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말 호르무즈 해협이 닫힌 뒤 석 달, 세계 석유 시장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공급 차질을 통과하고 있다. 유가의 등락 너머에서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에너지 정책의 첫 번째 질문이 "얼마나 싼가"에서 "끊기지 않는가"로 바뀌었고, 각국은 시장 논리를 초월한 수단을 동원해 에너지 자급에 자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 차례로 짚는다.
불과 1년 전까지 에너지를 둘러싼 논쟁의 틀은 익숙했다. 어느 발전원이 더 싼가, 어느 쪽이 일자리와 수출에 보탬이 되는가, 기후 대응에는 무엇이 유리한가. 모두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지만, 2026년 봄 이후 세계 각국의 에너지 정책 문서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단어는 따로 있다. 안보다.
에너지는 공기나 물, 식량과 같은 부류의 재화다. 풍족할 때는 가격을 따지지만, 끊기는 순간 가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태, 혹은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사야 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식량 안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나라가 이 논리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에너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가 바닷길의 안전을 보증했고, 시장은 언제나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부터였다. 유럽이 파이프라인 가스의 무기화를 경험하면서 "안정적 공급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2026년 2월 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닫히면서 이 흐름은 결정적으로 가속됐다. 세계 석유 소비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단 하나의 물길이 막히는, 교과서 속 시나리오로만 존재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깊은 흔적은 유가 그래프가 아니라 인식의 변화다. 하나의 패권 국가가 해상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을 보증하고, 합의가 깨지면 압도적 힘으로 응징하던 시대의 질서가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합의는 서명만으로 이행되지 않고, 이행을 강제할 외부 권위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 그래서 각국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남이 보증해 주지 않는 안보는 결국 스스로 사야 한다는 결론이다.
사태의 골격은 이렇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과 군 지휘부를 겨냥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고, 이란은 보복의 일환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고 통항을 통제했다. 평시 이 해협으로는 하루 2,000만 배럴 안팎의 원유·콘덴세이트·석유제품이 지나간다. 세계 석유 소비의 약 5분의 1, 해상 석유 교역의 4분의 1을 웃도는 양이다. 3월 한 달 해협 통과 물량은 평시의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고, 그나마 통과한 물량의 70%가량은 이란 자신의 수출분이었다. 이란은 자국 선박과 일부 우호국 연계 선박만 선별적으로 통과시키며 해협을 지렛대로 썼다.
숫자로 보면 규모가 분명해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 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집계로 3월 세계 석유 공급은 전월 대비 하루 1,010만 배럴 줄어 9,700만 배럴까지 내려앉았다. 월간 기준으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감소다. 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19년 사우디 아브카이크 피격 때도 이 정도 규모와 지속 기간의 차질은 없었다. 4월 공급은 9,510만 배럴로 추가 하락했고, 개전 전과 비교한 누적 감소 폭은 하루 1,280만 배럴, 걸프 역내 생산만 따지면 1,440만 배럴에 이르렀다.
피해는 균등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쪽으로 빠지는 동서 횡단 송유관을, 아랍에미리트는 호르무즈 바깥 후자이라 항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갖고 있어 일부 물량을 우회시켰다. 그러나 두 우회로의 가용 용량을 다 합쳐도 평시 해협 물동량의 7분의 1 남짓이고, 운송 비용은 50~80% 더 든다. 우회로가 아예 없는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수출이 사실상 두절됐다. 미국, 브라질, 가이아나 등 역외 산유국의 증산분이 일부를 메웠지만 구멍의 크기에 비하면 부분적이었다.
가격은 예상대로 움직였다. 개전 직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는 배럴당 60달러 안팎이었다. 2025년 내내 세계 석유 시장이 하루 200만~300만 배럴의 공급 과잉 상태였고, 한때 50달러대까지 밀리며 "석유의 시대는 끝나간다"는 전망이 힘을 얻던 참이었다. 개전 후 실물 시장의 북해산 브렌트 현물은 한때 144달러를 찍었고, 선물 가격도 116~12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6월 초 현재 브렌트는 97달러 부근으로 내려와 있지만, 이는 1년 전보다 여전히 50%가량 높은 수준이다.
