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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icy · 1710–2026

최선의 세계라는 변론 —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이 견디지 못한 자리

1755년 11월 1일 만성절 아침, 리스본이 무너졌다. 지진 규모는 모멘트 규모 7.7에서 9.0 사이로 추정치가 갈리고, 사망자는 자료에 따라 1만 5천 명에서 5만 명까지 벌어진다. 숫자가 이 정도로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그날의 규모를 말해 준다. 지진과 해일과 사흘간의 화재가 도시를 지웠고, 죽은 이들 상당수는 대축일 미사 중이었다. 유럽의 지식인들이 곧바로 되물은 문장이 있다. 이것이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최선인가.

그 문장을 만든 사람은 그때 이미 39년째 무덤에 있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1716년에 죽었고, 자기 명제가 법정에 세워지는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이후 300년 동안 그는 대체로 볼테르가 그려 놓은 초상으로 기억된다. 폐허 위에서도 모든 것이 최선을 향해 있다고 읊는 팡글로스 박사. 그러나 그 초상은 그가 실제로 세운 논증이 아니라, 그 논증의 결론 한 줄을 떼어낸 것이다. 논증이 무너지는 자리는 결론이 아니라 그 앞에 놓인 전제에 있다.

법률가가 만든 단어

신정론(theodicy)이라는 말은 라이프니츠 본인의 조어다. 그리스어 테오스(theos, 신)와 디케(dikē)를 합쳐 만들었고, 그 자신은 이 말의 뜻을 신의 권리와 정의에 관한 교설이라고 밝혔다. 1690년대 중반의 편지와 단편에 프랑스어·라틴어 형태로 처음 등장하며, 1710년 암스테르담에서 익명으로 출간된 책의 제목이 되었다. 원제는 『신의 선함, 인간의 자유, 악의 기원에 관한 신정론 시론』이다.

어원을 디카이오쉬네(dikaiosunē), 곧 의로움 쪽에서 풀이하는 소개를 종종 보게 되는데, 라이프니츠가 지목한 낱말은 디케 쪽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의로움은 성품의 상태이고, 디케는 법정에서 내려지는 판결이다. 라이프니츠가 세운 것은 신의 성품에 관한 묘사가 아니라 혐의에 대한 변론이었다.

그가 그런 형식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알트도르프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고, 평생의 직업은 궁정 고문관과 브라운슈바이크가의 사서 겸 사료편찬관이었다. 철학은 본업 옆에서 굴러간 일이다. 『변신론』의 구조가 형사 변론과 닮은 것도 그래서다. 혐의를 두 갈래로 나누고—신이 죄의 저자인가, 신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는가—각각을 따로 반박한다.

교파에 관한 흔한 오해도 하나 정리해 둘 만하다. 라이프니츠가 데카르트처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스콜라 전통에서 교육받았다는 설명이 널리 유통되는데, 그가 통과한 스콜라 커리큘럼은 루터파의 아성이던 라이프치히 대학의 것이었다. 1661년 입학 당시 독일어권 대학의 철학 교육은 여전히 스콜라적이었고, 그의 스승 야콥 토마지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였다. 그는 평생 루터파로 남았다. 1695년 개종을 조건으로 바티칸 도서관 사서직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했고, 보쉬에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교회 재통합을 추진하면서도 자기 교파는 바꾸지 않았다.

이 차이는 신정론의 출신을 바꾼다. 그것은 가톨릭 스콜라의 만년 산물이 아니라, 30년 전쟁이 끝난 지 두 해 뒤에 태어난 사람이 분열된 유럽에서 만든 화해 기획이다. 라이프니츠는 악의 문제를 사변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부실한 답이 더 많은 악을 부르고 서로 싸우는 분파를 낳는다고 썼다. 변론의 목적에는 신의 명예 회복만이 아니라 진영 간 휴전이 들어 있었다.

화살표가 한 칸 어긋난 자리

『변신론』은 악을 셋으로 나눈다. 형이상학적 악은 피조물에게 본래 붙어 있는 실재의 결여, 곧 불완전성 그 자체다. 신 아닌 모든 것은 유한하고, 유한한 것은 무제한일 수 없다. 물리적 악은 고통이다. 도덕적 악은 죄다. 라이프니츠는 각각에 대응하는 선도 나란히 두어, 형이상학적 선은 실재, 도덕적 선은 덕, 물리적 선은 쾌라고 정리했다.

