의 한 희곡을 통해 대중에게 각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핵심 발견 — 거대한 연결망의 임의의 두 점 사이 거리가 놀랍도록 짧다는 사실 — 은 이후 수많은 실제 네트워크에서 거듭 확인되었다. 이를 좁은 세상 성질(small-world property)이라 한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좁은가. 1970년대 초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어떻게 얻는지 조사하다 역설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결정적인 정보는 매일 보는 가까운 친구가 아니라, 어쩌다 안부를 묻는 먼 지인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친구들끼리는 정보가 이미 겹쳐 있어 새로울 것이 없는 반면, 느슨하게 이어진 약한 연결(weak tie)은 평소 닿지 않던 다른 집단의 정보를 실어 나르는 다리 구실을 한다.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 불리는 이 통찰은, 끼리끼리 뭉친 작은 무리들을 가로질러 멀리 잇는 소수의 다리가 전체를 하나로 묶는다는 그림을 제시했다.

이 그림을 1998년 두 연구자 던컨 와츠(Duncan Watts)와 스티븐 스트로가츠(Steven Strogatz)가 간결한 수학 모형으로 완성했다. 그들은 모든 점이 가까운 이웃끼리만 규칙적으로 연결된 격자에서 출발했다. 이런 격자는 이웃이 서로의 이웃이기도 한 끈끈한 뭉침은 강하지만, 반대편 끝까지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해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연결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무작위로 끊어 멀리 떨어진 점에 다시 이어 주자, 끈끈한 뭉침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면서도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리가 급격히 짧아졌다. 소수의 지름길 몇 개가 좁은 세상을 만든 것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전국이 마을 단위로만 좁은 길로 촘촘히 이어진 나라를 떠올려 보자. 마을 안은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지만, 반대편 지방까지 가려면 마을과 마을을 끝없이 거쳐야 한다. 이제 여기에 몇 가닥의 고속도로만 멀리 떨어진 도시 사이에 놓아 보자. 동네 골목길은 그대로인데, 나라 전체를 가로지르는 시간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약한 연결은 바로 이 고속도로다.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세상을 좁히는 일은 거의 이들이 도맡는다.

규칙 격자 군집 높음 · 경로 김 좁은 세상 군집 유지 + 지름길로 경로 단축 무작위 연결 경로 짧음 · 군집 낮음
좁은 세상의 탄생. 이웃끼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진 격자(왼쪽)에서 연결 일부만 무작위로 멀리 다시 이으면(가운데) 끈끈한 뭉침은 유지되면서도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리가 급격히 짧아진다. 완전 무작위 네트워크(오른쪽)는 거리는 짧지만 뭉침이 약하다.

03봉우리 없는 세계: 멱법칙과 허브

좁은 세상 모형조차 출발점은 여전히 무작위였다. 연결의 수는 대체로 평균 부근에 모여 있고, 유난히 연결이 많은 점은 없으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1990년대 말 연구자들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웹)의 페이지들이 링크로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대규모로 측정했을 때, 이 전제는 무너졌다. 대부분의 웹 페이지는 링크가 한두 개에 불과했지만, 극소수의 페이지는 수만, 수십만 개의 링크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평균이라는 대표값이 무의미할 만큼 편차가 컸다.

이런 분포를 멱법칙(power law)이라 한다. 연결정도가 k인 점의 비율이 k의 일정한 거듭제곱에 반비례하는 형태로, 무작위 네트워크의 종 모양 봉우리와 달리 봉우리가 없다. 작은 값이 압도적으로 많고, 큰 값으로 갈수록 빈도가 완만하게 줄어드는 긴 꼬리(long tail)가 이어진다. 이 꼬리 끝에 자리한, 비정상적으로 많은 연결을 거느린 소수의 점을 허브(hub)라 부른다. 멱법칙을 따르는 네트워크는 '전형적인 연결 수'라는 특성 척도 자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척도 없는 네트워크(scale-free network)라 불린다.

