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 기술과 사회
지식이 흔해질 때, 비싸지는 것들
AI가 정보를 거의 공짜로 만드는 시대에 가치는 어디로 이동하는가. 가속하는 곡선, 인과(因果)의 사다리, 기술과 수용 사이의 시차, 그리고 관계라는 프리미엄 자산에 관하여.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 질문은 조금씩 빗나간다. 어떤 도구를 익혀야 하느냐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무엇의 값이 떨어지고, 무엇의 값이 오르는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정보의 생산과 검색과 요약을 거의 공짜로 만들고 있는 지금, 가치의 지형 자체가 뒤집히고 있다. 이 글은 그 지형을 일곱 개의 좌표로 따라가며 흔해지는 것과 비싸지는 것을 갈라 본다.
01가속하는 곡선: 우리는 지금 어디쯤인가
기술의 발전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생각은 새롭지 않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이를 '수확 가속의 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이라 불렀다. 정보기술의 성능이 일정한 비율로 거듭 두 배가 되며, 그 결과 발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팔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 수준의 범용 지능이 2029년 무렵 등장하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특이점(singularity)'이 2045년경 도래한다고 예측해 왔다.
이 예측을 두고는 회의도 만만치 않다. 의식과 두뇌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얕은 상태에서 그런 시점을 못박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는 비판이다. 곡선이 영원히 같은 기울기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예측의 정확한 연도를 떠나, 곡선이 직선보다 빠르게 휘어 오른다는 골격만큼은 지난 몇 해의 경험이 거듭 확인해 주었다.
AI의 발전 단계는 흔히 세 칸으로 나뉜다. 첫째는 좁은 인공지능(ANI, 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이다. 바둑이나 번역처럼 특정한 과제 하나를 인간 이상으로 해내지만 그 바깥은 다루지 못한다. 우리가 지금 쓰는 거의 모든 AI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간만큼 폭넓게 배우고 판단하는 단계다. 셋째는 초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이며, 사실상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가리킨다. 지금까지의 기술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데 머물렀다면, 이 곡선의 끝점이 겨냥하는 것은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불안이 번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수 곡선과 세 단계. 곡선의 평평한 구간은 길고 더디게 느껴지지만, 끝으로 갈수록 기울기가 급격히 솟는다. 오늘의 AI는 대체로 ANI 구간에 있다.
지수 성장은 직관을 자주 배신한다. 연못에 수련이 한 잎 떠 있고, 그 면적이 하루에 두 배씩 늘어 30일째에 연못을 가득 덮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연못의 절반이 덮이는 날은 며칠째일까. 답은 15일이 아니라 29일이다. 마지막 단 하루 만에 절반에서 전부로 뛴다. 변화가 '갑자기' 닥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곡선의 평평한 구간이 길어 우리가 그동안 방심하기 때문이다.
02지식이라는 자산의 평가절하
곡선이 가팔라지면서 가장 먼저 값이 떨어지는 자산이 있다. 지식이다. 정확히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의 프리미엄이다.
오랫동안 전문성은 곧 희소성이었다. 어떤 사실을 알고, 어떤 절차를 외우고, 어떤 자료가 어디 있는지를 기억하는 능력은 그 자체로 값이 나갔다. 그러나 묻는 즉시 정리된 답이 돌아오고 그 한계비용이 0에 가까워지는 환경에서는, '인출 가능한 지식'의 시장 가격이 빠르게 내려간다. 흔해진 것은 싸지는 법이다.
여기서 성급한 결론으로 건너뛰기 쉽다. "그러니 사람은 쓸모가 없어진다." 그러나 흔해지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희소해지는 것도 있다. 값이 어디서 떨어지는지를 알면 값이 어디로 옮겨가는지도 보인다. 이어지는 네 개의 절은 그 이동의 방향을 가리킨다. AI가 구조적으로 약한 영역, 기술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시차, 정보 과잉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희소재, 그리고 그 모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학습의 기술이다.
03AI의 구조적 맹점: 인과(因果)
오늘의 AI가 가장 약한 곳은 의외로 단순한 질문 앞에서다. "왜?" 그리고 "만약 다르게 했다면?"
통계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인 주디아 펄(Judea Pearl)은 인과적 사고를 세 칸의 사다리로 정리했다. 가장 아래 칸은 '연관(association)'이다. 무엇과 무엇이 함께 나타나는가를 본다. X를 관찰했을 때 Y일 확률, 곧 상관을 다루는 단계다. 가운데 칸은 '개입(intervention)'이다. 내가 X를 일부러 바꾸면 Y가 어떻게 되는가를 묻는다. 맨 위 칸은 '반사실(counterfactual)'로,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를 상상한다.