여기까지는 개론서에서도 대체로 정확하게 옮겨진다. 문제는 셋을 잇는 방향이다. 널리 쓰이는 소개 방식—미국 개혁주의 신학자 R. C. 스프롤(1939–2017)의 철학사 강의가 대표적이다—은 도덕적 악이 물리적 악에서 흘러나오고, 물리적 악과 도덕적 악이 다시 형이상학적 악에서 흘러나온다고 설명한다. 유한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약하고, 육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실패한다는 일방향 사슬이다.

원문의 구조는 그렇지 않다.

세 종류의 악을 잇는 순서 비교 일방향 사슬로 소개되는 통상의 설명과 변신론 원문의 분기 구조를 위아래로 비교한 도식. 널리 쓰이는 소개의 사슬 형이상학적 악 피조물의 원초적 유한성 물리적 악 질병·재난·고통 도덕적 악 죄와 악한 의지 유한성이 고통을 낳고, 고통이 다시 죄를 낳는다는 일방향 순서 『변신론』 원문의 구조 형이상학적 악 피조물의 원초적 제한 물리적 악 고통·재난 도덕적 악 죄와 악한 의지 가능 조건 가능 조건 형벌 또는 더 큰 선의 수단 유한성은 고통과 죄 양쪽의 가능 조건이고, 고통은 상당 부분 죄의 귀결로 다뤄진다. 화살표 방향이 반대다.
세 악을 잇는 순서. 아래 구조에서 형이상학적 악은 고통과 죄 양쪽에 직접 걸리고, 고통과 죄 사이에는 역방향 화살표가 하나 더 있다.

라이프니츠에게 형이상학적 악은 고통의 원인인 동시에 죄의 원인이다. 유한성이 피조물을 고통에 취약하게 만들고, 같은 유한성이 피조물을 죄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둘은 나란히 놓인 결과이지, 앞뒤로 이어진 역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물리적 악을 상당 부분 도덕적 악의 귀결로 다룬다. 고통은 죄에 대한 형벌이거나 더 큰 선을 위한 수단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화살표가 반대 방향으로 하나 더 그어져 있는 셈이다.

방향 하나를 바꾸면 논증의 성격이 바뀐다. 유한성에서 고통을 거쳐 죄로 가는 일방향 사슬이라면, 죄는 유한성의 필연적 산물이 되고 책임이라는 개념이 증발한다. 인간이니까 실수한다, 유한하니까 죄를 짓는다는 결론이 바로 나온다.

자기가 그린 사슬을 자기가 반박하는 구조

앞의 강의는 마지막에 정확히 그 결론을 겨냥해 기독교 관점에서 치명적이라고 지적한다. 도덕적 악을 유한성의 필연적 귀결로 보면 성경이 말하는 창조·타락·회복의 서사와 충돌하고, 죄에 대한 책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비판 자체는 타당하다. 다만 그렇게 되는 것은 화살표를 한 칸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 본인은 그 함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결핍인(deficient cause)이라는 장치를 끌어와 죄의 책임을 피조물에게 되돌리려 했다. 악의 형상적 성격에는 작용인이 없고 결핍만 있으며, 그 결핍의 담지자가 피조물이라는 논법이다. 그 장치가 성공했는지는 별개 문제지만, 문제를 못 본 것은 아니다. 비판이 실제로 겨누는 대상은 라이프니츠가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유통된 통속화판이다.

'최선'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가장 유명한 대목의 논증은 짧다. 신은 지혜로 가능한 세계들을 모두 알고, 선함으로 그중 최선을 택한다. 최선이 아닌 것을 택하면 그 자체가 결함이므로, 완전한 존재는 최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 라이프니츠는 이것을 형이상학적 필연이 아니라 도덕적 필연이라고 불렀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선택지를 실제로 고르지 않으리라 우리가 확신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확실성이라는 뜻이다.

이 논증이 굴러가려면 먼저 성립해야 하는 것이 있다. 최선인 세계가 실제로 하나 있어야 한다. 세계들의 계열이 끝없이 더 나아지는 상승 수열이라면 최선은 존재하지 않고, 논증은 첫걸음도 떼지 못한다. 라이프니츠의 대답은 순환에 가깝다. 최선이 없었다면 신은 어떤 세계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가 있다, 그러므로 최선이 있다.

