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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기술

가져오는가, 만들어내는가 — 설교 준비의 AI 분별선을 다시 긋는다

한 개혁주의 목사가 인공지능 사용을 분별하는 세 가지 질문을 내놓았다. 질문은 정직하지만, 세 개 모두 조금씩 옆으로 옮겨야 작동한다.

2026년 8월 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매튜스의 크라이스트 커버넌트 교회 담임목사이자 리폼드신학교(샬럿) 조직신학 부교수인 케빈 디영이 청중 질의응답 자리에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기술에 밝은 사람이 아니며 뒤늦게 받아들이는 쪽이라고 먼저 밝힌 뒤, 스스로에게 묻는 세 가지를 내놓았다. 자료를 가져오게 하는가 아니면 만들어내게 하는가, 이 도구가 내 일을 더 낫게 하는가, 남이 만든 결과물을 내 것처럼 내놓고 있지는 않은가.

목회자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제 사변이 아니다. 바나 그룹이 글루(Gloo)와 함께 2025년 12월 미국 개신교 목회자 442명을 조사한 결과, AI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응답은 13%였다.

87%어떤 형태로든 AI를 쓰는 미국 개신교 목회자
36%성경·신학 연구에 사용
24%설교를 쓰거나 고치는 데 사용 (2024년 초 12%)
30%AI의 영적 조언이 목회자 조언만큼 믿을 만하다는 미국 성인

세부 항목은 브레인스토밍 50%, 그래픽·시각물 제작 37%, 성경·신학 연구 36%, 소그룹 토의 질문 생성 34%, 일정·이메일 같은 행정 34% 순이었다. 설교 작성·편집은 24%로, 2024년 초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느낀다"는 응답 12%에서 두 배가 됐다. 한편 같은 시기 다른 조사(교역자·교회 사역자 594명 대상)는 설교를 준비하는 응답자의 3분의 2 가까이가 준비 과정 어딘가에서 AI 도구를 쓴다고 보고했다. 24%와 65%의 간극은 조사 오차가 아니라 질문의 경계다. 앞은 설교문을 쓰거나 고치는 일을 물었고, 뒤는 준비 과정 전반을 물었다. 이 간극 자체가 디영이 그으려는 선이 실무에서 얼마나 미끄러운지를 보여준다.

첫 번째 선: 색인과 생성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그가 든 예는 구체적이다. 바울 서신에서 성령이 언급된 용례를 모두 뽑아 달라고 하는 것과, 바울의 성령 이해를 500단어로 요약해 달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후자가 그르다고 단정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고 그는 말했다. 앞의 요청은 자기가 할 일을 정리해 주는 것이고, 뒤의 요청은 자기가 할 일을 대신 하는 것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이 구분은 도구가 색인이었을 때 유효했다. 스트롱 성구사전이나 성경 소프트웨어의 검색 결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꺼내 온 것이고, 꺼내 온 것과 지어낸 것 사이에는 물리적 경계가 있다. 대규모 언어모델에는 그 경계가 없다. 두 요청 모두 확률적 생성이다. 목록도 요약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검증 부담이 뒤집히는 자리

500단어 요약은 목사가 읽고 자기 신학과 대조해 즉시 걸러낼 수 있다. 반면 서른 개짜리 구절 목록은 형식이 규칙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확인을 마친 자료처럼 보인다. 인용·식별자 조작을 측정한 연구들은 이 착시가 비싸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터스와 와일더는 GPT-3.5가 생성한 참고문헌의 55%, GPT-4의 18%가 실재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보고했고, 인문학 분야에서는 DOI(디지털 객체 식별자) 조작률이 89.4%까지 올라갔다. 법률 질의에서는 모델에 따라 58~88%, 법률 전용 검색증강 도구에서도 17~33%의 조작이 남았다. 성구 번호는 대조하면 확인되지만, "이 구절이 성령의 인격성을 말한다"는 식의 분류와 귀속은 번호 대조로 걸러지지 않는다. 안전해 보이는 쪽의 검증 비용이 실제로는 더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남는다. 목록을 뽑아 달라는 요청 자체가 이미 해석이다. 헬라어 프뉴마(πνεῦμα)의 어떤 용례를 성령으로 셀 것인지는 번역과 주석의 판단이며, 로마서 8장의 여러 프뉴마가 사람의 영인지 하나님의 영인지는 주석가마다 갈린다. 에베소서와 목회서신을 바울 서신에 포함할 것인지도 마찬가지다. 목록이 출력되는 순간 그 판단은 이미 내려져 있고, 누가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져오기에는 신학이 없다는 전제가 여기서 무너진다.

그러므로 실제로 유효한 선은 생성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출력이 틀렸을 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형태인가가 선이다. 이 기준으로 다시 세우면 디영이 불편해한 요약 쪽이 오히려 안전한 지대에 들어오고, 안전하다고 본 목록 쪽이 경고 구역으로 넘어간다.