펄은 오늘의 대형 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이 대체로 첫째 칸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방대한 데이터에서 통계적 규칙을 잡아내는 데는 탁월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지도'를 정교하게 그리는 일이지 '영토' 자체를 다루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관은 인과가 아니다. 두 현상이 나란히 움직인다고 해서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원인을 가려내려면 관찰만으로는 부족하고, 개입해 보거나 반사실을 따져 보아야 한다. 데이터 안에 답이 적혀 있지 않은 한, 통계적 근사만으로는 이 위 칸에 오르기 어렵다.
인과의 사다리. 오늘의 언어모델은 대체로 1단(연관)에 머문다. 2·3단으로 오르려면 관찰을 넘어 개입과 반사실을 다루어야 한다.
여기에는 정직한 균형추가 필요하다. 사람도 인과를 자주 틀린다. 성공한 사례만 보고 "성공한 이를 따라 하면 된다"고 믿는 생존 편향, 어떤 일이 다른 일 직전에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인과를 단정하는 시간 근접의 오류는 모두 상관을 인과로 착각하는 실수다. 그러니 인과적 판단은 사람이라고 거저 얻는 능력이 아니라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값이 오르는 영역이 된다. 흔한 정보를 인출하는 일은 기계에 맡기더라도, 그 정보들 사이의 원인과 결과를 엮어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매일 새벽 수탉이 울고, 곧이어 해가 뜬다. 둘은 거의 완벽하게 함께 나타난다(연관). 그러나 수탉을 가두어 울지 못하게 해도(개입) 해는 뜬다. 만약 그날 밤 수탉이 깨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반사실)를 떠올려 보면, 수탉의 울음이 일출의 원인이 아님이 분명해진다. 상관만 보면 둘은 떼어 놓을 수 없지만, 인과를 물으면 둘은 단번에 분리된다.
04기술과 수용 사이의 시차
기술이 지수적으로 휘어 올라도,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전혀 다른 곡선을 그린다.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가 정리한 '혁신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s)'은 채택자를 다섯 무리로 나눈다. 가장 먼저 뛰어드는 혁신가와 초기 수용자, 그 뒤를 잇는 전기 다수와 후기 다수, 그리고 맨 끝의 지각 수용자다. 이들이 차례로 합류하며 채택률은 완만한 S자 곡선을 그린다. 기술 전략가 제프리 무어(Geoffrey Moore)는 초기 수용자와 전기 다수 사이에 깊은 골이 있다고 보고 이를 '캐즘(chasm)'이라 불렀다. 새로움에 열광하는 소수와, 검증된 것만 받아들이는 실용적 다수 사이의 간극이다.
구체적인 숫자가 이 시차를 보여 준다. 한 전기차 회사의 운전 보조 기능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차선 변경과 시내 주행을 해내지만, 2025년 말 기준 전체 차량 가운데 그 기능에 실제로 비용을 지불하는 사용자는 대략 12퍼센트 안팎에 머물렀다. 고가 모델에서는 절반을 넘기도 했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기술을 믿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습관을 바꾸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두 겹의 곡선. 능력은 가파르게 솟지만, 수용은 신뢰가 쌓이는 속도만큼 더디게 따라온다. 둘 사이의 벌어진 틈이 곧 기회의 자리다.
핵심은 이 시차가 '예측 가능한' 영역이라는 데 있다. 곡선의 모양은 거듭 관찰되어 왔고, 무엇이 채택을 앞당기는지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기존보다 분명히 나은가, 기존 습관과 잘 맞는가, 시험해 보기 쉬운가, 그 효용이 남들 눈에 보이는가. 그래서 우리가 지금 그릴 수 있는 지도는 두 겹이다. 기술이 어디까지 갈지를 그린 지도 위에, 사람들이 그것을 언제쯤 받아들일지를 겹쳐 놓는 것이다. 두 곡선이 벌어진 그 틈 안에 기회가 있다.
새 고속도로가 뚫려도 한동안은 옛길로 다니는 차가 더 많다. 길이 빠르다는 사실과, 운전자가 그 길을 믿고 핸들을 꺾는 일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길은 하루아침에 깔리지만, 길에 대한 신뢰는 한 사람씩 천천히 쌓인다. 기술의 도입과 기술의 수용 사이에 늘 시차가 생기는 것은 바로 이 신뢰의 속도 때문이다.
