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obhan.me

국제경제 심층 보고서

차이나 스퀴즈

멈춰 선 기러기 편대와 사라진 성장 사다리

첨단 인공지능과 전기차를 만드는 나라가 양말과 지퍼까지 계속 만들고 있다. 가난한 나라가 부유해지는 가장 검증된 경로였던 '노동집약 제조업 → 산업 고도화'의 사다리를, 지금 중국이 위아래 칸 모두에서 붙잡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26년 발표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연구와 국제로봇연맹의 최신 통계를 바탕으로, '차이나 스퀴즈(China Squeeze)'라 불리는 이 현상의 구조와 수치, 그리고 개발도상국과 세계 경제에 갖는 함의를 정리한다.

2026년 6월 · 국제무역 · 산업정책 · 개발경제

I.들어가며: 옷 한 벌의 역설

최근 몇 년간 의류 무역 통계에는 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인건비가 오른 중국을 떠나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로 봉제 공장을 옮기면서, 통관 기준으로 집계한 중국산 완제품 의류의 세계 수출 점유율은 201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분명히 내려갔다. 겉으로 보면 '탈중국'이 진행되고, 후발 개발도상국들이 그 자리를 채워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옷 한 벌을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단과 실, 단추와 지퍼, 봉제에 쓰이는 재봉기와 염색 설비까지, 완제품 안에 녹아 있는 원자재·중간재·자본재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중국에서 온다. 누가 마지막 바느질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옷의 가치가 실제로 어느 나라의 노동과 자본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따져 계산하면, 중국의 몫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 베트남 라벨이 붙은 티셔츠의 속살은 상당 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인 셈이다.

2026년 5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가 발표한 연구는 이 역설을 정면으로 다룬다. 존스홉킨스대의 쇼미트로 채터지와 PIIE의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은 중국이 부유한 기술 강국이 된 뒤에도 의류·신발 같은 저숙련 수출 시장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가난한 나라들이 산업화에 쓸 수 있는 공간을 압착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 현상에 '차이나 스퀴즈(China Squeez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압착이 왜 문제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지난 70년간 동아시아의 성장을 설명해 온 한 가지 모델에서 출발해야 한다.

II.안행형 발전 모델: 기러기 편대의 경제학

기러기 떼는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V자 대형으로 난다. 일본 경제학자 아카마쓰 가나메(赤松要)는 1930년대에 이 모습에 빗대어 후발국 산업화의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고, 1962년 영문 논문으로 정리된 이 이론은 '안행형(雁行形) 발전 모델', 영어로는 플라잉 기스 패러다임(Flying Geese Paradigm)으로 불리게 됐다. 1985년 오키타 사부로 전 일본 외무상이 국제 무대에서 이 모델을 소개하면서 동아시아 성장을 설명하는 표준 서사로 자리 잡았다.

논리는 간명하다. 가장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선두 기러기, 즉 일본이 기술과 자본을 축적하면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섬유·의류·신발 같은 노동집약 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일본은 자동차·전자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노동집약 산업을 뒤따라오는 다음 열의 기러기에게 넘겨준다. 1970~80년대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성장했고, 이들 역시 소득이 오르자 같은 산업을 다시 중국에 넘겼다. 한국이 일본에서 섬유와 조선, 자동차 조립 기술을 배워 와 결국 일본과 경쟁하는 제조 강국으로 올라선 과정이 이 모델의 교과서적 사례다.

노동집약 산업의 릴레이: 정상 시나리오와 현재 일본 1세대 선두 기러기 한국 · 대만 · 홍콩 · 싱가포르 2세대 (1970~80년대) 중국 3세대 (1990년대~) 베트남 · 방글라데시 · 인도 … 바통을 기다리는 후발 주자 산업 이양 산업 이양 이양 중단 — 바통이 멈춘 지점
그림 1. 안행형 발전 모델의 산업 이양 릴레이. 선두가 임금 상승과 함께 노동집약 산업을 비워 주면 후발국이 그 자리를 채우며 성장 사다리를 오른다. 일본 → 아시아 네 마리 용 → 중국까지는 시나리오대로 작동했으나, 중국에서 다음 주자로 가는 마지막 구간이 멈춰 있다.
비유 박스 안행형 모델은 계주 경기에 가깝다. 첫 주자가 자기 구간을 다 뛰면 바통을 넘기고 트랙에서 빠져 줘야 다음 주자가 달릴 수 있다. 지난 70년간 동아시아 경제는 실제로 이렇게 굴러갔다. 그런데 지금은 3번 주자가 자기 구간을 다 뛰고 새 구간(첨단산업)까지 치고 나가면서도, 이전 구간(저숙련 제조업)의 바통을 손에서 놓지 않는 상황이다. 4번 주자는 출발선에서 기다리는데 바통이 오지 않는다.

