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댄 매킨리(Dan McKinley)는 “지루한 기술을 골라라(Choose Boring Technology)“라는 글에서 ‘혁신 토큰(innovation token)‘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한 조직이 가진 혁신 토큰은 대략 세 개뿐이고, 검증되지 않은 새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그 토큰을 하나씩 소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루한 기술이란 나쁜 기술이 아니라, 능력과 실패 양상이 충분히 알려진 기술을 뜻한다. 새벽 세 시에 장애가 났을 때, 스택오버플로에 답이 쌓여 있는 기술을 디버깅하고 싶지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최근 애런 브레토스트(Aaron Brethorst)는 이 주장을 AI(인공지능) 시대에 다시 꺼내며, 원칙이 더 약해진 게 아니라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코딩 도우미는 어떤 기술 스택을 대든 그럴듯한 코드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내가 모르는 기술 두 개를 한꺼번에 쓰면 그 코드가 맞는지 틀린지 판별할 길이 없다는 데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은 자신 있게 거짓을 지어낸다. 모르는 기술이 겹칠수록 불확실성은 더해지는 게 아니라 곱해진다.
이 글에서 가장 정확한 통찰은 여기에 있다. AI는 코드를 만들어내는 비용은 크게 떨어뜨렸지만, 그 코드가 틀렸는지 알아채는 비용은 그대로 두었다. 무언가를 생성하는 능력과 그것이 잘못됐음을 잡아내는 능력은 별개다. AI는 앞쪽만 싸게 해준다. 그래서 병목은 생성에서 검증으로 옮겨갔고, 검증에는 여전히 그 분야에 대한 숙련도가 필요하다. 브레토스트가 자기 영역에서 AI를 강력한 도구로 쓸 수 있는 이유도, 생성이 공짜라서가 아니라 결과물이 이상할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니 익숙한 기술만 쓰라”는 결론까지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첫째, AI는 생성 리스크인 동시에 학습 가속기다. 혁신 토큰 경제학은 애초에 새 기술을 익히는 비용이 비싸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AI가 개념을 설명하고 막힌 곳을 함께 풀어가며 학습 곡선을 깎아낸다면, 새 기술을 들이는 쪽의 비용도 같이 내려간다. 토큰의 가격 자체가 변한 것이다.
둘째, “내가 이 코드를 직접 리뷰할 수 있는가”라는 검증 기준은 지나치게 빡빡하다. 검증은 사람이 코드를 한 줄씩 읽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타입 시스템, 컴파일러, 테스트, 실행 시점의 동작이 사람의 숙련도와 무관하게 상당 부분을 걸러낸다. 러스트(Rust)를 처음 만지는 사람도 빌림 검사기(borrow checker)에 걸려 메모리 오류를 출시 전에 차단당한다. 그러니 옳은 질문은 “내가 읽어서 잡아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못 잡는 실패 양상을 도구가 잡아주는가”이다. 후자의 기준으로 보면, 무작정 금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을 안전하게 허용할 수 있다.
오히려 브레토스트의 주장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지점은 그가 직접 말하지 않은 곳에 있다. 어떤 기술이 ‘지루하다’고 불리는 이유는 문서와 예제와 질의응답이 풍부하게 쌓여 있기 때문인데, LLM이 가장 정확하게 답하는 영역도 바로 그 잘 닦인 기술들이다. 모델은 인터넷으로 학습하고, 오래되고 안정적이며 잘 문서화된 기술일수록 학습 데이터에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SQL(구조화 질의 언어)이나 PostgreSQL, 정규표현식처럼 수십 년간 다져진 것들이다. 반대로 새로 나왔거나 버전마다 호환성이 깨지는 라이브러리는 모델에게 독약에 가깝다. 다시 말해 환각(hallucination)의 위험은 낯선 기술 쪽에 몰려 있고, 이는 ‘나의 미숙함’과 ‘모델의 미숙함’이 같은 자리에서 겹친다는 뜻이다. 두 위험이 서로 독립적으로 곱해지는 것보다 나쁜 상황이다. 매킨리가 하필 ‘토큰’이라는 단어를 골랐다는 점도 공교롭다. 한정된 혁신을 어디에 걸지 정하는 일이, 이제는 한정된 모델 호출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일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물론 연구는 사정이 다르다. 새로운 알고리즘과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인프라를 한꺼번에 다루는 일은 본래 ‘지루함’의 정반대다. 그러나 혁신 토큰 프레임은 원래 기업의 운영 시스템을 겨냥한 것이지 연구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연구자에게 옮기면 이렇게 번역된다. 실제로 새로움을 시험하는 핵심 한 덩어리에만 비싼 토큰을 걸고, 그 주위의 빌드와 배포와 보조 도구는 전부 지루하게 유지하라. 핵심도 새것, 주변도 새것을 한꺼번에 AI에 맡기는 순간, 무엇이 잘못됐는지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결국 지루한 기술의 진짜 장점은 안정성만이 아니다. 그것이 가장 잘 검증되는 기술이라는 데 있다. AI가 어떤 기술 스택을 대든 수천 줄의 코드를 자신 있게 쏟아낼 수 있는 시대에, 그 코드가 틀렸을 때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값지다. 그리고 그 능력이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지루한 기술 위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