05흔해진 정보 속에서 비싸지는 것: 관계와 맥락
정보가 흔해질수록 거꾸로 값이 오르는 자산이 있다. 신뢰, 관계, 그리고 맥락이다.
검색창에 무엇이든 치면 답이 쏟아지는 시대에는, 정작 "그 많은 답 가운데 무엇을 믿을 것인가"가 어려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보 그 자체보다 '누가 그것을 말했는가'에 기댄다. 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73퍼센트, 밀레니얼 세대의 57퍼센트가 구매를 결정할 때 자신이 신뢰하는 창작자의 말을 참고한다고 답했다. 이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 관계를 쌓아 만들어진다.
이른바 크리에이터 경제는 2025년 기준 약 2,0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며, 2030년대 초에는 그 네 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목할 대목은 성장의 무게중심이 거대 플랫폼의 노출 경쟁에서 '커뮤니티'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회사나 학교 같은 기존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이고, 그 안에서 함께 배우고 거래하며 서로를 돕는 새로운 형태의 결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알고리즘 위주로 흐르면서 정작 '사회적인' 면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그 빈자리를 더 좁고 깊은 공동체가 메우고 있다.
여기서 '관계'는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곧 신뢰 자본이다. 다른 하나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 곧 맥락 자본이다. 어떤 분야의 무수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사실들이 어떻게 얽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를 꿰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앞의 것은 점점 흔해지고, 뒤의 것은 점점 귀해진다. 한 주제를 오래 파고들어 그 안의 인과 구조를 손에 쥔 사람은, 정보가 흔한 시대일수록 오히려 더 큰 값을 가진다.
값의 역전. 정보가 풍요로워질수록 '인출하면 되는 지식'의 값은 내려가고, 그것을 신뢰로 묶어 주는 관계·맥락의 값은 올라간다.
소비의 방식도 이를 따라 바뀐다. 예전에는 무언가가 필요하면 검색을 했다. 이제는 한 번 보고 곧장 사는 일이 점점 드물다. 대신 어떤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특정한 사람이나 공동체가 자연스레 연상되도록, 머릿속에 '맥락의 연결'을 만들어 둔 쪽이 선택을 받는다. 흔해진 것은 정보이고, 희소해진 것은 그 정보를 신뢰로 묶어 주는 관계다.
세상의 모든 책이 한 건물에 다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책이 흔할수록, 어떤 책을 펴야 하는지 일러 주는 사서의 값이 오른다. AI는 인류가 쌓은 거대한 도서관을 거의 공짜로 열어 주었다. 그럴수록 희소해지는 것은 책(정보)이 아니라, 그 안에서 길을 잡아 주는 안내자, 곧 신뢰할 수 있는 관계다.
06언러닝: 낡은 지도를 버리는 법
가치가 이동한다면, 그 가치를 좇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배우는 방법' 그 자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1970년 저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에서 심리학자 허버트 거주오이(Herbert Gerjuoy)의 통찰을 빌려,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learn), 버리고(unlearn), 다시 배우지(relearn) 못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반세기 전에 나온 이 말이 지금처럼 또렷하게 들리는 시대도 드물다.
여기서 가운데 단계, 곧 '버리기'가 핵심이다. 경영학자 보 헤드버그(Bo Hedberg)는 1981년 조직이 학습하는 만큼 '폐기(unlearning)'도 한다고 보았다. 낡고 잘못된 지식을 떨어내는 과정 없이는 새 지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사람의 머릿속에서 지식이 문자 그대로 '삭제'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우리가 옛 지식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덮어쓸 새 지식을 익힐 뿐이며 '언러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소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개념의 엄밀함을 떠나, 받아들인 상식을 영구불변의 것으로 떠받들지 않는 태도라는 실천적 의미만큼은 분명하게 남는다.
이를 세 박자로 풀면 이렇다. 먼저 언러닝은 낡은 지도를 버리는 일이다. 알고 있던 지식·상식·정의·공식을,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일단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리러닝(relearning)은 본질을 다시 보는 일이다. 낡은 지도를 내려놓고 지형을 새로 살피면, 예컨대 '나이는 노화가 아니라 데이터의 축적'이라는 식으로 같은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정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뉴러닝(new-learning)은 그렇게 다시 본 본질을 지금 시대의 도구와 엮어, 이전에 없던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 내는 단계다.