두 번째 선: 능력을 잃는다는 감각에는 실증이 있다

그는 글 쓰는 능력과 생각하는 능력을 AI에 빼앗길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미 그렇게 할 줄 아는 세대와, 처음부터 도구에 의존해 온 세대가 다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직관에는 최근의 실험 증거가 붙어 있다.

MIT 미디어랩의 코스미나 등이 2025년에 내놓은 연구는 참가자 54명을 세 집단(언어모델 사용, 검색엔진 사용, 도구 없음)으로 나누어 넉 달에 걸쳐 에세이를 쓰게 하고 뇌전도(EEG, Electroencephalography)로 신경 연결성을 측정했다. 언어모델 집단의 연결성이 가장 약했고(도구 없이 쓴 집단 대비 최대 55% 감소로 보고됐다), 방금 자기가 제출한 글에서 한 문장도 인용하지 못한 비율이 83%였다. 다른 집단에서는 약 11%였다. 결과물에 대한 소유감도 가장 낮았고, 같은 주제를 다룬 글끼리 통계적으로 균질했다. 사람 채점자와 AI 채점자 모두 문법과 구조 점수는 높게 줬다.

단서는 분명히 붙여야 한다. 이 연구는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공개본이고, 표본은 54명(4회차는 18명)이며, 과제는 대학생 수준의 짧은 에세이다. 2026년에 스탄코비치 등이 표본 규모와 뇌전도 방법론, 재현성을 문제 삼는 반론을 냈다. 다만 목회 준비는 학생 에세이보다 오히려 이 실험 조건에 가깝다. 주 단위로 반복되고, 마감이 고정돼 있고, 산출물의 형식이 정해져 있고, 잘 읽히는 결과물이 곧 성공처럼 보이는 구조다.

질문이 산출물 쪽으로 되돌아가는 대목

디영의 두 번째 질문은 "더 낫게, 더 창의적으로, 더 탁월하게 하는가"다. 이것은 결과물의 품질을 재는 자다. 그런데 개혁주의 설교론이 오래 주장해 온 것은 준비 과정이 설교자를 먼저 바꾼다는 명제였다. 본문과 씨름한 시간이 강단에 서기 전에 설교자를 먼저 다룬다는 것이다. 그 전제를 받아들이면 물어야 할 것은 결과가 나아졌는지가 아니라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다. 두 질문의 답은 갈릴 수 있고, MIT 연구가 잡아낸 것이 정확히 그 갈림이다. 글은 좋아졌는데 쓴 사람 안에 남은 것은 적었다. 디영은 이 갈림 바로 앞까지 왔다가 산출물 쪽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세 번째 선: 문제는 표절이 아니라 답할 사람이다

세 번째 질문에서 그는 비유를 하나 쓴다. 교재를 사서 쓰면 회중이 그 사실을 안다. 몇 쪽을 펴라고 말하는 순간 출처가 드러난다. 그런데 AI가 만든 토의 질문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밝히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비유는 한 지점에서 어긋난다. 교재에는 저자와 출판사와 교단이 붙어 있다. 신학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물을 대상이 있다. 언어모델 출력에는 저자가 없다. 밝힌다 해도 회중이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이 쓰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뿐이고, 무엇이 그 답을 형성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공개는 문제의 절반만 처리한다.

게다가 강단에서 자기 것이라는 개념은 원래부터 순수하지 않았다. 2021년 남침례회에서 벌어진 설교문 표절 논란이 그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총회장으로 갓 선출된 에드 리턴이 전임 총회장 J.D. 그리어의 로마서 설교를 상당 부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영상 대조로 밝혀졌다. 리턴은 허락은 받았으나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그런데 해명 과정에서 그리어가 쓴 표현 하나는 젠 윌킨에게서 온 것이었고, 윌킨은 다시 R.C. 스프로울의 책을 인용한 것이었다. 삼중의 차용 사슬이 드러난 셈이다.

사슬 끝에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AI가 새로 만든 문제는 차용 자체가 아니다. 사슬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물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스프로울까지 올라가면 책임질 사람과 확인할 수 있는 신학적 입장이 있었다. 모델까지 올라가면 학습 데이터의 중앙값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강단에서 틀린 교리가 나왔을 때 교단 치리회가 소환할 대상은 여전히 목사 한 사람이다. 확인하지 않은 문장을 읽었다는 사실은 정상 참작 사유가 되지 않는다. 밝혔든 밝히지 않았든 마찬가지다.

그가 예상한 도장, 실제로 온 도장

그는 언젠가 "이 글은 100% AI로 만들지 않았다"는 도장을 찍어야 할 때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방향이 반대로 왔다. 그가 이 답을 하기 이틀 전인 2026년 8월 2일,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I Act, Regulation (EU) 2024/1689) 제50조의 투명성 의무가 시행에 들어갔다. 생성형 시스템 제공자는 합성된 텍스트·이미지·오디오·영상 출력에 기계 판독이 가능한 표식을 넣어 인공 생성물임을 탐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표식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 쪽에 붙는다. 시행 전 출시된 시스템에는 2026년 12월까지 유예가 있고, 8월 2일 이전 생성물의 소급 표시 의무는 없다.

