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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 AI 시대의 관계

AI 시대, 곁에 두어야 할 세 사람

도구를 아는 사람, 의도를 아는 사람, 확신을 가진 사람. 생산성이 상향평준화되는 시대일수록, 차이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 곁에서 일하느냐’에서 벌어진다.

주제 커리어 · 조직 · 생산성분량 읽는 데 약 8분

AI가 일자리를 통째로 앗아간다는 공포는 지난 몇 년간 가장 널리 팔린 이야기였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가 그리는 그림은 ‘대체’가 아니라 ‘증폭’에 가깝다. 대규모 현장 실험에서 인공지능 보조 도구는 고객 응대 직원의 생산성을 평균 14% 끌어올렸고, 경력이 짧은 신입일수록 효과가 커서 하위 숙련층은 34%까지 향상됐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 사용자는 주 40시간 기준 약 2.2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6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6%가 “AI 덕분에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쓴다”고 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AI는 만능 해결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기간의 다른 연구들은 정반대의 얼굴을 함께 보여준다. MIT의 기업 AI 도입 조사(2025)는 기업용 생성형 AI 파일럿 가운데 손익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남긴 것이 5%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숙련 오픈소스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 실험(METR, 2025)에서는 참가자들이 AI를 쓸 때 실제로 작업을 19% 더 느리게 끝냈다 — 본인들은 빨라졌다고 믿었는데도 말이다. AI의 실력은 겉보기에 비슷한 난이도의 과제들 사이에서도 들쭉날쭉하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들쭉날쭉한 기술 경계(jagged technological frontier)’라 부른다. 경계 안쪽에서는 성능이 치솟지만, 경계 밖에서는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에 사람이 과신하면서 오히려 결과가 나빠진다.

정리하면 이렇다. AI는 실행(execution)을 압축한다. 초안 작성, 자료 조사, 반복 계산, 요약처럼 ‘정답이 있고 검증이 쉬운’ 일에서 특히 강하다. 그러나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모호함 속에서 옳은 방향을 고르고, 결과가 ‘충분히 좋은지’를 판단하는 일 — 판단이 지배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병목이자 가치의 원천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최근 분석은 이 비대칭을 이렇게 요약한다. AI는 숙련의 아래쪽 격차는 좁히고, 위쪽 격차는 오히려 벌린다.

+14%
AI 도입 시 평균 생산성
(신입은 +34%)
5%
손익에 실제 영향을 남긴
기업 AI 파일럿 비율
−19%
숙련 개발자가 AI를 썼을 때
오히려 느려진 속도

회사는 여전히 사람이 모여 일을 하는 곳이다. 사람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고, 질서와 서열이 생기고, 협업과 거리 두기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생산성의 바닥이 AI로 올라올수록, 남은 차이는 도구를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까이 일하느냐에서 벌어진다. 아래 세 유형은 그 차이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변하지 않는 축: 신뢰 · 주관 · 긍정

기술이 무엇으로 바뀌든 관계의 토대는 그대로다

세 유형으로 들어가기 전에 짚어둘 것이 있다. 함께 일할 사람을 고르는 오래된 기준 — 신뢰할 수 있는가, 자기 주관이 있는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가 — 는 시대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 축은 계산기 시절에도, PC와 엑셀이 사무실을 바꾸던 시절에도 유효했고 앞으로도 그렇다. AI가 바꾸는 것은 이 토대 ‘위에’ 무엇을 잘하는 사람과 가까이해야 유리한가 하는 문제다. 아래 세 유형은 신뢰·주관·긍정을 대체하는 기준이 아니라, 그 위에 얹히는 시대적 조정값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01
도구를 아는 사람
THE TOOL-LITERATE

자고 일어나면 새 도구가 쏟아지고, 어제의 최적 설정이 오늘 낡은다. 여기서 흔히 저지르는 착각은 ‘나도 다 따라잡아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조바심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모든 도구를 좇는 대신, 이 흐름을 진심으로 파고드는 한 사람을 곁에 두면 된다. 어느 조직에나 새 도구가 나오면 제일 먼저 써보고, 워크숍을 찾아다니고, 남들이 헤매는 지점을 이미 정리해둔 사람이 있다.

핵심은 그 사람에게 무엇을 묻느냐다. “요즘 뭐가 제일 좋아요?”는 나쁜 질문이다. 도구 이름 하나를 얻어봐야 다음 주면 또 바뀐다. 좋은 질문은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걸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접근하면 될까요?” 이렇게 물으면 도구 이름이 아니라 문제와 해법을 잇는 지도를 얻는다. 도구는 상향평준화되지만, 여러 도구를 문제에 맞게 조합하는 감각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왜 옆자리인가

MIT 조사는 흥미로운 지하경제 하나를 드러냈다. 직원의 90% 이상이 회사가 공식 승인하지 않은 개인 AI 도구를 업무에 쓰고 있고, 종종 공식 도구보다 그쪽에서 더 큰 효용을 얻는다는 것이다. 실전 지식은 위에서 내려오는 매뉴얼이 아니라 이미 써본 옆자리 실무자에게 고여 있다. 도구를 아는 사람을 곁에 두라는 말은, 이 비공식 지식의 저수지에 접근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에게 차 한 잔, 밥 한 끼의 값을 아끼지 말 것. 진짜 파고든 사람이라면 자기가 아는 것을 대개 그 자리에서 보여주고, 모르면 찾아본 링크라도 건넨다. 이 관계 하나가 AI 시대에 ‘일단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의 폭을 넓힌다.