버리고, 다시 보고, 새로 엮는다. 세 단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고리처럼 되풀이된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지도를 다시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왜 굳이 버려야 하는가. 우리가 정설로 받아들이는 지식의 상당수는 그것이 통하던 시절에는 옳았다. 문제는 환경이 그 지식보다 빠르게 변한다는 데 있다. 어떤 발견이 학계와 사회에서 '상식'으로 굳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그사이 세상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 있다. 기본 원리는 유지하되 그것을 신봉할 이유는 없다는 균형 감각이, 빠르게 휘어 오르는 곡선 위에서는 더욱 절실해진다.
우리는 어릴 때 가위는 보를 이긴다고 배웠다. 천으로 된 보를 가위가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자기의 재질이 탄소 섬유로 바뀌었다고 해 보자. 평범한 가위로는 더 이상 잘리지 않는다. 재료가 달라지는 순간, '가위가 보를 이긴다'는 규칙의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익숙한 규칙을 그대로 외운다. 언러닝은 결론을 새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이 깔고 있던 전제가 아직 유효한지를 되묻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두 가지 움직임이 도움이 된다. 첫째는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서 제3자의 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회적 관점에서, 또는 바깥의 눈으로 바라보면 자신이 안다고 믿던 것의 빈틈이 드러난다. 배운다는 것은 결국 자기 관점을 타인의 관점이나 사회의 관점으로 갈아 끼우는 일에 가깝다. 둘째는 자기 지식이 적용되는 영역을 계속 넓혀 가는 것이다. 한자리에 멈춰 있으면 지식은 점점 시대와 어긋나지만, 분야를 옮겨 가며 본질을 다시 적용해 보는 사람의 지도는 끊임없이 갱신된다.
07역발상의 항법: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쥘 것인가
버릴 것을 가려냈다면, 이제 어디로 갈지를 정해야 한다. 교과서와 강연이 가르치는 전략의 상당 부분은 이미 모두가 아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지도를 들고 같은 길로 행군하면, 그 길에서의 우위는 사라진다. 투자자 피터 틸(Peter Thiel)은 사람을 가늠하는 질문으로 "아주 소수만이 당신에게 동의하는, 중요한 진실은 무엇인가"를 즐겨 던진다. 핵심은 단순히 다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옳아야 한다. 역발상이란 군중의 반대편에 서는 자세가 아니라, 군중과 무관하게 스스로 사고하고 그 판단이 맞아떨어지는 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방향은 어떻게 잡는가. 한 가지 방법은 세 개의 시간 좌표를 동시에 읽는 것이다. 1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3년 뒤에는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3개월 안에 무엇이 달라질지를 각각 가늠한 다음, 그 세 점을 잇는 선을 따라 움직인다. 먼 미래는 방향을 주고, 가까운 미래는 당장의 행동을 정한다.
여러 좌표로 위치를 잡는다. 한 점만 보면 길을 잃기 쉽다. 먼 미래와 가까운 미래를 함께 읽어야 지금 어디로 발을 디딜지가 또렷해진다.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은 하나의 신호만으로는 위치를 정하지 못한다. 보통 네 개 이상의 위성에서 오는 신호를 동시에 받아, 여러 거리를 교차시켜 비로소 내가 선 자리를 계산한다. 진로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시간 척도만 들여다보면 방향을 잃지만, 여러 시간 좌표를 함께 교차시키면 지금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가 드러난다.
마지막 물음이 남는다. 이 모든 일에서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직접 쥘 것인가. AI가 건네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인터넷에 흩어진 정보의 평균에 가깝다. 자료를 찾고, 요약하고,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넘겨도 좋다. 그러나 문제를 정의하고,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고, 남들이 떠올리지 않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는 영역까지 넘겨 버리면, 결국 모두의 결과물이 비슷해지고 자기만의 사고와 철학이 사라진다. 모두가 같은 전략과 같은 지식으로 판단을 내리면 누구의 답도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여기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르는 선이 중요해진다. 이기주의는 그저 자기에게 좋은 것을 좇지만, 개인주의는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높은 가치를 좇는다. AI에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 '무엇이 가장 할 만한 일인가'에 대한 판단이며, 그 판단이야말로 평균을 넘어서는 사람과 평균에 묻히는 사람을 가른다.
맺음어떤 기술이 아니라, 어디에 설 것인가
곡선은 점점 가팔라지고, 지식의 값은 내려간다. 그럴수록 값이 오르는 것은 신뢰로 묶인 관계, 원인과 결과를 읽어 내는 감각, 받아들인 상식을 제때 버리는 용기, 그리고 평균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 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의 목록을 외우느냐가 아니라, 흔해지는 것과 비싸지는 것 사이에서 자신이 어디에 설 것이냐다. 도구는 빠르게 낡지만, 어디에 서 있을지를 아는 사람의 자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