석유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 수출국인 카타르의 액화 설비 일부가 교전 와중에 피해를 입으면서, 2027년 전후로 예정돼 있던 세계적 LNG 공급 확대가 2년 이상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26~2030년 누적으로 1,200억 세제곱미터의 공급이 사라질 수 있다는 추산이다.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은 급등했고, 일부 신흥국은 가스 배급제에 들어갔다.
외교의 시계도 함께 돌았다. 4월 7일 2주짜리 휴전이 성립했으나 간헐적 교전으로 번번이 흔들렸고, 5월 말에는 60일 휴전 연장과 30일 내 기뢰 제거·통항 보장, 봉쇄 해제와 제재 일부 완화를 묶은 양해각서(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가 잠정 타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6월 초까지도 최종 서명은 이뤄지지 않았고, 산발적 공습과 미사일 교환이 이어졌다. 시장이 "끝났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번 사태에서 일반 소비자가 가장 먼저, 가장 아프게 체감한 것은 원유가 아니라 석유제품 가격이었다. 원유가 개전 전보다 50% 오르는 동안 휘발유·경유·항공유 같은 제품 가격은 지역에 따라 100% 이상 뛰었다. 왜 제품이 원유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는가. 여기에 석유 시장의 구조가 숨어 있다.
호르무즈가 닫히자 가장 먼저 멈춘 것이 이 "밥솥"들이었다. 특히 중동산 중질 원유에 최적화된 동아시아 정유소들이 원료를 구하지 못해 가동률을 낮췄다. IEA는 2분기 세계 정제 처리량이 전쟁 전 계획보다 하루 450만 배럴 줄어든 7,870만 배럴에 머물 것으로 봤다. 정제가 멈추면 원유 재고가 아무리 있어도 제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품은 장기 비축이 어렵기 때문에 수급 충격이 곧바로 소매 가격으로 직행한다.
가장 극단적으로 움직인 것은 항공유였다. 미국 현물 항공유는 2월 말 갤런당 2.5달러에서 4월 들어 4.9달러 부근까지 거의 두 배가 됐고, 유럽 제트유는 5월 초 배럴당 187달러로 1년 전의 두 배에 달했다. 항공사들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루프트한자그룹은 여름 시즌 단거리 노선 2만 편을 감축했고, 유럽 전체로는 여름 좌석 공급이 930만 석 줄었다는 항공 데이터 분석업체 시리움의 집계가 나왔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5% 감편과 함께 연간 110억 달러의 추가 연료비 부담을 경고했고, 델타항공은 3월 한 달에만 연료비가 4억 달러 늘었다고 밝혔다. 유럽 공항들의 협의체는 "시스템 차원의 항공유 부족"을 공식 경고했다.
석유화학도 같은 길을 걸었다. 원료인 납사 가격이 급등하자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업체들이 아예 가동을 줄였다. 가격이 아니라 "생산 포기"로 수급이 조정되는 단계, 경제학이 수요 파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IEA는 2분기 세계 석유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하루 24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팬데믹 이후 최대의 분기 감소 폭이며, 그 대부분이 항공과 석유화학에서 나왔다. 유가가 150달러, 200달러로 치솟지 않은 것은 공급이 회복돼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수요가 고통스럽게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무엇으로 버티고 있는가. 답은 재고다. 그리고 이 재고의 소진 속도야말로 지금 시장 전문가들이 가장 긴장하며 들여다보는 숫자다.