이 모델의 핵심은 단순한 '추격'이 아니라 선행국이 자리를 비워 주는 선순환에 있다. 부유해진 나라가 저숙련 제조업에서 손을 떼고, 그 제품의 수입국으로 전환해 후발국의 시장이 되어 주는 것까지가 한 세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에, 일본이 네 마리 용에, 네 마리 용이 중국에 그렇게 해 주었다.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린이푸(林毅夫)는 2011년, 중국이 임금 상승과 함께 노동집약 제조업을 '졸업'하면 약 1억 개의 일자리가 풀려나 저소득국 산업화의 전례 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지금쯤 그 일자리들은 하노이와 다카, 자카르타로 옮겨 가 있어야 했다.

III.깨진 시나리오: 바통을 넘기지 않는 선두

현실은 그 전망과 반대로 갔다. PIIE의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이 2026년 5월 발표한 워킹페이퍼 「개발도상국에 대한 중국의 중상주의적 압박(China's Mercantilist Squeeze on Developing Countries)」은, 중국이 소득과 기술 수준이 올라간 뒤에도 저숙련 수출 시장을 비워 주지 않고 있으며 그 규모가 역사상 전례가 없다는 점을 데이터로 입증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의 무역 흑자가 전기차·배터리·태양광 같은 첨단 분야의 위협으로 주로 논의되지만, 저자들은 정작 더 큰 타격이 저·중소득국(LMIC,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에 가해지고 있는데도 주목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보고서가 정리한 차이나 스퀴즈의 작동 경로는 세 갈래다.

경로 1
세계 수출시장에서의 경쟁

의류·신발·완구처럼 개도국이 산업화의 첫발을 내딛는 바로 그 시장에서 중국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세 경로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경로 2
개도국 내수시장 잠식

값싼 중국산 수입품이 개도국 국내 제조업체와 경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 충격은 선진국보다 개도국에서 더 크게 늘었다.

경로 3
닫혀 있는 중국 시장

부유해진 나라는 후발국 제품의 수입국이 되어 줘야 하지만, 중국의 저숙련 제품 수입은 2011년 이후 오히려 줄고 있다.

세 번째 경로의 수치가 특히 인상적이다. 2022년 기준 중국의 의류·섬유·가죽·신발 수입은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의 약 0.15%에 그쳤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이 중국과 비슷한 소득 수준이던 시절에는 같은 품목을 그 다섯 배 비중으로 수입했다. 성장 사다리의 윗칸으로 올라간 나라가 아래칸 나라들의 고객이 되어 주는 역할까지 포함해서, 중국은 선배들이 했던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차이나 쇼크'라는 표현 자체는 새것이 아니다. 데이비드 오터, 데이비드 돈, 고든 핸슨의 2013년 연구가 2000년대 중국산 수입품 급증이 미국 지역 노동시장에 남긴 상처를 계량적으로 보여 준 이래, 이 용어는 선진국 제조업의 충격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PIIE는 2026년 2월 별도의 워킹페이퍼(바유미·개그넌, 「또 다른 차이나 쇼크?」)에서 최근 다시 불어난 중국의 경상흑자가 두 번째 충격을 예고한다고 분석했는데, 채터지와 수브라마니안의 연구는 그 두 번째 충격의 최전선이 선진국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임을 보여 준다.

IV.2.2조 달러 흑자의 해부

출발점은 중국 무역 흑자의 구성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존재감이 미미하던 중국의 고숙련 제조업, 즉 의약품·정밀화학·기계·항공우주 같은 분야는 2000년대 중반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해 2010년대 이후 가파르게 성장했고, 전기·전자(가전,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정보기술 기기)가 그 뒤를 받치는 두 번째 축이 됐다. 여기까지는 '단순 조립공장에서 첨단 기술 공급국으로'라는 익숙한 서사다.