비유로 이해하기

사람의 키와 재산을 견주어 보자. 키에는 뚜렷한 평균이 있다. 무작위로 1,000명을 모아도 키가 평균의 수십 배인 사람은 없다. 키는 특성 척도를 가진다. 반면 재산은 다르다. 대다수는 평균 근처이지만, 평균의 수천 배, 수만 배를 가진 소수가 실제로 존재하며 이들이 전체 부의 큰 몫을 차지한다. 재산에는 '전형적인 액수'라는 대표값이 없다. 무작위 네트워크의 연결정도가 키를 닮았다면,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연결정도는 재산을 닮았다. 허브는 곧 네트워크의 억만장자다.

0 6 12 18 24 0 6 12 18 24 무작위 네트워크 — 푸아송 분포 척도 없는 네트워크 — 멱법칙 분포 평균 차수 부근에 ‘봉우리’가 있다 긴 꼬리 = 허브 (드물지만 매우 큰 연결) 차수 k = 한 노드의 연결 수 차수 k = 한 노드의 연결 수
두 세계의 연결 분포. 무작위 네트워크의 연결정도는 평균 부근에 봉우리를 이루지만(왼쪽), 척도 없는 네트워크는 봉우리 없이 작은 값이 압도적으로 많고 긴 꼬리를 따라 소수의 허브가 자리한다(오른쪽).

이 비대칭은 우리에게 익숙한 80 대 20 법칙과 같은 결을 가진다. 매출의 80퍼센트가 상위 20퍼센트 고객에게서 나오고, 링크의 대부분이 소수의 페이지에 쏠린다. 두 종류의 네트워크를 나란히 그려 보면 차이는 한눈에 드러난다. 무작위 네트워크에서는 점들의 연결 수가 고만고만해 어느 점도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 반면,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서는 소수의 허브가 수많은 연결을 빨아들이고 나머지 다수는 그 허브에 매달려 있다.

무작위 네트워크 척도 없는 네트워크 (허브 존재)
고른 그물과 쏠린 그물. 무작위 네트워크(왼쪽)에서는 어느 점도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지만, 척도 없는 네트워크(오른쪽)에서는 소수의 허브가 연결을 빨아들이고 다수가 거기에 매달린다.

04부익부 빈익빈: 성장과 선호적 연결

척도 없는 구조가 웹뿐 아니라 인터넷의 물리적 배선, 세포 안 분자들의 상호작용, 학술 논문의 인용 관계 등 곳곳에서 발견되자 자연스러운 물음이 떠올랐다. 출신이 이토록 다른 시스템들이 왜 같은 분포를 공유하는가. 1999년 알베르트라슬로 바라바시(Albert-László Barabási)와 레카 알베르트(Réka Albert)는 그 답으로 두 가지 단순한 원리를 제시했다.

첫째는 성장(growth)이다. 무작위 네트워크 모형은 점의 개수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했지만, 현실의 네트워크는 시간이 흐르며 새 점이 끊임없이 더해진다. 웹에는 매일 새 페이지가 생기고, 학계에는 새 논문이 쌓인다. 둘째는 선호적 연결(preferential attachment)이다. 새로 들어온 점은 아무 점에나 무작위로 붙지 않는다. 이미 연결이 많은 점에 더 높은 확률로 이어진다. 새 웹 페이지를 만드는 사람은 잘 알려진 유명 사이트를 링크할 가능성이 높고, 새 논문은 이미 널리 인용된 논문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다. 연결이 많을수록 새 연결을 더 끌어들이는, 부익부 빈익빈(rich-get-richer)의 동학이다.

이 두 원리를 결합하면 멱법칙이 저절로 솟아난다. 일찍 들어와 약간의 우위를 점한 점은 그 우위 덕에 더 많은 새 연결을 얻고, 늘어난 연결은 다시 더 많은 연결을 부른다. 시간이 흐르면 초기의 작은 차이가 거대한 격차로 증폭되어, 소수의 점이 허브로 자라난다. 별도의 설계자가 허브를 지정하지 않아도, 성장과 선호적 연결이라는 국소적 규칙만으로 척도 없는 전역 구조가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되는 것이다.