IEA 집계로 3~4월 두 달 동안 세계 석유 재고는 2억 4,600만 배럴 줄었다. 사상 가장 빠른 감소 속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회원국 재고는 4월 한 달에만 하루 490만 배럴꼴로 빠졌다. IEA는 3월 중순 회원국 공조로 4억 배럴 방출을 결정했고, 5월 초까지 정부 비축분과 민간 의무비축 하향분을 합쳐 1억 6,400만 배럴이 시장에 풀렸다. 미국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같은 정부 비축도 무한정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설 운영에 필요한 최소 재고와 추가 위기 대비분을 빼면, 실제로 동원 가능한 양은 통상 절반 안팎으로 평가된다.
이 산수가 도달하는 지점이 이른바 9월 데드라인이다. IEA의 5월 보고서는 6월부터 해협 통항이 점진적으로 정상화된다는, 상당히 낙관적인 가정을 깔고도 2026년 연간 공급을 하루 1억 220만 배럴, 수요를 1억 400만 배럴로 봤다. 연평균 하루 178만 배럴의 적자이고, 적자 상태는 4분기까지 이어진다. 9월까지의 누적 부족분은 약 9억 배럴에 이를 전망이다. 헐어 쓴 재고를 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이후 3년간 매일 100만 배럴씩의 잉여가 필요하다는 계산도 따라붙는다.
여기서 이번 사태의 비직관적인 결론 하나가 나온다. 설령 내일 당장 극적인 화해가 이뤄져 해협이 완전히 열리더라도, 적어도 9월까지 세계 석유 수급의 경색은 이미 확정돼 있다는 것이다. 닫혀 있던 항만에서 유조선이 다시 줄을 서고, 바다를 건너고, 정유소가 가동률을 올리고, 제품이 유통망 끝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든다. 합의는 하루에 이뤄질 수 있어도 물류는 그렇지 않다.
시장도 이 사실을 안다. 개전 직후 연말 인도분 선물 가격은 배럴당 70달러 선이었다. "곧 끝나고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봉쇄가 한 달 길어질 때마다 연말물은 10달러꼴로 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기대가 현실에 패배해 온 궤적이며,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한꺼번에 가격으로 청산될 위험, 즉 여름 이후 150달러를 보게 될 수 있다는 일부 전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5월 말 잠정 합의 소식에 유가가 한풀 꺾이자 "사실상 상황 종료"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해운과 보험의 세계에서 보면 종전 합의와 통항 정상화 사이에는 세 개의 관문이 더 놓여 있다.
첫째 관문은 기뢰다. 부설은 며칠이면 되지만 제거는 다르다. 좁고 수심이 얕으며 통항량이 많은 해역의 소해 작업은 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의 일이고, 제거 이후에도 "정말 안전한가"를 국제적으로 검증하는 절차가 따른다. 둘째 관문은 보험이다. 교전 기간 주요 보험사들은 호르무즈 통항 선박에 대한 전쟁보험 인수를 사실상 중단했다. 선가 수천억 원짜리 초대형 유조선이 한 항차에 버는 운임은 그 100분의 1 수준이다. 보험 없이 그 자산을 기뢰 의심 해역에 넣을 상업 선사는 없다. 보험 재개는 보험사들이 이행 체계를 자체 평가하고 요율을 다시 산정한 뒤에야 이뤄지며, 업계에서는 모든 절차가 순조로워도 서너 달을 본다. 셋째 관문은 선사와 선원이다. 실제로 교전 기간 여러 척의 유조선이 미사일과 드론에 피격됐고 인명 피해도 있었다. 휴전 발표 후에도 산발적 피격이 재발할 때마다 복귀 움직임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 관문들을 더 길게 만드는 배경이 앞서 말한 질서의 변화다. 과거에는 합의를 깨면 초강대국의 응징이나 국제기구의 제재가 따른다는 믿음이 합의의 담보였다. 그 담보가 약해진 세계에서는 서명이 아니라 검증이 신뢰의 단위가 되고, 검증에는 시간이 든다.