문제는 그래프의 나머지 부분이다. PIIE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제조업 무역 흑자 약 2.2조 달러 가운데 0.7조~1.4조 달러가 의류·신발·완구·가구 같은 저숙련 부문에서 나온다. 폭이 큰 것은 철강·기초금속처럼 '저숙련이지만 장치집약적인' 산업을 어디까지 포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데, 가장 보수적으로 잡아도 첨단 강국 중국이 노동집약 경공업에서만 매년 7천억 달러의 흑자를 낸다는 뜻이다. 고숙련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이 부문의 흑자는 줄지 않고 계속 커졌다. 인공지능과 전기차를 만들면서 양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한 나라 안에서 두 시대가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다.

2024년 중국 제조업 무역 흑자: 약 2.2조 달러 00.51.01.52.0조 달러 저숙련 노동집약 분류 범위에 따라 최대 1.4조 전자 · 기계 · 고숙련 등 0.7조 달러+ 의류 · 신발 · 완구 · 가구 등 개도국과 정면 경쟁하는 품목이 흑자의 ⅓~⅔ 안팎 자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 26-7 (Chatterjee & Subramanian, 2026)
그림 2. 첨단 분야만 주목받지만, 중국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저숙련 노동집약 제품에서 나온다. 저·중소득국이 산업화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바로 그 시장이다.

PIIE는 이 점유가 '비정상적으로 큰' 것인지 판정하기 위해 두 가지 잣대를 들이댄다. 첫째는 노동 부존량이다. 노동집약 산업에서 한 나라의 세계 수출 몫은 대체로 그 나라가 가진 저숙련 노동력의 몫에 비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둘째는 역사다. 오늘의 선진국들이 지금 중국만큼의 소득 수준이었을 때 세계 시장을 얼마나 차지했는지를, 시대별 무역 개방도 차이까지 보정해 비교하는 것이다. 두 잣대 모두에서 결론은 같았다. 노동력 몫 기준으로 중국의 '초과 수출'은 의류·섬유·가죽·신발 네 부문에서만 2022년 약 1,100억 달러, 저숙련 산업 전체로는 약 3,650억 달러에 이른다. 역사 기준으로는, 1인당 소득 약 1만 9천 국제달러 수준에서 과거 선진국들의 무역 보정 세계 점유율이 8%였던 반면 중국은 27%로, 그 격차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네 부문에서 약 1,400억 달러다. 서로 다른 두 방법이 비슷한 크기의 초과분을 가리킨다.

V.의도된 설계: "저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버리지 않는다"

이 구조는 우연이 아니라 명시적인 국가 전략의 산물이다. 2023년 5월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는 '현대화 산업 체계' 구축을 논의하면서, 전통 산업의 전환과 고도화를 계속 추진해야 하며 이를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간주해 단순히 퇴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못 박았다. 관영 매체 보도에 따르면 같은 회의는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 혁명의 물결을 움켜쥐어야 한다는 주문도 함께 내놓았다. 첨단으로 가되 기존 것을 버리지 않는다는, 안행형 모델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언이었다.

"전통 산업의 전환과 고도화를 견지해야 하며, 이를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여겨 단순히 퇴출시켜서는 안 된다." — 2023년 5월 중앙재경위원회 회의 (중국 관영 매체 보도 요지)

이 기조는 일회성 발언이 아니다. 시 주석은 2023년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 개념을 제시한 이후 전통 산업이 첨단 생산력의 토대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고, 2024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신질생산력 발전이 전통 산업의 방치나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으며, 2025년 1월 랴오닝성 시찰에서는 전통 산업을 일률적으로 '저급'이나 '낙후'로 치부해 퇴출시키면 신구 성장동력 전환이 끊기고 구조조정의 고통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미국 로디움그룹의 분석은 중국의 차기 산업정책에서 '완결성(completeness)', 즉 가장 수익성 높은 산업에 특화하는 대신 전 산업 스펙트럼의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목표가 새로 부상했다고 지적한다. 공급망의 어느 마디도 남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다. 전통 산업은 중국 제조업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고 고용을 떠받치는 기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선배 국가들이 노동집약 산업을 넘긴 것은 미덕이 아니라 불가피였다. 임금이 오르면 그 산업은 채산이 맞지 않아 어차피 떠나야 했다. 중국이라고 임금이 오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2026년 현재 중국 31개 성·시의 월 최저임금은 전 지역이 2,000위안을 넘어섰고, 가장 높은 상하이는 2,740위안(약 380달러)에 이른다.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United Nations Industrial Development Organization) 통계 기준 중국 의류 부문의 연평균 임금은 약 1만 달러로, 방글라데시의 다섯 배, 인도의 네 배 수준이다. 이 임금을 주면서 양말과 티셔츠를 만들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종전의 경제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간극을 메운 것이 다음 장의 주인공, 로봇과 자동화다.