비유로 이해하기

낯선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가 저녁 먹을 식당을 고른다고 하자. 정보가 없으니 가장 단순한 단서를 쓴다. 손님이 북적이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 선택이 그 식당을 더 북적이게 만들고, 다음 여행자에게 더 강한 신호가 된다. 처음의 사소한 인기 차이가 시간이 지나며 '늘 줄 서는 맛집'과 '늘 한산한 옆집'의 격차로 벌어진다. 누가 시킨 것도, 음식 맛만의 문제도 아니다. 연결이 연결을 부르는 구조가 스스로 빚어낸 결과다.

① 연결 많은 노드 존재 새 노드 ② 새 노드는 허브에 연결될 확률↑ 새 노드 ③ 허브는 더 커진다 (부익부)
부익부 빈익빈. 새로 들어온 점(초록)은 이미 연결이 많은 점에 더 높은 확률로 이어진다. 연결이 연결을 부르며 초기의 작은 우위가 거대한 허브로 증폭된다.

05적합성: 후발주자가 1위를 빼앗는 법

성장과 선호적 연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 전부라면 가장 먼저 들어온 점이 영원히 1위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늦게 등장한 신참이 기존 강자를 추월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검색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던 한 기업이 먼저 자리 잡은 경쟁자들을 빠르게 밀어내고 정상에 오른 사례가 대표적이다. 단지 일찍 왔다는 이유만으로 승부가 갈리지는 않는다.

2001년 지네스트라 비안코니(Ginestra Bianconi)와 바라바시는 여기에 적합성(fitness)이라는 요소를 더했다. 모든 점이 똑같은 매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점은 본래 더 매력적이고 경쟁력이 높다. 새 점이 어디에 연결될지는 상대의 기존 연결 수뿐 아니라 그 고유한 적합성에도 비례한다. 연결이 적어도 적합성이 높은 신참은 빠르게 연결을 끌어모아 먼저 들어온 평범한 점을 추월할 수 있다. '먼저 온 자'가 아니라 '적합한 자'가 부유해지는(fit-get-rich) 동학이다.

흥미롭게도 이 적합성 모형은 물리학의 한 현상과 수학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진다. 특정 조건에서는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점이 전체 연결의 압도적 비율을 독차지하는 상태가 나타나는데, 이는 극저온에서 다수의 입자가 동일한 최저 에너지 상태로 한꺼번에 응축하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ose-Einstein condensation)에 대응한다. 승자독식(winner-takes-all) 시장이 자연법칙과 닮은 꼴을 공유하는 셈이다. 적합성 모형은 네트워크의 동학에 '품질'이라는 변수를 들여옴으로써, 순위가 고정되지 않고 뒤집힐 수 있는 현실의 역동성을 담아냈다.

06아킬레스건: 견고함과 취약함

척도 없는 구조는 단지 통계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네트워크가 충격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좌우한다. 2000년 한 연구진은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서 점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전체가 언제 무너지는지를 실험했다. 결과는 양면적이었다.

점을 무작위로 골라 제거하는 경우, 네트워크는 놀라울 만큼 끄떡없었다. 상당수의 점을 들어내도 전체의 연결성은 거의 유지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서 점의 절대다수는 연결이 빈약한 평범한 점이므로, 무작위로 집으면 십중팔구 이런 점이 걸린다. 변두리의 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전체 구조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무작위 고장에 대한 견고함(robustness)이다.

그러나 같은 네트워크가 표적 공격(targeted attack)에는 치명적으로 약했다. 연결이 가장 많은 허브부터 골라 제거하자, 불과 몇 개만 들어내도 네트워크는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허브는 수많은 점을 잇는 교차로이므로, 그것이 사라지면 허브에 매달려 있던 경로들이 한꺼번에 끊긴다. 강건함과 취약함이 같은 구조의 양면으로 공존하는 이 성질을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아킬레스건(Achilles' heel)이라 부른다. 우연한 사고에는 강하지만 급소를 노린 공격에는 약하다.