산유국 쪽에도 시한폭탄이 있다. 수출이 막힌 산유국은 저장 탱크와 유조선까지 가득 차면 결국 생산을 줄이고 유정을 잠가야 한다. 그런데 유정은 수도꼭지가 아니다. 장기간 잠근 유정에서는 파라핀 왁스가 관로에 침적되고 저류층의 압력 거동이 변해, 다시 열어도 이전의 산출량을 회복하지 못할 수 있다. 업계에서 "이 정도 규모로 동시에 틀어막힌 전례가 없어 결과를 누구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우회로가 없는 이라크와 쿠웨이트가 이 위험에 정면으로 노출돼 있고, 해협을 통제하는 이란 자신도 저장 포화로 감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입국들의 풍경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인도는 해군 기동부대를 오만만과 아라비아해에 투입해 자국 액화석유가스(LPG, Liquefied Petroleum Gas) 운반선과 유조선을 직접 호위했다. LPG는 인도 수억 가구의 취사 연료이고 수입의 6할 이상을 중동에 의존해 왔으니, 죽고 사는 문제였던 셈이다. 고립됐던 인도 선박 25척 중 10척이 4월 중순까지 이런 식으로 빠져나왔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걸프 해역에 두 달 가까이 고립됐던 국적 선박 26척 가운데 첫 배인 HMM 유니버설 위너호가 5월 19일에야 쿠웨이트산 원유를 싣고 해협을 빠져나와 울산으로 향했다. 그에 앞서 4월에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를 끈 채 항해한 수에즈맥스급 유조선이 원유 100만 배럴을 싣고 입항했고, 소말리아 해역의 청해부대는 홍해 항로 호송에 투입됐다. 평시라면 하루 두 척씩 들어오는 게 당연했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의 입항이 한 척 한 척 뉴스가 되는 것, 그것이 정상화와 현재 사이의 거리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전 지점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 1위 산유국이고 원유 순수출국이다. 중동산 원유에 대한 직접 의존도도 낮다. 그런데도 미국 소비자들은 휘발유 가격 급등을 고스란히 맞았다. 개전 후 한 달 사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64센트, 22%가량 뛰었다. "우리 기름인데 왜 비싸지는가"라는 불만이 쏟아졌지만, 답은 간단하다. 석유는 세계 단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고, 가격은 하나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일물일가라고 부르는 원리다. 텍사스의 원유 생산자는 국내 정유사에 시세보다 싸게 팔 이유가 없다. 더 비싸게 사 줄 수출 시장이 열려 있는 한, 국내가만 따로 낮게 유지하는 것은 주주에 대한 배임이 되고, 설령 강제해도 차익거래가 그 틈을 메워 버린다. 자국에서 기름이 난다는 사실은 공급이 끊기지 않는다는 보험이지,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는 보험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미국 소비자의 체감 폭이 한국보다 큰 데에는 세금 구조도 한몫한다. 한국 휘발유 소매가의 절반 가까이는 유류세 등 세금이어서, 국제 제품가가 50% 올라도 소매가 상승률은 25~30% 선에서 희석된다. 반면 세금 비중이 15% 안팎인 미국에서는 도매가 충격이 거의 그대로 주유소 가격이 된다. 평소 "기름값이 싼 나라"의 이면이 위기 때는 "충격 완충재가 없는 나라"로 뒤집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미국 셰일 업계는 왜 즉각 증산으로 응답하지 않았는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분기마다 시행하는 에너지 기업 서베이는 유가가 90달러를 넘긴 달에도 시추 리그 수가 오히려 줄었다는 결과를 내놨고, 응답 기업의 절반가량은 2026년 시추 계획을 바꾸지 않겠다고 답했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조사에서는 의미 있는 증산에 필요한 유가 수준으로 WTI 평균 84달러가 제시됐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업계의 논리는 일관된다. 불과 작년에 50달러대 유가로 고통받았던 기억이 생생하고, 전쟁발 급등은 언제 급락으로 반전될지 모르며, 주주들은 증산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원한다는 것이다. 급등이 아니라 급등락, 즉 변동성 자체가 투자의 적이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4월 이후 엑슨모빌과 셰브런 등이 시추를 마치고 완결만 남겨 둔 유정을 중심으로 증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실제 물량이 되기까지는 수개월의 시차가 있다.