제50조 2항에는 면제 조항이 있다. 표준적 편집을 돕는 보조 기능이거나, 입력 데이터와 그 의미를 실질적으로 바꾸지 않는 경우다. 이 면제선은 디영이 그으려던 선과 거의 같은 자리를 지난다. 다만 법이 보는 것은 사람이 생각을 했는지가 아니라 의미가 바뀌었는지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성령 용례를 뽑아 달라는 요청은 면제 쪽이 아니라 생성 쪽에 선다. 있던 자료를 옮긴 것이 아니라 없던 목록을 산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직관과 규제의 논리가 정확히 반대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미국 교회 강단은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설교가 제50조 4항이 말하는 공익 사안에 관한 텍스트에 해당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도장이 온다면 법이 아니라 교단 규약으로 올 것이다.

그가 답하지 않기로 한 부분

디영은 자기 답이 특수한 답이라고 두 번 말했고, 인간론적 함의는 더 밝은 사람들의 몫이라며 명시적으로 물러났다. 자기 한정은 정직하지만 프레임의 사정거리도 함께 정한다. 그의 세 질문은 모두 목사가 자기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묻는다. 회중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같은 조사 시리즈에서 미국 성인 1,514명을 대상으로 한 2025년 11월 조사 결과, AI가 주는 영적 조언이 목회자의 조언만큼 신뢰할 만하다는 데 어느 정도 이상 동의한 비율이 30%였다. 목회자 쪽에서는 79%가 AI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상황을 우려했고, 63%는 목회자와 영적 지도자의 역할 자체가 대체되는 것을 우려했다. 목사가 강단 뒤에서 무엇을 쓰느냐보다 큰 변화는 회중이 이미 다른 곳에서 답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 윤리의 질문은 그 변화에 닿지 않는다.

발화 위치도 프레임을 만든다. 스무 권 넘는 책을 쓴 저자이고 조직신학을 가르치며 2025년 교단 총회 의장을 맡았던 사람에게, 문장을 짓는 능력은 부수 기능이 아니라 직업의 본체다. 그가 창의성을 빼앗길까 두렵다고 말할 때 그것은 보편 원칙이 아니라 자기 직군의 위험 보고서다. 숫자를 다루는 재무 담당자는 다른 보고서를 낼 것이고, 그 자신이 먼저 그 점을 인정했다.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측 지점의 문제다.


앞으로 3년

  1. 2028년 중반까지 미국 주요 개신교 교단 가운데 최소 한 곳이 설교 준비에서의 AI 사용과 공개에 관한 성문 지침이나 결의를 채택한다. 사용률이 이미 4분의 1을 넘었고, 표절 논란의 선례가 축적돼 있으며, 교단 총회는 통상 논란이 터진 뒤에 규칙을 만든다. 반증 조건2028년 중반까지 주요 교단의 총회·연차총회 안건에 관련 결의안이 한 건도 상정되지 않으면 이 예측은 틀렸다.
  2. 설교에 AI를 쓴다는 비율과 그것을 회중에게 밝히겠다는 비율의 격차가 벌어진다. 사용률은 2년 만에 두 배가 됐지만 같은 조사에서 71%가 주저를 표했고 40%는 갈등을 느낀다고 답했다. 편치 않은 채로 쓰는 도구는 공개되지 않는 쪽으로 정착하기 쉽다. 반증 조건후속 조사에서 공개 의향 비율이 사용률과 같거나 더 빠른 속도로 오르면 틀렸다.
  3. 다음 설교 표절 논란은 사람이 사람을 베낀 형태가 아니라, 서로 모르는 두 교회의 설교가 같은 모델의 같은 출력으로 수렴한 형태로 터진다. MIT 연구에서 언어모델 집단의 글은 주제별로 통계적으로 균질했다. 균질성은 개인의 도덕 문제가 아니라 도구의 성질이며, 수렴은 의도 없이 발생한다. 반증 조건향후 3년 안에 그런 수렴 사례가 보고되지 않고 기존 유형의 논란만 반복되면 틀렸다.

디영의 세 질문은 버릴 것이 아니다. 다만 세 개 모두 조금씩 옆으로 옮겨야 지금의 도구 앞에서 작동한다. 가져오기냐 만들어내기냐가 아니라 틀렸을 때 알아챌 수 있느냐, 결과가 나아졌느냐가 아니라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밝혔느냐가 아니라 이 문장에 대해 누가 답하느냐. 세 번 다 초점이 산출물에서 사람 쪽으로 옮겨간다. 그가 마지막에 꺼낸 표현, 무결성을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는 말은 실은 그 방향을 이미 가리키고 있었다. 프레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기 프레임이 가리킨 곳까지 끝까지 가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