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AI가 쏟아내는 시대, 정작 귀해진 자원

2026.06.02 · 2 min read · KO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터에 들어온 뒤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산출량이다. 코드든 보고서든 기획서든 버튼 한 번이면 몇 페이지가 쏟아진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오래 일한 한 창업가가 최근 내놓은 진단은 다른 곳을 가리킨다. 진짜 귀해진 자원은 쏟아지는 산출물이 아니라, 그것을 읽고 판단할 사람의 주의력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AI가 만들어내는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사람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은 그대로다. 결국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쏟아진 것 가운데 사람이 무엇을 검토할 수 있느냐가 새로운 병목이 된다.

문제를 키우는 것은 ‘AI 군더더기’다. AI는 장황한 설명과 불필요한 곁가지를 잘 만든다. 그 자체로는 무해해 보여도, 다음 AI가 그 곁가지를 읽고 학습해 똑같이 부풀린 결과를 내놓는다. 군더더기가 군더더기를 부르며 품질이 천천히 무너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사람이 일일이 검토하는 방식으로는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진단이다. AI가 한 번에 수천 줄을 쏟아내면, 사람은 끝까지 읽지 못한 채 승인 단추를 누르게 된다. 검토했다고 표시됐을 뿐 실제로는 읽히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일거리를 사람이 감당할 만한 크기로 잘게 쪼개고, 되돌리기 어려운 중요한 결정에만 사람의 눈을 집중시키는 쪽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

그만큼 사람의 역할도 옮겨간다. 많이 만드는 일은 기계에 넘기고, 사람은 전체 구조를 어떻게 짤지와 무엇을 거부할지를 맡는다. 만드는 비용이 거의 공짜에 가까워질수록,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판단의 값어치는 오히려 커진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영역을 나누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AI가 마음껏 시도해도 되는 ‘안전한 놀이터’와, 한번 잘못 설계하면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핵심 골격’을 구분하는 것이다. 놀이터에서 나온 결과물은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다시 만들면 된다. 다시 만드는 비용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싸졌기 때문이다.

한 가지 통념도 뒤집힌다. 예전에는 일하다 설계가 어긋난 것을 발견해도, 다시 짜는 품이 아까워 일단 두고 나중에 고치자며 미루는 일이 흔했다. 지금은 반대다. 다시 짜는 비용은 싸진 대신, 어긋난 설계를 그대로 두면 그 위에서 일하는 AI들이 잘못을 그대로 베껴 문제가 빠르게 불어난다. 미루는 쪽이 오히려 더 비싼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사람의 값어치도 다시 매긴다. 한 분야를 깊이 아는 능력보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굴리며 흐름을 놓치지 않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전망이다. AI를 잘 부리는 사람은 생산성이 몇 배로 뛰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빠른 속도로 문제를 양산하는 쪽이 된다. 같은 도구가 누군가에겐 증폭기로, 누군가에겐 위험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코딩 현장의 이야기지만, 군더더기를 쏟아내는 AI와 그것을 걸러낼 시간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구도는 보고서와 회의록, 이메일이 오가는 거의 모든 사무 현장에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도구가 많이 만들어줄수록,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사람의 안목이 일의 질을 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