더 깊은 곳에 순서의 문제가 있다. 세계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실체들의 집합이다. 두 세계를 비교하려면 실체들의 집합을 세계로 묶는 함수와, 세계를 값으로 보내는 함수가 필요하다. 단순 합산은 쓸 수 없다. 그러면 가능한 실체를 전부 담은 세계가 자동으로 최선이 되어 버리고, 라이프니츠 자신은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선이라는 말은 순서가 정의되어야 뜻을 갖는데, 그 순서를 정의하는 일은 그 이후 지금까지 미결이다. 어떤 실체들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공가능성(compossibility) 논쟁과, 세계의 완전성을 무엇으로 재는가라는 조화 논쟁이 그 자리에서 계속 돌고 있다.

전제를 다른 각도에서 친 사람은 로버트 애덤스다. 1972년 논문에서 그는 신이 반드시 최선을 창조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도덕적으로 잘못했다는 판단은 다른 주장이다. 창조된 어느 존재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면, 신이 최선에 묶여 있다고 볼 이유가 약해진다. 은혜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최선 강제는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볼테르를 불러 결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편이 이야기로는 빠르다. 그러나 논증을 실제로 무너뜨리는 지점은 결론이 아니라 이 전제들이다. 라이프니츠를 소개하면서 이 대목을 건너뛰면, 남는 것은 반박당한 결론 하나와 그것을 조롱한 소설 한 편뿐이다.

볼테르가 겨눈 과녁, 루소가 옮긴 질문

『캉디드』는 1759년에 나왔고 부제는 '혹은 낙관주의'다. 그보다 앞서 볼테르는 1755년 12월에 180행짜리 「리스본 재앙에 관한 시」를 쓰고 이듬해 발표했는데, 그 부제가 겨눈 것은 라이프니츠의 문장이 아니라 알렉산더 포프의 격언, 존재하는 것은 모두 옳다였다. 즉 표적은 한 사람이 아니라 포프와 볼프를 거쳐 대중화된 낙관주의 일반이었다. 팡글로스는 그 통속판의 캐리커처다. 정작 『변신론』은 훨씬 조심스러운 책이고, 라이프니츠가 자기 형이상학의 가장 논쟁적인 부분들을 일반 독자를 의식해 덜어냈다는 점은 연구에서 거듭 지적된다.

더 날카로운 반론은 볼테르가 아니라 루소에게서 나왔다. 루소는 볼테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리적 악의 대부분이 실은 인간의 작품이라고 반박했다. 자연이 6~7층짜리 건물 2만 채를 그 자리에 몰아넣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덜 밀집해 살았다면 피해는 훨씬 작았거나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이 한 문단이 질문의 소유권을 옮겼다. 신의 정당성에서 인간의 설계로. 그리고 그 전환은 논쟁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리스본 재건을 지휘한 폼발 후작은 도심을 직교 격자로 다시 짜고, 석조 벽체 안에 삼차원 목조 골조를 심은 이른바 폼발식 새장(gaiola pombalina)을 도입했다. 강성을 높이는 대신 가벼움과 탄성으로 지진 에너지를 흩는 방식이고, 착상은 늘 흔들리는 환경을 견디는 선박 구조에서 왔다. 세계 최초의 체계적 내진 건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오늘 대형 재난 뒤에 우리가 던지는 질문—내진 기준은 어떻게 정해졌고, 인허가는 누가 냈고, 감독은 어디서 끊겼는가—은 신정론의 세속 후계자다. 질문의 형식은 그대로다. 이 결과를 막을 수 있었던 자가 있었는가, 있었다면 왜 막지 않았는가. 달라진 것은 피고석에 누가 앉는가뿐이다.

모나드는 남았고, 프로그래머가 사라졌다

모나드론에 대한 통상의 정리는 오늘날 사실상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반만 맞다.