그사이 정유·생산을 겸하는 통합 메이저들은 원유 가격과 정제 마진 양쪽에서 이익을 쌓았다. 2022년 이후 올해 초까지 미국 5대 석유 메이저의 누적 순이익이 4,670억 달러에 이른다는 집계도 나와 있다. 위기가 길어질수록 소비자의 고통과 일부 기업의 이익이 같은 그래프 위에서 벌어지는 구도, 이것이 시장에만 맡겨진 필수재의 풍경이다. 미국의 사례가 다른 나라들에 준 교훈은 분명했다. 자원이 있어도, 시장이 작동해도, 가격 안정과 공급 안정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온 것이 국가다. 이번 사태에서 한국 정부가 꺼내 든 카드들은 그 자체로 시대의 전환을 보여 주는 목록이다.
3월 13일 정부는 석유사업법상 최고가격제를 발동해 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의 공급가 상한을 걸었다. 1970년 법 제정 이후 56년 만에 처음 가동된 조항이다. 국제 제품가가 계속 오르자 3월 27일 상한선 자체를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한 차례 상향 조정했다. 상한 때문에 정유사가 떠안는 손실은 사후에 보전하는 구조인데, 그 재정 부담의 규모와 분담을 놓고 논쟁이 진행 중이다. 시장 가격에 정부가 직접 상한을 긋는 일은 평시의 한국 경제 운용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공공부문 차량 5부제도 부활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이다. 정부는 자원안보위기경보를 석유 부문 '주의', 가스 부문 '관심'으로 올렸고, 경제부총리는 유가가 120~130달러 선을 넘으면 민간 차량 5부제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축 대응에서는 결이 다른 선택을 했다. IEA 공조 방출에서 한국에 배정된 몫 2,246만 배럴을 정부 비축유 방출 대신 정유사 등의 민간 의무비축량을 1,200만 배럴 낮추는 방식으로 소화한 것이다. 정부 탱크의 기름은 그대로 두고 민간이 의무적으로 묶어 두던 재고를 풀게 한 셈인데, 민간 재고는 약 9,000만 배럴, 40일분 이상으로 유지됐다.
수요 억제, 비축 동원, 가격 개입. 사실 이 세 가지는 한국만이 아니라 주요 수입국 대부분이 꺼내 든 공통 처방이다. 단기 대응은 어느 나라나 비슷할 수밖에 없다. 갈림길은 그다음, 그러니까 "이런 일이 다시 와도 덜 흔들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중장기 질문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답들이 지금 세계 에너지 투자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중장기 처방의 첫 번째 공통분모는 연료가 필요 없는 발전원, 즉 재생에너지의 가속이다. 호르무즈가 닫혀도 바람과 햇빛은 끊기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이, 위기 이후 각국 정책 문서에서 재생에너지를 기후 항목이 아니라 안보 항목으로 옮겨 적게 만들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의 재생에너지지침 개정안(RED III, Renewable Energy Directive III)을 국내법으로 옮기면서 풍력 등 재생에너지 인허가 기간에 상한을 박았다. 일반 지역은 1년, 미리 지정된 가속화 구역에서는 6개월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와 주민 수용성 절차를 압축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지만, 에너지 위기를 두 번 겪은 나라의 선택은 속도였다. 2030년 발전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채운다는 목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이 어디서 돈을 벌려 하는가다. 태양광 패널 제조에서 유럽은 중국에 승부가 끝났다는 것을 인정한 지 오래다. 패널은 이제 종이컵처럼 사 오면 되는 범용재에 가깝다. 부가가치는 그 위, 그러니까 수백만 개의 지붕 태양광·가정용 배터리·전기차·히트펌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실시간 수급을 맞추는 운영 기술로 옮겨 갔다. 독일에서는 전기 공급사들이 시간대별로 가격이 달라지는 동적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고, 도매시장에서는 한 해 수백 시간씩 마이너스 가격이 나타난다. 한낮 태양광이 넘칠 때 충전하고 저녁에 쓰는 가정, 가격 신호에 맞춰 돌아가는 세탁기와 전기차 충전기가 일상이 되는 중이다.