비유로 이해하기

항공망을 떠올려 보자. 수백 개의 작은 지방 공항과, 수많은 노선이 모이는 소수의 대형 허브 공항이 있다. 어느 한적한 지방 공항이 폭설로 폐쇄되어도 전국의 항공 여행은 거의 차질이 없다. 그러나 인천이나 애틀랜타 같은 거대 허브 공항 몇 곳이 동시에 마비되면 전 세계 노선이 도미노처럼 멈춘다. 같은 항공망이 작은 고장에는 무덤덤하고 허브의 마비에는 속수무책인 것 —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견고함과 취약함은 정확히 이 모습이다.

무작위 고장 — 주변 노드 제거 전체 연결 유지 표적 공격 — 허브 제거 네트워크 붕괴
강건함과 취약함의 양면. 변두리의 점을 무작위로 잃어도 네트워크는 연결을 유지하지만(왼쪽), 허브를 표적으로 제거하면 소수만 잃어도 전체가 조각난다(오른쪽).

현실의 위험은 여기서 한층 복잡해진다. 서로 다른 기반시설들이 의존 관계로 얽혀 있을 때, 한쪽의 붕괴가 다른 쪽의 붕괴를 부르고 그것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연쇄 고장(cascading failure)이 일어날 수 있다. 전력망이 멈추면 통신망이 멈추고, 통신이 끊기면 전력망의 제어가 다시 마비되는 식이다. 서로 의존하는 네트워크들은 각각으로는 견고해 보여도 결합되면 한 점의 작은 고장이 전면적 붕괴로 증폭되는 새로운 취약성을 드러낸다. 대규모 정전이 종종 사소한 설비 하나의 이상에서 시작되어 광역을 삼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07확산: 바이러스·유행·정보

네트워크의 구조는 그 위에서 무언가가 퍼지는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바꾼다. 전염병, 컴퓨터 바이러스, 소문, 유행은 모두 연결을 타고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번진다. 따라서 그것이 어떻게 확산되는가는 연결망의 모양에 달려 있다.

전통적인 전염병 모형은 임계 문턱(epidemic threshold)이라는 개념을 핵심에 둔다. 병의 전파력이 일정 문턱을 넘어야 대규모 유행으로 번지고, 그에 못 미치면 몇 사람을 감염시키다 저절로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백신이나 방역의 목표는 전파력을 이 문턱 아래로 끌어내리는 데 있다. 그런데 2001년 두 연구자가 밝혀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 위에서는 이 임계 문턱이 사실상 사라진다. 전파력이 아무리 약한 병원체라도 일단 들어오면 좀처럼 완전히 박멸되지 않고 네트워크 안에 머무를 수 있다.

원인은 다시 허브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에는 엄청나게 많은 상대와 연결된 소수의 점이 존재하고, 이들이 일단 감염되면 한꺼번에 수많은 점에 병을 옮기는 초전파자(super-spreader)가 된다. 허브가 확산의 증폭기 역할을 하는 한, 약한 병원체도 명맥을 유지하며 퍼져 나간다. 이 통찰은 감염병뿐 아니라 컴퓨터 바이러스가 왜 그토록 끈질기게 인터넷에 잔존하는지도 설명한다.

그러나 같은 구조가 해법의 열쇠이기도 하다. 모두를 백신 접종하기 어렵다면, 연결이 많은 허브를 우선 보호하는 표적 면역(targeted immunization)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이다. 허브 몇 곳만 확산의 고리에서 떼어 내도 전체 전파가 급격히 꺾인다. 누가 허브인지 일일이 알기 어려울 때는, 임의의 사람을 고른 뒤 그가 지목하는 지인을 대신 접종하는 우회 전략도 통한다. 무작위로 고른 사람의 지인은 평균적으로 그 사람 자신보다 연결이 많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약점이 곧 방어의 지렛대가 된다.