02
의도를 아는 사람
THE INTENT-HOLDER

이것이 AI 시대의 핵심이다. 조금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실무의 언어로 옮기면 분명해진다. 지식노동이 대체되지 않고 오히려 강해지려면 하나의 고리가 돌아야 한다. 의도에서 출발해 기획으로 구체화하고, 실행으로 부딪히고, 그 결과를 학습해 다시 의도를 다듬는다. 이 고리가 반복되며 커질수록 그 사람의 전문성은 복리처럼 불어난다.

선순환 복리처럼 커지는 전문성 의도 Intent 기획 Plan 실행 Execute 학습 Learn
의도 없는 기획은 헛돈다. AI는 이 고리의 ‘실행’ 구간을 압축하지만, 앞단(의도·기획)과 뒷단(학습·판단)은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이 고리에서 AI가 손대는 곳은 대부분 ‘실행’이다. 실행이 압축되면 병목은 앞뒤로 이동한다 — 무엇을 왜 하려는가(의도)와, 그 결과가 옳았는지 판단하는가(학습)로. 그래서 의도를 아는 사람의 값이 오른다.

의도에 맞지 않는 일은, AI로 빨리 많이 할수록 손해가 커진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기획 아래 정렬돼 있다. 팀원은 팀장의 의도에 맞춰, 실무자는 고객의 의도에 맞춰 움직인다. 종합적인 시야로 방향과 전략과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 — 대개 상층부 — 이 그 의도의 진원지다.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하는 능력은 AI 시대로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생산성은 AI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결정만 옳으면 그 일을 빨리 끝내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방향이 틀린 채 속도만 붙을 때다.

여기에는 실증적 뒷받침도 있다. 앞서 말한 들쭉날쭉한 경계 실험에서, 사람들이 손해를 본 건 AI가 경계 밖 과제에 내놓은 그럴듯한 오답을 걸러내지 못했을 때였다. 무엇이 경계 안이고 밖인지 가르는 것이 바로 맥락과 의도에 대한 감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5년 보고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가 발전할수록 모호함 속에서 옳은 행동을 고르는 인간의 판단이 더 결정적이 된다는 것이다.

역할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도 이 흐름을 밀어붙인다. 기획자가 개발팀 없이 이른바 ‘바이브 코딩’으로 간단한 시스템을 직접 붙여보고 물어볼 수 있는 시대다. 실행 도구를 다루는 손보다, 무엇을 왜 만드는지를 아는 머리가 레버리지가 된다. 상사나 고객의 의도를 읽어내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시도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자체가 넓어진다.

03
확신을 가진 사람
THE CONVICTION-HOLDER

세 번째는 앞의 둘과 이어지면서도 결이 다르다. 콘텐츠와 도구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지금은 날마다 포모(FOMO, 뒤처질까 하는 불안)와 싸워야 하는 시대처럼 느껴진다. 그 한복판에서, 자기가 가야 할 길에 확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 여기서 확신은 최신 정보를 많이 아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비전, 그리고 조금 더 무거운 말이지만 자기만의 철학 — 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이런 사람을 곁에 두면 두 가지를 얻는다. 하나는 생산성 너머의 네트워크다. 자기 기준과 방향을 가지고 일관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 예상치 못한 세계로 통하는 다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약한 연결의 힘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가 1973년에 내놓은 고전적 발견이 여기 맞닿는다. 새로운 기회와 정보는 매일 붙어 지내는 강한 연결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걸쳐 있는 ‘약한 연결’에서 온다. 가까운 사람들은 대개 나와 같은 정보 안에 산다.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오히려 느슨한 연결이다. 링크드인 사용자 2천만 명을 5년간 추적한 대규모 실험(2022년 사이언스 게재)도 이 가설을 다시 확인했다. 확신을 가지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바로 그 ‘다른 세계로 걸친 연결’이 되기 쉽다.

다른 하나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다. 그런 사람에게 물어보라. 왜 그렇게 일합니까?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배우고, 왜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습니까? 그 답 하나하나가 안에서 소화되면, 시간이 지나 자기만의 방향과 철학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축이 생기면 포모가 힘을 잃는다. 무언가를 안 하면 큰일 난다는 쫓김에서 벗어나, 내가 그 길로 가느냐 아니냐만 남는다.

결국은 흐름이다

계산기, PC, 엑셀이 그랬듯

AI 역시 결국 하나의 흐름이자 트렌드다.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왔을 때, 스프레드시트와 운영체제가 사무실을 바꾸던 때에도 비슷한 충격이 있었다. AI가 그 어느 것보다 깊고 넓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이 하던 일의 구조를 크게 바꾸지는 않는다. 도구는 실행을 압축하고, 방향과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곁에 둘 세 사람은 이 몫의 지도를 따라간다. 생산성은 도구를 아는 사람에게 배워 AI에게 맡기고, 방향은 의도를 아는 사람에게서 읽어내고,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확신을 가진 사람 곁에서 벼린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 이 세 사람을 곁에 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그 세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다. 포모의 한가운데 서 있다면, 남의 확신을 부러워하기보다 한 걸음씩 자기 길을 딛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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