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이불 밖은 위험해 — 그래도 나가야 하는 이유

2026.04.27 · 2 min read · KO

한때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유행했다. 요즘 AI 스타트업판이 딱 그 모양이다. SNS에 사진 한 장 올리고 “내 퍼스널 컬러 시즌이 뭔지 알려줘”라고 입력하면, AI가 어울리는 옷 색상까지 시각화해 보여주는 콘텐츠가 줄을 잇는다. 인스타그램과 스레드에서는 이미 바이럴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오프라인에서 10만 원 안팎을 받던 퍼스널 컬러 진단 서비스가 단숨에 무료 AI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인테리어 시뮬레이션, 헤어 변신, 패션 코디처럼 ‘사진 한 장으로 시각화’해 주는 서비스 분야도 비슷한 운명을 앞두고 있다.

이것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일정한 패턴이 굳어졌다. ChatGPT(챗지피티)가 카피라이팅 기능을 강화하자 글쓰기 자동화 스타트업이 무너졌고, 이미지 모델이 강해지자 이미지 편집 스타트업이 흔들렸다. 에이전트 기능이 풀리면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사무 업무 자동화) 솔루션이 위협받는다. 업계에서는 “AI가 한 번 업데이트되면 스타트업 한 카테고리가 사라진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됐다.

원인은 분명하다. 거대 AI 모델 위에 얇게 기능을 얹은 사업, 이른바 ‘AI 래퍼(wrapper)’ 모델은 다음 모델 발표가 곧 사망 선고다. OpenAI(오픈AI), Anthropic(앤트로픽), Google(구글)이 매 분기 능력을 확장하는데, 그 확장 경로 위에 앉은 작은 회사들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린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를 두고 애플이 인기 있는 서드파티 앱 기능을 자체 운영체제에 흡수해 버린 사례에 빗대 ‘셜록당했다(Sherlocked)‘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불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하는가. 모든 시도가 어차피 다음 모델에 잡아먹힐 운명이라면, 손을 놓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살아남는 패턴은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첫째, 거대 모델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자체 데이터와 도메인 자산에 뿌리를 내린 사업이다. 의료 영상, 산업 현장 센서, 폐쇄망 운영 데이터, 특정 산업의 실측 기록은 인터넷 공개 데이터로 학습된 범용 AI가 접근할 수 없다. 둘째, 규제와 인증의 장벽이 있는 영역이다. 의료기기, 금융 시스템, 국방, 전력망 같은 분야는 단지 똑똑한 AI라고 해서 들어갈 수 없다. 인허가, 안전 기준, 책임 소재라는 두꺼운 벽이 보호막이자 진입 장벽이 된다. 셋째, 물리적 작업 흐름과 결합된 영역이다. 하드웨어 통합, 현장 운영, 사람의 손이 개입해야 하는 일은 모델 한두 줄 업그레이드로는 대체되지 않는다.

요컨대 살아남는 길은 ‘AI 위에 얇게 얹은 서비스’가 아니라, ‘AI가 손댈 수 없는 깊고 좁은 영역’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퍼스널 컬러 진단도 마찬가지다. 셀카 한 장으로 시즌을 알려주는 입문급 서비스는 사라지겠지만, 표준 조명 아래에서 천을 직접 대보고 결혼·면접처럼 실패 비용이 큰 순간을 책임져 주는 전문 컨설팅은 오히려 ‘AI와는 격이 다르다’는 포지셔닝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도 의료영상 분석, 자율주행 시험, 반도체 공정 데이터처럼 현장과 규제가 결합된 영역의 기업들은 오히려 AI 발전과 함께 가치가 커지고 있다.

이것은 비단 창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직장인이 자기 경력을 어디에 투자할지, 자녀에게 어떤 진로를 권할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순히 ‘챗GPT를 잘 쓰는 능력’은 모두가 평준화될 것이다. 결국 차별점은 AI가 닿지 못하는 자기만의 데이터, 자기만의 현장 경험, 자기만의 책임 영역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이불 안에만 머물 수도 없다. 위험한 이불 밖에서도 살아남을 자리는 분명히 있다. AI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부터 정하고 그다음에 이불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