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공지능(AI) 업계에서 부쩍 자주 들리는 단어가 있다. ‘토큰(token)‘이다. 토큰은 AI가 글을 처리할 때 쓰는 가장 작은 단위로, AI를 한 번 돌릴 때마다 얼마를 썼는지를 재는 잣대다. 사람이 글을 음절이나 낱말 단위로 읽어 나가듯, AI는 글을 토큰 단위로 끊어 읽고 쓴다. 전기요금이 쓴 만큼 매겨지듯, AI 요금도 처리한 토큰의 양만큼 매겨진다. 그런데 이 토큰을 둘러싼 풍경을 보면, AI가 일을 덜어 줄 것이라던 기대와는 사뭇 다른 흐름이 보인다. 일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먼저 비용을 보자.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AI 보고서에 따르면, 일정 수준의 성능을 내는 데 드는 토큰 처리 비용은 2022년 11월 100만 개당 20달러에서 2024년 10월 0.07달러로, 약 2년 만에 280배가 떨어졌다. 단가가 이렇게 떨어졌으면 AI에 드는 비용 부담도 한결 가벼워졌을 법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값이 싸진 만큼 마음 놓고 쓰게 되면서, 사용하는 양이 단가 하락분을 압도할 만큼 불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의 하루 평균 토큰 사용량은 2024년 초 1,000억 개에서 올해 3월 140조 개로, 2년 만에 1,000배 넘게 늘었다. 한 번 쓰는 값이 싸진 것이 절약이 아니라 더 큰 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물값이 싸지면 아껴 쓰기보다 오히려 더 펑펑 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 ‘많이 쓸수록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더해진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2026년 한 대담에서, 연봉 50만 달러를 받는 엔지니어가 토큰을 5,000달러어치만 썼다면 몹시 놀랄 것이며 적어도 그 절반인 25만 달러어치는 썼어야 한다고 말했다. AI를 충분히 쓰지 않는 것은 컴퓨터 설계 도구를 두고 연필로 도면을 그리는 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회사가 엔지니어들에게 연봉의 절반에 맞먹는 토큰을 따로 얹어 주려 한다고도 했다. 토큰을 얼마나 쓰느냐가 곧 실력의 증거로 통하기 시작하면서, 일부 기업은 AI 사용량을 인사 평가나 채용 기준으로 끌어왔다. 새 직원을 뽑으려면 그 일을 AI로 할 수 없는 이유부터 대라고 못 박은 회사도 있다.
이쯤 되면 일하는 사람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적게 쓰면 뒤처진 사람으로 비치니, 굳이 안 해도 될 일까지 AI에 떠넘기게 된다. 한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의 개발자는 AI를 너무 적게 쓴다고 지적받을까 봐 필요하지도 않은 작업까지 AI에 맡긴다고 털어놓았다. 평가를 위해 일감을 일부러 만들어 내는 셈이다. 간단한 메모 한 줄이면 될 일을 굳이 AI에 보고서로 부풀려 맡기고, 한 번 검색하면 끝날 일을 여러 단계 작업으로 돌리는 식이다. 줄어야 할 업무가 도리어 부풀어 오른다.
더 근본적인 부담은 따로 있다. 한 번 지시하면 하루 종일 스스로 돌아가는 ‘에이전트(agent, 사람이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여러 단계를 알아서 수행하는 AI)‘가 퍼지면서, AI가 쏟아내는 산출물의 양 자체가 폭발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맞는지는 결국 사람이 확인해야 한다. 만드는 일은 AI에 넘겼지만, 그것이 사실과 맞는지 가려내고 최종 책임을 지는 일은 그대로 사람에게 남는다. 회의록을 AI에 맡긴 직장인은 회의록을 쓰는 대신, AI가 정리한 내용 중 어긋난 대목을 골라내는 일을 하게 된다. AI를 여러 개 동시에 부릴수록 들여다봐야 할 양도 그만큼 불어난다. 손은 덜 움직여도, 마음 놓고 손을 떼지는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다.
비용은 떨어졌는데 쓰는 양은 폭증하고, 적게 쓰면 평가가 깎이니 일감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사람이 다시 다 들여다봐야 한다. 게다가 토큰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는 막대한 전기와 냉각용 물이 들어가, 사용량이 늘수록 그 청구서도 함께 불어난다. AI가 일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았다. 어떤 일은 분명 줄었지만, 그 자리에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점검하는 새로운 일이 들어찼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토큰 경제가 보여 주는 풍경은 그렇다. 도구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이 한가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적어도 아직은 절반의 진실에 머물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