21세기 심리철학에서 범심론은 주변부에서 진지한 선택지로 돌아왔다. 갈렌 스트로슨은 경험이 비경험에서 창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물리주의가 오히려 범심론을 함축한다고 논했고, 필립 고프는 구성적 범심론을, 데이비드 차머스는 원심적 속성에서 출발하는 범원심론을 검토한다. 줄리오 토노니와 크리스토프 코흐의 통합정보이론은 단순한 계에까지 의식을 귀속시킨다. 이 논의의 고질적 난점인 결합 문제—미시 주체들이 어떻게 하나의 거시 주체가 되는가—를 두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가 다시 소환되기도 한다. 모나드는 융합하지도 분열하지도 않는 단위이므로 결합 문제를 애초에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론도 살아남았다. 클라크와의 왕복 서한에서 라이프니츠는 절대공간을 거부하고 공간을 사물들 사이의 관계 질서로 봤다. 당대에는 뉴턴 쪽이 이겼지만 그 논쟁은 마흐를 거쳐 20세기 물리학에서 다시 열렸다.

정말로 죽은 것은 모나드가 아니라 그것을 굴리는 방식이다. 창 없는 단위들이 서로 인과를 주고받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라이프니츠는 창조 시점에 심긴 예정조화로 설명했다. 오늘 남은 것은 단위 쪽이고, 사라진 것은 프로그래머 쪽이다.

비유가 사후에 정확해졌다가 다시 어긋나는 지점

예정조화를 창조주가 처음에 넣어 둔 컴퓨터 칩에 비유하는 설명이 있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라이프니츠는 1673년 런던 왕립학회에 사칙연산이 가능한 계산기 모형을 시연했고, 1703년 이진법 산술을 정식화했으며, 추론을 계산으로 대체하려는 기획(calculus ratiocinator)을 평생 붙들었다. 노버트 위너는 1961년판 『사이버네틱스』에서 그를 사이버네틱스의 수호성인으로 지목하며, 계산기계라는 일반 관념이 라이프니츠 계산추론기의 기계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비유는 한 발짝 더 가면 어긋난다. 칩은 실행 중에 신호를 주고받는다. 모나드는 창이 없어 주고받지 않는다. 예정조화의 요점은 프로그램이 심겼다는 데 있지 않고, 서로 통신하지 않는 무한개의 프로그램이 사후 조율 없이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데 있다. 오늘의 어휘로는 칩보다 결정론적 시뮬레이션의 다중 인스턴스에 가깝다. 그리고 그 구도에서 신을 빼면 우주가 곧 계산이라는 현대의 서사가 남는다. 조율을 무엇이 보증하는가라는 부담은 그대로 남긴 채로.

실로암 망대가 실제로 말하는 것

재난과 죄의 관계를 다룰 때 누가복음 13장이 자주 인용된다. 그런데 구술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공사 중이던 성전이 무너져 사람들을 덮쳤다는 식으로 바뀌는 일이 잦다. 본문은 성전이 아니라 실로암 망대이고, 죽은 사람은 열여덟 명이며, 질문을 가져온 이들도 제자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몇 사람이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사건은 신약에서 이 대목에만 나오고 다른 사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대답의 방향이다. 예수는 먼저 두 번 부정한다. 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망대에 깔린 열여덟 명이 예루살렘의 다른 이들보다 더 큰 죄인이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경고는 그 두 번의 부정 뒤에 온다.

즉 이 본문은 개별 재난과 개별 죄 사이의 비례를 끊는 자리다. 물리적 악을 도덕적 악의 귀결로 읽는 독법의 근거로 삼기에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 타락과 피조 세계의 신음을 잇고 싶다면 로마서 8장 같은 다른 본문이 필요하고, 그 연결은 개별 사건의 인과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상태에 관한 진술이다. 두 층위를 섞으면 욥의 친구들이 하던 말이 된다. 흥미롭게도 같은 강연자가 글로 이 본문을 다룰 때는 예수가 죄와 고난의 비례 관념을 끊으려 했다는 점을 정확히 짚는다. 강연에서의 압축은 기억의 문제이지 신학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압축이 논증에 동원되면 논증이 그만큼 약해진다.

야심을 낮춘 쪽이 살아남았다

20세기에 이 논쟁은 형태를 바꿨다. 1955년 존 매키는 전능·전선과 악의 존재가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논했다. 1974년 앨빈 플랜팅가는 신정론이 아니라 변호(defense)로 응수했다. 신이 실제로 왜 악을 허용했는지를 말하지 않고, 양립 가능한 이야기가 하나라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만 보이는 전략이다.