VI.로봇이 메우는 임금 격차

국제로봇연맹(IFR,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이 2025년 9월 발표한 「월드 로보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공장에서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은 466만 4천 대로 전년보다 9% 늘었고, 연간 신규 설치는 54만 2천 대로 10년 전의 두 배를 넘었다. 이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중국의 가동 대수는 202만 7천 대로 세계 전체의 43%를 차지하며, 2위 일본(45만 5백 대)의 4.5배에 이른다. 2024년 한 해 신규 설치 29만 5천 대는 역대 최고치이자 전 세계 신규 설치의 54%로, 나머지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중국 한 나라가 더 많이 깔았다는 뜻이다.

466만 대
2024년 세계 가동
산업용 로봇 총수
43%
중국 점유율
(202만 7천 대)
54%
2024년 세계 신규 설치 중
중국 비중 (29.5만 대)
3년 새 2배
중국 가동 대수
2021년 100만 → 2024년 203만
2024년 산업용 로봇: 중국의 자리 가동 대수 466만 4천 대 중국 43% 일본 10% 기타 국가 전체 신규 설치 54만 2천 대 중국 54% 나머지 세계 전체 46% 중국 가동 대수 추이 (만 대) 100150203 202120222024
그림 3. 자료: 국제로봇연맹 「월드 로보틱스 2025」. 중국의 산업용 로봇 가동 대수는 2021년 100만 대를 넘긴 지 3년 만에 200만 대를 돌파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로봇들이 어디에 깔리고 있느냐다. 전 세계적으로 로봇 수요의 무게중심은 자동차에서 일반 제조업으로 옮겨 갔다. 자동차·전자라는 전통적 양대 수요처를 제외한 일반 산업의 설치 비중은 2014년 36%에서 2024년 53%로 올라섰고, 2024년 업종별 증가율은 식품 42%, 플라스틱·화학 18%, 금속 16% 순이었다. 중국 안에서는 이 흐름이 한층 가파르다. IFR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식음료 부문 로봇 도입은 전년 대비 86% 폭증했고, 노동집약 산업의 대표 격인 섬유 부문도 29% 늘었다. 식품 가공, 섬유, 목재처럼 원래라면 인건비 상승과 함께 베트남으로 넘어갔어야 할 바로 그 업종들에서, 중국은 사람 대신 기계를 투입해 버티고 있다.

로봇 가격이 떨어진 것도 결정적이었다. 중국 정부가 로봇·인공지능 분야에 보조금과 투자를 쏟아부으면서 토종 로봇 제조사가 난립했고, 그 안에서 벌어진 치열한 가격 경쟁이 진입 장벽을 낮췄다. 2024년 중국 내수 로봇 시장에서 자국 제조사의 점유율은 57%로, 10년 전의 28% 수준에서 두 배가 됐고 처음으로 외국 업체를 추월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양말 공장, 봉제 공장 같은 중소 제조업체까지 자동화 설비를 살 수 있는 가격대가 형성된 것이다. 인공지능도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 디자인·재단·재고 관리에 알고리즘을 결합해 소량 생산과 빠른 재주문을 반복하는 중국 패션 공급망의 운영 모델은, 노동집약 산업이 데이터집약 산업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다.

