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인텔처럼 망한다던 애플, 무엇이 달랐나

2026.05.23 · 3 min read · KO

2022년 말 챗지피티가 세상에 나오자 애플을 향한 의문이 쏟아졌다. 다들 거대 언어모델 만들기에 뛰어드는데 애플은 왜 가만히 있느냐, 한때 잘나가던 인텔이나 아이비엠처럼 시대에 뒤처질 것이다 같은 말이었다. 인텔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호령하고도 모바일과 인공지능 칩 흐름에서 밀렸고, 아이비엠은 컴퓨터의 대명사였지만 개인용 시장의 주도권을 내줬다. 애플도 그 전철을 밟으리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를 총괄하는 크레이그 페더리기는 비용에 민감하고 수익이 불확실한 투자에 회의적이라고 전해진다. 경쟁사들이 데이터센터와 칩에 수백억 달러를 쏟을 때, 애플은 대규모 인공지능 시설 투자를 서두르지 않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애플은 거대 언어모델을 직접 만드는 데는 발을 뺐지만, 다 만들어진 모델을 돌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였다. 애플 칩은 메모리를 칩과 한 몸으로 묶어 큰 모델을 통째로 올릴 수 있다. 그래서 가장 큰 모델을 개인용 기기에서 돌릴 때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보다 애플 칩이 오히려 낫다는 평가가 나오고, 일부에서는 엔비디아의 대안으로까지 거론된다. 모델을 만드는 데는 엔비디아가, 다 만든 모델을 돌리는 데는 애플이 유리한 셈이다.

여기서 짚을 사실이 있다. 애플도, 또 다른 신중파인 어도비도 인공지능 모델을 아예 안 만든 것이 아니다. 애플은 기기에서 도는 자체 모델을, 어도비는 이미지와 영상을 만드는 자체 모델을 운영한다. 두 회사가 피한 것은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무엇이든 추론하는, 가장 크고 비싼 범용 모델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유는 셈법이다. 가장 앞선 모델을 처음부터 만들고 유지하려면 1천억 달러가 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가들은 본다. 반면 잘 만든 모델은 훨씬 싸게 빌릴 수 있다. 실제로 애플은 올해 1월 구글의 모델을 빌려 새 음성비서에 쓰기로 했고, 비용은 연 10억 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빌린 모델은 더 좋은 것이 나오면 갈아 끼우면 그만이라 한 곳에 묶이지 않는 이점도 있다. 게다가 모델 사용료는 빠르게 떨어지고 선두도 자주 바뀐다. 최근 어떤 회사는 사용료를 67퍼센트, 다른 곳은 70퍼센트 넘게 내렸다. 누구나 비슷한 성능에 싼값으로 닿게 되면, 모델은 전기나 수돗물처럼 흔한 재화가 된다.

그렇게 되면 가치는 모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무엇과 묶어 어떻게 전달하느냐로 옮겨간다. 애플은 한때 더 똑똑한 음성비서를 약속하고도 거듭 미뤄 뒤처졌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 계약이 그 돌파구다. 애플의 무기는 전 세계 20억 대가 넘는 기기와 사생활 보호다. 간단한 일은 기기 안에서 처리하고 무거운 일만 외부로 보내되, 데이터는 자체 보안 서버에 가둔다. 애플의 올해 시설 투자는 140억 달러 안팎으로, 거대 클라우드 기업들이 인공지능 설비에 쏟는 돈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어도비는 다른 방식이다. 저작권 걱정이 적은 자체 모델을 갖추는 한편, 경쟁사 모델 수십 개를 자기 플랫폼으로 끌어들여 사용자가 골라 쓰게 한다. 아이디어를 짤 때는 외부 모델로 시도하고 납품용은 안전한 자체 모델로 끝낸다. 올해 4월에는 말로 결과만 일러 주면 포토샵과 프리미어를 알아서 다루는 도우미도 내놨다. 어떤 모델이 유행하든 전문가의 작업이 마무리되는 자리만큼은 쥐겠다는 것이다. 다만 영상과 이미지를 만드는 새 인공지능 서비스가 쏟아지면서 창작 노동이 흔들릴까 하는 우려에, 어도비 주가는 실적이 사상 최고인데도 최근 1년 새 크게 빠졌다.

성패는 한 가지에 달렸다. 가장 앞선 모델이 정말로 흔해지느냐다. 흔해지면 두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큰 이익을 얻는다. 반대로 특정 모델이 따라잡기 힘든 격차를 벌리면, 가장 중요한 기술을 남의 손에 맡긴 처지가 된다. 공교롭게도 애플에 모델을 빌려주는 구글은 기기와 운영체제와 최고의 모델을 모두 가진 유일한 경쟁자다. 한때 사람들은 애플이 인텔의 길을 걸으리라 했지만, 애플은 직접 만드는 대신 빌리고 자기가 가장 잘하는 자리를 지키는 쪽에 미래를 걸었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모델이 끝내 흔해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애플과 어도비가 AI 군비경쟁을 피하고 유통과 작업흐름에 집중하는 전략을 도식화한 인포그래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