비유로 이해하기

산불을 떠올려 보자. 평범한 나무 한 그루에 붙은 불은 주변 몇 그루만 태우고 잦아들 수 있다. 그러나 사방으로 가지가 뻗어 수많은 나무와 맞닿은 거대한 고목에 불이 옮겨붙으면, 불은 그 한 그루를 발판으로 숲 전체로 번진다. 방화선을 칠 때 모든 나무 사이를 다 끊을 수는 없다. 가장 많은 나무와 닿아 있는 그 고목들 둘레만 끊어도 산불의 기세는 꺾인다. 초전파자는 숲의 고목이고, 표적 면역은 그 둘레에 치는 방화선이다.

08현실의 지도들: 웹·세포·기반시설

이론이 다듬어지는 동안, 연구자들은 실제 네트워크의 지도를 하나씩 그려 나갔다. 그 지도들은 추상적 모형이 현실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또 어디서 어긋나는지를 보여주었다.

웹은 가장 먼저 측정된 거대 네트워크였다. 페이지를 점으로, 한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향하는 링크를 방향이 있는 선으로 보면, 웹은 단순한 그물이 아니라 방향성을 가진 독특한 구조를 드러냈다. 서로 오갈 수 있는 거대한 중심 덩어리가 있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기만 하는 페이지들의 무리와 중심에서 나오기만 하는 페이지들의 무리가 양옆에 붙은, 나비넥타이(bow-tie)를 닮은 모양이었다. 어느 페이지에서 어느 페이지로 클릭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지가 이 구조에 따라 갈린다.

웹을 떠받치는 물리적 기반인 인터넷, 즉 라우터와 회선의 배선 또한 멱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이 비슷한 시기에 밝혀졌다. 논리적 공간인 웹과 물리적 배선인 인터넷이 모두 척도 없는 성질을 공유한 것이다. 이는 척도 없는 구조가 특정 매체의 우연이 아니라 성장하는 연결망의 일반적 귀결임을 시사했다.

가장 의외의 발견은 생명 안에 있었다.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들의 연결망, 곧 물질대사 네트워크(metabolic network)를 그렸더니 그것 역시 소수의 핵심 분자가 허브로 작동하는 척도 없는 구조였다.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하는 관계망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났다. 수십억 년의 진화가 빚어낸 생명의 화학이, 인간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든 웹과 같은 조직 원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보편성의 가장 극적인 증거였다. 이 관점은 훗날 질병을 단일 유전자의 고장이 아니라 연결망의 교란으로 이해하는 시각으로 이어진다.

그 밖에도 뇌의 신경 연결망, 전력망, 항공 노선망, 인용 네트워크, 사회관계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실 시스템이 좁은 세상 성질과 두터운 꼬리를 가진 연결 분포를 보였다. 점과 선이라는 단순한 추상이 이토록 다양한 세계를 가로질러 통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09정말 모두 척도 없는가: 성숙한 논쟁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자칫 모든 현실 네트워크가 척도 없는 구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합의가 아니라 검증으로 나아간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널리 퍼지면서, 그 보편성 주장 자체를 엄밀히 따져 보려는 흐름이 일어났다.

2019년 두 연구자가 약 1,000개에 이르는 실제 네트워크를 모아 통계적으로 점검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의 결론은 도발적이었다. 엄격한 통계 기준을 적용하면 명확히 척도 없다고 분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많은 경우 멱법칙 대신 로그정규분포(log-normal distribution) 같은 다른 분포가 데이터를 더 잘, 혹은 비슷하게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멱법칙처럼 보이는 두터운 꼬리가 반드시 진짜 멱법칙은 아니며, 비슷하게 생긴 다른 분포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주장은 거센 논쟁을 불러왔다. 한쪽에서는 통계 검정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질적으로 척도 없는 성질을 가진 네트워크까지 배제한다고 반박했고, 다른 쪽에서는 데이터에 근거한 분류를 더 엄밀히 해야 한다고 맞섰다. 측정의 불완전함, 유한한 크기에서 오는 왜곡, 분포를 판정하는 방법론의 차이가 모두 쟁점이 되었다. 물리학자와 통계학자의 시각차가 선명하게 드러난 토론이었다.