비유 박스 최저임금이 오르면 사람을 쓰는 공장은 비용이 그대로 올라간다. 그러나 기계는 야근수당도 최저임금도 없다. 도입 가격만 충분히 떨어지면, 임금이 오를수록 오히려 자동화의 채산성이 좋아지는 역전이 일어난다. 후발 개도국의 무기는 "우리 인건비가 더 쌉니다"였는데, 상대가 인건비 자체를 게임에서 빼 버리면 그 무기는 과녁을 잃는다. 중국이 한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VII.가위 모양의 그래프: 줄어드는 인구, 늘어난 점유율

로봇이 임금 격차를 메우고 있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는 인구와 수출의 엇갈림이다. 노동집약 산업의 점유율은 본래 노동력의 크기를 따라가야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중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지나 줄어들기 시작했으니, 저·중소득국 전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노동력 몫이 줄면 의류·신발 수출 몫도 따라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 데이터는 가위처럼 벌어진다. 저·중소득국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1995년 약 35%에서 2022년 28%로 내려왔다. 그런데 같은 그룹 안에서 의류·섬유·가죽·신발의 부가가치 기준 수출 점유율은 1995년 20%대에서 2013년 64%까지 치솟은 뒤, 인구 몫이 계속 줄어든 2023년까지도 64%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사람의 몫은 줄었는데 생산의 몫은 그대로라면, 그 차이를 채운 것은 기계다. PIIE는 2013~2023년 사이 노동력 몫 대비 수출 몫의 '초과분'이 33%포인트에서 36%포인트로 오히려 더 벌어졌다고 계산한다.

벌어지는 가위: 노동력 몫 vs 수출 몫 (저·중소득국 내 중국 비중) 0%20%40%60% 1995200020052010201320182023 부가가치 수출 점유율 64% 생산가능인구 비중 28% 초과 36%p 자료: PIIE WP 26-7의 분석 결과(유엔 인구통계, OECD 부가가치무역 통계 기반)를 토대로 주요 기준점을 재구성
그림 4. 의류·섬유·가죽·신발 부문. 인구 논리대로라면 두 선은 나란히 가야 하지만, 2013년 이후 노동력 몫이 3%포인트 줄어드는 동안 수출 몫은 64%에 고정돼 격차가 더 벌어졌다.

VIII.통관 통계의 착시: 완제품 라벨과 부가가치

이 대목에서 서두의 역설로 돌아가자. 무역 기사들은 종종 '메이드 인 베트남',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의 약진을 전한다. 통관 기록만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저·중소득국 그룹 내에서 중국산 완제품 저숙련 제품의 수출 점유율은 2010년대 중반 정점을 찍고 2022년 55% 안팎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같은 품목을 부가가치 기준, 즉 최종적으로 해외에서 소비되는 제품에 들어간 가치가 실제로 어느 나라 안에서 창출됐는지로 다시 재면 그림이 뒤집힌다. 중국의 부가가치 점유율은 계속 올라 65%에 다가서고 있다.

1995년에는 부가가치 점유율이 통관 점유율보다 5.5%포인트 낮았다. 당시 중국은 남의 원단과 부자재를 들여와 조립만 하는 전형적인 하청 공장이었다는 뜻이다. 2023년에는 반대로 부가가치 점유율이 통관 점유율을 8.3%포인트 웃돈다. 합치면 약 14%포인트의 반전이다. 완성된 티셔츠를 직접 수출하는 일은 줄었어도, 그 티셔츠에 들어가는 가치는 더 많은 부분이 중국 안에서, 중국의 노동과 자본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공급망의 더 깊은 층위가 중국 안으로 내재화된 것이다.

'탈중국'의 착시: 통관 기준 vs 부가가치 기준 점유율 0%20%40%60% 1995200020052010201420182023 부가가치 기준 ≈ 65%로 상승 통관 기준: 2014년 정점 후 하락 +8.3%p 1995년엔 부가가치가 통관보다 5.5%p 낮았다 자료: PIIE WP 26-7 (저·중소득국 내 의류·섬유·가죽·신발 점유율) 기준점을 토대로 재구성
그림 5. 공장이 베트남으로 가도 실·원단·부자재·설비는 중국에서 온다. 통관 통계의 하락(점선)만 보면 안행형 이양이 진행 중인 듯하지만, 부가가치 기준(실선)으로는 중국의 장악력이 오히려 강해졌다.
비유 박스 '통관 기준 점유율'과 '부가가치 기준 점유율'의 차이는 식당 간판과 주방의 차이다. 거리에 새 간판을 단 식당(베트남·방글라데시 공장)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식당들의 식재료, 조리 기구, 레시피, 심지어 주방장 교육까지 한 도매상(중국)에 의존한다면, 골목 상권의 실질적 지배자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간판 수를 세는 통계는 도매상의 존재를 놓친다.