전력망 자체는 안보 영역으로 격상됐다. 통신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했던 논리가 전력망 기자재로 확장되면서, 유럽 주요국은 계통 핵심 설비에서 중국 기업을 사실상 배제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그 반사이익으로 지멘스에너지, ABB 같은 유럽 전력기기 기업들의 송배전 부문 수주가 호황을 누린다. 단일 계통 안에서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한국과 달리, 독일은 이웃 나라들과 국경을 넘어 전기를 사고팔면서 수백만 분산자원까지 함께 굴려야 한다. 난이도가 높은 시장을 먼저 운영해 본 경험 자체가 수출 상품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태양광의 확산을 이해하는 열쇠는 규모의 유연성이다. 원전이나 LNG 터미널은 수조 원과 십수 년이 있어야 시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태양광은 가정집 지붕 한 칸짜리 수백만 원 투자로도, 사막의 기가와트(GW)급 단지로도 성립한다. 시작의 문턱이 낮으니 자본과 인프라가 부족한 곳, 전력망이 불안한 곳부터 먼저 스며든다.
중국부터 보자. 흔히 중국 태양광이라 하면 사막의 초대형 단지를 떠올리지만, 2023년 말 기준 누적 설비의 42%, 253GW가 지붕형을 비롯한 분산형이었다. 2025년 1분기에는 신규 설치 60GW 가운데 지붕형이 36GW로 6할을 차지했다. 현 단위 통합개발이라는 이름의 시범 사업이 676개 현에서 진행되며 당정 기관 건물 지붕의 50%, 학교·병원의 40%, 상공업 시설의 30%, 농촌 주택의 20%를 태양광으로 덮는 목표를 걸었고, 신축 공공건물과 공장에는 지붕 면적의 절반에 패널을 얹는 의무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같은 기간 중국은 원자로 30기 안팎을 동시에 짓고 있다. 특정 발전원을 고른 것이 아니라, 자국 안에서 도는 에너지라면 전부 늘리는 전방위 전략이다.
일본 도쿄도는 2025년 4월부터 대형 주택사업자가 짓는 신축 주택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리고 가장 극적인 사례는 파키스탄이다. 2018년까지 누적 1GW에도 못 미치던 태양광 패널 수입이 2026년 초 기준 51GW를 넘어섰다. 2024 회계연도 한 해 수입액만 21억 달러로 전년의 세 배였다. 만성 정전과 비싼 전기요금에 지친 가계와 상점들이 정부 보조 없이, 관세가 면제된 중국산 패널을 사다 지붕에 얹은 결과다. 발전량에서 태양광 비중은 2021년 4%에서 2024년 14%로 뛰었고, 화석연료 수입액은 2022년 대비 40% 줄었으며, 한때 35%에 달하던 중유 발전 비중은 1%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 호르무즈 사태로 유류 가격이 20% 넘게 뛰고 주 4일 근무제까지 검토되는 와중에도 파키스탄이 대규모 정전 없이 버틴 데 대해,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 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는 지붕 태양광이 호르무즈 충격에 대한 보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내전으로 전력망이 무너진 시리아에서 지붕 태양광이 사실상 표준 전원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확산의 바닥에는 가격이 있다. 태양광 모듈 가격은 지난 10년 사이 85~90% 떨어졌고, 같은 기간 양산 모듈 효율은 17% 안팎에서 22~23%로 올라왔으며, 출력 보증 기간은 30년 이상이 일반화됐다. 흔히 듣는 반론은 "해가 지면 끝"이라는 것인데, 그 반론의 유효기간도 끝나가는 중이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의 분석에 따르면, 일조가 좋은 지역에서 태양광에 배터리를 붙여 연중 97%의 시간 동안 일정 출력을 공급하는 구성의 균등화 발전비용(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은 2019년 메가와트시(MWh)당 183달러에서 2024년 104달러로 내려왔다. 신규 석탄(118달러)보다 싸고, 신규 원전 평균(182달러)의 6할 수준이다. 