완벽한 멱법칙인지 그와 닮은 다른 분포인지를 가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연결망이 무작위와는 거리가 먼 강한 비균질성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양측이 다투지 않는다.

이 논쟁은 네트워크 과학의 결함이 아니라 성숙의 신호로 읽는 편이 옳다. 초창기의 통일된 그림은 강력한 출발점이었지만, 현실은 그보다 다채롭다. 어떤 네트워크는 또렷한 허브를 가진 척도 없는 구조이고, 어떤 것은 그보다 균질하며, 또 어떤 것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하나의 만능 법칙을 모든 시스템에 강요하는 대신, 각 네트워크가 어떤 구조를 가지며 그것이 그 시스템의 기능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정교하게 따지는 단계로 분야가 나아간 것이다. 풍부한 구조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후퇴가 아니라 진전이다.

10확장하는 지형, 그리고 남는 물음

오늘날 네트워크 과학은 척도 없는 네트워크라는 출발점을 훌쩍 넘어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몇 갈래만 짚어 본다.

하나는 공동체 탐지(community detection)다. 큰 네트워크 안에는 서로 더 촘촘히 얽힌 무리들이 숨어 있다. 이 무리를 찾아내면 사회관계망의 집단, 단백질의 기능 단위, 학문 분야의 경계를 데이터로부터 드러낼 수 있다. 또 하나는 시간에 따라 연결이 생기고 사라지는 동적 네트워크(temporal network)다. 연결을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시시각각 바뀌는 흐름으로 다루면, 확산과 정보 전파를 훨씬 현실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

현실의 시스템이 여러 층의 네트워크가 겹쳐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다층 네트워크(multilayer network)도 활발하다. 같은 사람들이 통화망·교통망·금융망에 동시에 참여하듯, 층과 층의 상호작용은 단일 네트워크로는 보이지 않던 위험과 기능을 드러낸다. 앞서 본 연쇄 고장도 이 틀에서 더 정확히 이해된다. 나아가 둘이 아니라 셋 이상이 동시에 맺는 관계, 즉 고차 상호작용(higher-order interaction)을 담는 도구들도 등장했다. 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만 일어나는 일은 두 사람씩 쪼갠 연결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연결의 구조를 아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원하는 상태로 이끌 수 있는가를 묻는 네트워크 제어(network controllability) 연구도 있다. 흥미롭게도 시스템 전체를 조종하기 위해 반드시 눌러야 하는 핵심 점들이, 직관과 달리 연결이 가장 많은 허브가 아니라 변두리의 점들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결망을 이해하는 것과 통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 모든 흐름이 가장 깊이 스며든 영역 가운데 하나가 의학이다. 질병을 유전자 하나의 결함이 아니라 분자 연결망의 교란으로 보는 네트워크 의학(network medicine)은, 여러 질병이 공유하는 연결망 모듈을 찾고 기존 약을 새 질병에 다시 쓰는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의 단서를 제공한다. 한편 데이터로부터 연결망의 패턴을 학습하는 그래프 신경망(Graph Neural Network)은 분자 구조에서 약효를 예측하거나 추천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등, 네트워크적 사고를 인공지능과 결합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자. 부분을 모두 안다고 전체를 아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과학이 보여준 것은, 연결의 구조 그 자체가 시스템의 행동을 — 그것이 얼마나 좁은지, 무엇에 강하고 무엇에 약한지, 그 위에서 무엇이 어떻게 퍼지는지를 — 깊이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점이 아니라 점들 사이의 선이 질서와 취약성을 함께 빚어낸다.

다만 연결의 지도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같은 구조 위에서도 점들이 무엇을 주고받는지, 각 점이 어떤 고유한 성질을 지니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구조는 강력한 렌즈이되 유일한 렌즈는 아니다. 세상을 연결로 바라보는 시선은, 부분으로 쪼개는 오랜 전략이 놓쳤던 절반을 비로소 시야에 들여놓는다. 나머지 절반과 그 둘이 맞물리는 방식은, 여전히 열려 있는 물음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