이것이 후발국에 갖는 함의는 뼈아프다.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가 봉제 수출을 늘릴수록 중국산 중간재 수입도 함께 늘어, 산업화의 과실 중 상당 몫이 상류로 흘러간다. 더 나아가 어느 나라가 봉제를 넘어 원단과 부자재의 내재화, 즉 사다리의 다음 칸으로 올라서려는 순간, 규모와 가격 모두에서 압도적인 중국 공급망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제조업은 의지와 값싼 노동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품·소재·장비의 생태계가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 생태계의 임계질량이 이미 한 나라 안에 완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곳에 새로 만드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미국이 관세와 보조금을 동원해 제조업 재유치를 시도하면서도 고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IX.한 나라 안의 일본과 베트남

중국이 저숙련과 고숙련을 동시에 쥘 수 있는 또 하나의 구조적 이유는 나라 안의 격차다. 2024년 중국의 1인당 GDP는 전국 평균 약 9만 6천 위안(1만 3천 달러대)이지만,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크다. 베이징은 22만 8천 위안(약 3만 2천 달러)으로 같은 해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고, 상하이가 3만 달러대로 그 뒤를 잇는다. 반대로 최하위인 간쑤성은 5만 3천 위안(약 7,400달러)으로, 명목 기준으로도 동유럽·동남아의 중위 개도국 수준이며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 기준으로는 베트남과의 거리가 더 좁혀진다. 한 국경 안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공존하는 셈이다.

2024년 1인당 GDP (명목, 달러) 일본 베이징 상하이 중국 전국 평균 간쑤성 (최하위) 베트남 약 32,000 32,038 30,486 약 13,300 7,416 약 4,700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지역별 통계,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추정치 종합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으로는 내륙 저소득 성과 동남아의 격차가 더 좁혀진다
그림 6. 베이징·상하이의 소득은 일본급, 내륙 저소득 성은 개도국급. 한 나라가 V자 편대의 선두와 후미를 동시에 차지할 수 있는 인구·소득 구조다.

이 구조 덕분에 안행형 이양은 국경을 넘는 대신 국경 안에서 일어났다. 세계은행 계열 학술지에 실린 장지아량·장샤오보의 연구(2023)는 중국의 기업 투자 흐름 데이터를 분석해, 2006년 이후 노동집약 제조업 투자가 임금이 비싼 연안에서 내륙으로 꾸준히 옮겨 가는 '국내판 기러기 편대'가 실재함을 보여 줬다. 광둥의 공장이 베트남이 아니라 후난과 쓰촨으로 가는 것이다. 연안의 1억 인구는 일본·한국과 첨단산업에서 경쟁하고, 내륙의 수억 인구와 로봇은 동남아와 경공업에서 경쟁한다. 베이징·상하이라는 선진국과 내륙이라는 개도국이 한 정부, 한 통화, 한 물류망 안에 묶여 있으니, 사실상 모든 체급의 경기에 동시에 출전하는 선수인 셈이다. 기러기 편대의 비유를 빌리면, 편대 사이에 몸집이 다른 차원의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끼어들어 여러 열의 고도를 혼자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X.공정한 경쟁인가: 환율, 보조금, 그리고 내수 부진

중국의 버티기가 순수한 생산성의 승리인지, 정책 왜곡의 산물인지는 별도의 질문이다. PIIE 연구진은 기업 단위 데이터가 10여 년째 외부 연구자에게 공개되지 않아 정밀한 판정은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거시 지표들이 왜곡의 존재를 시사한다고 본다. 흐로닝언대 성장개발센터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뚜렷이 둔화해 2015년부터는 경쟁 개도국들을 더 이상 앞서지 못한다. 임금은 경쟁국의 4~5배인데 생산성 우위는 사라지고 있다면, 달러 표시 단위노동비용의 격차를 메우는 무언가가 따로 있어야 한다.

