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코드를 짜고, 계약서 초안을 잡고, 보고서를 쓴다. 한때 오랜 숙련이 있어야 나오던 결과물을 이제는 명령 몇 줄로 얻는다. 그래서 “이제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퍼진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그 기대와 조금 어긋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에런 브레토스트(Aaron Brethorst)가 최근 쓴 글이 이 어긋남의 정체를 잘 짚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예로 들어 보자. 어려운 부분은 한 번도 코드를 입력하는 작업 그 자체였던 적이 없다. 급여 계산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려면 4대 보험료, 비과세 수당, 중도 입·퇴사자 정산처럼 그 업무의 규칙을 먼저 머릿속에 정확히 세워야 했다. 코드는 그렇게 세운 이해를 받아 적은 결과물에 가까웠다. 진짜 일은 그 분야를 아는 것이었고, 코드 작성은 이해를 옮기는 마지막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소프트웨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회계 장부든 설계 도면이든, 결과물 뒤에는 늘 그 분야를 읽어 내는 머릿속 모형이 있었다.
AI는 이 두 가지를 갈라놓았다. 이제는 분야를 깊이 몰라도 그럴듯한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일의 병목이 옮겨갔다. 예전에는 “만들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맞는지 가려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됐다. 만드는 일은 쉬워졌지만, 그 결과를 믿어도 되는지 판단하는 일은 조금도 쉬워지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사람 사이에 비대칭이 생긴다. 10년 동안 급여를 정산해 온 담당자는 AI가 내놓은 명세서를 한눈에 보고 “이런 숫자는 규정상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의료비를 오래 다뤄 온 직원은 청구 코드만 봐도 “이렇게 청구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반대로 프로그래밍에는 능하지만 해당 업무를 모르는 사람은, 오류 없이 돌아가고 겉보기에 멀쩡하지만 미묘하게 틀린 결과를 가려낼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오류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화면에는 멀쩡한 숫자가 떠 있고, 잘못은 한참 뒤 정산이나 감사에서야 드러난다. 무엇이 정답인지를 몸으로 아는 사람만 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전환이 일어난다. AI가 ‘만드는 능력’을 흔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정작 코딩이 약했던 현장 전문가도 이제 AI를 시켜 결과물을 직접 뽑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모자랐던 부분은 기계가 채워 주고, 기계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 곧 무엇이 정답인지 알아보는 눈만 그들의 몫으로 남는다. 반대로 그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AI가 아무리 결과물을 빨리 만들어 줘도 그것이 옳은지 판단할 길이 없다. 그리고 정답을 알아보는 눈은 명령어 몇 줄로 살 수 없다. 오랜 시간 그 일을 직접 겪어야만 쌓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물 몇 개를 눈으로 훑는다고 모든 오류가 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오답은 전문가도 놓친다. 그래도 큰 흐름은 분명하다. 법률, 회계, 진료, 전력설비처럼 정답이 그 분야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일일수록, AI는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 줄 뿐 그것이 옳은지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AI 시대에 오히려 희소해진 자원은, 한 분야를 오래 다뤄 보고 무엇이 옳은지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