배경에는 배터리 가격의 급락이 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 BloombergNEF) 집계로 2024년 배터리 팩 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115달러로 한 해 만에 20% 떨어졌고, 2025년 10월 기준 설치까지 포함한 대형 저장 시스템 가격은 중국·미국을 제외한 세계 평균 kWh당 125달러, 저장 균등화비용으로는 MWh당 65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물론 단서가 붙는다. 이 숫자들은 일조 조건이 좋은 지역 기준이고, 토지·계통 비용이 비싼 나라에 그대로 이식되지 않는다. 한국의 좁은 국토와 낮은 일조 조건에서는 같은 구성의 비용이 훨씬 높게 나온다. 그러나 세계 자본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왜 신흥국 지붕부터 패널이 깔리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이 가격 곡선 하나로 충분하다.
재생에너지와는 다른 길로, 그러나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선택이 흥미로운 것은, 이 나라가 신규 원전 건설에서 뼈아픈 실패를 막 복기한 직후라는 점 때문이다.
노르망디의 플라망빌 3호기는 유럽형 가압경수로(EPR, European Pressurized Reactor)의 프랑스 1호기로 2007년 착공됐다. 목표는 공기 5년, 사업비 33억 유로였다. 실제로는 2024년 12월에야 전력망에 연결됐다. 17년이 걸렸고, 건설비는 2023년 화폐 기준 156억 유로로 불었으며, 프랑스 감사원은 금융 비용까지 합친 총비용을 237억 유로로 추산했다. 용접 결함과 재시공, 규제 대응이 반복된 결과지만, 감사원이 짚은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20년 가까이 신규 원전을 짓지 않는 동안 설계·시공 인력과 기자재 공급망이 통째로 끊겼고, 그것을 현장에서 다시 배우는 수업료를 치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패턴은 국제 비교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는 착공에서 가동까지 18년이 걸렸고, 영국 힝클리포인트 C는 2017년 착공 후 가동 목표가 2029~31년으로 밀리며 사업비 추산이 최대 460억 파운드까지 불었다. 미국 보글 3·4호기는 11년에 2기 합계 약 350억 달러가 들었다. 반면 한국형 신형 가압경수로(APR1400, Advanced Power Reactor 1400)를 연속 건설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1호기는 8년 만에 가동에 들어갔고, 같은 노형을 반복 건설해 온 한국의 새울 3호기는 공론화에 따른 공사 중단 등 다섯 차례 지연을 겪고도 착공 약 10년 만인 올해 4월 첫 시동에 도달해 하반기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다.
이런 복기를 마친 프랑스의 결론은 철수가 아니라 증설이었다. 2026년 3월 17일 마크롱 대통령은 신규 원전 부지인 펜리에서 원자력정책회의를 주재하고 차세대 노형 EPR2 6기의 본공사 착수를 승인했다. 최종투자결정은 2026년 말, 첫 호기인 펜리 1호기의 가동 목표는 2035~37년이고, 추가 8기의 예비 검토도 연말까지 마치기로 했다. 프랑스전력공사(EDF, Électricité de France)가 2025년 말 내놓은 6기 사업비 추산은 728억 유로, 기당 약 121억 유로다. 원화로 20조 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한국이 신형 2기 묶음을 약 11조~12조 원에 짓는 것과 비교하면 기당 3배가 넘는다.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계획의 본질은 원자로 기술이 아니라 금융 설계에 있다. 기당 20조 원짜리 설비를 일반 시장 금리로 조달하면 전기 원가의 태반이 이자가 되어 시장에서 버틸 수 없다. 프랑스 정부의 답은 두 가지다. 첫째, 총사업비의 60%를 국가가 보조하는 초저리 대출로 댄다. 재원은 프랑스 국민들의 대표 저축 상품인 리브레 A 예금이다. 둘째, 완공 후 40년간 차액계약(CfD, Contract for Difference)으로 매출을 고정한다. 행사 가격은 MWh당 100유로 이하, 원화로 환산하면 kWh당 160원 안팎이다. 시장 가격이 그보다 낮으면 국가가 차액을 보전하고, 높으면 사업자가 초과분을 반환한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십 년 치 매출이 확정되니 자본 비용이 내려가고, 그만큼 전기 원가도 내려간다. 이 구조는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국가보조 심사를 받고 있다.