저자들이 지목하는 가장 큰 요인은 환율이다. IMF는 최신 중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위안화의 실질실효환율(REER, Real Effective Exchange Rate)이 약 16%(12~21% 범위) 저평가되어 있다고 추정했고, 미국외교협회의 브래드 세처 등은 국유은행을 통한 우회 개입까지 고려하면 저평가 폭이 20~30%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시점의 일치다.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정점을 찍은 2014년을 전후해 부가가치 수출 점유율도 정점에 달했고, 개입이 잦아든 2014~2019년에는 중국이 노동집약 4개 부문에서 연간 약 200억 달러씩 수출 공간을 실제로 비워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9년 이후 개입이 재개되자 점유율은 이전 정점으로 되돌아갔다. 인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환율이라는 손잡이가 저숙련 수출의 밸브 역할을 해 왔음을 시사하는 정황이다. 이 밖에 IMF는 현금 보조금, 세제 혜택, 정책 금융, 토지 지원 등 중국 산업정책의 규모를 2023년 GDP의 약 4%로 추산했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 분석은 산업정책 개입 횟수와 부문별 수출 성과의 상관관계를 확인했다.

최근에는 '과잉의 배출구'라는 동학도 겹쳤다. 부동산 침체로 내수가 부진하고, 안에서는 '네이쥐안(内卷)'으로 불리는 소모적 출혈 경쟁과 과잉 설비, 높은 청년 실업이 누적되자, 기업들이 가격을 후려쳐서라도 해외 시장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2025년 중국 경제 보고서에서 수출 물량은 늘었지만 수출 단가와 매출은 눌려 있는 이 패턴을 지적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개도국 입장에서는 생산성으로든 환율로든 보조금으로든, 도저히 가격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모든 체급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XI.넥스트 차이나는 없는가

차이나 스퀴즈의 비용은 추상적이지 않다. PIIE 추산으로 저·중소득국이 잃고 있는 수출은 저숙련 부문 전체에서 연간 수천억 달러 규모이고, 이를 일자리로 환산하면 개도국 전체에서 수천만에서 억 단위의 제조업 고용 기회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봉제 공장의 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농촌의 저숙련 노동력이 도시 임금경제로 진입해 교육과 저축과 다음 산업으로 이어지는 구조 전환의 입구다. 그 입구가 좁아지면 '중진국 함정' 이전에 '저소득 함정'이 먼저 닫힌다. 인도네시아에서 최근 불거진 사회 불안의 배경에 탈산업화와 중국산 경쟁 압력이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동남아·남아시아 각국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무역구제 조치가 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도 있다. 한국이 사다리를 오르던 시절의 중국은 아직 잠에서 깨기 전이었고, 한국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전에 첨단 칸으로 먼저 올라설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몇 년만 늦었다면 한국 역시 같은 압착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정은 결코 한가한 상상이 아니다. 지금의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 그리고 아프리카의 후발국들에는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책임을 전부 중국에 돌릴 일도 아니다. 안행형 모델의 수혜국들은 모두 교육, 인프라, 제도 개혁이라는 자기 몫의 숙제를 해낸 나라들이었고, 기회가 좁아진 시대일수록 그 숙제의 무게는 커진다. 일부 개도국 제품에 대한 무관세 혜택이나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에서의 개도국 지위 반납처럼 중국이 내놓은 제스처가 실질이 되려면, 결국 시장을 실제로 비워 주고 수입을 늘리는 행동이 따라와야 한다.

찰스 킨들버거의 패권안정론이 말하듯, 패권국의 자격은 위기 때의 유동성 공급과 열린 시장 같은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서 나온다. 전후 미국은 자국 시장을 열어 일본과 네 마리 용, 그리고 중국 자신의 부상을 흡수해 줌으로써 그 역할을 했다. 미국이 그 역할에서 물러서는 지금, 중국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느냐는 첨단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 즉 가난한 나라들의 상승을 가능하게 해 주느냐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기러기 편대의 질서는 선두가 빨라서가 아니라, 선두가 자리를 비켜 주기에 유지된다. 지금 세계 경제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그 질서가 멈춘 뒤의 풍경이며, 양말 공장에서 시작해 반도체까지 올라가는 길, 즉 지난 세기 가난한 나라가 부유해지는 가장 확실했던 경로가 다음 세대에도 열려 있을지에 대한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