용어가 갈린 이 지점이 핵심이다. 신정론은 신의 실제 이유를 대겠다는 기획이고, 변호는 모순이 없음만 보이겠다는 기획이다. 라이프니츠는 앞의 것을 했고, 살아남은 것은 뒤의 것이다. 매키 자신도 1982년 저서에서 자유의지 변호가 유신론의 논리적 비일관성을 해소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물론 유신론에 대한 자기 반론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고, 그레이엄 오피처럼 그 정리가 통설로 굳은 것 자체에 이견을 내는 이들도 있다.

무게중심은 1979년 윌리엄 로우의 증거적 논증으로 옮겨갔다. 악이 신의 존재와 논리적으로 모순되느냐가 아니라, 세상에 있는 악의 양과 종류가 신의 부재를 얼마나 개연적으로 만드느냐를 묻는다. 이 형태에 라이프니츠식 답은 잘 듣지 않는다. 최선의 세계라는 주장은 확인할 수 없는 전체에 호소하는데, 증거적 논증은 확인할 수 있는 개별 사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별 너머에 더없이 행복한 피조물들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라이프니츠의 응답은, 바로 그 비대칭을 보여 준다.

라이프니츠를 실패한 시도로 정리하고 끝내는 소개가 많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실패라기보다 야심의 축소다. 300년 동안 이 문제에서 진전이 있었다면, 답을 찾은 쪽이 아니라 무엇을 답이라 부를지 기준을 낮춘 쪽에서 있었다.

36개월 안에 갈릴 세 가지

  1. 신정론의 논증 형식이 인공지능 배포 책임 논쟁에서 반복될 것이다. 강력한 설계자가 왜 이 결과를 허용했는가, 설계자의 의도와 시스템의 산출을 어디서 분리하는가. 개발사가 모델의 출력에 대해 능력은 제공했으되 그 내용을 의욕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는 구도는, 라이프니츠가 물리적 동조와 도덕적 동조를 갈라 두었던 구도와 형식이 같다.

    반증 조건 — 주요 관할권의 규제와 판례가 설계자의 의도를 묻지 않고 결과 책임 쪽으로 수렴하면, 이 유비는 담론에서 힘을 잃는다.

  2. 범심론은 학계에서 주변부의 진지한 선택지라는 위치를 유지하고 그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논쟁은 결합 문제와 통합정보이론의 검증 가능성 주위에 머문다.

    반증 조건 — 의식 이론들을 직접 겨루게 하는 적대적 협업 실험에서 특정 이론이 결정적으로 배제되거나 지지되면 판이 바뀐다.

  3. 라이프니츠의 대중적 인용 지분이 최선의 세계에서 이진법·계산 기획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인공지능 담론이 자기 계보를 소급할 때 그가 놓이기 좋은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반증 조건 — 앞으로 3년간 나오는 일반 독자용 라이프니츠 언급이 여전히 신정론과 팡글로스 일화에 머물고 계산 계보 쪽 언급이 늘지 않으면 틀린 전망이다.

위로하지 못한 변론

라이프니츠 자신이 이 기획의 시험대를 어디에 두었는지는 분명하다. 그는 악의 문제를 알렉산더의 칼로도 풀 수 없는 매듭이라 불렀고, 이 의심이 수많은 사람을 절망이나 악행으로 몰아갔다고 썼다. 자기 답이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갈라진 진영을 묶을 수 있는지가 그 답의 시험이었다. 그가 『변신론』을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그것도 자기 책 중 가장 두껍고 가장 대중적인 형태로 낸 이유도 거기 있다.

형이상학적으로 옳은 답과 위로가 되는 답은 다르다. 리스본에서 갈린 것은 앞의 것이 아니라 뒤의 것이다. 팡글로스가 우스운 이유는 그의 명제가 반증되어서가 아니라, 폐허 위에서 그 명제를 발음하는 일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어서다. 라이프니츠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보면 그의 변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졌다.

300년 뒤에 남은 것은 최선의 세계라는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려면 무엇을 먼저 증명해야 하는지에 관한 목록이다. 최선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세계들 사이에 순서를 매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서를 아는 자가 그 순서대로 움직인다는 것. 셋 중 어느 것도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