kWh당 160원은 싼 전기가 아니다. 한국 원전의 정산단가가 60~70원대인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프랑스가 국민 저축과 40년짜리 국가 보증까지 동원하는 이유는, 이 전기가 "원자로부터 연료 농축, 기자재, 인력까지 자국 안에서 도는 전기"이기 때문이다. 위기 때 끊기지 않고, 지불한 돈이 해외 산유국이 아니라 국내 산업 생태계로 돌아오는 전기. 시장 원리로는 정당화되지 않는 가격을 안보의 가격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스 송전망 운영사는 2040년까지 전력망에만 1,000억 유로를 투자하는 계획을 내놨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가속과 프랑스의 원전 승부수는 흔히 대립하는 노선으로 그려지지만, 이번 위기를 통과하며 두 길의 공통분모가 더 선명해졌다. 수입 연료 의존을 줄이고, 에너지에 쓰는 돈이 자국 경제 안에서 돌게 만든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 두 길을 동시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큰 규모로 달리고 있다. 패널과 배터리와 원자로를 한꺼번에 늘리는 중국의 전략에 노선 논쟁은 없다. 기준은 하나, 자급이다.
한국의 셈법도 이 좌표 위에서 다시 그려지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하며,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유가에 따라 100조 원을 넘나든다. 이 돈은 전액 외화로 빠져나가고, 그 외화를 벌어 오는 무역흑자가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번 사태처럼 유가가 50% 뛰면 수십조 원이 추가로 빠져나가고, 그 부담은 유류세 인하분의 세수 감소와 가격 상한 보전 비용까지 더해 결국 재정과 가계로 돌아온다. 자급 설비에 들어가는 투자가 비싸 보이는 것은 평시의 눈이고, 위기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보험료다. 파키스탄의 지붕이, 프랑스의 리브레 A가, 독일의 인허가 단축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지불하고 있는 보험료다.
마지막으로 짚어 둘 것은 변동성의 문제다. 이번 위기가 보여 줬듯, 에너지 시장의 진짜 적은 높은 가격이 아니라 급등락이다. 가격이 널뛰면 셰일 기업은 증산 투자를 망설이고, 대체 에너지 투자자도 사업성 계산을 멈춘다. 화석연료 쪽도, 그 대안 쪽도 함께 얼어붙는 것이다. 차액계약 같은 장기 가격 확약, 비축과 의무화 같은 국가의 개입 장치가 세계 곳곳에서 부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십 년짜리 에너지 설비 투자는 수십 년짜리 가격 신호를 요구하는데, 그것을 줄 수 있는 주체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뿐이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언젠가 다시 열릴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2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필요한 에너지를 언제든,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전제가 무너진 자리에서 각국은 각자의 무기로 자급의 비중을 늘리는 경쟁에 들어섰다. 이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앞에 놓인 질문도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반복 건설로 다져 온 원전 생태계와 아직 초기 단계인 분산형 자원을 어떻게 묶어, 얼마나 빠르게 수입 의존을 줄이느냐. 에너지 안보의 시대가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이미 그쪽으로 옮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